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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멀리 뵈는 나의 시온성
오 거룩한 곳 아버지 집 내 사모하는 집에 가고자
한밤을 세웠네 저 망망한 바다 위에 이 몸이 상할지라도
오늘은 이 곳 내일은 저 곳 주 복음 전하리
아득한 나의 갈 길 다가고 저 동산에서 편히 쉴 때 내 고생하는 모든 일들을 주께서 아시리
이 찬양을 들었습니다.
여러번 듣던 찬양이였는데.... 참 요즘의 일로 마음이 힘들다보니 더 깊이 다가옵니다.
2절에 "아득한 나의 갈 길 다가고 저 동산에서 편히 쉴 때 내 고생하는 모든 일들을 주께서 아시리"
내 고생하는 모든 일들을 주께서 아시리..... 내 고생하는 모든 일들을 주께서 아신다고 하는 찬양가사가 참 마음에 깊이 옵니다.
오늘 제가 드리는 글을.... 성도여러분 목사님, 장로님 후원자 여러번 열번이고 스무번이고 읽어보십시요. 그러면 조금이나마 선교지의 상황와 선교사의 아픔을 알수 있습니다.
이 아이들입니다.
우리교회 로뎀교회 개척멤버 두 자매 "민"과 "메이"가 저랑 2년 있었고 두 자매가 여기 있어서 좋아서 집으로 돌아가서 다시 사촌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위 사진의 아이들이 다 친척들이죠.
그러니 꼬박 일년을 저와 같이 있었습니다. 민과 메이는 2년, 나머지 아이들은 꼬박 일년을 같이 지냈습니다.
그리고 일년간 가르치고 예배만.... 100번 드렸으니 믿음도 확인되고 해서 세례식도 무사히 마쳤죠.
이 아이들이 다 사촌지간들입니다. 위 사진의 네 명의 아이들이 저희 기숙사에 있다가 지난 주에 나갔습니다.
그냥 나간 것도 아니고 아무말 없이 저에게 아무런 통보 없이 상의없이, 그리고 부모님도 감사하단 말 한마디 없이, 우리 교회 아이들 단 한명도 알리지 않고 짐싸서 나갔습니다.
위 사진을 보시면 알겠지만.... 이 아이들은 절대로 가난한 아이들이 아니였습니다.
제 아내가..... 그전부터 다른 아이들은 몰라도 이 아이들은...부모가 저보다 더 좋은 차, 저보다 더 비싼 차 몰고 다니는 사람들입니다. 이 아이들은 굳이 점심식사비까지 줄 필요없다고 아내가 일년간 이야기했는데...ㅜㅜ 참 제가 좋은 꼴을 당했습니다.
태국에서 선교한다고 다 편하고 다 편안하게 하는게 아닙니다.
어디서 선교하든지간에 다 아픔과 고통과 고난이 있습니다. 공산권은 공산권의 핍박이 이슬람권은 이슬람권의 핍박이...우상 지역은 우상들의 문제가 태국은 살기좋다고 절대로 선교도 편하게 하는곳이 아닙니다.
태국에서 선교하면서 가장 마음이 아픈게 "믿은 사람들로 인한 배신감" 입니다.
태국 사람들 좀처럼 자기 감정 표현은 안하죠. 일본사람하고 똑같습니다. 절대로 절대로 사람앞에서 싫은 표시를 안하니 이건 좋은 건지 나쁜건지 모르고 자존심은 세어서 싫은 소리 한마디하면 그길로 나가버립니다. 일년이든 이년이든 있었던 그 정들을 어떻게 그렇게 단칼로 베어버리고 떠나는지 저는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이 아이들이 기숙사 나간지 일주일이 넘어갑니다.
제가 왜 일주일이 지나서 글을 쓰느냐.... 충격과 분노의 상태에서 글을 쓰면 감정이 상할까봐 내려놓고 일주일이 지난 지금에야 글을 씁니다.
태국에서 10년간 선교하면서 많이 배신도 당하고 많이 마음도 아팠고 매일 매일 가슴아픈 삶을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네 명이서 단체로 나가는 것... 이번에 세 번째입니다. 일일이 다 적을수 없습니다.
사람에게 당한 배신의 상처가 얼마나 깊은지 여러분들 다 아시잖아요.
한국 목회자들은 어렸을적부터 신학생시절 부터 그렇게 배워왔고 그렇게 살아갑니다. 성도는 성도가 아니라 내 아들, 내 딸 처럼 그렇게 눈물로 키우는 거라고 그렇게 배우고 그렇게 섬겼고 그렇게 일평생 그 가슴 품고 살아갑니다.
목사가 목사가 아니라 영적 아버지로 정말 가슴에 품고 눈물로 키워갑니다. 이게 한국선교사의 최대 장점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한국 교회와 한국 선교사들을 쓰시겠습니까? 다른 것 없습니다. 그저 순수하고 순진하고 죽도록 충성하고 영혼을 생명처럼 사랑하는 그 외골수같은 심정과 충정은 서양 선교사들이 따라 올수 없습니다.
이 아이들 그렇게 키웠습니다. 우리 은지 학비 늘 제일 마지막 그것도 학기 마치는 바로 전날에 내고 늘 교회 아이들의 학비와 식비가 늘 저의 삶의 최우선순위였습니다. 제 아내가 알고 우리 애들이 압니다.
이 아이들 나가는 날.... 아내가 급하게 전화해서 저의 안부를 묻습니다. 제가 너무 슬퍼할까봐...아내가 대신 위로해줍니다..
집에 들어가니 우리 큰 딸 은지가.... 은지가 중학생입니다. 이젠 어린아이가 아닙니다. 알거 다압니다. 다 컸어요.
저보고 바보같다고 합니다. 등신같다고 합니다. 그렇게 퍼주고 퍼주어도 태국 아이들, 소수민족 아이들입니다. 소수민족 아이들 그렇게 퍼주고 퍼주어도 나갈때는 말없이 아무런 말없이 감사하단 말 한마디 없이...나가는 것을 보고 저보고 왜 병신처럼 사냐고 합니다.
우리 딸이 그럽니다. 바보처럼 산다고 ㅜㅜ
참 제가 병신처럼 살아왔네요.
한달에 선교후원금 300만원정도 들어옵니다. 파송교회 없는 제가 300만원이 기적이죠. 그런데 그 가운데 250만원 교회와 신학교에 다 씁니다. 나머지 50만원으로 살고 여기저기 빚져가면서 아니면 때때로 하나님이 크게 도와주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 기적적인 돌보심이 있어서 이렇게 살아왔고 지금도 살아갑니다.
이 아이들 나가는 날... 충격받지 않았죠. 왜냐하면 그전에도 많이 많이 많이 당해서 이젠 충격은 없어요.
다만.... 일주일이 넘었는데도 새벽 마다 새벽 2시, 3시에 깨어서 나간 아이들이 생각납니다. 아직 마음이 쓰리고 쓰립니다.
꿈인지 생지인지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사람에 대한 배신이 깊어서 분노가 가슴에서 올라옵니다. 개를 키워도 이렇게 안합니다.
그럼 아이들이 나간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전에 말씀 드렸듯이...이 네 명의 아이들이 다 사촌간 친척간이고 문제는 가장 큰 문제는 아버지 어머니 할아버지 모든 형제 가족이 다 불신자. 불교신자도 아니고 불신자도 아니고 귀신을 섬깁니다. 몽족 사람들이 대다수 불교가 아니라 귀신을 섬깁니다. 이 아이들의 할아버지가 보통 귀신 섬기는 정도가 아니라 박수무당입니다.
작년에 남자아이 아파서 하나님이 데려가셨습니다. 그때에도 저희 교회가 금식기도하고 매달렸지만 온 가족 부모가 귀신 우상단지찾아가고 할아버지가 무당이라서 점을 쳐보니 접신해서 귀신이 하는 말이....왜 자기를 집에서 안키우고 교회 기숙사에서 키우냐고..그래서 아들 영혼이 부모님에게 서운해서 집에서 나갈려고 한다.... 그런 정말 귀신같은 말들을 듣고 했습니다. 귀신이 정말 일하죠.
계란에 생계란에 그 죽은 아이의 얼굴이 나타나면서 귀신이 그렇게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부모님들은 아들을 집에서 안키우고 서양 귀신 교회에 맡겨서 결국 죽었다....이렇게 해석합니다.
그러나...그때 그 일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제가 그 집에 장례식만 하루에도 두번씩 다녀오고 했고 우리 한국 선교사님들도 많이 방문하고 위로해주었습니다.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 죽고 기숙사에 남은 두 명의 누나 위에서 말한 "민"과 "메이"를 위해서 제가 할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하면서 결국 아내의 차를 팔았습니다. 그떄 장인어른이 소천하셔서 아내는 급하게 한국에 갔고 저는 못갔습니다. 제가 첫 사위입니다. 제가 첫사위로 아무것도 장인어른께 해드린 것 없습니다. 한달에 십만원도 드리지 못한 첫 사위였습니다. 그런데 그 장례식까지도 이 아이 죽어서 결국 한국에 못갔고 장인 장례식 단 한푼도 단 한푼도 첫 사위가 드린 것이 없습니다. 지금도 아내가 울면서 그이야기 합니다. 아내가 얼마나 서운했을까요. 오히려 아내 한국 가는 비행기경비 처제에게 빌려서 빚져서 갔습니다.
저는 여기서 아내의 차량을 팔아서 700만원 건내주면서... 남은 큰 누나 올해 고3 졸업합니다. 그 아이가 중국어 좋아하고 전공합니다. 그래서 그 돈 전액 주고 메팔루앙 대학교 중국어학과 4년동안 다녀라...그럼 된다...메팔루앙 대학교만 졸업하면 태국 어느곳에서나 취업됩니다.
저는 그런줄 알았죠.
그런데 최근에 알았습니다.
그 아이가 메팔루앙 대학교 지원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스무번도 더 넘게 이야기했는데 그때마다 예 예 해서 그런줄 알았는데 세상에 지원을 안했습니다. 그리고 고3 졸업하고 짐싸서 아버지가 데리고 갔습니다. 저는 이 아이가 고3 졸업해도 여기서 치앙라이에서 대학교 4년 다닐줄 알고 마지막 인사도 안헀죠. 그런데 알고보니 메팔루앙 대학교 지원도 안하고 아버지라는 사람은 마지막인데도 짐싸고 저에게 한마디 없이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제가 전해준 그돈 모두 다른 곳에 다 썼다고 합니다. ㅜㅜ 자기들 말로는 장례식에 썼다고 하는데...믿을수가 없습니다. 장례식에 친형제들이 7형제들이 서로 돕고 미국에 있는 형들이 보내주고, 학교에서 정부에서도 위로금 나오고 했거든요. 돈 다른데 다 써버리고 메팔루앙 대학교 지원안하고 다른 곳에 가면....그럼 그래도 마지막 떠나는 날은 적어도 이야기는 하고 그리고 부모도 그러면 안되죠. 2년간 키운것...비록 좋은 것을 못해주고 부족했더라고 하더라도 2년간 여기서 밥값만 200만원이 넘습니다. ㅜㅜ 제가 치사하게 돈이야기해서 죄송한데 정말 사람이 그러면 안되죠.
그래서 제가 속이 너무 상하고.... 예의도 없고....무엇보다 마지막이면 제가 마지막 기도시간에 축복기도라도 해주고 싶었는데 그렇게 못하게 떠나니깐 많이 마음이 상했죠.
그래서 제가 그건 아니다. 이건 아니다..... 이렇게 저렇게...이야기헀죠. 화낸 것도 아니고 차분하게 잘 설명헀습니다.
그랬더니 여기 아이들... 다 부모님 사랑하죠. 부모님 존경하죠. 자기 부모님 뭐라고 하니 싫어하죠. ㅜㅜ
제가 실패한 것은 이 부분입니다.
친척아이들 절대로 가난한 아이들이 아닌데 받았고, 제가 착각한 것은 여기 있으면서 일년간 예배드리고 눈물로 기도하고 해서 저는 이 아이들이 믿음이 자랐구나 믿음이 있구나...생각했는데 그게 착각입니다.
이상한 것이 여기 있으면 예배드리는 아이들이 방학이라 집에만 가면... 도무지 교회간 사진이 없어요. 아이들이 다 페이스북합니다.
여기 있으면 매주 세번씩 예배드립니다 그런데 집에만 가면, 방학때 집에만 가면 한 명도 교회 안갑니다.
일단 부모들이 귀신 섬기는 가정이라서 교회 못가게 하고...그렇다고 하더라도 아이들이 진짜 진짜 성령체험하고 믿음이 있다면 부모의 반대도 뛰어넘는 신앙으로 믿음으로 지켜야하는데 페이스북에 보면 매주일 마다 놀러다니고 합니다.
위에 있는 사진.... 친척들 멋지게 옷차려 있고 제 차보다 더 비싼차타고 치앙라이 놀러온 사진입니다. 이 날이 주일입니다.
주일날 놀러와서 오후에 제가 없는 사이에 교회 와서 짐 싸서 도망갔죠. 아무런 감사하다 보고한마디 없이.... 개를 키워도 이렇게 안합니다. ㅜㅜ
결국 그 부모들의 영향력을 벗어나지 못한 거죠.
저는 엄청난 충격을 받앗습니다. 세 명은 그렇다 치더라도 "민"과 "메이"는 저랑 2년을 있었습니다.
비록 제가 아무리 잘 한들 자기의 친 아버지 친 어머니 보다 더 사랑하겠습니까? 다만 불신 부모님이라면 자기가 믿음을 지키고 부모님을 뛰어넘는 신앙을 가져야 하는데 그 삼촌들 이모들이 다 화가나서 기숙사에 나오라고 해서 이렇게 떠나갑니다.
일주일이 넘었지만 일주일간 새벽마다 일어나서 마음이 아파서 잠을 설쳤습니다.
제 가슴을 꺼내보여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저 멀리 뵈는 나의 시온성.... 나의 갈길 다간후에 내 고생하신 것을 다 아시리....
은지가 저보고 바보처럼 살지 말라고 합니다.
그러나 아내는 위로해줍니다..,,, 당신 정말 대단하다고...나라면 더이상 못하는데 어떻게 당신은 그렇게 당하고 당해도 또 아이들 받고 또 기숙사 하냐고....ㅜㅜ 제 아내가 저를 칭찬하는 단 한가지 이유는 바로 이런 사역하는 모습입니다.
단 한번도 제 성품이나 인성, 기도 많이한다...뭐 이런 칭찬은 없죠. 다만 그렇게 당하고도 아직도 아이들 얼굴 볼 마음이 있느냐 자기는 절대로 못한다고 하네요. ㅜㅜ 자기는 아이들 얼굴도 보기도 싫다고 합니다. 제가 기분이 좋아서 하겠습니까 제가 기뻐서 하겠습니다. 다 마음에 품어두고 합니다. 제 가슴에 품고 품고 하늘나라가서 제 심장 꺼내어 주님께 보여드리면 됩니다. 내 고생하는것 주님이 아시리..그럼 되죠.
일주일만에 글을 씁니다.
우리가 키우는 개입니다. 이름은 "보리"
참 신기한 일도 다 있죠??
우리 보리가 집을 나간지 두달입니다. 그런데 어제 브라질 선교사님에게 연락이 와서 그전에 살던 동네 집으로 보리가 돌아왔다고 합니다. 놀래서.....
가보니 보리가 정말 저희 옛 집에 돌아와서 데리고 왔습니다.
두달동안 집 나갔습니다. 어디서 무엇을 하고 왔는지 저희들은 모르죠. 그런데 집나간 개가 죽은 줄 알던 개가 두달반에 다시 돌아왔습니다. 참.... 신기합니다.
저희가 생각하기를....
보리가 새끼를 엄청많이 낳았습니다. 새끼를 날때마다 제가 다 주변 사람들에게 분양을 했거든요. 그래서 그게 스트레스 받았나 봅니다. 작년에 새끼놓을때쯤에 집을 나가서 찾아보니 집에서 약 10미터 떨어진 곳에 몰래 새끼를 낳았더라구요. 새끼 낳으면 또 제가 다 사람들 줄까봐 다른 곳에 가서 낳았습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 배가 불러서 새끼날즘에 집을 나갔습니다. 두달이 넘었죠.
저희는 죽거나 다른 사람이 가져간줄 알았는데 아마도 다른 곳에 가서 새끼 놓고 다시 돌아온듯합니다...사실은 모르겠구요 그렇게 생각하죠.
아무튼 집 나간 개도 돌아오는데.... 일년간 이년간 그렇게 그렇게 섬긴 아이들은....
데리고 가서 영화관에 가서 영화보여준게 열 번이 넘고, 백화점가서 케이에프씨 사먹인게 열번이 넘고, 커피숍에 가서 비싼 음료수 사준게 수십번이 넘어요. 자기 친 아버지들도 이렇게 안합니다. ㅜㅜ
괜찮습니다.
일주일간 지나다보니 다시 마음이 회복되었습니다. 넘어지고 쓰러지면 안되죠.
하나님이 아시니깐 그냥 예배시간에 기도시간에 펑펑 울고 나면 다 회복됩니다. 주일날도 기도하면서 다 울어버렸습니다.
아직 가야 할 길이 있고 10명중에 5명이 떠난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사람 5명이 있어서 해야 할 일 해야 합니다.
우리 신학생들도 불쌍한 아이들입니다. 방학인데 방학이 아니에요. 집에 못가서 현재 교회에 있고 올해 새롭게 들어오는 여자 아카족 청소년들이 같이 지내면서 어린이 성경학교 준비하고 있습니다. 하루에 두 세시간씩 준비하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저희들은 준비되었습니다. 이번주에도 물질만 있으면 두 군데 마을 갈려고 했습니다.
저희들은 준비 되었습니다. 물질만 보내주세요. 총알만 보내주세요. 이번 주에도 두 군데 마을이 이야기 되었는데 스텐바이 하고 있습니다. 한 곳은 아카족 마을 어린이 40명, 한곳은 몽족 마을 어린이 50명.
준비되었습니다. 여러분들은 총알만 보내주세요. 저희가 가겠습니다.
가슴이 힘든일이 있어도 오늘은 이 곳 내일은 저 곳 복음 전하겠습니다.
한 마을당 20만원 30만원 있으면 저희 선교팀 11명 일박 이일로 다녀오겠습니다.
첫댓글 글만 읽어도 선교사님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그러나 선교사님은 절대 바보가 아니십니다. 저는 항상 남들과 선교에 대해 이야기할 때 선교사님에 대해 이야기를 꺼냅니다. 선교사님의 열정은 사람의 노력만으로 가질 수 있는게 아니라는걸 알고 있습니다. 항상 힘내세요! 하나님이 다시 선교사님을 뵐 수 있도록 인도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늘 기억합니다. 어서 어서 공부 마치고 이 땅에서 같이 섬기는 날이 다시 왔으면 합니다. 우리 은총이가
아주마니 아주마니 그리워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