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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의 확실성: 불확실성 시대의 수학
모리스 클라인(Morris Kline, 1908-1992)저, 심재관역, 사이언스북스, 2007.03.30, P. 638.
수학: 확실성의 상실(Mathematics: The Loss of Certainty, 1980), Oxford University Press.
이 책이 대우 총서에서 처음 번역되었을 때, 1988년인가로 기억한다. 그리고 90년에 이 책을 프랑스에까지 가지고 갔었다. 공간의 역사, 수학의 약점, 다음으로 이 책을 읽으면 좋다고 많은 사람에게 권하기도 했다. 프랑스에서 끄세쥬의 수학사(산술학을 중심으로 하는)를 보고 다른 책을 보면서, 그 책을 다른 사람 주었다. 이번에 이 책을 검토하게 된 것은 수학의 무한, 철학의 무한(Infini des mathematicien, Infini de philosophes, Belin, 1992)(프랑수아즈 모노외르, 박수현역, 해나무, 2008, P. 267.)를 읽으면서 참조하기 위해 이곳저곳 펼쳐보았다.
그 당시 이 책을 읽으면서 수학사는 서양 철학사와 나란히 간다는 생각을 했었고, 앞 부분은 강의에 많이 이용도 했었다. 수학사의 이해는 서양 형이상학의 이해의 길이기도 하다. 이번에 이 책을 검토하면서 보니, 내가 13장 이후는 거의 기억이 안 난다. 그냥 파국 정도로 끝나는 것으로 기억하고 있는데, 지금 보니 파국이 아니라 고립이다. 19세기 중반 이래로 무모순과 완전성이라는 지위는 사라졌다. 또 칸토어에 의해 새로운 열려지고 괴델에 의해 펼쳐진 다양한 무한으로 수학은 진리라는 개념이 사라지고 실재성이라는 것도 없다고 여긴다. 수학들(mathematiques) 복수의 개념으로 쓰이듯이 여러 성채가 있는 셈이다. 각 성채들은 아직도 물리적으로 응용 가능한 부분이 많다는 점에서 수학은 여전히 유용하다.
그래도 나는 수학이 다루는 개념들의 세계가 물리학적 세계와 차이가 있다고 여긴다. 그리고 이렇게 수학이 기호(symbole)로 자신의 정합성의 영역을 넓혀간다고 하는 것이고, 또한 인간의 정신(l'esprit)의 산물이다. 그렇다고 인간의 삶의 영혼(l'âme, gr. psyche)에 대한 해답을 주지 못한다는 의미에서 영역상 다른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 영혼의 희박화를 정신으로 보기에는 수학이 그 나름의 재미와 독특한 성질이 있다. 또한 정신과 영혼의 정도의 차이로 보아서는 안 된다. 그래서 정신이 다루는 추상의 세계와 영혼이 연관하는 삶의 세상 사이에는 차이와 ‘차히’만큼의 다른 위상이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42WLE)
참조:
수학의 역사(상 하) (A history of mathematics 1968, 1989, 1991)
상, 칼 B. 보이어 저 | 양영오, 역 | 경문사 | 2000.07.20 페이지 576|
하 칼 B. 보이어 저 | 조윤동, 양영오 역 | 경문사 | 2000.07.20 페이지 560|
보이어(Carl Benjamin Boyer 1906-1976) A History of Mathematics, and The Rainbow: From Myth to Mathematics / 메르쯔바흐(Uta C. Merzbach )
수학사(An Introduction to the History of Mathematics)
하워드 이브스/ 이우영, 신항균 경문사 2005,3,25/4*6/616
이브스(Howard Whitley Eves 1911-2004) 미국 수학자, 수학사가. Introduction to the History of Mathematics, 1990
수학적 경험(The Mathematical Experience)(1981, 1999)
필립 J. 데이비스, 로이벤 허시공저, 양영오, 허민역경문사 2006.11.10 가격 :...
필립 데이비스(Philip J. Davis 1923) 미국 응용수학자.
로이벤 허시(Reuben Hersh 1927) 미국 수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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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책을 시작하며 9
서론 : 테제 13
- 수학의 앞날을 내다보는 참된 방법은 그 역사와 현재의 상태를 살펴보는 것이다. - 앙리 포앙까레 (13) [푸앵카레(Jules-Henri Poincaré 1854-1912) 프랑스의 수학자․이론천문학자․과학철학자. 우주진화론, 상대성이론, 그리고 위상수학에 영향을 미쳤다.(44OLE)]
수학이 여전히 효율성을 발휘하고 있다는 사실은 두 가지 논의 주제를 우리에게 던져준다. / 첫 번째는 수학의 효용성을 타당성의 준거로 삼을 만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 / 두 번째 주제는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에 관한 것이다. 우리는 아직 타당한 수학이 어떤 것인지 의견 일치를 보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왜 수학이 효용성을 지니는 것일까? (22) [영국의 공리주의와 미국의 실용주의가 생명사상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하고 있는 것은 수학의 확실성이나 진리성에 있은 것이 아니라 효용성에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1장 수학의 창세기 23
- 이와 같은 진리에 다다른 이여! / 그래서 반짝이는 하늘에서 장막을 걷어 낸 이여! 이들의 영혼에 은총이 가득하기를! / 그들은 저 멀리 있는 별들도 명료하게 볼 수 있게 했다. / 그리고 사고의 힘으로 사슬을 만들어 천상의 세계를 옭아맸다. / 산 위에 또 산을 쌓는 오만한 옛날 방식을 쓰지 않고서도 / 이렇게 해서 천상에 닿게 되었다. - 오비디우스 (23) [오비디우스(Publius Ovidius Naso BC 43-AD 17) 로마의 시인. 변형담 Métamorphoses (44OLE) ]
2장 수학적 진리의 개화 59
- 외부 세계를 탐구하는 주된 목적은 [신]하느님이 세워 놓고 수학의 언어로 우리에게 계시한 합리적 질서와 조화를 발견해 내는 것이다. - 요하네스 케플러(59) [케플러(Johannes Kepler 1571-1630) 독일의 천문학자 (44OLE)]
3장 자연은 수학으로 씌어진 책이다 93
- 어떤 이론이든 간에 그 이론이 얼마나 엄밀한 과학인가 하는 문제는 전적으로 그 안에 담긴 수학의 양에 따라 결정된다. - 이마뉴엘 칸트 (93) [칸트(Immanuel Kant, 1724-1804)는 이념의 통일성을 믿었으나, 마이몬(Salomon Maimon, 1754-1800)은 미분에 대한 새로운 견해를 제시한다. (44OLE)]
4장 첫째 위기: 수학적 진리의 퇴색 125
- 시대마다 신화가 있게 마련인데 그 당시에는 그것을 드높은 진리라고 부른다. - 무명씨 (125)
[수학이 19세기에 와서, 기하학이 하나의 연역체계도 아니고, 수론이 하나의 규칙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여러 측면에서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수학은 확실성이라기보다 정해진 한계 내에서 자기충족성을 보장하는 인간의 놀이 중의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이 놀이가 경험과 결부되어 무척 재미있다는 점이다.(44OLE)]
라플라스(Pierre Simon de Laplace, 1749-1827) 프랑스의 천문학자, 수학자.
푸리에(Baron de Fourier, 1768-1830) 프랑스의 수학자, 수리과학자. 열전도론(熱傳導論 la propagation de la chaleur)을 연구하여 1807년 「열의 해석적 이론」을 제출하였고, 1822년 열의 이론으로 확대되었다.
가우스(Karl Friedrich Gauss, 1777-1855) 독일의 수학자. 대수학․해석학․기하학
코시(Augustin Cauchy, 1789-1857)
가우스, 코시, 푸리에를 위시한 수많은 학자들의 업적은 자연의 참된 법칙들이 속속들이 발견되어 가고 있다는 움직일 수 없는 증거로 여겨졌다. .. 이 이론들은 자연의 숨겨진 비밀을 캐내는 데 성공적으로 활용했다. 그들은 수학자들이야말로 [신]하느님의 설계를 발견해 내는 축복받은 자들이라는 믿으메 최면이라도 걸린 듯 자연의 수학적 법칙을 찾는 일에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다. (129-130)
자연 법칙의 불변성을 주장하면서 은연중에 하느님의 능력에 제한을 가한 사람은 데카르트 였다. 뉴턴도 변하지 않는 질서를 믿었지만 세계가 하느님 계획에 맞게 움직여 나가게 하려면 끊임없이 하느님 자신이 개입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그는 시계를 계속해 고치는 시계 수리공에 비유를 했다. .. 따라서 신이 계속 유지되어 가도록 끊임없이 개입하지 않는다면 태양계의 안전성은 곧 깨어져 버릴 것이라고 여겼다. (131-132)
라이프니츠는 이런 생각에 반대했다. .. “뉴턴의 견해에 따르며, 하느님은 .. 운동을 영원히 지속하게 할 수도 없는 듯 보입니다. .. 제 견해로는 .. 자연법칙에 따라 한 사물에서 다른 사물로 옮겨 갈 따름이라고 여겨집니다.” (132)
자연이 신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가우스는 “자연이여! 당신은 저의 여신입니다. 그대의 법칙에 저의 모든 정성을 바칩니다.”라고 했다. 가우스는 영원히 존재하는 전지전능한 신을 믿었지만, 신에 대한 믿음과 수학 연구 사이에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생각했다. (133)
해밀턴(William Rowan Hamilton 1805-1865) 아일랜드 물리학자. 천문학자. 수학자.
되돌아보면, 신이 자연을 수학적으로 설계했다는 믿음은 바로 수학자들의 연구로 인해 붕괴되어 가고 있었다. (134)
디드로(1713-1784)의 자연해석에 대한 고찰(Pensées sur l'interprétation de la nature (1753)에서 수학자들은 노름꾼과 같다고 말했다. .. 수학자들이 연구하는 주제는 약속으로 정한 대상으로 현실 세계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말했다. (135)
흄(David Hume 1711-1776)은 물질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회의적인 눈길을 보냈다. 구체적 대상물로 가득 찬 세계가 영원히 존재한다고 어느 누가 장담할 수 있는가? (136) .. 이렇게 해서 흄은 자연 법칙의 불가피성과 영속성, 그리고 불가침성을 허물어 버렸다. (136-137)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철학의 대담함은 인상적이기는 하지만 기하학에 대한 그의 견해는 대담함을 넘어서 경솔하기까지 하다. 동프로이센에 있는 자신은 고향 쾨니히스베르크에서 60킬로미터 이상 벗어난 적이 없었는데도 우주 전체의 기하 체계를 결정해 낼 수 있다고 믿었으니 말이다. (139)
그렇다면 과학의 수학적 법칙은 어떠한가? 칸트에 따르면 모든 경험이 공간과 시간이라는 마음의 형식을 통해 받아들여지므로 수학은 모든 경험에 적용 가능해야만 한다. 자연과학의 형이상학적 근거(Metaphysische Anfangsgründe der Naturwissenschaft, 1786; Premiers Principes métaphysiques de la science de la nature)(62세)에서 칸트는 뉴턴의 법칙과 그 법칙이 내포하는 결과를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 “뉴턴은 우주 구조에 대해 너무나도 명료한 통찰을 주었기에 이 법칙은 영원히 변치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139)
비유클리드 기하학은 자기 충족적이고 전능한 인간 이성의 모든 업적을 한 순간에 허물어 버릴 괴물이었다. (141)
그 공리는 평행선 공리로, 종종 유클리드 의 제5공준이라고도 부른다. / ‘한 직선이 다른 두 직선을 지난다고 하자. 이 때 같은 쪽에 있는 두 내각의 함이 두 개 직각보다 작다면, 두 직선을 연장할 경우 두 직선은 두 내각의 합이 두 개 직각[2직각]보다 작은 쪽에서 서로 만난다.’ (142)
물리 공간에 실제로 무한 직선이 존재한다고 확신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였다. (143)
이미 그리스 시대의 수학자들도 평행선 공리가 제기한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종류의 시도가 있었다. 첫째는 평행선 공리 대신에 좀 더 자명해 보이는 진술을 채택하는 것이었다 [대체의 공리를 만드는 것]. 둘째는 유클리드의 나머지 아홉가지 공리에서 평행선 공리를 연역해 내는 것이었다. 평행선 공리를 연역해 낸다면 공리는 정리가 될 것이고, 그러면 더 이상 의문의 여지가 없어진다. (143)
대체의 방식에는 존 플레이페어(John Playfair, 1748-1819)가 1795년에 제안 .. [그러나 답이 아니었다.] / 연역의 시도 .. 사케리(Giovanni Girolamo Saccheri 1667-1733)의 입증은 잘못이어서 여전 미제로 남게 되었다. (145-146)
클뤼겔(Georg Klügel 1739-1812)
하인리히 람베르트(Heinrich Lambert 1728-1777) .
케스트너(Abraham Gotthelf Kastner, 1719-1800)
이렇게 해서 세 사람은 모두 비유클리드 기하학의 존재를 인식하게 되었다. (147)
가우스(Karl Friedrich Gauss, 1777-1855)
슈마허(Heinrich Christian Schumacher 1780-1850) 독일 천문학자.
보야이(Farkas Bolyai, Wolfgang Bolyai 1775-1856) 헝거리 수학자.
로바쳅스키(Nikolai Ivanovich Lobachevskii, 1792-1856)
보야이(Janos Bolyai 1802-1860) 퍼르커스 보야이의 아들
가우스, 로바체프스키, 그리고 보여이는 유클리드의 평행선 공리가 아홉 가지 나머지 공리들로부터 증명될 수 없으며, 유클리드 기하학을 구성하기 위해서는 어떤 형태로든 평행선에 관한 공리가 추가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유클리드의 평행선 공리는 독립적이기 때문에 이와 배치되는 공리를 채택하여 새로운 공리 체계를 바탕으로 결과를 얻어내도 최소한 논리적으로는 문제가 없었다. (150)
따라서 1830년대에는 일부 사람들이 비유클리드 기하학을 받아들였고 또 물리 공간에 응용이 가능한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153)
게오르크 리만(Georg Friedrich Bernhard Riemann, 1826-1866) 가우스제자.
리만의 목표 가운데 하나는 유클리드의 공리가 자명한 진리라기보다는 경험적 진리라는 점을 보여 주는 것이었다. 그는 해석학적 방법을 채택했다. (154)
무한하지 않은 공간이면서 경계가 없을 수 있다는 리만의 생각은 또 다른 비유클리드 기하학의 성립을 가져왔는데, 이 기하학은 현재 이중 타원기하학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155)
벨트라미(Eugenio Beltrami, Eugène Beltrami, 1835-1900) 이탈리아 수학자, 물리학자
케일리(Arthur Cayley 1821-1895) 영국의 수학자.
베셀(Friedrich Wilhelm Bessel 1784-1846) 독일 수학자 천문학자.
1817년 올베르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가우스는 이렇게 썼다. “유클리드 기하학의 물리적 필연성이 최소한 인간 이성으로 또 인간 이성을 위해서 증명되기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에 대한 저의 확신은 점점 더 강해져가고 있습니다. ..기하학은 당연히 역학과 같은 부류로 취급되어야 합니다.” 칸트와 달리, 가우스는 역학법칙을 진리로 받아들이지 않았다.(157)
올베르스(Heinrich Wilhelm Olbers, 1758-1840) 독일천문학자, 물리학자, 의사.
수학자 칸토어(Georg Cantor 1845-1918)는 무지의 보존법칙을 언급했다. 잘못된 결론이 사람들 사이에 널리 받아들여지고 나면 사람들 생각에서 이를 제거해 내기 어려우며, 또 그것에 대한 이해가 불충분하면 불충분할수록 더 깊이 뿌리를 내리게 된다는 것이 무지의 보존법칙이다. (158) [파랭이들이 선전하는 무지보존법칙은 저세상이 있다는 것이다. 이 파랭이가 착각에 빠졌다고 하면, 파랭이는 이 말을 하는 자들을 빨갱이로 몬다. 빨강이는 그것이 소리뿐인줄 알지만 무지보존법칙을 선전선동하는 목사와 재벌은 상징을 실재성이라고 한다. 지금도. (44OLE)]]
또 리만의 1854년 논문이 1868년에 출간되면서 많은 수학자들은 비유클리드 기하학이 물리 공간의 기하학이 될 수도 있고, 또 어떤 기하학이 참다운 진리인지 더 이상 확신할 수 없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다른 기하학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 자체만으로도 충격이었다. (148-149)
막스 플랑크(Max Planck 1858-1947)
진리는 수에 있으며, 수는 산술, 대수, 미적분학, 고등해석학의 여러 분야의 기초가 되고 있었다. 그래서 야코비(Carl Gustav Jacobi, 1804-1851)는 “신은 항상 산술을 연구하신다.”라고 했다. 플라톤이 지적했듯 신은 기하학을 연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159) [그럼 기하학은 질적단위 직관인데, 산술의 단위는 직관인데 그 이외는 모두 경험이다. 즉 2는 직관이 아니다. (44OLE)]
벡터는 힘, 속도 등과 같이 방향과 크기 모두가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물리량의 표시에 사용된다. (160)
베셀(Caspar Wessel 1754-1818) 노르웨이 덴마크 수학자.
아르강(Jean-Robert Argand 1768-1822), 스위스 수학애호가
즉 자연수 및 분수가 상업거래를 기록하는 데 쓰이듯, 복소수는 벡터의 대수로 사용되는 것이다. 따라서 기하학적 방식을 쓰지 않고 그 대신 대수적 방식으로 백터의 연산을 할 수 있게 되었다. (161)
편의상 실수를 1차원수, 복소수[a+bi]를 2차원수, 공간 안의 벡터와 그 연산을 .. 일종의 3차원수... (161) [4차원수는 행렬을 지칭한다.(OMA)]
1843년 일종의 3차원 복소수라고 할 만한 수를 해밀턴(William Rowan Hamilton 1805-1865)이 만들어 냈다. .. 해밀턴이 성공을 거두었지만 어쩔 수 없이 양보해야할 것이 두 가지 있었다. 첫째 그가 찾아낸 새로운 수는 네 가지 성분을 갖고 있었고, 둘째로 곱셈에서 교환 법칙을 희생해야 했다. 이 두 가지 특성은 대수학에서 혁명적인 것이었다. 그는 새로 얻은 수를 사원수(quaternion)이라 불렀다. (162) [실수의 집합(l'ensemble des nombres réels)은 복소수의 집합(l'ensemble des nombres complexes)으로 확장되고, 이 후자는 사원수의 집합(l'ensemble des quaternions)즉 초과복소수(l'ensemble des nombres hypercomplexes)로 확장된다. (44OLG)] .
해밀턴이 4원수를 만들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아 다른 분야를 연구하던 수학자들이 그 보다 더 이상한 대수들을 도입했다. 유명한 대수 기하학자 케일리가 도입한 행렬(matrix)이 그것이다. (163)
그라스만(Hermann Günther Grassmann 1809-1877)의 연구 결과는 현재 초수(hypernumber)로 불리는 새로운 유형의 대수를 만들어냈다. (164)
그베그(Henri Lebesgue 1875-1941)가 익살스럽게 말했듯이, 한 우리에 사자 한 마리와 토끼 한 마리를 넣어 놓으면 나중에 우리 안에 두 마리 동물이 모두 남아 있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165)
따라서 수학자들로서는 수학에는 진리가 없다는 결론을 내리지 않을 도리가 없다. .. 자명한 진리로부터 출발한 연역적 증명만으로 수학의 참됨을 담보하려던 그리스 인들의 시도는 부질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169)
[해밀턴(William Rowan Hamilton 1805-1865), 케일리(Arthur Cayley 1821-1895), 러셀(Bertrand Arthur William Russell, 1872-1970) 등은 수학이 확실성을 그래도 주장하는 쪽ㅇ이다. 이들이 바뀌는데 물리학적 사실들이 여럿 등장해야 가능하다. 그런데 베르그송은 어찌 일찍이 수학의 불확실성을 간파했을까? (44OLE)]
하지만 차츰 수학자들은 수학의 공리와 정리가 물질 세계에 관한 필연적 진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다. 특정 영역의 경험은 특정한 공리들을 채택하게 된다. 그리고 그 공리들과 그 공리들의 논리적 귀결은 그 영역을 정확하게 시술하는 유용한 도구로 사용된다. 하지만 그 영역이 확대되면 적용 가능성은 소멸될 수도 있다. (172)
수학도 경험에서 그 원리를 도출해 내며 또 더 이상 그 원리들이 진리라고 주장하지 못한다는 점을 인식하게 되자 과학자들은 수학의 공리와 정리를 사용하는 한 과학이론은 그 보다 취약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자연법칙은 인간이 만들어낸 산물이다. 신이 아니라 인간 자신이 우중 질서를 부여한 것이다. (174)
그러나 1850년이 되자 수학자들은 다음과 같이 탄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 하지만 나는 잘 알고 있으니 내가 어디로 가든 / 지상에서 사라져 버린 영광은 더 이상 찾을 수 없다는 것을. (176)
갈르와(Evariste Galois, 1811-1832)(21살) 19세에 군론
(44OLE)
5장 논리적 주제의 비논리적 발전 179
- 우리는 슬퍼하지 않으리라. / 우리에게 남겨진 것에서 힘을 얻으리니. - 워즈워스 (179) [워즈워스(William Wordsworth, 1770-1850년)(80살)는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이다.]
[기하학과 산술학이 둘 다 인간의 창조물이라는 생각은 비유클리드 기하학과 사원수가 창조되면서 알게될 것이다. 기하학의 정의(definition)와 개념은 증명이 필요 없는 것이었을까? 아니면 경험의 축적을 통한 직관의 지지를 받은 것일까? - 비논리적 발전이란 연역에 의존하기 보다 경험에 근거하기 때문일 것이다. (44OMA)].
지난 2000년 동안 수학자들은 자연의 수학적 짜임새를 매우 성공적으로 밝혀내고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이제는 수학 법칙이 진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181)
하지만 진리에 대한 주장을 포기하게 한 것은 수학자 스스로 만들어 낸 창조물, 바로 비유클리드 기하학과 사원수였다. (181)
유클리드의 일부 정의를 살펴보자. / 정의 1. 점이란 어떤 부분도 갖지 않는다. / 정의 2. 선(지금 사용하는 용어로는 곡선)은 폭도 없고 길이만 있는 것이다. / 정의 4. 직선이란 그 위의 점이 균등하게 놓여 있는 선이다. (182-183)
유클리드는 아리스토텔레스를 따라 모든 추론에 적용되는 다섯 가지 일반 개념과 기하학에만 적용되는 다섯 가지 공준을 명시했다. .. 일반개념 가운데 하나는 “주어진 대상물과 동일한 대상물들이 있을 때 이 대상물들은 서로 동일하다.” .. “서로 일치하는 것은 동일하다.” [유클리드가 다루지 않는 것, 대상물, 이동, 사이에 있다, 연속성 등 많이 있다.] (183-184)
그림 5.1에서 직선 l의 한쪽 편에 있는 점A와 다른 편에 있는 점 B를 직선으로 연결하면 l과 교점이 생긴다는 사실을 유클리드는 공리로 사용했다. 그림을 보면 이 사실은 너무도 명확하다. 하지만 직선에 관한 어떤 공리에서도 교점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연역되지 않는다. 그리고 직선 l에 대해 두 편만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것 역시 공리를 필요로 한다. (185) [한 개념 l을 연역하여 교점과 두 편이라는 것이 연역될 수 없지만 그림으로 그려보면 당연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런 점에서 유클리드는 그 시대의 상식과 인간의 일반지각을 기반으로 이루어졌다는 생각을 해볼 필요가 있다. (44OLE)]
아이작 배로(Issac Barrow 1630-1677) 뉴턴 스승..
헨리 스미스(Henry John Stephen Smith 1826-1883) 영국 수학자
자연수를 논리적으로 다룬 최초의 사례는 유클리드의 기하학 원론의 제7권, 제8권, 제9권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여기서 유클리드는 예컨대 단위(unit)와 수(number)를 정의하고 있는데, ‘단위’란 그로 말미암아 대상물 하나 하나가 존재하는 것이라고 정의했고, ‘수’는 단위가 모여 무리를 이룬 것이라고 정의했다. (186) [수론이 기하학보다 중요하다고 한다면 단위설정의 문제일 것이다. √2가 단위 기하학적 단위이면서 덩어리로서 하나(수)이다는 것이다. (44OLE)]
따라서 현재 √2로 표현되는 비는 통약불가능 비가 된다. 통약불가능 비는 메타폰툼의 히파소스(Hippasos, 기원전 5세기)가 발견했다고 한다. 전승에 따르면 피타고라스 학파 사람들은 ... 그를 바다에 던졌다고 한다. (187)
플라톤은 법률에서 통약불가능 비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때 플라톤의 제자였던 에우독소스는 이 문제에 해결책을 제시했는데 그것은 모든 양을 기하학적으로 생각하는 방법이었다. (188) [플라톤(Platon, 기원전 427-347) 에우독스(Eudoxe de Cnide -408 ? -355)]
알렉산드리아 문명의 가장 뛰어난 업적은 히파르코스(Hipparchos, 기원전 190?-120?)와 프톨레마이오스(Klaudios Ptolemaeos, 기원후 85?-165?)가 만들어낸 계량 천문학이다. (191)
디오판토스(Diophantos, 3세기경)와 더불어 알렉산드리아 대수학은 최고 정점에 올라선다. 그의 출신이나 생애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 ... / 디오판토스의 주요 업적 가운데 하나는 대수학에 기호를 도입한 일이다. (193)
이렇게 그리스인들은 서로 상이한 두 가지 수학 분야를 후세에 남겨 놓았다. 한쪽에는 다소 결함이 있기는 하지만 연역적이고 조직적인 기하학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경험적 산술과 그것을 확장하여 얻은 대수학이 있었다. (196)
인도: 브라마굽타(Brahmagupta 598-665), 바스카라(Bhaskara 1114-1185)
훌륭한 계산 방법이나 풀이 기법을 개발해 낸 인도인들이 증명에 관심을 기울였다는 증거는 보이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법칙이 있었지만 논리적 섬세함을 볼 수 없다. (198)
파치올리(Luca Pacioli 1445-1514경), 슈티펠(Michael Stifel 1486-1567), 카르다노(Gerolamo Cardano 1501-1576), 스테빈(Simon Stevin 1548-1620) 등은 매우 다양한 유형의 무리수를 도입했다. (201-202)
비에뜨(François Viète, en latin Franciscus Vieta, 1540-1603) 프랑스 수학자.
해리엇(Thomas Harriot 1560-1621) 대수학
지라르(Albert Girard 1595-1632) 프랑스 출신 홀란드 수학자.
무리수와 음수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상황에서 오늘날 복소수라고 부르는 새로운 수가 출현함으로써 유럽인들의 지적 부담감은 더욱 커져 갔다. (206-207)
카르다노(Gerolamo Cardano 1501-1576)는 자신의 책 위대한 기법(1545).. (207)
데카르트도 복소수 근을 배격하면서 허수라는 말을 만들어 냈다. .. / 뉴턴마저도 복소수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208)
라이프니츠의 말 ..“신령한 혼이 경이로운 해석학에서 숭고한 출구를 발견했으니, 이상적인 세상을 전해 주는 경이로운 대상, 존재와 비존재 사이를 오가는 양서류, 바로 우리가 -1의 허근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208-209)
월리스(John Wallis 1616-1703) 대수학(1685)
오일러(Leonhard Euler, 1707-1783) 대수학 완전 입문(1770)
라이프니츠와 베르누이는 복소수에 대해 데카르트가 채택했던 ‘허수’란 용어를 사용했다. ../ .. 여러 해 동안 수많은 편지가 라이프니츠와 베르누이 사이에 오갔다. 하지만 말도 되지 않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212)
라이프니츠(Gottfried Wilhelm von Leibniz 1646-1716)
쟝 베르누이(Jean Bernoulli, Johann Bernoulli, 1667-1748)
더욱이 4차나 5차 같은 고차 방정식의 경우에는 3차원까지만 다루는 기하학이 증명의 논거로 사용될 수 없었다. (215)
비에뜨(François Viète, 1540-1603)는 자신의 새로운 대수학을 수치 계산(logistica numerosa)에 대비하여 유형계산(logistica speciosa)이라고 불렀다. .. 그는 분석기법입문(1591)에서 수치계산과 유형계산을 구별하면서 산술과 대수학 사이에 구분선을 그어 놓았다. (216)
하지만 사람들은 대수학이 지닌 힘을 17세기까지 깨닫지 못했다. 대수학 분야에 획기적인 진전을 이룬 사람은 데카르트와 페르마였다. [첫째 혁신] 바로 이들이 해석기하학(대수적 기하학이라고 불러야 마땅하다)을 창안해 냈다. 해석기하학의 기본 생각은 곡선을 방정식으로 표시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x2+y2=25[52]는 반지름이 5인 원을 나타낸다.(218)
대수학을 전면에 내세웠던 둘째 혁신은 함수 표현에서 대수적 식의 사용이었다. 주지하다시피 갈릴레이는 물체 운동을 식으로 기술할 수 있다는 착상을 내놓았다. (218)
보편 산술에서 뉴턴은 산술과 대수학을 수리 과학의 기초로 만들어 놓았으며, 기하학은 증명이 필요할 경우에만 사용했다. (220)
수 체계와 대수학의 발전은 기하학의 발전과 극명하게 대조된다. 기하학은 기원전 300년에 이미 연역적으로 체계화되었다. 일부 결함이 있었으나 이런 결함은 곧 보완되었다. 하지만 산술과 대수학에는 논리적 기초가 전혀 없었다. 논리적 기초가 없다는 점 때문에 수학자들은 불편함을 느꼈다. (220)
거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자연수와 분수의 성질을 받아들이는 근거는 분명코 경험이었다. 새로운 유형의 수가 수 체계에 보태어지자 경험을 근거로 양의 정수와 분수에서 이미 인정받고 있던 연산법칙이 새로운 원소에도 적용되었다. .. 분명히 4차 방정식의 해법 같은 경우는 기하학적으로 증명해 내기 불가능했다. (221)
둘째로 대수학 성립 초기, 특히 16세기와 17세기에 대수학은 그 나름의 논리적 기초가 요구되는 독립된 수학분야로 인정받지 못했다. 대수학은 기하학적 문제를 분석하는 한 방법으로 여겨졌다. (221)
끝으로, 음수 및 무리수의 사용과 대수학의 사용으로 얻은 과학 연구 결과는 관찰 및 실험 내용과 완벽하게 일치했다. (222)
6장 비논리적 발전: 해석학이라는 수렁 225
- 누구나 어떤 방향으로든 우선 연구를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시작은 항상 불완전하며 또 실패로 마무리되는 일이 많다. 꼭꼭 숨겨져 있어 모든 길을 다 가 본 후에야 최선의 길을 찾아낼 수 있는 그런 진리들이 있다. 사람들에게 올바른 길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누군가 반드시 잘못된 길로 들어설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우리는 진리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먼저 오류를 경험해야 하는 운명을 타고난 존재들이다. - 드니 디드로 (225) [디드로(Denis Diderot, 1713-1784)]
[“가장짧은 거리”라는 개념이 들뢰즈가 보았듯이 수학적 개념이라기보다 오히려 물리학적 개념이다. 차이와반복(원226, 번382) 해석학에서 미분이라는 가장 짧은 양은 수학적이라기 보다 기계적이며, 원자론적 발상에 가깝다. 이런 점에서 데모크리토스의 원자와 플라톤의 이데아의 유사성도 생각해 볼만하다. 데모크리토스가 산술적이라면 플라톤은 기하적이지만, 그 단위는 경험에 근거한다는 점은 같은 점일 것이다. 둘다 잴 수 있는 단위라는 것이다. 미분도 마찬가지로 잴 수 있는 양이다. 그럼에도 그 양은 질적이라고 보았던 것이 플라톤과 라이프니츠의 공통점이며, 미분의 크기와 질이 다르다는 것은 데모크리토스에서도 마찬가지이다. (44OMA)]
미적분학은 함수 개념을 활용한다. 함수는 간단히 말해서 변수 사이의 관계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지붕 위에서 공을 떨어뜨리면 낙하거리와 낙하시간이 늘어난다. (227)
미적분학은 함수만이 아니라 훨씬 더 복잡하고 새로운 개념 두 가지를 도입했다. 바로 도함수와 정적분으로 이는 수에 필요한 논리적 기초와 다른 논리적 기초를 필요로 한다. (228) [기하의 동일율의 논리적 기초와 다른 논리적 기초를 필요로 한다. 이 계산방식에 만 있는 것이 아니라 미분소의 정확한 지위가 무엇인가를 아는데 있다. 그 미분소가 무리수 일 수 있고 게다가 힘의 벡터에는 허수계산이 포함된다. 그러면 실수가 아닌 수의 위상이 문제된다. 들뢰즈는 이 미분소가 경험의 부분이지 원리와 법칙의 부분과 다른 것이다. 전자는 세분소이며 후자는 인간이 인위적으로 나눈 가상이라는 것이다. (44OLF)]
위대한 수학자들이 이 두 가지 개념의 연구에 힘을 기울였다. .. 케플러(Johannes Kepler, 1571-1630, 데카르트(Descartes, 1596-1650), 보나벤투라 카발리에리(Bonaventura Francesco Cavalieri, 1598-1647), 페르마(Fermat 1601-1665), 파스칼(Pascal, 1623-1662), 그레고리(Gregory 1638-1675), 하위헌스(Christiaan Huygens, 1629-1695), 배로(Isaac Barrow, 1630-1677), 월리스(John Wallis 1616-1703), 뉴턴(Isaac Newton 1642-1727), 라이프니츠(Leibniz 1646-1716)가 있다. (228) [학문은 어느 한 사람이 위대하다고 창안되는 것이 아니다. 인류의 상호 협력과 지속적 논의 속에서 발전된 것이다. (44OLF)]
[첫째 난점] 도함수 ... 순간 속도... .. 뉴턴의 도함수 기호 ḋ [디 위에 점찍어 표현했단다.] [즉 일정시간이 지난 후 미소부분(도함수)의 증가량에 최소 시간의 증가에서 속도의 크기는 미소부분에서 크기이지 증가분의 크기는 사라진다. 소위 0.0001의 증가분을 덧붙여서 설명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증가분 없는 미소 증가량이 불연속의 단위가 된다. 그러면 운동의 연속성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난제이다. 논리상 증가분, 즉 연속이 있는데도 그 점의 크기는 도함수에서 사라진다. (44OLF)]
낙하운동에서 d=16t2 ... d는 거리, t는 시간, .. [h는 시간의 미세한 증가분(미분 dx) k는 거리(공간)의 미세한 증가분(미분 dy)] ... (230) [여기에서 dy/dx는 운동하고 있는 한 제로(0)일 수 없다. 그런데 미분의 극한에서 거의 제로인 경우에 상정해야 한 점에서 운동양이 결정된다. 이 비례의 결정성은 불연속이다. 그러면 연속적인 의미를 어떻게 나타낼까? 아직 결정가능성이라고 해야하지 않을까? 이미 결정된 것과도 매우 다르다. - 시간의 증가와 공간의 증가라는 두 개의 상호비례에서 시간은 이미 공간화되어서 상호 관계 속에서 설명하고 있다. / 한 점의 연속성과 불연속의 문제 고대철학의 문제만은 아니다. 베르그송은 이것을 공간으로 간주할 것이 아니라 시간(생명)으로 연속성으로 보아야 한다고 한다. (44OLG)]
미적분학의 창시자들을 당혹케 한 둘째 개념, 즉 정적분을 살펴보자. 정적분은 전부나 일부가 곡선으로 둘러싸인 영역의 넓이, 곡면으로 둘러싸인 도형의 부피, 다양한 형태의 입방체의 무게중심 등을 계산할 때 쓰인다. (232)
카발리에리(Bonaventura Francesco Cavalieri, 1598-1647)는 자신의 책 여섯 가지 기하학 문제(1647)에서 목걸이가 구슬로 만들어져 있고, 옷감이 실로 짜여 있듯이, 또 책이 수백 쪽으로 이루어져 있듯이, 영역은 분할 불가능 영역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설명’했다. (236) [최소 단위의 긍정과 그 합을 이야기했다.]
카발리에리의 비판자... 굴딘(Paul Guldin 1557-1643)
카발리에리는 “엄밀함은 철학의 관심사이지 기하학의 관심사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237)
[파스칼은] 미적분에 등장하는 기하학의 역설은 얼핏 보기에 불합리하게 보이는 그리스도교의 진리와 비슷하며, 기하학의 분할 불가능 영역은 하느님의 정의와 비교했을 때 인간의 정의가 지니는 만큼의 값어치를 갖고 있다고 여겼다. (237) [단위 전체는 신의 것인데, 그 미분단위는 인간의 것이다. 인간의 것 일체를 합한다고 신의 것이 되는 것이 아니다. 파스칼은 이 단위가 이성의 단위가 아니라 심성의 단위라고 생각한 듯하다. 인간의 오류와 달리 신은 진리라고 생각했을 것이니깐. 단위 일체는 인간의 공감의 지각이며, 부분은 이성의 분석이며 또한 감성의 부분들이다. 일체의 단위는 n승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경험의 총체(적분)이며, 불연속이라는 점이다. (44OLF)]
뉴턴은 미적분학에 대한 세 편의 논문을 썼고 최대의 역작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제1판 1687)를 제3판까지 냈다. 첫째 논문(1669)에서, 도함수를 찾는 방법 .. h와 k를 분할불가능한 양이라는 사실을 사용했다. [그러나 뛰엄뛰엄 분할 분가분한 양.. ] .. [h는 시간의 미세한 증가분(미분 dx) k는 거리(공간)의 미세한 증가분(미분 dy)] 둘째 논문(1671)에서 ... 변수를 띄엄띄엄 변하는 양으로 - 이 경우에 h는 분할불가능한 단위가 된다 - 보는 대신 연속적으로 변하는 양으로 파악한 것이다. .. 하지만 유율(fluxion)을 계산하는 과정과 논리는 첫째논문과 본질적 차이가 없다. /.. 셋째 논문 곡선의 구적법(1676)에서 .. “유율이란 원하는 만큼 짧은 시간을 흘려보냈을 때 변량이 만들어내는 증가분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극미한 증가분의 비율이다.” 물론 이런 애매모호한 설명은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았다. 유율을 계산하는 방법에 관한 한, 뉴턴의 셋째 논문도 첫째 논문과 마찬가지로 논리적으로 세련되지 않았다. (238-239)
뉴튼의 수학연구 성과는 물리학적으로 옳았기 때문에 뉴턴은 미적분학의 논리적 기초를 세우는 일에 시간을 거의 할애하지 않았다. .. 그는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제1판 1687)에서 기하학적인 방법을 사용했으며, 극한에 관한 정리는 기하학적 형태로 표현했다. (240)
라이프니츠의 미적분학 전개방식은 다소 달랐다. 그는 h와 k가 감소하다가 결국에는[극한에서는] “극미하게 작은 값” 또는 “무한히 작은 값”에 도달한다고 주장했다. 이 단계에서 h와 k는 0이 아니지만 어떤 수보다 작다는 것이다. ... 그는 유율(도함수) k/h를 dy/dx로 표시했다. (241) [라이프니츠의 무한소의 대상이 존재하는 것으로 여긴 것은 프로이트가 죽음이라는 무한 소가 존재하는 것으로 받아들인 것과 같다. 베르그송은 무한소라는 것이 아니라 연속하는 단위이다. 이 단위를 흐름이라 했다. 이 흐름에서 보면 무한소라는 단위는 착각이다. 이 착각이 (신경질병이 아니라) 영혼질병을 만든다. (44OLG)]
라이프니츠는 또 적분의 개념에 대해서도 깊이 연구했으며.. 그는 h가 “무한히 작아지면” 무한 합[y의 극한의 값]을 얻는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 값을 ∫ydx표시했다. 그는 그러한 적분값을 계산해 낼 수 있었고, 또 현재 미적분학의 기본정리(fundamental theorem of calculus)라고 부르는 정리를 독자적으로 발견했다. .. 그는 첫째 논문을 1684년에 학술잡지 학술 기요(Acta eruditorum)에 실었다. (242)
라이프니츠는 무한소가 실재하지 않는 가공의 수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가공의 수가 일반적인 수에서 성립하는 법칙을 그대로 만족한다고 주장했다. .. 두 무한소의 비는 지정할 수 없는 양의 비율 또는 무한히 작은 양의 비율로 보았지만, 유한한 양의 비로 표시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242)
라이프니츠는 .. 베른하르트 뉘벤티트(Berhard Nieuwendijdt 1654-1718)의 비판에 대해 .. 그는 대수학자들이 허근을 유용하게 사용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러한 궁극적인 존재, 즉 “실질적으로 무한인” 양과 “무한히 작은” 양을 일종의 도구로서 활용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라이프니츠 시대에 복소수가 차지하던 위치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243)
라이프니츠의 연속 공리는 수학 공리가 아니었고, 지금도 역시 그 점은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그는 이 원리를 강조했고, 이 원리를 바탕으로 많은 주장을 폈다. (246)
라이프니츠는 그란디에게 보낸 편지에서, 무한히 작은 양이란 단순하고 절대적인 0이 아니라 상대적인 0, 즉 사라져 가지만 그 특성은 유지하는 양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다른 곳에서는 진정으로 무한히 큰 양과 진정으로 무한히 작은 양의 존재는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 (246) [a/0라는 정해지지 않은 양이 있고, 0/0라는 양으로 만들 수 없는 것이지만 사라져 가는 특성이 있는 양이 있다. - 전자에서 적분을, 후자에서 현실은 아니지만 현존하는 것으로 보아야 하는 것이다 있다. 기억과 무의식이다. 유용성에 쓰이지 않는 기억은 현재에 닿아있지만 현실적으로 현전하지 않는다. - 이것을 기하적 공리로도 산술적 재료로도 쓰이기 어렵다. 그럼에도 무화시키거나 배제할 수 없는 부정성(negativité)으로 현존하는 것이다. 가시적으로 느껴지지도 않고, 오성적으로 개념화도 안되며 이념적으로 구축되는 것이 아님에도 현재화하는 부정성을 “바닥도 둑도 없는 실재성”(베르그송), “구조없는 구조”(들뢰즈)라 부른다. / 귀도 그란디(Guido Grandi 1671-1742) 이탈리아 신부 철학자 기술자, 수학자. (44OLG)]
뉴턴이 “내가 다른 사람보다 멀리 내다볼 수 있었던 이유는 내가 거인들의 어깨 위에 올라서 있었기 때문이다.” (247) [이렇게 말한 사람이 여럿 있다. 그 중에 프로이트 제자인 아들러도.. 그리고 인류역사는 항상 후진세대 위에 선진세대가 나왔다.]
라이프니츠는 과정 또는 연산규칙으로서 가치를 존중하였다. [그가 언어를 명제계산 하려 하였던 것도 이와 같은 의미에서 일 것이다. (44OLG)]
17세기는 산술과 대수 뿐만 아니라 미적분학도 정돈되지 않은 상태에서 막을 내렸다. / .. 18세기의 위대한 수학자들은 미적분학을 크게 확장했을 뿐만 아니라 이로부터 완전히 새로운 분야를 탄생시켰다. 무한급수(infinite series), 상미분방정식과 편미분방정식(常微分方程式, ordinary differential equation, 偏微分方程式, partial differential equation), 변분법(calculus of variations), 복소수함수론 등, .. 이 모든 것을 통 털어 해석학(analysis)이라 이름이 붙었다.
x=1일 때 1/1+x을 나타내는 무한급수
1/1+x= 1-x + x2-x3+ x4-x5…… 는 다음과 같다.
= 1-1 + 1 -1 + 1 -1 …… = (1-1)+(1-1)+(1-1) …… [= 0 ] [제논]
로 쓰면 합은 분명히 0이 되어야 한다.
= 1-(1-1)-(1-1)-(1-1)…… [= 1] [비례단위는 직관상 1이다]
로쓰면 이번에는 1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S를 급수의 합이라 하면
S = 1-(1-1+1-1+1 …… )
= 1 - S
S = 1/2 이다. (251) [개연성 또는 확률의 경우]
라이프니츠는 0 1 0 1 로 계속된다고 생각했다. 이 생각에 따르면 1과 0이 답이 된다. 그 가능성의 정도가 똑 같다. 따라서 라이프니츠는 두 값의 산술평균, 즉 1/2을 급수의 합으로 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52)
다른 18세기 수학자들 역시, 현재 사용되는 용어를 빌리면, 수렴하는 급수와 발산하는 급수 사이에 구별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었다. (255)
미적분에 대한 철학자 버클리의 공격 ... (256-259)
오일러(Leonhard Euler, 1707-1783)가 형식적이고 올바르지 못한 접근 방식을 통해 미적분학에 공헌한 바는 기하학의 족쇄를 끊고 미적분학을 산술과 대수학의 기초 위에 세우려 했다는 사실이다. 이로서 오일러는 수에 기초를 둔 미적분학의 궁극적 정당화의 단초를 마련했다. (261)
미적분학의 기초에 관한 라그랑쥬(Joseph Louis Lagrange, it. Giuseppe Lodovico Lagrangia 1736-1813)의 연구를 상세하게 다룰 필요가 없다. (262)
라크르와(Sylvestre-François Lacroix 1765-1843)
릴뤼에(Simon L'Huillier, 1750-1840)
18세기 사상가들의 논증에서 찾아볼 수 있는 유별난 점 가운데 하나는 형이상학이라는 말을 들먹인다는 사실이다. 수학 영역 밖에 존재하는 진리들이 있고, 이 진리들을 언제든지 끄집어내어 자신들의 연구에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다는 뜻으로 형이상학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하지만 그런 진리가 어떤 것들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266) [무한대로 발산이든(1, unité), 무한소로 수렴이든(0, dx), 무한은 존재하는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 18세기였다. 전자는 영겁이고 후자는 찰나이다. 이런 의미상의 영겁과 찰나를 대수적으로 탐구할 때, 무한이란 단위 속에서 비규정성에 더 가깝다. 무한의 극한은 규정가능성이고, 계산에 적용은 규정성에 가깝다고 해야 할 것이다. (44OLG)]
7장 비논리적 발전 1800년경의 상황 269
- 오, 신이여, 왜 둘에 둘을 더하면 넷이 되어야 합니까? - 알렉산더 포프 (269) [포프(Alexander Pope, 1688-1744) 영국의 신고전주의시대 시인, 풍자가.]
1800년이 되면서 수학은 매우 역설적 상황을 맞게 되었다. 물리현상의 설명과 예측에서는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었다. 하지만 다른 한편 다수의 18세기 사람이 지적했듯이 이 거대한 구조물은 논리적 기초를 갖추지 못하고 있었다. (271)
직관적으로 무리수가 자연수나 분수보다 받아들이기가 훨씬 어렵다고 할 수 없었으며 자연수나 정수가 따르는 법칙을 무리수도 그대로 따랐다. .. 다루기 성가시고 또 직관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수는 음수와 복소수였다. (271)
윌리엄 프렌드(William Frend 1757-1841) 대수학 원리(Principles of Algebra)(1796)
우드하우스(Robert Woodhouse 1773-1827) 허수 사용으로 얻은 결론들의 필연적 참됨에 대하여(1801)
코시(Augustin Cauchy, 1789-1857) 해석학 강좌(Cours d'analyse 1821)
모르간(Augustus de Morgan 1806-1871)은 1831년에 자신의 책 수학의 연구와 그 어려움에 대하여(1831)에서 음수와 복소수에 대한 반대 의견을 표시했다. (274)
해밀턴(William Rowan Hamilton 1805-1865)도 음수와 복소수를 받아들이지 못한.. (276)
불(George Boole, 1815-1864) [허수의 해석가능성을 주장하다.]
복소수에 대한 수학자들의 의구심을 다소 덜어준 것은 논리가 아니라 베셀(Friedrich Wilhelm Bessel 1784-1846), 아르강(Jean-Robert Argand 1768-1822), 가우스(Karl Friedrich Gauss, 1777-1855)가 도입한 복소수의 기하학적 표현이었다. (277)
그러나 1831년이 되자 가우스는 .. 복소수의 기하학적 표현을 기술했다. .. 그는 데카르트가 허수(imaginary number)란 말 대신에 복소수(complex number)라는 말을 도입했으며, √-1 대신에 i를 사용했다. (278)
코시는 19세기 초반에 복소수 변수함수론으로 유체역학에 활용.. (279)
피콕(George Peacock 1791-1858)은 산술 대수학과 기호 대수학을 구분했다. 전자는 양의 정수를 나타내는 기호들을 다루고, 따라서 확고한 기초 위에 서 있다. 여기서는 양의 정수를 내놓는 연산만이 허용되었다. 기호 대수학에서는 산술 대수학의 법칙이 채용되지만 양의 정수로만 제한을 두지 않는다. (279)
그레고리(Duncan F. Gregory 1813-1844), 드 모르간 그리고 헤르만 한켈(Hermann Hankel, 1839-1873)
사원수의 도입을 통해 이제 한 가지가 아닌 여러 종류의 대수학이 존재한다는 점이 명백하게 드러났다. (282)
1806년 앙페르(André Maria Ampère 1775-1836)는 모든 함수는 연속적인 점에서 도함수를 갖는다고 ‘증명’ 했다. .. 라크르와(Sylvestre-François Lacroix 1765-1843)도 .. 베르트랑(Joseph Bertrand 1822-1900)은 1875년까지도 미분 가능성을 ‘증명’한 논문을 발표했다. 하지만 이 ‘증명’들은 모두 그릇된 것이었다. (283-284)
퐁슬레(Jean Victor Poncelet 1788-1867) .. 연속의 원리도입 .. 도형의 사영적 성질에 관한 연구(1882)
몽주(Gaspard Monge 1746-1818)
비유클리트 기하학의 경우는 .. 람베르트(Johann Heinrich Lambert 1728-1777), 가우스(Karl Friedrich Gauss, 1777-1855), 로바쳅스키(Nikolai Ivanovich Lobachevskii, 1792-1856), 보야이(Janos Bolyai 1802-1860) 등.. (288)
끌레로(Alexis-Claude Clairaut 1713-1765) 프랑스 수학자. 기하학의 기초(1741)
브론스키(Josef Hoëné-Wronski, 1776-1853) 폴란드 출신 프랑스 철학자. 산술학연구자.
야코비(Carl Gustav Jacobi, 1804-1851) 독일 수학자. 타원형(elliptique)의 함수 연구
19세기 초에는 어떤 수학 분야도 논리적으로 완벽하지 못했다. 실수체계, 대수학, 유클리드 기하학과 비유클리드 기하학 그리고 사영기하학 등은 그 논리적 기초가 부적당하거나 아예 아무런 기초조차 없었다. 해석학은 - 해석학은 미적분학이 확장된 분야이다 - 논리적 기초가 결여되어 있는 실수와 대수학을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논리적 부실함을 그대로 물려받았을 뿐만 아니라 미적분학의 고유 개념들, 즉 도함수, 적분, 무한급수 등은 명백한 개념을 결여하고 있었다. 수학의 어떤 분야도 논리적 타당성을 전혀 갖추지 못했다고 해도 틀리지 않았다. (289)
미셰 롤(Michel Rolle 1652-1719)
끌레로(Alexis-Claude Clairaut 1713-1765)
브론스키(Josef Hoëné-Wronski, 1776-1853)
야코비(Carl Gustav Jacobi, 1804-1851)
해밀턴(William Rowan Hamilton 1805-1865)/ 케일리(Arthur Cayley 1821-1895) 행열..
수학의 미묘한 성격 변화가 대가들을 통해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1500년까지 수학에서 다루는 개념들은 경험에서 직접적으로 추상화한 것이었다. (292-293) [경험의 근거가 형상과 도형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정신(영혼)의 내면에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44OLJ)]
도함수, 즉 순간 변화율의 개념은 속도라는 물리적 현상에 직관적 기반을 얼마간 두고 있기는 하지만 상당한 수준의 지적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293) [낙하속도가 빨라진다는 것은 경험적 직관에 의해 동의된다. 그것을 지성에 의해 수식으로 만드는 것은 사유실험이 필요하다. 갈릴레오도 사유실험으로 했다. (44OLJ)]
다시 말해서, 수학자들은 이제 현실세계에서 아이디어를 끄집어 내 추상화하는 것이 아니라 개념을 창출해내는 역할을 맡게 된 것이다. (293) [들뢰즈가 말하는 개념의 발명은 선험적 세계에 발생했던 것을 개념으로 창출하는 것이다. 이 선험적 세계, 무의식의 세계는 복소수의 조합, 즉 4원수보다 차원이 훨씬 높다. 그럼에도 4차원 공간 또는 4원수 행렬로서 푼다는 것은 오류를 배척하는 것이다. 배제 없는 문제거리를 대하는 것이 들뢰즈는 차이와 반복(원232, 번391)에서 “변증법”이라고 부른다. (44OLJ)]
이전에는 아이디어(idea)의 근원을 감각으로 돌렸으나 이제는 지적 능력이 그 근원이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 1700년 이후로 자연이 아니라 인간 정신에서 솟아난 개념들이 수학 영역으로 들어왔고, 별다른 거부감없이 그 개념들이 받아들여졌다. (293-294) [이즘에서 정신과 영혼을 구별해야할 시기가 온 것으로 보자. 정신은 경험과 관계없이 사유 놀이를 할 수 있는데 비해, 영혼은 몸의 무매개적으로 소통한다(?)는 느낌과 같은 차원 다른 조합이 있다. 정신과 영혼의 구별은 19세기 의학 생물학이 지위를 확보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44OLJ)]
그렇다면 어떻게 수학자들은 어디로 향해야 할 것인지 알았는가? 또 어떻게 감히 증명을 강조하는 전통이 있는데도 규칙을 단순 적용해 얻는 결론의 타당성을 주장할 수 있었던 것일까? (294) [기하의 연역을 통한 명증성, 산술의 규칙을 통한 놀이... 후자에서 세계에 대한 해명에 답을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44OLJ)]
위대한 수학자에게는 잘못된 방향을 감지해 내는 뛰어난 직관이 있다. 위대한 사람의 직관이 범용한 사람의 연역적 증명보다 더욱 훌륭하다. (294)
수학사는 18세기는 영웅 시대라고 불리는데, 그 이유는 수학자들이 부실한 논리적 무기를 가지고 위대한 과학적 성과를 이룩했기 때문이다. (295)
296-2 여기서 우리는 매우 역설적인 상황을 보게 된다. 수학은 엄청나게 몸집이 커졌지만 그 논리적 기반이 그토록 취약했던 적은 없었다. 그러나 자연의 행동 방식을 표현해 내고 예측하는데 거둔 성공은 너무도 눈부셨고 또 그리스 인들의 업적을 능가하는 것이었기에 18세기의 모든 지식인들은 자연이 수학적으로 설계되었다고 선언했으며, 수학이야말로 인간 이성의 위대하고 숭고한 산물이라고 찬양했다. (296)
1800년까지 수학자들은 논리적 정당화보다는 결과를 신뢰했다. 증명의 관점에서 보자면 결과란 믿음에 불과한 것이었다. (297) [결과는 독사들의 일종이다. 역설이 넘쳐날 것이다.(44OLJ)]
수학자들은 수학이 그동안 얻고 있던 명성과는 다르게 이성의 모범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성의 자리에는 직관, 기하학적 도형, 물리학적 논증, 동등 수식 불변의 원리, 형이상학에 의존한 정당화 등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298-299)
8장 비논리적 발전 : 낙원의 문턱에 서다 301
- 이제 완벽한 엄밀성이 이루어졌다고 말할 수 있다. - 앙리 푸앙카레 (301) [푸앙카레(Jules-Henri Poincaré 1854-1912)]
[철학사 측면에서 근대(모던)이라고 하는 시기는 기계역학의 사유가 지배하는 1831년 전까지이다. 이 시기는 데카르트의 정역학, 라이프니츠의 동역학, 뉴턴 천체 물리학이 물리적 사실에서 예측에 성공하는 시기였다. 그러나, 예측은 정해진 틀 안에서이며, 예측을 벗어나는 것이 무수히 많다. 수학자들 미적분의 토대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토대로 삼을 수 있는 유클리드 기하학도 단일체계가 아님을 알게된다. 이제 비유클리드 공간의 등장으로 탈근대의 사유가 등장했다고 할 수 있다.(44OLJ)]
비판적 사고를 지닌 사람들은 수학이야말로 물질세계의 진리를 담아낸다는 주장을 이제는 버려야 한다고 인정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들은 천체운동 및 지표운동에 관한 역학, 음향학, 유체역학, 탄성물리학, 광학, 전기학, 자기학, 그리고 여러 공학분야에서 이룬 성과와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정밀한 예측을 높이 평가했다. (303-304)
코시(Augustin Cauchy, 1789-1857)는 수를 기반으로 미적분학의 논리를 세우고자 했다. (306)
[홀름뵈(Bernt Michael Holmböe 1795-1850) 노르웨이 수학자. 아벨의 스승(7살 차이인데, 선배격이지.)]
[릴뤼에(Simon L'Huilier 1750-1840)]
바이에슈트라스(Karl Weierstrass 1815-1897)가 모든 실 수 값에서 연속이지만 어느 점에서도 미분할 수 없는 함수의 예를 1872년 베를린 학술원에서 발표하자 온 세계는 충격에 휩싸였다. (311) .. 관련자들 뒤부아-레몽(Paul David Gustav Du Bois-Reymond, 1831-1889), 볼차노(Bernhard Bolzano 1781-1848),
[피카르(Charles-Emile Picard 1856-1941)]
그 외에 몇몇 사람들, 특히 데데킨트 (Julius Wilhelm Richard Dedekind, 1831-1916), 칸토어(Georg Cantor 1845-1918) 등은 유리수의 여러 성질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 연후에 무리수를 올바르게 정의했고, 또 그 성질들을 확립했다.
[페아노(Giuseppe Peano 1858-1932), 그라스만(Hermann Günther Grassmann 1809-1877)]
[벨트라미(Eugenio Beltrami, Eugène Beltrami, 1835-1900)]
유클리드 평행선 공리를 다른 공리로부터 연역해 내려는 오랜 노력은 이렇게 해서 실패로 막을 내렸다. / 애초에 비유클리드 기하학에서 직선은 보통의 뜻을 지닌 것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의도했던 것과는 상당히 다른 대상에 적용될 수 있다는 놀라운 사실이 발견되자. 중대한 결과를 낳았다.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완전히 다른 해석이 가능한데, 그것은 공리적 전개에서 무정의 술어가 반드시 등장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해석을 일러 모델(model)이라고 부른다. ... / 비유클리드 기하학의 무모순성은 유클리드 기하학에 모순이 없다는 가정 아래에서 확립되었다. (317) [비유클리드 기하학은 모델의 조정이라할 수 있다. 변환조정(modulation)이 나올 것이다.(44OLJ)]
[비유클리드 기하학에서] 무정의 술어를 손질하고 정의를 명확하게 바꾸고 누락된 공리를 추가하고 또 증명을 완전하게 하는 것은 비교적 단순한 일이었다. .. 파슈(Moritz Pasch 1843-1930), 베로네세(Giuseppe Veronese 1854-1917), 피에리(Mario Pieri, 1860-1904), 힐베르트(David Hilbert 1862-1943) (318)
318-2 1900년까지 산술, 대수학, 해석학, 그리고 기하학의 엄밀화가 완료되었다. (해석학의 경우는 정수에 대한 공리를 기초로 했고, 기학학의 경우는 점, 선 그리고 여타의 기하학 개념을 기초로 엄밀화가 이루어졌다.) 많은 수학자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모든 기하학을 수 위에 세우려고 했는데 이것은 해석기하학을 통해 실현될 수 있는 일이었다. (318)
1900년 파리에서 열린 제2차 세계 수학자 대회에서 푸앙카레(Jules-Henri Poincaré 1854-1912)는 “...수학은 산술화 되었다”선언했다. 파스칼은 일찍이 “기하학을 벗어난다는 것은 곧 인간의 이해범위를 벗어난다는 뜻이다”라고 말했다. ㅇ
논리학이란 학문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책 오르가논에서 시작되었다. .. 아마도 아리스토텔레스는 배중률을 “정수는 홀수이거나 짝수이다”와 같은 수학명제에서 추출해냈을 것이다. (319)
데카르트와 라이프니츠는 논리 법칙을 확장하여 모든 사고 영역에 적용할 수 있는 추론의 보편과학, 즉 추론의 보편적 계산법을 만들어내려고 했다. (320) [데카르트의 보편수학(mathsis univeralis) ]
보편 논리학을 구성하려는 라이프니츠의 계획은 데카르트보다 더 구체적이었다. 보편 논리학을 구성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주요요소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첫째 보편언어(carateristica universalis)가 있어야 한다. .. 둘째, 추론의 논리적 형태를 집대성한 추론 계산학(calculus ratiocinator)이 있어야 한다. .. 셋째, 합성법(ars cominatoria)이다. (320)
불(George Boole, 1815-1864) [허수의 해석가능성을 주장하다.] 피콕(George Peacock 1791-1858), 그레고리(Duncan F. Gregory 1813-1844), 모르간(Augustus de Morgan 1806-1871), 해밀턴(William Rowan Hamilton 1805-1865)
불(George Boole, 1815-1864).. 사고(思考)의 법칙 연구, 1854에서 .. 기존의 추론 법칙이 기호로 표현될 수 있으며, 따라서 논리학을 더욱 명료하고 신속하게 적용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322)
불은 그 기원이 스토아 학파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명제논리라는 것을 도입했다. 명제논리에서는 p는 예컨대 “존은 남자이다”와 같은 명제가 된다. (324)
또 다른 혁신적 결과를 내놓은 사람은 드모르간이었다. 드모르간은 그의 주저 형식논리학(1847)에서 논리학이란 일반적 관계를 다루어야 하다는 생각을 도입했다. (324)
관계는 주어와 술어로 번역할 수 없는데, 술어는 술어에 의해 상술된 집합에 속한 주어만 기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2는 3보다 작다”나 “점Q는 P와 R 사이에 있다”와 같은 명제를 고려해보아야 한다. (325-326)
19세기에 이루어진 논리학의 수학화의 마지막 단계는 예나 대학교의 수학교수였던 프레게(Gottlob Frege, 1848-1925)에 의해 이루어졌다. 프레게는 개념기술(Begriffsschrift. 1879), 산술의 기초(Die Grundlagen der Arithmetik)(1884), 산술의 기본법칙(Grundgesetze der Arithmetik. 2 Bde. 1893-1903)등 여러 권의 중요한 저작을 내놓았다.
프레게의 함의(implication)의 개념을 더욱 확장하여 실질 함의라는 개념으로 형식화하였다. .. /실질함의는 흔하게 사용되는 함의와 다소 다르다. 예를 들어 “만약에 비가오면 나는 영화를 보러 갈것이다.”라고 말한다면 전항과 후항 사이에 어떤 관계 존재할 뿐만 아니라 ... 하지만 실질 함의에서는 전항 p와 후항q는 어떤 명제라도 상관없다. (328)
프레게는 논리학에 대해서도 바로 그러한 작업을 실행했다. 그가 사용한 기호와 공리는 복잡하기 때문에 여기서는 논리학의 공리적 전개방법을 말로 간략하게 설명하는 것으로 그칠 것이다. (330)
기호논리학을 사용하여 수학의 엄밀성을 높이고자 했던 또 다른 중요 인물이 페아노였다. (331)
수학의 엄밀성.. 수학과 논리학의 엄밀화 ... 이제 그 특성을 살펴보자 / 첫째 무정의 술어의 필요성이다. 수학은 다른 학문과는 독립적이기 때문에 정의를 하려면 다른 수학적 개념을 사용해야 한다. 그런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결국 정의를 무한히 해 나가야 한다는 어려움에 빠진다. (333) [무한소급에 빠지는 역설은 단위를 최초로 정의하는 데 있어서 있는일이 아닌가? 하나(unité)가 모든 것을 포함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단위란 즉 모든 무정의 술어가 한정된 체계 내에 의미(sens)를 산출하는 것이 아닌가? (44OLJ)]
제르곤(Joseph Diaz Gergonne 1771-1859), 파슈(Moritz Pasch 1843-1930), 그라스만(Hermann Günther Grassmann 1809-1877)
파슈는 무정의 술어가 있어야 하며 공리는 그 술어의 의미를 확정한다고 분명하게 말했지만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기하학이었다. (334)
수학의 무모순성의 문제는 그리스 시대에도 이미 다루어졌다. 그런데 왜 19세기 후반에 그 문제가 전면으로 떠오른 것일까? 비유클리드 기하학의 탄생으로 사람들은 수학이 인간의 창조물이며 실제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을 근사적으로만 기술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않을 수 없었다.(336)
실제로 19세기 후반의 공리화 운동은 수학자들로 하여금 자신들과 실제 세계 사이에 커다란 괴리가 있음을 깨닫게 했다. 모든 공리체계에는 무정의 술어가 있고, 그 무정의 술어의 속성은 오직 공리를 통해서만 규정된다. 직관적으로 수, 점, 직선에 대한 의미를 마음 속에 지니고 있지만 이러한 술어들의 의미는 고정되어 있지 않다. 공리가 이들의 속성을 고정해 주어 우리가 직관저그로 결부시키는 속성을 갖게 해준다. (336)
공리적 방식이 지니는 또 다른 특성을 파슈는 지적했다. 수학의 한 분야에서 공리들은 서로 독립적이어야 한다. 즉 한 공리가 다른 공리들로부터 연역될 수 있으면 안 된다. (336) [그러면 모든 공리를 포함하는 공리체계 내에서 공리들은 독립적이어야 한다?. (44OLJ)]
공리적 방법을 가장 소리 높여 찬양한 사람은 힐베르트였다. .. 「공리적 사고」(1918)란 논문에서 그는 다음곽 같이 선언하였다. / “수학적 사고의 대상이 되는 모든 것은 그에 대한 이론 수립의 시기가 무르익으면 공리적 방법을 취하게 되고,... ”
피카르(Charles-Emile Picard 1856-1941), 에르미트(Charles Hermite 1822-1901), 푸앙카레(Jules-Henri Poincaré 1854-1912), 보렐(Félix-Edouard-Justin- Emile Borel 1871-1956), 하디(Godfrey Harold Hardy 1877-1947) .. 엄밀성에 부정적인 수학자들..
보렐도 이런 식으로 자신을 변호했다. 다른 사람들은 트집잡기에 불과하다며 엄밀화에 반대했다. .. 일부는 수학분야를 두고 무정부상태라고도 말했다. (339) [하나의 무모순 체계에 통합되는 경우가 없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때 다른 방법과 모델이 많이 등장하니깐 무정부라고 보일 것이다. 하나로 주장할 권위가 없으니깐, 최고 강한 자가 없듯이 말이다.(44OLJ)]
이것은 수학이 논리가 아니라 건전한 직관에 의존한다는 것을 뜻했다. 아다마르(Jacques-Salomon Hadamard 1865-1963)가 지적했듯이 엄밀성은 직관이 정복해 놓은 것을 사후에 승인할 따름이다. 또 헤르만 바일(Hermann Weyl 1885-1955)이 말했듯이, 논리한 자신의 아이디어를 건강하고 튼튼하게 하기 위해 행하는 수학자들의 개인 위생법이다. (340)
1900년 세계 수학자 대회에 참석하고 있는 사람들이 창 밖을 내다보기만 했어도 파국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아차렸을 테지만 샴페인을 터뜨려 축배를 드는 일에 너무 열중해 있었다. / .. 힐베르트 .. 칸토어(Georg Cantor 1845-1918) 첫째 문제는 산술의 무모순체계.. 둘째 문제는 비유클리드 기하학의 무모순체계.. 또 실수(實數)에 관한 공리는 잘 알려진 정리들을 산출해냈다. 그런데 어떻게 공리체계에 모순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342-343) [칸토르가 산수학에서 무한의 의미를 다시 쓸 것이다. (44OLJ)]
9장 실낙원 : 이성의 새로운 위기 345
- 수학에서 진정한 논란은 없다. - 가우스 / 논리학이란 확신을 갖고 오류를 범하는 기술이다. - 무명씨 (345)
(사진) 집합론의 창시자 칸토어(Georg Cantor 1845-1918). 독일 할레노이슈타트 시에 있는 과학기념비의 부조. “수학의 본질은 그 자유에 있다”라는 칸토어의 말이 새겨져 있다. (346)
그러나 1900년이 되기 전에 유클리드 기하학은 인간이 만든 20여 개의 공리 위에 세워진 논리적 구조에 지나지 않으며 또 모순되는 정리가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 그러나 힐베르트는 만일 산술의 논리적 구조, 즉 실수체계의 논리적 구조가 무모순이면 유클리드 기하학도 무모순이라는 사실을 증명함으로써 그런 끔찍한 가능성을 배제했다. 그리고 실수 체계의 무모순성에 대해서는 별다른 이론이 없었다. (349)
프링샤임(Alfred Pringsheim 1850-1941)(91살) 독일 수학자
모순을 내놓아 사람들의 눈을 뜨게 한 새로운 이론은 무한집합이론이었다. .. 칸토어는 수 집합의 이론을 연구하게 되었...(349-350)
잠재 무한과 실재 무한.. 아리스토텔레스는 물리학에서 이와 같이 결론을 내리고 있다. “이제 남은 결론은 무한이 잠재적 존재라는 것이다. .. 실재무한이란 있을 수 없다.”(350)
그러나 대다수 수학자들 - 갈릴레오, 라이프니츠, 코시, 가우스를 비롯한 사람들 - 잠재무한집합과 실재무한집합을 구별했고 후자는 고려대상에서 아예 제외했다. (351)
실은, 칸토어는 일대일 대응 정의로부터 나온 결과에 스스로도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는 직선 위의 점들의 집합이 평면위의 점들의 집합 사이에 일대일 대응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1877년(칸토어 32살)에 데데킨트에게 보낸 편지에서 “나는 그것을 두 눈으로 확인했지만 도저히 믿을 수가 없습니다.”라고 썼다. (353)
칸토어(Georg Cantor 1845-1918)는 무한 집합 사이의 대소도 정의했다. 만일 집합 A를 집합 B의 부분집합과 일대일 대응이 되지 않을 때 B는 A보다 크다고 정의했다. .. 상등과 부등의 정의를 사용하여 칸토어는 자연수의 집합이 유리수 집합과 상등하지만 실수 집합보다는 작다는 놀라운 결과를 얻어낼 수 있었다. / .. 자연수 집합 및 자연수 집합과 일대일 대응을 이루는 집합은 원수 수가 모두 같은데, 이 수를 칸토어는 א0(알레프 영)으로 나타냈다. 자연수 집합보다 큰 실수 집합의 원소의 수는 C라는 기호로 표시했다. (353)
보렐(Borel 1871-1956), 르베그(Henri Lebesgue 1875-1941)
초한수(transfinite numbers, les nombres transfinis)
1895년 칸토어는 모든 집합들의 집합에 대해 생각했다. ... 초한기수와 초한서수... /러셀이 모든 집합들의 집합에 관한 칸토어의 결론을 읽었을 때, 러셀은 그 주장에 수긍하지 않았다. .. 신비주의와 논리(Mysticism and Logic and Other Essays, 1918)에서 자신의 실수에 대해 사죄하는 각주를 달아 놓았다. (354-355)
1920년대까지도 수많은 수학자들이 초한수 사용을 피했다. 칸토어는 자신의 연구 성과를 옹호했다. 그는 자신이 플라톤주의자이며 인간과 독립된 객관적 세계의 존재를 믿는다고 말했다. (357)
모든 집합들의 집합과 모든 서수들의 집합에 부여하는 과정에서 칸토어가 발견한 모순[파라독스]으로 인해 수학자들은 새로운 분야뿐만 아니라 확립된 것으로 여겨지던 기존 분야에서도 자신들이 유사한 개념을 사용해 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들은 이러한 모순을 역설이라고 불렀는데.. 현재는 역설대신에 이율배반(antinomy)이라는 전문 용어가 사용되고 있다.(358)
이 역설들의 예... “모든 규칙에는 예외가 있다” .../ .. 거짓말쟁이 역설 “이 문장은 거짓이다” ../.. “나는 거짓말하고 있다.” .. “다음 문장은 거짓이다. 앞의 문장은 참이다”(358-359)
러셀의 역설은 집합에 대한 것이다. 책들의 집합은 책이 아니며, 따라서 자기 자신 속에 속하지 않는다. 그러나 관념들의 집합은 그 자체가 하나의 관념이므로 자기 자신 속에 속한다. 또 목록들의 목록은 그 역시 목록이다. ... 힐베르트은 이 역설이 수학에 파국적인 영향을 가져온다고 주장했다. (360)
그렐링(Kurt Grelling 1886-1941), 넬슨(Leonard Nelson 1882-1927)의 형용사와 관련된 역설 .. (361)
램지(Frank Plumpton Ramsey, 1903-1930)를 시작으로 하여 일부 논리학자들은 의미론적 모순과 실질 모순을 구분했다. ‘단어역설’, ‘이종적(heterological) 역설’, ‘거짓말장이 역설’을 의미론적 역설이라고 했는데... (362)
전지전능한 존재는 불멸의 대상을 창조할 수 있을까? 전지전능하니까 당연히 그렇게 할 수 있다. 하지만 전지전능하다면 어떤 대상이라도 파괴할 수 있다. 여기서 전지전능이란 말은 부적절한 전체를 포함하고 있다. 그러한 역설은 논리학자. 알프레드 타르스키(Alfred Tarski 1902-1983)가 지적했듯이 의미론적이기는 하지만 언어자체를 위협하는 역설이다. (363)
‘모든’이란 말이 모호하다는 것은 사실이다. 일부 사람들에 따르면 몇몇 의미론적 역설은 ‘모든’이라는 낱말 사용 때문에 생겨난다고 한다. 부랄리포르티 역설에서는 모든 서수의 집합을 말하고 있다. 이 집합은 자신의 서수를 포함하고 있을까? (364)
부랄리 포르티(Cesare Burali-Forti 1861-1931) 이탈리아 수학자.
체르멜로(Ernst Zermelo, 1871-1953)
푸앙카레(Jules-Henri Poincaré 1854-1912)는 모든 재귀 서술 정의를 금지하자고 재안했다. (365)
바일(Hermann Weyl 1885-1955)
모순의 주요 요인은 명확해 보였지만 그런 모순들을 없애기 위해 수학이 어떻게 건설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 또 새로운 모순이 생기지 않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더욱 중요한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있었다. 왜 무모순성 문제가 1900년 초에 초미의 현안이 되었는지 이제 이해할 수 있다. 수학자들은 모순을 집합론의 역설로 돌렸다. (366)
체르멜로(Ernst Zermelo, 1871-1953)는 1904년 출간한 논문에서 위의 주장이 선택공리(axiom of choice)를 가정해야 가능하다는 사실을 지적했고, 이는 수학자들 사이에 상당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선택공리: 공집합이 아닌 집합들을 원소로 갖는 집합 족이 주어졌을 때, 각각의 집합에서 하나씩의 원소를 빼서 새로운 집합을 만들 수 있다는 공리. 1938년 괴델이 공리가 다른 공리 체계와 모순이 없음을 밝혔고, 1936년 폴 코언이 기존의 공리체계에서 유도할 수 없는 독립적 공리임을 증명했다. -옮긴이) (367) [폴 코언(Paul Joseph Cohen 1934-2007)]
체르멜로에 반대자들 ..
페아노(Giuseppe Peano 1858-1932) 이탈리아의 수학자
레비(Beppo Levi 1875-1961) 이탈리아 수학자.
슈미트(Erhard Schmidt 1876-1959) 독일 수학자.
보렐(Emile Borel 1871-1956) 프랑스의 수학자
베른슈타인(Felix Bernstein 1878-1956) 독일 수학자.
베르(René Baire 1874-1932) 프랑스 수학자.
르베그(Henri Lebesgue 1875-1941) 프랑스 수학자.
다른 이유에서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다. ... 루이첸 부라우베르(Luizen E. J. Brouwer, 1881-1966)는 실제 무한 집합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 기 때문에 체르멜로에 반대했다. 러셀은 집합의 모든 원소가 지니고 있는 속성으로 그 집합을 정의해야 한다는 이유에서 반대했다. (369)
아다마르(Jacques-Salomon Hadamard 1865-1963)만이 체르멜로의 유일하고 열성적 옹호자였다. 그는 칸토어의 연구를 옹호하면서 사용했던 동일한 근거를 들면서 선택공리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370)
선택공리와 관련한 핵심 쟁점은 수학자들이 말하는 존재의 의미였다. 존재한다는 것은 일부 사람들에게는, 예컨대 넓이가 무한대인 폐곡면처럼 모순을 일으키지 않는 유용한 관념적 개념이면 충분했다. (371)
르베그(Henri Lebesgue 1875-1941) 자신은 부정적이고 의심스러워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는데도 선택공리를 그 자신의 표현을 빌리자면 대담하면서도 신중하게 채택했다. (371)
실수 체계는 5.000년 이상 사용되어 왔고 실수에 관한 수많은 정리들이 증명되었다 하지만 모순은 발견되지 않았다.
[문제거리: 무모순성을 증명해야 했다. 문제거리: 수학의 관념은 실재하는가? ... 또 존재 문제의 다른 측면으로 존재 증명의 가치가 있다. 또 다른 문제거리: 수학의 공리화에 증명을 요구했다.... 또 다른 문제거리: 수리 논리학... 또 문제거리: 논리학의 원리가 무제한 적용되는 것에 대해 의구심을 느끼기 시작했다. ... 이러한 문제거리는 새로운 역설의 발생으로 의견불일치를 악화시켰다.](372-376)
[이 문제거리는 두가지이다. 하나는 무모순위에 수학을 세울수 있느냐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토대가 없이도 완전한 체계가 가능하냐는 것이다. 무모순성과 완전성... (44OMB)]
10장 논리주의 대 직관주의 367
- 기호논리학은 불모의 분야가 아니다. 기호논리학은 바로 이율배반을 낳았다. - 앙리 푸앙까레 (367)
이러한 학파 가운데 최초의 것은 논리학파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그들의 기본주장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수학의 모든 것은 논리학으로부터 도출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380)
논리학파 계보.. 라이프니츠, 데데킨트, 프레게, 럿셀
프레게는 수학법칙이 이른바 분석적이라고 믿었다. 수학법칛은 논리학 원리 속에 함축되어 있는 내용 이상을 말하지 않는다. (381)
러셀은 더욱이 수학의 원리(초판 1903)에서 “모든 수학은 기호논리학이라는 사실이 우리시대 가장 위대한 발견이다”라고 말했다. (382)
러셀은 물리적으로 참인 수학적 법칙을 찾으려 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법칙들은 논리적 원리로부터 도출될 수 있어야 했다. (384)
논리주의가 형성되는 동안에 그와 정반대되는 수학연구 방식이 직관주의라 불리는 사람들에 의해 추진되었다.(402)
파스칼도 직관을 크게 신뢰했다.(403)
현대직관주의의 집접적 선구자는 크로네커(Leopold Kronecker 1823-1891)이다. (405)
칸토어는 초월무리수가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했다. 초월무리수란 대수 방정식의 근이 될 수 없는 수를 말한다. 그런데 1882년 페르디난트 린데만(Ferdinand von Lindemann 1852-1939)이 π가 초월무리수임을 보였다. (405-406)
11장 형식주의와 집합론 427
- 현대 수학의 광대함에 비춰볼 때 직관주의자들이 얻어낸 초라한 파편, 불완전하고 고립되어 있는 결과들이 과연 무슨 의미를 지닐 것인가? - 다비드 힐베르트 (427)
20세기 첫 10년 동안에 수학기초론에서 논리주의 철학과 직관주의 철학이 생겨나 서로 대척점에 서서 대립했다. 하지만 치열한 싸움은 이들로만 그치지 않았다. 형식주의라는 이름의 셋째 학파가 힐베르트에 의해 만들어졌고, 또 다른 집합론 학파가 체르멜로에 의해 생겨났다. (429) [체르멜로(Ernst Zermelo, 1871-1953)는 1904년 출간한 논문 선택공리(axiom of choice)를 가정했다. (선택공리: 공집합이 아닌 집합들을 원소로 갖는 집합 족이 주어졌을 때, 각각의 집합에서 하나씩의 원소를 빼서 새로운 집합을 만들 수 있다는 공리. 1938년 괴델이 공리가 다른 공리 체계와 모순이 없음을 밝혔고, 1936년 폴 코언이 기존의 공리체계에서 유도할 수 없는 독립적 공리임을 증명했다. -옮긴이) (367)]
12장 대재앙 451
- 무서운 재앙의 비방이 되도록 죄인을 삶는 지옥의 국물처럼 펄펄 끓어라. 고통과 근심아, 곱절이 되고 또 곱절이 되어라. 불길아, 치솟아라, 솥 속의 국물들아, 펄펄 끊어라. - 세익스피어 맥베스
하지만 두 가지 문제가 수학자들의 마음을 괴롭혔다. ... 무모순성 ... 완비성[완전성]
그러나 바로 그 이듬해[1931년] 괴델(Kurt Gödel 1906-1978)은 ... 수학원리 및 관련 체계에서 형식적으로 결정될 수 없는 명제에 관하여」 .. (457)
스콜렘(Thoralf Skolem, 1887-1936) 자신은 1934년에 보통의 실수와는 다른 새로운 수 - 초정수(hyperinteger) -를 도입했고 그 성질도 일부 확립했다. (478)
비표준해석학이라는 이름의 새 체계는 초실수(hyperreal)를 도입하고 있는데, 초실수는 기존 실수와 무한소를 포함하고 있다. (478)
모순의 가능성을 제거하고 수학 구조의 무모순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은 이렇게 실패하고 말았다. (480)
20세기 수학 기초론의 발전과정은 다음과 같은 비유로 적절하게 요약될 수 있을 듯 싶다. 라인 강둑에 수백 년 된 아름다운 성이 서 있다. 성 지하에 사는 부지런한 거미들이 거미줄로 거미집을 정교하게 지어 놓았다. 어느 날 세찬 바람이 불어 거미집이 부서졌다. 거미들은 미친 듯이 실을 뽑아 거미집을 고쳤다. 그것은 거미들이 성이 무너져 내리지 않게 지탱해주는 것은 자기들이 지은 거미집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482) (42WLE)
13장 수학의 고립 483
사영기하학은 애초에 르네상스 시대 화가들이 그림에 사실성을 더해주기 위한 방편으로 시작되었다. 이후에 제라르 데자르그(Gérard Desargues, 1593-1662)와 파스칼이 유클리드 기하학 방법론을 발전시키기 위하여 사영기하학을 연구했고, 19세기에는 비유클리드 기하학과 관련되면서 중요한 연구주제로 부각되었다. (488) [색인에는 데자르그가 여기 한번 밖에 안 나온다.]
14장 수학은 어디로 가는가 531
레이먼드 와일더(Raymond Louis Wilder. 1896-1982)
[헤비사이드(Oliver Heaviside, 1850-1925) 영국의 물리학자. 상층대기에서 전파를 반사시키는 전기전도성을 가진 층인 전리층의 존재를 예측했다.]
클라인(Christian Felix Klein, 1849-1925)은 ..
“수학은 마치 나무처럼 성장한다. 작은 뿌리에서 시작해 위로만 올라가지 않는다. 가지가 위로 뻗어 올라가고 잎사귀가 자라는 만큼 뿌리는 밑으로 파고 내려간다. …… 수학에서 근본적인 연구에 관한 한 최종적 완성이란 있을 수 없으며 따라서 첫 시작점도 존재하지 않는다.”(548)
[라카토슈 (Imre Lakatos 1922-1974) 헝가리 태생의 유태인으로 1956년 영국으로 망명하여 캠브리지 대학에서 수리철학을 전공했다.]
[코시(Augustin Cauchy, 1789-1857)]
[바이에르스트라스(Karl Weierstrass 1815-1897)]
무어(Eliakim Hastings Moore 1862-1932)
이제 우리는 절대적 증명이나 보편적으로 수용되는 증명과 같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 (552)
바일(Hermann Weyl 1885-1955) 독일 태생 미국의 수학자.
장 디외도네(Jean Dieudonné 1906-1992) 부르바키(Nicholas Bourbaki)의 일원이다.
[윌리엄 로언 해밀턴(William Rowan Hamilton 1805-1865) 아일랜드 물리학자. 천문학자. 수학자.]
케일리(Arthur Cayley 1821-1895)
가우스(Karl Friedrich Gauss, 1777-1855)
에르미트(Charles Hérmite 1822-1901) 프랑스의 수학자.
칸토어(Moritz Benedikt Cantor, 1829-1920)
아다마르(Jacques-Salomon Hadamard 1865-1963) 프랑스의 수학자.
괴델(Kurt Gödel 1906-1978)
알론조 처치(Alonzo Church, 1903-1995)
객관적이고 유일한 수학이 존재한다고 주장하면서도 그들은 수학이 어디에 존재하는 지는 설명하지 않는다. 단지 그들은 수학이 인간 밖의 어느 세계, 허공에 떠 있는 성채 속에 있으며 그곳을 발견하는 일은 사람의 몫이라고 말한다. (560)
두 번째 견해, 즉 수학은 오로지 인간 사고의 산물이라는 견해가 있다. 이것은 물론 직관주의자들이 견지하는 견해로서, 그 기원은 아리스토텔레스로 거슬러 올라간다. (561)
아렌트 하이팅(Arend Heyting 1898-1980) 직관주의자
퍼시 윌리엄스 브리지먼(Percy Williams Bridgman, 1882-1961)은 현대물리학의 논리(1946)에서 ... “수학이 인간의 창작물이라는 점은 한눈에 알 수 있는 너무도 자명한 사실이다.” (562-563)
인간이 수학을 만들어 냈다는 생각을 견지하는 사람들은 본질적으로 칸트주의자이다. 칸트는 수학의 근원을 정신의 조직 능력에서 찾았다. 그러나 모더니스트는 수학이 정신의 형태나 구조로부터 연유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 보다 수학이란 정신의 활동이라고 주장한다. (563) [인간이 수학을 만들어냈다는 것은 칸트주의자가 아니라 칸트주의자들이 갖는 관점과 같다. 절대공간의 인정이 그러하고 선천적 정합성이 있다고 하는 것도 그러하다. 이점에서 정신의 놀이이다. 그에 비해 직관론자는 그런 선천성이나 절대공간의 존재는 없다고 본다. 영혼은 인간 관계의 다양성에서 삶의 느낌을 전달한다. 후자(직관)는 이 느낌이 존재하는 것으로 본다. 그래서 정신의 활동이 구조와 형태를 기호(symbole)로서 창안한 것이다.]
수학의 본질에 관한 현재의 논란, 그리고 오늘날 수학이 누구나 받아들이는 반박 불가능의 지식 체계가 아니라는 사실은 수학이 인간의 창작물이라는 견해에 더욱 힘을 실어준다. (563-564)
앙드레 베이유(André Weil, 1906-1998)
시시포스에게는 이 형벌이 언젠가는 끝나리라는 헛된 희망조차 없다. 수학자들에게는 완벽한 기초를 마련하려는 본능적 의지와 용기가 있다. 그들의 고군분투는 영원히 계속될는지 모른다. 그들 역시 시시포스처럼 결코 성공하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현대의 시시포스들은 희망을 버리지 않고 노력할 것이다.(566) (42WLC)
15장 자연의 권위 567
밀(John Stuart Mill, 1806-1873)
다비트 힐베르트 (David Hilbert 1862-1943)
안제이 모스토브스키(Andrzej Mostowski 1913-1975)
더욱 놀랍게도 직관주의자인 바일(Hermann Weyl 1885-1955, 독일 수학자) 역시 타당성은 물질 세계에 대한 응용 여부로 판단해야 한다는데 동의했다. 바일은 수학의 상당 부분이 수리 물리학으로부터 연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 수학과 자연과학에 대한 철학(1949).. (571)
하스켈 브룩스 커리(Haskell Brooks Curry).. 수리 논리학의 기초
콰인(Willard Van Orman Quine, 1908-2000)은 그다지 성공을 거두지 못했으나 러셀과 화이트헤드의 수학원리를 단순화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는 논리학자이지만 현재까지는 물리적 타당성을 기준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572-573) [이 책이 1980년에 쓰여졌다. 그 당시까지의 콰인에 대한 평가이다.]
폰 노이만(John von Neumann, Johann von Neumann, 1903-1957)
괴델(Kurt Gödel 1906-1978)
크로네커(Leopold Kronecker 1823-1891)
푸앵카레(Jules-Henri Poincaré 1854-1912)
사람들은 2,000년 동안 수학을 선험적 지식이라고 생각했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수학은 절대적 진리도, 불변의 진리도 아니다. (576)
에른스트 체르멜로(Ernst Friedrich Ferdinand Zermelo, 1871-1953)
베르(René Baire 1874-1932)
바일(Hermann Weyl 1885-1955)
하인리히 헤르츠(Heinrich Hertz, 1857-1894)
제임스 진스(James Jeans, 1877-1946)
지난 100년동안 가장 위대한 과학적 성취는 전자기학 이론, 상대성 이론, 그리고 양자이론이다. .. 전기와 자기에 대한 다양한 연구를 수행했고, 그 결과 두 가지 현상에 관한 몇 가지 수학적 법칙을 얻게 되었다. 1860년대에 맥스웰은 이 법칙들이 서로 양립가능한지 살펴보았다. 그는 법칙들이 수학적으로 양립하려면 방정식에 항을 하나 더 추가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그 항의 변위 전류라고 불렀다. 새로 도입한 항에 부여할 수 있는 유일한 물리적 의미는 전원(간단히 말하며 전류가 흐르는 전선)으로부터 전자기장 또는 전자기파가 공간으로 퍼져나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582)
여기서 주목할 만한 사실은 전자기파가 무엇인지 그 물리적 의미를 우리는 전혀 알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오직 수학만이 그 존재성을 보증해주고 있으며 그러한 수학의 도움으로 공학자들은 라디오와 텔레비전이라는 놀라운 기계를 만들어냈다. / 원자와 핵에서도 동일한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수학자들과 이론 물리학자들은 장 - 중력장, 전자기장, 전자장 등 - 을 마치 물결이 배와 기슭을 때리는 것처럼 공간으로 퍼져 나가 영향을 미치는 실제의 파로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러한 장은 허구이다. 그 물리적 속성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 그 장들은 단지 빛, 소리, 물체의 운동 그리고 이제는 너무나도 친숙한 라디오와 텔레비전 같은 형태의 관찰 가능한 현상과 일정부분 관련되어 있을 뿐이다. 언젠가 버클리는 도함수를 사라진 양의 허상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583)
수학적 개념과 공리는 경험으로부터 나왔다는 대답이 가능하다. .. 그러나 대수학, 미적분학, 미분 방정식 같은 여러 분야에서 경험에서 유래하지 않은 수학적 개념과 기법을 만들어 냈다. (587)
레오 쾨니히스베르거(Leo Konigsberger, 1837-1921)
조지 데이비드 버크호프(George David Birkhoff, 1884-1943)
슈뢰딩거(Erwin Schrödinger, 1887-1961)는 생명이란 무엇인가에서 인간이 자연법칙을 발견해 내는 기적은 인간 이해의 범위를 넘어서는 것일지 모른다고 말했다. (602)
수학이 왜 그런 엄청난 효율성을 갖는지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과연 수학을 버려야 할까? 헤비사이드(Oliver Heaviside 1850-1925)는 언젠가 소화과정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저녁식사를 거부해야 하느냐고 반문한 적이 있다. (605)
수학은 완벽한 보석도 아니고 또 아무리 계속해서 닦는다고 해도 모든 흠이 남김없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함에도 수학은 감각 세계를 가장 효율적으로 연결해주는 고리였으며, 그 기초가 공고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한다는 점이 당황스럽기는 해도 여전히 수학은 인간 정신이 낳은 가장 소중한 보물이다. ..화이트헤드는 언젠가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수학 연구는 인간 정신의 신령스러운 광기임을 인정하도록 하자.” / 광기인지는 모르겠지만 신령한 것임만은 분명하다. [수학이라는 이 정신의 놀이 속에는 인간의 영혼 또는 주체에 관한 문제가 없다. 그처럼 수확은 사유의 놀이로서 정신일지언정, 삶, 영혼, 기억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은 아니다. 차이는 차히를 대신하지 못한다. (42WLE)]
참고 문헌 /
옮긴이의 글 620-627
[이 번역 후기에는 수학의 확실성 - 대우학술총서 연구번역 2(모리스 클라인, 박세희 역, 민음사, 1994)에 대한 언급이 없다.] - [박세희, 1935년 11월 28일 서울특별시 출생, 군산고등학교-서울대학교-인디애나주립대학교대학원-인디애나대학... 소속 :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42WLE)]
찾아보기 628-638.
(42WLE) (첨가 44OMB) (그대로 25:15, 52MKH)
(클라인의 번역서(심재관), 2007년 1쇄, 2024년 13쇄)
박세희(朴世熙., 1935-) 수학자, 서울대 수학과 교수.
심재관(?-?, 미기재), 건대학사, 고대(석사), 미국 일리노이즈(박사), 고려대 강사, <The Invariance of Analytic Assembly Maps under the Groupoid Equivalence(구루포이드 동치하의 해석조립사상의 불변성), 미국 University of Illinois at Urbana – Champaign, (미기재) 1998,).
모노외르(Françoise Monnoyeur), 프랑스 여성 수학자일 것인데, 위키,구글 등에 나오지 않는다. 1992년 저술(Infini des mathematicien, Infini de philosophes)에, 수학자인 디외도네(Jean Dieudonné, 1906-1992)가 전문(préface)을, 여성 수학사가인 시나꾀르(Hourya Benis-Sinaceur, 1940-)이 후문(postface) 을 썼다고 한다.
(옮김, 25:26, 58UMG)
덧:
러셀과 화이트헤드가 보는 수학의 대상세계에 대해, 벩송이 제시한 상상작용의 이미지세계의 차이에서, 화이트헤드가 벩송의 관점에 경도되어 과정의 철학으로 전환함으로써 수학의 응용으로 갔다고들 한다. 벩송의 관점은, 상징계를 바탕으로 하는 논리주의에서 선전제 미해결이라는 대척점에 있으면서, 인식의 공통기반으로 직관(기억)에 의한 상상계를 근원으로 삼는다. 이런 관점은 프랑스 수학자겸 철학자 르르화와 직관주의 수학자 브라우베르에 이어졌다고 한다. 그런데 벩송의 대척점은, 러셀의 논리주의를 담론의 대상으로 삼은 것이 아니며, 프랑스 안에서 브랑슈비끄와 그 계열들을 대상으로 삼았다고 한다. 도덕과 종교의 원천에는 상징계가 있는 것이 아니라 상상계가 있으며, 상상계를 조성하는(composer) 것은 실재계의 권능에 의해서이다.
현재 인공지능(AI)이 시작에서는 상징계의 완전성 또는 원인성을 주목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사람들은 AI 작업의 통합성에서, 인간의 지식과 인식을 모두 검토하여 현실에서 적용가능한 자료를 제시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실재계를 전 과정과 표출들을 전부 검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마치 러셀이 집합론의 완결성에서 말했던 것처럼, 원숭이가 무한히 타자를 친다면 세익스피어 작품도 나올 수 있다고 했던 것은 우연성의 인정에서 사유의 필연성을 찾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존재 증명의 셋째의 예에 닮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한 개체로서 인간의 인식자료와 적용보다, AI의 인식자료와 적용범위가 훨씬 넓다는 것은 분명해지고 있다. 그렇다고 AI가 통일성으로서 인간 일반(류적 인간)을 대변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것으로는, 인간의 특이성의 발현(자유)을 잘 보여줄 것 같지 않다. 왜냐하면 특이자들의 물음에 AI가 각각에 알맞은 답을 한다는 것은 통일성 또는 일반성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AI가 총합적 인식과는 다른 특이적 인식을 발현한다는 것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특이적 인식이 통일적 인식에 복속된다면, 그것은 특이적 인식이 아니라, 일반인식의 부분일 수 밖에 없다. 그렇지 않다면 AI라는 인식능력이 통일성이외에 특이성의 발현도 포함해야 할 것이다. 그 특이성의 발현은 통일성의 바깥에 있을 것이다.
특이성이 통일성과 달리 발현된다면, 문자로서 항목 또는 개념의 일반화와 이미지로서 일반화 사이에 차히는 분명해 질 것이다. 이는 마치 형이상학의 이중화 현상과 비슷할 것이라, AI에서도 이중화 현상이 표출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인공지능(AI)이 자연의 생물체 인식과 같은 역할을 할 것이다. 중세에서 벩송에서처럼 삶의 활동을 비오스(βίος)로, 생명의 권능을 조에(ζωή)로 구별해서 생각했다고 하는 차히가 있을 것이다.
물체에서 적용과 삶에서 활용이 형이상학의 이중화를 드러냈듯이, 고대의 사유방식 이래로 형이상학의 체계화 작업이래로 미분화가 아니라 세분화로 달랐던 것으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또한 수학사에서 방법적 진행과 확장에서 차이를 만나듯이, 삶의 터전에서 사건과 더불어 차히가 생성되는 것처럼 사유의 이중화 현상은 AI에서도 인간의 사유에서처럼 계속될 것 같다. 그렇지 않을까? 이런 의미에서 AI의 인식 방법과 활용에서도, 생명을 지닌 의식 발현의 차히를 더 잘 드러내리라. (58UMG)
(26:23, 58UMG)

첫댓글 목차
책을 시작하며 9
서론 : 테제 13
1장 수학의 창세기 23
2장 수학적 진리의 개화 59
3장 자연은 수학으로 씌어진 책이다 93
4장 첫째 위기: 수학적 진리의 퇴색 125
5장 논리적 주제의 비논리적 발전 179
6장 비논리적 발전: 해석학이라는 수렁 225
7장 비논리적 발전 1800년경의 상황 269
8장 비논리적 발전 : 낙원의 문턱에 서다 301
9장 실낙원 : 이성의 새로운 위기 345
10장 논리주의 대 직관주의 367
11장 형식주의와 집합론 427
12장 대재앙 451
13장 수학의 고립 483
14장 수학은 어디로 가는가 531
15장 자연의 권위 567
신의 창세기에서 시작하여, 신은 누가 만들었는데?
학문은 자연의 자기 발생(우주생성론)으로 갈 것이다. (59L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