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인형
몇 년 전일이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구를 기다리고 있었다. 세찬 바람에 밀려 눈이 지상으로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쩡쩡 얼어붙은 보도블럭 위로 사람들의 발걸음도 어지러웠다. 차가 밀리는지 친구는 쉬이 오지 않았다.
차의 온기를 위해 시동을 다시 걸었다. 그 때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 하나가 뜨겁게 가슴을 파고들었다. 그동안 들어 왔던 사랑의 기쁨이나, 슬픔을 노래한 대중가요와는 분명 뭔가 달랐다. 끓어오르는 듯한 탁성의 목소리. 아름다고 강렬한 가사. 그 노래를 라디오에서 들었다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희긋희긋 눈발이 가느려질 때 쯤 나타난 친구도 노래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그 노래가 류시화의 시(詩)를 가지고 만든 안치환의 ‘소금인형’이라는 것을 한참이 지난 다음에야 알게 되었다. CD를 구해 반복해서 노래를 들어 보았다. 참 이상한 일이었다. 노래를 듣고 있으니 가슴이 뜨거워졌다. 불현듯 눈가가 붉어지기도 하고, 가슴이 울컥해지기도 하는 것이었다. 피를 토하듯 부르는 탁성의 목소리에 가슴이 사무쳐왔다.
그 것은 삶의 연민 같기도 하고, 아픔 같기도 했다. 수많은 생각들이 마음 언저리를 애잔하게 맴돌았다. 흔적도 없이 바다로 스밀 소금인형의 아찔함을 생각해보았다. 온전히 무엇가 하나가 된다는 것. 그것은 모든 것을 버릴 수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고등학교를 입학하고 국어선생님이 찾아오신 적이 있었다. 나에게 글을 써보라고 하셨다. 그 일은 내가 넘을 수 없는 높은 산처럼 아득하게 느껴졌다. 더듬더듬 힘든 고개 하나를 겨우 넘었을 때 행운처럼 서울 D대학에서 초청장과 여비를 보내왔다.
난생 처음 부산에서 기차를 타고 서울이란 곳을 혼자 왔었다. 그 때 만났던 사람들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졸업과 동시에 내가 갈 길이 어디인지 두서없이 엉킨 의문들 앞에서 진땀이 났다. 문학을 사랑하는 그들처럼 나도 문학도가 되고 싶었지만, 나는 그 길을 택할 수가 없었다. 부담감 때문이었다. 부족한 내 실력도 실력이지만, 동생들의 학비로 경제적인 문제를 고스란히 떠안고 있는 큰 오빠에게 더 이상 십자가를 지게 할 수 없었다. 발뒤꿈치가 다 닳아 속이 말갛게 보이던 양말을 신고 세무사사무실로 출근 준비를 서둘던 오빠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 학교 출신 작가들의 대표작들을 묶은 시집을 선물로 끌어안고 교문을 나서는데 가슴이 저렸다.
결혼을 하고 단칸방에서 시작된 신접살이는 투쟁하듯 현실을 살게 했다. 늘 마음속에는 연서처럼 글에 대한 그리움은 있었지만, 그 길은 멀어보였다.
여러 번 이사를 해야 했던 빈한(貧寒)의 아픔은 고단했다. 그 고단함에 휘둘러 어느 날은 죽을 것처럼 쓸쓸하고 우울했다. 슬그머니 조였던 허리띠를 풀었다. 늦게나마 문학도가 되었다. 수필가라는 명찰도 달았다. 문필가라는 칭호가 주는 중압감은 무거웠지만, 뭔가를 씀으로써 내 삶이 더 진지해지니 복되다 생각했다. 그래서 그런지 내 사유는 대체로 편안하고 따뜻했다. 그 아늑하고 한가함에 미진함은 늘 남아있었다. 돌이켜보니, 속 시원한 글을 분만한 기억이 나지 않는다.
오늘도 절규하듯 부르는 노래를 듣는다. 노래를 듣고 있으면, 여전히 가슴이 뜨거워지고, 알 수 없는 아쉬움이 가슴을 쑤셔 된다. 나 자신을 버리기 위해 수없이 겪어야 할 고통이 있었는지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고뇌하지 않은 삶에 깊이를 느낄 수 없듯이, 고뇌하지 않고는 감동적인 글을 얻어낼 수 없음을 생각하게 된다. 노력 없이는 어떤 정점에도 도달하지 못한다는 메시지가 느낌표처럼 여전히 가슴에서 출렁거린다. 그것은 내가 초극해야할 벽이 분명하다.
선가(禪家)에 있는 말처럼 “말할 때에는 오로지 말 속으로 들어가라. 걸을 때는 걷는 그 자체가 되어라. 죽을 때는 죽음이 되어라.” 그렇다면 글을 쓸 때는 혼신을 다해 써야 할 것이다. 가슴깊이에 새기지 못하는 글은, 한순간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고 말 것이다.
감동이 먼저 가슴을 저미게 하는 것들. 그것은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것이 노래가 되었던, 글이 되었던 마찬가지일 것이다. 기꺼이 바다로 뛰어 들어 흔적도 없이 녹아 버릴 소금인형의 사랑처럼, 나를 완전히 소진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또 다른 나의 실체가 될 것이다. 한 방울의 물과 물이 서로 소통하듯, 내 마음이 읽는 이의 영혼과 하나가 되기를 바란다.
노래를 듣고 싶으신 분 http://cafe.daum.net/21munin/3EKy/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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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목에 몇 등인지 도장 찍어 줄 거쥬~~~^^
오른 손 집게 손가락을 쭈ㅡ욱 내밀어 주세요. ET의 그것처럼 찌리릿 읽는 저와 찌리릿
공손히 준비했슴다. 오른 손 집게 손가락~~^^
쪼매 있으면 마음과 마음이 소통해서 하나가 되겠습니다 그려.
지나온 궤적을 돌아보고 반성합니다.
진솔한 울림을 듣습니다~그 가슴으로 자꾸만 껴안아 주셨군요.
따뜻한 호호북의 마음. 내 가슴이 더 더워지더이다~~^^
영혼5번 하나 되었다 감.
미숙한 자화상을 언제나 그리고 있을 뿐이고~~^^
샘, 보도블럭에서 찾은 노래 들려주시겠죠? 그리고 따뜻한 글에 맞는 산뜻한 제목으로 바꾸시면 어떨지요? 예를 들면'소금인형' 한번 생각해봤지요.
'소금인형'으로 했다가 노래제목과 같아 바꾸었는디~~다시 생각해 볼게요. 고마웡^^
소금인형은 물로 녹아 내려야만 됩니다 앙금으로 남은 것 건강에 해롭습니다 ㅎㅎㅎㅎ건강 노이로제 반응 *^^*
바다로 뛰어드는 순간 소금인형은 흔적도 없이 녹아 내립니다. 겁도 없이 바다의 깊이를 재기 위해서라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