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 보면 한국 땅에 기독교가 들어온 지 120여 년이 되었습니다. 한국인은 수백년동안 정신적으로 미신적 무속종교와 퇴색되고 율법화된 전통종교인 불교와 유교의 지배하에 살고 있었는데, 이 종교들은 실로 무기력하였습니다. 사회 정치적으로는 타민족 또는 자국민의 압제자들의 무거운 멍에를 메고 노예 신세나 다를 바가 없는 삶을 살아가던 백성들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정신적으로 정치적으로 절망적인 상황에서 신음하고 있던 한국인들이 해방과 자유, 사랑과 봉사의 기독교 복음을 듣게 된 것이 120년 전의 일이었습니다. 마치 가시밭과 돌작밭 같던 당시의 한국 땅에 떨어졌던 복음의 씨앗이 숨 막혀 죽거나 말라죽지 아니하고 살아남았을 뿐 아니라 30, 60, 백배의 결실에 비유될 만큼 오늘의 한국교회가 위세를 떨치게 되었으니 실로 장한 일이었습니다.
부산 기독교 중년 포럼 참가자들
한국에 기독교가 들어온 것은 단순히 하나의 종교가 이 땅에 들어온 것을 의미하는데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한국과 한국인에게는 하나의 대혁명을 의미하였고. 당시 전근대적인 봉건계급 사회체제하에서 자유와 인권을 저당 잡힌 채 무지와 숙명론에서 빠져서 살던 한국인에게 기독교는 자유와 인권, 평등과 민주주의 등의 사상을 계몽시키고 의식화시킨 것이었습니다.
기독교는 한국에 처음으로 근대적 의미의 학교를 세우고 대중교육을 실시하고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에 눈을 뜨게 했습니다. 교회는 학교교육 이외에 교회 내 주일 학교 교육을 통해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사상을 보급하고 고취시킴으로서 일종의 의식혁명을 촉진시켰습니다. 고아와 가난한자 병든 자를 돕는 사회사업은 기독교의 사랑의 사회화의 노력으로서 그 정치적 의미는 대단히 큰 것이었습니다.
나아가서 기독교복음은 수천 년간의 속박에서 상민계급을 해방시켰습니다. 여기에 그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한국이 일제의 지배하에 들어가게 되었던 시기에 전개된 기독교가 한국인들에게 민족 해방과 자주독립의 당위와 그에 대한 희망과 비전을 고취시키고 실제로 독립운동에 나선 것입니다. 이러한 해방과 자유의 복음이 시한폭탄과 같이 폭발한 것이 바로 기미년 3ㆍ1운동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한국교회가 120년 전 한국에서 처음 출발했을 때 한국교회는 입술로만 사랑을 부르짖는 바리새인적, 율법적, 형식적 종교가 아니라 사랑을 생활로 사회적으로 변화해서 실천하는 살아있는 종교였습니다. 한국교회는 대중과 사회를 향해 문을 활짝 열고, 이웃과 사회에 봉사하고 사랑을 베풀기 위하여 그 자신은 가난한 처지에 만족했고 “자기를 비워 종의 모습을 취하는”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랐습니다.
1920년대에 접어들면서 한국기독교는 역사적으로 큰 분수령을 넘어 내리막길로 달렸다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1세대 크리스천들이 벌여온 민족 독립운동과 그 절정인 1919년의 3ㆍ1독립운동이 민족의 독립을 가져오지 못하고 실패로 끝나자 이때부터 한국기독교는 사회참여에서 후퇴하고 내세적 구원을 추구하는 신비주의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종교로 탈바꿈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기독교 신앙은 더 이상 현실세계와 한국의 공적인 사회적 삶에 관련을 맺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 기간에 소수의 목회자들과 평신도들이 신사참배문제와 종교 신앙의 정조 때문에 투옥 당하고 순교 당하는 영웅적 투쟁의 기록을 남겼던 것이 사실이지만 이것마저도 신앙의 자유나 복음의 정치적 증언 때문에가 아니고 종교적 율법의 요구를 지키려는 소극적 투쟁이었다는 사실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기간 동안 한국교회는 현실부정과 내세의 축복을 강조하는 편파적 복음을 가지고 대대적인 복음화 운동을 전개하였고 큰 성과도 거두었습니다.
한국기독교가 현실로부터 유리되고 영적 구원과 내세의 온갖 보상의 약속으로 민중들에게 아편을 먹여서 깊은 꿈속을 헤매고 있을 때 해방과 독립이 왔습니다. 이 해방과 독립은 한국 크리스천들이 공헌한 것도 번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총이라고 설교하는 것이 타당합니다. 그러나 크리스천들은 할 일을 하지 못하고 해방을 맞은데 대하여 부끄러운 줄 모르고 회개하지도 못했습니다. 이것은 한국교회가 이중으로 범한 과오입니다. 이러한 결과는 여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랬기 때문에 해방 이 후에 더 비참하고 부끄러운 실패를 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역사의 새 아침이 밝아 와서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던 해방과 자유가 왔고, 이를 바탕으로 하는 민주공화국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이 역사적인 첫 공화국의 첫 대통령이 기독교인이라는 사실을 가지고 크리스천들이 관계와 정계로 몰려들었습니다. 그러나 교회와 국가, 종교와 정치와의 관계에 관한 건전한 신학이 결여되었던 당시 한국교회가 개인이나 단체로나 의미 있고 책임 있는 정치참여를 할 것을 기대하기란 물고기를 잡으러 산으로 가는 격이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기독교인 대통령이 이끌었던 한국인에 의한 최초의 민주주의 국가의 첫 실험은 불행히도 실패하였습니다. 역사적인 여건이 성숙하지 않았던 탓이라 볼 수도 있으나 기독교인들의 책임이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에 대한 한국교회가 깊이 반성하는 일이 없었고 독립과 정부수립에 공로를 주장했던 기독교인들이 그 정부가 실패하였을 때 그 책임을 시인하지 않은 것은 비굴한 일이었습니다.
한국 기독교는 마치 왕에게 월급 받는 궁정 예언자나 호국종교의 제사장처럼 대통령과 그의 독재정치와 호전적인 북진통일론에 맞장구치고 축복하였습니다. 교회가 반공과 평화의 예언을 되 내이고 있을 때 학생들에 의한 4ㆍ19혁명이 일어나 12년간의 독재정권이 어이없이 몰락, 붕괴되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건은 기독교의 역사적인 망신이었습니다. 한국교회가 민족의 해방과 독립과 공화국 건설 이후 15년이란 절호의 기회를 다 허비하고 실패하였을 때 한국교회는 군사독재체제하에 살게끔 되었습니다. 이것은 신앙의 견지에서 볼 때 하나님이 부과하신 시련이나 심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한국교회의 믿음, 지혜, 역량을 테스트하는 기회였으나 한국교회가 이 군사독재의 역사적인 의무가 무엇인지에 대한 깨달음이 없었으므로 의미 있는 대결이 있을 수 없었습니다.
이 기간의 한국교회는 군사독재라는 예기치 않았던 도전에 책임 있는 응전을 촉구하는 하나님의 부름을 배반하고 딴전을 피었으며, 그 대신 한국교회는 이미 형성되었던 보수주의적 신학노선과 정치적 입장(소위 정교분리 원칙이니, 교회의 정치적 중립 원칙이니 하는 주장)을 더 경직화하고 오직 복음화 운동, 교세확장운동과 성령운동에 열중하였습니다. 더 큰 문제는 배타주의와 전근대적인 십자군 시대의 멘탈리티- 한국교회가 전하는 복음이 온전한 복음이 아니고 왜곡된 것이란 점입니다.
한국인이 믿고 전하는 복음은 개인의 영혼을 구원하여 하늘나라에 보낸다는 데에만 관심이 있었고 사회구원의 길이란 오직 그 사회의 모든 인간을 기독교인으로 만드는 방법뿐이란 것이었습니다. 기독교 신앙이 극도로 개인주의적이고 이기주의적이며 사적인 신앙으로 전락함으로 한국교회의 기독교신앙은 샤만적 기복신앙이란 굳건한 반석 위에 기초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수많은 크리스천들이 무당을 믿는지 예수를 믿는지 구별하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다음으로 한국교회는 교세팽창운동에 정신을 팔고 있음 교세 팽창운동은 두 가지 모양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하나는 개체교회의 초대형화이고 다른 하나는 교회 숫자의 증가노력입니다. 대형 교회의 폐단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교회 건물 공사비가 일천억 원에 달한다는 것입니다.
그 옛날 예루살렘에 지었던 솔로몬 성전과 베드로 성당의 건축비가 얼마나 들었는지 모르겠음. 그러나 예술성에서 있어서 그것들과 비교가 되겠는지 의문이고, 그 옛날 어둡던 시대에 그런 큰집을 지었다고 하더라도, 소자한 사람대접하는 것이 큰 집 짓는 것 보다 더 중요하다는 예수님의 엄한 교훈이 복음서에 있고, 또 한 인간의 가치가 온 천하보다 귀하다고 예수님이 말씀하셨는데 일천억 원의 돈을 건물 짓는데 쓴다는 것은 크리스천은 고사하고 정신이 성한 사람은 생각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이와 같이 지난 20년 동안 복음화운동, 성령운동, 교세팽창운동을 집중적으로 전개한 결과 한국교회는 가지고 싶었던 것을 다 획득한 듯합니다. 교회는 재산, 전력, 영광을 갖추었습니다. 실패와 수치와 희생의 상징이었던 나무십자가는 권세와 영광과 번영을 성장하는 황금십자가로 바뀌었습니다. 남과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이 세상에 파견된 것이 교회인데, 그것을 영리와 부의 추구를 본질로 삼고 있는 기업체와 구별하기 어려운 실정입니다.
한국교회가 걸어온 지난 120년은 초기의 30여 년 동안의 순수했던 때를 제외하고는 실태를 거듭하는 부끄러운 삶을 살아왔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의 한국교회는 적어도 성서적으로 볼 때 몇 가지 중대한 죄를 짓고 있습니다.
①한국교회는 경건을 뽐내고 입술만 나불거리는 제사장과 레위인 들을 대량으로 양성 하는 데는 성공했으나 매일의 사회생활에서 사랑을 실천하는 선한 사마리아인을 양성하는 데는 실패했습니다.
②한국교회는 하나님께 바치는 제사장은 알록달록하게 구색을 갖춰 잘 차렸고 예배의식도 그럴듯하게 엮어가나 신 한 켤레로 가난한 자를 팔고, 은을 받고 의인을 팔아서 정의는 돌보지 않고 땅에 떨어뜨렸습니다.
③모이는 교회는 성공했으나 흩어지는 교회 기능으로서는 실패하였습니다.
처음 1세기를 맞은 한국교회는 실상 벌거벗어서 부끄러운 데를 다 드러내놓고 있는데도 아름다운 옷을 입고 있는 줄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실상은 배고프고 가진 것 없는 알거지인데 스스로 배부르고 부자인 줄로 여기고 있음. 만약 한국교회가 역사적으로 저질렀던 실패와 과오를 깨닫고, 시인하고 삼베옷을 입고 회개하지 않으면 한국기독교는 한국의 희망이기는커녕 한국을 멸망으로 이끄는 망국종교가 될 것입니다.
◎토론 주제◎
1. 한국교회는 빛과 소금을 어떻게 이해하고 채택할 것인가?
- 교회는 세상을 구원하기 위하여 존재하는 하나님의 심부름꾼(agent)이다.
2. 흩어진 교회로서의 교회 기능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수행할 것인가?
3. 크리스천의 사회, 현실 참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어디까지 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
◎덧붙이는 말◎
-교회는 하나님의 의와 그의 나라(통치)를 이 땅에 구현하기 위해 세상에 존재하는 특수한 사명 공동체이다.
교회가 민족의 하나됨이나 사랑의 생산과 보급은커녕 미움과 이기심과 다툼을 조장하는 술도가와 같은 곳으로 착각하고 있으며 교회가 세상구원은 고사하고 자기구원도 어려울 정도로 도덕적 능력의 빈곤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자신의 이익과 부를 추구하고 자기 생존을 위해 급급하다 보면 교외는 어느새 제도화되고 상업화되기 마련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 몸이라고 표현하면서 실제로 교회가 그리스도와 상관없고 오히려 그리스도를 거스르는 삶을 살고 있다면 교회는 더 이상 그리스도의 몸이나 신부가 될 수 없다.
인간은 섬이 아닙니다. 인간은 섬과 같이 고립된 개인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며 어떤 모양으로든지 서로 연대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인들 가운데 교회가 세상이라는 망망대해에 표류하는 노아의 방주처럼 고립된 것으로 믿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런 사람들 기독교인들의 현실 참여는 기독교의 본질적 신앙에서 이탈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실상이 세상과 사회적 현실을 악마에게 송두리째 맡겨버리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기독교는 본래부터 사회적 종교, 실천적 종교, 실제적 종교입니다. 기독교는 현실 참여적인 종교라는 것이 큰 특징입니다. 히브리민족은 400년간 애굽의 종살이를 했고 신약성서에서는 인류의 구세주이신 하나님의 아들이 피압박인 유다인으로 오셨다는 역사적인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 중에서도 갈릴리 인으로 오셨다는 사실이 주는 의미는 하나님 자신이 인간의 억압구조 현실 가운데 오셨다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빌립보 2장에서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한 분이셨지만 자신을 비워 종의 신분을 취하셔서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신이 인간의 정치현실에 구체적으로 참여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기독교는 본래부터 사회적 종교요, 현실정치에 참여하는 종교입니다. 하나님 자신이 초월적인 신들의 세계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이 인간의 현실적 정치상황에 찾아오시고 참여하신다는 것을 출발점으로 삼는 종교입니다.
이 글은 지난 6월 부산 기독교인 중년포럼(매월 첫째주 목요일 저녁 7시, 좋은나무교회)에서 박철 목사가 발제한 내용입니다. 8월 정기포럼은 여름행사로 인해 한 달 건너 뛰어 9월 1일(목) 저녁 7시 모이기로 했습니다. 이 번에는 민들레교회 최완택 목사님을 강사로 모셔 "땅과 하늘이 신음한다"는 강연을 듣기로 했습니다. 이 날은 관심있는 지인들과 언론사에게 초청장을 보내 중년 포럼의 외연을 확대해 나가기로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