가까이 있는 나라인데 일본을 처음 찾았다.
히로시마에 달라이라마께서 오신다고 하고,
달라이라마궁의 공식통역사인 텐진된메(박은정)와
이미 10개월 전부터 약속이 되어 있는 탓에
꼭 가야만 하는 자리였다.
박은정 양은 대구에서 학교를 나와
일본 유학생활을 거쳐 미국에서 공부하던 중
티벳불교를 접하게 되었고, 티벳스님과의 인연으로
인도 다람살라의 티벳승가대학(달라이라마 설립)으로 유학을 하게 되었다.
지금 6년째 공부를 하고 있는데, 앞으로도 7년을 더 공부할 계획이고,
언어감각이 남달라서, 일어, 영어, 티벳어가 능통한 아가씨다.
나와의 첫 인연은,....
2001년도에 남인도를 여행하면서
여독에 매우 지쳐서 병이 났는데,
그 몸을 이끌고 북인도의 다람살라에 갔다가 결국은 스러졌다.
티벳인이 경영하는 썰렁한 호텔에서 걱정된 티벳인의 주선으로
코리안 페이션트 상태가 한국인 유학생들에게 알려졌고
다람살라에서 30여km떨어진 히말라야의 설산이
눈부시게 바라보이는 사라의 승가대학으로 그들이 나를 데려갔다.
그곳에 한국인 유학생 세 명이 있었는데,
박은정 씨는 아침마다 찾아와서 병문안을 하고,
어렵게 구한 재료들로, 한국식 음식을 만들어 주었다.
그렇게 병세를 회복한 후, 그들의 조건 없는 따듯한 보살핌으로
한국에 돌아와서, 나는 티베트 고승이 한국에 오면
성심것 안내와 숙소를 마련해 주었다.
지금 박은정씨는 출가자로서 수행 중이다.
예쁜 아가씨인데, 이미 세속적 삶의 방식은 접은 지 오래다.
그녀에 대한 나의 마음은 종교적인 사랑과 보디사트바로서의 존경이다.
지난 2월에 만난 후 히로시마에서 7개월여 만에 만났다.
경주동국대학교의 백겸임 교수와 히말라야여행동호회장인 대머리 후배,
그리고 출판사를 경영하며, 티벳여행 전문가인 김선생,
대구에서 온 씩씩한 아가씨 이주영.
이렇게 다섯 사람이, 달라이라마를 특별히 친견하는 멤버다.
백 교수는 남편의 거듭되는 사업실패로 결국 결별하고,
심한 병으로 수술을 한 후 회복 중이었고,
인생의 허무함에 지쳐있었는데,
달라이라마와의 친견과 설법에 자극받아
새로운 활력과 원력을 세우고 얼굴빛이 매우 밝아지게 되었다.
청담동에 제법 큼직한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고, 자녀들 유학가고 돈 걱정은 없는데
삶이 그렇게 재미가 없었단다.
티벳여행 전문가인 김 선생은
한 번 여행을 떠나면 6~7개월을 떠돌아다녀서
월급 많이 준다는 출판사서도 결국은 쫒겨 나고,
수행자를 추구하면서도 여인의 정에 이끌려
지금껏 결혼도 못했으면서 세월을 흘려보냈다.
단지 바미얀석불을 보겠다는 일념으로 아프가니스탄 반군지역에 들어가
목숨을 겨우 부지하고 살아온 탓에 아무 오지에 가서도 적응을 잘한다.
이번 일본에서도 미화 400불로 그 물가 비싼 땅을 한 달이나 돌아다녔다.
히로시마의 원자탄 피폭지 바로 아래 선루트 호텔에서 이틀을 묵으며,
상공에서 번적이며 터지는 원자탄의 섬광이 눈에 아른거려
밤에 잠을 설쳤다.
달라이라마 친견 하루 전날,
히로시마의 한 한식당에서 일본인 승려들과 만났다.
일본 최대 종파인 정토종의 승려들인데,
큰 스님의 딸이 5명인데, 사위가 되는 조건으로 모두 승려가 되어서 이룬
불교가문이었다. 한국불교와 달리 출가하지 않고
생활불교로 자리 잡은 것이 생소했다.
이 분의 제자 중에 유일한 한국인이 있었다.
법명은 혜선 현담. 1958년 생이었다.
현담스님(에즈미 상)은 일본화단에서 국보급 화가로 성공한 사람이다.
그의 그림은 불교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서 그리는 것으로
화단에서 인정한 호당 공식 가격이 15만엔이었다.
웬만한 그림 한 점이 4-5천만원 정도이고,
그 분이 그린 만다라는 1억엔(9억원)이 넘는 가격으로 팔린다.
한마디로 완전히 부르죠아 승려인 셈이다.
나중에 와카야마의 현담 스님 시골별장에서 밤새 놀았거니와
스님의 부인인 에이꼬 상의 놀라운 음식 솜씨를 보게 되기도 하였다.
오오사카에서의 추억과, 교토에서 함께 지내며 알게 된
일본의 정신과 그들 상류사회의 모습은,
그동안 내가 가진 일본에 대한 선입견이 얼마나 지엽적이었는지 깨닫게 했다.
아무튼 세계문화유산인 宮島의 고찰 대성원에서
가진 달라이라마의 설법을 통해, 함께 지내며
우리는 더욱 가까워졌다.
달라이라마 설법 중에, 한 일본인 아가씨는 이렇게 질문을 던졌다.
“달라이라마님. 여기 분명히 내가 존재하고 있는데,
왜 없다고 하시는 거죠? 단지 공(空)으로 존재한다고 하셨는데,
내 존재 자체가 무(無)일 수 있을까요?
저는 여기 이렇게 있잖아요.”
달라이라마께서는 일문일답으로 설명하신다.
“그대가 여기 있다는데, 당신의 그 손이 당신인가요?”
“아니요. 이것은 나의 손입니다.”
“당신의 발은 그럼 당신인가요?”
“아니요. 나의 발일뿐이죠.”
“그럼 당신이 당신이라고 믿는 당신 몸의 어느 부분도 당신은 아니고
단지 당신‘의’ 심장, 당신‘의’ 머리, 당신‘의’ 뇌일 뿐인가요?
그러면 뇌는 당신이라고 생각하는 그 어떤 것의 뇌인데,
그 어떤 당신의 실체가 있나요?
당신이 당신이라고 생각하는 ‘마음’이 당신인가요?
아니면 당신이 ‘생각’하는 능력이 당신인가요?
당신이라고 인정할만한 당신이 어디 있나요?”
“그냥 떼어 놓고 보면 내가 없지만, 전체적인 모습으로 이렇게 내가 있는거 아닌가요?”
“그 전체적인 모습이 당신이라면, 생각과 마음과 다리와 팔과 눈과 오감과...
그런 것들이 없어도 당신이라고 믿는 그 전체가 존재하나요?”
“아니요..그러면 나는 존재하지 못하죠.”
“그러면 당신의 생각과 마음과 팔과 다리와 오장육부가 당신의 실체가 아니고
당신이라고 믿는 그 전체가
그런 생각과 마음과 팔과 다리와 오장육부가 없이 존재할 수 없다고 본다면,
당신은 없는 것이 아닙니까?”
“................네.......없어요....”
“우리는 상호 의존하는 모습으로 있는 것이지, 본래 ‘나’라는 것은 없어요.
연기(緣起), 즉 인연으로만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모였다가 흩어지는 모래와 같이
공성(空性)인 것이지 그것이 실체로서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지은 인연으로 이렇게 있지만, 인연이 흩어지면 있지 않은 것입니다.”
법석을 가득 메운 일본인들은
고요하게 경청한다.
통역자의 낭랑한 소리만이
단풍이 물들어가는 산사의 햇살을 받아
은비늘처럼 반작이는 파동이 된다.
히로시마에서 오사카를 시간이 안 맞아 신칸센을 포기하고
버스를 탔다. 총 5시간 걸리는 고속도로를
무려 4번이나 1시간 간격으로 휴게소에 들른다.
거리에는 약 40퍼센트가 티코같은 국민차이고,
오사카시내도 혼잡하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전거로 출퇴근을 해서 그렇단다.
한적함과 깨끗함....서울의 도시풍경과는 사뭇 다르다.
현담스님은 일본 생활 30년만에 한국말을 잘 못한다.
한국인과 만날 기회가 별로 없다고 한다.
영국과 유럽등지에서 강의를 하기에 일년이면 절반은 나가있고,
일본사회에서 상류사회로 진출하기 위해
피눈물 나는 이지메를 겪으면서도 이렇게 성공했다.
에이꼬 상과는 연세대 한국어학당에 왔던 스무 살 무렵,
강릉 가는 버스 안에서 만났다고 한다.
당시 현담스님은 해인사 소속 승려였는데,
에이꼬 상과의 국제연애를 통해 아이까지 낳게 되었고,
7년이나 숨기고 승려생활을 했다고 한다.
에이꼬 상은 그러한 남편을 위해 10년을 기다렸고,
일본의 재산을 팔아서 남편뒷바라지와, 사찰까지 지어주었다고 한다.
중광스님의 바보산수와 불화의 모티브를 주기까지 했던
현담스님의 그림실력으로 이제는 그 빛을 갚게 되었지만,
인연이란 참 묘한 것이라는 자각이 들었다.
나를 보고도 이제 그만, 인연을 지으란다.
브라질에서 온 마음 착한 아가씨가 있는데,
머리는 없지만, 예쁘고, 성실하단다.
고자인지 확인하겠다고 온천에 함께 가서
서로 거시기를 보고 웃었다....
언제든지 일본에 오면
당신의 절과 별장을 내주겠단다...
곳간의 친구들과 함께 가보면 좋겠다.
이번 주에 우리는 또 경주에서 다시 뭉친다.
인연은,
그렇게 또 시작이다.
공(空)에서.
첫댓글 일본여행이...매우 흥미롭습니다...
벽하님의 많은 인연가운데 누군가는 '함께할 수 있는 인연'일지도 모릅니다. 지금, 복잡다단한 관계성을 갖고 살아가는 많은 부부들이 처음엔 '空'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경험자 입장에서 귀띔하고 싶습니다. "이번엔 경주에서..." 벽하님의 끝없는 인연찾기 엿보기 ㅋㅋ
지금 어느 하늘아래 있을 벽하님의 숨은 인연찾기~~부디 성공하시기를 바랍니다~~어쩌면 생각보다 가까운곳에 있을지도? 좋은 인연이 기다리고 있기를~~~
부용 님만 같다면요......인사동에서 반가왔어요...
잘 읽었읍니다....
먼데서 찾지 말구 가까운 곳에서 찾으시구려......ㅎㅎㅎ.
네
공감60 짱님 여기저기 저기여기 다니시느라 바쁘시구만요.. 어쨋거나 좋은소식만 기대합니다.
갑자기 환속... 환골탈퇴<?>가 생강나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