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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김재성통기타클럽 원문보기 글쓴이: 사랑초
꼭 알아둬야 할 와인 상식 8
한 달에 한두 번 이상은 와인을 구입해 마시고 선물도 종종 하지만, 막상 와인숍에 가면 매일 마시던 와인밖에 고를 줄 모르는 당신을 위해 준비했다.
엑기스만 뽑은 와인 상식 그리고 가격 부담을 느끼는 초보자는 물론 와인 애호가들까지 맛있게 즐길 수 있는 와인 리스트.
와인은 마트가 싸다? NO
물론 마트에는 와인 코너가 따로 있어 와인을 쉽게 접할 수 있고 1만 원대의 저가 제품도 꽤 여러 종류 갖춰져 있다. 이런 점 때문에 동네 와인 전문점보다는 마트의 와인 코너를 이용하는 소비자들이 꽤 많다. 하지만 전문 지식을 갖춘 와인 소믈리에가 상주해 있는 경우는 극히 드물고 직원이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거나 가끔 시음회만 있을 뿐이다. 와인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고 즐겨 마시는 와인이 없는 와인 초보자의 경우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할지 난감할 수밖에 없다. 이럴 때는 소믈리에가 상주해 있는 와인숍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특히 SSG 푸드마켓 와인숍과 에노테카코리아 등 규모가 큰 와인숍에서는 다른 매장에는 수입되지 않는 특별한 와인을 구입할 수 있고, 가격 또한 합리적이다. 매주 혹은 매달 특별한 할인 이벤트가 열려 질 좋은 와인을 더욱 저렴하게 구입할 수도 있다.
와인은 오래된 것일수록 맛있다? NO
와인 라벨에 표기된 포도 수확 연도가 오래 될수록 좋은 와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수확 연도에 따라 선택해야 하고 피해야 하는 와인이 구분된다는 고정관념을 가진 사람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수확 연도는 그저 와인 맛의 스타일 지표로 생각하면 된다. 올해 출시된 와인 가운데 포도 수확 연도가 최근인 것들은 푸릇푸릇한 과일 향이 더욱 풍부하게 느껴진다. 따라서 와인 초보자라면 반드시 오래된 와인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 오래 묵지 않은 화이트 와인은 신선한 신맛이 가득하고, 오래 묵지 않은 레드 와인은 맑고 풍부한 향이 나기 때문이다.
와인의 알코올 도수는 와인의 맛을 말해준다? YES
새로운 와인을 맛보고 싶어도 보는 것만으로는 맛이 어떨지 감이 오지 않기 때문에 괜히 돈만 버리게 될까 봐 선뜻 손이 안 가는 경우가 많다. 이럴 땐 와인 라벨을 적극 활용한다. 라벨에는 알코올 도수가 반드시 표기되는데, 이것은 와인의 스타일을 유추하는 데 좋은 힌트가 된다. 포도의 당분은 와인 제조 과정에서 알코올로 변한다. 그러니 알코올 도수를 보면 원재료인 포도의 숙성도와 당도를 대충 짐작할 수 있다. 풍미와 산미도 이를 통해 알 수 있다. 요즘 와인의 알코올 도수는 대개 13.5도 안팎이다.
도수가 높은 와인은 진한 풀 보디 질감에 풍미가 뚜렷하다. 반대로 도수가 낮은 와인은 흔히 라이트 보디에 신맛이 강하다. 알코올 함량이 11.5도 미만이라면 달콤할 확률이 높다.
인기 있는 와인이 맛도 좋다? NO
인기 많은 와인일수록 가격 대비 가치가 낮을 수 있다.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모를 때 사람들은 신뢰할 만한 상표, 유명한 포도 품종, 혈통이 분명한 원산지 같은 친숙함에 기대게 마련인데, 이렇게 해서는 제값을 하는 와인을 찾기가 어렵다.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의해 많은 사람이 원하면 가격은 그만큼 올라간다. 오히려 잘 알려지지 않은 와인 중에서 가격 대비 맛 좋은 것들이 많다.
와인 초보자라면 구입 예산부터 세워라? YES
수많은 와인 중 어떤 와인을 골라야 할지 막막할 때는 한 병당 가격 선을 정해두면 선택 가능한 와인의 폭이 좁혀진다. 한 병에 2~3만 원 사이면 얼마든지 좋은 와인을 구입할 수 있다. 3만 5천 원 이상은 고급 와인이라 생각하면 된다. 와인숍에서는 집중력이 흐트러지기 쉬우니 가장 필요한 것을 먼저 고른다. 함께 먹을 음식을 점원에게 말하면 그와 어울리는 와인을 추천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와인은 음식과 함께 먹을 때 더욱 빛을 발한다.
와인을 마실 때는 반드시 그에 어울리는 잔을 선택해야 한다? YES
와인글라스는 와인의 맛을 두 배 더 맛있게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두께가 얇은 것, 와인 향을 머금을 수 있도록 충분히 큰 것, 주둥이 부분이 안쪽으로 휘어 향이 날아가지 않게 모아둘 수 있는 것, 와인 색이 잘 보이도록 투명한 것, 각지지 않고 별도의 장식이 없는 것이 좋다.
와인글라스는 크게 레드 와인용, 화이트 와인용, 스파클링 와인용으로 나뉘고, 그 다음 범주로 주요 원산지 또는 포도 품종별로 최적화된 것이 따로 있다. 어렵고 복잡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종류별로 하나하나 구비할 필요가 없다. 간단하게 구분해 레드 와인에는 큰 글라스를, 화이트 와인에는 작은 글라스를 이용하면 된다.
와인병 바닥이 깊게 파일수록 좋은 와인이다? NO
와인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와인병 바닥의 움푹 들어간 부분인 ‘펀트’가 깊게 파여 있을수록 좋은 와인이라는 말을 종종 들어봤을 것이다. 펀트에 대해서는 와인을 잔에 따를 때 그 안에 엄지손가락을 넣고 따르라고 만든 것이다, 와인병이 중심을 좀 더 잘 잡고 서있게 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등의 설명이 있으나, 실제로는 와인이 숙성되면서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침전물이 좀 더 효과적으로 모이게 하기 위해 만든 것. 고급 와인일수록 타닌과 색소가 풍부해 장기 숙성에 적합하고 숙성 중에는 침전물이 많이 발생할 수 있는데, 바로 이때 펀트가 매우 효과적으로 기능한다. 병 속에서 긴 시간 숙성시킬 필요 없이 즉시 마셔야 하는 저가 와인 중에는 펀트가 없는 것들도 있다. 펀트가 있고, 펀트의 깊이가 깊을수록 고급 와인이라는 선입견은 바로 이 때문에 생긴 것이다. 그러나 펀트의 깊이와 와인의 품질은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다.
와인은 와인글라스의 최대 직경 지점까지만 채운다? YES
와인은 와인글라스를 위에서 봤을 때 원의 최대 직경까지만 따른다. 나머지는 향기를 채우는 공간이며 그 이상 따르면 스월링(swirling)을 할 때 와인이 넘칠 수 있다. 스월링은 글라스의 스템 부분, 즉 줄기 부분을 잡고 잔을 돌리는 것으로 와인과 산소의 접촉을 짧은 순간 극대화해 와인 향이 잘 발현되게 한다. 스월링을 하면 알코올의 기화가 촉진되어 향이 좀 더 쉽게 올라온다. 오크나 견과류 등의 향은 무거워서 밑에 깔려 있다가 올라오고 과일이나 꽃 향은 가볍기 때문에 즉각적으로 향을 느낄 수 있다.
와인 전문가들이 추천한
가격 부담 없이 선물하기 좋은 3~5만 원대 와인
“가격이 저렴한 편에 속하는 3~5만 원대 와인은 한 번에 여러 사람에게 선물하기 좋아요. 하지만 가격이 저렴하다고 무턱대고 구매했다가는 낭패를 볼 수도 있어요. 예를 들어 정상가가 5만 원인 어떤 상품은 행사를 해도 4만 5천 원까지밖에 할인이 안 되가 하면, 어떤 상품은 정가가 5만 원인데도 매번 행사를 해서 1만 5천 원에서 2만 원 정도에 구매할 수 있기도 해요. 이때는 할인 폭이 크지 않은 제품을 구입하는 것이 더 좋답니다. 세일 제품을 구입하고 싶다면 매번 세일하는 상품보다는 할인 폭이 적더라도 할인을 잘 하지 않는 와인들을 더욱 눈여겨보세요.
초보자의 경우는 소믈리에가 있는 와인숍에 가는 것이 와인 고르기가 훨씬 수월하겠죠. 와인 초보자이면서 평소 술을 즐기지 않는 사람에게 선물할 와인을 고를 때는 이탈리아산 달콤한 스파클링 와인을 선택해보세요. 향긋한 향과 함께 탄산이 입안에서 부드럽게 부서져 술을 즐기지 않는 사람도 맛있게 마실 수 있어요. 레드 와인 중에는 드라이하면서도 너무 떫지 않고 과실 향이 풍부하게 나는 것이 좋아요. 누구나 맛있게 즐길 수 있는 와인이죠. ‘스칼리올라 프렘 바르베라 다스티’가 그런 와인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토마토 스파게티 또는 스테이크와 잘 어울려 초보자도 어렵지 않게 금세 와인을 즐길 수 있어요.”
김나영 (SSG 와인 담당·신세계 소믈리에)
1 보데가 이 비네도스 발데리즈 로블 2010 풀 보디로 타닌감이 부드럽다. 오픈 시 반드시 디캔딩이 필요할 정도로 향이 천천히 열리며 스파이시함과 야생 과일의 향, 오크 향이 복합적으로 느껴진다. 가격 대비 품질이 훌륭한 와인. 750㎖, 5만원.
2 콜롬비아 크레스트 그랜드 이스테이트 멀롯 국내에 가장 널리 알려진 워싱턴주 와인. 콜롬비아 크레스트의 대표 제품이다. 오크, 검은 과일, 코코아 파우더의 풍미가 밸런스 있게 어우러져 매혹적인 끝 맛을 연출한다. 중간 정도의 무게감과 촉촉한 타닌을 지니고 있어 석쇠에 구운 치킨, 미트볼, 스파게티 등 다양한 음식과 궁합이 잘 맞다. 750㎖, 3만5천원.
3 토레스 이베리코 스페인 와인으로 진한 체리 색을 띠고 있으며 나무에서 나는 토스 향, 블루베리 향, 깊은 숲에서 나는 과일 향이 조화를 이룬다. 애호가들에게는 늘 마셔도 좋은 와인, 초보자들에게는 처음 마셔도 맛있는 와인으로 통한다. 가격 대비 품질이 뛰어난 와인. 750㎖, 3만원.
4 우마니 론끼 요리오 와인 만화 《신의 물방울》에서 가격 대비 높은 품질의 와인으로 극찬한 이태리 와인. 진한 과일 향, 적절한 산도, 부드러운 타닌의 균형감이 뛰어나다. 이태리 음식은 물론 한식, 중식과도 훌륭한 마리아주를 보여 와인 초보자도 부담이 마실 수 있다. 750㎖, 4만6천원.
5 타파스 뗌쁘라니요 타닌이 부드러워 와인 초보자들도 좋아할 만한 레드 와인이다. 카시스 향신료 향이 돋보이며 그 뒤로는 오크의 은은한 향을 느낄 수 있다. 스페인 음식 타파스와 가장 잘 어울리며 매콤한 지중해 음식과도 궁합이 잘 맞다. 750㎖, 3만원대.
6 미켈레 끼아를로 바르베라 다스띠 레 오르메 부드러운 미디엄 보디로 편하게 마실 수 있는 이탈리아 레드 와인. 와인 초보자부터 애호가까지 누구나 편하게 즐길 수 있다. 양념이 강하지 않은 육류와 함께 마시면 최고의 마리아주를 자랑한다. 750㎖, 3만8천원.
7 이기갈 꼬뜨 뒤 론 블랑 프랑스 론 와인은 가격 대비 뛰어난 맛과 향 덕분에 가장 핫한 와인 중 하나. 그중에서도 ‘이기갈 꼬뜨 뒤 론 블랑’은 와인 애호가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 75㎖, 3만9천원.
8 롱그독 블랑 2010 향긋한 샤도네이와 경쾌한 콜롬바 품종을 블렌딩해 만든 와인. 흰색 과일의 상큼함과 고급스러운 향기를 담고 있다. 산도감이 뛰어나 입안을 상쾌하게 한다. 친구들과의 가벼운 모임에서 즐기기 좋고 파티용 와인으로도 손색이 없다. 750㎖, 3만원.
9 킴 크로포드 말보로 소비뇽 블랑 뉴질랜드 소비뇽 블랑의 대표 주자로 국내에서도 인기가 높은 화이트 와인이다. 구스베리와 자른 풀의 향기가 은은하게 풍기며 잘 익은 과일에서 느껴지는 적당한 산도가 돋보인다. 식전주로 좋으며 아스파라거스, 샐러드 등과 잘 어울린다. 750㎖, 3만9천원.
10 슐로스 폴라즈 1573 QbA 슐로스 폴라즈는 현존하는 와이너리 중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와이너리다. 특히 ‘슐로스 폴라즈 1573 QbA’는 살구와 복숭아 계열의 과일 향과 미네랄 캐릭터를 지닌 신선하고 드라이한 와인이다. 치킨 또는 샐러드와 환상의 궁합을 자랑한다. 750㎖, 7만원.
11 몬테스 슈럽 로제 손으로 수확한 100% 시라를 부드럽게 파쇄해 약 8시간의 침용을 거쳐 만들어지는데, 이 과정에서 뚜렷한 로제의 색과 풍미를 얻는다. 시라의 특징인 양념류가 약간 가미된 붉은 과실의 풍미가 기분 좋게 뿜어져 나오며 딸기, 장미, 오렌지 껍질 등의 향을 선사한다. 연어, 참치, 파스타, 피자와 잘 어울린다. 750㎖, 3만7천원.
12 로즈마운트 씨뷰 브뤼 가격 대비 뛰어난 맛을 자랑하는 호주산 스파클링 와인. 전통적인 스파클링 와인 제조 공정에서 얻어지는 이스트 향이 풍부하고 신선한 과일 향과 신맛이 적절하게 어우러지 며 마무리 맛은 드라이하면서 깔끔하다. 750㎖, 3만6천원.
13 바롱드 세이악 로제 스파클링 그리나슈 100%의 수준 높은 프랑스산 로제 스파클링 와인으로 아름다운 핑크빛 컬러에 산뜻한 맛이 일품이다. 생동감 있는 과일 맛의 브뤼뜨 스파클링으로 특히 프로방스 지역에서 인기다. 8~10℃로 즐기는 것이 가장 좋다. 750㎖, 5만2천원.
14 울프 블라스 이글 호크 스파클링 옅은 볏짚 색이 나며 기포가 끊임없이 올라오는 것이 특징인 호주산 와인이다. 시원상큼한 감귤의 맛과 더불어 셔벗의 시원한 향이 후각을 자극한다. 크리미한 향과 더불어 사과와 멜롯의 맛이 부드럽게 이어지며 프레시하고 상큼한 맛이 일품. 식전주로 가볍게 즐기거나 디저트와 함께 마시면 좋다. 750㎖, 3만원대.
15 버블넘버원 핑크 라벨 하프 보틀 이름에 ‘세계 최초의 스파클링 와인’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1531년 프랑스 리무 지방의 베네딕트 수도사들에 의해 생산되기 시작했다. 상큼한 과일 향이 나면서 부드럽고 산미가 뛰어나다. 핑크색 라벨로 디자인되어 선물하기 좋은 스파클링 와인 중 하나. 375㎖, 3만2천원.
프랑스 최고의 포도주가게서 마신 최고의 포도주
▲ 프랑스 최대의 포도주가게 라비니아의 지하 와인 보관소.
파리로 향하는 비행기는 반드시 프랑스 비행기를 이용한다. 기내 서비스용 포도주 때문이다. 포도주의 본고장이기 때문이겠지만, 아직 프랑스 항공기 내의 포도주에 대해 실망해 본 적이 없다. 서비스되는 포도주를 보다 완벽하게 즐기기 위해, 평소 힘들게 그러모은 마일리지를 몽땅 프랑스 항공사에 바친다. 업그레이드된 비즈니스석이다. 유치하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필자의 행복 리스트 상위에 올라선 것이 ‘파리행 비즈니스석’이다. 프랑스 항공사가 엄선한 포도주를 최고의 치즈와 함께 마음껏 마실 수 있다. ‘공짜 심리’에 젖었다고 말해도 좋다.
비행기를 타는 순간부터 내리는 마지막까지 기내에 마련된 모든 포도주를 섭렵한다. 알코올 기운이 넘치지만, 승무원으로부터 포도주에 관한 얘기를 듣고 전부 암기한다. 프랑스인은 누구 하나 예외 없이 포도주 소믈리에인 듯하다. 포도주 얘기만 나오면, “그건 말이죠!”라는 식의 입체적 해설과 해석이 뒤따른다.
포도주는 적도 친구로 만든다
이번에도 비행기에 앉자마자 곧바로 모에(Moet) 샴페인을 한잔 주문하자, 옆 좌석의 두 사람도 똑같은 걸로 요청한다. 기내 포도주는 보통 샴페인, 백포도주, 적포도주를 각각 두 종류씩 준비한다. 선택권을 주기 위해서이다. 얼떨결에 두 사람과 ‘건강과 안전비행’을 기원하는 건배를 하게 됐다. 40대 초와 60대 초의 프랑스 남성이다. 부자(父子)지간이냐고 묻자, 웃으면서 ‘적대관계’라고 답한다. 왜 ‘적’이냐고 묻자, 포도주 때문이라고 한다. 40대 남성은 보르도 지방, 60대 상사는 부르고뉴 출신이라는 것이다. 보르도와 부르고뉴는 프랑스, 아니 세계 포도주를 대표하는 2대 명산지이다.
흥미로운 것은 40대 남성은 부르고뉴산 백포도주를 좋아하고, 60대 상사는 보르도산 적포도주를 더 즐긴다는 점이다. “서로의 약점을 노리는 적이지만, 흠잡을 곳이 없기 때문에 존경하는 사이”라는 시적인 농담이 덧붙여졌다. 포도주에 관한 얘기를 본격적으로 물어봤다.
“구체적으로 어느 지역 포도주가 좋은가, 특히 몇 년도 제품이 좋은가, 가격은 얼마 정도인가, 20달러 선에서 적포도주와 백포도주 가운데 가장 좋은 제품은 어떤 것이 있는가?”
아주 유치하고 사소한 질문이지만, 두 사람은 머리를 맞댄 채 나름대로의 조언을 던져줬다.
40대 남성에게 왜 부르고뉴산 백포도주를 좋아하는가 물어봤다.
“미국식 초고속 레이스가 아니다. 500시간 쉬지 않고 달리는, 파리~다카르 간의 자동차 레이스를 생각하면 된다. 시속 300㎞로 달리는 비행기 엔진 탑재 레이스가 아니다. 시속 100㎞로 2주일 내내 사고 없이 계속해서 달릴 수 있는가라는 것이 관건이다. 경주 도로는 아스팔트가 아니다. 진흙투성이, 표지판도 없는 사막에서 승부를 낸다. 속도전이 아니라 지구전이다. 강한 것은 오래 못 간다. 보르도와 부르고뉴는 섬세하다. 칠레나 호주에서 나오는 강한 포도주는 미국 카우보이들에게는 맞겠지만, 프랑스인은 ‘알코올 음료’ 수준으로 받아들일 뿐이다.”
40대 남성은 자신의 취미가 자동차 경주라면서, 자신의 애마를 아이폰 사진으로 보여줬다. 회색빛 ‘르노(Renault) 16’ 모델로 1966년산이라고 한다. 1970년대 한국의 포니 모델을 연상시키는 작은 자동차이다. 단종(斷種)이 됐지만, 엔진 성능도 좋고 비포장도로를 1주일 내내 달려도 문제가 없다고 자랑한다. 오래된 자동차에 대한 프랑스인의 감각은 지하실에 보관된 포도주를 대하는 자세와 비슷하다는 느낌이 든다.
프랑스 최대 포도주숍, 라비니아
“프랑스 포도주의 현황과 흐름을 알기 위한 장소 중 하나가 파리 한가운데 있다. 그곳에 가면 좋은 포도주도 저렴하게 즐길 수 있다.”
파리 오페라좌 바로 옆에 있는 라비니아(Lavinia)를 찾은 것은 두 프랑스 남성의 조언에 따른 것이다. 파리에서, 아니 프랑스에서 가장 큰 포도주숍으로 알려진 곳이다. 스페인 마드리드에도 지점이 있다. 프랑스와 전 세계 유명 포도주를 다 취급한다. 포도주를 사러 온 외국인에게 상담도 하고 대규모 수송도 도와준다. 들어가는 입구에서 보면 작은 단층 가게에 불과하지만, 안으로 들어가자 지하 1층 지상 2층으로 된 커다른 공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들어가는 입구에는 샴페인 볼린저(Bollinger) 선전 광고가 크게 걸려 있다.
잘 알려져 있듯이 샴페인(Champaign)은 프랑스의 지명이다. 아무나 함부로 못 쓴다.
미국은 스파클링(Sparkling) 포도주, 이탈리아는 프로세코(Prosecco)나 스푸만테(Spumante), 스페인은 카바(Cava), 오스트리아는 세크트(Sekt)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연말연시는 샴페인의 계절이다. 볼린저는 한 번도 마셔본 적이 없지만, 병당 최하 50유로에서 최고 1200유로에 달한다고 한다. 행운을 주는 포도주로 알려진 샴페인은 가격에 비례해서 행운의 정도가 높아지는 듯하다.
1층에서 판매되는 포도주는 비싸야 20유로 선이다. 외국산이거나 2012년 생산된 신종 포도주가 대부분이다. 생산연도와 포도주의 가격은 함수관계인 것은 아니다. 오래됐다고 반드시 좋고 비싼 것은 아니다. 날씨가 포도 재배에 적당했는지 여부가 가장 중요하다. 비가 많고 날씨가 더우면 포도주의 질도 떨어진다. 포도주에 관심이 있다고 자부한다면, 지방별 기후에도 민감해야만 한다. 예컨대 ‘1976년 보르도 지방의 날씨’에 관한 데이터가 머릿속에 저장돼야만 한다.
지하에서는 고급 포도주를 저장하고 전시, 판매한다. 아래로 내려가자 어두운 불빛 속에 넓은 공간이 나타났다. 프랑스 전역을 15개로 나눠 지역 내 최고 포도주를 진열하고 있다. 보르도 프리뫼르(Primeurs)라는 타이틀을 단, 전시대가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역시 포도주는 보르도”라고 말한 북한 독재자 김정일의 남다른 애정이 서린 곳이다. 프랑스 서부 보르도는 12세기부터 300여년간 영국 지배하에 있었다. 경영에 능한 영국이 국제화시킨 포도주가 보르도다. 17세기 들어, 해가 지지 않는 영국의 식민지권에 보르도 포도주가 팔려나간다. 영국의 도움으로 보르도산은 전 세계에 가장 먼저 알려진 프랑스 포도주가 된다. 포르투갈의 명물인 식후 포도주 포르토(Porto)도 마찬가지이다. 영국의 지배하에 있던 포르투갈 동부의 포르토산 포도주가 영국인의 도움으로 세계에 알려진다. 영국은 과거나 지금이나 제대로 내세울 음식이 거의 없는 음식 후진국이다. 남의 나라에 쳐들어간 뒤, 현지 음식을 개발해 장사를 벌이는 것이 영국인이다.
▲ 라비니아에 진열된 로마네 콩티.
보르도 포도주 연 7억병 생산
보르도 포도주는 프랑스에서도 생산량이 가장 많다. 1년에 7억병 정도 생산한다고 한다. 큰 생산지인 이른바 샤토(Chateaux)와 중소 규모를 합칠 경우 무려 8500군데의 양조장을 갖고 있다. 90% 정도가 적포도주이다. 6500개의 양조장이 보르도 포도주협회에 가입해 심사를 받는다. 지역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프리미어 그랑크뤼(Premier Grand Crus)가 최고급품이며, 다음이 프리미어 크뤼(Premier Crus)이다.
직원에게 보르도 포도주 중에 가장 고급이 무엇이냐고 묻자, 구석 유리매장으로 안내해 줬다. 말로만 듣는 샤토 드퓌(Chateaux de Puy)가 눈에 들어왔다. 1917년산으로, 가격은 1만1390유로이다. 보르도 포도주의 양대산맥 중 하나인 생테밀리옹(St. Emilion) 동쪽에서 재배된 명문 포도주다. 17세기부터 만들어진 메를로(Merlot) 품종의 섬세한 포도주로 알려져 있다. 포도주 공부에 충실한 사람이라면 보르도에서 가장 먼저 포도밭 유기재배에 들어간 곳이 샤토 드퓌라고 알고 있을 것이다. 바로 옆의 1932년산이 3000유로인 데 비해 가격이 월등히 높기에 이유를 물어봤다.
“러시아혁명이 발발한 해니까? 1917년산 포도주는 러시아 사람에게 최고 인기다. 어떤 포도주라도 1917년산은 월등히 비싸다.”
조만간 1949년산 포도주도 비싸지지 않을까 물어봤다. 공산 중국이 탄생한 해이다.
“이미 4~5년 전부터 1949년산이 고가행진을 시작한 곳이 실제 있다. 1917년산 정도는 아니지만 계속해서 값이 올라갈 듯하다.”
공산당과 최고급 포도주란 조합은 상극(相剋)인 동시에, 서로를 필요로 하는 관계가 아닐까 싶다. 포도주는 피(血)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한 병에 3000만원, 로마네 콩티
보르도 전시장 맞은편에는 아메리카산 포도주가 진열돼 있다. 자세히 보니까 미국에 오는 동양인들이 선물로 사가는 유명한 포도주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오퍼스 원(Opus One)이다. 캘리포니아 나파밸리를 주름잡는 로버트 몬다비 가족이 만든 포도주다. 2007년산이 340유로다. 한 병에 50만원인 셈이다. 프랑스 포도주에 비하면 저렴하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미국 포도주가 50만원을 넘어선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포도주 가격은 맛보다 전통과 역사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250년 역사의 미국은 유럽 포도주에 도저히 맞설 수가 없다. 그러나 가격에 얽힌 내막을 알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오퍼스 원의 원액은 프랑스를 대표하는 포도주 생산지인 로스 차일드(Rothschild) 제품이다. 상표만 미국산일 뿐 내용물은 프랑스산이다. 아무리 캘리포니아 포도주가 세계로 뻗어나간다고 하지만, 미국 최고급 포도주는 프랑스의 도움하에 완성된 것이다.
지하 포도주 매장에는 유리문이 설치된 출입 제한 구역도 있다. 온도와 습도 조절이 특별히 이뤄지는 ‘왕족 포도주’들만이 진열된 곳이다. 안내를 받아 안으로 들어갔다. 구석에 있는 부르고뉴산 진열대로 갔다. 세계 포도주의 황제 로마네 콩티(Romanee Conti)의 ‘거룩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2002년 제품이 2만2000유로에 달한다. 바로 옆의 2008년산은 2만유로이다. 포도주 한 병에 3000만원이 넘는다는 의미이다.
로마네 콩티는 프랑스 부르고뉴 지방의 본 로마네(Vosne Romanee) 촌에서 생산되는 프랑스 최고의 포도주이다. 전 세계 포도주의 최정상이란 말이다. 본 로마네는 인구 417명(2009년 기준)에 불과한 초소형 마을이다. 1232년 처음으로 포도를 재배한 이래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부르고뉴 포도를 대표하는 피노누아(Pinot Noir) 품종을 주성분으로 하면서 샤도네이(Chardonnay)를 섞어 만든다. 포도주 경작지는 1.8헥타르에 불과하다. 평수로 따지면 5000평 조금 넘는 텃밭 수준의 재배장이다. 진흙 성분을 가진 특별한 토지가 세계 최고의 맛을 만들어내는 비결로 알려져 있다. 1년에 평균 5000병 정도만 생산된다. 아무리 날씨가 엉망인 해라도 병당 최소한 4000달러 선이며, 최적의 해인 경우는 가격이 1만2000달러에서 출발한다. 로마네 콩티는 사고 싶다고 살 수 있는 게 아니다. 800여년간 계속된 손님 리스트에 따라 입도선매식으로 팔릴 뿐이다. 시중에 떠도는 포도주는 일단 구입한 사람이 시장에 되팔면서 나오는 것들이다.
포도주 병 색깔에도 유행이 있다
로마네 콩티가 포도주의 황제가 된 이유는 여러 가지로 설명될 수 있다. 포도주를 둘러싼 부르봉 왕조의 역사와, 가장 좋은 포도주를 로마 교황에게 바치는 전통이 천문학적 가격을 만들어낸 가장 큰 이유다. 매년 생산되는 포도주에 당대 최고 실력자들의 에피소드가 들어가면서 수천만원대의 가격으로 치솟았다. 교황이 마시는 포도주를 마신다는 기분을 내는 대신, 2만유로를 지불하는 셈이다. 인간은 영웅과 스타의 화려한 스토리에 쉽게 넘어간다. 인간심리학에 기초한 비즈니스의 징표가 포도주일지도 모르겠다.
로마네 콩티를 뒤로하고 유리문 밖으로 나가자 대학생 차림의 남녀 10여명이 몰려왔다. 포도주병과 종이로 된 보호용 박스를 유심히 살피면서 열심히 스케치도 한다. 필자가 농담으로 “18세 음주연령은 넘어섰는가?” 물어봤다. 코에 피어싱을 한 여성이 다가와 포도주를 마시러 온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포도주 주변 장식물의 디자인을 연구하러 왔다. 병에 붙은 레이블과 박스의 디자인을 비교하기 위해 왔다.”
파리 디자인 전문학교에서 공부하는 2학년 학생이라고 했다. 포도주숍 라비니아와 협조체제를 구축해 디자인 실습이 이뤄진다고 한다. 가장 좋은 포도주 박스로 어떤 것이 있는지 물어봤다. 샴페인 코너에 있는 페리에주에(Perrier Jouet)의 병 장식과 박스가 가장 잘 만들어진 것이란 답이 돌아왔다. 이유를 물어봤다.
“원래 핑크를 주로 해왔지만, 최근에는 그린(Green)을 주제로 한 병과 박스도 만들어 자사(自社) 샴페인의 독특한 이미지를 구축해 가고 있다.”
페리에주에는 로즈 샴페인에 강한 곳이다. 핑크는 로즈의 이미지라는 점도 있지만, 샴페인 구입자의 90%가 남성이란 사실과도 깊은 연관이 있다고 한다. 로즈는 여성용 샴페인이다. 보통 여성이 스스로 구입하기보다 남성이 여성에게 선물한다. 핑크는 남성이 애정을 표현할 때 가장 선호하는 색상이라고 한다. 그린은 유기농 재배한 포도라는 점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나온 발상이라는 것이다. 언뜻 보면, 일본 청주병을 떠올리게 하는 이미지이다. 전통적으로 포도주병은 그린 색상을 멀리해 왔다고 한다. 페리에주에가 터부를 깬 것이다. 그린 열풍은 포도주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
라비니아에는 적포도주와 백포도주로 나눠진 포도주 시음대가 지하와 1층 두 군데에 마련돼 있다. 선반에 장식된 수십 종류의 포도주를 10㏄ 정도 맛보는 시음대이다. 포도주 산지 등 관련 정보가 안내판에 적혀 있다. 가격은 한 잔에 1유로에서 30유로까지 다양하다. 워낙 적은 양이기는 하지만, 여러 종류의 포도주를 동시에 비교해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을 듯하다. 어떤 것부터 테스트하는 것이 좋을지 직원에게 물어봤다.
“큰 차이 없을 테니까, 가장 싼 것부터 마시는 게 좋을 듯하다.”
적포도주부터 시작했다. 메를로가 주성분인 2.8유로짜리 2009년도 레바논산 마르시아스(Marsyas)부터 입에 댔다. 레바논의 베카계곡은 포도주 산지로 유명하다. 포도주 테이스팅의 가장 중요한 요건은 마시지 않고 혀 끝으로 느낀 뒤, 곧장 내뱉는 것이다. 머릿속으로 그같은 생각을 하지만, 행동으로 옮긴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냥 곧바로 목으로 넘어간다. 탄닌향이 강하다.
파리 남쪽 프랑스 중부에 있는 로와르(Loire)계곡에서 만들어진, 뷔송 르나르(Buisson Renard)를 2호로 선택했다. 한 잔에 4.5유로이다. 카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의 사촌 격인 카베르네 프랑(Cabernet Franc)이 주성분이다. 로와르 지방은 뮈스카데(Muscadet) 같은 식후 포도주 생산지로 유명하다. 단맛이 강하게 느껴지는 포도주다.
로와르계곡에서 부르고뉴까지
마지막으로 큰맘 먹고 2006년 부르고뉴산 클로 드 타르(Clos de Tart)로 넘어갔다. 한 잔에 무려 20유로이다. 한 병에 약 250유로라고 한다. 언제 경험할지 모르는 포도주이기에 무리를 해서라도 맛을 봤다. 로마네 콩티 산지인 부르고뉴 지방의 명산지 코트 드뉘(Cote de Nuits)에서 생산된 피노누아 품종을 주로 했다. 깊고 섬세하며 아몬드와 버터향이 섞여 있는 은은한 맛이다. 수험 준비를 하며 밤새 공부를 하다가, 새벽에 나가 맑은 공기를 마실 때의 기분이라고나 할까? 혀끝을 통해 오감(五感)에 낀 녹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느낌이다.
“300유로 포도주 맛이 이 정도라면, 2만유로 포도주는 과연 어떤 맛일까?”
나올 때 가까운 친구 생일축하용으로 포도주 한 병을 샀다. 보르도 포도주 중 가장 비싼 ‘샤토 드퓌’이다. 1917년산 1만1390유로 포도주가 아니라, 1971년산 39유로짜리 포도주이다. 1971년은 보르도 최악의 해로 기록된다고 한다. 100유로 이하 포도주가 없는 샤토 드퓌지만, 1971년은 워낙 망친 해이기 때문에 39유로에 나왔다고 한다. 버리는 포도주란 의미이다. 아무리 맛이 엉망인 포도주라도, 샤토 드퓌가 가진 노하우는 포도주 속에 스며 있을 것이라 믿고 싶다. 친구 생일이 지나가버려 아직 보관하고 있지만, 주변에서 71세 생일을 맞는 어른이 있으면 전해줄 생각이다. 포도주는 맛으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믿는 사람에게는 값진 선물이 될 듯하다.
/ 주간조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