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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일장 유기섭
오일장이 서는 날은 마음이 설레인다. 이 날은 어김없이 학교가 파하고 시장터로 향했다. 초등학교 시절, 그렇다고 누구와 약속이 된 것은 아니었다. 재빨리 향하는 곳은 고모댁의 쌀 가게 앞, 그 곳에 가면 어머니를 만날 수 있고 어떤 날은 이웃 마을에 사는 작은 고모와 이모도 이곳에서 볼 수가 있었다. 오랫동안 싸전을 하며 쌓은 후한 정으로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이다. 여기에서 궁금한 친정 마을 소식을 접할 수 있고 시집살이의 애환이 녹아나 까르르 웃기도 하고 때론 훌쩍거리며 눈물을 닦기도 하는 곳이다. 오고 가는 많은 사람들 틈에서 키가 작은 어머니를 발견하고 한걸음에 뛰어가서 매달린다. 언제나 반겨주는 포근한 품, 배가 고프지 않느냐며 엿가락을 입에 물려준다. 겉으로는 괜찮다고 하면서도 나의 시선은 어느덧 가게 뒤쪽의 허름한 국말이 밥집으로 향한다. 그 집은 언제나 사람들로 붐볐다. 검은 뚝배기에 우거지 장국과 백반을 섞은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국밥이 시장기를 더했다. 어머니는 고모와 몇 마디 나눈 후, 곧바로 내 손을 잡고는 발빠르게 다른 곳을 향해 간다. 오늘은 집에서 기르던 닭이 새 주인에게 팔려 가는 날인 모양이다. 아침 일찍부터 자리를 하고 있지만 흥정이 되지 않는 것 같다. 나는 속으로 팔리지 말고 다시 집으로 데려 갔으면 하고 빌어본다. 정들여 키우던 닭이나 가축이 다른 곳으로 팔려 나갈 때면 마음이 아프다. 그 때는 닭과 계란이 현금을 만질 수 있는 몇 안되는 환금성 거래 수단의 하나였다. 닭을 판 돈으로 자식들의 옷과 양말 등을 한꾸러미 장만하여 고개를 넘어오면서 어머니는 흐뭇해 하셨다. 정작 자신을 위해서는 단 한푼도 쓰지 않으면서 말이다. 어머니와 재를 넘으며 오늘 시장에서 있었던 여러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허기를 잊곤 했다. 그 때의 닭은 집안에서 특별 대우를 받았다. 계란을 시장에 내다 팔면 무엇이든 살 수 있는 환금 수단 외에, 귀한 손님이 오면 최고의 대접을 베풀 수 있는 귀한 요리감의 하나였기 때문이다. 계란을 쪄서 손님 상에 올려놓는 것이 최고의 예로 여겨지던 그 시절, 집안 식구가 그 것을 먹는다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 것으로 알고 어린 시절을 보냈다.
시장에 가면 늘 생기가 넘쳤다. 물건 값을 조금이라도 깎으려는 측과 활기찬 흥정이 오가고 드디어는 주인이 못 이기는 척하며 손님의 손을 들어준다. 모두가 마음을 열고 그간 쌓였던 시름을 씻어 내기라도 하듯 한바탕 웃음의 잔치를 벌인다. 그러나 그 곳에는 이런 정겨운 풍경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직접 산골에서 캐온 나물을 파는 한 아주머니의 사연은 눈물겹다. 동란으로 남편을 잃고 혼자 유복자를 키우는 고단한 삶이지만, 이 아이를 잘 키워 훌륭한 재목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무슨 일이든지 마다하지 않는다는 말에 나는 쥐었던 어머니의 손을 다시 꼭 잡곤 했다. 짠 소금기가 나는 생선 가게에서는 젊은 청년이 방금 바다에서 잡아 올린 싱싱한 고등어라며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갈치와 싱싱한 오징어를 헐값에 넘기겠다고 목청을 높이며 아낙들의 치맛자락을 잡는다. 그 아저씨의 얼굴에 핀 시린 웃음꽃을, 어린 시절에는 꽤나 수지가 맞는가보다고 생각했다. 쇠갈고리를 삶의 기둥인양 움켜쥐고는 연신 생선들을 익숙한 솜씨로 뒤척이며 물을 뿌려 신선도를 유지하느라 진땀을 뺀다. 골목길을 돌아서 우시장에 다다르면 어느 곳보다 소란스럽다. 막 흥정이 끝난 듯한 송아지 한 마리가 어미 소와 떨어지지 않으려고 앞발을 굳게 버티며 ‘음매에’ 소리를 연발한다. 이별이 아쉬운 것은 동물의 세계에서도 인간의 세계와 다르지 않다고 귀에 쟁쟁히 울려온다.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이 곳에 오면 사람들의 삶이 여러 가지 색깔임을 느끼게 한다. 어머니의 뱃속에서 나올 때는 같은 색이지만 자라나면서 여러 가지 색으로 변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햇빛의 양과 토양의 조건에 따라 같은 종류의 나무라도 모양과 색깔이 다르게 성장하듯이, 각기 다른 모습으로 모여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다. 때론 시들 수 밖에 없는 나무가 아린 발바닥으로 딛고 일어서 청빛으로 자신의 영역을 빛내고, 삐뚤어 나가던 나무가 작은 버팀목으로 인하여 올곧게 자라 훈기를 풍기는 옹골찬 삶의 현장이다. 한편 그 곳에는 슬픈 멍울이 고드름처럼 자라기도 한다. 오래 전 우리 마을에 살다가 이 곳 시장 모퉁이에 이사온 내 또래의 꼬마 아이가 생각난다. 그 아이의 동생은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우리 집 논 위의 작은 못에서 멱을 감다 익사하였다. 그 일 이후 그 집은 정적으로 소슬하고 얼마 가지 않아 온 가족이 마을을 떠났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들이 머무른 곳은 바로 국밥집 옆 판자집이었다. 어둠의 그림자는 그 집을 좀체로 벗어나지 않고 힘들게 하였다. 나는 오일 장날이면 또래 아이가 보고 싶어 그 집 앞을 서성이곤 하였지만 어느 이발소에서 잔심부름을 하고 있다는 말만 들을 수 있었다. 좀더 커서 고향을 떠나 유학 중, 방학을 맞아 집에 오면 그 때의 일들이 생각나서 자주 장터를 찾곤 했다. 세월이 흘러도 가게를 지키는 사람은 여전하고, 구수한 흥정소리가 귓가에 메아리친다. 기분이 울적하거나 기운이 떨어지는 날이면 서슴없이 찾아가 머리에 생기를 불어넣던 그 곳, 제대로 갖추어진 가게는 아니지만 임시 천막이거나 길가 바닥에서도 풍겨 나오던 훈훈한 시골 아낙의 미소와 여유로움이 그립다.
어린 시절, 값이 싸면서도 질 좋은 물건을 찾으려 이 골목 저 골목 헤집던 어머니의 잰 발걸음이 희망의 불빛으로 다가온다. 풍족하지는 않더라도 부러움 없이 유년시절을 보낼 수 있었던 것은 이 때 어머니를 따라 다니며 장터에서 들려오는 생명의 소리를 듣고 자란 때문이 아닐까. 지금 돌이켜보면 그 때의 경험들이 성숙하여, 어른이 된 지금에도 물질을 소중히 여기고 아껴쓸 줄 아는 지혜가 길들여진 것 같다. 이렇듯 나에게 결 고운 추억의 한 페이지를 엮어 주는 오일 장터가 쇠락하여 가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현대식 설비를 앞세운 대형 매장들이 몫 좋은 곳을 선점하므로써 재래시장이 변두리로 밀려나 겨우 명맥을 유지하는 정도라고. 도시화 바람에 사람의 체취가 차츰 사라지는 것 같아 아쉽다. 요즈음도 주말이면 가까운 시골의 오일장이 서는 곳을 자주 찾는다. 나물, 생선가게, 싸전, 우시장을 돌아보며 희미해져 가는 기억을 더듬어 본다. 옛날의 내가 느꼈던 그 맛은 아니지만 아직도 곳곳에 그 때의 맛이 조금씩 베어 나와 아쉬움을 덜어 준다. 현대의 신속과 편리함에 도취한 나머지 우리 고유의 멋이 사라지면 어쩌나하고 걱정이 들 때도 있다. 길가에서 좌판을 벌이고 있는 할머니를 보면 안쓰럽다. 사라져 가는 옛 것을 지키고 있음이 힘에 부치는 것 같다. 할머니는 어렵게 한푼 두푼 모아서 손자의 학비는 물론 군것질까지 해결해주기 위하여 늙어 가는 것도 잊은 것 같다. 세월의 흐름에 민감한 대형 매장들은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영업전략으로 기존의 재래시장의 영역을 파고들고 있다. 정찰제와 품질의 우수성을 내세우며 할머니의 설 자리를 위협하지만, 그럴수록 할머니는 듬뿍 덤을 얹어 주기도하고 끝 전을 뚝 잘라 에누리도 해주어 길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이런 노을빛 인심이 우리 곁을 떠나지 않기에 사람 사는 곳의 정감이 휘도는 것은 아닐까. 내 고향, 아낙네들의 웃음으로 가득 차던 고모댁의 가게는 간 곳 없고 국밥집은 고급 음식점으로 변했지만, 장터의 길목에는 돌아가신 어머니가 환한 웃음으로 내가 좋아하던 엿가락을 들고 서 있다. 모두가 떠난 그 자리에 어디선가 주인을 떠나기 싫어하는 아기 송아지의 목멘 울음소리도 들린다.
오일장 - 영덕문학 2007년 37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