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역사적 전투명 : 이릉 전투 (夷陵 戰鬪)
2. 개요 : 유비, 관우의 한풀이 싸움으로 패하고 삼국정립의 시대로 돌입하다.
3. 공격군 : 촉(蜀) 유비군(劉備軍)
4. 수비군 : 오(吳) 육손군(陸遜軍)
5. 발생 시기 : 221년
6. 자료 출처 : 삼국지 인물사전
7. 해설 :
221년(장무 원년) 7월, 유비는 4만 대군을 이끌고 오를 침공한다.
목적은 '관우 처형에 대한 보복과 형주 탈환'이었다. 유비군은 쾌속 진군을 해 순식간에 오(吳)의 육의, 이이, 유아가 주둔한 무현(巫縣), 자귀(자歸)를 함락시킨다. 다음해 유비는 군대를 둘로 나눠 그 중 한쪽을 황권에게 지휘시켜 위의 남하에도 함께 대비한다. 유비 자신은 양자강 남쪽으로 진격해 이도의 효정에 포진하는데, 전군에서 후군까지 7백리나 되는 긴 전선이 형성되었다. 이때까지 오군은 연이어 패배하는데, 그것은 대도독 육손의 책략이었다. 육손은 촉군의 피로와 전선의 장대화를 기다려서 거듭되는 유비의 도발에도 응하지 않는다.
6월, 기회가 왔다고 생각한 오군은 일제히 반격을 개시, 정면에서는 제갈근이 공격하고, 산중에서도 복병이 유비 진영에 화공을 가하고, 때마침 동남풍이 불어 촉군 진영에 큰 불이 난다. 게다가 육손이 이끄는 군대도 양자강을 건너 촉군을 습격한다. 촉군은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궤멸해 사상자와 항복자가 각각 만 명을 넘는 대패배를 맛본다. 급보를 받은 조운이 자귀까지 원군으로 달려가지만 이미 전투는 끝난 뒤였다. 유비는 겨우 목숨을 건져 백제성으로 도망가고 촉의 마량, 풍습, 장남, 만족의 사마가 등은 전사하고 만다. 양자강 북쪽에 포진하고 있떤 황권은 퇴로가 끊겨 도망갈 곳을 잃어 위군에게 항복한다.
이 전투는 219년 위와 연합한 오나라가 유비의 육친적 존재인 관우를 패사시킨 사건에서부터 비롯된다. 유비는 일국의 황제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보복이라는 사사로운 감정으로 무익한 전투를 일으킨 것이다. 이 전투에서 최대의 수수께끼는 제갈량의 동향이다. 제갈량은 '만약 법정이 살아 있다면 이와 같은 패배는 없었을 것'이라고 패전 후 탄식했다는 기록이 있지만 전투에 참가했다는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또 오는 촉과 화평을 맺는 것에도 실패하지만, 위에 순종할 것을 서약해 양방향에서의 협공을 피해가는 등 외교 면에서 한 수 위였다.
이 전투에서 유비는 성도로 돌아가지 못하고 아들 유선을 제갈량에게 맡긴채 223년 4월 백제성에서 숨을 거둔다.
[자료 : 백미닷컴(baekm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