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대구비산초등학교 1회 동기회 원문보기 글쓴이: 오성석
눈내린 고운사정경
의성은 나의고향이다. 하지만 그 깊이를 모르고 살았다. 안동의 유교문화유적과 인접 청송과 관광지 위주의 놀이문화의 그늘에 가리워져 있는 의성여행.. 한적하지만 산재해 있는 유적과 따뜻한 시골의 정취를 느끼기에는 멋진 가족여행지이다.
의성은 역사와 전통이 깊은 곳이기도 하지만 때묻지 않은 자연과 사람 문화가 아직도 살아 있는 곳이기도하다.
1.금성면(탑리)일대
*탑리 5층석탑
오층석탑은 전형적인 시골집들이 옹기종기 들어찬 마을 복판, 옛 초등학교 자리로 추정되는 공터의 높직한 언덕에 저녁햇살을 받으며 참 쓸쓸하고 고독하게 서 있었다. 탑 주위를 둘러친 철제 울타리는 낡았고, 근처를 서성이는 사람조차 한 명 없었다. 보물도 아닌, 명색 ‘국보 77호’라는 월계관이 무색할 지경이었다.
의성탑리오층석탑의 가장 큰 가치는 우리나라의 탑파, 특히 신라의 탑이 전탑 양식에서 석탑으로 이행하는 과도기적 양식을 잘 보여준다는 점에 있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신라 탑의 역사는 중국의 벽돌탑(塼塔)을 본받은 ‘모전석탑’에서 출발한다. 그 이후 삼국통일을 이룩하면서 스스로 확립한 모전석탑의 전통에 백제가 완성한 화강암 석탑의 양식을 절충한 새로운 탑의 형태를 모색하게 된다. 이를테면 전탑을 모방한 신라탑과 목탑을 모방한 백제탑이 양식상의 절충을 통해 제3의 양식을 창조하게 되었던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증거를 바로 이 의성탑리오층석탑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러므로 탑리오층석탑에서는 전탑의 특징과 목탑의 특징이 다같이 발견된다.
금성산과 비봉산
*금성산
금성산은 의성의 명산으로 숱한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 해발 531m의 국내최초 사화산으로 태백산맥 남쪽 일부이다.중생대 백악기 7000만년전에 폭발한 화산으로 함몰된 칼데라호의 흔적이 정상에 있다. 옛 삼한시대 부족국가인 조문국시대에 조성한 길이 2,730m, 높이 4m의 금성산성을 배경으로 등산로가 개설되어 있으며 산성을 따라 가면서 흔들바위, 조문전망암, 아들딸바위, 동굴, 솟대바위 등이 있으며 해발 671m의 비봉산과 쌍벽을 이루고 있다. 금성산은 산정에 무덤을 쓰면 석달 동안 이 지역에는 비 한방울 내리지 않는 가뭄이 들고, 묘를 쓴 사람은 운수 대통하여 큰 부자가 된다는 전설을 간직한 영산으로서 신라시대 의상이 창건한 유서깊은 고찰 수정사 산운 대감마을을 함께 둘러보며 등산하기에 좋은 곳이다. 의성마늘이 좋은 이유가 화산분출시 나온 화산재가 흩어져서 그렇다는 말도 있으나 믿거나 말거나......
*산운대감마을
산운마을은 영천이씨 집성촌이다. 급성산 자락에 위치해 있는 고택이 있는 아늑한 곳이다.
산운마을에는 80여가구가 모여 산다. 학동 이광준이 최초 입향한 후 400년을 훌쩍 뛰어넘어 맥을 잇고 있다. 참의 이민성, 판서 이희발, 한일합방 시 애국지사로 건국 공훈을 세운 이태직 등이 모두 이곳 출신이다. 산 밑에 나지막이 엎드린 마을은 인기척을 찾기가 쉽지 않다. 주민 대부분이 고령의 촌로인 까닭이다.
마을 곳곳에는 회화나무가 우뚝우뚝 서 있다. 과거에 급제하거나 벼슬이 올라가면 집 주위에 심는다는 그 나무다. 마을 안으로 들어서면 길은 낮은 돌담을 따라 이리저리 굽이친다. 원형을 잘 지닌 아름다운 돌담길이다.
조선 명종 때 영천이씨 입향조인 학동 이광준을 위해 지은 학록정사(지방유형문화재 242호)와 소우당(지방중요민속자료), 운곡당(전통건조물 11호), 점우당(전통건조물 12호)을 비롯해 수십여채의 고택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오랜 세월 풍화로 깎이고 파인 흔적이 역력하지만 옛 조상의 자취와 정신을 고스란히 내보인다.
점우당은 이병직의 증조부인 죽파 이장섭이 1900년께 지은 가옥. 남서쪽을 향하고 서북쪽으로 운곡당과 같은 담장을 쓰고 있다. 운곡당은 이목의 5대조인 운곡 이희발이 영월부사로 재직할 때인 1800년대 초기에 지어졌다. 금성산을 등지고 남동쪽으로 향한 집은 안채에 사랑방과 고방이 한 동으로 연결된 ‘ㅁ’자형 모양새다.
*조문국 경덕왕릉 및 고분군
조문국은 삼한시대 부족국가로 신라 벌휴왕 2년(185년)에 신라에 병합되었다고 한다.
경덕왕릉은 그 형식이 전형적인 고분으로서 봉분 아래 화강암 비석과 상석이 있다고 한다.
조문국 경덕왕릉(景德王陵) 주변에는 약 40여기의 고분이 분포되어 있는데, 금성면 일대는 오랫동안 조문국의 도읍지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문헌자료의 기록이 매우 미미하여 조문국의 역사와 문화를 설명하기에는 크게 부족한 실정이란다.
옛날 외밭이었던 묘역을 발견하고 수호하게 된 데에는 의성 현령의 꿈에 의하여 발견하게 되었다는 전설이 있으며, 지금도 매년 춘계향사를 지내고 있다.
이를 보완 할 수 있는 자료가 바로 경덕왕릉 주변에 분포하고 있는 금성산 고분군이며, 이곳에 소재하고 있는 고분들을 통해 의성지역 지방세력과 사회구조 및 의성지역과 신라와의 관계를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는 문화해설사의 설명이었다.
고려시대 문익점 선생의 자손이 의성 땅에 목화재배를 시작한 경위와
목화를 처음 원나라에서 수입해 온 조상의 공적을 기린 비석으로서 첫 재배지인 의성 땅에 세웠다.
융희 3년(1909년 10월)에 탁암 김도화(拓庵 金道和)가 비문을 짓고 김희국(金熙國)이 썼다.
참고 : 의성문화원, 『의성유적지』, 1996.
♣ 소재지 : 경북 의성군 금성면 제오리 산111
*공룡발자국 화석
공룡은 중생대의 주라기부터 백악기에 걸쳐 번성했던 길이 5∼25m의 거대한 파충류를 통틀어 말한다.
의성 금성면 제오리의 공룡발자국화석은 의성군 관내 지방도로 확장공사 중 산허리 부분의 흙을 깎아내면서 발견되었다. 화석은 중생대 백악기 때의 것으로 약 1억 1,500만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곳에서 발견된 공룡발자국화석은 4종류의 공룡발자국 316개가 확인되었으며, 발굽울트라룡, 발톱고성룡, 발목코끼리룡 등 3종류의 초식공룡발자국과 육식공룡인 한국큼룡발자국이 발견되었다. 이곳에서는 대·중·소형의 초식공룡과 육식공룡의 발자국이 동시에 발견되어 공룡의 서식지였음을 짐작케 한다.
의성 제오리의 공룡발자국화석은 발의 크기, 보폭, 걷는 방향 등을 알 수 있어 당시 공룡의 모습과 생활 등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로 학술적 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2.경북8승 중 하나-의성 빙계계곡
금성에서 이웃한 가음면 소재지를 지나 10여분 달리면 춘삼면에 소재한 빙계게곡이 나타난다.금성에서 20여분 거
리에 있다.
빙계계곡의 풍혈-도로변에 산재해있는 이런 빙앞에는 여름철 많은 이들이
모여 앉아 찬바람을 쐬며 소풍을 즐긴다.
의성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이 '석탑 박물관'.
지명중 탑리가 있을 정도로 수려한 풍광 속에 우뚝 선 탑이 많은 곳이다.
하지만 무더위가 찾아오면 어김없이 각광받는 곳이 있다.
이름에서부터 시원함이 느껴지는 빙계계곡이다.
예부터 차가운 바람이 부는 계곡이라 하여 붙여진 빙계계곡에는
유난히 얼음 빙(氷)자가 들어가는 이름이 많다.
빙계계곡을 둘러싼 산이 빙산, 계곡이 있는 마을이 빙계리,
계곡 내 절터는 빙산사터.
의성문화원 이종우 원장은 "이곳 빙계리가 속한 의성군 춘산면도
과거에는 빙산면이었는데 조선 철종때 마을에 '빙'자가 너무 많으면
인재가 나오지 않는다 해 봄춘(春)으로 바꿨다"고 말했다.
빙계계곡은 여느 바위에서도 냉기가 나온다.
군립공원인 빙계계곡은 빙산 골짜기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기암절벽을 돌아 굽이쳐 한폭의 동양화처럼 멋스런 풍광을 이루고 있다.
예부터 경북8승 중 하나로 손꼽힌다.
계곡 입구는 빙계서원. 도산서원보다 17년 앞선다.
이곳에는 이언적 유성룡 김안국 등 5현이 모셔져 있다.
서원을 지나 다리 건너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오른쪽엔 시원한 계류와 함께
거무죽죽한 운치있는 바위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방랑시인 김삿갓은 "굽이치는 개울물에 물고기가 헤엄치고 떨어질 듯
매달린 바위 틈에 꽃이 피어 드리워졌구나"며 이 곳을 노래했다.
길 왼쪽의 바위 틈에서는 소문대로 찬 기운이 느껴지고
관광객들은 신기한 듯 다가가 바위 주변을 둘러본다.
의성 빙계계곡의 풍혈
빙계계곡의 하이라이트인 빙혈(氷穴)과 풍혈(風穴)로 가는 입구,
빙계상회 안주인 김향숙씨는 "초복때쯤부터는 하루종일 찬 기운이
바위틈새로 뿜어져나와 짙은 안개가 낀 것처럼 장관을 이룬다"고 설명했다.
빙혈과 풍혈까지는 3분도 채 안되는 거리.
아름다운 숲과 조화를 이루는 빙산사지 오층석탑을 지나면
갑자기 냉기와 함께 뿌연 김이 앞을 가린다. 이구동성으로 '와~아'.
원래 빙혈은 빙산 기슭 바위에 뚫린 굴이지만 입구를 작은 건물로 단장해
안으로 들어가 구경하도록 설계돼 있다.
들어가면 벽돌과 유리문으로 막아 놓은 곳에서 서늘한 기운이 나와
온몸에 오싹 한기가 돋는다. 입에서 하얀 입김도 나온다.
빙혈에서 나와 계단을 오르면 풍혈이 있다. 바위와 바위 사이의 작은 굴이다.
어른 두 사람이 겨우 들어갈 공간이다.
빙혈에 비하면 좀 떨어지지만 차고 뿌연 냉기를 발산한다.
빙계계곡 입구에서 약 1㎞ 떨어진 곳에 더운 물이 나오는 빙계온천이 있다.
찬바람이 불고 얼음이 어는 계곡 근처에 온천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대단한 흥밋거리가 아닐 수 없다.
빙계서원
빙산사지 5층석탑-통일 신라시대의 전탑형식의 석탑이다..의성에는 이와같은 양식의 탐이 곳곳에 산재해 있다.
의성은 가히 탐의 고장이라고 할 수 있다.
3.고운사-단촌면
고운사는 신라 신문왕 원년(서기 681년)에 해동 화엄종의 시조이신 의상대사께서 창건하신 사찰이다. 부용반개형상(연꽃이 반쯤 핀 형국)의 천하명당에 위치한 이 사찰은 원래 高雲寺였다. 신라말 불교와 유교ㆍ도교에 모두 통달하여 신선이 되었다는 최치원이 여지ㆍ여사 양대사와 함께 가운루(경북 유형문화재 제151호)와 우화루를 건축한 이후 그의 호인 孤雲을 빌어서 孤雲寺로 바뀌게 되었다.
고려 태조 왕건의 스승이자 풍수지리사상의 시조로 받들어지는 도선국사가 가람을 크게 일으켜 세웠으며 그 당시 사찰의 규모가 五法堂十房舍(5동의 법당과 10개의 요사채)였다고 한다. 현존하는 약사전의 부처님(보물 제246호)과 나한전 앞의 삼층석탑(경북 문화재자료 제28호)은 도선국사께서 조성하신 것들이다.
특히 고운사는 해동제일지장도량이라 불리는 지장보살영험성지이다. 옛부터 죽어서 저승에 가면 염라대왕이 고운사에 다녀왔느냐고 물었다고 하는데 지장보살님의 원만자비하신 풍모는 물론이거니와 명부십대왕의 상호와 복장도 다른 사찰에서는 보기 힘든 위엄과 정교함을 자랑한다.
일제시대에는 조선불교 31총본산의 하나였고 지금은 조계종 제16교구의 본사로 의성, 안동, 영주, 봉화, 영양에 산재한 60여 대소사찰들을 관장하고 있다. 사세가 번창했을 당시에는 366간의 건물에 200여 대중이 상주했던 대도량이 해방이후 쇄락하여 많은 사찰재산이 망실되고 지금은 이십여명 대중이 상주하는 교구본사로는 작은 규모의 사찰로 전락하였다.
고운사 입구의 천년소나무 숲--고요하고 아늑하다.
하지만 10여년전부터 중창불사의 뜨거운 원력으로 주변을 정리하고 낡은 건물들을 수리 및 단청하여 지금은 위풍당당한 본산의 위상과 소박하고 절제된 수행지로서의 이미지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 정도 규모 이상의 고찰로서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입장료를 받지 않는 고운사는 민가로부터 3km 정도 떨어져 오염되지 않은 순수함을 자랑하며 일주문에 이르는 솔밭 사이 비포장길은 부처님께 진실된 마음으로 다소곳이 다가서는 불자들의 마음처럼 포근하고 정감넘치는 모양을 하고 있다.
청정하고 엄격한 수행가풍을 자랑하는 고금당선원에서 정진하는 스님들을 비롯한 고운사의 모든 대중들은 위로는 진리를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제도하는 대승불교의 참모습을 구현하기 위해 새벽의 찬공기를 가르며 부처님전에 발원을 멈추지 않는다.
4.사촌마을과 사촌 숲
고운사에서 작은 고갯마루 하나넘으면 나타나는 곳 의성 점곡면이다. 여기에 의성김씨 집성촌인 사촌마을이 있다.
5.산수유 마을-사곡면 화전리일대
의성에서 가장 흔한 나무 가운데 하나가 산수유이다. 3월 말부터 4월 중순까지 물이 흐르는 하천 주변은 물론, 마을의 들머리나 뒷산을 노랗게 물들이는 나무는 모두 산수유라고 보면 틀림없다.
이중 산수유마을로 불리는 사곡면 화전리는 특별하다. 산수유가 마을을 온통 뒤덮고 있어서다. 그 길이만도 4㎞가 넘는다. 특히 화전 2리 숲실마을은 산비탈, 밭두렁, 개천변 등 사람의 손길이 닿는 곳은 온통 산수유가 ‘점령’했다. 짧게 30년, 길게는 300년 된 산수유 3만여 그루는 유달리 추웠던 지난 겨울을 보낸 탓인지 예상보다 일주일 가량 늦은 지난주에야 꽃망울을 터뜨렸다.
숲실마을에 산수유가 이처럼 많은 것은 먹고 살기 힘들던 시절, 한약재로 쓰이는 붉은 산수유 열매를 얻기 위해 한 그루 두 그루 심기 시작했던 데서 비롯됐다. 덕분에 화전리는 전국 최고의 산수유 마을이 됐다.
런데 숲실마을은 전남 구례나 경기 이천과 달리 ‘무명’이나 다름없다. 외부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탓이다. 외지인의 발길이 거의 없었던 만큼 흔한 러브호텔은 물론 변변한 식당도 없다.
6.의성읍 문소루
의성읍의 옛 모습은, ‘문소지도’라는 고지도가 전해지고 있어 지금도 상세히 알 수 있다.
지도를 보면 현재 의성초등학교 자리가 객사였고,
의성군청 자리가 동헌이었음을 알 수 있다.
고려중엽에 건축되었으나 지금은 의읍의 구봉산의 제 구봉에 1981년에 중창하였다고한다.
‘대동지지’를 보면 의성이라는 명칭이 말해주듯 둘레 4720척에 이르는 큰 성곽이 있었던 것으로 되어 있는데, 지금은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
의성읍성은 토성이었기 때문에 안동이나 충주읍성과 달리 조선 말기에 자연스레 자취를 감춰버렸다.
7.청학마을-신평면 중률리국내최대의 왜가리,백로서식지
의성은 오지마을이 많다. 맛있는 사과로 유명한 옥산도 그렇고 진짜나의 고향인 신평면도 오지마을이다. 나의어린절에는 전기도 없었고 버스도 하루에 1대 밖에 왕래하지 않았는데, 40여년이 지난 지금도 크게 변한 것이 거의없다. 지금은 버스도 다니지 않고, 면소재지외에는 구멍가게도 없고 음식점,대폿집하나도 없는 그런 곳이 내고향이다.하지만 전혀 오염되지 않아서 좋은 곳이기도 하다. 여기에 국내 최대의 왜가리(학) 서식지가 있는 곳인 것을 아는 사람은 조류학자 몇명 밖에 없을것이다. 흰 왜가리는 백로,잿빛 왜가리는 청학이라 부르며, 아래 글 처럼 검은현학도 가끔 보이는 내고향 청학마을 신평면 중률리이다.
오지마을 농촌체험 및 생태관광을 하기에는 참 아늑하고 고즈넉한 시골 오지마을이다.
지금은 폐교가된 중률 초교 앞에 수백년간 서시해오고 있는 왜가리 숲
알에서 부화된 아기 백로에게 먹이를 주고 있는 어미
매년 5월 왜가리 축제가 열린다. 동네 잔치처럼 조촐하게....
"천주교 안동교구 설정 25주년을 기념하여 안동교구 신자들의 정성으로 만들어진 농은수련원에 머물던 1999년 7월 21일 나는 수련원을 운영하는 노틀담수녀회 수녀님들로부터 학마을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영적 성숙과 학을 연관시켜 묵상하던 나는 다짜고짜 학마을로 안내해 달라고 졸랐습니다. 그렇게 학마을을 찾았습니다.
학마을로 가는 길은 너무너무 아름다웠습니다. 농은수련원을 나와 안동 쪽으로 나가다가 오른쪽으로 돌아 수확하여 덩그러니 비어있는 수박밭과 저만큼 보이는 소나무 숲을 지나 자귀나무와 캔터키미모사 나무의 아름다운 꽃들로 가득한 길을 따라 갑니다. 왼쪽으로 부용대와 하회마을을 바라보면서 샅재로 올랐습니다. 샅재를 넘어 안동과 의성의 경계를 지나 경상북도 의성군 신평면 중률리, 속칭 학마을로 들어섰습니다.
이외수 선생님의 「벽오금학도」에서나 만날 수 있는 학마을에는 수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학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마을일을 하다 잠깐 쉬는 시간에 참으로 마시던 동동주를 다정스럽게 건네주던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로는 학마을에 사는 학의 무리는 무려 구천 마리라고도 하고 만 마리가 넘는다고도 하였습니다. 학이 언제부터 이 마을에 살기 시작했는지는 아무도 몰랐습니다. 중률리에 사는 아흔 살이 넘으신 할아버지가 태어나셨을 때도 학들이 학마을에 모여 살았다고 하였고 그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태어났을 때에도 학들이 모여 살았다고 하였습니다.
겨울을 나기 위해 먼 남쪽나라 태국으로 떠났다가 어김없이 음력 2월이면 마을로 돌아오는 학마을의 학들, 수녀님들과 함께 학마을을 찾았을 때가 오전 10시경인지라 많은 학들이 오전 일을 위하여 일터로 나가있을 시간이었지만 그래도 그렇게 많은 학들이 모여 사는 것을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부산 근교의 일광해수욕장 옆 마을, 한국유리 맞은편 마을 이름 역시 학마을인데 그곳을 찾았을 때는 학을 한 마리도 볼 수 없었는데, 중률리의 학마을에는 정말 그 이름에 맞게 학이 많았습니다. 예전에는 죽리(竹里)라고 불렀던 중률리 학마을에서 나의 관심을 끌었던 것은 색깔이 검은 현학(玄鶴)이었습니다. 그렇게 나는 지난 여름에 학마을에서 백학(白鶴)과 어우러져 사는 현학을 만났습니다. 현학을 만난 것이 지난 여름에 내가 찾았던 일상의 신화였습니다.
정화 - 조명 - 일치의 단계를 살아가는 영적 성숙의 관점에서 학의 유형을 말한다면 백학(白鶴) - 현학(玄鶴) - 금학(金鶴)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 백학은 우리가 만날 수 있고 쉽게 볼 수 있는 학입니다. 그러나 현학(玄鶴)을 보기란 쉽지 않습니다. 나도 의성군 신평면 중률리 학마을에서 처음으로 현학을 보았습니다. 흔히 볼 수 없는 학이기에 현학은 백학과는 차원이 다른 삶을 사는 학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안동의 한 수녀님의 글을 폄"
8.의성에 가면----(특산물,먹거리)
*의성토종마늘 고추
난지형에 비해 통이 높고 길다. 남도마늘
의성마늘에 비해 통의 높이가 낮다 대서마늘
남도마늘과 비슷하나 겉으로 보기에도 쪽수가 많아
(면적 : 전국 4%, 생산량 : 전국 3.5%)
보인다
*안평 자두마을의 자두
*옥산 사과
*홍화
*작약
*양계장의 계란(가음면)-의성축산
*먹거리...별루없다. 식당 자체가 별로 없기 때문에 그렇다.
*의성읍의 소머리 국밥
*가음면 촌두부(2,500원), 막걸리
*의성한우
가까운 의성으로 여여히 떠나보자..머리식히기에는 좋은 여행지일 것이다. 알고 떠나면......
끝
첫댓글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_()_
자세한 정보 감사드립니다 의성으로 여행을 떠나기 전에 미리 좀 알고 가면 더 좋을 듯 하네요 ^^*_()_
ㅎㅎㅎ 반갑습니다. 나무아미타불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