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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지리3대종주클럽에 퍼 올려진 산행기인데 2005년 7월 저희 집에서 출발하신 조선대 장선생님의 산행기입니다. 두분 건강하시기를 바라며 여기에 옮겨보았습니다.
'한국인의 기상 여기서 발원되다'
경호강의 유유한 물줄기를 따라 산청으로 달려간다. 웅석봉에서 지리산 주능선을 거쳐 덕두산까지 태극문양을 그리며 뻗어가는 지리산의 시작과 끝을 잇는 태극종주의 대장정에 나서는 길이다. 14시간 이상을 걸어야하는 첫날 산행을 위해서는 새벽부터 산행을 시작해야하는 터라 웅석봉 아래 어천마을에 민박을 든다.
'그대 부름에 내가 있어 지리에 안기노니/세상의 이치가 지리의 품속에 있나니/세상사 어지러움 지리에 맡기노니/태극의 발길에 삶의 인내 가슴으로 다가오네'
방에 들어가니 벽에 붙여 놓은 메모판에 기록된 수많은 낙서가 눈길을 끈다. 여러 글귀 속에서 태극종주를 마친 산꾼들의 체취가 생생하게 풍겨 나온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출발준비를 한다. 직장동료와 둘이서 태극종주의 첫발을 내딛는다. 민박집 아저씨가 친절하게도 무거운 배낭은 밤머리재 도착시간에 맞추어 실어다주기로 하여 물병만 차고 웅석봉을 오르는 호사를 누린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 계속된 장맛비에 어천계곡의 물소리가 우렁차다. 날마다 내렸던 비가 어제 오후부터 개기 시작한 것은 우리의 산행을 위해서 지리산 산신령이 도운게다.
랜턴 불빛을 비추어보니 곳곳에 작은 폭포들이 힘찬 물줄기를 품어내고 있다. 점차 물소리는 멀어지고 길은 능선으로 달라붙는다. 계곡 길을 벗어나고 보니 태극종주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느낌이다.
"안녕하세요. 어디에서 오셨습니까?"
"대전에서 왔습니다. 2박3일로 태극종주하려고요. 그런데 짐이 무거워 벌써부터 힘이 드네요."
비박장비에 3일분 양식과 코펠, 버너까지 짊어지고 다녀야하는 종주산행은 거리도 거리지만 배낭의 무게 때문에 힘이 들 수밖에 없다. 날이 서서히 밝아오자 운무 덮인 경호강이 신비롭고, 운해위로 고개를 내민 둔철산은 섬이 된다. 새와 매미의 아침연주가 이미 시작되어 온 산에서 감미로운 선율이 흘러나온다. 남동쪽으로 바라보이는 달뜨기능선에도 운무가 가볍게 덮여 있다. 한국전쟁 당시 빨치산 대원들이 저 달뜨기능선으로 떠오르는 달을 바라보며 돌아가지 못하는 고향을 생각하고, 만나지 못하는 가족을 애타게 그리워했다고 한다.
달뜨기능선을 바라보며 가족을 그리워하고
웅석봉(1,099m)에 올라서자 곰 모양을 새겨놓은 검은 색 표지석이 반갑게 맞이한다. 경호강과 둔철산이 웅석봉을 호위하고, 가파른 경사를 이룬 북서쪽 비탈이 아찔하다. 정상에서 놀던 곰이 가파른 북사면으로 떨어져 죽었다는 전설에서 유래되었다는 웅석봉(熊石峰)의 이름이 실감난다.
능선 길을 걷다보면 오른쪽으로는 지곡사를 품고 있는 곰골에 운해가 떠 있고, 왼쪽으로는 멀리 지리산 지능선들이 길게 이어진다. 녹색의 수해(樹海)와 흰색의 운해(雲海)가 대비를 이룬 모습은 지리산의 아침이 만들어내는 신비로운 풍경이다. 뿌연 안개 너머로 첩첩하게 다가오는 지리산줄기를 바라보고 있으면 가슴이 뭉클해진다. 웅장한 자연에 대한 외경심일 것이다.
산청읍에서 대원사 방향으로 넘어가는 고갯마루인 밤머리재(570m)에 내려서자 민박집 아저씨가 기다리고 있다.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서 아침과 점심용 주먹밥을 부탁했더니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을 1인당 두 봉지씩 담아 배낭과 함께 가져왔다.
"고맙습니다."
"태극종주 무사히 잘 마치시기 바랍니다."
마음으로 고마운 인사를 나누고 헤어진다. 3시간 남짓의 아침산행을 마치고 먹는 식사라 그렇게 맛있을 수 없다. 배낭의 무게를 최대로 줄인다고 줄였으나 배낭을 메고 보니 보통 무게가 아니다.
나무 사이를 뚫고 불어오는 바람이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씻어준다. 앞으로 바라보이는 왕등능선이 움직이는 운무에 춤을 춘다. 운무가 살짝 걷힐 때면 왕산과 필봉산이 등장하기도 한다. 유유히 흘러가는 경호강과 산청읍내를 옅은 운무가 살짝 뒤덮고 있다. 울창한 숲길은 마치 녹색의 바다 속을 헤엄쳐가는 것 같다. 가끔 트이는 조망처에서는 양쪽으로 멀리 마을과 논밭들이 정답게 다가온다.
동왕등재(935.8m)에 올라서자 비로소 지리산의 품속에 깊이 빠져든 것 같다. 서왕등재를 거쳐 하봉-중봉-천왕봉으로 이어지는 지리산 동부능선이 한눈에 바라보이고, 웅석봉과 지금까지 지나온 능선이 첩첩이 다가온다. 유장한 산줄기는 대원사계곡 같은 깊은 골짜기를 만들어내었다. 깊고 깊은 골짜기 상류에 윗새재마을이 별천지처럼 자리 잡고, 중류부에는 대원사가 고즈넉하게 앉아 수도 정진중이다. 중봉에서 가지를 친 써리봉능선이 대원사계곡을 사이에 두고 길게 이어진다.
서왕등재로 가는 길은 잔잔한 파도처럼 완만하다. 전망바위에서 바라본 유평리마을과 대원사계곡이 평화롭다. 자칫하면 그냥 지나칠 뻔했던 서왕등재(1,040m)에서의 조망은 좋지 못하다. 오히려 마음은 왕등재 습지에 가 있다. 서왕등재에서 10분 정도 내려오니 3만㎡에 이르는 넓은 습지가 펼쳐진다. 습지는 푸른 초원을 이루고 꽃창포가 군데군데 피어 있다. 그 위를 나는 잠자리 떼가 마냥 자유롭다. 습지에는 꽃창포 외에도 동의나물, 사초류, 난초류 등이 서식하고 있다. 습지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습지를 빠져나가면서 개천을 이룬다.
하봉에서 본 초암능선의 신비경
억새와 넝쿨식물이 길을 가로막는 외고개에 도착하자 바로 아래로 넓은 초지가 내려보인다. 꽃창포와 까치수염이 흔들거리고, 가끔은 산수국도 피어 있다. 새재에 도착하니 윗새재마을이 가깝다. 30분 정도면 내려갈 수 있어 3박4일 일정으로 태극종주를 하는 경우 윗새재마을을 숙소로 이용할 수 있다. 노랑 원추리와 보라색 꽃창포 너머로 하봉이 바라보인다. 새재에서 점심을 먹고 막 출발을 하려는데 웅석봉 아래에서 만났던 대전 산꾼이 온다.
"아이고, 힘이 드네요."
"대단하시네요. 그 무거운 짐까지 지고서."
"저는 아무래도 오늘 장터목까지 가기가 힘들 것 같아요. 비박장비도 있고 하니까 힘이 들면 중간에서 비박을 할까 해요."
"그러면 저희 먼저 출발하겠습니다. 만약 장터목대피소에서 만나게 되면 건배 한 잔 하시지요."
대전 산꾼과 헤어져 오후 산행을 시작한다. 숲 속에 푹 빠져 걷다가 전망이 트이는 바위에 서면 북쪽으로 엄천강의 유유한 물 흐름이 어렴풋이 감지된다. 벼랑을 이룬 바위들을 몇 번 지나고 밧줄을 잡고 올라서자 30명도 충분히 앉을 수 있는 새봉 직전의 너럭바위다.
너럭바위 바로 위의 새봉(1,323m)에서는 북쪽으로 상내봉을 거쳐 벽송사로 가는 길이 갈린다. 안개는 더욱 짙어져 몇 미터 앞이 안 보인다. 인공적인 요소라는 찾아볼 수 없는 깊고 깊은 산속에 안개까지 잔뜩 낀 분위기는 인간을 겸손하게 한다. 나무 한그루 풀 한포기와 차이가 없는 자연의 한 요소로서의 인간이 되었다.
수십 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바위에 앉아 있는 작은 바위는 장독과 장독뚜껑 같아 보인다. 독바위다. 독바위를 지나자 조갯골에서 들려오는 물소리가 외로움을 달래준다. 1천 미터가 훨씬 넘는 산줄기까지 물소리가 크게 들려오다니, 지리산이 아니면 상상도 할 수도 없는 일이다.
조갯골 물소리는 우리를 쑥밭재로 인도한다. 쑥밭이 있었던 고개라는 의미의 쑥밭재에서는 쑥 한 포기 찾아볼 수 없다. 쑥밭재에서 2~3분만 내려가면 조갯골 물이 철철 흘러내린다. 울창한 숲과 자욱한 안개가 숭엄한 느낌을 전해준다. 지리산에서도 가장 사람들의 통행이 적은 곳이라 등산객 한 사람 만날 수가 없다. 계속되는 오르막이 숨을 헉헉거리게 하고, 쑥밭재 근처에서 들려왔던 물소리마저도 끊어져 적막하기까지 하다. 가끔 울어주는 새소리가 적막한 산길을 걷고 있는 나그네의 외로움을 달래줄 뿐이다.
낯익은 국골사거리 이정표를 만나자 옛 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갑다. 일행은 조금 떨어져 있기 때문에 국골사거리에서 차분하게 앉아 기다린다. 쉬면서 깎아먹는 참외 맛은 말로 표현하기가 힘들다. 조용히 눈을 감고 산속에서의 행복을 만끽한다.
"많이 기다렸어요?"
"아니요. 힘들지 않아요?"
다람쥐 한 마리가 인간의 탐욕을 버린 두 나그네들 앞에서 재롱을 부린다. 편견이 없어진 인간은 산속의 야생동물과 이렇게 친구가 된다. 지대가 높아짐에 따라 구상나무, 잣나무 같은 고산식물이 많아진다.
몇 년 전 추성리에서 두류능선을 거쳐 하봉까지 올랐다가 초암능선으로 내려가면서 가슴팍까지 빠지는 눈에 조난을 당했던 기억이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끝까지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걷고 또 걸었던 당시의 기억이 피곤한 오늘 산행에 활력을 불어넣어준다.
지리산의 변화무쌍한 날씨는 갑자기 운무를 걷어내고 알몸을 보여주더니 국골쪽에서 형성된 운무가 하봉과 주변 봉우리를 금세 덮어버린다. 반면에 능선을 사이에 두고 남쪽의 조갯골은 햇볕이 비춰 녹색바다를 이루어 대조를 이룬다. 다홍색으로 핀 동자꽃이 따뜻하고 다정다감하다.
하봉(1,781m)에 올라서자 초암능선이 잠시 구름옷을 벗어준다. 하봉에서 뻗어나간 산줄기가 국골과 칠선계곡을 가르면서 길게 이어지는 초암능선은 수직절리를 한 바위들이 불쑥불쑥 솟아 아기자기하다. 아름다운 바위들은 격조 높은 구상나무의 자태와 어울려 절경이 되었다. 여기에 다시 운무가 덮이니 이는 신비경이다. 안개 덮인 중봉은 보일 듯 말듯 자기존재만 알려준다.
수많은 봉우리 호령하는 천왕봉
중봉쪽으로 가면서 만나는 하나하나의 바위는 거친 성격의 바위지만 전체가 모여 멋진 풍경화가 된다. 바로 조화의 미다. 구름바다에 떠 있는 섬처럼 중봉이 살짝 고개를 내밀 때는 나무들이 몸을 움직인다. 칠선계곡도 운무를 움직여 자기존재를 알려온다.
하봉헬기장에 도착하자마자 배낭을 벗어놓고 5분쯤 내려가니 간장이 서늘할 정도로 차고 맛좋은 물이 기다리고 있다. 물 한 모금이 오늘의 피로를 싹 씻어주는 것 같다. 그러나 한가하게 머무를 여유가 없다. 다시 헬기장으로 올라오니 촛불처럼 솟아오른 써리봉이 예쁘게 단장한 여인처럼 눈길을 유혹한다. 중봉비탈을 할퀴고 간 산사태가 나의 가슴을 아리게 한다.
중봉(1,875m)에서 바라본 마야계곡의 운무와 암릉을 이룬 써리봉의 조화가 예술적이다. 웅장하게 솟아 있는 천왕봉이 지리산의 여러 봉우리들을 호령하고 있는 듯하다. 천왕봉 너머로 꿈틀거리는 주능선이 유장하다. 웅대한 천왕봉도 불쑥 솟은 바위와 구상나무, 고사목이 어울려 아기자기하다. 천왕봉으로 오르는 급경사가 나를 힘들게 한다. 병풍처럼 펼쳐지는 써리봉과 운무에 덮인 칠선계곡이 힘내라고 격려를 한다.
'한국인의 기상 여기서 발원되다'
천왕봉(1,915m) 표지석이 나그네를 변함없이 맞이한다. 서쪽과 동쪽으로 꿈틀거리며 이어가는 주능선의 여러 봉우리들이 천왕봉을 향하여 합장을 한다. 제석봉·연하봉·촛대봉·영신봉·덕평봉·명선봉·반야봉으로 이어지는 주능선과 수많은 지능선이 거대한 산군(山群)을 이루고 있는 지리산의 정수리에 서 있으니 신선이 된 것 같다. 지리산의 한없이 넓은 품과 끝없이 깊은 속은 나그네를 어느덧 성인군자의 경지로 끌어올린다.
지리산은 3개도 5개 시·군(경상남도 산청군·함양군·하동군, 전라북도 남원시, 전라남도 구례군) 15개면에 걸쳐 있는 거대한 산이다. '지이산(地異山)'으로 쓰고 '지리산'으로 읽는 이 산은 예로부터 봉래산(금강산), 영주산(한라산)과 더불어 삼신산(三神山)의 하나인 방장산으로 일컬어 왔다. 노고단의 남악사나 태고 때 천신(天神)의 딸 성모 마고가 지리산에 하강했다는 설 뿐 아니라 골짜기마다 자리 잡은 유서 깊은 절들은 지리산을 이미 신앙적인 산으로 자리매김하였다.
또한 지리산은 우리 민족의 한과 아픔을 끌어안고 있다. 구례군 토지면에 있는 석주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정유재란 때 왜군의 침입을 막다가 전사한 승병과 의병들의 혼이 곳곳에 잠들어 있고, 해방 이후 좌우대립의 결과물인 빨치산을 통해 드러난 우리의 아픔이 골짜기마다 배어 있다. 여기에 가진 자들의 수탈 속에서 이름 없이 살다간 민초들의 애환과 서러움까지 어려 있다.
뉘엿뉘엿 넘어가는 저녁햇살에 지리산의 봉우리들이 실루엣을 이루며 신비로운 풍경을 연출한다. 아, 장엄함이여!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제석봉 고사목 너머로 비췬 낙조는 지리산의 감동을 압축적으로 표현해준다. 지리산 줄기는 수십 번 겹쳐지면서 파도가 일렁이는 듯 꿈틀거리고, 운해 위에 어머니의 젖가슴처럼 붕긋 솟은 반야봉은 지리산의 포근함을 대변해준다.
장터목대피소에 도착하니 국골을 거쳐 올라온 일행 두 명이 기다리고 있다. 저녁을 지어먹고 야외탁자에 앉아 소주 한 잔씩을 나눈다. 하늘에서는 별빛이 속삭이듯 말을 걸어오고 두둥실 뜬 달이 밝은 미소를 보낸다. 장시간의 산행으로 피곤했던지 몇 순배 술잔이 돌자 스르르 눈이 감긴다.
반달곰을 만나다
새벽녘 빗소리에 잠을 깬다. 세석대피소에서 아침을 먹기로 하고 장터목대피소를 나서는데, 가랑비가 내린다. 동자꽃, 범꼬리 같은 야생화가 아침인사를 건넨다. 구상나무가 고사목과 함께 길안내를 한다.
"몇 학년이야?"
"초등학교 5학년이여요."
담임선생님과 함께 지리산 종주에 나선 초등학생 10여명의 모습이 대견스럽다. 아이들도 대단하지만 선생님의 정성이 지극하다. 연하봉은 바위의 모양도 다양하고 주목과 구상나무가 이러한 바위들과 어울려 장관을 이룬다. 여기에 춤추는 운무가 함께 하여 말 그대로 선경이 된다. '연하선경'을 지리산 10경중의 하나로 꼽는 이유를 알 것 같다.
멀리서 보면 마치 촛불 같이 보이는 촛대봉은 사방으로 확 트이는 조망처이지만 오늘은 한치 앞을 볼 수가 없다. 촛대봉과 영신봉을 사이에 두고 완만한 경사로 넓게 펼쳐진 세석평전은 봄이면 키 작은 구상나무와 함께 어우러진 철쭉이 화원을 이룬다. 선홍빛의 바래봉 철쭉이 강열하다면, 연분홍빛의 세석 철쭉은 은은하고 담백하다. 잘디잔 돌이 깔린 10만여 평의 평원을 이루고 있다 해서 세석(細石)평전이다.
세석대피소에서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또 걷기 시작한다. 원추리, 비비추 같은 야생화가 세석의 여름을 아름답게 장식하고 있다. 주능선을 걷다보면 양쪽으로 거미줄처럼 뻗어있는 지능선과 깊고 깊은 골짜기들이 웅장한 멋을 안겨주는데, 오늘은 운무 속에서 그 기운을 느낄 수 있을 뿐이다. 대신에 길가에 피어있는 각종 야생화들과 등산로 주변의 바위들이 시선을 끈다.
선비샘에서 마시는 물 한 잔이 뜨거워진 가슴을 식혀준다. 구벽소령에서 벽소령대피소로 가는 길은 산허리를 가로질러 만든 옛 작전도로다. 물론 지금은 나무가 자라고 풀이 자라 오솔길 정도로 되었지만 한국전쟁 당시 빨치산 토벌을 위해서 개설한 함양 마천삼정마을과 하동 화개 의신마을을 잇는 작전도로였다.
"내일까지 비가 온데요. 장터목에 예약을 해 두었는데 여기에서 삼정리로 하산하려고요."
"지리산의 날씨야 항시 변화무쌍한데, 큰마음 내어서 여기까지 올라왔으니 산행을 계속하시지 그래요?"
벽소령에서 만난 50대 부부는 일기가 좋지 않다고 산행계획을 취소하고 하산을 한다. 이런 날씨에도 홀로 걷고 있는 아주머니, 방학을 맞이하여 친구들과 함께 종주길에 나선 대학생, 가족끼리 길을 나선 등산객 등 지리산 종주를 하는 사람들을 자주 만난다.
두 개의 바위가 다정한 형제 같은 형제봉에 서 있는 소나무 한 그루와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주목과 구상나무군락지가 나타나더니 연하천대피소가 나온다. 연하천대피소 주변의 수백 년 수령의 주목과 구상나무는 고고한 인품을 가진 선비 같다. 연하천대피소는 점심을 먹는 인파로 시끌벅적하다. 어느덧 비는 그쳐 간간히 햇볕도 비췬다.
"아저씨, 우리 뒤에 반달곰이 따라와요."
10여명이 단체산행을 하고 있는 팀의 여학생이 나에게 일러준다. 그러고 보니 학생들 뒤로 시커먼 반달곰이 어슬렁어슬렁 따라오고 있다. 지리산에 방사해 놓은 반달곰이다. 산에서 만난 야생동물은 먼저 악의를 보내거나 특별한 행동을 하지 않으면 사람을 해치지는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혼자 산행을 하다가 곰이나 멧돼지 같이 큰 동물을 만나면 겁이 나게 마련이다.
반달곰과 헤어져 가끔 새소리만이 들려오는 고요한 산길을 걷는다. 걷는다는 것은 내가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일이다. 나무와 풀, 하늘과 구름, 햇볕과 바람, 새소리와 매미소리들이 나를 깨어있게 해준다. 이 모든 것들이 감사하고 고마울 따름이다. 토끼봉을 거쳐 화개재로 내려선다. 화개재는 목통골을 통해서 올라온 경남 하동군 화개면 사람들과 뱀사골을 통하여 올라온 전북 남원시 산내면 사람들이 물물교환을 했던 고개다.
550여개에 달하는 계단은 오늘 구간 중 가장 힘든 구간이다. 이렇게 올라서서야 삼도봉에 도착한다. 삼도봉은 전라남도 구례와 전라북도 남원, 경상남도 하동이 만나고 갈리는 곳이다. 그래서 봉우리 이름도 삼도봉이다.
반야봉 길이 갈리는 노루목에 서자 피아골 상류인 용수골 물소리가 시원하게 들려오고 노고단으로 향하는 능선이 부드럽게 펼쳐진다. 임걸령과 돼지평전을 거쳐 노고단대피소에 도착하여 휴식을 취하려는데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운해에 뜬 봉우리, 춤추는 녹색물결
노고단의 새벽이 분주하다. 이제 5시를 갓 넘었는데 대피소는 이미 하루가 시작되었다. 밖으로 나가보니 벌써 아침을 준비하는 사람, 산으로 오르는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인다. 이틀 산행으로 상당히 지쳤었는데 아침에 일어나니 몸이 가볍다. 지리산의 맑은 기운이 내 몸의 기력을 회복시켜준 것이다.
우리는 미숫가루로 간단하게 요기만 하고 정령치에서 늦은 아침을 지어먹을 요량으로 6시 서북능선길에 오른다. 화엄사계곡을 하얗게 메운 운무가 구례들판과 섬진강의 유유한 모습을 감싸고 있다. 성삼재에 도착하니 구례에서 6시에 출발하는 성삼재행 첫 버스가 막 들어온다.
엊저녁의 비는 언제 그랬느냐 싶게 햇볕까지 비췬다. 서북능선은 주능선에 비하여 나무의 크기도 작고 웅장한 맛은 떨어지지만 주능선을 전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매력을 지녔다. 아침 안개가 걷히자 녹색바다를 이룬 지리산이 내 가슴까지 녹색물결로 출렁이게 한다.
작은고리봉(1,248m)을 넘어서자 만복대가 손짓한다. 그리고 하위마을에서 올라오는 길이 만나는 묘봉치에서부터 억새길이 시작된다. 아직 피지 않은 억새는 까치수염·엉겅퀴·꽃창포·비비추·말나리 같은 야생화에게 꽃피울 자리를 제공하였다. 푸른 초원을 이룬 억새는 가을이면 은빛 찬란한 천국으로 변모하게 될 것이다.
서쪽의 지리산온천에서 형성된 운해가 주변의 산을 섬으로 만들어 나그네의 발길을 붙잡는다. 춤추는 운무는 작은고리봉을 금방 감쌌다가도 어느새 옷을 벗어주고, 묘봉치를 넘은 운무는 잰걸음으로 달려가 반야봉에 면사포를 씌우기도 한다.
만복대에 가까워지면서 억새의 물결은 더욱 폭을 넓힌다. 온 산을 뒤덮은 운무는 만복대(1,433m)에서 바라보는 산 색깔을 온통 하얀색으로 덧칠해버렸다. 정령치(1,172m)에 도착하자 지나는 차량도, 휴게소에 머무는 사람도 별로 없어 조용하기만 하다.
"어디로 가세요? 우리는 백두대간 종주중인데요."
"저희는 태극종주중이여요. 그래서 바래봉과 덕두산을 넘어 인월까지 갑니다."
"어젯밤 삼겹살은 정말 맛있게 먹었습니다. 그 맛은 두고두고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어제 저녁 노고단대피소에서 억수같이 쏟아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삼겹살에 소주 한 잔씩을 같이 나누어 먹었던 팀이다. 정령치(鄭領峙)라는 이름은 기원전 84년 마한의 왕이 변한의 침략을 막기 위해 정(鄭)씨 성을 가진 장군으로 하여금 성을 쌓고 지키게 하였다는 데에서 유래하였다. 신라 때에는 화랑이 이곳에서 무술을 연마하기도 했다.
정령치에서 늦은 아침을 먹고 있는데, 비가 오기 시작한다. 성삼재 근처에서는 햇볕까지 났었는데……. 고리봉으로 오르는 길에서 내려다본 도로는 말 그대로 구절양장(九折羊腸)이다. 가랑비에도 불구하고 시야는 웬만한 날씨보다 더 넓게 트인다.
고리봉(1,305m)에 올라서자 지금까지 걸어왔던 하봉·중봉·천왕봉·제석봉·명선봉·토끼봉이 옅은 운무에 감싸인 채 꿈같은 풍경을 연출하고, 반야봉과 노고단을 돌아 만복대를 거쳐 오는 서북능선은 밀려오는 파도와 같다. 주능선을 떠받치고 있는 심마니능선·와운능선·삼정산능선·창암능선 같은 지능선은 지리산의 서까래 역할을 한다. 골짜기마다 가득 찬 운무는 녹색의 물결과 행복한 조화를 이룬다.
고리봉에서 백두대간 길은 갈리고 우리는 세걸산으로 향한다. 북쪽으로 보이는 운봉들판과 주변의 황산, 그리고 백두대간을 이루고 있는 여러 산봉우리들이 운무에 춤을 춘다. 춤추는 풍경에 흠뻑 빠져 걷는 발걸음은 한걸음 한걸음이 곧 춤사위다. 어느덧 세걸산(1,220m)에 도착해 있다. 세걸산에 서서 지금까지 걸어왔던 능선을 바라보니 스스로 대견해진다. 하봉-중봉-천왕봉-제석봉-연하봉-촛대봉-영신봉-덕평봉-토끼봉-반야봉-노고단-만복대-고리봉, 그리고 더 걸어야 할 바래봉-덕두산. 여기에서 보이지 않는 새봉-왕등재-웅석봉. 이 먼 길을 3일 동안 걸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심원·달궁계곡과 심원마을, 와운계곡과 와운마을은 속세와 동떨어져 있는 마음의 고향이다. 천상의 화원 같은 느낌이 드는 바래봉 철쭉군락지는 푸른 초원과 진녹색의 철쭉나무 모둠들이 만개한 철쭉동산을 연상시킨다. 5월 중순이면 선홍빛 철쭉이 사람들의 혼을 빼앗아가는 곳이다. 푸른 초지로만 이루어진 바래봉은 스님의 밥그릇인 바리때를 엎어놓은 것 같다. 바래봉 정상으로 오르는 급경사가 만만치 않다. 하산해서 마실 시원한 맥주 한 잔을 생각하며 힘을 낸다.
바래봉에서 그 동안 지나온 능선을 바라본다. 다해냈다는 뿌듯함과 고행을 벗어났다는 해방감, 그리고 왠지 모를 허탈감이 가슴을 적신다. 바래봉 표지석에 기대어 서서 지리산과 지리산에 의지해 있는 여러 고을과 들판을 바라본다. 모든 것이 소중하고 고귀하다.
지리산 서북쪽 마지막 봉우리인 덕두산으로 가는 길. 살갗을 쑤시는 가시도, 발목을 붙잡는 넝쿨도 우리의 길을 막지는 못한다. 덕두산(1,149m)은 숲 속에 조용히 숨어서 우리를 속세로 내려가라 한다. 그리고 사람을 포함한 모든 사물을 섬기며 겸손하게 살라 한다. 그렇게 사는 것이 지리산다운 것이라 한다.
(2005. 7. 14 ~ 16)
*산행코스
-. 구간별 소요시간
어천마을(2시간) → 웅석봉(1시간 40분) → 밤머리재(1시간 50분) → 동왕등재(1시간 50분) → 왕등재습지(50분) → 새재(2시간) → 쑥밭재(1시간 10분) → 국골사거리(50분) → 하봉(50분) → 중봉(40분) → 천왕봉(50분) → 장터목대피소(1시간 30분) → 세석대피소(1시간 30분) → 선비샘(50분) → 벽소령대피소(1시간 30분) → 연하천대피소(1시간 50분) → 화개재(1시간 30분) → 임걸령(1시간 20분) → 고노단대피소(40분) → 성삼재(2시간 30분) → 만복대(40분) → 정령치(30분) → 고리봉(1시간 30분) → 세걸산(1시간 30분) → 팔랑치(40분) → 바래봉(40분) → 덕두산(1시간 40분) → 인월 (총소요시간 : 34시간 50분)
-. 날짜별 소요시간
<1일째> 어천 → 장터목대피소(14시간 30분 소요)
<2일째> 장터목대피소 → 노고단대피소(10시간 소요)
<3일째> 노고단대피소 → 인월(10시간 20분 소요)
*교통
-. 대진고속도로 산청나들목을 빠져나와 경호강변의 3번 국도를 따라 진주방향으로 달리다가 심거마을 입구에서 경호강 다리를 건너 1.4km쯤 가면 웅석봉 초입인 어천마을이다.
-. 하산지점인 인월은 88고속도로 지리산나들목에서 5분 정도만 달리면 곧바로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