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쪽 진영과 북쪽 진영
민 2:18-34
18 서쪽에는 에브라임의 군대의 진영의 군기가 있을 것이라 에브라임 자손의 지휘관은 암미훗의 아들 엘리사마요
19 그의 군대로 계수된 자가 사만 오백 명이며
20 그 곁에는 므낫세 지파가 있을 것이라 므낫세 자손의 지휘관은 브다술의 아들 가말리엘이요
21 그의 군대로 계수된 자가 삼만 이천이백 명이며
22 또 베냐민 지파라 베냐민 자손의 지휘관은 기드오니의 아들 아비단이요
23 그의 군대로 계수된 자가 삼만 오천사백 명이니
24 에브라임 진영에 속하여 계수된 군인의 총계는 십만 팔천백 명이라 그들은 제삼대로 행진할지니라
25 북쪽에는 단 군대 진영의 군기가 있을 것이라 단 자손의 지휘관은 암미삿대의 아들 아히에셀이요
26 그의 군대로 계수된 자가 육만 이천칠백 명이며
27 그 곁에 진 칠 자는 아셀 지파라 아셀 자손의 지휘관은 오그란의 아들 바기엘이요
28 그의 군대로 계수된 자가 사만 천오백 명이며
29 또 납달리 지파라 납달리 자손의 지휘관은 에난의 아들 아히라요
30 그의 군대로 계수된 자가 오만 삼천사백 명이니
31 단의 진영에 속하여 계수함을 받은 군인의 총계는 십오만 칠천육백 명이라 그들은 기를 따라 후대로 행진할지니라 하시니라
32 이상은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의 조상의 가문을 따라 계수된 자니 모든 진영의 군인 곧 계수된 자의 총계는 육십만 삼천오백오십 명이며
33 레위인은 이스라엘 자손과 함께 계수되지 아니하였으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심과 같았느니라
34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다 준행하여 각기 종족과 조상의 가문에 따르며 자기들의 기를 따라 진 치기도 하며 행진하기도 하였더라
민 2:18-34 / 서쪽에는 에브라임 지파가 지휘하는 에브라임진이 깃발을 세우고 진을 쳐라. 에브라임진에는 에브라임 지파, 므낫세 지파, 베냐민 지파 군인들을 배속시켜라. 에브라임 지파의 사령관은 암미훗의 아들 엘리사마이다. 19) 에브라임 지파 사람으로 병적부에 오른 군인은 모두 4만 500명이다. 20) 그 옆에는 므낫세 지파가 진을 쳐라. 므낫세 지파를 지휘하는 사령관은 브다술의 아들인 가말리엘이다. 21) 므낫세 지파 사람으로 병적부에 오른 군인은 모두 3만 2200명이다. 22) 그 옆에는 베냐민 지파가 진을 쳐라. 베냐민 지파의 사령관은 기드오니의 아들 아비단이다. 23) 베냐민 지파 사람으로 병적부에 오른 군인은 모두 3만 5400명이다. 24) 에브라임진에 소속된 군인은 모두 10만 8100명이다. 에브라임진은 만남의 장막 바로 뒤에서, 세번째로 행진하여라. 25) 북쪽에는 단 지파가 지휘하는 단진이 깃발을 앞세우고 진을 쳐라. 단 지파의 사령관은 암미삿대의 아들 아히에셀이다. 26) 단 지파 사람으로 병적부에 오른 군인은 모두 6만 2700명이다. 27) 그 옆에는 아셀 지파가 진을 쳐라. 아셀 지파의 사령관은 오그란의 아들 바기엘이다. 28) 아셀 지파 사람으로 병적부에 오른 군인은 모두 4만 1500명이다. 29) 그 옆에는 납달리 지파가 진을 쳐라. 납달리 지파의 사령관은 에난의 아들 아히라이다. 30) 납달리 지파 사람으로 병적부에 오른 군인은 모두 5만 3400명이다. 31) 단진에 소속된 군인은 모두 15만 7600명이다. 단진은 깃발을 앞세우고 행진하는 전체 이스라엘군의 맨 뒤에서 움직이는 부대가 된다.' 32) 이렇게 해서 그 집안별로 나누어 병적부에 오른 이스라엘 군인의 수는 모두 60만 3550명이었다. 33)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레위인은 이스라엘 군인 수에 넣지 않았다. 34) 이스라엘 백성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집안과 씨족별로 군대를 조직하여 각진의 깃발을 따라 진을 치기도 하고 행진을 하기도 하였다.
행군 대열 중 제3대열에 해당하는 에브라임의 진영의 지침 및 그 관리자와 각 지파의 합계가 열거되고 있습니다.
서쪽의 에브라임 진영 배치(18-24) 에브라임은 요셉의 둘째 아들로 열두 지파 중에서 가장 어리고 마지막 지파이지만 매우 강한 지파로 유명합니다. 서편은 동편의 정반대편으로 전방에 있는 사자같이 강한 유다 지파에 이어, 후방에도 강하고 용맹스러운 에브라임 지파를 둔 것은 모든 지파의 중심이 되는 회막을 보호하기 위함입니다. 에브라임의 진영에는 암미훗의 아들 엘리사마가 지휘하며, 그 양 옆에는 므낫세 지파와 베냐민 지파가 함께하였습니다. 에브라임, 므낫세는 요셉의 아들들이고, 베냐민과 함께 라헬의 소생으로서 세 지파의 수를 합하면 도합 108,100명입니다. 이동할 때는 그들 앞에 위치하는 고핫 자손의 성물 운반을 보호하고 호위하며 행진하게 됩니다(10:21).
북쪽의 단 진영 배치(25-31) 단 진영이 위치한 북쪽은 행진할 때에 가장 뒤쪽에 있습니다. 단 지파도 다른 지파들과 마찬가지로 뱀처럼 강하고 용맹스러운 지파입니다(창 49:16-18). 군사력은 유다 지파 다음으로 많은 군대를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북쪽 진영에 진을 치는 네 번째 진영은 단 지파가 이끌었습니다. 단 진영에는 암미삿대의 아들 아히에셀이 지휘하며, 그 양 옆에는 아셀 지파와 납달리 지파가 함께하였습니다. 이 세 지파는 모두 빌하의 소생인 단과 납달리와 실바의 소생인 아셀로서 세 지파의 수를 모두 합하면 도합 157,600명입니다. 이동 할 때 가장 뒤편에서 따르며 머무를 때는 북쪽에 머무르는데, 회막의 왼쪽이기 때문에 가장 중요도가 떨어지는 지역이기도 합니다.
이스라엘의 순종(32-34) 병역의 의무가 없는 레위인을 제외하고 계수된 자는 603,550명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명령하신대로 다 행하였으며, 그들의 순종은 이스라엘 백성 안에 질서를 가져왔습니다. 이는 어떤 불만이나 반론 없이 전심전력으로 그 명령에 순종하였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 순종은 어떤 제사 제물보다 더 큰 가치가 있습니다(삼상 15:22). 또한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이르기까지 광야에서의 모든 여정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하늘로 가는 천로역정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적용: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회막이 백성들 가운데 머무른다는 것은, 임마누엘의 하나님께서 당신과 함께하신다는 뜻입니다(마 1:22-23). 오늘 당신은 임마누엘의 하나님과 어떻게 만남을 이루고 있습니까?
우리는 눈에 띄는 자리를 좋아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가장 돋보이는 자리를 선호합니다. 하지만 하나님 안에서는 모든 역할이 소중하고 중요합니다. 우리는 가정, 학교, 직장, 교회 등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과 위치가 있을 것입니다. 그 자리가 때로는 실망이 되어 낙심 될 때도 있지만 여러분의 역할로 인해 많은 사람에게 유익이 되고 선한 은혜가 흘러 가고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 설 교 >
후미를 책임맡은 사람들
민 2:25-31 / 윤영택 목사
매일 아침 인터넷으로 받아 읽는 스펄전 목사님의 <아침묵상>을 통해 잔잔한 은혜를 받고 있습니다. 가끔 교우들과 함께 보고 싶은 글들은 따로 저장했다가 주보에 올려드리고 있습니다. 언젠가 스펄전 목사님의 글을 읽으며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스라엘의 단 지파에 대한 묵상 내용이 마음에 와닿아 주일예배 시간에 나누고 싶었습니다.
구약 성경 민수기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생활할 때 전쟁에 나갈 수 있는 남자들의 수를 각 지파별로 조사한 내용이 기록된 책입니다. 애굽을 나온 후 제2년 2월1일이 되던 날 하나님은 모세를 불러 이스라엘 백성 중에 20세 이상으로 전쟁에 나갈만한 남자들의 수를 세라고 하셨습니다(1-4장). 그리고 약 40년의 광야생활을 마무리하고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기 직전에 전열을 가다듬도록 다시 한 번 수를 세어보라고 하신 적이 있습니다(26장). 그래서 민수기라는 이름이 여기에서나왔습니다.
성경을 읽다보면 이미 지나가버린 옛날 이야기 그것도 오늘 우리 민족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어 보이는 고대 히브리 민족의 해방사와 광야 방랑기 같은 역사가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생각될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도 세계 많은 민족들이 오랜 세월을 거쳐 이 책을 경전으로 채택하여 읽고 교훈을 받고 있으며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주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는데 오늘 읽은 인구조사처럼 사람 이름과 숫자를 나열한 부분이 도대체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여 별 생각 없이 읽고 스쳐지나갈 수도 있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스펄전 목사님이 ‘그들은 기를 따라 후대로 행진할지니라’(31절) 이 한 구절을 읽고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까지 깊이있게 묵상하여 삶에 적용하였습니다. 저는 그분의 짧은 글을 읽으면서 깊은 통찰력에 감동되었고 동시에 이런 평범한 내용을 통해서도 우리에게 깊은 은혜를 선물하시는 하나님의 세밀한 사랑에 감사가 터져나왔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어느 한 구절 헛되이 읽고 버릴 수 없는 귀한 말씀입니다. 시시때때로 우리에게 경고하고 격려하며 축복하는 말씀이며, 우리의 심령 골수를 찔러 쪼개고도 남음이 있고 우리 마음의 깊은 곳까지 살피는 능력의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이 말한 것처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되어 우리를 날마다 교훈하시고 책망하시며 바르게 하고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한 말씀입니다(딤후3:16).
먼저, 민수기에 대하여 자세하게 알지 못하는 분들을 위하여 오늘 읽은 말씀에 대한 간략한 배경을 살펴봅니다. 애굽을 나와 약 1년간 시내 광야에 머물며 하나님께로부터 율법을 받았고 성막을 세운 그들은 1월14일에 유월절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2월1일이 되었을 때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인구조사를 하였습니다. 각 지파별로 수를 세었는데 그중에 유다 지파가 74,600명으로 가장 많았고 그 다음에 단 지파가 62,700명으로 두번째였습니다. 12지파 전체의 전투병력 수는 603,550명이었습니다(민1:46). 400여 년 전 야곱이 가족들을 이끌고 요셉이 살고 있는 애굽으로 내려갈 때 70명이었는데 그동안 이렇게 큰 민족으로 번성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네 자손이 땅의 티끌처럼,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리라’ 하신 약속을 400여년이 지난 후 눈으로 확인시켜 주신 일입니다.
인구조사를 마친 이스라엘 백성들은 세 지파씩 한 조로 이루어 우두머리를 세우고 네 부대로 편성되었습니다. 광야에 진을 치고 머무는 동안에는 성막을 중앙에 두고 12지파가 동서남북 사면에 천막을 치며 생활하였습니다. 다시 행진을 하게 되면 유다 지파를 우두머리로 한 세 지파가 맨 선두에 섰고, 그 뒤에 루우벤 지파를 두령으로 한 세 지파가 제2대로 행진하며, 레위 지파가 책임 맡은 성막이 그 다음을 따르고 제3대로 에브라임 지파를 두령으로 한 세 지파가 행진하였습니다. 그리고 맨 마지막 대열에 단 지파를 두령으로 하는 세 지파가 행진을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이 행진할 때 법궤를 맨 제사장들이 맨 앞에서 길을 인도하였고 중앙에는 하나님의 성막이 위치하도록 함으로 길을 갈때나 머물 때 언제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중심에 계심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셨습니다. 낮에는 구름이 밤에는 불 모양 같은 것이 성막 위에 항상 머물렀는데 그 구름이 성막 위로 떠오르면 행진을 시작하였고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물면 한 달이든 일 년이든 행진을 멈추고 그 자리에 진을 치고 지내면서 하나님의 다음 신호가 있을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민 9:15-23).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하심을 이런 방식으로 눈으로 보면서 오직 믿음으로 순종하여 앞을 향해 전진하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행군할 때 맨 뒤를 따르는 지파가 앞서 가는 다른 이들보다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었습니다. 전략상 후미는 최전방 못지않게 중요한 위치입니다. 여기서 잠시 스펄전 목사님의 글을 인용합니다. “낙오자가 생기면 그들을 챙겨 행렬 속으로 다시 끌어들이고 이스라엘 군이 들판에 떨어뜨리고 간 것이 있으면 그것들을 다 주어 모아야 하는데, 그런 일을 맨 끝에 있던 단 지파가 했습니다. 불 같은 영을 가진 사람들은 새로운 진리를 배우기 위해 그리고 더 많은 영혼들을 예수님께 인도하기 위해 아무도 밟지 않은 길을 용감하게 밟으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드러운 영을 가진 사람들은 주위를 천천히 살피며 기죽은 영혼들을 회복시키는 일에 헌신할 수 있습니다. 어느 자리나 다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좀 천천히 움직이는 하나님의 자녀들도 자기만이 할 수 있는, 그래서 전체 군대에 큰 축복이 될 수 있는 소중한 자리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후진은 또 위험한 자리입니다. 원수는 앞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뒤에도 있습니다. 원수는 어느 쪽에서든 공격해 올 수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이스라엘이 광야를 행진하는 동안 아말렉 족속들은 비겁하게도 뒷편에서 공격하여 광야여행에 지쳐 뒤쳐진 약자들을 괴롭혔던 적이 있습니다(신25:17-19).” 하나님 보시기에도 아말렉 민족이 얼마나 비겁하고 사악했던지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정착하여 살게 되거든 아말렉의 죄악을 잊지 말고 기억하여 그들의 이름을 천하에서 깨끗하게 없애버리라고 하실 정도였습니다.
바로 이런 위험이 대열의 후미에서 자주 발생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행군할 때 맨 뒷편의 중요한 임무를 단 지파를 우두머리로 하여 아셀 지파와 납달리 지파 군사들에게 맡기셨습니다. 유다 지파 다음으로 숫적으로도 우세하였고 유달리 용감했던 단 지파는 가나안에 들어가기까지 그 책임을 충실하게 다한 사람들입니다. 힘든 광야 행군 도중에 지친 낙오자들과 앞에 가는 사람들이 떨어뜨리고 가는 물건들을 챙기며 뒤쪽으로부터 오는 위협을 막아내는 임무는 이처럼 선두 그룹 못지않게 중요한 임무였습니다.
“경험이 많은 노련한 성도는 자신이 갖고 있는 무기들을 잘 갈고 다듬어 그 믿음과 지식과 기쁨이 제일 처져있는 영혼들, 최후미에 있으며 의심하고 흔들리며 낙심하는 영혼들을 도와야 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이 사람들을 돕지 않은 채 그대로 내버려 두면 안 됩니다. 따라서 주의 말씀으로 잘 배워 무장된 성도들은 후진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하며 일해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후진에 있는 사람들 중에 오늘 내가 도와야 할 사람이 없는지 잘 살펴보십시오.”
뒤 따라오는 사람 사정은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앞만 바라보고 질주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한 걸음 떨어져 뒤따르며 약한 자들을 챙겨주는 사람도 있습니다. 여러 가족이 자동차를 타고 장거리 여행을 하려면 지리에 밝고 운전이 능숙한 사람이 맨 앞장을 서고 그 사이에 초보 운전자 혹은 길눈이 어두운 사람을 끼워줍니다. 그리고 맨 뒤에는 선두 운전자 못지않게 노련한 운전자가 뒤따르며 중간에 곁길로 빠지거나 낙오된 차량을 인도하여 최종 목적지까지 함께 도착되도록 책임을 맡습니다. 가끔 어떤 선두 주자는 앞만 보고 달리느라 뒷 차들이 제대로 따라오는 것도 확인하지 않은채 자기만 냅다 달려나가 뒷 차들이 선두차를 놓쳐 곤란을 겪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럴때일수록 후미를 담당한 노련한 운전자의 뒷처리가 중요함을 알게 됩니다.
교우들이 예배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때 예배당 열쇠를 가진 제가 문단속하고 맨 나중에 떠나다 보면 교우들이 놓고 간 성경책과 옷이나 가방 등을 자주 보게 됩니다. 물건을 놓고간 분들이 집으로 돌아가던 도중에 생각이 나서 교회로 다시 돌아오던가 저에게 전화로 문의하곤 합니다. 우리 교우들을 잘 살펴보면, 단골로 잘 놓고 다니는 사람이 있고 부부지간에도 덜렁대며 여기저기 뭔가 흘리고 다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뒤를 따라다니며 챙겨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남편이 좀 덜렁거리기도 하지만 아내들도 만만치 않습니다. 뭔가 잘 놓고 다니는 분들이 있는데 그것은 그분의 성향이고 습관입니다.
제가 옥스포드 한인교회에서 목회하며 몇 년째 주일마다 주방정리 담당자들의 일하는 모습을 관찰하면서 매년 다른 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누가 그해의 여전도회 임원들이며 누가 주방 정리 책임을 맡아 수고를 하느냐에 따라 제가 마지막에 문단속하고 나가는데 걸리는 시간에 차이가 있습니다. 비빔빕 맛있게 먹고 즐겁게 친교를 나눈 후 설겆이를 마치고 뿌듯한 마음으로 주방을 떠났는데 어떤 날에는 싱크대 주위에 물기가 흥건하고 빨간 고추가루와 밥알들이 여기저기 남아 있습니다. 물 빠지는 구멍에 음식 찌꺼기가 끼어있고 쓰레기통 뚜껑에는 비빔밥 버릴 때 떨어진 벌건 고추장과 밥알이 여기저기 묻어있습니다. 우리가 떠난 다음에 인도교회 교우들이 예배당을 또 사용하는데 코리안들은 뒷정리가 개운치 않다는 말 듣는 것은 별로 즐거운 일이 아닙니다.
주일마다 열심히 봉사하는 청년들 수고를 흠 잡는 것이 아니라 그날 그날 봉사자들의 성향이 그렇게 드러난다는 말입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에게도 단 지파가 있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 청년들처럼 사랑스런 젊은이들을 어디서 또 볼 수 있겠습니까? 예배 전에 일찍 나와 음향시설 준비하고, 점심식사 위해 100인분 쌀 씻어 밥통에 올려놓고, 예배 마치면 또 음향시설 거두고 바닥에 떨어진 물건들 챙기고 문단속합니다. 밥 먹을 때는 맨 뒷줄에서 있다가 밥 먹자마자 팔 걷어부치고 주방으로 들어갑니다. 이렇게 매주일 정말 사랑스럽게 봉사를 하고 있는데 청년들에게만 궂은 일 맡겨두고 나는 할 일이 있고 바쁘다고 훌훌 떠나지 말고 함께 도와주면 정리하는 시간도 단축됩니다. 그리고 누군가는 청년들이 미처 챙기지 못하는 마지막 뒷정리를 꼼꼼하게 챙기는 사람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리더십 유형을 연구하는 전문가들이 헤르만 헷세의 ‘동방으로 여행’을 읽고 드러나지 않는 일군, 섬기는 리더십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냈습니다. "어떤 그룹이 여행을 떠났는데 그 여행자 중에 레오라는 종이 있었습니다. 아주 즐겁게 여행을 떠났으며 아무 문제없이 여행을 잘 하다가 레오가 어떤 사정으로 그 그룹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꽤 오랫동안 레오 없이 여행을 계속했습니다. 그런데 레오가 없어지고 나서부터 그 그룹에 많은 문제가 생기기 시작합니다. 그 전에는 함께 여행하며 그의 존재에 대해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그냥 사람을 돌봐주는 사람, 사람들이 힘들어하는 일을 뒷바라지하는 종 정도로 밖에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사라지고 나서부터 그 그룹이 엉망이 되었습니다. 나중에 그 그룹 사람들이 일이 왜 그렇게 되었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레오는 종에 불과했고 함께 한 일행의 일을 뒤처리하는 사람에 불과했는데 왜 이 모양이 되었는가?’ 그리고 내린 결론은 레오의 위치는 종이었지만 그의 역할은 사람을 섬기는 지도자였다는데 동의를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리더라고 해서 항상 앞에서 지시하고 일을 떠맡기는 것으로 내 역할을 다했다고 손을 놓는 것이 아닙니다. 일의 진행상황을 살피고 결과에 대한 최종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합니다. 전문가들이 말하는 다양한 리더십 유형이 있는데 이스라엘의 단 지파가 후미를 맡은 일을 보면서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며 섬기는 리더, 앞장 서기 보다는 뒤에서 일하는 리더, 일의 마무리를 말끔하게 담당하는 숨은 리더십, 섬기는 리더십의 모습을 엿보게 됩니다.
우리 교회 안에도 이런 숨은 일군들이 많이 있습니다. 앞에서 말한 청년들의 수고는 물론이고 주일 아침 교회 오는 길에 차 없는 분들을 빈 자리에 태워주는 분들, 옥스포드에 막 도착하여 낯선 현지 적응에 정신이 없는 분들에게 실제적인 도움을 나누는 분들, 교회에 처음 오신 분들이 분위기에 잘 적응이 안되어 서먹서먹할 때 곁에 다가가 친절하게 안내해주는 분들입니다. 남보다 먼저 와서 예배를 준비하고 주일학교를 도우며, 비빔밥 친교를 위하여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고하는 봉사자들이 있습니다. 이 모든 분들이 후미를 담당하여 전체 공동체가 한 몸으로 움직이도록 수고하는 진정한 리더들입니다.
민수기를 꼼꼼이 읽어보십시오. 행군하는 이스라엘 중심에는 언제나 하나님의 성막이 함께 하였고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그들의 길을 인도하고 있었습니다. 숫자 많고 유능한 유다 지파가 앞장 섰다고 홀로 독단적으로 행진한 것 아니었습니다. 유다 지파와 함께 한 조를 이룬 잇사갈과 스불론 지파도 선두 대열에 공동책임을 지고 있었습니다. 책임 맡은 위치가 서로 다를 뿐입니다. 동서남북 네 방향에 위치한 12지파는 이런 방식으로 서로 한 몸이 되어 앞서 행하시며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갔습니다. 함께 이동하고 함께 기적을 체험하며 함께 약속의 땅을 향해 전진하는 민족 공동체였고 신앙공동체였습니다.
머리되신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앞선 사람이나 뒤따르는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한 마음이 되어 한 방향을 향해 움직이는 그것이 바로 교회의 모습입니다. 교회 공동체 안에는 다양한 은사를 가진 사람들이 섬기고 있습니다. 나이도 다르고 전공분야도 다르며 사회 경력도 다양합니다.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지고 있지만 예수께서 나의 구원자 되시고 내가 섬기는 교회의 주인이시며 나와 우리가 나아가는 길과 방향의 인도자가 되심을 인정하고 약속의 말씀을 따라 행진하는 순례자들입니다. 그리고 오늘 나에게 주어진 복음 전하는 일을 위하여 주께로부터 받은 은사와 능력으로 섬기고 있습니다.
이렇게 수고하는 분들이 23년 옥스포드한인교회의 역사 속에 한 부분이 되어 섬기다 이곳 저곳으로 떠나갔고 오늘도 여전히 섬기고 있습니다. 유다 지파처럼 최전방을 맡아 일하기도 하지만 많은 분들이 단 지파처럼 후미를 책임지고 일합니다. 이렇게 섬기는 선한 일군들이 그 마음을 가지고 사회로 나가고 세상 속으로 들어가 주의 이름으로 빛과 소금의 사명을 다하면 그보다 더 아름다운 섬김이 없습니다.
여러분의 일터에서 연구실과 학교 강의실에서 가정 그리고 잠시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나를 불태워 어두워져가는 세상을 밝히는 빛으로 살고 나를 녹여 세상에 맛을 내며 부패하는 세상에 소금으로 살기 바랍니다. 내가 비록 사람들 앞에 대단한 존재로 드러나지는 않을지라도 우리의 영원한 지휘관이신 그리스도의 군사가 되어 그 깃발을 따라 후대로 행진하며 세상의 어두움을 밝히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후미를 책임 맡은 그리스도의 일군이니 영광스런 주의 군사이며 하나님 나라의 백성입니다. 이 영광스런 직무에 기쁨으로 동참하는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위로와 상급이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 나를 드리라
민수기 2:32-34 / 이한규 목사
< 후방 방어도 중요하다 >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는 말이 있다. 그 말만 믿고 제대로 방어진을 구축하지 않고 무조건 공격으로 일관하면 결국은 패배한다. 후미도 잘 살펴서 지키고 방어진도 세심하게 구축하라. 후방 방어에 실패하면 승리해도 그 승리를 얼마 지탱시키지 못한다. 이스라엘 군대의 제3군단인 에브라임 군단과 제4군단인 단 군단의 존재는 그 사실을 잘 교훈한다.
서쪽에 진 칠 자는 에브라임 진영의 군기에 속했다. 그것은 에브라임, 므낫세, 베냐민 지파로 이뤄진 서쪽 군단의 지휘권이 에브라임 지파에게 있었다는 뜻이다. 에브라임 지파의 지휘관은 엘리사마이고 군사 수는 40,500명이었고, 에브라임 지파 곁에 진 쳤던 므낫세 지파의 지휘관은 가말리엘이고 군사 수는 32,200명이었고, 베냐민 지파의 지휘관은 아비단이고 군사 수는 35,400명이었다(18-23절). 결국 에브라임 군단의 총 군사 수는 108,100명이었고 군단장은 엘리사마이고, 사단장은 엘리사마, 가말리엘, 아비단으로서 그들은 제3대로 행진했다.
북쪽에 진 칠 자는 단 진영의 군기에 속했다. 그것은 단, 아셀, 납달리 지파로 이뤄진 북쪽 군단의 지휘권이 단 지파에게 있었다는 뜻이다. 단 지파의 지휘관은 아히에셀이고 군사 수는 62,700명이었고, 단 지파 곁에 진 쳤던 아셀 지파의 지휘관은 바기엘이고 군사 수는 32,200명이었고, 납달리 지파의 지휘관은 아히라이고 군사 수는 53,400명이었다(25-30절). 결국 단 군단의 총 군사 수는 157,600명이었고 군단장은 아히에셀이고, 사단장은 아히에셀, 바기엘, 아히라로서 그들은 제일 후방인 제4대로 행진했다.
단 군단은 유다 군단 다음으로 군사 수가 많았다. 가장 전투력이 강한 유다 군단은 선봉에 서서 공격하는 임무를 맡았고 둘째로 전투력이 강한 단 군단은 후방에서 방어하는 임무를 맡았다. 선봉 공격인 양지의 삶도 중요하지만 후방 방어인 음지의 삶도 중요하다. 음지의 삶을 경시하지 말라. 위치로 인한 비교의식을 버리고 자기 사명을 따라 살라. 사명적인 삶은 비교급의 삶이 아닌 최상급의 삶이다.
< 하나님께 나를 드리라 >
중요한 것은 어느 위치에 있든지 스스로를 존중하는 것이다. 스스로를 귀하게 여기고 존중하면 제외되는 것은 소외되는 것이 아니다. 당시 가문을 따라 전체 계수된 이스라엘의 20세 이상의 총 군사 수는 603,550명이었고 그 총 숫자에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레위인이 계수되지 않았다(32-33절). 레위인을 무시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하도록 따로 성별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총 군사 계수에서는 제외되었지만 소외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성별된 것이었다.
다른 지파 사람들은 레위인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우리들은 이렇게 싸움에 나가는데 저들은 저렇게 싸움에 나가지도 않고 병역 면제 혜택을 받으면서 저렇게 편하게 지낸다. 불공평하다.”라고 해야 하는가? 아니다.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 “그들은 하나님을 일을 위해 성별되었고 그들이 하나님 앞에 헌신해서 우리에게 복이 임하는 것이니 힘써 존중하자. 그들도 하나님의 일을 하느라고 얼마나 수고하는가? 편하게 놀고먹는다고 생각하지 말자.”
레위인들은 스스로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의 일을 위해 수고하는데 당연히 병역 면제도 받고 특별 대접을 당연히 받아야 하지.”라고 생각해야 하는가? 그렇지 않다.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하도록 특별히 성별해서 병역 면제 혜택까지 주었으니 수고하는 다른 지파 사람들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해서라도 제사에 영과 진리로 힘써 임하고 백성들을 위한 기도를 게을리 하는 죄를 범하지 말고 더욱 하나님께 자신을 드리자. 그리고 백성들의 율법 교육에도 더욱 힘쓰자.”
모든 신약 성도는 영적인 이스라엘 군사이며 동시에 영적인 레위인이기도 하다. 기독교 영적인 리더들은 더욱 말씀과 기도를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힘써 말씀대로 살고 말씀을 전파하면 제외된 것이 소외된 것이 아닌 성별된 것으로 변한다. 결국 인생을 의미 있게 사는 관건은 나를 하나님 앞에 온전히 드리느냐로 판별된다. 나를 하나님께 드리면 하나님과 하나가 되어 우주상의 가장 위대한 메이저 그룹이 되기에 마이너 의식을 가질 필요가 없다.
깃발을 따라서
민 2:32-34 / 이규왕 목사
사람의 됨됨이를 알아보려면 그 사람의 언행과 쓴 글을 보면 짐작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알려면 역시 하나님의 하신 일과 그 말씀을 보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 중에 가장 위대한 일은 창조사역이며 그 결과가 바로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자연세계입니다. 우리는 그 자연 세계를 통해서 하나님이 위대하심과 그 권능이 얼마나 크신가를 능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롬 1: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그 좋은 예가 하나님이 지으신 광활한 우주와 천체에 떠 있는 수 많은 별들과 어김없는 계절의 변화와 생명의 신비를 통해서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심을 깨닫게 됩니다.
그것들은 본래 하나님의 지으심을 받기 전에는 흑암과 혼돈과 공허한 것들이었으나 하나님의 창조를 통해서 그렇게 질서있고 아름다운 세상으로 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질서를 좋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다는 것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알고 또한 그와 같은 하나님을 성품을 닮아가는 것이라면 하나님께서 좋아하시는 질서를 우리의 일상 삶에도 적용시킬 때 승리와 행복이 있으며, 교회에 적용시킬 때 부흥과 성장의 축복이 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 말씀이 바로 그와 같은 원리를 우리에게 잘 나타내 보여주는 말씀이라면 우리가 주목하고 본받아 우리 교회의 부흥과 우리 개개인의 축복의 원리로 삼아야 하겠습니다.
1. 하나님 군대의 깃발
나라가 크고 작고, 강하고 약하고를 떠나서 어엿한 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을 갖추어야만 하는데 그것이 바로 왕권과 백성과 영토와 법과 또 하나는 나라를 지키는 군대입니다.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사백 년 동안 노예 생활을 하다가 하나님의 기적적으로 자유와 해방을 얻었지만 어엿한 한 나라를 건설하기에는 부족한 것들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이스라엘 나라를 건설하려면 강력한 지도자가 왕이 되어야 하는데 모세는 이미 나이가 팔십이 넘었기 때문에 새로 건설될 이스라엘 나라의 왕이 되기에는 너무나 늙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시기로 약속하신 영토인 가나안 땅은 너무나 멀고, 많은 장애물이 가로 막고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가장 큰 장애물은 메마른 광야와 같은 자연 환경이 아니라 이미 가나안 땅을 점령하고 있는 전쟁에 뛰어난 일곱 족속의 원주민들로 약속의 땅을 점령하여 새 나라를 건설하기 까지는 수많은 전쟁을 각오해야만 하였습니다.
그 일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급선무가 군대를 조직하고 훈련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너무나 오랜 동안 노예 생활을 하였기 때문에 가나안 족속들과 맞서 싸울 용맹스런 군대가 되기에는 모자라는 오합지졸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와 같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신 후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을 체험하게 하신 후 시내산에 이르게 하신 후 새로운 나라를 건설할 만반의 준비를 하게 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모세를 통해 시내 산에서 하나님 나라의 법인 율례와 법도와 규례를 내려 주셔서 그 법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만이 아니라 일상생활까지도 다 적용하게 하신 일입니다.
법이 만들어졌으면, 그 법에 따라 왕을 세워야 나라가 세워질 수 있는데 이상하게도 하나님은 왕을 세우게 하시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통해서 약속의 땅에 세우시려는 왕국은 가나안에 이미 존재하고 있는 왕국들과 본질적으로 다른 새로운 왕국을 세우시기 위함인데 그 왕국은 하나님이 친히 왕이 되셔서 통치하시는 신정왕국을 건설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와 같은 계획을 하시는 까닭은 이미 지상 모든 나라가 사단의 영역아래 지배를 당하는 우상국가로 전락해 버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와 같은 세상을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유일한 신정 국가인 이스라엘 나라를 통해서 정복해 나가시기 위함이었으며, 이스라엘을 제사장 나라라고 하신 까닭이 바로 이 때문이었습니다.
(출 19:5)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출 19:6)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할지니라
그 같은 하나님의 계획은 결코 세계 역사 속에 제국주의자들과 같은 패권주의가 아니라 거룩하고 선하신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의도하셨던 거룩한 나라 건설을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신정 국가 건설을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또 하나는 군대라고 하였다면 하나님은 그 군대를 어떻게 조직하셨는지 오늘 성경 말씀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1) 인구조사
하나님께서는 출애굽을 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시내산 아래 머물러 가나안 진격을 준비하게 하시는 중에 출애굽을 한지 이년 쯤 되었을 때 전쟁에 출전할 수 있는 이십 세 이상의 장정들이 몇 명인지를 조사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민 1:2)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회중 각 남자의 수를 그들의 가족과 종족을 따라 그 명수대로 계수할지니 (민 1:3) 이스라엘 중 이십 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 만한 모든 자를 너와 아론은 그 군대대로 계수하되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같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각지파별로 이십 세 이상의 장정의 수를 파악하여 총계를 하였을 때 그 수가 무려 육십만 명이나 되었습니다.
(민 1:45) 이같이 이스라엘 자손의 그 종족을 따라 이십 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 만한 자가 이스라엘 중에서 다 계수함을 입었으니 (민 1:46) 계수함을 입은 자의 총계가 육십만 삼천오백오십 명이었더라
이와 같은 인구조사의 결과치를 우리가 살펴보게 되면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더욱 실감할 수 있게 됩니다. 그 이유는 이들이 바로 아브라함의 자손들로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너로 큰 민족을 이루리라고 약속하셨던 말씀이 사실로 이루어졌음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2) 전투편제
언제 전쟁이 일어날지 모르는 불안한 상황에서는 일선에 배치된 군인만이 아니라 후방에 있는 민간인들도 예비군이 되어 비상시에는 동원이 될 준비를 합니다.
장차 가나안 전투에 참여하여 우상이 만연한 제국들을 정복하고 만군의 여호와 유일하신 하나님의 왕국을 건설하는 일을 위해 이십세 이상의 장정들을 전시 체제의 군대로 편성하게 하셨습니다.
그들이 바로 출애굽을 하기 전에는 애굽의 바로 왕 치하에서 노예가 되어 벽돌을 굽고 나르고 쌓는 일에 종사하던 자들로 하나님의 나라의 군대가 되기는커녕 세상 나라의 군대가 되기에도 부적합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한 부끄러운 과거의 전력을 누구보다 하나님이 잘 아심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스라엘 나라의 군대를 하늘에서 파견된 천군과 천사대신에 오합지졸과 다름없은 이십 세 이상의 장정들을 가리켜 군대라고 호칭하게 하셨습니다.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그렇게 부실해 보이는 군대가 과연 광야를 지나고 가나안을 점령하는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할 것입니다.
3) 깃발 곁에
오늘 날에도 나라를 상징하는 국기가 있고 군대에는 각 부대마다 깃발이 있는 것처럼 오늘 성경에서 각 지파를 상징하는 깃발을 꼽게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사람들이 멀리서도 그 깃발을 보고 자기가 소속된 진영을 잃어버리지 않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깃발을 꼽았고 그 깃발 곁에 막사를 세우게 하셨습니다.
(민 1:52) 이스라엘 자손은 막을 치되 그 군대대로 각각 그 진과 기 곁에 칠 것이나
여기서 '막'(幕)이란 군인들이 전선에서 적과 싸우기 위해 거주하는 진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또한 그 진은 자기들 좋은 사람들끼리 아무나 모여서 진을 치는 것이 아니라 각 부대를 상징하는 깃발처럼 각 지파를 상징하는 깃발을 따라 막을 치고 진을 쳤습니다.
그와 같은 깃발은 백성들의 단체나 집합을 상징하는 것으로 주로 전쟁에 있어서의 군호(軍號)를 가리키며, 많은 사람들을 집중시키는 푯대로 이스라엘의 구심점으로 사용 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전투체제의 정비는 모세가 주도한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명하신 일이며, 그 명령에 따라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 순종한 것입니다.
(민 1:54) 이스라엘 자손이 그대로 행하되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행하였더라
2. 가나안 진격의 깃발
하나님께서 출애굽을 한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전쟁에 출전할 수 있는 이십세 이상의 장정들을 조사하게 하신 궁극적인 목적은 그들을 여호와의 군대로 삼기 위함이었습니다.
그것을 잘 나타내 보여주는 것이 바로 인구 조사된 숫자와 그들을 군대 형태의 진을 조직하고 동서남북에 배치한 군대의 수가 한 사람도 낙오됨이 없이 일치함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민 1:45) 이같이 이스라엘 자손의 그 종족을 따라 이십 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 만한 자가 이스라엘 중에서 다 계수함을 입었으니 (민 1:46) 계수함을 입은 자의 총계가 육십만 삼천오백오십 명이었더라
하나님은 그들을 성막을 중심으로 각지파별로 동서남북에 나뉘어 깃발을 따라 진을 치게 하셨습니다.
1) (민 2:3) 동방 해돋는 편에 진칠 자는 그 군대대로 유다의 진 기에 속한 자라 유다 자손의 족장은 암미나답의 아들 나손이요
2) (민 2:10) 남편에는 르우벤 군대의 진기가 있을 것이라 르우벤 자손의 족장은 스데울의 아들 엘리술이요
3) (민 2:18) 서편에는 에브라임의 군대의 진기가 있을 것이라 에브라임 자손의 족장은 암미훗의 아들 엘리사마요
4) (민 2:25) 북편에는 단 군대의 진기가 있을 것이라 단 자손의 족장은 암미삿대의 아들 아히에셀이요
이처럼 동서남북에 진을 친 이십 세 이상의 장정으로 구성된 군대의 총수가 무려 육십만 명이라는 대 부대가 된 것입니다.
(민 2:32) 이상은 이스라엘 자손이 그 종족을 따라 계수함을 입은 자니 모든 진의 군대 곧 계수함을 입은 자의 총계가 육십만 삼천오백오십 명이었으며
바로 이 숫자가 인구 조사와 일치하는 숫자로 출애굽을 한 이십 세 이상의 장정은 한 사람도 예외가 없이 하나님의 군대로 편성을 받았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원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만 적용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어짐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로 구속함을 받은 우리는 한 사람도 예외가 없이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가 되어 이 세상에서 우상과 죄악을 몰아내고 하나님 나라를 건설해야 하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 세움을 받은 사람들이라는 점이 동일한 원리인 것입니다.
(딤후 2:3) 네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을지니 (딤후 2:4) 군사로 다니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군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
출애굽을 한 육십만은 오합지졸이 아니라 하나님의 군대답게 매우 질서정연하였는데 한 곳에 진을 치고 정지를 할 때나 아니면 부대를 이동을 할 때 항상 두 가지 원칙을 철저하게 지켰습니다.
1) 하나는 이스라엘 각 지파가 동서남북에 깃발을 꼽을 때 그 중심은 항상 여호아 하나님의 성막이었다는 것입니다.
(민 2:2) 이스라엘 자손은 각각 그 기와 그 종족의 기호 곁에 진을 치되 회막을 사면으로 대하여 치라
하나님의 임재의 장소를 뜻하는 회막이 항상 이스라엘의 중심에 위치하여 있다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그의 택하신 백성들 가운데 임재하고 계심을 뜻하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군대는 어떤 환경과 상황 가운데에서도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연약한 이스라엘이 강해지는 길, 승리하는 길, 행복해지는 길은 오직 그들이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는 삶을 살 때인 것입니다.
이는 죄와 불의가 가득 찬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임마누엘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복되고 소망있는 일인가 일깨워 주는 것입니다.
2) 또 하나는 이스라엘 군대의 이동이나 정지는 깃발을 따라 진을 치기도 하고 이동을 하기도 하였다는 것입니다.
(민 2:34)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여 각기 가족과 종족을 따르며 그 기를 따라 진치기도 하며 진행하기도 하였더라
그와 같은 원리는 이스라엘 백성에게만 적용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어져야만 합니다.
오늘 우리 가운데도 하나님은 동일하게 함께 하시며 우리가 항상 주목해야 할 푯대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 뿐입니다.
3) 오합지졸과 같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하나님의 군대가 되어 시내산에서 출발하여 광야를 지나고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을 진격하여 일곱 족속을 물리치고 마침내 각 지파는 성막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의 땅을 제비 뽑아 분배를 받음으로 가나안 정복을 이룰 수 있게 되었습니다.
(수 21:43)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열조에게 맹세하사 주마 하신 온 땅을 이와 같이 이스라엘에게 다 주셨으므로 그들이 그것을 얻어 거기 거하였으며
그와 같은 승리의 비결이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이 무엇을 말씀하시든지 이스라엘 백성들이 질서정연하게 순종한 결과였습니다. 자신들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이 무엇을 명하시든지 그대로 순종하였을 때 하나님께서는 연약한 이스라엘을 들어 강대한 나라들을 내어 쫓게 하시고 마침내 승리하게 하신 것을 우리가 본받아야 합니다.
(수 23:8) 오직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친근히 하기를 오늘날까지 행한 것같이 하라(수 23:9) 대저 여호와께서 강대한 나라들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셨으므로 오늘날까지 너희를 당한 자가 하나도 없었느니라 (수 23:10) 너희 중 한 사람이 천명을 쫓으리니 이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희에게 말씀하신 것같이 너희를 위하여 싸우심이라
3. 십자가 복음의 깃발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노예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여 그들을 통해 가나안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하나님 나라의 군대가 되게 하신 영적 원리는 오늘 우리에게 변함없이 유효합니다.
오늘의 나는 누구입니까? 허물과 죄로 죽었던 인생이요, 애굽의 바로 왕과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악독한 사단의 권세에 종노릇하여 죄와 질병과 죽음의 노예가 되었던 인생이 아닙니까?
만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다면 아무리 잘먹고 잘산다고 할지라도 죄와 죽음의 권세에서 자유와 해방을 얻고 영생을 얻을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해내신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피흘려 죽게하시고 부활하심으로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신 은혜로 말미암아 오늘 우리가 구원함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구원은 결코 값싼 구원이 아니라 흠과 점이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값을 지불하신 값비싼 구원을 얻은 사람들입니다. 다만 그 값을 내가 아닌 그리스도가 대신 지불하신 것이기 때문에 값없이 구원을 받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원받기 위해 어린 양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에 바르고 그 고기를 먹음으로 애굽에서 구원함을 받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애굽에서 구원함을 받은 장정들은 개인이 구원받은 것으로만 만족하며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이 조상 적부터 약속하신 땅을 정복해야 할 하나님의 군대로 부르심을 받은 용병들이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로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정복해야 할 약속의 땅이 있으며, 그것을 위해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용병이 되어야 할 그리스도의 군사들임을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빌 2:25) 그러나 에바브로디도를 너희에게 보내는 것이 필요한 줄로 생각하노니 그는 나의 형제요 함께 수고하고 함께 군사 된 자요 너희 사자로 나의 쓸 것을 돕는 자라
그렇다면 우리가 정복해야 할 이 시대의 가나안은 어디입니까? 그것이 바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명령하시고 약속하신 모든 족속이요, 또한 땅 끝이요,혈과 육의 싸움이 아닌 믿음의 선한 싸움인 전도와 선교의 사역입니다.
(행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주님은 이 목표를 이루시기 위해 오합지졸같은 갈릴리 어부들을 그리스도의 군대의 용장들로 훈련시켜 세워 주셨고, 구원받은 성도들을 천국복음을 전파하여 민족을 복음화하고 세계를 복음화하는 일에 용병들이 되게하셨습니다.
물론 주님은 하늘에 천군과 천사들을 동원하실 수 있으심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시지 않고 연약한 이스라엘 백성, 연약한 제자들을 동원하신 것처럼 오늘 우리를 그 거룩한 전투대열에 참여하기를 원하시고 계십니다.
(사 6:8)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은즉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 때에 내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함을 받은 오늘 성경의 장정들처럼 이 일을 위해 부름을 받은 그리스도의 군대입니다.
(딤후 2:3) 네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을지니 (딤후 2:4) 군사로 다니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군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
적과 치열한 접전을 벌리고 있는 전투에서 승리를 하기 위해서는 고도의 전술과 전략이 필요하고 조직과 훈련이 필요하고 상명하복의 철저한 복종이 요구 됩니다. 물론 전투병이 많으면 좋지만 다 전투병이 아니라 보급을 지원하는 병참, 무너진 다리를 복구하는 공병, 부상자를 치료하는 의무, 통신, 정보, 군종에 이르기까지 온갖 은사가 다 종합되어져야만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싸움이 치열하고 중요한 전쟁일수록 더 많은 병력과 더불어 지휘관의 명령에 일사분란하게 복종하는 일입니다.
영적 전투장인 세상에 지휘사령부로 세워진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교회에게 내리신 명령은 다른 것이 아니라 땅끝까지 복음을 전파하여 죽어가는 영혼을 구원하라는 것입니다.
복음 전도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 가나안 정복을 위해 질서 있는 군대 조직과 전략적인 공격이 요구되었던 것처럼 질서와 조직과 훈련이 요구됩니다.
지금으로부터 이천년 전 가장 작은 땅 팔레스틴에서 시작된 기독교의 복음이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 우연이나 주먹구구가 아니라 철저하게 전략적이었음을 사도행전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군사된 우리가 우리의 대장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이미 정해 놓으신 목표가 우리 민족이 100% 예수를 믿게 되고, 세계 만민이 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는 세계 복음화인 것입니다.
가나안 정복을 위해 인구조사를 하고 성막을 중심으로 각 지파를 전략적으로 배치를 하고 그 원칙에 따라 머물고 진해하고 전투한 것처럼 오늘 우리에게도 전략이 요구됩니다.
사도 바울은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빌 3:14)“고 간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깃발되신 예수님이 머무시는 곳에 우리도 머물러야 하고 그 분이 가는 곳에 우리도 따라가는 것은 바로 우리가 다른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주목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히 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왜 그래야만 하는 것일까요? 오합지졸처럼 보이던 이스라엘 군대가 이 두 원칙을 지킬 때 어느 누구와의 싸움에서도 이겼고 가장 강했던 것처럼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승리의 비결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신앙 생활은 영적인 전투입니다. 복음이 들어가는 곳에 사단의 권세가 정복되어집니다.
구약 시대처럼 어느 특정인이나 특정민족이 아니라 이제는 모든 나라, 모든 족속에게 말씀이 전파되어져야만 하는 것이 주님의 마지막 목표입니다.
애굽에서 구원받은 장정들을 하나님의 군대로 삼으신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로 구속함을 받은 백성을 이 시대의 복음의 전사로 삼으시기를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무엇이라고 하였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는 젖과 꿀이 흐르는 유형적인 가나안 정복이라면 오늘 영적 이스라엘 백성된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는 세계가 복음화되는 일입니다.
(롬 14:17)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하나님 백성의 행복은 불신자와 달리 무엇을 먹고 마시는가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여부에 달려 있습니다. 그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 바로 아모스 선지자가 예언한 것이 적중된 오늘의 세대입니다.
(암 8:11)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심을 받은 인간은 누구를 막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먹지 않으면 그 영혼이 건강할 수 없고 살수 없습니다.
그러나 말세가 되면 육신의 양식이 아무리 풍성하다고 할지라도 영적인 양식인 말씀의 기근으로 인해 사람들의 영혼이 주리고 목마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세상에 오신 궁극적인 목적이 바로 이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공생애기간의 주된 사역이 말씀 사역인 까닭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오늘의 교회는 그 전략을 이루기 위해 존재하며, 교회는 그 전략을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 그리스도의 군사들을 부단히 훈련시켜 세상에 보내어 세상을 복음화시켜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를 위해 오늘 월드메르디앙 전도지원팀을 모집하는 시간에 많은 성도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기대합니다. 어떤 모양으로든지 전교인이 십자가 깃발을 따라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교회는 영적 전쟁의 기관이며 성도는 영적 전쟁을 치루는 영적 군사입니다. 전도는 바로 사단의 권세아래 종노릇하는 이웃을 구원하는 영적인 전투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군사가 많이 필요합니다.
보다 더 효과적인 전도를 위해서 교회는 전략이 필요하며 모든 지체된 우리 성도들은 오늘 성경 말씀과 같이 영적 전투에 참여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구체적으로 계수 되어야 하고 그 사람들을 조직하고 은사를 따라 훈련하고 전략을 따라 적절한 공격이 이루어져야만 합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군사된 성도들이 깃발을 따라 순종한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십자가의 깃발을 따라 영적 전투인 복음 전도의 조직과 훈련과 실전에 더불어 참여하는 성도들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바라보고 따라야 할 깃발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뿐입니다.
(히 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이스라엘은 연약하기 때문에 이길 수 없었지만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이 이기게 하시니 이스라엘이 마침내 이긴 것처럼, 우리가 순종하고 십자가의 깃발 아래 모여 그 깃발을 따라 순종하기만 하면 마침내 주님이 우리를 통해 이기게 하실 것입니다.
(고후 2:14)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이제 성장하며 선교하는 교회라는 목표를 앞당기게 하시려고 우리 교회에 주신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말고 우리 모두 십자가 깃발아래 모여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모두 각자에게 할 수 있게 하신 은사와 책임을 따라 전투하는 심정으로 최선을 다해야만 합니다.
그렇게 하기만 하면 비록 우리는 연약할 지라도 전능하실 뿐 아니라 또한 약한 자를 들어 강한 자를 부끄럼게 하시는 하나님께서 그 결과를 승리하게 하시는 놀라운 축복을 체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다만 우리는 주님의 부르심에 자원하여 순종하기만 하면 나머지는 주님이 책임져 주실 것입니다.
(사 6:8)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 때에 내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민수기 2장
민 2:1-34 / 김광욱 목사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첫째 해(전통 견해 주전1446년) 첫 번째 달 십오일 애굽을 나온 이후 둘째 해 둘째 달 첫째 날, 즉 만 1년 보름의 세월이 흘렀을 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12지파의 남자의 명수를 계수하되 “이십 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 만한 모든 자”를 계수하라고 하셨는데 총인원이 603,550명이었습니다. 이 수는 단순한 남자의 명수가 아닌 싸움에 나갈 만한 자들이었기에 민간인이 아닌 군인의 수에 해당합니다. 광야생활을 시작하기 전에 이스라엘은 비록 무기를 잘 갖추지 못핬지만 군대가 조직된 것입니다. 어제 이스라엘의 출애굽이후의 여정을 조금 살펴보았지만 이스라엘이 출애굽하여 홍해를 건넌 후 그 해 3월 1일에 시내 산에 도착하였으며(출19:1), 시내산에 도착해서 하나님으로부터 십계명, 성막 제작법, 레위기 규례를 받았습니다. 이스라엘이 본격적인 광야생활에 앞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필요한 것을 갖추게 하셨습니다. 또한 광야생활이 이동하며 텐트 생활을 해야 함에 따라 각 지파별 진을 어떻게 쳐야할 지를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2절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각각 자기의 진영의 군기와 자기의 조상의 가문의 기호 곁에 진을 치되 회막을 향하여 사방으로 치라
하나님께서는 각지파별 텐트에 지파를 표시할 수 있는 깃발을 세울 것과 지파별 텐트는 회막, 즉 성막을 중심으로 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민수기 2장은 1장에서 계수했던 지파별 인원을 토대로 텐트 중심으로 동남서북 4방향에 각 3지파씩 성막 중심으로 텐트를 치는 것과 이동할 때에 행진 순서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진영은 성막을 중심에 두고 동쪽에는 유다 지파 주축으로 잇사갈 지파와 스불론 지파이며 행진할 때에는 제1대로서 인원은 186,400명이었습니다. 남쪽은 르우벤 지파 주축으로 시므온 지파와 갓 지파이며 행진할 때에는 제2대로서 인원은 151,450명이었습니다. 서쪽은 에브라임 지파 주축으로 므낫세 지파와 베냐민 지파이며 행진할 때에는 제3대로서 인원은 108,100명이었습니다. 북쪽은 단 지파 주축으로 아셀 지파와 납달리 지파이며 행진할 때에는 마지막 제4대로서 157,600명이었습니다. 특이한 점은 어제도 잠시 살펴보았지만 레위 지파는 계수되지 않았는데 그 이유가 레위지파의 직무가 성막을 책임는 일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민수기 3장부터 레위지파의 구체적인 직무를 살펴보겠지만 2장에서는 레위 지파가 행진할 때의 위치를 17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레위지파는 유다 지파 중심의 제1대 뒤를 따르도록 할 것과 레위 지파의 텐트가 12지파의 텐트보다 성막에 더 가깝게 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레위 지파는 직무별로 크게 4부류로 나뉘고 진영도 정해진 위치가 있었습니다. 첫째는 모세와 아론, 그리고 그들의 아들들이며 성막 인접한 동쪽(민3:38), 둘째는 고핫 자손이며 성막 인접한 남쪽, 셋째는 게르손 자손이며 성막 인접한 서쪽, 넷째는 므라리 자손이며 성막 인접한 북쪽이었습니다(민10:11-28).
정리를 하자면, 이스라엘 진영은 성막 중심으로 1차 둘레는 모세와 아론을 포함해서 레위지파가, 2차 둘레는 12지파가 진을 이루는 것입니다. 레위지파가 성막 중심으로 4방향에서 진을 치고 그 둘레 밖에 12지파가 4방향으로 3지파씩 진을 쳐서 2차 둘레를 형성합니다. 그리고 행진할 때에는 모세와 아론을 포함해서 언약궤를 선두에 세우고 그 다음으로는 제1대 유다 지파를 포함한 3지파, 다음으로는 레위지파 게르손 자손과 므라리 자손, 다음으로는 제2대 르우벤 지파를 포함한 3지파, 다음으로는 레위지파 고핫 자손, 다음으로는 제3대 에브라임 지파를 포함한 3지파, 마지막으로는 제4대 단 지파를 포함한 3지파 순서입니다.
민수기 2장에서 생각해 볼 것은 이스라엘의 모든 진영과 행진의 중심이 성막이라는 점입니다. 성막 중심은 성막 지성소내 속죄소에 임재하시는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아야 할 것을 보여줍니다. 이스라엘이 앞으로 펼쳐질 광야 생활에서 필요한 것은 어느 곳에 머물 때에나 어느 곳으로 이동할 때에나 언제나 하나님의 중심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도 광야 길을 걸어가는 이스라엘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우리 각자의 미래를 우리 각자가 어떻게 정확히 예측하며 갈 길을 다 알고 갈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인도하신대로 순종하며 따라갈 때에만 바른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습니다. 과거 절망과 좌절과 자포자기의 세월을 보냈다면 하나님 중심인 성막 중심으로 진을 치지 않았었고 하나님중심인 성막을 따라 걸어가지 않았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하고 홍해를 건넜지만 과거의 옛 삶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죄와 욕망과 어두움의 애굽의 삶의 방식과 문화와 가치관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에 목마름과 배고픔에 직면하자 그것을 단지 생존의 문제로 여기고 하나님을 원망하며 하나님께서 베푸신 유월절의 구원과 홍해의 구원을 무색하게 만들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이들에게 하나님 중심인 성막 중심의 삶이 필요했습니다.
하나님 중심인 성막 중심으로 진을 치고 행진하게 된다면 절망과 좌절과 자포자기의 과거가 현재를 거쳐 미래에도 새로운 의미로 되살아납니다. 우리가 지난 세월을 단지 무의미한 과거로만 묵혀둔다면 밝은 현재도 밝은 미래도 없습니다. 예수님을 핍박하던 사울과 40여 년 동안 성전 미문에서 구걸하였던 선천성 하반신마비자를(행3,4장) 생각해 보십시오. 사울이 자신에게 찾아오신 예수님을 만난 후 하나님 중심인 성막 중심으로 진을 치고 행진하게 되었기에 그의 과거가 무의미하게 묻히지 않은 사람, 사도가 되었습니다. 40여 년 동안 성전 미문에서 구걸하였던 하반신마비자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걷게 된 후 하나님 중심인 성막 중심으로 진을 치고 행진하는 첫 걸음인 성전 미문에 들어섰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그의 과거가 의미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 역시, 나의 과거를 무의미한 것에서 의미 있는 시간으로 바꾸려면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 중심인 성막 중심으로 진을 치고 행진해야 합니다. 현재는 결코 과거와 단절되어 있지 않습니다. 미래 역시 현재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오직 우리 인생의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은 하나님 안에서 새로워질 수 있습니다. 그 새로운 시대의 시간은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 중심인 성막 중심으로 진을 치고 행진할 때부터임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광야와 같은 인생길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 중심인 성막 중심으로 진을 치고 행진함으로써 무의미하게 묻힐 수 있는 과거를 의미 있는 현재와 미래로 바꾸어 나가게 도와주옵소서. 절망과 좌절과 자포자기의 과거의 삶을 예수님 안에서 벗어나 새로운 현재와 미래를 살아가는 예수님의 증인된 삶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이스라엘이 광야생활을 한 시점은 출애굽한 후 약 14개월째였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여기서 하나님의 짧지 않은 손길은 어떻게 임했는지를 생각해 봅시다.
2. 이스라엘이 광야생활에서 지켜야 할 12지파와 레위지파의 진영 배치도와 진행 순서도를 그려 봅시다.
3. 이스라엘 진영의 배치와 진행의 순서가 성막 중심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4. 구약시대 성막 중심의 삶은 오늘날에는 어떤 삶인지를 구체적으로 생각해 봅시다.
5. 무의미한 과거가 어떻게 의미 있는 시간으로 변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 봅시다. 지워버리고 싶은 과거를 의미 있는 과거로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렇다면 어떻게 바꿀 수 있는 지를 생각해 봅시다.
성막 중심의 진 배치
민 2:1-34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은 각각 그 기와 그 종족의 기호 곁에 진을 치되 회막을 사면으로 대하여 치라"(민수기 2:1-2).
"The Lord said to Moses and Aaron: “The Israelites are to camp around the tent of meeting some distance from it, each of them under their standard and holding the banners of their family.”(Numbers 2:1-2).
1) 장막을 배치하게 하신 하나님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 여정 동안 취하게 될 숙영지에서의 진영 배치는 이스라엘의 인도자 되신 하나님의 세심한 관심과 간섭을 따라 성막을 중심으로 각 지파의 장막이 동서남북 네 방향으로 장막을 배치하게 하셨습니다(1-2).
그렇지만 그들은 성소를 존중하는 의미에서 성소로부터 2000규빗 즉 800미터 정도(수 3:4)떨어진 곳에 진을 쳤습니다.
2) 이스라엘 각 지파의 장막 배치도(3-32)
각 지파는 대표 지파에 혈통상 가장 가까운 지파들끼리 묶어 강한 연대감을 형성하게 했으며, 그리고 각 방향마다 그 대표되는 지파(유다, 르우벤, 에브라임, 단 지파 등)의 깃발을 세웠을 뿐 아니라 각 지파를 상징하는 깃발을 일일이 세우게 함으로써 서로의 자리를 확인하게 하셨습니다.
각 지파는 동편에 유다와 잇사갈과 스불론 지파(186,400명), 남편에 르우벤과 시므온과 갓 지파(151,450명), 중앙에 회막과 레위인의 진, 서편에는 에브라임과 므낫세와 베냐민 지파(108,100명), 북편에 단과 아셀과 납달리 지파(157,600명)가 배치되었습니다.
3) 유다 지파(3)
유다 지파는 가장 영광스러운 위치를 배정받아 해가 떠오르는 동편을 향하여 진을 쳤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이 행진할 때는 유다 지파가 선두에 서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가장 수가 많은 지파였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 지파에서 그리스도가 나실 것이기 때문이었다.
4) 레위 지파(17, 33)
레위 지파는 계수되지 않았으며 회막의 가장 가까운 곳 즉 다른 지파들이 둘러싼 그 안에 진을 쳤습니다. 레위 지파는 성소를 보호해야 했고 다른 지파들은 레위 지파를 보호해야 했습니다.
이것은 생명의 근원이신(요6:68) 하나님 없는 생은 결코 온전할 수가 없으므로 하나님을 중심하여 살아야 함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5) 단 지파(26-31)
단 지파는 비록 진을 칠 때는 회막의 왼편에 위치하지만 행진할 때 후위를 말도록 명령을 받았습니다(31절). 단 지파는 유다 지파 다음으로 가장 수가 많았다. 그래서 선두 다음으로 가장 큰 힘을 필요로 하는 후위에 배치되었던 것이다.
6) 각자의 사명을 따라 배치됨
제1대는 행진의 선두에 서서 백성을 이끌어 가야 하는 사명을 지니게 되고, 제2, 제3대는 성 막에 관련된 기물들을 옮기는 레위인들을 호위해야 했고, 제4대는 후미에서 후방의 적들로부터 이스라엘을 보호해야 하는 등 각자의 고유한 사명이 있습니다.
7)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절대적인 순종(34)
모세는 하나님께로부터 부여받은 명령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다 전달하자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다 준행'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는 곳은 물이나 양식이 없으며, 많은 해충과 독충이 득실거리는 곳이요, 사나운 짐승이나 맹독성 동물들이 습격하는 등 인간이 생존하기에는 거의 불가능한 죽음의 땅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으로 진입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 말씀에 대한 절대적인 순종과 하나님의 은혜 덕분이었습니다.
주께서 주신 오늘!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하나님을 중심으로 살아감으로 축복된 삶을 누리며 살아가길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