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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의 어떤 특성(기능)에 초점두느냐에 따라, 정신질환은 다양한 개념으로 분류된다. 가령
프로이드는 분석가와 안정된 '전이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있는가/없는가'를 기준 삼아 신경증을 '전이신경증' 대 '자기애신경증'으로 구분했다. 자기애신경증은 타자와 관계맺는 것이 불가능하기에, 정신분석 치료가 불가능한 자폐적 정신증(psychosis)으로 간주되었었다.(정신분석 받으러 왔다가 5회 예비상담조차 못채우고 중단하는 내담자는 대부분 자기애신경증자다.)
1970년대 이후 자기심리학, 대상관계론, 컨버그의 임상이론 등이 부각되면서 자기애신경증은 새로운 기법('정신분석적 심리치료')으로 치료가능한 '자기애적 성격장애''경계선 성격장애' 대 심리치료가 불가능한 '정신증' 으로 세분화되어 자리매김 되는 중이다. 즉 (전이)신경증(히스테리, 강박증, 공포증)에는 '정신분석'이 적합하고, (덜 심각한 자기애신경증인) 경계선성격장애는 '정신분석적 심리치료'가 적합하며, (악성 자기애신경증인) 정신증은 심리치료가 불가능하다.
위 분류는, '자기(self)'의 취약과 '자기애'의 결핍으로 '자기애 구조'에 고착되어, 타인의 마음ㆍ타자의 현실을 온전히 지각, 배려, 소통할 수 없는 상태가 정신질환의 핵심 특성이라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타자와 온전히 관계할 수 없는 자기애적 인간은 타자의 관점에서 자신을 바라볼 수 없다. '자기만큼 소중한(끔찍한!) 타자'가 없기에 자기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반영해줄 객관적(상호주관적) 인식의 틀(배경)이 부재하며, 그로인해 자기상태에 대한 온전한 지각이 불가능하다. 자신의 상태를 다각도로 비추어주는 '거울'역할을 하는 타자를 신뢰할 수 없어 진실된 대화를 회피하는 사람은, 자신이 만든 주관적 환상의 성에 갇혀, 그 속에서 영원히 잠만 잘 수밖에 없는 성장하지 않는 아이로 전락한다.
자기애신경증자는 어린시절 '최초대상'(엄마, 최초환경)과의 관계에서 정서소통 없는 형식적 양육('박탈') 경험과, 그 결핍을 보상(보충)해줄 '이상화 대상'의 부재로 인해, '대상'(외부세계)에 대한 관계 욕구ㆍ관심을 철수하고, 고통스런 경험지각들을 부인ㆍ분열시킨 존재다. 유아가 대면한 최초대상이 오랜기간 불안정하고 고통 자극을 줄 경우, 생존을 위해 그런 상태에 적응하는 '분열성' 정신구조를 형성해야 한다. 그 결과 그(녀)에겐 이후에 만나는 어떤 대상들과도 신뢰하며 편안히 소통하는 정신활동 자체가 이미 차단(방어)되어 있다.
자기애신경증자는 고통을 유발할 수 있는 모든 요소들, 특히 자신의 비참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직면시키는 인식기능과 진실된 대상 관계를 이미 옛날에 포기ㆍ마비시킨 자다. '대상'(외부세계)과 가까이 관계하지 않는 한, 어린시절 겪었던 그 불쾌한 수치, 우울, 실망ㆍ놀람ㆍ불안ㆍ고통을 다시 체험하지 않게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현실에 몸을 담그는 한, '행복'을 능동적으로 누리고픈 마음이 드는 그 순간, 포기되고 망각된 무의식의 '그것'들이 발목을 잡아당겨 곤혹스럽다.(현실을 제대로 느끼며 살고 싶은 그 때 홀연 죽고 싶어지는 마음이 치솟는 건, 분열된 '그것들'이 함께 깨어나기 때문이다!) 그것이 자기애신경증자의 비극이다. "아무 것도 기억하고 싶지 않아! 제발 날 가만히 내버려둬..."
이에 비해 (전이)신경증자는 타자의 현실을 대부분 온전히 지각하고 수용한다. 단지 특정 시기에 특정 욕동의 과도 좌절, 상처, 갈등과 연관해 억압한 요소에 대해, 자아는 늘 방어에너지를 지출해야 한다. 그리고 억압된 그것이 우연히 어떤 외부현실에 자극받아 예기치않게 '회귀'할 경우, 자아 기능이 잠정적으로 불안정하고 무기력해진다.
프로이드는 개인의 리비도가 '자기애' 상태에서 '대상애' 상태로 발달했느냐/못했느냐가 정신의 등급 내지 '질적 차이'를 구분하는 중요 기준이라고 보았기에, 정신질환을 자기애신경증 대 전이신경증으로 구분한 것이다. 이에 비해 자신의 문제에 대해 '자아의 인지기능'이 온전히 작동되느냐/아니냐에 초점을 두는 현대 자아심리학파에선 신경증을 '증상신경증' 대 '성격신경증'으로 분류한다.
'증상' 과 '성격'은 견디기 힘든 고통에 대처해야했던 인류가 운명(무의식)적으로 취해온 두 유형의 대비되는 심리적 '길'이자 정신형성물이다.
'증상신경증'은 자아에 의한 통제나 극복이 안되는 비합리적이고 비현실적인 '증상'을 생성해내고 끊임없이 유지시킨다. 그리고 그 증상에 휘둘려 현실 생활이 여러 불이익과 불편한 심리상태에 처하게 만든다. '증상'이 있음은 그의 자아와 성격구조가 갈등을 비롯한 내부문제를 '어느 부분'에서 온전히 제어하지 못한다는 무능 신호이기도 하다. 신경증 증상은 주로 히스테리, 강박증, 공포증과 불안증 등이다. 증상신경증자에게 '증상'은 자기 삶에 침투된 낯선 이물질ㆍ비정상적인 무엇으로 지각되며, 그렇기 때문에 증상에 의해 증상에 대해 끊임없이 과민하게 스트레스를 받는다. 증상신경증자는 인생의 단 얼마동안이라도 그 고약한 증상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삶을 맛보고 싶다고 소망한다.
그런데 현실의 그는 '소망'만 할 뿐, 정작 그 증상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치밀하게 모색하거나 증상의 뿌리를 철저하게 성찰하지 못한다. 기껏해야 증상 극복에 결정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 비효율적이고 주변적인 노력들을 기울이며, 증상을 떠않은 채 인생을 고통스레 살아간다. 묘하게도 그/녀는 뛰어난 지성에도 불구하고, 의식에선 증상을 벗어나길 갈망하지만, 무의식에선 내적심판자의 가혹한 처벌을 피하기 위해, 정작 고통스런 증상상태를 벗어나는데 필사적 노력을 기울이진 않는다. ("비록 골치가 아프지만 이 정도의 고통을 짊어지는게, 초자아에게 끔찍하게 비난 거세당하는 것보다 차라리 나을 수 있어...")
그에겐 무의식의 '그것'을 불편과 고통을 수반하는 '증상으로 표출'하는 것이, 무의식의 힘들에 의해 자아의 방어벽이 붕괴되어 참혹한 사태에 직면하는 걸 방지하는 (유년기 아이, 사춘기 소년이 생성해낼 수 있던) 최선책으로 자리잡고 있다. '증상'이란 갈등을 일으키는 무의식의 내용물들, 힘들, 내부기관들이 서로 '타협해서 생성해낸 결과물'이다. 그래서 한쪽(의식)에선 지겹다고 원망하면서도, 다른쪽에선 그것이 그나마 안전한 길이라고 속삭이며 뒷골을 잡아당긴다. 그래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고 비범한 힘을 지닌 대상의 도움이 절실하다는 정서와 자각이 밀려드는) '그 때'까지 오랜기간 방치된 채, 증상은 늘 그/녀와 함께 한다.
영혼에게 증상은 역설적 이중기능을 한다. 가령 증상이 있는 한 그의 심신은 늘 불편하고 고통스럽다. 바로 그 고통때문에, 신경증자는 '자유와 해방'을 갈망하며 증상을 벗어나게 해줄 것 같은 새로운 자극들에 자주 깨어있게 된다. 단지 증상의 기운 안에 함입되는 연중 어느 기간동안은, 자아기능이 위축되고 자신과 외부세계와 온전히 관계하지 못한 채 낑낑댄다.
불행한 동시에 다행스러운 것은, 증상이 증상신경증자의 '자아에게 이질적'으로 느껴진다는 점이다. 이질감 때문에 그는 자신이 증상을 지님을 못마땅해하고 고통스러워하고 수치스러워한다. 증상이 자아에 이물질로 느껴지기 때문에, 증상신경증자는 증상에서 벗어나고자 나름 고독한 자기개선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 그 결과 보통사람은 좀처럼 경험하지 않는 '무의식' 대면을 통해 보통사람이 이룩하지 못한 독특한 자기성찰, 강인한 고통대결 능력, 독특한 승화 능력과 업적을 개척하게 된다. 소위 역사에 이름을 남긴 많은 선각자, 위인, 예술가들 중엔 세인에겐 알려지지 않은 증상신경증자가 상당히 많다.
자연계에 일부러 고통을 찾아가는 생명체는 없다. 외부세계를 향해 아무리 호소해도 해소되지 않는 깊고 오랜 증상의 불편함을 벗어나기 위해, 불확실하고 위험한 새 세계를 향해 모험하며 고난을 훼처가는 것이다. 그들 중 자아가 약하고 좋은 조력자를 만나지 못한 상당수는 더 험한 비극의 수렁에 빠저 벗어나지 못한다. 이에 비해 '진실을 외면하지 않고 감당하는 자아능력'을 지니며 비범한 조력자를 만나 새로운 힘을 흡수한 소수의 영혼은 자신과 인류를 고통에서 구원해줄 새로운 지혜와 능력을 획득하게 된다.
성격신경증은 (주로 유년기에 약간은 사춘기에) 만연된 고통자극, 관계 박탈, 성욕동과 공격성 해소 좌절, 부정적 환상, 불안, 갈등...을 '증상적 분출'이 아닌 '성격구조 형성'을 통해 대처한다. '성격'이란 개체가 '삶에 적응하는 방식', 자신을 '안정시키는 기능과 구조의 총체'를 지칭한다. 현실 적응성과 안정화 기능은 생존을 위해 필요한 긍정적 기능이다. 문제는 만성적인 나쁜 환경 내지 심각한 위기상황에 적응하기 위해 형성된 특정 성격구조가, 이후의 변화된 삶의 시기와 환경에서조차 경직되게 지속되어 '부적응 기능'을 만성적으로 야기하는 경우이다.
성격의 이런 '적응적, 안정화 성향'으로 인해, 성격신경증자에겐 자아이질적으로 지각되는 뚜렷이 불편한 '증상'이 발견되지 않는다. 이들은 내부와 외부 대상관계에서 반복해서 문제를 일으키는 자신의 어떤 성격특성을, 자신의 자아에게 친숙한 것('자아동조적')으로 적응시켜 지각한다. 그 때문에 다행(?)스럽게도 증상으로 인한 스트레스, 자기 성격에 대한 불편감이 없으며, 자신을 결코 '이상한 자'로 느끼지 않는다. 그로인해 성격을 '변화'시키려는 동기를 갖지 않으며, '환경'이 그에게 부응만 해주면 인생의 상당 기간(호시절)을 행복하게 지낼 수도 있다. 사람들과 더불어 친밀한 융합관계를 한동안 경험할 수도 있다. 스스로 완벽하고 행복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 행복과 자기도취가 외면해온 해결되지 못한 '무의식의 그것'들로 인해, 좋은 관계들이 결코 안정적으로 지속되지 못하며, 외부대상들에게 자신모르는 피해와 마찰을 일으킨다는 데 있다. ("세상이 왜 이리 개차반이야, 억울한 피해자는 바로 나야 !")
자기 문제들을 자동 '분열''부인''투사'시켜 삶의 안식감을 이루어내는 바로 그 고마운 '자아동조적 적응기능'이, 역으로 그를 불행에 빠뜨리는 주범이 된다.(곤혹스런 삶의 아이러니!) (유아적 욕구취향과 방어양태, 전능화된 사고, 편집적이고 부분적인 현실 지각 등등의) 성격요인 때문에 그는 현실계에서 뜻밖의 불행한 사태에 부딪혀 당황하는 삶의 패턴을 반복하게 된다. ("난 별 문제 없어. 내겐 증상이 없어! 그런데 세상이 왜 이리 실망스러운거야.....젠장...한심한 미친놈들아...")
감당하기 힘든 고통자극들을 '방어적인 성격구조' 형성을 통해 대처한 개인들에겐, 분열-억압시킨 최초의 상처, 환상, 갈등, 불안들이 정신 깊은 곳의 한 켠에 고스란히 저장되어 있다. 아울러 그의 성격에는 '그것'들에 대한 지각을 차단하는 방어가 늘 구조적으로 작동되고 있다. 원시적 방어들이 무의식적으로 자동작동되기 때문에 이들의 자아는 무의식의 '그것'을 차단하는 자신의 성격특성들이 이상하고 이질적이고 병리적이라고 결코 자각하거나 '인정'하지 못한다. 상처와 불안, 다중 요인들에 기인한 특정 시기에 적응고착된 성격구조와 인지구조를 형성하고 있기에, 자아가 자기성격의 어떤 문제를 지각하게 되는 그 순간은 이미 기존의 적응구조에 심각한 균열이 일어난 상태다.
그런 순간 대부분의 성격신경증자들에겐 '나쁜 타자'에 의해 자신의 인격 전체가 병리적인 것으로 평가되어 버림받거나 해체당하는 듯한 환상과 불안이 밀려든다. 아울러 '나쁜 타자'에 의해 자기인격이 부정당하고 비난받고 경멸당한 데에 대한 모욕감과 분노가 일어나 필사적으로 방어, 격노, 보복한다. ("용서할 수 없어. 나를 힘들게 하는 이 천하의 나쁜 놈들아~")
자아의 온전한 부분이 '일시적으로' 정상 기능할 때 그/녀는 잠시 자신의 성격특성 이면에 자신을 불편하게 하는 뭔가가 있음을 모호하게 지각하기도 한다.(" 때로 나의 그 점이 싫어! 변했으면 좋겠는데 그게 잘 안 돼.") 그러나 거기서 끝이다. 그/녀의 자기대면 능력은 거기까지일 뿐이다. '성격'의 은혜로운 적응 작용과 안정화 기능 덕분에, 불편한 뭔가를 지각하는 순간 곧바로 '부인'되고 외부대상에게 '투사'되기 때문이다.("불편하고 나쁜 놈들이 드글거리는 더러운 세상...신뢰할 수 있는 완벽한 대상이 나타나지 않는 한, 난 결코 내 문제를 인정할 수 없어... 그런 대상은 없어!")
이런 정신구조적 요인 때문에, 자신의 문제를 결코 온전히 자각하지도 인정하지도 못하는 '성격신경증'은 탁월한 정신분석가들도 도움을 주기가 매우 힘들다. 그는 실상 타자와 온전한 관계 맺기가 '심리구조적으로' 불가능한, 그래서 자신을 온전히 볼 수 없는 '자기애신경증'자와 다름 없기 때문이다.
증상신경증과 성격신경증은 이상한 사람들만이 지닌 전적인 병리성의 기호인가? 아 니 다. 보통의 인간들에게도 증상신경증의 요소와 성격신경증의 요소가 두루 있다. 다양한 비율로 섞여 있다. '건강/병리성'을 나누는 경계는 그리 명료하지 않다. 정신분석학자는 단지 극단적으로 경직된 성격신경증 상태 대 탁월하고 유연한 자기성찰 능력 상태, 자기파괴적인 고통에 끊임없이 시달리는 극심한 증상신경증 상태 대 증상 없이 자유롭고 행복한 상태 '사이에' 수많은 다채로운 스펙트럼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런데 '인간'을 구성하는 근본요소인 '증상'과 '성격'과 연관된 앞의 사실들을 곱씹어 음미하여, 자기 삶을 변화시키는데 얼마나 주체적으로 활용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의해 '인격의 질'이 너무도 달라진다.
[어리석은 자(성격장애자)는 평생 이미 형성된 자신의 '성격구조'를 안정시킬 자극들만을 '선, 진리'로 받아들인다. 자신의 문제를 대면하게 하는 모든 자극들은, 적대적인 '악, 거짓'으로 거부한다. 그것이 자신의 심리에 가장 쉽고 편하고 '안전'한 길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지혜로운 자는 자신이 가장 자부심 느껴온 성격특성에서조차 결여되고 억압된 무엇을 발견하며, 자신에게 운명으로 주어진 문제(불편한 정서, 증상..)를 부인하지 않고 직면한다. 나아가 그것을 계기 삼아 그동안 알수 없었던 '또다른 나'와 진하게 접촉하여 새로운 삶을 창조해낼 목표와 추동력을 생성해낸다.
성격신경증(성격장애)자가 부인한 내부 문제는 무의식적으로 주변대상에게 투사되기에, 그/녀의 가족, 자손들은 그 병리성의 짐을 (자신모르게) 고스란히 떠않을 수밖에 없게 된다. 이런 운명적 얽힘들에 의해 개인의 정신은 이미 태어나는 순간부터 미지의 힘들에 의해 상당부분 속박된다. 의식의 질서와 상식과 눈에 보이는 사실에만 관심갖고 적응하고 안주해온 보통사람은 이러한 '무의식적 사실'을 알고 싶지도 않고 알 수도 없다....그로인해 선조, 부모, 가족, 집단의 무의식적 심리흔적들로 얽히고 응어리진 (한국인의) 파란만장하고 복잡한 현실에 대해 체념적 합리화 태도를 취하게 된다!
"인간은 결코 바뀌지 않아. 죽어도...감히 누가 누구의 정신을 알 수 있고 바뀌게 한단 말이야!...'대화'란 말 뿐이고... 한 번 적은 영~원한 적인거야..."]
증상신경증의 비율이 커서 히스테리, 강박증, 공포증 증상이 심한 분들은, 자신에게 맞는 정신분석가를 찾아 주체적인 정신분석 관계를 맺는 것이 좋다. 매우 좋다. 나이가 한 살이라도 적을 때 선택할수록 행운이다. 정신분석은 보통사람은 좀처럼 만나기 힘든 '무의식'('숨겨진 나')과 소통하는 고귀한 관계적 자기 회복 활동이다. 대부분의 증상신경증자는 내면으로 통하는 '그 길'을 언뜻 '보여주기'만 해도, 주체적으로 자기를 성찰하는 능력, 진실을 왜곡 없이 대면하고 감당할 수 있는 자아 능력을 지니고 있다. 단지, 무의식의 자동적 방어작용 때문에, 아무리 탁월한 지성을 지닌 자일지라도 증상의 뿌리를 혼자의 힘으론 성찰하기 힘들기에 정신분석 관계가 필요한 것이다.
성격신경증의 비율이 높은 분들은 정신분석보다 '정신분석적 심리치료'나 정신분석 교육에 입문하는 것이 유익하다. 안전한 교육환경을 통해 자신의 무의식을 '상처없이 자각'하는 과정을 꾸준히 해나가면 방어적 성격구조의 경직성이 유연해지기 때문이다. 자기대면 능력과 유연성을 회복할 수만 있다면, 그/녀는 이미 신경증의 굴레를 벗어난 선구적 주체이다.
정신분석은 인간으로 태어나 맛볼 수 있는 가장 진실된 깨달음(見, 覺) 활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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