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설 내 장애인 기도폐쇄 사망’ 4년 만에 거주시설 책임 인정책임 40% 인정, 일실수입 30% 반영‥1심 5400만원 지급 판결
인천시 소재 장애인거주시설에서 발생한 발달장애인 기도폐쇄 사망사건에 대한 거주시설의 책임이 4년 만에 인정됐다.
그동안 거주시설과 보험사 측은 사망원인을 뇌전증 발작이라고 주장하는 등 발달장애인 당사자에게 사망에 대한 책임을 떠넘기며 책임을 회피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1심 재판부 서울남부지방법원 민사 12단독은 12일 오후 2시 장애인거주시설의 책임을 인정하고 보험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다만 재판부는 응급조치를 할 때 구급대원과 통화를 하면서 지시에 따라 한 것이기에 심폐소생술을 하지 않은 것이 응급조치를 하지 않은 것이라는 책임은 인정하기 어렵다며 40%만 책임을 인정하고 일실수입 30%을 반영해 손해배상청구 5,000만 원 중 유가족인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각각 2,700만 원을 지급하라고 명했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이하 연구소)는 12일 오후 2시 30분 서울남부지방법원 앞에서 ‘거주시설 내 지적장애인 기도폐쇄 사망사건 손해배상청구소송 1심판결 선고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는 12일 오후 2시 30분 서울남부지방법원 앞에서 ‘거주시설 내 지적장애인 기도폐쇄 사망사건 손해배상청구소송 1심판결 선고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에이블뉴스
연구소에 따르면 지난 2020년 8월 9일 인천시 소재 B장애인거주시설에서 발달장애인이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하던 중 음식물이 기도를 막았고, 해당 거주시설의 미흡한 응급조치로 인해 사망에 이르게 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유가족이 확보한 CCTV에서 고인 A씨는 식사 도중 어딘가 불편한 듯 수차례 귀를 치는 행동과 힘들어 머리를 뒤로 젖히는 행동, 고개를 돌려 자신을 도와줄 누군가를 찾는 행동, 손짓으로 자신이 힘든 상황임을 알리는 행동 등의 행동을 수차례나 반복했지만, 당시 시설 종사자는 A씨의 주변을 몇번이나 지나갔음에도 평소와 다른 고인의 행동을 인지하지 못했다.
특히 A씨는 시설의 강권으로 인한 정신과 약물 복용으로 인해 근육경직, 구강건조, 변비, 소화불량, 삼킴 곤란 등의 부작용을 겪고 있었고 식사 시 허리와 고개를 구부정하게 숙이고 먹고 손이 떨려 젓가락질을 시도조차 할 수 없는 상태였다. 시설 역시 이를 인지해 개별건강지원서비스 기록지에 관련 내용을 상세히 적시했고 서비스지원 목표 중 하나로 ‘바르게 앉아서 식사하기’를 지정하기도 했다.
사고 당시 시설 종사자는 A씨가 수차례 이상행동을 보이고 쓰러지고 난 후에서야 하임리히법을 시행했다. 하지만 심폐소생술이나 심장 제세동기를 사용하는 등의 응급조치는 전혀 이행되지 않았다.
119가 도착한 후 구급 대원에 의해 심폐소생술이 이루어졌으나, 이미 고인의 입술 주변으로 청색증이 심하게 보이는 상태였고 맥박은 촉지되지 않았다. 특히 시설에서 인공호흡장비가 있는 병원을 미리 파악하고 있지 않아 두 차례 이상 이송 거부를 당했고 결국 A씨는 최초 신고 이후 1시간 14분이 흐른 뒤에야 싸늘한 주검으로 병원에 이송될 수 있었다.
하지만 시설이 가입한 보험사는 고인이 뇌전증 발작으로 인해 사망했다고 주장하며 시설에 배상책임이 없다고 유족에게 채무부존재확인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소송 과정을 통해 밝혀진 망인의 사인은 뇌전증 발작이 아닌 음식물로 인한 기도폐쇄였다.
12일 오후 2시 30분 서울남부지방법원 앞에서 ‘거주시설 내 지적장애인 기도폐쇄 사망사건 손해배상청구소송 1심판결 선고 기자회견’에서 발언하는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조인영 변호사. ©에이블뉴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조인영 변호사는 “유족은 사망의 진실을 알고자 했으나 시설은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고, 보험사는 뇌전증이라 주장하며 고인 A씨의 목숨 값을 500만 원 이상 줄 수 없다고 하며 채무부존재확인소송을 걸어왔다. 황망한 유가족은 슬픔을 채 추스르기도 전에 소송에 대응해야만 했다”고 밝혔다.
이어 “하지만 공판 중 시설의 책임은 더 분명하게 드러났다. 장애인복지법과 시설 이용 계약에 따라 일반 생활 영역에서 그 이용자에게 위험이 발생하지 않도록 방지하고 위험이 발생하면 이를 신속히 인지해 대처해야 하는 주의 의무가 있지만 이는 지켜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사망 당일 약물 부작용이 심한 고인의 식사 지원을 돕는 종사자는 한명도 없었고, 시설 측의 사전 교육 등의 미비로 고인이 쓰러지고 난 이후에도 시설 종사자는 제대로 된 응급조치를 하지 않았고 골든타임을 그대로 흘려버리고 말았다”고 덧붙였다.
조인영 변호사는 “그러나 공판 동안 시설은 어떠한 문제의식과 책임의식도 없이 고인의 죽음을 이미 지난 일로 치부하며 유가족에게 상처를 주었고 공판 동안 유가족이 요청하는 자료 조회, 사실 확인에 전혀 응하지 않았다”며, “오늘 법원의 판결에 감사드리며 힘들게 4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쌓아온 유가족분들에게 오늘의 판결이 조금이라도 위로가 됐길 바란다”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장애인의 죽음을 경시하고 책임지지 않는 일은 이번 사건의 일만이 아니다. 거주시설에서 장애인이 사망할 경우 시설은 장애인의 장애와 다른 질환 등을 이유로 들며 책임을 회피하고 보험사는 보험금 지급을 거부한다. 이때 정보가 모두 시설에게 있는 상황에서 입증 책임은 온전히 유가족이 지게 되고 유가족들은 힘든 싸움을 이어가다 포기하거나 체념하기 일쑤”라며 “시설과 시설 관리에 대해 책임이 있는 정부와 시설 내 장애인의 죽음에 대해 더 들여다보고 대책을 마련해 주시기를 강력하게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음식물로 인한 기도폐쇄 사망사건 책임지고 보상하라’ 피켓. ©에이블뉴스
판결이 나온 이후 “우리 오빠 개인의 잘못이 아니고 거주시설의 잘못이 맞다는 거죠?”라며 말했던 발달장애인 A씨의 여동생은 재판 직후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A씨의 여동생은 “기도폐쇄는 골든타임이 무척 중요하기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의 대처가 굉장히 중요하다. 하지만 사랑하는 우리 오빠는 주변인들의 도움을 제때 받지 못해 골든타임을 놓쳐 너무나도 허망하게 우리 곁을 떠났다”고 말했다.
이어 “얼굴에 나타난 청색증을 보고도 등만 두드린다든지 너무 안일하게 행동했고 119 구급대원이 오기 전까지 심폐소생술을 그 누구도 하지 않았다. 오빠를 살릴 수 있는 기회가 여러 번 있었는데 제대로 된 조치가 있었다면 오빠가 여전히 저희의 곁에 있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며 울음을 터뜨렸다.
마지막으로 “오늘 드디어 1심 공판이 나왔다. 오빠가 곁에 있지 않아 그렇게 큰 위로가 되지는 않지만, 재판부가 수년간 오빠의 잘못이라고 주장하던 거주시설과 보험사가 아닌 저희의 손을 들어주셔서 조금은 위로가 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