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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9시 55분.
산행들머리는 31번 국도를 따라 새추(사초) 사거리에서 서북쪽 424번 지방도로로 좌회전이다. 평창강을 좌측에 끼고 3.6km 거슬러 오르면 상안미2리 버스정류장이다. 좌측 평창강을 가르는 선애교를 건너 서남쪽으로 포장된 마을길을 따라 잠시 오르다 우측으로 보이는 안미초교 선애분교 앞을 생각없이 지났다. 아스팔트 포장도로가 말끔하게 깔린 행화동을 가르는 중앙통로는 이침 기온처럼 시원하고 차디차다. 길이 말끔해 계속 버스를 마을 안쪽까지 몰고 올라갔다.
농촌가옥이 다도해 섬처럼 산록 이곳저곳에 뜨문뜨문 들어선 한적한 마을이다. 개념도에 표기된 행화동에 멎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버스는 분교 앞에서 너무 깊숙하게 오른 살구골 1/3지점이었다. 시골길이나 살눈이 깔린 길에는 대단한 콤플렉스를 가진 김기사에게 더 이상 강요할 입장이 못 됐다. 눈길산행을 기대하며 준비를 마친 일행 28명은 차례대로 하차한 시각은 오전 10시 정각이다.
행화동에서 바라본 남쪽에 중대갈봉-화채봉이 길게 누워 안미리 일대를 보듬고 있다. 동쪽은 산간지방에서는 극히 보기 어려운 넓은 들인 예단평야와, 들녘 끝머리에 남병산-금륜산이 아침 안개를 품고 있다.
10시 5분.
살구골을 송이골로 착각하고 올라가던 너른 포장길은 이내 끝나고 비포장 길이다. 3Cm 정도 눈이 살포시 깔린 비포장도로를 따라 句配를 이루는 잿길은 적당하게 미끄러웠고 눈을 디딜 때마다 일어나는 소리가 요란했다. 막상 하차하고 보니 생각만큼 매운 추위는 아니었다.
오늘은 새 회원이 많았다.
하행하며 멎었던 문막 휴게소를 떠나 새말IC로 향하던 차내에서 소개했지만 예약손님 5명이 아웃된 대신 새 회원 7명이 추가됐다. 어제 오후 정감사님으로부터 傳言받은 김옥희님이다. 60대 중반의 그네를 안지는 햇수로 4년 전이다. 나이와 다르게 산에서는 성질이 급하고 저돌적이며 적극적이다. 2002년 여름 설악산 서북능선(귀떼기청봉~대승령) 산행 당시 작은 부상을 당한 이후 수년만의 재회다. 그네가 개화산에서 만났던 S씨를 통해 정재근 감사님의 근황(전화번호 포함)을 듣고 먼저 연락을 취해왔다. 그네는 정감사님과는 같은 황해도 월남민으로 呼姉呼弟하는 사이다. 반가운 얼굴이다. 변함없는 그네의 산사랑과 열정은 유별나다. 어제 토요일 방화동 무궁화산악회 토요산행(대관령 제왕산)에 이어 연 이틀 산행에 참여한다는 소개에 회원들은 노익장을 향해 부러운 눈짓이다.
이춘옥-오태식씨를 통해 강화도 000산악회(목요산행) 회원인 김명호-정숙경씨가 베테랑 냄새를 담고 참여했다. 또 강태영 고문님을 통해 정옥자(2005년 12월 총회 때 참여)-최영순씨가, 정영애 회원을 통해 체육관 회원인 최종민씨, 홍기오 대장님의 직장동료인 오세정씨 등이 자리를 메워줬다. 시간 연락이 제대로 안되어 새벽 당산역에서 15분간 기다리는 시간이 있었다.
10시 23분.
선애팜스테이 등산로 입간판과 <등산로 → > 표지가 간간이 보인다.
< ←옹달샘 0.8Km>
버드나무 나목에 걸린 표지가 납득되지 않았다. 고개를 올라가는 중간지점에서 좌측 산록 깊숙한 800m 지점에 위치한다는 옹달샘을 우정 찾아가는 사람이 있을까 고개를 갸웃했다. S자를 그리며 올라가는 가파른 고갯길 바닥에 쌓인 눈은 일행들이 떨군 바튼 호흡에 금새라도 녹을 듯 했다. 나목가지에 내렸던 눈이 스산한 아침바람에 눈보라를 일으킨다. 역광에 비친 눈보라는 은가루가 되어 눈이 아릴 정도로 환상작인 極上풍경이다.
아직도 그 영광을 화사하게 남은 억새가 고즈넉한 분위기로 다가온다.
오전 10시 35분.
이깔나무 나목을 배경으로 광활하게 펼쳐지는 억새밭이 고운 솜이불처럼 누워있다.
아직도 그 영광을 화사하게 남은 억새가 고즈넉한 분위기로 다가오는 웃대남이재로 착각한 억새평원 골미재 사거리에 올랐다. 청솔과 어우른 억새지대가 황홀하다 못해 자지러질 정도로 눈부시다. 정남쪽 골미골이 완만하게 깔려있고, 우측은 969봉~중대갈봉으로, 좌측이 화채봉 방향이다.
<골미재 정상 1.4Km>
이정표 표기가 의심스러웠지만 좌측인 동쪽방향을 중대갈봉으로 착각하고 일행들을 리드했다. 동남쪽 200m 지점에서 동쪽으로 꺾어 산허리를 가르며 올라가는 가파른 송림지대다. 말하자면 된 비알을 최영순씨가 강고문님 배낭 뒷끈을 잡고 힘겹게 올라가고 있다. ‘황소’가 아닌 ‘강소’라 불릴 만큼 힘이 좋다는 그의 저력이 돋보인다. 눈이 깔린 된 비알에 뜨거운 입김이 내린다.
겨울철에 내린 눈은 봄철 가뭄기에 큰 도움을 준다. 숲 속에 쌓인 눈은 서서히 녹아 땅속으로 들어갔다가 봄이 되어 땅이 녹으면 계곡으로 흘러나오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강수량이 적은 편이 아니지만 계절적 편중이 심하여 여름철에 절반정도가 내리기 때문에 나머지 기간에는 물이 모자라게 된다. 여름철 장마에 이어 태풍이 지나가고 나면 건조한 가을에 접어들게 되는데 겨울을 거쳐 봄에 이르면 내리는 비의 양이 더욱 줄어 모내기를 하는데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숲은 물이 부족하기 쉬운 이러한 때에 큰 도움을 준다. 숲 속은 햇볕이 직접적으로 들지 않고 온도 변화가 적기 때문에 내린 눈이 잘 녹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보다 많은 물을 이용하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숲 바닥에 되도록 많은 눈이 쌓이도록 해야 한다. 나뭇가지나 잎에 쌓인 눈은 햇볕을 받으면 증발되어 하늘로 그냥 날아가게 되므로 쓸 수 있는 물과는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눈이 내리는 양을 숲 밖과 비교하면, 낙엽이 지지 않는 침엽수림은 지나치게 우거진 경우 10% 정도 덜 쌓이고 활엽수림에서는 10%정도 더 쌓인다. 숲에 공간을 내면 20%정도 더 쌓이게 된다. 나무가 너무 빽빽하여 공간이 없는 곳은 솎아베기나 가지치기를 해 주어 공간을 열어주어 나뭇가지나 잎에 걸리는 눈을 적게 해주어야 한다. 우리나라와 같이 봄철에 유난히 비가 오지 않는 나라는 숲 속에 눈이 많이 쌓이게 하여 수자원을 확보하여야 한다.
최근 중부지방엔 눈이 내리지 않는다. 세계적인 기상이변의 탓인가 보다. 예년이면 강원도 일대는 심설산행으로 산꾼들이 성시를 이루는데 김옥희씨 전달로는 어제의 대관령 제왕산도 눈 없는 산행을 마쳤다고 했다. 정부차원의 祈雪祭라도 올려야 할손가?
눈을 기다리다 보니 <야설(野雪)>이란 시를 祭需로 올리고 싶다.
「눈발을 뚫고 들판 길을 걸어가노니 穿雪野中去,
어지럽게 함부로 걷지를 말자. 不須胡亂行.
오늘 내가 밟고 간 이 발자국이 今朝我行跡,
뒷사람이 밟고 갈 길이 될 테니 遂作後人程)」
순조 연간의 시인 이양연(李亮淵)의 작품으로 김구(金九) 선생의 애송시라 해서 널리 알려졌다. 선생은 들판의 눈에 찍는 발걸음에서 우국지사의 정신을 읽으셨으리라. 그러나 드넓은 벌판을 헤치며 좌고우면(左顧右眄)하지 않고 걸어가는 모습에서 갈등의 세상을 헤쳐 가는 묵직한 인생행보를 읽는 것도 어색하지 않다. 지사가 아니라도 시에서처럼 눈길을 따라 걷는다면 복잡한 생각을 접고 가야 할 작은 길이 차분하게 떠오를 것만 같다.
11시 정각.
약속이나 한 듯 정시에 안부에 올라섰다.
항상 육감이란 것에 예민하다. 그런 문제로 가끔 신경이 곤두선다. 서쪽에 솟은 봉우리를 968봉으로 생각했다. 쇠물푸레군락 능선이다. 들머리였던 선애교 일대가 한 눈에 조망된다. 이어 나타난 진달래능선이다. 억새산도 그러하겠지만 봄 산도 괜찮다는 생각이다. 바위길 오르막과 내리막이다.
오전 11시 10분.
선두가 기다리는 암봉이 착각한 중대갈봉이 아닌 보습봉이며 화채봉이다. 개념도 상의 화채봉과 보습봉은 분리하고 있지만 나의 생각으로는 동일한 개념으로 받아 들였다. 선착한 박명자씨가 기다렸다는 듯 오류를 알려줬다. 이유야 어쨌든 암봉으로 이뤄진 보습봉 정상은 보이는 그대로 아름다웠다. 선착한 일행들은 나름대로 만끽한 조망의 쾌감에 흥분하고 있는 모습이다.
<보습봉 985m>
'보섭봉' 이란 푯말이 나무에 걸려있다.
동북쪽 화채봉과 같은 높이다. 땅을 갈아엎을 때 삽 모양으로 생긴 바위들이 불규칙하게 솟아 있는 보습봉은 보습모양 그대로다. 거대한 바위들이 보습을 닮아 열병을 하고 앓고 있다. 대화면과 방림면에 경계를 두고 있는 화채봉(985m)은 가을산의 백미로 숨겨진 산이다.
급경사 바위 사이를 요리조리 빠져나가며 적당한 스릴을 만끽하며 올라온 화채봉 정상에서의 조망은 막힘이 없다. 우리가 서있는 이 지점을 옛날 이곳에 석청이 유명하여 여기서 나는 석청과 명주를 바꿨다 하여 화채봉과 보습봉 일대의 바위들을 '명지(=명주)바위'라 부른다.
북으로 안미리 예단평야와 대화읍내가 발치아래에 깔리고, 등용산-검은산-금당산을 중심으로 시계방향으로 평창군 일대 명산들이 모여 있다. 중원을 차지한 중대갈-화채봉을 중심으로 계방산-오대산-백적산-잠두산-백석산-중왕산-하일산-가리왕산-청옥산-남병산-장암산-삼방산-절개산-수정산-백덕산-중대갈봉-장미산-덕수산...준봉들의 전시장이다.
양대장님의 정정요구와 반대로 직행한다고 해도 무리는 없었지만 1Km 이내 거리인 송이골로 再踏하자는 의견에 전 회원들의 묵시적 동의가 있었다. 골미재로 되 내려가는 행보가 즐거움 그대로였다. 알티나 가족들의 산행이 아니던가. 아이젠 착용을 요구하는 의견에 우왕좌왕하는 회원들도 있었다. 착용하면 내리막에선 편리하지 않던가. 가족들의 산행은 이래서 즐겁다. 바위턱을 조심하여 내려섰다.
11시 28분.
건축현장의 판넬처럼 널빤지 같은 평면바위가 채석강에서 본 바위와 같이 차곡차곡 쌓인 암릉지대를 반복해 내려섰다. 속이 불편해 골미재 오르막까지 다소 고통을 겪었을 것으로 짐작된 직장동료 오세정씨를 대동한 홍기오씨의 수고가 다소 덜어질 것으로 생각했다. 아까부터 귀를 거슬리던 전기톱소리의 장본인은 골미재 부근에서 死木을 자르던 산림청 하청인부들의 작업임을 확인했다.
11시 41분.
골미재로 되 내려섰다.
아까와는 다른 느낌의 골미재다. 적막한 평화로운 분위기가 서린 이곳 사거리 로터리는 어느 곳으로 가든 모두가 천국일 성싶었다. 비몽사몽으로 천상을 걷는 억새의 파도를 가르며 동남쪽으로 향했다.
Life Is But a Walking Shadow, William Shakespeare(1564~1616)
(허망해도 내 인생)
And all our yesterdays have lighted fools
The way to dusty death.
Out, out, brief candle!
Lifes but a walking shadow, a poor player
That struts and frets his hour upon the stage
And then is heard no more: it is a tale
Told by an idiot, full of sound and fury,
Signifying nothing.
인생은 단지 걸어 다니는 그림자일 뿐
그리고 우리의 과거는 모두 바보들이
죽음으로 가는 길 비춰 주었을 뿐.
꺼져간다, 꺼져간다, 짧은 촛불이여!
인생은 단지 걸어 다니는 그림자
무대 위에 나와서 뽐내며 걷고 안달하며
시간을 보내다 사라지는 서툰 배우:
인생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소음과 분노로 가득 찬 백치의 이야기.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맥베스〉의 5막 5장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이다. 인생은 죽음으로 향하는 행진일 뿐, 허망하기 짝이 없다고 작가는 말한다. 김지하 시인의 ‘삶은 그냥 오지 않고 허전함으로부터만 온다’는 말이 실감되는 지금이다.
11시 55분.
억새에 묻혀 985봉을 향한 서쪽의 오르막이 올려다 보인다. 비몽사몽에 묻혀 천상의 억새 파도를 가르는 오르막이지만 무르익은 여유다. 끝머리였던 지친 오세정씨와 오르는 능선이다. 초면인 그네가 감당할 부담을 최소화하는 최소공배수를 생각했다. 원인이야 어쨌든 힘겨워하는 그네에겐 오늘이 다시없는 시련일 께다. 산꾼이 되기 전엔 누구나 겪는 통과의례인데 그네가 순수하게 받아들일는지 의문이다. 그건 어쩌면 그네의 자존심이라 서둘러 예기할 문제가 아니다.
후면에 억새를 배경으로 둔 전망지대에 일행들이 기다리고 있다.
힘겹게 올라오는 일행들에게 꼬마 초코렛을 손에 쥐어주는 김자연씨의 배려가 눈에 띄지 않는 화려한 布施였다. 무릇 이런 작은 배려에 많은 사람들은 마음이 멎게 마련이다. 사랑과 믿음이 없이는 짐짓 하기 어려운 행동이다. 행동식을 나누며 동료애를 확인하는 時空이며 격려를 주는 작은 공간이다. 애정이 오가는 산꾼들만의 애정공간이다.
행보를 재촉했다. 억새사이를 올라가는 일행들의 모습을 아래편에서 바라보니 천상 먹이를 찾아 이동하는 멧돼지가족들의 행렬 같다. 억세능선 사이에 희끗희끗한 노송 개체들이 영화의 한 장면이나 세트장처럼 아름다웠다. 東向받이 햇살로 그나마 쌓인 눈이 모두 녹아버린 활엽수 낙엽능선이다.
<팜스등산로 → >
억새평원의 하일라이트는 985봉 아래의 안부지대다. 키를 넘는 억새가 간간이 섞인 소나무의 푸른빛과 조화를 이룬다. 신갈나무나 상수리에 ‘참나무’라는 일반명사를 명찰로 붙인 사람들의 수고는 알겠지만 적어도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았더라면 이런 오류는 없었으리라.
좌측 7~8시 방향으로 문재를 경계로 북쪽으로 뻗은 오봉산(1126m)-솔이봉(896.5m) 줄기가 장쾌하게 누워있다. 산줄기는 술이봉에서 동북방으로 뻗어 청태산(1200m)을 일으키고 좌측에 대미산(1232m)-금당산을 세우더니 재치에서 잠시 가라앉는다. 이어 줄기는 동북진하여 백적-잠두-백석-중왕산-가리왕산 등 1000m 급 이상의 준봉을 남북으로 누워 이곳을 하나의 분지로 만든다. 울남으로는 남병산이 우뚝하고 사자-백덕산이 가로막은 중대갈-화채봉을 사방으로 호위하고 있다. 1999년 6월 직장동료 B씨와 함께 산보삼아 올랐다가 방향착오로 약 5시간을 헤맨 끝에 청태산을 거쳐 금당계곡 유포리로 내려갔던 고단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사람 키를 훌쩍 넘는 억새를 뚫고 969봉에 올라섰다.
억새 사이로 여인의 가르마처럼 뚫린 삼거리에서 좌측 길로 옮겼다. 정수리에 철탑을 꽂은 중대갈봉 정상이 지척에 서있다. 억새산행의 진미를 만끽하기에 충분하다.
정상이 가까워지며 갑자기 억새들이 사라지고 시야를 가리는 신갈나무군락지대가 나온다. 능선에 깔린 활엽수 낙엽이 동향 빛에 녹아 삭삭거리는 소리가 낭만적인 가락으로 들려온다. 노송 한 그루가 가로막은 능선이다. 여름 한철이면 좋은 휴식처가 되겠다 싶었다.
한낮인 12시 7분.
<고사리 밭>
억새능선이다. 환호작약하는 일행들의 표정이 억새보다 더 맑고 정갈하다.
봄에 고사리를 따러 오자고 일행 중 누군가 뱉는다.
12시 15분.
5~6평 너비의 작은 공터인 중대갈봉 정수리에 올랐다.
<승두봉 1013m, 춘천깨비산악회>
<승두봉 선애, 중대갈봉>
두 개의 표지판이 나목가지에 매어있다. 북쪽 모서리에 박힌 삼각점은 얕은 눈에 덮인 채 문자 인식이 어렵자 홍기오씨가 발끝으로 쓸어주는 배려를 보였다.
<삼각점(1989, 평창 21) >
정상은 산불 및 홍수 경보 감시카메라 철탑이 정 중앙에 철책에 싸여 정수리 공간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눈을 들어 동북쪽을 더듬으니 예단평야 건너에 의젓하게 버티고 앉은 등용산이 확연하게 눈에 든다. 북서쪽의 장미산에서 덕수산으로 이어지는 능선과 남동쪽의 남병산-삿갓봉 등이 한눈에 들어오고 동쪽의 백덕산-사자산 연봉이 펼쳐있다. 중대갈봉은 백적산-잠두산-백석산-중왕산-남병산-등용산-장미산-금당산-덕수산과 더불어 평창군의 10대 명산이다.
을유년 닭의 해, 새해 벽두에서 만난 중대갈봉은 자랑스러운 금년을 기대했다.
닭은 十二支의 열 번째 동물로 酉時, 즉 오후 5~7시로 달력으로는 음력 8월, 방향으로는 西해당하는데 시간신과 방위신에 해당한다. 닭은 암흑에서 여명을 예지하는 瑞鳥이며 새로운 시대의 序曲을 상징한다. 닭의 5덕을 통해 을유년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
文德(닭의 벼슬 즉 冠)
武德(닭의 발톱)
勇德(적을 앞에 두고 용감히 싸우는 것)
仁德(먹이를 보고 꼭꼭거려 무리를 부르는 것)
信德(때를 맞춰 울음으로 새벽을 알리는 것)
우리나라에 닭이 출현현한 것은 문헌상 삼한시대이전으로 <후한서> <삼국지> ‘동이전’에 꼬리가 5자인 細尾鷄가 나온다. 그 이후 박혁거세와 김알지의 탄생신화인 卵生說話를 통해 임금이나 왕후의 출현을 알리는 瑞兆로 표현됐다.
고려 때는 궁중에서 시각을 알려주는 닭을 길렀다는데, 一鳴鷄(子時), 二鳴鷄(丑時), 三鳴(寅時)를 두고 이르는 말이다. 鷄鳴은 광명의 도래를 알리는 太陽鳥이자, 逐鬼의 상징성 때문에 호랑이-용-개-사자와 함께 歲畵의 대상으로 정초 逐厄과 洪福의 의미로 대문에 붙여졌다. 오복의 하나인 子女福을 상징하는 닭 해인 <乙酉년>은 1945년 민족의 해방을 맞은 이래 첫 환갑이 되는 해다.
국립민속박물관 천진기 학예연구관의 소개처럼 ‘닭이 우니 새해 새 복이 오고, 개가 짖으니 지난해의 재앙이 사라진다’는 덕담이 시련기를 당한 우리나라 사람 모두와 본 산악회원 여러분들에게 골고루 뿌려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정상 북편은 낭애다. 큰덕수바위(행화동덕수바위) 터어르(Tor, 뾰죽하고 험한 바위산 꼭대기)가 정면 아래다.
정상에서 서쪽으로 약 200m 아래 능선에 일행들이 모였다.
잽싸게 움직이는 라면타임이다. 제법 쌀쌀한 바람이 불어오는 능선에서 준비했던 행동식을 나눴다. 라면준비시간을 기다리거나 분위기에 낯선 이춘옥씨 일행들이 먼저 하산하겠다는 의사다. 약 15분의 시차를 두고 뒤따를 것이라며 먼저 하산코스로 접어들기로 양해됐다.
따끈한 라면국물과 김총무께서 준비한 중국의 독주 한잔에 사레가 걸린 이만대 교감님의 불콰해진 젊은 표정이 보기에 좋았다. 스탠딩 휴식의 한잔 술을 나누는 巡杯의 멋이 지나는 시간이었다. 먼저 행보를 서둘렀다.
12시 51분.
낙엽이 덮인 능선을 가르며 능선이 뚝 끊기는 아찔한 절벽인 바위지대 삼거리에 섰다.
절벽아래 북쪽사면 임도허리를 잘록하게 만든 무참함은 무슨 이유인지 얼른 이해가 안됐다. 이 일대의 바위들이 옥돌처럼 생긴 규석이 많았다는데 혹시 규석채광으로 잘린 게 아닌가 추측했다. 정 북쪽 산 사면을 타고 급박하게 내려가는 코스다.
오후 1시.
바위들이 열병식을 하는 작은덕수바위(송이골덕수바위) 터어르(Tor, 뾰죽하고 험한 바위산 꼭대기) 지대다.
옛날 마을에 살던 '덕수'라는 총각이 뒷산 바위에 올라 석이를 채취하다가 바위에서 떨어져 죽은 뒤로 그 바위를 '덕수바위'라 부르게 되었다는 슬픈 전설이 어린 곳이다.
정상 부근에 불끈 솟은 바위를 큰 덕수바위(행화동 덕수바위, 상구 구렁이)와 비교되는 작은 덕수바위(송이골 덕수바위)다. 동명의 덕수산(1000.3m)이 예서 서북쪽으로 약 5km 거리, 방림면 계촌리, 대화면 개수리와의 경계에 있는 덕수산과 同名異山이다.
로프가 걸린 예리한 경사의 내리막은 바닥자체가 미끄러웠다. 거북이처럼 기어가는 박명자씨와 최종민씨의 행보가 퍽 조심스럽다. 모두 아이젠 착용을 권했다. 김옥희씨가 수평으로 연결된 사면 코스에서 잠시 미끄러졌다. 귀떼기청봉의 기억이 되살아났지만 염려할 바는 아니었다. 나이를 뛰어넘은 그네의 저돌적 행보에 완보를 권하며 귀찮더라도 아이젠을 차도록 일렀다.
오후 1시 6분.
<달밭메기, 머루-다래 자생지>
표시판을 보고 주위를 살피니 사면 전체가 다래나목과 머루나목이 옛 여인의 삼단머리처럼 치렁치렁하게 늘어져 있다. 여름 한청이면 열매 따먹는 재미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이 들자 조건반사처럼 입안에 타액이 가득 고인다.
1시 17분.
<신선굴, 약수>
커다란 바위가 갈라진 틈 사이에 물이 고여 있다. 앞에는 휴식하도록 통나무를 높이 3~40Cm로 잘라 만든 그루터기 20여개가 박혀있다. 모두 눈에 덮여있었지만.
1시 33분.
웃대남이재에 올라섰다. 일본이깔나무 군락지대다. 능선도 부드러워지고 동북쪽 아래로 송이골이 한줌이다. 웃대남이재 사면에는 사람 키 두 배 가량의 억새가 군락을 이룬다.
<산나물 자생지>
평창강의 회하를 내려다보며 계속 능선을 탔다.
1시 41분.
남양홍씨묘소를 중심으로 10여기의 묘소가 밀집된 송림지대다.
좌측은 어김없이 수 십 길 낭떠러지기다. 먼저 내려갔던 이춘옥씨 일행도 400m 전방지점에 있다고 정영애씨가 알려준다.
1시 51분.
선애팜스테이 등산로 표지가 자주 눈에 띈다.
< 박달고지 거북바위>
좌측 낭애를 내려다보고 있을 때 선두로 내려선 최영복씨의 연락이 왔다. 선애분교 근방에 도착했다는 내용이다. 일반 일행보다 속보실력을 보이는 그도 이젠 완숙한 산꾼이 되어가고 있나보다.
오후 2시 2분.
<거북바위> 표지다.
좌측에 놓인 집채만한 방위모양이 천상 거북이 모양이다.
최종민씨가 양쪽 무릎관절이 시원치않다며 주저앉았다. 때맞춰 합류한 정감사님이 48시간 효과가 있다는 파스를 붙여주는 여유를 보인다. 응석받이 어린애를 어루는 그런 표정이 역력하다.
2시 5분.
<왜갈봉>
우측 송이골로 꺾이는 마지막 안부다. 다시 주저앉아버리는 최종민씨에게 후미와 함께 내려오도록 권유하고 바튼 경사로를 내려갔다.
2시 10분.
<송이실 입구>
폭이 좁은 계류는 쇠덩이처럼 얼어붙어 있었다. 정영애-김자연-김총무 등 일행들이 기다리고 있다. 왜갈봉 아래 안부에서 대책없이 주저앉았던 최종민씨도 이내 내려와 합류했다.
헬스클럽에서 운동을 한다는 그가 10년만의 산행에서 재차 확인한 운동근육의 차이점을 피력하며 잦은 참여를 통해 새로운 몸 관리를 하겠다는 다짐이다. 좋은 경험을 치른 오늘 겪은 그의 결심이 흔들림이 없기를 기대해 본다. 뒤돌아 본 송이골 상류 산록의 낙엽송과 소나무가 평화롭기 그지없다. 시멘트 포장농로를 따라 내려가며 만난 채소밭에 수확하지 않고 그대로 凍害된 배추들과 피망-감자 무더기가 안타깝게 보였다. 貝塚이 아닌 菜塚이다. 무슨 이유로든 식량자원의 낭비가 좋게 보일 리는 없다.
선애농장민박(011-365-8614, 033-332-8614)을 가리키는 표지판이 선 삼거리와, 30m 아래 OK민박 표지판 삼거리를 통과, 원두막이 선 마을 중앙 삼거리에 선 시각은 2시 21분이었다. 원두막 좌측 동네 정 중앙에 돛대봉이 편안하게 앉아있다.
마을 형국이 배처럼 생겼다 하여 배두둑, 배언덕골, 선애동이라 한다. 배 돛대처럼 마을 중앙에 볼록 솟은 산이 돛대산이다. 도로 양편은 너른 채소밭이다. 밭 가운데 보이는 묘소는 제주도에서나 볼 수 있던 그런 장면이다. 조상의 묘택을 매일 바라보며 밭일을 하는 농심이 퍽 목가적이라는 생각이다.
오후 2시 25분.
상안미2리 경로당 바로 아래 안미초교 선애분교 옆구리에 멎어있는 버스에 올랐다.
후미(강성윤-정옥자-최영순) 일행이 당도해 이동한 시각은 2시 48분이었다.
살구골-골미재-보습(화채봉)봉-골미재-969-중대갈봉-큰덕수바위-바위지대-작은덕수바위-웃대남이재-선애팜스테이 등산로(박달고지-거북바위-왜갈봉)-송이골-배언덕골삼거리-안미초교 선애분교에 이르는 코스 총 10Km에 4시간 45분간이 소요됐다.
서서히 출발하는 차창밖에 비친 작고 조용한 평화가 내리는 분교운동장과 校舍를 응시하는 오후의 태양이 퍽 따끈하고 느껴졌다.
오후 3시 00분.
김기사가 미리 예약한 <방림손두부> 음식점이다.
2002년 여름 매미태풍을 맞으며 곰배령-양양-봉평-금당계곡을 거쳐 이곳 음식점에 들렸던 그 해 8월에 만났던 외팔이 아저씨와, 하체보다는 상체가 베개처럼 둥그렇게 생긴 중년의 식당 여주인의 사람좋은 표정도 여전했다. 음식을 마주한 29명의 식솔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만족한 미소를 흘린다. 욕심같아선 더 먹고 싶었지만 직접 만든 두부가 떨어졌다는 얘기다. 그러나 훌륭한 맛의 음식솜씨에 감탄하며 꽤나 많은 소주잔이 시간상으로 오갔다.
오후 3시 55분.
음식점을 출발했다. 30분 후 안흥마을에 들려 찐빵 맛을 거치는 시간도 챙겼다.
밤이 익어가는 시간이다. 88도로상의 수서IC입구(송원동씨), 당산역(강태영-강성윤씨 일행과 조낙연씨), 강서 보건소 앞(김총무-홍영미씨), 하이웨이주유소(정재근-김자연-홍기오-정영애-박명자씨)앞을 거쳐 발산역(이만대씨)에 하차한 시각은 밤 8시 35분이었다.
이어 버스는 자전하는 지구처럼 개화역을 거쳐 김포시를 거쳐 강화도를 향해 밀물 흐르듯 흘러갈 것이다. 오늘 회원들을 위해 獻酒한 박관례씨, 그리고 변함없이 새벽버스를 리드해주시는 최영복씨, 최근 軍 복무중인 둘째 아이 문제로 불편한 잠을 이룰 강영성 이사님 부부, 진작에 산악회 소식을 알려주지 않았다고 역정을 내시며 다소 섭섭한 마음을 한참동안 표현했던 김옥희님, 일산까지 승용차로 귀가할 박문식씨, 그리고 강화도 00산악회원으로 참여하신 오태식씨 일행 모두에게 건강한 오늘이 마쳐지기를 기원했다.
*교통
-대중교통 :
동서울터미널~평창 09:30부터 17:40까지 6회 운행 시외버스 이용.
평창공용터미널~방림리 원주행 완행버스를 이용, 방림이나 대화에서 하차,
서울~강릉행 40분 간격으로 운행 버스를 이용, 장평 하차.
장평~평창행 시내버스(09:00,09:30,10:10,14:30,16:30,20:20)로 방림리 입구삼거리
대화버스터미널(033-333-2063)~상안미2리 선애초교와 개수리를 왕복하는 버스(06:30, 08:40, 09:40, 12:20, 12:50, 17:45, 19:00)로 상안미2리 앞 하차
상안미2리~개수리는 대화행 버스(07:00, 09:30, 10:30, 14:00, 15:20).
대화버스터미널~장평행 버스(07:20~21:20)는 30~40분 간격 운행(15분 소요)
대화~강릉행 버스는 하루 15회(07:00~20:40) . 요금 5,300원.
대화~원주행 버스는 07:25, 09:30, 10:40, 14:20, 18:25, 1시간10분 걸림. 요금은 4,500원.
대화~동서울행은 08:05, 08:50, 10:05, 11:10, 12:00, 13:20, 14:35, 16:00, 16:50, 18:05, 19:03. 1 대화~평창 경유 정선행 버스는 09:40, 10:40, 12:05, 13:20, 16:40, 18:00, 19:10, 21:30
장평시외버스터미널(033-332-4209)에서 대화, 동서울, 상봉동, 안산, 성남, 강릉, 원주, 춘천 행 버스운행
대화개인택시 333-2000, 대화고속레카 332-4989, 대화면사무소 330-2604.
-승용차 : 서울-영동고속도로 새말IC-42번 도로-방림-사초사거리
-상안미2리 버스정류장 선애교, 하안미 2리 미날교
*숙박 :
-평창읍내 시장
[가고파분식(033-333-5841), 안미쉼터가든민박(332-9778), 가리왕산가든(333-8523),
-사초거리에는 국제농기구센타(332-8557)를 운영하는 조남원씨 민박,
-상안미1리에는 박용진씨(332-8650), 주성천씨(333-0959)민박, 안미숭어양식장(333-9493),
-대화에 대화장여관이 있으며 평창에는 태백장, 동부여인숙 등.(방림리에는 숙박시설 없음)
-평창의 송어양식장은 예약하지 않고는 자리를 잡을 수 없음
-선애동2리 김형백씨 민박(011-365-8614, 033-332-8614), 안미쉼터가든민박(332-8557),
가리왕산가든(333-8523),
-사초거리에는 국제농기구센타(332-8557)를 운영하는 조남원씨 민박,
-상안미1리에는 박용진씨(332-8650), 주성천씨(333-0959) 민박.
-방림손두부집(033-333-1146)
*대화 5일장(4, 9일) 태양고추와 옥수수가 유명.(참고: 월간<사람과산> 2003년 11월호)
첫댓글 추울땐 독주 한잔이 최고라기에 그만...... 숨이 막힐 지경 이었니까 독주는 독주인것 같아요 아마 숨막히는 독주에 혼나신분 여럿 계실 겁니다 , 죄송 ...
즐거운 산행 축하 드립니다. 다음 산행을 위해 근신중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