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매일 노인들을 만난다. 노래교실에서 같이 노래하고 커피를 마시고 이야기를 나눈다.
나도 노인이 되어가지만 노인들을 만나면서 느끼는 점이 많다.
노인은 육체와 마음의 세포가 시들어가고 죽어간다. 그래서 젊은 사람들이 느끼는 것과 다른 엉뚱한 생각과 몸짓을 한다. 그런 점들을 옆에서 구체적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그들을 깊숙이 이해하고, 내 자신의 앞날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 있다.
영화 ‘그랜토리노’를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일상은 집을 수리하고 맥주를 마시고 매달 이발하러 가는 것이 전부다.
전쟁의 상처에 괴로워하고 M-1 소총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남편이 참회하길 바란다는 아내의 유언을 이뤄주려고 자코비치 신부가 하루가 멀게 그를 찾아오지만 그에게 신부는 그저 ‘고학력의 27살 숫총각’일 뿐.
그는 참회할 것이 아무 것도 없다며 버틴다. 그가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을 만큼 믿는 존재는 곁에 있는 애견 데이지뿐이다.
이웃이라 여기던 이들은 모두 이사 가거나 죽고 지금은 옆집에 몽족 이민자들이 살고 있다.
그는 그들을 혐오하고 늘어진 지붕, 깎지 않은 잔디 등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못마땅해 한다.
동네의 몽족, 라틴, 흑인계 갱단은 툭하면 세력 다툼을 하고 장성한 자식들은 낯설고 여전히 철이 없다. 낙이 없는 그는 죽는 날만을 기다리고 있다.
어느 날 이웃집 몽족 소년 타오가 갱단의 협박으로 그의 72년산 ‘그랜 토리노’를 훔치려 하고 차를 훔치지 못하게 하고 갱단의 싸움을 무마시킨 그는 본의 아니게 타오의 엄마와 누나 수의 영웅이 된다.
누나와 엄마의 지적으로, 잘못을 보상해야 한다며 그의 일을 돕게 된 타오. 엮이고 싶지 않았던 그는 시간이 가면서 뜻하지 않았던 몽족 소년 타오와 우정까지 나누게 된다.
타오 가족의 친절 속에서 그는 그들을 이해하며 자기 자신과 마주하게 된다.
가혹한 과거에서 떠나온 그들과 자신이 닮아 있다는 것을 깨닫고 차고 속에 모셔두기만 했던 자신의 자동차 그랜 토리노처럼 전쟁 이후 닫아둔 자신의 진심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영화는 노인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노인들은 사회적 무관심 속에서 스스로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간다. 점점 사회에 관심을 잃어간다.
크린트 이스트우드는 우연한 기회에 옆집 몽족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고 사회적 역할을 찾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