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충무(현:통영시)항 해군 훈련병
YTL함 침몰 159명 순직(1974년 2월22일) !!
침몰된 해군잡역선 YTL함에서 부상자를 나르고 있는 모습.
충무 앞바다 YTL정 침몰 사고 또는 해군 예인정 침몰 사고는 1974년 2월 22일
오전 11시8분경 경남 충무항 남쪽7백m 해상에서 충무시 앞바다에서 해군소속
YTL정(잡역 보조선)이 전복, 침몰한 사고이다. 이 사고로 승선 인원(316명)중
해군 신병 103명, 해경 50명, 실무요원 6명 등 모두 159명이 순직하였다.
YTL30호 소형 항만 예인정 은 항구 안에서 예인, 통선과 같은 잡역을 담당하는
보조선이다.사고가난 예인정은 무게120톤에 약 4백마력 최대시속은 10노트였다.
승무원은 4명이며 해군 당국에의하면 350명 정도의 인원까지 수송이 가능하다고
보도되었다.
1974년 2월 22일 10시 40분경, 충렬사 참배를 마치고 외항의 본선(LST815)으로
복귀하려던 진해 해군 훈련소 신병 316명이 YTL30호에 1차로 승선하였다.
11시 8분경 모함을 30m 앞두고 급선회하던중 선체가 기울어 전복되었고 5분도
안 되는 사이에 침몰하여 11시 13분경에는 바닷물 속에 잠겼다. 물은 차가웠고,
정장차림의 제복은 무거웠다.10시이후로는 폭풍주의보가 내려져있었고 파고는
2m 였다. YTL 정장은 키를 움켜 잡은채로 사망하였다.
사고 당시 많은배들이 구조에 참여하였으나 해상이 어둡고 파도가높아 구조에
어려움을 겪었다. 모함과 구명정, 어선 들을 동원하여 14시 까지 모두 152명 을
구조하였고, 그중 2명이 구조 후 사망, 164명은 실종되었다고 보도되었다.
해군본부는 사망·실종자는 모두 159명이라고 발표하였다.
해군은 2월 23일 오전 부터 인양 작업을 진행 하였고 해저 15m에 바닥 을 위로
침몰해있음을 확인하였다.
선체는 2월25일 인양되어 수심이 얕은곳으로 옮겨졌다.시신인양에는 잠수정과
함께 저인망 어선들이 처음으로 동원되었다. 수색반은 2월 26일까지 146명 의
시신을 인양하고 인양 작업을종료 남은수색은 민간 잠수선과 어선에 일임하였다.
3월 3일까지 1명을 제외한 실종자를 모두 인양하였다고 보도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월28일, 해군 YTL정 침몰 사건의 책임을 물어 해군참모총장과
차장을 해임하였다.
해군교육단 신병훈련소 훈련대장 해군통제부 항무과장등은 구속되고 모함 함장은
직위해제되었다. 사망자 전원 1계급씩 특진되었다.
사고의원인으로 정원초과와 조종미숙 신병들이 아침을먹지 않은점등이 지적되었다.
3월2일 YTL정사고 해군조사위원회는 무리한승선과 급선회한 운항부주의를 원인으로
결론을 내렸다고 발표하였다.
밸러스트 탱크에 물을 채우지 않은 것도 원인으로 지적하였다.
아~ 통영 앞바다...(동기생이 올린글)
1974. 4월 첫주 토요일 오후
진해 해군교육대의 교육을 수료한 동기들은
동료의 절반을, 훈련중 해난사고로 잃고
후반 교육차 부산으로가려 진해역을 향해 행진하고 있었다
금방 비라도 올듯 , 잔뜩 찌푸린 날씨
깡마른 검은얼굴에 강한 눈매... 행군중에 누군가 어머니 은혜를 부른다...
모두 악을쓰며 따라부른다 ...동기들의 눈가는 촉촉하게 젖어있고...
운명의 1974년, 2월 22일 ....
그날도 통영 앞바다는 찌푸린 날씨에 거친 파도가.....
훈련일정으로 통영 충렬사 참배를 마친 해군159(해병266기와 동기), 해경11기 훈병들 ...
LST 815함으로 귀함하려 YTL정에 승선한 충무중대인 4, 그리고 1,2중대 동기들
그만, 장자도 앞해상에서 높은 파도에 침몰...
해군159기와 해경11기 ...순직 159명
당시 보도에 魔의 숫자 159라고
다음날 진해훈련소로 돌아와 집결하였는데
옆 침상에서 고향 얘기를 주고받던 동기
군기가 꽉 잡혔던 동기...
엄격해 보였지만 다정 다감하셨던 중대장님..
카리스마 넘치던 해병조교 ... 모두 보이질 않아......
두달전 훈련소에 입대하고 처음 중대를 편성할때,
어느중대는 해병조교가 빡세게보여 , 가지 않으려 하기도했었는데..
그때 중대편성이, 生과 死를 나뉘게 될줄은 꿈에도 몰랐고
순직한 동기의 많은 사연중 하나.....
누나는 동생에게 먼저 병역을 마쳐야 된다고 대학 휴학계를 내게하고
누나가 직접, 병무청에서 지원서를 가져와, 입대시켰는데
그만, 그 동생이 해난사고로 순직한 것
누나는 죄책감으로 매년 동생의 기일(2.22)에
현충원에서 동생의 묘비를 붙잡고 우시고...
운명의 그날, 통영 충렬사의 앞길에는 동백꽃이 유난히 붉었는데....
그래서 동백꽃을보면 그때의 아픈 기억이 생각난다
이젠, 살아남은 동기들도 어느덧 반백의 노년이되어...
호국영령이 되신 동기들이시여~
님들의 거룩한 희생을 잊지 않겠습니다 .
위글은 다음카페 "해병대 245기 남부지역 동기회" "필승"님 글입니다.
해양경찰 경비정이 물에 빠진 훈련병들을 구출하여 LST-815함에 인계하고 있는 모습 1974.2.22
인양된 YTL-30함 1974.2.25
1974년2월21일 진해 해군 신병훈련소에서 훈련중이던 해군159기,해경11기 위탁교육생들과 신병교육대
기간요원등 630명은 12주 교육과정중 8주차 교육인 유적지 참배와 함상 훈련차 진해항에서 LST-815함에
승선하여 출발하였으며 LST-815함은 통영 연안부두 남쪽2Km 지점, 장자도 동쪽 해상에 정박하였다.
다음날인 1974년2월22일 아침 6시30분 훈련병들은 항만 예인선인 YTL함에 환승하여 통영 연안부두에
도착하여 2키로 정도 북쪽에 있는 통영 충렬사를 참배하고 돌아와 통영 중앙동 연안터미널(현 문화마당)
에서 YTL-30함에 정원150명의 두배가 넘는 316명이 1진으로 승선 출발하였고 일기가 좋지않아 모함인
LST-815함으로 급히 갔으며 배를 모함에 대기위해 선수를 우측으로 급하게 꺽으면서 생긴 파도가 모함에
부딪혀 반동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