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산을 넘어
방학에 들어 뭍으로 건너온 십이월 다섯째 일요일이다. 새벽에 일어나 원고를 몇 줄 남기고 약차를 달였다. 떠날 곳은 여기저기 꼽아 놓았다만 이른 아침밥을 들고 평범한 산행을 나섰다. 배낭엔 보온도시락을 챙겼다. 아침 해가 뜨지 않은 시각 집 앞에서 동정동으로 가는 105번 버스를 탔다. 북면 온천장 가는 녹색버스로 갈아타 천주암 아래 내렸다. 일일 보도 여정의 기점이다.
날은 덜 밝아왔고 짙은 구름이 낀 날씨였다. 한 사내는 부피가 제법 된 배낭을 메고 같이 내렸다. 그는 어디 먼 데서 온 듯 들머리 천주산 등산 안내도를 살피고 있을 때 나는 비탈을 따라 올랐다. 전깃줄엔 까마귀 떼들이 나란히 앉아 ‘까옥! 까옥!’거렸다. 속담에 ‘까마귀도 고향 까마귀가 낫다.’라는 말이 떠올랐다. 한동안 거제 머물다 창원으로 돌아오니 까마귀도 친근해 보였다.
식당과 독립가옥을 지나 등산로를 비켜 암자로 올랐다. 샘터에서 약수를 한 모금 마시고 느티나무 사이로 창원 시가지를 굽어봤다. 구름이 낀 날씨라 시야가 흐려 시내가 뚜렷하게 드러나질 않았지만 높고 낮은 건물의 윤곽은 보였다. 창원컨트리클럽에선 골퍼들 있는지 불빛이 훤했다. 절간을 벗어나 등산로로 드니 새벽 산행을 마치고 하산하는 아낙 셋이 말동무가 되어 내려왔다.
돌계단을 쌓은 등산로를 따라 약수터로 올랐다. 주말인데도 이른 아침이어선지 산행객이 드물었다. 약수터에서 숨을 고르고 고갯마루로 올랐다. 고갯마루부터 정상까지는 등산로가 가팔라 근래는 잘 오르질 않는다. 산허리로 난 임도를 따라 걸었다, 북사면에 심겨진 잣나무들이 무성해져 훌륭한 삼림욕장이 되었다. 달천계곡으로 내려서는 갈림길을 지나 함안 경계 고개로 나아갔다.
고개를 돌려 감계와 온천 방향으로 쳐다보니 구름 낀 하늘 아래 가깝고 먼 산들이 겹겹이 둘러쳐 북으로 뻗쳐갔다. 언제 틈이 날 때 온천을 한 번 찾아 시린 무릎 관절도 풀어야겠다. 함안 경계에서 칠원 산정마을로 가는 임도로 내려섰다. 주변은 수 년 전 잡목을 잘라내고 편백나무를 심은 수종 갱신지구인데 지나간 가을 잦은 태풍으로 산사태가 일어나 응급으로 복구되어 있었다.
골짜기로 내려가니 산사태가 심했는지 자갈과 흙이 덮쳐 있었다. 자전거를 타는 동호인들이 페달을 부지런히 밟아 비탈을 올라왔다. 나처럼 도보 트레킹을 나선 이들은 볼 수 없었다. 건너편 호연봉으로 가는 산등선은 낙엽이 진 나뭇가지가 앙상했다. 병풍처럼 둘러친 산언덕에 다래나무와 칡넝쿨 세력 좋게 엉켜 있었다. 고개를 넘어온 자전거 동호인들은 나를 앞질러 냅다 달렸다.
임도가 끝나고 산중 마을이 나왔다. 마을 이름이 산정(山亭)이다. 아마도 산속 정자처럼 우뚝한 곳이어서 그런지 싶다. 꽤 큰 저수지 안쪽에 있는 마을로 예전엔 초등학교 분교장이 있기도 했다. 주민은 모두 고령으로 논밭 경작지와 단감농사를 짓고 살았다. 산정마을엔 작고한 시모로부터 전수받은 농주를 빚어 파는 할머니가 있다. 내가 가끔 찾아 곡차를 들고 가는 주막인 셈이다.
앞서 내려간 자전거족 사내 다섯이 자리를 선점해 있었다. 겨울이면 마당에 비닐을 둘러치고 화목 난로를 피웠다. 나도 그들 곁에서 청주와 탁주를 각 한 병 시켰다. 누룩에다 고두밥으로 빚은 농주를 용수에서 바로 뜨면 청주고, 체에다 거르면 탁주였다. 먼저 자리를 차지했던 자전거 동호인이 떠나고 난 뒤 배낭의 도시락을 꺼내 비웠다. 못 다 비운 농주는 배낭에 담아 일어섰다.
산정에서 비탈을 따라 구고사로 올랐더니 경내는 조용했다. 범종루 추녀에 매달린 풍경은 바람이 불지 않아 소리도 그쳤다. 절간을 나와 양미재를 넘어 외감마을로 향했다. 가랑잎 삭은 부엽토 길을 걸었다. 숲을 빠져나가 감계로 갔더니 오일장이 서는 날이었다. 고등학교가 들어설 부지에 유목민처럼 떠도는 장사꾼이 닷새마다 찾는 장터를 빙글 둘러보고 시내로 가는 버스를 탔다. 19.1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