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천인터넷뉴스 정차모 기자는 지난 7월 28일 서울 여의도에 있는 금융감독원을 찾아 보문면 미호리 출신인 김종창 원장(62)과 금융감독원장으로 취임 후 펼쳤던 업무, 그리고 각종 현안에 대한 얘기와 예천에서의 학창시절 등을 화제로 인터뷰를 가졌다.
김종창 원장은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재학중이던 1970년 제8회 행정고시에 합격(3학년)했으며 1971년 졸업과 동시에 재무부 사무관으로 공직생활을 시작 서기관~주영대사관 재경관~금융감독원 부원장~기업은행장~2008년부터 현재까지 제7대 금융감독원장으로 재직 중이다.
김 원장은 1948년 10월 13일 보문면 미호리에서 출생하여 만2세가 되기전 6.25 발발로 아버지를 여의고 할아버지.할머니와 공무원인 형님 김종직씨(전 예천군기획감사실장)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초등학교 및 대창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로 진학했다.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대창 중.고등학교를 다닐 당시 보문에서 예천읍까지 걸어다녔으며 등.하교길 언제나 손에는 영어사전이 들려 있을 정도로 영어를 좋아했으며 고등학교 시절 영어교사의 도움이 커 서울대학교에 입학, 대학 4학년 때인 70년 행정고시에 합격한 두뇌가 명철한 학생으로 소문났다.
김 원장은 2001년 기업은행장 재임시절 기존 조직을 고객중심.성과중심 체제로 바꾸고 사업부제를 도입하여 '돈 버는 국책은행'으로 전환시켜 기업은행 창사 이래 최대 이익을 창출하며 주가를 끌어 올려 2003년 다산금융상 대상과 대한민국 국가만족 경영대상 최고경영자상을 수상한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금융감독원장 취임과 동시에 조직 혁신을 위해 감독 기구의 지나친 권위주의적 색채를 없애기 위해 기존 조직 내 관행과 문화의 변화를 선도할 사령탑으로 변화추진기획단을 설치하고 감독.검사 관행의 선진화, 조직 및 인사 시스템의 혁신, 조직 문화 개선을 강력하게 추진하여 전 임직원이 공유할 지향점으로 고객 중심의 사고, 고도의 전문성, 신뢰받는 금융감독을 3대 비전으로 추진했다.
특히, 감독원장 취임 이후 시장에서 바라보는 감독 당국의 고압적.권위적 요소를 찾아내기 위해 외부 인식을 조사했으며 임원의 성과 책임을 명확히 하기 위해 조직의 종.횡적 업무 연관성을 감안한 본부제를 최초로 도입하기도 했다.
금융감독원장 취임 후 수개월 만에 발생한 글로벌 금융위기가 국내의 외화 유동성 위기로 파급되면서 금융시스템 위기를 초래하자 2008년 9월 이후 9개월여간 건전성 관리가 자금 공급의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증자를 유도하여 자본확충펀드 설치를 통해 자금 공급 여력을 충분히 확보토록 하는 등 전방위 노력으로 위기를 극복하여 이명박 대통령의 신임을 굳혔다.
2008년 '기업재무개선지원단'을 설치하여 금융회사 주도의 기업구조조정을 본격적으로 지원하여 부실화된 기업을 상대로 한 일률적 구조조정이 아닌 잠재적인 부실기업 또는 산업에 대한 선제적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한편, 대기업과 중소기업에 대해 순차적으로 구조조정을 추진하여 대기업그룹 재무구조 평가 및 기업신용 위험 상시 평가를 통해 시장의 불확실성을 조기 해소하는 데 기여, 언론으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김 원장은 취임 이후 2008년 6월 국제보험감독자협의회(IAIS)정례회의. 2009년 1월 이슬람금융세미나를 서울에서 개최하여 외화유동성의 심각한 압박하에서 이슬람 자본의 우호적 관심을 이끌어내는 계기를 마련했으며, 2009년 3월에는 한국이 바젤은행감독위원회(BCBS)회원국으로 가입토록 한 것이 기억에 남는다고 회고했다.
김종창 금융감독원장은 2008년과 2009년 차녀와 장녀의 혼사를 치르면서 청첩장, 축의금, 화환이 없는 이른바 '3無 결혼식'을 치러 국민들의 관심을 끌었으며 뉴욕타임스에도 바람직한 혼례 문화의 사례로 소개되기도 했다. 부인 권성자씨와의 사이에 2녀를 두고 있으며 취미는 등산이다.
주요 저서로 기업은행장 재임시절의 경영철학과 경험을 정리한 (Great Bank), 활기찬 조직문화의 형성과 딱딱한 은행원의 이미지 쇄신을 위해 (유머 보따리)를 발간하여 신나는 일터를 만드는 데 최선을 다했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학업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지난 85년 미국 워싱턴주립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2003년에는 중부대학교 대학원 명예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김 원장의 이 같은 노력은 1997년 6월 홍조근정훈장(우수공무원), 2002년 12월 은탑산업훈장, 2003년 1월 다산금융상 최고경영자 대상, 2003년 11월 대한민국 고객만족 경영대상 최고경영자상, 2005년 카이스트 테크노경영자클럽 특별상 등을 수상했다.
지금도 대창고등학교 시절 은사로 서울대학교에 진학할 수 있도록 지도해 준 오상부 선생(작고)의 은혜를 잊지 못한다며 눈시울을 붉히고 대창중.고 시절 비가 많이 오면 백전교로 돌아다녔던 기억(당시에는 동본교가 없었음)과 동창인 윤호인씨(전 예천군 기획감사실장)등이 보고 싶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대창학교 후배들을 위해 약간의 장학금은 전달하고 있으나 고향에서 많은 혜택을 입었던 자신이 고향을 위해 어떤 일을 해야하는지를 고민하고 있으며 퇴직 후에는 반드시 고향을 위해 무엇인가를 할 것"이라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