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김알지를 시조로 하고 김충유와 김선을 입향시조로 하는 진도 세거성씨의 하나.
[개설] 경주김씨는 김알지를 먼 시조로 한 성씨로 경순왕 이후 여러 본관성씨로 분파했다. 경주 본관을 계속 유지한 집안은 경순왕 셋째 아들 김영분(金永芬) 집안이다. 이 집안도 후손 중에서 여러 파로 갈려 서로 그 촌계를 가릴 수 없을 만큼 수가 많아서 각파별로 족보를 만드는 실정이다.
[입향경위] 진도에 들어온 파는 김충유(金冲裕)를 기일세(起一世)로 하는 두계공파(杜溪公派)와 김선(金善)을 파조로 하는 백천파(白川派)의 두 집안이 있다.
두계공파 5세 김익문(金益文)이 장흥 장동면에서 1583년(선조 16) 임회면 상만리에 들어오고 같은 집안 6세 김소(金昭)의 생년이 1516년으로 기록된 것으로 보면 상만리 입촌과 거의 같은 시기로 보인다. 체신부장관을 역임한 김병삼(金炳三, 1922~1988)은 김익문의 12세 손이다.
백천파는 군내면 분토리로 들어온 김상혁(金常赫, 김알지 50세손)으로, 그 선조들은 해남 문내면에 살았다. 화가 김옥진(金玉振)과 문학평론가 김현(金鉉)이 입도조의 11세손들이다.
[집성촌현황] 진도에 살고 있는 경주김씨는 215가구 520명이다. 진도군 임회면 상만리와 군내면 분토리 두 동네에 각각 사당이 있다.
[참고문헌] • 『경주김씨파보』 • 『진도군지』(진도군·전남대학교 호남문화연구소, 2007)
경주김씨(慶州金氏)
◀ 계림비각 전경 - 대보공(大輔公) 김알지(金閼智)의 탄강을 기려 건립된 것이다. - 소재지 : 경북 경주시 교동 경주김씨(慶州金氏)는 대보공(大輔公) 김알지(金閼智)의 후예를 총망라한 신라 김씨의 대종으로 그 파계가 복잡하여 전모를 파악하기가 어려우나 대충 1세조를 딜리하는 5개 파로 대별되어 있다. 신라김씨는 경순왕 이전에 이미 왕계를 중심으로 무수히 분관되었고, 경순왕의 아랫대에서도 많은 성씨로 분적하였다. 그리고 경순왕의 아들 9형제 중 셋째 영분공(永芬公) 명종(鳴鍾), 넷째 대안군(大安君) 은열(殷說)의 계통만이 경주김씨이므로 신라 김씨의 종통이라고는 할 수 없고 경순왕 계통에서도 종파로 볼 수는 없다. 하지만 경주김씨는 자손이 제일 번창하였고 또 세도를 이어왔기 때문에 신라 김씨의 중추세력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그 파계는 경순왕의 셋째아들 명종을 1세조로 하는 영분공파(永芬公派), 넷째아들 은열을 1세조로 하는 대안군파(大安君派), 경순왕의 후예이면서도 중간 세계가 실전되어 순웅(順雄)을 1세조로 하는 대장군파(大將軍派), 은열의 후손인 인관(仁琯)을 1세조로 하는 태사공파(太師公派), 같은 은열의 후손인 장유(將有)를 1세조로 하는 판도판서공파(版圖判書公派)로 대표된다. 이 외에도 문헌에는 호장(戶長) 위영(魏英)을 파조로 하고 《고려사(高麗史)》에 등장하는 근(覲)과 부필(富弼)·부일(富佾)·부식(富軾)·부의(富儀) 형제로 이어지는 파가 있다고 전하지만 이 파의 전후 세계는 상고할 수 없다. 경주김씨는 대보공 알지의 7세손이자 김씨로서 첫 왕위에 오른 미추왕(味鄒王)의 셋째동생 말구(末仇)로부터 갈리었는데, 그 직계에서 왕위에 오른 분이 17대 내물왕(奈勿王), 22대 지증왕(智證王), 38대 원성왕(元聖王), 45대 신무왕(神武王), 46대 문성왕(文聖王), 56대 경순왕(敬順王)으로 신라 왕조에서 왕위에 오른 38분의 김씨 왕 중 여섯 왕이 경주김씨 계통이다. 경주김씨는 신라조에서는 왕족으로서 영화를 누렸으며, 고려조에 들어와서는 경순왕이 태조의 맏딸 낙랑공주를 아내로 맞이하고 딸을 태조의 손자 주(주 : 景宗)의 비로 들여보내는 등 국혼을 잇따라 하여 삼한갑족(三韓甲旋)으로서 세력을 떨쳤다. 경주김씨는 고려조에서 숱한 인물을 배출했지만 그 중 특히 《삼국사기(三國史記)》의 저자로 인조 때 묘청(妙淸)의 난을 평정하는 등 고려조에 업적을 남긴 문열공(文烈公) 김부식(金富軾)과 그의 아우로서 당대의 문장가인 문의공(文懿公) 김부의(金富儀), <12공도(公徒)>의 하나인 양신공도(良愼公徒)를 육성한 양신공(良愼公) 김의진(金義珍), 《삼국유사(三國遺事)》의 저자로 고려조에 이름을 남긴 도승 보각국존(普覺國尊) 일연(一然) 등이 유명하다.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개국되는 격동기에는 고려에 충성을 다한 절신이 있는가 하면 이성계(李成桂)의 혁명을 도운 개국공신도 있어 희비가 엇갈린다. 고려조에 충절을 바친 대표적인 인물로는 상촌(桑村) 김자수(金自粹)가 있다. 그의 충절은 비단 경주김씨뿐만 아니라 후대에 내려오면서 충의의 표본으로 추앙을 받고 있다. 그는 고려가 망하자 두문동으로 들어갔다가 태조가 그곳을 불질러 태워버리자 안동으로 가서 은거했다. 뒤에 태종이 형조판서로 불렀으나 이를 거절, 경주의 추령(秋嶺)에서 <절명사(絶命詞)>를 지어 놓고 자결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조선 개국에 동참한 인물로는 개국공신 3등으로 계림군(鷄林君)에 봉해진 균(균), 개국공신 1등으로 익화군(益和君)에 봉해진 인찬(仁贊), 개국에 협조하여 병조판서가 된 덕재(德載) 등을 꼽을 수 있다. 조선조에서는 특별히 권문세도를 형성하지는 못했지만 왕비 3명, 상신 6명, 호당 3명, 청백리 4명, 공신 5명, 장신 5명, 문과 급제자 202명을 배출했다. 왕비의 인맥을 살펴보면 고려 말의 판예빈시사(判禮賓寺事) 김천서(金天瑞)는 딸이 정종의 비인 정안왕후(定安王后)가 되어 월성부원군( 城府院君)에 봉해지고, 효간공(孝簡公) 김주신(金杵臣)은 딸이 숙종의 계비인 인원왕후(仁元王后)가 되어 경은부원군(慶思府院君)에 봉해지고, 충헌공(忠憲公) 김한구(金漢耉)는 딸이 영조의 계비인 정순왕후(貞純王后)가 되어 오흥부원군(鰲興府院君)에 봉해졌다. 상신으로는 충익공(忠翼公) 김명원(金命元)이 선조조에 좌의정, 정헌공(靖獻公) 김흥경(金興慶)이 영조조에 영의정, 문익공(文翼公) 김관주(金觀柱)가 순조조에 우의정, 경헌공(敬獻公) 김사목(金思穆)이 역시 순조조에 좌의정, 효헌공(孝憲公) 김도희(金道喜)가 헌종조에 좌의정, 충헌공(忠憲公) 김홍집(金弘集)이 고종조에 총리대신을 지냈다. 이 밖의 인물로는 기묘명현(己卯名賢)으로 유명한 문간공(文簡公) 김정(金淨), 금석학(金石學)의 거성인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가 유명하다. 김정은 중종대의 학자요, 경주김씨를 대표하는 인물로서 중종 때 조광조(趙光祖)와 함께 지치주의(至治主義)의 실현을 위해 많은 업적을 남겼으나 기묘사화(己卯士禍) 때 조광조와 함께 투옥되었다가 제주도의 배소에서 사사되었다. 추사 김정희는 독특한 <추사체(秋史體)>를 대성한 명필로 특히 예서와 행서의 전무후무한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 그림에 있어서도 난죽(蘭竹)과 산수(山水)에 뛰어났는데, 선미(禪味)가 풍기는 남종화(南宗畵)의 전통을 이었다.
항렬표(行列表) 두계공(충유)파<杜溪公(沖裕)派>
世 35 36 37 38 39 40 41 42 43 44 45 46
항렬자 行列字 효 孝 ○ ○ 영 泳 병 柄 희 熙 기 基 종 鍾 하 河 계 桂 연 然 규 圭 호 鎬
수은공(충한)파후·쌍향당(구)파<雙香堂(玖)派>
世 34 35 36 37
항렬자 行列字 렬·걸 烈·杰 종·만·중·규·효 種·萬·重·奎·孝 섭·흠·수·욱·구 燮·欽·秀·旭·九 영·홍·회·병·남 泳·洪·會·炳·南
38 39 40 41 42 43
상·수·영·행·우 相·秀·永·行·宇 병·훈·성·재·무 柄·勳·成·宰·茂 중·곤·필·기 重·坤·弼·起 강·용 康·庸 재·익·달 宰·翊·達 정·헌·임 廷·憲·任
판도판서공(서건)파<版圖判書公(瑞健)派>
世 34 35 36 37 38 39
항렬자 行列字 희·렬 熙·烈 지·규 址·圭 호·용 鎬·鎔 순 淳 동 東 병 炳
월성부원군(천서)파<月城府院君(天瑞)派>
世 38 39 40 41 42 43
항렬자 行列字 기·상·동 基·相·東 탁·섭 鐸·燮 우·규·재 雨·圭·在 근·련·종 根·鍊·鍾 렬·원·수 烈·源·洙 규·동 圭·東
충선공(요)파<忠宣公(瑤)派>
世 27 28 29 30 31 32 33 34 35 36
항렬자 行列字 진·악 璡·岳 보·봉 甫·鳳 한 漢 모 模 병 炳 재·기 在·基 종 鍾 제 濟 동 東 섭 燮
병조판서공(덕재)파<兵曹判書公(德載)派>
世 21 22 23 24
항렬자 行列字 철·기·재·규·혁 喆·基·在·圭·赫 종·진·석·련 鍾·鎭·錫·鍊 영·태·구 永·泰·求 식·근·임 植·根·林
25 26 27 28 29
환·병·형·찬 煥·炳·炯·燦 주·배·균·준 周·培·均·埈 호·종·용·현 鎬·鍾·鎔·鉉 수·숙·원·연 洙·淑·源·淵 모·상·격·계 模·相·格·桂
익화군(인찬)파<益和郡(仁贊)派>·백촌공(문기)파<白村公(文起)派>
世 21 22 23 24
항렬자 行列字 기·재·규·진 基·在·圭·鎭 종·석·현·호 鍾·錫·鉉·浩 영·락·연·동 泳·洛·演·東 근·모·주·렬·병 根·模·柱·烈·炳
25 26 27 28 29 30
형·경·훈·재 炯·炅·勳·載 훈·은·지·현 塤·垠·志·鉉 용·정·은·영·락 鎔·鉦·銀·永·洛 구·하·한·근 求·河·漢·根 상·격·계·용 相·格·桂·容 균均
계림군(균)파<鷄林君(균)派> ※종파(宗派) 판윤공(判尹公) 송애공(松崖公) 계파(季派)
世 20 21 22 23 24
항렬자 行列字 식·경 植·經 학·관·지 學·冠·知 종·탁·기·식 鍾·鐸·基·式 수·호·진·영·시 洙·浩·鎭·榮·是 동·주·수·호·우 東·柱·洙·浩·友
25 26 27 28 29
환·현·상·위 煥·炫·相·渭 규·치·환·훈·소 奎·致·煥·勳·韶 진·호·규·재·영·도 鎭·鎬·奎·在·迎·道 영·순·현·후 泳·淳·鉉·厚 해·근·걸·태 海·根·杰·泰
장군공(순웅) 후 봉익대부(남기)공파<將軍公(順雄) 后 奉翊大夫(南基)公派>
世 17 18 19 20 21 22 23 24
항렬자 行列字 동·병 東·柄 렬·걸 烈·杰 규·효 奎·孝 현·흠 鉉·欽 영·홍 泳·洪 식·수 植·秀 병·훈 炳·勳 중·곤 重·坤
판도판서(장유)공파 <版圖判書(장유)公派>
世 17 18 19 20 21 22 23 24
항렬자 行列字 태·정 泰·鼎 수 秀 희 熙 기·재·교 基·在·敎 구·현·호 九·鉉·鎬 홍·영·한 洪·永·漢 식·모·환 植·模·桓 응·병 應·炳
태사공(인관) 후 상촌공(자수)파 <太師公(仁琯) 后 桑村公(自粹)派>
世 24 25 26 27 28
항렬자 行列字 재·희·수 載·喜·秀 상·용 商·容 제·호·원 濟·浩·遠 동·원·흠 東·元·欽 환·렬·기·홍 煥·烈·冀·鴻
29 30 31 32 33
기·주·집·식 基·周·執·植 호·종 鎬·鍾 연·택·녕 淵·澤·寧 직·의 稙·義 병·범 丙·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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