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시각.
제6관구 사령부를 떠난 박정희가 한참
김포가도를 달리고 있을 때 멀리서
달려오고 있는 불빛의 행렬이 보였다.
출동부대의 차량행렬 불빛이라는 것을
첫눈에 알 수 있었다.
(공수단이 드디어 출동했구나!)
박정희의 가슴에 감격과 희열이 일었다.
그는 염창교 입구에서 차를 세우도록
명했다.
이윽고 불빛의 대열이 박정희의 눈앞으로
두 개를 단 장군이 손을 든 것을 보고
운전병이 차를 세웠다.
차량의 대열이 서자 이상하게 생각한
김윤근이 차를 앞으로 몰아 달려왔다.
헤드라이트의 불빛에 환하게 드러난
박정희의 모습을 발견하자, 김윤근이
재빨리 차에서 내려 그의 앞으로 달려왔다.
"장군!"
두 사람은 얼싸안았다.
"고맙소. 수고가 많소, 김 장군!"
박정희는 얼싸안았던 두 팔을 풀고
이번에는 김윤근의 두 손을 잡았다. 그의
두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공수단은 출동했습니까?"
김윤근이 물었다.
"아니오, 30사단에서 기밀이 누설되어
해병대가 선두부대가 됐소."
그 말을 듣자 김윤근의 가슴은 철렁
내려앉았다.
(30사단에서 기밀이 누설되는 바람에
공수단이 발이 묶였다? 그렇다면 쿠데타는
실패란 말인가?)
순간, 그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김 장군, 어서 진격해 주시오. 김
장군만 믿겠소. 나는 이제부터 공수단으로
가서 상황을 알아보고 출동을 독려할
생각이오."
박정희의 목소리는 애절하게 들리기조차
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인 것을!)
김윤근은 어쩔 수 없다고 체념했다.
쿠데타 지휘본부인 제6관구 사령부.
장도영의 명령을 받은 헌병감 조흥만이
제6관구 사령관 서종철과 함께 쿠데타
지휘본부인 제6관구 사령부로 들이닥친
것이 바로 이 시간이었다. 제6관구
사령관인 서종철은 그때까지 줄곧
헌병감실에서 죽치고 있다가 조흥만이 헌병
1개 중대를 거느리고 제6관구 사령부로
출동한다고 하자 따라 나섰던 것이다.
헌병 1개 중대를 거느리고 있다는 사실이
마음 든든해서였을까? 두 사람은 호기있게
사령관실 문을 밀치고 들어갔다. 그런데
사령관실 분위기가 이상했다. 살기가
돌기까지 했다. 두 사람은 어리둥절해
있다가 다시 복도로 나갔다.
"이보오, 조 장군. 이거 아무래도
"그러게 말입니다."
조흥만도 처음의 호기와는 달리
어정쩡해질 수밖에 없었다.
"김재춘 참모장이 지휘를 하고 있는 것
같고, 거기에 이광선 차감도 동조하고 있는
것 같은 눈치인데, 그렇게 보이지 않았소?"
아마도 서종철은 방안 분위기를 통해서
그런 눈치를 챈 모양이었다.
두 사람은 다시 사령관실로 들어왔다.
"참모장, 이거 어찌된 거요?"
서종철이 김재춘에게 물었다.
"지금 사령부는 혁명군에 의해서 완전히
점거되고 있습니다."
김재춘은 자초지종을 상세히 설명해주고
나서 덧붙였다.
"각하께서도 지지하고 나서는 것이 좋을
김재춘의 말을 듣고 나자, 서종철이
허탈한 표정이 되며 중얼거렸다.
"이젠 막을 길이 없게 됐구먼. 왜 진작
말하지 않았어? 그대로 총장한테 보고할
수밖에 없겠어."
새벽 1시 45분.
멍청해져 있는 것인지 아니면 골똘한
생각에 잠겨 있는 것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모습을 하고 있던 장도영이 방첩부대장
이철희를 향해 물었다.
"저들이 앞으로 어떻게 움직일 것
같은가? 어떤 방법으로 막아야 하지?"
이철희는 큰 두 눈을 껌벅이고 있을 뿐
이희영에게 구원을 바라는 눈빛으로 시선을
돌렸으나 이희영도 대꾸가 없었다. 그에게
뾰족한 묘안이 있을 리가 없었다. 방자명이
답답해 못 견디겠다는 듯 참견했다.
"각하, 빨리 결단을 내리십시오. 몇 개
부대가 움직이는 모양인데 마침 남산에서
공사를 하고 있는 야전증병단이 있으니
이들을 동원하면 웬만한 일은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방자명의 건의가 끝나기가 무섭게 군용
전화벨이 울렸다.
해병대 1개 대대가 진격해 온다는
보고였다. 이 보고에 장도영은 그제야 이제
자신이 할 일이 무엇인가를 깨달은 것
같았다.
옆에대기하고 있는 비서실장
"육본에 비상을 걸어라!"
그는 진작 육군본부에 비상을 걸어야
옳았으나, 이 시간에 이르러서야 비상을
걸도록 명령을 내렸던 것이다.
그런 다음 그는 국방장관 현석호의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쿠데타가
일어났음을 알리고 다시 또 국방정무차관
우희창(禹熙昌)에게도 전화를 걸어 사태가
급박함을 알렸다. 이어서 그는 육군본부
헌병대에 전화를 걸어 헌병 대위 김석률을
찾았다. 그와는 곧 연결이 되었다.
"병력이 얼마나 있나?"
"백 명 가량 됩니다."
"그 중 50명을 한강에 배치, 한강 다리를
폐쇄하라. GMC를 가지고 가서 막아라."
김석률과 통화가 끝나자 장도영은 근처에
"귀관도 7중대와 같이 한강으로 가서
지휘하라."
참모총장의 명령에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각하, 그러면 중화기로 무장하도록
하겠습니다."
방자명은 자기 의견을 구신했다.
앞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헌병은
전투부대가 아니었다.
4.19 일주년을 앞두고 위기설이 파다하게
퍼져 있었기 때문에 육군본부 헌병대에도
수류탄, 최루탄, 기관총과 철조망 등이
지급되어 있었다. 방자명은 그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출동 헌병대를 중화기로
무장시키겠다고 구신했던 것이다. 그런데
참으로 너무나 뜻밖이었다.
장도영의 명령이었다.
쿠데타군이 어떤 무기로 무장되어
있는지도 모르는 판국에 칼빈 총만 가지고
가라니, 방자명은 어이가 없었다. 칼빈
총의 유효 사격거리가 고작 50미터였던가?
6.25 한국전쟁 때 학도병으로 출정했던
필자는 칼빈 총의 유효 사격거리가 그
정도밖에 안 되는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여담이지만 6.25 한국전쟁 때인 1950년
8월 19일 대구 제일모직 공장 마당에서
달랑 칼빈 총 한 자루만으로 무장을 하고,
바로 이날 팔공산 전투에 투입됐던 필자는
전투에 있어서는 칼빈 총이 쓸모없는
무기라는 것을 체험을 통해 알게 되었다.
지금 장도영은 방자명에게 한강에
방어선을 구축하라고 하면서 아무 쓸모없는
이해하기 어려운 명령이 아닐 수 없었다.
이해하기 어려운 명령은 니것만이 아니다.
장도영은 또 이렇게 명령했던 것이다.
"한강 다리를 GMC로 막되 차가 한 대
정도 통과할 수 있도록 여유를 남겨두라."
장도영은 어째서 이렇게 어처구니없는
명령들만을 내렸던 것일까? 행여 서울로
들어오는 민간차량이 통행에 불편을 겪을까
고려해서였을까?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시각. 장도영이 곁에 있다면 어째서 그런
명령을 내렸느냐고 묻고 싶다.
하여간에 명령을 수령한 방자명은 있는
힘을 다해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덕분에
조선호텔 앞 506방첩대에서 삼각지의
육군본부로 달려오는 데 채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헌병들이 왁자지껄하고 있었다.
방자명을 발견한 김석률이 앞으로
달려왔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
김석률이 답답한 듯 물었다.
방자명은 그 말에는 대꾸하지도 않고
출동을 재촉했다.
"어서 한강 다리로 출동하세."
두 사람은 육군본부의 헌병대를 두 대의
GMC에 나누어 태우고 즉시 출동했다. 한강
다리에 이르자 헌병들을 내리게 한 다음
GMC를 한강 다리 한복판에 여덟팔자 형으로
벌려 놓았다. 그때가 새벽 2시였다.
이시간에 이르러서야 엉성하나마
쿠데타군을 저지하기 위한 방어선을 구축해
놓은 셈이었다.
어떻게 할까요?"
김석률은 아무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김 대위, 귀관은 여기서 끝까지 막아야
한다. 고전을 하는 한이 있더라도 막아야만
한단 말이다. 알겠나?"
방자명은 다지듯이 명령했다.
"알겠습니다."
육척 거구인 김석률은 호기있게 대꾸하고
그 명령을 복창했다.
새벽 2시 같은 시각.
염창교에서 김윤근과 헤어진 박정희는
출동한 해병대와는 반대쪽으로 차를 몰아
공수단 정문 앞에 이르러 있었다.
그때 바로 공수단 장병들은 차지철 등
실탄을 꺼내 완전무장을 하느라 법석을
떨고 있었다. 박정희의 출현에 놀란
박치옥이 그의 앞으로 달려왔다.
무기고를 부순 차지철 등 위관급
장교들도 달려와서 박정희를 빙 둘러쌌다.
별을 두 개나 단 장군의 출현에 위관급
장교들은 무척 고무된 듯한 눈치였다.
"왜 이리 출동이 늦나?"
박정희는 역정부터 냈다. 공수단 단장
박치옥은 늦은 데 대해서 장황하게 설명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그러기엔
출동시간이 너무나 늦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박정희의 역정을 귓등으로 흘려
버리고 차지철을 불렀다.
"차 대위, 귀관은 지금부터 박 장군의
"즉시 승차하라!"
그는 명령한 다음 크게 호령했다.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것이 인간의
운명이라고 하지만 이 순간에 박치옥이
내뱉은 명령 한 마디가 한국의 현대사를 또
한 번 바꾸어 놓는 결과가 되리라고는 신
아닌 인간들이 감히 상상이나 했겠는가.
<차 대위, 귀관은 지금부터 박 장군의
경호를 책임져라!> 박치옥이 차지철헤게 이
한마디 명령만 내리지 않았으면 박정희와
차지철의 유착이 어찌 이루어질 수
있었겠는가!
참으로 기이하기만 한 인간의 운명이여!
박치옥의 호령 한마디에 공수단 병사들은
앞을 다투다시피 하며 박정희가 끌고온 두
대의 트럭에 나누어 탔다. 박정희는 그러한
앞서 공수단을 떠났다. 박정희의 마음은
어느덧 해병대한테로 쏠려져 있었던
것이다.
(귀신잡는 해병대가 아니냐! 지금쯤은
그들한테 주어진 임무를 무사히
완수했겠지.)
새벽 2시, 같은 시각.
아니 정확하게는 2시가 조금 넘어
있었다.
국방장관인 한석호가 정무차관인
우희창을 거느리고 506방첩대 대장실로
들어왔다. 이때 장도영은 누군가와
전화통화를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그는
부관이 총장 관사로 달려가 가져온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있었다.
한동안이나 물끄러미 지켜보고 있다가
장도영이 옷을 갈아입고 나자 비로소 입을
열었다.
"장 총장, 청와대엔 연락을 했나?"
"아직 못했습니다."
"아직 못했어?"
되묻는 현석호의 말투가 좀 거칠었다.
그럴 만도 한 일이었다. 쿠데타 정보가
입수되었을 때 단호한 조치를 취해야 할
장도영이 어떤 태도를 취했던가? 그걸
생각하면 현석호는 장도영의 뺨이라도
후려갈기면서 단단히 화풀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런 끓는 심정을 누르고 있는
것만도 장도영으로서는 고맙게 여겼어야
했다.
장도영이 일반 전화의 송수화기를 들고
청와대에 거는 눈치였다. 신호가
떨어졌는가?
"지금 군부에 쿠데타가 일어났습니다.
헌병을 보내서 저지하도록 대책을 세워
놨습니다."
전화를 받은 사람이 뭐라고 했는지
장도영이 황급히 이렇게 덧붙이는
것이었다.
"대통력 각하께는 일단 그렇게만
말씀드려 주십시오.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리고는 상대방이 미처 뭐라고 하기도
전에 전화를 탁 끊는 것이었다.
이때 한강으로 보냈던 방자명이 대장실로
들어와 경례를 붙였다.
"어찌 됐나?"
"네. 저지선을 구축해 놓고 병력을
배치해 놓았습니다."
방자명은 간략하게 보고를 했다. 병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으나
국방장관이 서 있고 또 그가 지나치게
걱정을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 말을
목구멍에서 삭여 버리고 말았다.
"매그루더 장군한테는 연락했나?"
현석호가 또 물었다.
"아직 못했습니다."
"도대체 장 총장은 그동안 뭘하고
있었다는 거야? 연락을 해야 할 사람한테는
하나도 연락을 하지 않고 있었으니?"
현석호의 꾸중에 그제야 장도영은 다시
또 생각이 난 듯이 매그루더에게 연락하기
위해 전화기를 집어드는 것이었다.
갈아입은 장면은 마냥 방안을 서성거리고
있었다. 군사문제에 대해선 전혀 백지인
장면은 이런 경우 뭘 어떻게 해야 좋은
것인지 도무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이렇게 마냥 서성거리며 나름대로
생각을 모아 보고만 있었다.
(30사단이 반란을 일으키려 했거
해병대가 장난을 치려 했다는 것은 곧
쿠데타를 하려 했다는 얘기가 아닐까?)
장면은 아까부터 이 한 가지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장도영이 애매모호하게 보고를 할 것이
아니라 <각하. 쿠데타가 일어났습니다.
속히 통수권을 발동해서 1군 휘하의
전투사단에 출동명령를 내려주십시오.>
하고 건의했다면 장면은 지체없이 통수권을
통수권 문제인데 국군에 대한 통수권이
상징적인 대통령한테 있느냐, 아니면
통치권자인 국무총리한테 있느냐 해서
윤보선과 장면은 적지않은 입씨름을 벌여
왔던 것이다.
국군 통수권이 대통령과 국무총리 어느
쪽에 있었던간에 장도영이 쿠데타를
분쇄하기 위한 적극적인 대응책을
건의했다면 물론 장면은 그 건의를
이의없이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런데 장도영은 애매모호하게 보고를
했던 것이다. 그래서 장면은 전혀 상황을
알 수가 없어 답답한 나머지 방안만
서성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럴 경우 군사문제에 밝은 측근이라도
한 사람 곁에 있었으면 얼마나
유엔군 사령관한테 주어져 있으니 속히
매그루더 장군한테 연락하셔서 쿠데타
저지책을 강구해 달라 하십시오> 하고
한마디만 건의했던들 장면은 그 건의 또한
지체없이 받아들였을 것이다.
장면은 군사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백지였기 때문에 국군의 작전 지휘권이
유엔군 사령관한테 있다는 것조차도
생각해내지 못하고 있었다. 방안을
서성거리며 생각에 잠겨 있던 장면은
불현듯 사람이 그리워졌던 모양이었다.
"이태희 검찰총장을 오시라고 해!"
경호책임자인 조인호에게 명했다.
새벽 3시 15분,
새벽 3시 10분에 중앙청 앞에 당도한
육군본부로 질주해 갔다.
선두에서 부대를 지휘하고 있던 제6군단
포병단장 육군 대령 문재준은 서울 시청
앞에 이르자 대열에서 이탈했다.
반도호텔로 가기 위해서였다. 그가
반도호텔에 이르러 보니 주변 일대가 마냥
죽은 듯이 고요에 묻혀 있기만 했다.
새벽 3시 15분. 그 시간에 공수단은
반도호텔 앞에 진출해 있어야 옳았다.
그것이 쿠데타의 작전계획이었는데 공수단
장병은 그림자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어찌된 노릇이야? 박치옥 이놈이 막상
거사 순간에 변심을 해버린 게 아냐?)
그런 의심이 일기도 했다.
문재준으로서는 의심을 품을 만도 했다.
박치옥이 장도영의 심복이라는 것을 알고
문재준은 즉히 차를 돌려 남산으로
달렸다.
새벽 3시 20분.
문재준은 남산 야외음악당에서 박정희와
만나기로 사전 약속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한데, 여긴 또 어찌된 노릇인가?
남산 야외음악당엔 개미새끼 한 마리도
얼씬거리는 것을 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쿠데타를 하겠다는 놈들이 어째서 모두
이 모양이야?)
문재준은 분노에 몸을 떨었다.
원래 그는 열정가였다. 함경남도
함주(咸州) 태생인 그는 관북의 명문인
함흥의 미션계인 영생(永生)중학교
출신이었다. 열정가는 성미가 좀 급하다.
성미가 급하다 보니 상황판단도 즉흥적으로
(모조리 배신했어, 모조리!)
문재준은 박치옥도, 박정희도 모두 거사
직전에 변심해 버린 것이라고 단정했다.
지프에 동승해 있던 대위가 물었다.
"사령관님, 오늘이 5월 16일이
맞습니까?"
"물론 5월 16일이구 말구."
문재준은 대꾸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대위는 울고 있었다.
"사령관님, 우리가 속은 겁니다. 속은 게
틀림없습니다."
대위는 쿠데타 꾀임에 빠진 것으로
곡해를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일단 육군본부로 가보세."
문재준은 육군본부로 차를 몰라고
운전병에게 명했다.
새벽 3시 20분.
해병대 선두부대가 한강 인도교 남쪽
입구에 도착한 것은 새벽 3시 20분이었다.
예정돼 있던 시간보다 20분이나 늦었던
것이다.
막상 한강 인도교에 당도해 보니 GMC 두
대가 여덟 팔자로 길 한복판을 가로막고
있었다. 헤드라이트의 불빛으로 살펴보니
헌병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것도
보였다.
선두부대인 오정근(吳定根) 대대의
제2중대장 해병 대위 이준섭(李俊燮)은
트럭 운전대에서 뛰어내리자, 팔자형으로
길을 가로막아 놓은 트럭 쪽으로 달려갔다.
치워달라고 하고자 해서였다.
<장도영 육군 참모총장도 쿠데타에
가담돼 있다>라고 듣고 있던 이준섭은 한강
다리에 산개해 있는 육군 헌병들이 쿠데타
저지를 위해서 출동한 부대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하고 있었다.
이준섭이 달려오는 것을 보자 김석률이
쑥 앞으로 나섰다. 같은 대위 계급장을
달고 있는 것을 본 이준섭은 반갑다는 듯
환하게 웃으며 악수를하자고 손을
내밀었다. 기왕에 내민 손이다. 김석률은
해병대가 쿠데타군이라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상대방이 먼저 손을 내밀기에 그
손을 잡았다. 희극이라고 해야 옳을지
비극이라고 해야 옳을지 표현하기 어려운
한순간의 장면이었다.
이준섭이 물었다.
이 질문에 대해서 김석률은 엄청나게
핀트가 빗나간 대꾸를 했다.
"우리는 어떤 부대도 한강을 건너지
못하게 하라는 육군 참모총장의 명령을
받고 여기 나와 있는 거요."
"뭐요?"
이준섭은 그제야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었다. 조금 전의 환한 웃음은
온데간데 없었다. 그는 결연히 선언하듯이
말했다.
"우리는 해병대 사령관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해병대요. 즉시 장애물을 치워
주시오."
"말도 안 되는 소리!"
김석률은 단 한마디로 이준섭의 요구를
"치우란 말이오!"
"못 치워요!"
"치우란 말이오!"
"못 치운다고 하잖았소!"
언성이 높아졌다. 언성이 높아지자
살기가 돌았다.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해병대
선두부대 대대방 오정근은 급히 지프에서
뛰어내려 출동부대 후미에 따라오고 있던
김윤근한테로 달려갔다.
"여단장님, 무장한 헌병대가 다리를
가로막고 있습니다. 어찌된 노릇인지
모르겠습니다."
오정근은 육군 참모총장 장도영이
쿠데타에 가담돼 있다고 듣고 있었다.
그랬기 때문에 무장 헌병대의 출동을 보고
"박 장군 얘기를 들으니 육군
제30사단에서 비밀이 새게 된 모양이오."
비로소 사실을 털어놨다.
"하지만......."
오정근이 다시 의문을 말하려고 하자,
김윤근이 그 말을 가로막듯 명령하는
것이었다.
"그대로 돌파하시오."
그 명령에 오정근은 해병대와 육군의 두
대위가 맞서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우리는 지금 연천(連川)으로 야간훈련
나가는 중이오. 그러니 장애물을 비켜
주시오."
그는 김석률에게 공손하게 말했다.
김석률의 태도는 단호했다.
"안 됩니다. 우리는 육군 참모총장의
훈련을 위한 출동이라면 돌아서 가
주십시오."
"돌아서 가라니? 돌아서 가라면 어디로
돌아가란 말인가?"
오정근이 비로소 눈을 부릅뜨며 거칠게
반문했다.
"어서 비켜!"
"못 비킵니다."
또다시 입씨름이 벌어졌다. 쿠데타를
일으킨 측과 그것을 저지하려는 측이
처음엔 이렇게 입씨름으로 싸움을 벌였던
것이다. 한강 다리에서 오정근과 김석률이
입씨름을 벌이고 있을 때, 김윤근은 해병대
출동부대 후미에 따라오고 있던
박정희한테로 달려갔다.
"작전이 실패한 것 같습니다."
질렀다.
"그게 무슨 소립니까. 실패라니요?"
해병대가 정지하고 있는 사이에 공수단도
어느 사이엔가 달려와 해병대의 후미에
붙어 있었던 것이다.
"그럼 공수단으로 하여금 돌파시키는
것이 어떻겠소?"
박정희가 제의를 했다. 바로 이때였다.
고막을 찢는 듯한 굉음이 울리며 하늘
높이 환하게 불꽃이 이루어졌다. 해병대가
일제히 하늘에 대고 공포를 소아댔던
것이다. 그와 함께 앞으로 달려나온 해병대
트럭이 팔자형으로 세워 놓은 두 대의
트럭을 밀어냈다.
팔자형 트럭 뒷편에 산개해 있던 50명의
육군 헌병들은 총성이 울려퍼지면서 트럭이
판단을 했던 모양이었다. 김석률이 미처
사격개시의 명령도 내리기 전에 해병대
트럭을 향해 일제 사격을 퍼부었다. 일이
이렇게 되자, 해병대도 공포탄만 쏘아대고
있을 수 없었다. 헌병들을 향해서 실탄을
퍼붓기 시작했다.
6.25 한국전쟁이 휴전으로 매듭지어진 지
8년 만에 내부에서 골육상잔의 비극이
연출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때가 정확히 새벽 3시 30분이었다.
해병대가 저지하는 헌병대를 향해서
공포탄 대신 실탄을 퍼붓기 시작한 바로 그
시각.
장면의 입인 공보비서 송원영의
제기동(祭基洞) 집 침실의 전화벨이
송원영은 잠결에 전화를 받았다.
"송 비서관님이시죠?"
송원영은 잠결에도 목소리에 낯이 익다고
느꼈다. 장면의 경호원 중 한 사람인 박
경위였다.
"무슨 일이오, 이 밤중에?"
"송 비서관님, 놀라지 마십시오."
"놀라지 말라니?"
그제야 송원영은 비몽사몽 상태에서 확
깨어났다.
"놀라지 말라니, 무슨 일이 생겼소?"
"아, 그럼 거기서는 총 소리를 못
들으셨군요?"
"총소리?"
"네, 지금 한강 쪽에서 총격 소리가 나고
있습니다. 전 또 송 비서관님께서도 들으신
"대체 무슨 소리요. 총격 소리라니?"
"네, 다름이 아니라 해병대 병사들이
술을 먹고 행패를 부려서 경찰관이
휘협발사를 해서 낸 총소립니다.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경호원 박 경위와 송원영의 전화통화는
이것으로 끝났다. 그런데 경호원 박은
누구한테 들었기에, 해병대 병사들이 술을
먹고 행패를 부려서 경찰관이 위협발사를
해서 낸 총소리 운운했던 것일까?
국방차관보 신응균(申應均), 장면 정권
때 차관보라는 직제가 유일하게 국방부에만
마련되어 있었다. 그는 예비역 육군
중장으로 1959년에 예편을 했다.
육군본부에 비상이 걸리자 육군본부로
해병대가 교전을 하고 있다고 보고를 받자
급히 한강으로 차를 몰았다. 한강교 북쪽
입구에서 보니 아닌게 아니라 총격전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었다.
"사격 중지!"
신응균은 헌병들에게 사격중지를 명했다.
헌병들이 사격을 중지하자 해병대도 사격을
중지했다. 신응균은 사격전이 멎자 해병대
쪽으로 다가갔다. 만용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용기였다. 지금 피를 본 쿠데타군은
눈이 뒤집혀 있을 것이 뻔한 일이었다.
그것을 모를 리 없는 신응균이 해병대
쪽으로 다가간 것이다.
"그쪽 책임자가 누구요? 책임자는
나오시오!"
신응균의 호통에 박정희가 그의 앞으로
"아, 박 장군 아니오?"
신응균은 놀랐다. 해병대의 난동에
육군의 장성이 왜 끼여 있단 말인가?
신응균은 나이는 박정희보다 4살이나
아래였으나 일본 육군사관학교는
박정희보다 4기나 선배였다. 신응균은
53기였고 박정희는 57기였다.
"어찌된 노릇이오, 박 장군?"
신응균은 다그쳐 물었다.
"우리는 지금 혁명을 일으켰소!"
박정희는 허리팔을 하면서 대꾸했다.
"혁명이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 어서
원대복귀하도록 하시오."
신응균은 명령했다.
"원대복귀?"
박정희는 코웃음을 치면서 생각했다.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장도영
장군이 전군에 비상을 건 것은 아닌
모양이다.)
이런 생각이 들자 그는 쾌재를 불렀다.
이제 쿠데타는 의심의 여지 없이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이 생겼던 것이다.
"혁명군 앞으로 전진!"
해병대는 의기양양해져서 맹목적인
사격을 가하며 거의 뛰다시피하며 한강
다리를 건넜다.
해병대가 전진하자 지금껏 저지하고 있던
헌병들은 삼십육계 위주상계라는 듯이
개미떼 흩어지듯 흩어져 도망치기에 여념이
없었다. 신응균은 다리 한가운데 서서
그러한 주위를 그저 멍하니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쿠데타에 있어서의 코미디 같은
같은 시각.
포천을 떠난 제6군단 포병단은
무풍지대를 가듯이 서울로 진입해
들어왔다. 그들의 앞을 가로막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너무나 조용한 것이
오히려 출동부대를 불안하게 만들었을
정도였다. 쿠데타군을 저지하기 위해서
어느 구석에 어떤 함정이 마련되어 있을지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제6군단 포병단이 중앙청 앞에 당도한
것이 3시 13분, 여기에서 17분 만에
육군본부 광장에 들어섰다. 쿠데타군은 그
어떤 장애에 부닥치거나 저항을 받은 일이
없었다. 쿠데타라고 하기가 싱거울 정도로
그들은 수월하게 육군본부로 진입해서
점령해 버렸던 것이다.
쿠데타 와중에 있어서의 코미디 한토막이
있다.
육군본부 작전참모부장인 육군 소장
송석하(宋錫夏)는 육군본부에 비상이
걸리자 지체없이 육군본부로 나와 있었다.
그는 제6군단 포병단이 육군본부로 출동,
연병장에 집결했다는 부관의 보고를 받자
즉시 연병장으로 달려나갔다.
"당신들 어떻게 나왔어?"
그는 한 장교를 붙들고 물었다. 어깨에
별을 두 개나 달고 있는 것을 본 그 장교는
차례 자세를 취하며 외쳤다.
"작전명령을 받고 출동했습니다."
"오, 그래?"
송석하는 반가웠다. 작전명령을 받고
나온 것이 틀림없다는 판단이 들었다.
"잘 나왔어. 지금 해병대 반란군이
한강을 건너려 하고 있으니 빨리 부대를
한강으로 이동시켜 진압토록 하라."
곁에서 이 말을 듣고 있던 다른 장교들은
하마터면 풀썩 하고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쿠데타군더러 쿠데타군을 진압하라고
명령을 했으니 폭소를 터뜨릴 만한
일이기도 했다.
한데, 송석하의 명령을 받은 장교가
우물쭈물하자 송석하는 호통을 쳤다.
"뭘 꾸물거리고 있는 건가. 빨리
한강으로 출동하라는데?"
일이 이렇게 되자 다른 장교가 나섰다.
"장군, 우리는 육군본부를 장악하라는
작명을 받고 출동했습니다. 작전명령의
수가 없습니다."
"무슨 소리야? 내가 작전참모부장인데?"
송석하는 어떻게 해서든 포병단을 한강
방어에 투입할 생각이었던 모양이었다.
"각하, 저희는 군단 작명에 의해서
출동했습니다. 군단장 명령 없이는 움직일
수 없습니다."
장교들이 송석하의 명령을 거부하자,
송석하도 더 이상 뭘 어찌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그는 한동안이나 장교들을
노려보고 있다가 별관으로 들어가 버리고
마는 것이었다.
새벽 3시 30분. 같은 시각.
한강다리 북쪽 입구에 자리잡고 있는
남한강 파출소의 당직 순경은 수십 대의
취해 공포를 쏘며 한강을 건너오고 있다고
치안국 당직자에게 전화보고를 했다.
이날 밤의 치안국 당직자는 총경
최석원(崔錫元)이었다.
이 보고를 받은 최석원은 즉시 내무부
당직자 숙직실로 달려가 잠자리에 들어
있던 사무관 이상혁9李相赫)을 깨웠다.
"술 취한 군인이 수십 대의 트럭에
분승......?"
이상혁은 도무지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최석원의 말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아무리 군기가 문란해졌다고 해서 술 취한
군인들이 수십 대의 트럭에 분승해서
공포를 쏘며 한강 다리를 건넌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알려야 되지 않겠소?"
최석원의 재촉에 두 사람은 먼저 내무부
정무차관인 김원만(金元萬)한테 전화를
걸었다. 김원만은 서울 용산 을구 출신
민의원 의원이었다.
"알겠소, 내 곧 내무부로 나가겠소."
김원만은 보고에 대답한 후 전화를
끊었다.
이때 김원만의 집은 갈월동 언덕진 곳에
있었다. 전화를 끊은 그의 귀에 총소리가
귀청을 때렸다. 콩 볶는 듯한 총소리가
아니라 공기를 찢는 금속성 총소리였다.
한강과 갈월동 사이의 거리가 가까운
데다가 집이 언덕진 곳에 있기 때문에
총소리는 좀더 분명하게 울려왔던 것이다.
김원만에게 보고가 끝나자 두 사람은
이상규(李相圭)에게 전화보고를 했다.
김원만과 이상규는 곧 내무부로
달려나왔다.
"총소리가 한강 쪽에서 요란했어. 뭐가
어찌 됐다는 것인지 시경에 좀 알아봐."
이상규의 독촉에 이상혁이 서울시
경찰국에 전화를 걸었다. 한참 만에야
누군가가 전화를 받았다. 순경인 것
같았다.
"총알이 날아오고 있습니다."
전화를 받은 순경은 비명을 지르듯이
외쳤다.
"뭐? 총알이?"
"네, 모두 도망쳤습니다. 저는 책상 밑에
엎드려서 이 전화를 받고 있습니다. 저도
도망쳐야겠으니 전화를 끊겠습니다."
송수화기를 든 채 전화내용을 보고하려고
뒤를 돌아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김원만도
이상규도 최석원도 어디로 도망쳤는지
그림자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경비 순경
서너 명만이 긴장에 쌓여 이상혁의 거동을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
이상혁은 기가 막혔다. 도망을 치려거든
함께 도망쳐야 할 일이 아닌가. 서울
시경에 상황을 알아보라고 재촉을 해놓고
전화를 걸고 있는 사이에 모조리
도망치다니, 괘씸한 생각이 불끈 치밀어
올라왔다.
그렇다고 노여움을 터뜨릴 상대도 없는데
여기에서 우물쭈물하고 있을 수도 없었다.
그는 들고 있던 송수화기를
내동댕이치다시피 하고 밖으로 나갔다.
새벽 3시 30분.
506방첩대의 무전기는 잠시도 쉴 틈이
없었다. 영등포 방면에서, 육군본부에서
쿠데타군의 움직임을 빼놓지 않고 보고해
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무전기가 3시 30분쯤에 한강의
총소리까지도 전해 주었다. 그 총소리로
한강 다리에서 쿠데타군과 저지군이
총격전을 벌이고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그 총소리들이 무전기를 통해서
전해진 직후 육군본부가 쿠데타군에 의해서
점령되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뭐, 육군본부가?"
보고를 듣는 순간 한 대 얻어맞은 듯한
멍청한 표정이 돼 버렸다.
그 둘레에 모여 앉아 있던 국방부 수뇌나
장도영의 참모진이나 서로 상대방의 감정의
추이만 살피고 있을 뿐 말이 없었다.
국방장관 현석호를 위시해서 국방부
정무차관 우희창, 사무차관 김업(金業),
참모차장 장창국, 정보참모부장 김용배
등이 506방첩대에 나타난 것이 새벽
2시에서 3시 20분 사이였다.
모두 장도영의 전화 연락을 받고 이리로
나와 있었던 것이다.
한동안 멍청해져 있던 장도영이 다시
군용 전화기의 송수화기를 집어들었다.
"30사단 사단장을 연결해!"
제30사단 사단장 이상국과는 곧 연결이
"귀관, 지체없이 귀관의 휘하부대를 시청
앞으로 진입시켜!"
장도영은 그 한마디를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그런 다음 그는 제6관구 사령부와
제33사단과의 통화를 시도했으나 전화선이
끊겼는지 연결이 되지 않았다.
장도영의 이러한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현석호는 도무지 가슴이 조여들어 견딜
수가 없었다. 그는 육군본부가
접수되었다는 무전보고를 듣는 순간 앞으로
이 쿠데타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를
골똘히 생각했다.
(쿠데타는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까지 번지고 말았다. 그렇다면?)
그러나 현석호 역시 군사지식을 전혀
갖지 못하고 있는 인물이었다. 그에게
장면의 신상도 걱정이 되었다.
"장 총장, 나는 반도호텔로 가서 장
총리에 대한 대책을 세우고 올 테니 장
총장은 즉시 육군본부로 달려가 사태수습에
만전을 기해 주기 바라오."
현석호는 말했다.
"알겠습니다. 저도 사태수습을 해놓고
그쪽으로 가겠습니다."
장도영은 그의 사태수습을 지켜보고 있는
현석호가 꽤나 부담스러웠던 것 같았다.
그가 반도호텔로 가겠다고 하자 표정이
밝아졌다. 현석호는 국방부 사무차관
김업에게 따라나서라고 눈짓을 했다.
같은 시각, 새벽 3시 30분.
국무총리 장면은 아직도 도무지 마음을
진정시키고 있지를 못했다. 아니 그는 더
오겠다던 장도영이 한 시간 반이나
됐는데도 꿩 구워먹은 소식이기 때문에
더욱 마음이 산란해져 가기만 했다.
(오겠다고 했으면 와야지. 와서 상황이
어찌됐는지 보고해 줘야 할 게 아닌가?
어디서 뭘하고 있기에 여지껏 나타나질
않는 거야?)
불안하기까지 했다.
여기서 우리는 이때의 장면의 처신을 또
한번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506방첩대와 반도호텔은 지척이었다.
150미터 내지는 200미터쯤 거리였을까?
장도영이 잠자리에 들어 있는 장면한테
전화를 걸었을 때, 그는 비서관이나 아니면
하다못해 경호원이라도 506방첩대로 보내서
상황을 체크시켰어야 옳았다.
매그루더나, 미국 대리 대사
마샬그린한테라도 전화를 걸어 일련의
정치적 조치를 취했어야 했다.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마냥 장도영이
나타나기만을 목을 늘이고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역사에는 <만약에>라는 가정이 있을 수
없다. 허나, 한번 가정을 해보자. 만약에
장면이 이런 일련의 조치를 취했더라면
역사의 궤도는 어느 쪽으로 향해서
놓여지게 되었을까?
어디에서 쏘아대는 총소리인지 가늠하기
어려웠으나 총소리가 아련하게 울려왔다.
뭔가 심상치 않은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틀림없는 것이다.
장면의 부름을 받고 검찰총장 이태희가
반도호텔에 나타난 것은 이 시간이었다.
이태희가 모습을 나타내자 장면은 꼭
지옥에서 부처님을 만난 듯한 느낌이었다.
멀리서 총소리가 또다시 들려왔다.
"박사님, 일단 피신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태희는 피신을 권고했다.
"아니야, 참모총장이 오기로 돼 있어."
장면은 아직도 장도영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하기야 장면이
지금으로선 믿고 의지할 사람이
장도영밖에는 없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박사님. 상황이 어떤지도
모르면서 여기서 이렇게 무작정 기다리고만
있을 수도 없는 일 아닙니까?"
생각 탓인지 총소리가 자꾸 가까워지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 일단 아래로 내려가세."
장면이 마침내 응낙하고 방을 나섰다.
아래층 로비로 내려왔다.
"박사님, 세단은 눈에 띄니까 제 지프를
타고 가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일단
제 집으로 모시겠습니다."
사건을 많이 다루어 오고 있는
검찰총장다운 두뇌회전이었다.
장면은 고개만 가볍게 끄덕이었다.
이태희는 급히 주차장으로 달려갔다.
한데, 이게 어찌된 노릇인가? 의당 지프
운전대에서 대기하고 있어야 할 운전수가
없었다.
(어찌된 노릇이야? 총소리에 겁을 먹고
이태희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찾아보았으나 행방이 묘연하기만 했다.
이 사이에 국방장관 현석호와 사무차관
김업 그리고 체신장관 한통숙(韓通淑)이
함께 반도호텔로 들어왔다.
장면을 먼저 발견한 것은 현석호였다.
"박사님!"
"아아, 현 장관!"
장면은 현석호의 출현이 꽤나 반가운
모양이었다. 덥석 그의 두 손을 잡는
것이었다.
"여기서 긴 말씀 올릴 수는 없고 일단
피신하셔야겠습니다."
"음."
장면은 짧게 대꾸했다.
"어디 가실 만한 곳이라두?"
그러면서 장면은 그때 로비로 들어선
이태희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럼 됐습니다. 저는 육군본부로 가서
사태를 수습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니
박사님 너무 심려하지 마십시오."
"그래, 수고를 좀 해주오."
장면은 떠날 생각으로 잡고 있던
현석호의 손을 놓았다.
"이거 운전수가 어딜 갔는지......?"
이태희는 꽤나 당황해져 있었다. 집으로
모시겠다 해놓고 운전수가 행방을 감춰
버렸으니 당황할 법도 한 일이었다.
이번에는 장면의 경호원들이 이태희의
운전수를 찾느라 헤매었다. 호텔 안팎을
샅샅이 뒤지다시피 했으나 끝내 운전수의
그림자조차도 발견하지를 못했다. 이렇게
때, 장면의 머리에 한 생각이 떠올랐다.
(옳지, 일단 미국 대사관으로 피신하자.)
그 생각을 진작 했더라면 얼마나
다행이었을까? 주한 미국 대사관은 바로
반도호텔 길 건너에 자리잡고 있었으니
말이다.
장도영의 보고를 받은 직후 일단
그곳으로 거처를 옮기기만 했더라도 역사는
다시 또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장면은
경호대장인 조인호를 미국 대사관으로 급히
보냈다.
하지만 재수가 없으면 뒤로 자빠져도
코가 깨진다고 하는 속담 그대로 미국
대사관으로 달려간 조인호가 아무리 셔터를
두드려도 안에서는 전혀 응답이 없었던
것이다. 이것이 장면의 운명이었을까.
새벽 4시.
원주에 있는 제1군 사령관 육군 중장
이한림(李翰林)도 요란한 전화벨 때문에
눈을 떴다.
그는 침대 머리맡의 전화 송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여보세요?"
이한림이 아직 잠에서 덜 깬 목소리로
상대방을 불렀다.
"이 장군이십니까? 나, 장창국입니다."
"아, 장 장군, 무슨 일이오. 이 된
새벽에?"
전화를 건 사람은 육군 참모차장 육군
중장 장창국이었다.
"쿠데타가 일어났습니다."
"뭐, 쿠데타?"
달아나 버렸다.
"쿠데타라니 무슨 소리오?"
"공수단과 해병대가 한강 다리를 건너
서울로 진입했어요. 박정희 소장이
지휘하고 있소. 장 총장은 진압에 나서고
있고."
장창국은 다급하게 이렇게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쿠데타가 일어났으니 제1군에서 어떻게
하라는 지시도 없이 장창국은 전화를
끊었던 것이다. 그것으로 보아 서울의
상황이 상당히 급박해져 있는 모양이라고
이한림은 판단했다. 그는 사령부 당직
장교에게 전화를 걸어 사단장급 이상의
지휘관을 모두 사령관실로 긴급소집하라고
명령했다.
휘하의 군단장, 사단장들이 모두 원주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5월 15일은 제1군 창설 기념일이었다. 이
기념식에 참석하기 위해 제1군 휘하의
사단장급 이상의 지휘관들이 모두 원주에
와서 머물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기념식이 끝났는데도 소속부대로 돌아가지
않고 있었던 것은 5월 16일에는
지휘관회의가 예정돼 있었기 때문이었다.
원주의 각 여관에 유숙하고 있던
사단장급 이상의 지휘관들은 곧 사령관
숙소로 달려왔다. 그러나 그 중에는 1시간
이상이나 늑장을 부리다가 나타난 지휘관도
있었다. 아마도 어젯밤에 퍼마신 술 때문인
것 같았다.
만약에 또다시 6.25 때와 같이 김일성이
긴급소집에 1시간씩이나 늑장을 부리는
지휘관이 있다면 전쟁의 양상이 어떻게 될
것인가?
새벽 4시 5분.
장면은 애꿎은 시간만 허비하고 있었다.
조인호는 계속해서 미국 대사관 정문의
셔터를 두드리고 있었다.
"군인들이다앗!"
누가 먼저 보고 외쳤는지 모른다. 그
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일제히 서울 시청
쪽으로 던져졌다. 군인들을 실은 트럭이
달려오고 있었다. 헤드라이트의 불빛이
너무나 눈부셨다. 당황한 장면의
경호원들은 장면을 국무총리 전용차에
밀어넣었다. 그러는 바람에 장면의 안경이
"이 총장도 함께 가야지!"
그러나 운전수를 찾느라 이태희는 헤매고
있었기 때문에 그를 기다릴 여유가 없었다.
장면의 운전수는 그대로 속력을 내며
질주했다.
현석호 등이 506방첩대를 떠난 지 얼마
안 되어 예비역 해병 소장인
김동하(金東河)가 506방첩대에 나타났다.
그의 출현에 누구보다도 크게 놀란 사람은
506방첩대장 이희영이었다.
(아니 저 자가 여기엔 어떻게?)
어이가 없어도 너무나 없었다. 쿠데타
주동자의 한 사람인 김동하가 다른 곳도
아닌 쿠데타 저지 지휘본부에 모습을
나타냈으니 어리벙벙해질 수밖에 없는
이 시간 김동하는 한강에서 쿠데타군과
저지 헌병의 총격전이 멎자 곧장 이리로
달려왔던 것이다.
"이제는 도리 없이 육본으로 가야 할 것
같소."
장도영은 누구에게라 할 것 없이
중얼거리듯 말하면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육본은 이미 쿠데타군의 손에
들어갔다는데 거기로 가서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거야!)
육군 참모차장 장창국은 장도영의 행동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그의
마음에 의심의 검은 구름이 인 것은
이것만이 아니었다. 은성에서의 그의
행동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물론 장도영의
전화를 받고 506방첩대로 달려나와서야 안
때 찾아온 이철희가 쿠데타에 대한 보고를
했을 때 왜 참모차장인 자기에게는 귀띔
한마디 해주지 않았던가 말이다.
<박정희가 쿠데타를 일으켰습니다.> 그때
이 한마디만 귀띔을 해주었더라도 상황이
이 지경으로 벌어지지는 않았을 게 아니냐
하고 줄곧 그 생각만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엔 또 쿠데타군이 장악해
버린 육군본부로 가야겠다는 것이다.
그러한 장도영의 몸가짐을 어찌 이해할 수
있단 말인가.
장도영은 일어서 나가려다가 말고
일반전화의 송수화기를 들고 다이알을
돌리기 시작했다. 이때 그는 청와대에
전화를 해두어야 되겠다 생각했던 것이다.
전화가 적막을 깨뜨리며 요란하게 울려퍼진
것은 새벽 4시 조금 지나서였다. 전화를
받은 사람은 대통령 비서실장
이재항(李載沆)이었다. 그는 장도영의
전화를 받자, 잠깐 기다려 달라 해놓고는
대통령 침실이 있는 2층으로 단숨에
뛰어올라 갔다. 그리고는 세차게 노크했다.
얼마 만에 잠옷 위에 가운을 걸친 대통령
윤보선이 나왔다.
"무슨 일인가?"
"장도영 참모총장의 전화입니다. 각하께
직접 보고드려야 할 급한 일이라고
합니다."
비서실장 이재항은 쿠데타 운운했다가
노인이 놀라면 어쩌나 해서 차마 바른 대로
말을 하지 못하고 그저 급한 일이라고
윤보선은 다시 침실로 들어가서 침대
머리맡의 전화 송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나 대통령일세. 이 된 새벽에 급한
일이라니 무슨 일인가?"
"각하, 지금 쿠데타가 일어났습니다."
"뭐? 쿠데타?"
그러나 이재항이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윤보선은 걱정할 정도로 놀라지는 않았다.
장도영의 다급한 목소리는 계속 송수화기
안에서 울려나오고 있었다.
"각하, 헌병을 동원해서 한강 다리에서
저지했으나 중과부적이었습니다. 저지선이
무너졌습니다. 이미 서울 장안까지
들어왔습니다. 쉽게 진압될 것 같지가
않습니다."
"그러니 날더러 뭘 어떻게 하라는 건가?"
은신했습니다. 각하께서도 신변안전에 극히
조심해 주시기 바랍니다."
전화가 뚝 끊겼다. 장도영의 그러한
무례한 행동을 통해서 윤보선은 그가 꽤나
서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윤보선은 선
채로 잠시 생각을 가다듬어 보았다.
(이럴 땐 대통령인 나는 쿠데타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
그러나 도무지 그 어떤 적절한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이 실장."
그는 이재항을 불렀다.
"국무총리한테 전화를 해보게."
윤보선의 명에 따라 이재항은 반도호텔로
전화를 걸었다. 신호는 울리고 있었으나
받는 사람이 없었다.
보았다. 연결이 안 되기는 역시
마찬가지였다.
"각하, 우선 피신부터 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재항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피신할
것을 권했다.
"이 사람아, 피하기는 어디로 피한단
말인가?"
그렇다. 명색이 대통령인 사람이
피신하겠다고 법석댈 수는 없었다.
그는 조용히 청와대에 버티고 앉아서
사태의 귀추를 지켜보고자 마음에 다짐을
주었다.
참으로 아슬아슬한 순간이었다.
<장면 체포조>가 반도호텔로 들이닥친
만일 운전수를 찾고 있는 이태희를 태워
가고자 해서 기다리고 있었더라면 장면은
여지없이 장면 체포조에 체포당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것은 장면의 운전수가 이태희도
태워가자고 장면이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시동을 걸기가 무섭게 발차를 시켰기
때문에 장면은 체포당하는 수모를 면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장면 체포조는 모두 11명의 공수단원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지휘책임자는 육군 소령
박종규(朴鐘圭)였다. 박종규, 차지철 등
11명의 장면 체포조는 미리 반도호텔을
답사, 장면을 체포하는 계획을 치밀하게
세워놓고 있었던 것이다.
"국무총리가 도망친 것 같습니다. 체포에
실패했습니다."
국무총리 장면을 체포하는 데 실패했다고
박치옥에게 보고를 한 사람은
차지철이었다.
"국무총리를 놓치면 어쩌는 거야? 이거
야단 아냐?"
박치옥은 장면 체포에 실패했다는 보고를
받자 머리가 아찔해졌다.
아닌게 아니라 야단은 야단이었다. 만일
장면이 원주로 도망쳐 제1군 사령관
이한림에게 출동을 명하기라도 했다간
동족간에 피를 흘리게 되지 않는다고
단언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더구나
제1군 사령관 이한림은 독실한 천주교
신자로서 장면과는 아주 가까운 사이가
아닌가.
<이 장군, 이 장군만 믿겠소. 즉시
장면이 원주로 피신해서 이한림에게 이렇게
명령하는 날엔 쿠데타는 도로 아미타불이
돼 버리고 말 것은 눈으로 보나마나 뻔한
일이었다.
장면이 미국 대사관이나 미 제8군 사령부
영내로 피신했을 경우도 가상할 수 있었다.
이 두 군데 모두 치외법권 지역이었다.
이곳의 전화를 이용해서도 얼마든지
이한림에게 명령을 내릴 수가 있었다.
이럴 경우에는 차선책이라도 써야 한다고
박치옥은 생각했다. 그 차선책이란 장면
정권의 요인들을 모조리 수중에 넣어두는
것이었다. 제1군이 반격전으로 나왔다 하게
될 것 같으면 이 인질들을 미끼로 협상도
벌일 수 있는 일이다. [삼국지 연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략이었다.
체포조?"
박치옥은 요인 체포조를 찾았다.
공수단에게 맡겨진 요인 체포는 오직 한
사람 장면뿐이었다. 나머지 장면 정권의
요인들에 대한 체포는 육군본부에서
근무하고 있는 쿠데타 멤버들한테 맡겨져
있었다.
"요인 체포조 아직 여기에 오지 않았어?"
박치옥은 시청앞 광장 일대를
두리번거리면서 요인 체포조를 찾았으나 한
사람도 눈에 띄지 않았다.
"도대체 어찌된 일이야?"
박치옥의 신경질이 머리끝까지 치솟았을
때에 육군본부 근무자인 육군 중령
김원희(金元熙)가 나타났다. 그를 보자
박치옥은 다그치듯이 물었다.
됐소?"
한데, 김원희의 대꾸는 너무나 엉뚱했다.
"요인 체포요? 집을 알아야 요인을
체포할 게 아닙니까?"
"뭐, 집을 알아야?"
박치옥은 하도 기가 막혀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가 않았다.
(이런 놈들을 동지라고 믿고 그런 중책을
맡겨?)
한 대 갈겨주고 싶은 분노가 물 끓듯이
끓었다.
요인 체포를 책임졌으면 미리 집부터
알아둬야 할 일이었다. 그런데 미리 집도
알아두지를 않았으니 이런 놈들을 어떻게
동지라고 믿을 수 있단 말인가?
거기에다가 해병대와 공수단이 한강의
있은 지가 언제인가? 겨우 어슬렁거리며
나타나 요인들의 집을 몰라 체포를 하지
못했다? 문제는 또 있었다. 다른 놈들은 다
어쩌고 김원희 혼자만 나타났느냔 말이다.
(이놈들이 장도영이 진압작전에 나섰다는
것을 알고 모조리 발뺌을 하려고 숨어버린
게 틀림없어. 그렇지 않다면 어째서 김원희
혼자만 나타났느냔 말이다.)
그런 의심도 들었다. 박치옥이 분노가
끓을 만도 했다.
이건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쿠데타가
일어난 이날 아침까지 체포된 장면 정권의
요인은 국방부 장관 현석호를 위시해서
체신부 장관 한통숙, 국방부 사무차관 김업
뿐이었다.
그리고 이날 오후 3시경, 부산에
조재천(曺在千)과 무임소장관
오위영(吳慰永)은 각기 동래온천 대성관과
자택에서 체포했을 뿐이었다. 이들 두
요인을 체포한 부대는 육군 준장
김용순(金容殉)이 이끄는 부산 군수기지
사령부 소속의 부대였다.
한편, 장면이 떠나자 현석호는 체신부
장관 한통숙과 국방부 사무차관 김업을
먼저 지프에 오르게 했다. 그런 다음
자기는 앞자리에 앉았다.
"506방첩대로 가세."
진압상황이 마냥 궁금하기만 했던
현석호는 다시 506방첩대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지프가 서울 시청 앞 로터리를 돌
세웠다.
"뭣하는 사람이오?"
무장병사 하나가 물었다.
"나 국방장관일세."
현석호는 아주 조용히 대꾸했다.
국방장관이라는 말에 무장병사는 일순간
찔끔해 하는 것 같았다. 다른 병사가
끼어들었다.
"국방장관이 혁명이 일어났다는 것도
모른단 말이오? 어서 차에서 내리시오."
현석호는 감히 국방장관에게 거칠은
말투를 쓰는 것으로 보아 이들이 반란군이
틀림없다고 단정하며, 아무 소리 앉고
차에서 내렸다. 현석호가 내리자 한통숙과
김업도 따라 내렸다.
"따라 오시오."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서울 시청 뒤로 끌려갔다.
"여기 서 계시오."
무장군인들이 세 사람을 세워 놓은 곳은
시청 뒤의 담벼락 앞이었다.
현석호 등 세 사람이 무장군인들한테
이끌려 서울 시청 뒤로 가고 있는 바로 그
시각, 장면의 차는 중학동 한국일보 길
건너 맞은편에 있는 미국 대사관 직원숙소
앞에서 정차했다.
"미스터 실바를 찾게. 미국 대사관의
정보책임자일세."
장면이 앞자리에 앉은 조인호에게
명했다.
미국 대사관으로의 피신에 실패한 장면은
미국 대사관 직원숙소에 은신할 생각을
조인호는 차에서 내리자 숙소 정문
앞으로 달려갔다. 굳게 잠긴 철문을
한동안이나 두들기고 나서야 수위가
손전등을 들고 어슬렁어슬렁 나타났다.
"누구십니까?"
한국말이었다. 수위가 한국 사람이었던
것이다. 조인호는 수위가 한국 사람인 것이
조금은 꺼림칙했다.
"급한 사정이 있어서 그럽니다. 미스터
실바한테 조인호라는 사람이 찾아왔다고
전해 주십시오."
"잠깐 기다리십시오."
수위는 그 한마디만 남기고 다시 또
어슬렁어슬렁 안으로 사라졌다. 몸가짐이
꼭 굼벵이 같았다. 여기서 한 5분은
지체했을까? 아니 10분 이상을
들어간 수위한테서는 아무런 기척도
없었다. 조인호는 속이 탔다. 장면도 속이
탔다. 군용 지프의 내왕이 갑자기 늘어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이제 더는 지체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만 가세."
장면은 조인호를 불렀다.
"일단 내 집으로 가세."
장면의 집은 명륜동에 있었다.
운전수는 속력을 낼 수 있는 한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그런데 혜화동
로터리에 이르렀을 무렵이었다.
원남동 쪽에서 달려오고 있는 트럭의
행렬이 보였다.
이제 더는 우물쭈물하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궁하면 통한다고 했던가? 여기
장면의 머리에 번갯불처럼 떠올랐다.
"수녀원으로 들어가게."
장면은 다급하게 소리쳤다.
해병대는 무난히 한강 다리를 건넜다.
공수단도 건넜다. 한강 다리를 건넌
해병대는 서울 시청 쪽으로 달려가면서
분산하기 시작했다.
그때가 새벽 4시 20분.
그들한테 주어진 임무는 서울시 경찰국
산하의 각 경찰서와 경찰국, 치안국,
내무부를 접수하는 일이었다. 해병대가
삼각지에 이르렀을 때 손을 흔들며
환영하는 장병들이 있었다. 이미
장병들이었다.
"시내는 무방비 상태다. 자동차를 타고
가라!"
그 중의 어떤 장교가 고함을 질러대기도
했다.
새벽 4시 30분.
해병대 선두부대의 일부가 위협사격을
가하며 용산경찰서로 돌격해 들어갔다.
그렇지 않아도 한강 다리 쪽에서
울려퍼지고 있는 총소리에 전전긍긍하고
있던 숙직서원들은 별안간에 위협사격을
가하며 돌격해 들어오는 해병대에
혼비백산, 도망칠 구멍을 찾느라
아우성이었다. 어떤 자는 엉겁결에 책상
밑에 숨는가 하면 또 어떤 자는 지붕 위로
기어오르기도 했다.
윤보선과의 통화를 끝내고 506방첩대를
떠난 장도영이 육군본부 참모총장실로
들어선 것이 바로 이 시간이었다.
그는 비서실장 김병삼을 통해서
쿠데타군이 육군본부를 장악하고 있다는
것을 재확인했다.
"참모부장들은 뭘 하고 있나?"
장도영이 물었다.
"지금껏 참모부장 회의를 열고
있습니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육군본부에 비상이
걸리자 달려나온 각 참모부장들은
자기들끼리 회의를 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참모총장이나 참모차장이 주재한
회의가 아니니까 그저 의견교환을 하고
있었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 같다. 그들
일치를 보고 있었다.
쿠데타군과 싸우게 되면 모두가 자멸하게
된다. 그러니까 희생자를 적게 사태수습을
하도록 해야 한다. 그 의견은 옳았던 것
같다. 동족간의 유혈사태만은 막아야 했다.
그런데 문제는 쿠데타를 지지하느냐,
아니면 반대하느냐 하는 데 대해서는
참모부장들은 그 어떤 결론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들의
의견일치라는 것은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애매모호한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각하, 이제 각하께서 육군본부로
오셨으니 각하께서 친히 참모부장 회의를
주재하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비서실장 김병삼이 의견을 구신했다.
(육군본부가 이미 쿠데타군의 손아귀에
들어갔고 또 다른 쿠데타군이 지금 서울
시내로 진입해 들어가고 있을 텐데
참모부장 회의를 주재해서 그 어떤 결정을
내린단 말인가?)
아마도 장도영은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기에 그는 김병삼의 의견따윈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왼손을 턱에 고이며
눈을 지그시 감고 생각에 잠겨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도대체 이 양반은 지금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 건가? 쿠데타 진압을 생각하고 있는
건가, 아니면 지지할 것을 생각하고 있는
건가?)
김병삼은 도무지 장도영의 마음속을
읽기가 어려웠다.
공수단과 함께 한강 다리를 건넌
환하게 밝혀져 있는 것을 목격했다.
(비상이 걸린 모양이군. 불이 환히
밝혀져 있는 것을 보니.)
그는 한동안 그 불빛들을 노려보고
있다가 차를 남산으로 몰았다.
KBS 서울 중앙방송국으로 가기
위해서였다. 그들의 계획으로는 KBS가
제2지휘부로 정해져 있었다.
아마도 그때가 새벽 4시경이었을 것이다.
헌병감 조흥만은 헌병 1개 분대를 보내
KBS 경비 임무에 다하도록 조치한 바 있다.
그러나 한강의 저지선이 무너졌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조흥만은 서둘러 KBS에 파견했던
헌병분대에게 철수하도록 명령을 내렸었다.
그는 이 시간까지도 제6관구 사령부에
있으면서 이 철수명령을 내렸던 것이다.
공수단 1개 중대 병력이 그를 따라 붙었다.
박정희를 경호하기 위해서였다. 박정희와
그를 경호하는 공수단 병력이 남산 KBS
청사 앞에 당도한 것은 경비헌병이 철수한
직후였다.
이때 시간은 새벽 4시 30분쯤.
KBS 앞에 이르자 드리쿼터에서 뛰어내린
공수단 장병들은 공중에 대고 잇따라
위협사격을 퍼부어 댔다.
그때 마침 아침 방송을 위해 막
숙직실에서 나와 양치질과 세수를 하고
아나운서실로 향하고 있던 숙직 아나운서
박종세(朴鐘世)는, 별안간 고막을 찢어대는
총소리에 놀라 아나운서실로 뛰어들기가
무섭게 책상 밑으로 기어들어가 꼭꼭
숨어버렸다.
기습공격하고 있는 게 아냐?)
그는 된 새벽의 총소리가 어김없는
괴뢰군 게릴라 부대의 기습공격이라고
판단했었다. KBS 뜰에서 퍼부어대는
총소리에 놀란 것은 박종세만이 아니었다.
그때 방송준비를 하느라 방송기재를
점검하고 있던 숙직 엔지니어도 총소리에
놀라 후다닥 믹서실에서 뛰쳐나가 방송국
뒷담을 넘어 도망쳤다.
공수단이 방송국 청사를 완전히
장악하자, 박정희가 들어왔다.
"혁명공약을 방송해야겠어."
그러나 방송 기술자들이 없었다.
"방송 기술자들을 찾아내!"
박정희의 명령에 집총을 하고 경호하고
있던 공수단원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기술자를 찾느라 부산을 떠는 소리가 온
청사 안에 메아리쳤다. 이윽고 한 공수단
병사가 책상 밑에 숨어 있는 박종세를
발견했다.
"이리 나와!"
총구를 들이대고 호통을 치는 바람에
박종세는 엉금엉금 기어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병사의 총부리에 밀리어
박정희 앞으로 끌려갔다.
"이름이 뭔가?"
박정희가 물었다.
"박종세라고 합니다."
박종세라는 이름은 박정희도 라디오를
들어 익히 알고 있었다.
그는 이때 한창 이름을 날리던
아나운서였다.
혁명방송을 좀 해줘야겠소."
박정희의 말투가 갑자기 공손해졌다.
혁명방송이라니 어떤 방송을 하란
말인가? 그렇다 하더라도 엔지니어가
있어야 방송을 할 것이 아닌가?
"방송은 저 혼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술자가 있어야만 합니다."
박종세는 기술자가 없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며 꽁무니를 빼려 했다.
이들이 혁명군이라고 자칭하고 있지만
어떤 종류의 혁명군인지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총칼의 강요에 못
이겨 어쩔 수 없이 방송을 했다 하더라도
사태가 급전직하(急轉直下)하게 되면
방송을 한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는 것을
절감하고 있었던 것이다.
박정희는 다시 명령했다.
한데 총소리에 놀라 뒷담을 넘어
도망쳤던 숙직 엔지니어는 일단 위급을
면하기 위해서 도망치기는 했으나
방송시간은 다가오고 있었고, 그래서 더
이상 어디 먼 데로 도망을 치지 못하고
방송국 밑 민가의 처마 밑에 숨어 있었다.
그러다가 그는 총소리가 멎자 다시
방송국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아무래도
방송을 해야겠다는 책임감 때문이었다.
그는 언덕을 올라와 청사 안으로
들어가려다가 공수단 병사에게 붙들리고
말았다. 방송 기술자라고 하자 병사는 그를
박정희 앞으로 끌고 갔다.
이제 방송을 할 수 있는 여건은
갖추어졌으나 문제가 또 생겼다.
"종필이, 종필이, 어디 있어?"
박정희는 두리번거리며 김종필을 찾았다.
방송원고는 김종필이 갖고 오기로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김종필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이 소령, 이 소령은 어디 있어?"
김종필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박정희는
이번에는 부관 이낙선(李洛善)을 찾았다.
그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도대체 어디서 뭘 하구 있기에 여지껏
나타나지 않고 있는 거야?"
박정희는 역정을 냈다.
김종필, 이낙선 이 두 사람은 이 시간에
뭘 하고 있었을까?
"내가 갔다 오지!"
박정희는 부리나케 밖으로 뛰쳐 나갔다.
같은 시각. 새벽 4시 40분.
장도영으로부터 즉시 시청 앞으로
출동하라는 명령을 받은 제30사단 사단장
이상국은 휘하의 연대장인 육군 대령
권용성(權用性)에게 3개 소대를 지휘케
하고, 자신은 1개 소대를 지휘하며
지체없이 시청 앞으로 달려왔다.
그때가 새벽 4시 40분이었다.
막상 시청 앞에 이르러 보니 공수단과
제6관구 사령부 병력으로 꽉 차 있었다.
이상국은 기가 막혔다. 공수단과 제6관구
사령부 병력이 쿠데타군이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부대를
대기시켜 놓고 506방첩대로 달려갔다.
장도영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한데
"총장께선 어디로 가셨습니까?"
이희영에게 물었다.
"총장께선 육군본부로 가셨습니다."
이희영의 대답을 듣자, 이상국은 또 한번
기가 막혔다. 시청 앞으로 출동하라고
했으면 어떤 후속 조치를 취해 주어야 할
것이 아닌가.
(뭐 이런 참모총장이 다 있어? 쿠데타를
방조하자는 거야?)
욕설이 절로 솟았다.
그는 육군본부로 전화를 걸었다.
"나, 30사단 이상국 사단장이오.
총장님을 좀 바꿔 주시오."
"지금 회의중입니다."
전화를 받는 자가 부관인 모양이었다.
"그럼 총장님께 내가 부대를 이끌고 서울
기다리고 있다고 전달해 주시오."
전화를 끊었다.
(이제 어떻게 한다?)
그는 막막하기만 했다. 서울 시청 앞
광장에는 쿠데타군이 꽉 차 있고, 그렇다고
명령 없이 부대를 귀대조치할 수도 없고,
그는 답답한 가슴을 안고 대기시켜 놓은
부대로 돌아왔다. 그가 부대로 돌아온 것을
보았는지 제6관구 사령부 작전참모인 육군
중령 박원빈이 이상국 앞으로 달려왔다.
"사단장님은 부대를 이끌고 중앙청으로
가서 경계임무를 맡아 주시오."
(중앙청으로 가서 경계임무를 맡으라?
그러면 날더러 쿠데타군으로 둔갑을 하란
말인가?)
그는 반감이 불끈 일었다. 그렇다고
있기도 싫었다. 그들하고 떨어지게 된
것만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상국은 지체하지 않고 부대를 돌려
중앙청으로 향했다.
새벽 4시 59분.
KBS의 전파는 애국가를 실어보내고
있었다. 방송은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그런데도 원고를 가질러 간 박정희는 아직
모습을 나타내지 않고 있었다.
새벽 5시 정각.
시보가 울리자 박종세의 목소리가 전파를
타고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여러분,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지금부터
5월 16일 아침 방송을 시작하겠습니다."
박종세의 목소리가 조금 떨리고 있는 것
아나운서 멘트가 끝나자 새벽의
방송담당자들은 우선 잔잔한 음악을
내보냈다. 혁명을 했다는 사람들이
방송준비를 하라고 명령하고는 어떤 방송을
하라는 후속 조치를 취해 주지 않았기
때문에 잔잔한 음악을 대신 내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혁명이 성공할 때에 대비해서 혁명공약
인쇄를 맡겨 놓은 인쇄소는 안국동에 있는
이학수(李學洙)가 운영하는
광명인쇄소였다. 이 인쇄물의 담당이 바로
김종필과 이낙선이었다. 박정희는
방송시간이 돼도 김종필이 나타나지 않자
몸소 광명인쇄소로 달려가 인쇄물을 가지고
다시 KBS로 달려왔던 것이다.
그때가 새벽 5시 2분.
원고지를 박종세 앞에 내놓고 읽으라고
눈으로 신호를 했다. 박종세는 읽지 않을
수 없었다.
친애하는 애국동포 여러분!
은인자중하는 군부는 드디어 금조 미명을
기해서 일제히 행동을 개시하여 국가의
행정, 입법, 사법의 삼권을 완전히
장악하고 이어 군사혁명위원회를
조직하였습니다.
군부가 궐기한 것은 부패하고 무능한 현
정권과 기성 정치인들에게 더 이상 국가와
민족의 운명을 맡길 수 없다고 단정하고
백척간두에서 방황하는 조국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것입니다.
군사혁명위원회는.......
군사혁명위원회는 6개 항의 공약을
내세우고 있었다.
제1군 사령관 관저에서의 회의는 KBS에서
이른바 <혁명방송>을 한 직후였다. 육군
참모차장으로부터 쿠데타 소식이 있은 지
1시간 남짓해서야 지휘관들이 다 모였다는
것은 신랄한 비판을 받아 마땅한 줄로
안다.
"조금 전 서울에서 쿠데타가 일어났다고
장창국 참모차장이 알려왔소. 박정희
소장이 지휘하고 있다 했소. 그러나 아직
정확한 소식은 모르겠소."
모든 지휘관이 다 모이자 이한림은
간단하게 서울에서 쿠데타가 일어났다는
소식을 전해 주었다.
돌아가서 예하부대를 장악하고 출동준비를
갖추어 주시오."
제3사단장 육군 중장 최석(崔錫)이
이의를 제기하고 나서서 당장 출동할 것을
완강히 주장했다.
"출동준비를 하고 대기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당장 출동해서 서울의 외곽 통로를
차단해야 합니다."
제1군 휘하에는 폭동이나 쿠데타 같은
사건에 대비해서 따로 예비군단을 마련해
둔 부대가 있었다. 그러니까 이 예비군단에
대해 <즉시 서울로 출동하라> 하고 명령만
내리면 그뿐이었다.
그런데 어찌된 노릇일까? 이한림도 다른
지휘관들도 최석의 건의에 단 한 사람도
반응을 보여주지 않았다. 어째서였을까?
돌아갈 수 있는 모든 편의를 제공해
주었다.
각급 지휘관들이 돌아가자 이한림은
부사령관 육군 소장 윤춘근(尹春根),
참모장 육군 소장 황헌친(黃憲親)을
불렀다.
"언제든지 출동할 수 있는 태세를 갖추어
놔야 할 것 같소. 수송자동차 대대는 2군단
예하사단의 출동에 대비해 놓도록 하고
전차대대도 출동준비를 해두는 것이 좋을
것 같으니 즉시 지시하시오."
8. 장도영, 그는 야누스였는가?
새벽 5시 15분.
소위 <혁명방송>이라는 것이 끝났다.
군사혁명위원회는
첫째, 반공을 국시(國是)의 제1로 삼고
지금까지 형식적이고 구호에만 그친
반공태세를 재정비 강화할 것입니다.
둘째, 유엔헌장을 준수하고 국제협약을
충실히 이행할 것이며 미국을 위시한 자유
우방과의 유대를 더욱 공고히 할 것입니다.
셋째, 이 나라 사회의 모든 부패와
구악을 일소하고 퇴폐한 국민도의와
기풍을 진작할 것입니다.
넷째, 절망과 기아선상에서 허덕이는
민생고를 시급히 해결하고 국가 자주 경제
재건에 총력을 경주할 것입니다.
다섯째, 민족적 숙원인 국토통일을
위하여 공산주의와 대결할 수 있는 실력의
배양에 전력을 집중할 것입니다.
여섯째, 이와 같은 우리의 과업이
성취되면 참신하고도 양심적인
정치인들에게 얼마든지 정권을 이양하고
우리들 본연의 임무에 복귀할 준비를
갖추겠습니다.
애국동포 여러분,
여러분은 본 군사혁명위원회를
전폭적으로 신뢰하고 동요 없이 각인의
직장과 정업을 평상과 다름없이 유지하시기
우리들의 조국은 이 순간부터 우리들의
희망에 의한 새롭고 힘찬 역사가 창조되어
가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조국은 우리들의 단결과 인내와
용기와 전진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만세!
궐기군 만세!
-군사혁명위원회 의장 육군 중장 장도영-
이 <혁명공약>은 김종필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쿠데타를 모의할 때나 이 혁명공약을
작성할 때만 해도 김종필의 마음은
순수했으리라. 하여간에 이 혁명공약이
전파를 타고 흘러나가는 것을 지켜보며
박정희는 얼마나 감격에 몸을 떨었는지
쿠데타였다. 그는 이제 그것을 해낸
것이다.
(나는 해냈다. 기어이 해냈다.)
44세의 박정희는 마음속으로
부르짖었는지도 모른다.
하필이면 그때 비서실장 김병삼이 총장실
라디오를 켜놓았던 것일까? 하기야
김병삼이도 바깥 소식이 궁금해 뉴스라도
들으려고 라디오를 켜놓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장도영의 명상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라디오의 볼륨을 작게 줄여 놓고 있었던
것이나 장도영도 소위 <혁명방송>이라는
것을 들었다. 그 끝머리에 <군사혁명위원회
의장 육군 중장 장도영> 하는 끝말이
흘러나오자 눈을 번쩍 뜨며 고개를
"뭐? 나를 의장이라고?"
그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한동안 물끄러미 김병삼을 바라보고 있던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나를 위원장이라고 추대했으니 좀
나가도 되겠군. 비켜라!"
그는 의연한 자세로 총장실을 나갔다.
경비 장교들은 누구도 그의 앞을 가로막지
못했다. <어디로 가시려고
그러십니까?>라고 묻지도 못했다. 그들도
방송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전혀 알 길이 엇는 경비
장교들은, 장도영이 군사혁명위원회의
의장이라는 소리를 들었기에 그에게 어떤
불손한 행동도 취할 수가 없었다.
나왔다. 그는 박종세가 원고를 읽고 있는
동안 줄곧 그의 등 뒤에 지켜서 있었던
것이다.
그가 스튜디오를 나서자 복도에는 많은
쿠데타 주체자들이 서 있었다. 육군
정보학교장 한웅진은 어젯밤부터 줄곧
박정희와 행도을 같이 했던 사람이고, 그
밖에 해병 준장 김윤근, 육군 준장 윤태일,
예비역 육군 중령 김종필, 육군 중령
이석제, 육군 중령 정문순(鄭文淳), 육군
중령 이형계(李亨桂), 육군 중령
박순권(朴順權), 육군 소령 이낙선 등이
언제 모여들었는지 방송국 복도에 모여
웅성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젠 육본으로 가야겠지?"
스튜디오를 나서면서 박정희는 쿠데타
사람 그래야 한다고 동의하는 사람이
없었다.
괴이한 일이었다. 이미 육군본부가
쿠데타군의 한 가닥인 제6군단 포병단의
손에 들어가 있고 해병대와 공수단이 이미
행동을 개시해서 점령목표를 모조리 점령해
놓고 있는 지가 거의 1시간이나 가까워지고
있는데 육군본부로 가는 것이 좋겠다고
동의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은 어찌된
노릇이란 말인가?
사실은 그들 모두가 겁을 먹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이 여기로 와 있는 사이에
육군본부에서 어떤 상황 변화가 있었는지
전혀 가늠하기조차 못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만일 장도영이 쿠데타를
저지한다면 얼마든지 저지할 수 있다고
지키며 서로의 눈치만 살피고 있자
한웅진이 입을 열었다.
"육본으로 가시더라도 일단 육본의
상황을 알아보고 나서 가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육본의 상황을 알아본다면 어떤
방법으로 알아본단 말이오?"
그렇다. 육군본부의 상황을 알아본다면
어떤 방법으로 알아봐야 한단 말인가?
정찰병이라도 보내본단 말인가? 한웅진은
박정희의 이 질문에 대해서 대꾸를 하지
못했다.
그때였다. 김재춘과 한국찬(韓國贊)이
KBS로 달려온 것이다. 일행이 복도에 서
있는 것을 보자 김재춘이 덤비기 시작했다.
워낙 성질이 급한 인물이라 더듬기까지
"큰일났는데 여기서 뭣들 하고 있습니까?
지금 장도영 총장이 하우즈 소장과 혁명군
진압계획을 세우고 있단 말입니다. 빨리
육본으로 가셔야겠습니다."
미 육군 소장 하우즈는 미 군사고문단의
단장이었다. 장도영이 하우즈와 진압계획을
세우고 있다면 쿠데타는 도리없이 진압당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그 말을 들은 모든
사람들의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렸다. 그렇지 않아도 그들은 누구나가 입
밖에 내지는 않고 있었지만 과연 미군
수뇌부가 어떻게 나올 것인가, 그 점을
가장 염려하고 있었던 것이다.
"죽든 살든 육본으로 가서 결판냅시다."
그러면서 박정희가 먼저 걸어 나갔다.
쿠데타의 최고지도자가 <죽든 살든
비겁하게 꽁무니를 뺄 수도 없는 일이었다.
일행은 무거운 마음을 안고 박정희의 뒤를
따랐다.
육군본부에서 KBS로 달려온 최영택은
정문 앞에 차를 세우고 내렸다. 허리총을
한 공수단 병사들이 삼엄한 경계를 펴고
있었다. 시계를 보니 5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최영택이 정문을 들어서자, 그때
막 박정희 일행이 현관으로 나오고 있었다.
그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그들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박정희가 그의 앞으로
다가서자 최영택은 말없이 거수경례를
붙였다.
박정희는 걸음을 멈추더니 최영택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경례를 받았다.
그리고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최영택 앞으로 다가왔다. 그는 자주색
바지에 야전잠바 차림이었다. 그는 탈모한
자기의 이마로 최영택의 이마를 가볍게 툭
하고 받았다.
"봤지? 우리는 기어이 해내고야 말았어!"
그러면서 김종필은 씽긋 미소를 짓는
것이었다.
"이제부터는 우리 서로 협력해서 하는
거야! 어때, 같이 하는 거지?"
김종필이 덧붙였다.
"그래, 해야지 해야 하구말구. 정말이지
수고가 많았어."
이 순간 최영택은 쿠데타 편에 서서 일할
마음을 굳혔다.
이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해서는 뒤에 다시
소개할 기회가 있을 줄로 알지만 쿠데타
있었다.
그렇지만 그런 그가 결과적으로 중도에
탈락하다시피 했던 것은 그의 직책상의
문제 때문이었다. HID 본부의
첩보과장이라고 하면 대공 첩보관계는 모두
관장하고 있어야만 했다. 특히, 민주당
정권이 들어선 뒤로 북한 김일성 집단의
도발이 워낙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여기에 대응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는 데도 시간이 모자랄 지경이었다.
쿠데타도 국가안보를 유지하고 난 이후에
생각할 문제였다. 그래서 최영택은
탈락하는 결과가 되었던 것이다.
"차 가지고 왔어?"
"응!"
"그럼 난 최 형 차로 가야겠네."
최영택은 김종필을 자기 차에 태웠다.
(이 친구한테 무엇보다도 먼저 차하고
호신용 권총부터 마련해 줘야 되겠군.)
최영택은 핸들을 잡으며 생각했다.
박정희의 지프를 두 대의 드리쿼터가
호위하며 밝아 오는 남산 길을 달렸다.
육군본부에 도착하자 최영택은 김종필을
내려놓고 HID 본부로 향했다. 공작처장
육군 중령 김영민(金永旼)이 그를
맞아주었다. 그는 상황이 꽤나 궁금한
모양이었다.
"쿠데타지?"
조급히 물었다.
"응."
최영택은 짧게 대답하고 잠시 생각한
끝에 말했다.
도와줘야겠어. 그러니 뒷일을 좀
부탁하겠어."
"응, 좋아. 여기 일은 걱정하지 말구
나서라구. 그래, 내가 뭐 도와줄 일은
없어?"
김영민은 아주 시원스럽게 물었다.
"종필이가 차가 없어. 권총두 없구."
"그럼 내 차를 가져다 줘."
그는 권총 한 자루를 내주는 것이었다.
최영택은 권총을 받자 자기 차는 놔두고
김영민의 차와 운전수를 인계받은 다음
휘발유를 만탱크 시킨 다음 다시
육군본부로 향했다. 김종필이 호신용
권총과 전용으로 쓸 수 있는 차가 생긴
것을 무척 기뻐하리라 생각하니 그의
마음도 그지없이 흐뭇하기만 했다.
하나 사이를 두고 이웃하고 있는 미 8군
사령부로 갔던 것이다. 그때쯤에는 유엔군
사령관 겸 미 8군 사령관인 매그루더도
사태의 긴박한 소식을 듣고 사령관실로
나와서 분초를 다투며 들어오는 쿠데타군의
동정에 대한 보고를 받고 있었다.
이미 여러 정보 경로를 통해 박정희가
장도영을 업고 쿠데타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보고를 받고 있던 매그루더는
장도영이 찾아왔는데도 반겨 주지조차
않았다.
"어찌 찾아왔소?"
매그루더는 차갑게 물었다.
"장군께서도 보고를 받았으리라고
믿습니다만 쿠데타가 일어났습니다."
"쿠데타가 일어난 것은 알고 있소.
장의 태도요. 장군은 이 쿠데타를 어찌할
생각이오? 받아들일 생각이오?"
"받아들이다니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장도영이 펄쩍 뛰었다.
"받아들일 생각이 아니라면 왜 즉각
쿠데타 분쇄를 위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소?"
"방법이 없습니다."
"방법이 없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나는
제너럴 장이 쿠데타에 대한 보고를 몇 시에
받았는지 알고 있습니다. 장군은 보고를
받은 즉시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그, 그것은 동족간에 피를 흘리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겠기에......."
"제너럴 장, 잘 들으십시오. 대한민국은
없습니다. 미국은 그동안 모든
피원조국들에 대해서 대한민국을
본받으라고 하며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성장을 얼마나 자랑해 왔는지 모릅니다.
그런 나라에서 쿠데타가 일어나다니 도저히
용서할 수 없습니다. 쿠데타는 반드시
진압돼야 합니다."
매그루더의 쿠데타에 대한 태도는
완강했다.
그도 그럴 법한 일이었다. 미국은 45년
8월 15일 이래 대한민국을 민주주의 국가로
키우기 위해 얼마나 많은 돈을
쏟아부었던가. 더구나 김일성 집단이
남침을 감행함으로써 야기되었던 6.25
한국전쟁 때는 3만여 명의 미국의 아들들을
희생시켜 가며 민주주의 국가로 자라고
않았던가.
매그루더는 문제가 또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쿠데타를 주도한 박정희라는
인물의 사상이 불투명한 점이었다. 그래서
박정희를 예편시켜 버리라고 그렇듯 한국
군부에 대해서 압력을 넣었음에도 불구하고
의붓자식 끼고 돌듯이 하고 있다가 오늘 이
지경에 이른 것이 아닌가. 박정희, 그를
끼고 돈 사람이 누구였던가? 바로 장도영
이 사람이 아니던가.
<쿠데타는 절대 용납 못합니다. 결단코
쿠데타는 분쇄돼야만 합니다.> 매그루더의
마지막 이 한마디는 장도영으로 하여금
경각심을 불어넣어 주기 위한 말이었다.
<나는 네가 박정희에게 업혀 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만일 박정희에게 업혀져
않겠다>는 간접적인 경고이기도 했던
것이다.
새벽 5시 45분.
장도영은 다시 육군본부로 돌아왔다.
그가 매그루더의 방을 나서자, 미
군사고문단장인 하우즈가 뒤따라왔다.
참모총장실로 들어오자 장도영은 하우즈와
단 둘이 밀담을 나누었다.
"어떻게 하면 좋겠소, 장군?"
장도영은 답답했다. 쿠데타군은 이미
육군본부뿐만 아니라 서울 시내에 있는 전
기관을 장악했다고 보아야 옳을 것 같았다.
거기에 그놈의 혁명방송이라는 것이 이미
"만일 군사행동이 필요하다면 매그루더
사령관이 작전 지휘권을 행사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최악의 경우이고 우선은
쿠데타군더러 원대복귀를 명할 것으로
봅니다."
쿠데타 진압계획으로서는 다시 없는
온건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목숨을 걸고 궐기한 쿠데타군이 그렇게
선뜻 원대복귀 명령에 순응하려 들까?
아무래도 이 점은 미심쩍기만 했다.
(매그루더가 쿠데타에 대해서 단호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 이상엔 쿠데타는 어쩔
수 없이 실패하고 만다.)
이런 판단이 서자 장도영은 결심을 했다.
쿠데타를 진압하기로. 그런데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장도영이었다. 그는
소극적, 너무나 소극적이기는 했지만
쿠데타를 저지하기 위한 조치를 취해
왔었다.
그런 그가 매그루더를 만나고 하우즈와
의논하는 사이에 새삼스럽게 쿠데타를
진압할 결심을 굳혔다는 것은 또 무슨
소리인가? 그러면 그는 지금껏 건성으로
쿠데타 진압을 취해오고 있었다는 얘기밖에
더 되는가? 그렇다, 그는 지금까지는
건성으로 쿠데타 진압조치를 취해 오고
있었떤 것이다.
제2군단 사령관 시절, 그는 번번이
<이놈의 나라 쿠데타로 뒤집어 엎어야
한다>고도 했었다. 또 박정희는 그를
<쿠데타의 지도자로 추대하겠다>고도
했었다. 그래서 요행 대권을 잡아볼 기회가
그는 쿠데타를 저지하는 척만 해왔던
것이다.
어쨌거나 그는 새벽 5시 45분에 쿠데타를
진압해야겠다고 스스로에게 다짐을 주었다.
그가 이렇게 스스로에게 다짐을 주고 있을
때에 갑자기 밖이 꽤 시끄러워졌다. 그것은
박정희가 육군본부에 발을 들여놓았기
때문이었다.
"쏴라! 쏴라!"
박정희 일행이 별관 건물 앞에서 차를
세우고 내리는 것을 본 육군본부 교육처장
송석하는 경비병에게 쏘라고 명령했다.
이때가 새벽 6기.
날이 훤하게 밝아 있어 사람의 모습을
분간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는 이때 무엇 때문에 별관 현관에
쿠데타 주동자들이 별관 현관 앞에서 차를
세우고 내리는 것을 보자 덮어놓고 그들을
쏘라고 명령했던 것이다. 육군본부
경비병들은 이 또한 제6군단 포병단
병사들로서 쿠데타군이었는데도 말이다.
그는 아직도 적과 내편을 구분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쏘라니 누굴 쏘라는 거야?"
현관으로 들어서는 박정희는 매서운
눈초리로 송석하를 노려보았다.
그러나 박정희는 더 이상 송석하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2층 계단을
올라가다가 그때 마침 내려오고 있던
하우즈와 마주쳤다. 하우즈도 박정희의
모습을 알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는
박정희와 마주치자 노기를 띠고 힐난했다.
엎으려 하는가?"
박정희는 영어가 짧았다. 아니
짧다기보다는 캄캄했다고 하는 편이 옳을
것 같다. 그는 사범학교 시절에 조금 배운
영어를 모조리 까먹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영어는 모르나 그는 하우즈가
뭐라고 힐난하는지를 그의 눈빛을 보고
알아차렸던 것이다.
"너 이놈! 네놈이 뭔데 남의 나라 일에
내정간섭을 하려 드느냐?"
박정희는 목청껏 소리쳤다. 박정희는
너무나 긴장돼 있었기 때문에 부지불식간에
목젖이 떨어져라 하고 소리쳤던 것이다.
그러자 하우즈는 뭐라 중얼중얼 알아듣지
못할 말을 중얼거리고 휘잉하니 계단을
내려가는 것이었다.
거기에는 언제부터 와 있었는지 예비역
해병 소장 김동하를 비롯해서 육군 대령
유원식(柳原植), 박창암(朴倉岩), 박치옥,
장면 체포조장이었던 육군 소령 박종규
등이 앉아 있다가 박정희를 반갑게
맞아주는 것이었다.
"수고들 많았소."
박정희는 허리에 차고 있던 권총을 풀어
박종규에게 주고 노크도 없이 참모총장실로
들어갔다. 이때 장도영은 혼자 생각에 잠겨
있었다. 박정희는 그의 앞으로 다가가서
부동자세를 취하고 거수경례를 했다.
"각하, 출동 전에 미리 보고드리지
못하고 이렇게 일을 저질러 죄송합니다.
그러나 계획 당초부터 각하와 함께 일을
결행하려고 했던 것과 같이 이 순간에도
없습니다. 우리의 충성을 이해하시고
지금부터 선두에 서서 지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장도영은 한참 동안이나 박정희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은 결코 미워하는
증오의 빛은 아니었다.
(이 친구야, 네가 이럴 수 있어?)
그런 눈빛이었다.
장도영의 그 눈빛에 박정희는 안심하는
마음과 자신감이 겹쳐졌다.
(됐다. 너는 결코 쿠데타에 반대는
아니었구나!)
"박 장군, 나는 지금 뭐라고 해야 좋을지
모르겠소. 다만, 내가 박 장군한테 할 수
있는 말은 지금은 사태를 수습할 때라는
말밖에 못하겠소."
짝이 없었다.
사태를 수습할 때라니 어떻게 사태를
수습하자는 말인가? 쿠데타는 이미
기정사실화돼 있는데?
장도영이 덧붙였다.
"박 장군도 익히 알다시피 작전지휘권은
유엔 사령관한테 있소. 그런데 매그루더
장군은 쿠데타에 대해서 한사코 반대가
아니겠소? 쿠데타는 절대로 안 된다는
거예요. 그러니......."
장도영은 <그러니> 하고 말하고는 잠시
숨을 돌렸다. 그리고 나서 다시 이었다.
"그러니 이번만은 민주당 정부에
충고하는 정도로 하고 병력을 철수시켜
주시오. 거사는 불문에 붙이도록 하겠소."
참으로 별난 쿠데타도 다 있었다.
쿠데타를 진압하겠다고 마음에 다짐을 준
장도영 역시 마찬가지였다. 오십보
백보라고나 할까? 쿠데타란 폭력으로
정권을 뒤집어 엎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지금 두 사람은 흥정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 박정희는 어째서 장도영한테
흥정을 걸었던가? 그것은 작전지휘권을
쥐고 있는 매그루더가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매그루더의 결심 여하에 따라
쿠데타는 성공할 수도 실패할 수도 있다는
것을 박정희는 익히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매그루더의 관여를 배제하자면 누구보다도
가장 친근한 사이인 장도영을 끌어들여야만
쿠데타는 성공할 수 있다고 계산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 쿠데타 진압을 결심하고 있는
장도영은 어째서 <민주당 정부에 충고>
또는 <거사 불문> 운운했던 것인가?
쿠데타가 실패한 경우 그 자신이
박정희와 나란히 군법 재판정에 서야
한다는 것을 장도영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는 이
쿠데타를 <없었던 일>로 해결하고자
궁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충고나
거사불문을 운운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이미 장도영의 마음을 읽고 있던
박정희는 좀 거칠게 말했다.
"각하, 젊은 장교들이 목숨을 걸고
일으킨 혁명입니다. 그런 젊은 장교들이
이쯤에서 물러날 성싶습니까? 더구나
불문에 붙인다고 하지만 그 말을 믿을
장도영도 언성을 높였다.
"쿠데타는 성공할 수 없다고 하잖았소?
여러 여건으로 보아서 쿠데타는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아는데 어찌 쿠데타를 지지할
수 있단 말이오? 그러니 박 장군, 여러 말
말고 젊은 장교들을 설득해서
원대복귀시키도록 하시오."
장도영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이번에는
박정희가 수그러지며 애원하듯이 말했다.
"각하, 저희들의 지도자가 돼 주십시오.
저희들은 각하를 모시고 기울어져 가는 이
나라를 재건하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못합니다."
장도영은 단호하게 한마디로 잘랐다.
박정희는 도저히 장도영을 설득할 수
없다고 단념했는지, 침통한 표정으로
그와 엇갈리듯이 이번에는 장면의
정치고문인 도널드 워태커가 총장실로
들어왔다. 이 도널드 워태커는 1945년 9월
8일 맥아더 휘하의 제24군단이 한국에
진주할 때 CIC 요원으로 들어왔다. 이때의
그의 계급은 육군 소령이었다. 그는 하지의
미군정 시절, 미군정의 정책과는 달리 좌익
소탕을 위해서 헌신했었다.
미군정하에서 이른바 <남조선
대한국민대표 민주의원(南朝鮮
大韓國民代表 民主議員)>이 개설된 것은
1946년 2월 14일, 이때 장면이 민주의원의
의원으로 피선되자 이때부터 워태커와
장면의 친교는 맺어졌던 것이다.
그는 대한민국 정부수립과 함께 일단
미국으로 물러갔다가 6.25 한국전쟁 때
것은 1952년이었다. 이미 예편해 있던 그는
UNKA 직원으로 한국에 나왔던 것이다. 이때
그는 한 한국 여성을 지독히도 사랑하게
되어 끝내는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 그가
바로 지금의 부인인 임수영(任秀英)이다.
워태커가 임수영을 알게 된 것은 그녀가
이화여대 법과 2학년 때였다. 워태커는
무척이나 임수영을 사랑했다. 그러나
이때만 해도 국제결혼을 사안시하고 있을
때였던 만큼 그녀는 무척이나 많은 고민을
했다. 그랬으나 결국엔 너무나 뜨거운
워태커의 사랑에 넘어가고 말았던 것이다.
워태커는 총장실로 들어서자
불문곡직하고 소리쳤다.
"장 총장, 속히 군을 동원해서 쿠데타를
진압하도록 하시오. 대한민국 육군
이것은 부끄러운 일이오. 만일 쿠데타를
진압하지 않는다면 미국의 대한 군사원조가
중단된다는 것은 장군도 익히 알고 있을 게
아니오?"
장도영이 워태커의 위세에 눌렸는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비서실장 김병삼을
향해 소리쳤다.
"즉시 참모부장 회의를 소집하라!"
참모부장 회의는 곧 열렸다. 그러나
참모부장 회의를 열어봐야 뭐 뾰족한
신통수도 없었다. 누구 한 사람 이 위급한
상황을 타개할 뾰족한 명안을 갖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편, 장도영이
참모부장 회의를 열고 있는 그 시각,
상황실로 돌아온 박정희는 제1군 사령관
이한림과 통화를 하고 있었다.
도와줘야겠소. 내가 왜 혁명을
일으켰는지는 이 장군도 잘 알고 있을 게
아니오?"
박정희의 쿠데타 요청에 이한림은 엉뚱한
말을 했다.
"방송은 나도 들었소. 혁명위원회에
장도영은 왜 참여시켰소?"
"거기에 대한 이유는 나중에 설명하기로
하고, 어쩌겠소 이 장군. 나를 도와주겠소,
못 도와주겠소?"
"혁명사령부를 이곳으로 옮기시오.
그러면 도와드릴 테니!"
"여보 이 장군, 동기생끼리 정말
이러기요?"
이한림과 박정희는 만주군관학교
동기생이었다. 나이는 박정희가 4살이나
"좋소. 그럼 마음대로 하시오."
박정희는 씹어뱉듯이 소리지르고는 쾅
하고 송수화기를 내던지는 것이었다.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박치옥이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이한림, 그 새끼가 말을 들어먹어야지!
개 같은 새끼!"
"그럼 체포해 버리죠?"
"그게 그리 쉬워야 말이지! 하여간에
이한림은 체포해야 돼!"
유진산(柳珍山)이 쿠데타 소식을 들은
것은 5월 16일 아침 6시, 일본의 옛 서울인
교토(京都)의 요시다(吉田)라는
산장호텔에서였다. 그가 교토로 온 것은
하루 전이었다.
16일 아침 하꼬네(箱根)로 떠나기 위해
짐을 챙기고 있는데 호텔 여종업원이
올라와 서울에서 국제전화가 걸려왔으니
받으라는 것이었다. 비서가 뛰어내려가
전화를 받고 올라왔다.
"쿠데타가 일어났다고 합니다."
"뭐 쿠데타?"
순간 유진산은 아찔한 현기증을 느꼈다.
"하꼬네행은 취소야. 동경으로
돌아가세."
그는 서둘러 짐을 챙겨가지고 정거장으로
향했다.
교토 역으로 나오자 유진산을 알아본
많은 일본 기자들이 그를 둘러쌌다.
"한국에서 쿠데타가 일어났다는데 선생의
소감 한 말씀만."
불러올 정도로 문란했다고 보십니까?"
"선생은 앞으로 거취를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기자들은 그들의 궁금증을 풀려고
한꺼번에 질문을 퍼부어댔으나 유진산은
그들의 질문에 대해서 한마디도 대꾸를
하지 못했다. 본국에서 벌어진 쿠데타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도쿄 역에 내리자 이번에도 또 신문
기자들이 몰려들어 그를 에워쌌다. 교토
역에서와 똑같은 질문이 되풀이됐지만 역시
그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말았다. 비통한
마음뿐, 할 말이 없었던 것이다.
도쿄 역에서 주일대표부(駐日代表部)로
직행을 했다. 모두가 넋 나간 사람들처럼
역시 정확한 정보를 입수해 놓고 있지를
못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도대체 쿠데타를 일으킨 자는 누구야?
앞으로 뭘 어떻게 하겠다는 것일까?)
유진산을 속이 탔다.
다음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들은 아침
7시에서 7시 30분 사이에 벌어진
상황들이었다. 각기 5분에서 30분까지의
차이를 두고 다음의 상황들은 벌어졌었다.
이 상황들은 물론 1군 휘하부대인
군단사령부, 또는 사단사령부 등에서
벌어졌던 상황들이다.
제1군 사령관 관저에서 긴급 소집되었던
제1군 휘하의 각급 지휘관들은 회의가
끝나자 서둘러 소속부대로 돌아갔다. 1군
1초라도 빨리 소속부대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해주기 위해 경비행기와 헬리콥터를
총동원해서 돌아가도록 조치해 주었다.
그것만으로도 이한림이 쿠데타에 분명하게
대응하려 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을
것이다.
서울 육군본부 상황실에서 박정희가
이한림에게 전화를 걸어왔을 때 군단장
최석은 그 자리에 있었다. 이때 이한림은
지휘관 회의를 주재하고 있었다.
아침 8시.
장도영이 육군본부 참모들을 거느리고
족의 앞날을 생각하면 가슴이
쑤셨다.
그들의 뒤를 따라 미 군사고문 단장인
하우즈도 따라 들어왔다.
장도영은 박정희에게 제의했다.
"박 장군, 우리 육군본부 일반 참모들과
혁명군측과의 합동회의를 열어 문제를
해결하도록 합시다."
"좋습니다."
박정희는 즉각 응낙했다. 회의는 곧
열렸다. 이 또한 세계 쿠데타 사상
보기드문 진풍경이었다. 아니 희극이라는
표현이 옳을지도 모른다. 쿠데타를 일으킨
자들과 그것을 반대하는 자들이 마주앉아
연 회의. 여기서 어떤 결론을 도출해낼 수
있다는 것일까?
이 자리에 참석한 쿠데타군의 면면은
다음과 같았다.
장경순, 김윤근, 유양수, 한웅진, 문중섭,
윤태일, 송찬호 등이었다.
대령으로는 오치성, 박치옥, 문재준,
유승원, 박창암, 이종태, 전두열, 김창파,
이원엽, 서봉희, 유원식, 방원철, 최재명,
한국찬, 이병엽, 김재춘, 정세웅, 홍종철
등이다.
중령급으로는 옥창호, 길재호, 신윤창,
이석제, 김종필(예비역), 김형욱, 조남철,
오정근, 구자춘, 박배근, 백태하, 윤필용,
김인화, 이형주, 정오경, 이지찬, 장수영,
김성룡, 강상욱, 김동환, 김제인, 정문순,
정치갑, 김재후, 박순권, 최홍순, 김원희,
이창희 등이었다.
그런데 여기 이름을 든 장성급이나
대령급, 또는 중령급 인물들 중에는
있었다. 그러니까 이들 인물들은 하루
아침에 쿠데타군으로 급조된 인물들이었던
것이다.
장도영이 거느린 일반 참모들은 열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는데 반해
쿠데타군측을 50여 명이나 되었다. 더구나
그들은 살기등등한 형편이었고 하여간에
양측이 마주앉은 가운데 회의는 열렸다.
장도영이 먼저 입을 열었다.
"오늘의 사태는 사전에 알지 못했소.
그러나 여러분이 나라 사랑하는 마음에서
궐기했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하오. 혁명을
일으켰다는 그것만으로 여러분의 뜻은
충분히 표시되었다고 보오. 그러니
여러분의 행동은 이 정도에서 그치는 것이
좋겠소."
"뭐가 어쩌구 어째?"
쿠데타군 쪽에서 분노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장도영은 그들의 분노를 말살하고 말을
이었다.
"그러니 이것으로 민주당 정부에
충고하는 것으로 하고 모두 철수해
주십시오. 이 사태는 내가 꼭 책임지고
불문에 붙이도록 하겠소."
"뭐요? 뭐가 어째?"
"우리를 어린애로 아는 거요? 우리가
부대를 철수했을 때 민주당 정부가 이
사실을 불문에 붙이리라 생각하십니까?"
"총장! 우리가 이 회의에 참석한 것은
유혈사태를 원치 않기 때문이라는 것을
모르시오?"
"우리는 물러설 곳이 없어요! 총장이
없단 말입니다."
여기저기에서 고함소리가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별자리들은 역시 장군이라는 체면
때문이었는지 위신을 지키고 있었고,
고함소리는 주로 대령과 중령들 사이에서
터져 나왔다.
박정희 역시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그는
지금 심각한 고뇌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장도영의 권고를 받아들이느냐 아니면 그냥
밀고 나가야 하느냐 해서.
장도영으로 볼 때에는 대령, 중령은
새까만 하급장교에 불과했다. 그러한 대령,
중령 등이 아우성을 치자 장도영은 적지
않게 자존심이 상했던 것 같다. 그는
한동안이나 그들을 무섭게 노려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생각하오. 치안유지에 만전도 기해야겠고
그러기 위해서는 윤 대통령이나 기타
정치인들하고 타협할 시간적 여유를
주시오."
그러자 벌떡 일어서서 권총으로 탁상을
쾅 내리치며 고함을 지르는 자가 있었다.
제6군단 포병단 대대장 백태하였다.
"우리는 지금 혁명을 하고 있어. 말을
듣지 않으면 쏴 버릴 테야. 지금에 와서
누구와 타협한단 말인가?"
백태하의 고함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쿠데타군측 테이블 뒤에 서 있던 소령
대위급 무리 쪽에서 찰칵찰칵 하고 권총의
안전장치를 푸는 소리가 들려왔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이 상황실에서 유혈사태가
벌어질 판국이었다.
번쩍 들더니 손으로 그들을 제지했다.
그리고는 무겁게 입을 열었다.
"각하, 각하께서는 치안유지를
걱정하시는데 치안유지를 위해서는 계엄
선포가 필요합니다. 총장께서 동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 문제는 내가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지 않소? 합법적인 수속을 하자면
대통령과 협의해서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박 장군은 모르시오?"
장도영은 계엄령 선포도 자기 권한이
아니라고 일축해 버렸다. 영관급들이 또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시간을 끌려는 지연작전이다!"
"쏴 죽여 버려!"
장성 중에 벌떡 일어서며 소리를 치는
"조용들 하시오!"
장경순이었다. 거구의 장경순이
조용하라고 일갈하자 잠시 조용해졌다.
좌중을 침묵시키고 난 그는 호통치듯이
말했다.
"혁명은 혁명이오, 혁명을 했는데
대통령이니 정치인이니 무슨 소용이란
말이오? 그대로 밀고 나가는 길밖에
없어요."
장도영은 도저히 이 자리에서는 그 어떤
결론도 내릴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박 장군, 나하고 단 둘이 얘기 좀
합시다."
그래서 곁에 앉아 있는 박정희에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박정희도 다라
일어섰다. 두 사람은 상황실 밖으로
그러자 문재준이 벌떡 일어서며
소리쳤다.
"야아! 총장이 박 장군을 납치해 간다!"
그는 이어서 명령했다.
"빨리 육본을 엄중 포위하라!"
포병단장의 명령에 대대장들인 신윤창,
구자춘이 급히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들의
손에는 어느 사이엔가 권총이 쥐어져
있었다.
두 사람이 밖으로 뛰쳐나간 뒤 백태하는
더는 참기 어려웠던 모양이었다. 들고 있던
권총을 천장을 향해 <탕! 탕! 탕!> 세 발을
쏘며 외쳐댔다.
"말을 듣지 않는 총장은 내가 쏴 죽여
버리고 말겠어."
백태하는 밖으로 뛰쳐나가려 했다.
사람이 허리를 껴안는 등 간신히
진정시켰다.
밖으로 뛰쳐나온 신윤창, 구자춘은
어찌했던가? 그들은 급히 육군본부를
경비하고 있는 제6군단 포병단 병사들을
불러 모았다.
"사격준비!"
명령 일하에 1개 중대 가량의 병사들이
사격준비를 갖추었다.
"하늘로 쏴!"
백여 명이 넘는 쿠데타군의 소총에서
뿜어내는 화약 터지는 소리가 육군본부의
연병장을 때렸다.
"쏴!"
"쏴!"
명령은 계속 떨어졌다. 쏘라는 명령이
쏘아댔다.
연발로 계속해서 쏘아대는 총소리에 용산
구민들은 기어이 유혈의 참극을 빚어내고야
말았구나 하며 가슴을 졸였었다.
나중에 밝혀진 일이지만 이날 이들이
허비한 탄환이 무려 1만 발이나 되었다.
국민의 혈세로 마련한 총알을 이런 식으로
허비해도 된단 말인가?
상황실 밀실에서 박정희와 얘기를 나누고
있던 장도영도 연병장에서 쏘아대는
총소리를 들었다. 그는 총소리가 자신을
겁주기 위해서 쏘아대는 총소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때 부관이 들어와 이한림에게 서울
육군본부에서 전화가 걸려왔다고 전갈했다.
이한림이 전화를 받기 위해 안으로 들어갈
때 최석도 뒤따라 들어갔다. 전화로
주고받는 말을 통해서 최석은 전화를 건
사람이 박정희라는 것을 직감했다.
그래서 이한림이 전화를 끊고 나자, 한
번 더 강조했다.
"당장 출동해야 합니다. 서울 외곽의
통로만 차단하면 쿠데타는 아주 가볍게
진압해 버릴 수가 있습니다."
최석은 쿠데타는 물론이고 박정희에
대해서 상당히 거부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이토록 집요하게 <즉시 출동>을
건의했는지도 모른다.
최석은 군단사령부로 돌아오자 예하
양찬우(楊燦宇), 김희준(金熙俊)과 그리고
참모장 육군 준장 이준성(李準晟)을 불러
서울 사태를 전해 주었다.
"군대의 반란은 절대로 용서할 수 없는
일이오."
그는 덧붙여 명령했다.
"나는 이 반란은 당연히 진압돼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소. 그러므로 참모장은 즉시
출동태세를 갖추도록 명하고 기갑부대는
군단사령부를 경비하라 하시오."
쿠데타가 하나의 반란행위임은 틀림이
없다. 그러나 쿠데타와 반란행위는 전혀 그
성격이 다르다. 최석은 박정희의 쿠데타를
반란행위로 규정했다. 쿠데타라는 낱말
대신에 반란이란 낱말을 쓴 지휘관은 오직
최석 한 사람뿐이었다.
막상 군단사령부로 돌아왔으나 심정이
착잡하기 이를 데 없었다. 쿠데타라는
사실이 도무지 현실 같지가 않았다. 그는
군단장실에서 서울의 상황을 알아보려고
육군본부에 전화를 걸려고 했으나 전화선은
이미 끊어져 있었다. 그는 하는 수 없이 미
군사고문단실로 가서 고문단실 전화를
이용하여 연합참모본부에 전화를 걸었다.
본부장 육군 소장 김점곤(金点坤)하고는
곧 연결이 되었다.
"임부택이올시다. 서울에서 쿠데타가
일어났다는데 도대체 서울의 상황이 어찌
돼 있습니까?"
"글쎄요. 쿠데타가 일어난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인데 나도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임부택은 이번에는 연합참모본부 총장
육군 소장 김종오(金鐘五)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한림 사령관으로부터 서울 외곽으로
출동할 수 있는 준비를 갖추어 놓고
있으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만, 서울의
상황을 모르니 도무지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지 김 장군의 의견을 들었으면
합니다."
"글쎄올시다. 나도 뭐라 하기가
어렵군요. 당신이 알아서 하는 게 좋을 것
같소."
이런 반응으로 보아 김점곤이나 김종오나
사태파악을 제대로 못하고 있었던 것만은
틀림없었던 것 같다.
그는 짜증이 일었다. 안타깝기만 했다.
생각 끝에 참모회의를 소집했다. 그는
서울의 소식과 사령관 이한림으로부터
수령한 명령 내용을 밝혔다.
"어떻게 했으면 좋겠소?"
참모들의 의견을 물어보았다.
이 질문에 대해서 참모들은 모두가
<지휘관의 명령에 따르겠다>는
대답뿐이었다.
여기에서 임부택은 자신의 판단에 따라
행동방침을 결정할 수밖에 없다고
작심했다. 그래서 육군 준장
김병길(金炳吉)을 불렀다.
"김 장군, 수고스럽겠지만 서울엘 좀
다녀와 주시오."
김병길을 서울로 밀파하고 난 임부택은
연합참모본부에 전화를 걸어서 정보제공을
부탁했다.
"여기는 일선지구라 서울의 상황이
캄캄하기만 하니 쿠데타군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알았으면 하오."
이 부탁을 받은 연합참모본부에서는
정보가 입수되는 대로 곧 알려주겠다는
대꾸였다.
제1군 휘하의 예비사단 사단장은 육군
준장 박영준(朴英俊)이었다. 그는
독립운동사상으로 너무나 유명한
남파(南坡) 박찬익(朴贊翊)의 아들이었다.
바로 이 예비사단이 폭동 또는 쿠데타 같은
위급한 사태가 벌어질 경우에 대처하기
위해 마련된 사단이었다.
이한림이 제공해 준 헬리콥터로 돌아왔다.
그도 출동준비를 갖추고 대기하라는 명령을
수행하고 있었다. 그도 사단본부로
돌아오자 즉시 참모회의부터 소집했다.
그런 다음 그도 역시 임부택이나
마찬가지로 서울의 쿠데타 소식을 전해
주고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고 물었다.
사단장의 그 질문에 대해서 참모들은
서로 눈치만 살피고 있을 뿐 성큼 의견을
개진하는 자가 없었다.
"쿠데타를 지지하는 것이 옳을 것
같습니다."
한참만에 포병단장 육군 대령
황종갑(黃鐘甲)이 의견을 말했다.
황종갑이 침묵을 깨고 쿠데타 지지발언을
하자, 이번에는 작전참모 육군 중령
역설하고 나섰다. 그랬으나 여타의
참모들은 여전히 침묵으로만 일관할
뿐이었다.
(쿠데타를 지지하는 사람은 겨우 두
사람밖에 안 되는 게 아닌가? 이 두 참모의
의견만 듣고 쿠데타를 지지하고 나설 수는
없다.)
박영준은 마음을 작정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는 사령관
이한림의 다음 명령을 기다리기로 했던
것이다.
한데, 이한림이 휘하부대에 출동준비
태세를 갖추라는 명령을 내린 사실이
누군가를 통해서 서울 육군본부의 쿠데타
지휘본부인 상황실로 급보되었다.
당초 이한림은 새벽에 관사에서 각급
중에 쿠데타에 가담해 있는 장성이
있으리라는 것은 전혀 예상치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군단장 박임항(朴林恒)이
바로 쿠데타에 가담해 있던 장성이었다.
뿐만 아니라, 이미 5월 15일인 전날 밤부터
1군 내의 중령급들이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조창대(曺昌大), 엄병길(嚴秉吉),
이종근(李鐘根) 등이 바로 그들이었다.
이들에게 주어진 과업은 <5월 16일 새벽
5시, 거사했다는 방송이 나오면 즉시
사령관 이한림에게로 달려가 쿠데타 지지를
설득한다. 만일 이한림이 쿠데타 지지를
거부하면 체포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과업을 지니고 대기상태에 있었던
것이다.
그렇듯 1군 내에 이미 쿠데타의 조직이
있었던 것이다.
서울의 박정희는 가만히 앉아서도
이한림의 일거수 일투족을 손바닥을
들여다보듯이 알고 있었을 것이라는 것은
새삼 되뇌일 필요도 없을 줄로 안다.
그보다도 이한림은 큰 실수를
저질렀었다. 그 실수란 다름이 아니었다.
새벽 4시에 참모차장 장창국의 전화를 받은
이한림이 그 즉시로 박임항이 묵고 있는
숙소로 전화를 걸었던 사실이다.
"박 장군, 서울에서 박정희 등이 반란을
일으켰다고 합니다. 빨리 부대로 돌아가
예하부대를 장악해 주시오."
그를 군단사령부로 돌려보냈던 것이다.
우리에 갇혀 있는 호랑이를 산으로
돌려보내면 어떤 결과가 되겠는가? 그를
군단사령부로 돌려 보내다니.
물론 이한림으로서야 박임항이 쿠데타
세력에 가담해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러한 조치를
취했을 것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일이다.
(하늘이 나를 살렸다.)
이한림의 전화를 받은 박임항은 도망치듯
군단사령부로 돌아갔던 것이다. 이래서
박임항만은 이날 아침 사령관 관사에 긴급
소집된 각급 지휘관 회의에 참석치 않았던
것이다.
아침 8시.
이 시간에 이르기까지 밀실에서 마주
얻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계엄령부터 선포해 놓고 보자.>
박정희는 한사코 강권했으나 장도영은
그것은 내 권한이 아니다. 대통령과 협의를
해서 결정할 문제다라고 앵무새 외듯 하며
논전을 거듭하고 있었다. 참으로 우습기
짝이 없는 논전이었다.
생각해 보라. 장도영은 이미 쿠데타를
진압하기로 굳게 마음에 다짐해 놓고 있지
않았는가 말이다. 그랬으면 <나는 쿠데타
그 자첼르 찬성할 수가 없다.
원대복귀하라> 하고 처음부터 주장을
고수했어야 옳았다. 그것을 장도영은
박정희가 계엄령부터 선포해 놓고 보잔다고
해서, <그건 내 권한이 아니다. 대통려과
협의해서 결정할 문제다> 하고 계엄령
태도부터가 벌써 장도영의 모순이 아닐 수
없다.
그러면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해도
좋다고 한다면 거기에 동조하겠다 그건가?
그렇다면 장도영은 쿠데타를 지지하기로
마음을 바꾼다는 얘기가 되는 게 아닌가.
장도영과의 담판에서 박정희는 손을 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장도영의 생각을
바꿔놓기 어렵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한 발 뒤로 물러섰다.
"좋습니다. 그러면 대통령을 만나서
문제를 해결하도록 합시아."
박정희는 상황실로 들어갔다.
쿠데타 지휘본부인 상황실로 들어오자
박정희는 급히 김종필을 불렀다.
"계엄문제에 대해서 장 장군이 도무지
언제까지나 합법적으로 계엄령을 선포할
때까지 기다리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구
허니, 임자가 방송국으로 가서 계엄령을
선포했다고 방송을 해버리게."
"알겠습니다. 일단 선포를 해놓고 나중에
대통령의 추인을 받아도 될 줄로 압니다."
김종필은 그렇게 말하고
최영택(崔英澤)과 함께 부리나케 바깥으로
나갔다.
해군 참모총장 중장 이성호(李成浩),
공군 참모총장 중장 김신(金信), 해병대
사령관 중장 이성은(李聖恩) 이 세 사람이
육군 참모총장실로 들어선 것이 바로
김종필과 최영택이 상황실을 막 나설
무렵이었다. 그들 세 사람이 이 시간에
함께 육군본부로 찾아온 것은 쿠데타의
해.공군 참모총장과 해병대 사령관이
육군 참모총장실에 나타났다는 보고를
받았는지 박정희가 몇 사람의 쿠데타
주체자들을 거느리고 다시 총장실로
들어섰다. 세 사람을 맞자 육군
참모총장실에서는 국군 수뇌회의가 열렸다.
먼저 박정희를 비롯한 쿠데타 주체자들이
왜 쿠데타를 단행했는가 하는 데 대한
명분론을 그럴싸하게 설명했다. 그 설명이
끝나자 박정희는,
"해군, 공군, 해병대 모두가 우리
육군하고 보조를 같이 해서 혁명을 지지해
주면 고맙겠소."
쿠데타를 지지해 줄 것을 호소했다.
박정희는 <우리 육군하고 보조를 같이
해서> 운운했지만 이 시간에 이르기까지
쿠데타를 지지하고 나선 육군 부대는 단
하나도 없었다.
세 사람은 대꾸가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들 세 사람은 박정희가 내세운
<쿠데타 명분론>을 귀담아 듣기는 했지만,
그것이 정당한 명분론이라고 동의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입을 다물고 있었던 것이다.
이날 아침 국군 수뇌회의에서는 어떤
문제가 논의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려져 있지 않다. 미루어 짐작컨데
쿠데타군측에서 집요하게 <혁명을 지지해
달라>고 간청을 하자 끝까지 침묵만을
지키고 있을 수 없게 된 세 사람이,
<육군에서 지지하면 우리도
지지하겠다>고만 했고, 이 한 문제만을
가지고 실랑이를 벌이다가 산회한 것이
"혁명을 지지해 주십시오!"
"육군에서 지지하면 우리도 지지하겠소."
"그러지 말고 지금 지지성명을
내주십시오."
"글쎄, 육군에서 지지성명을 내면 우리도
내겠단 말이오."
이렇게 다람쥐 쳇바퀴 도는 문답만을
되풀이했을 가능성이 크다.
아침 8시 30분.
이성호, 김신, 그리고 김성은 세 사람이
돌아가려고 육군 참모총장실을 나섰을
때였다. 쿠데타 주체자로 보이는 자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세 사람의 앞을
가로막았다.
"혁명 지지성명을 내주시오."
입수했는지 세 사람의 코 앞에 마이크를
들이대며 쿠데타 지지성명을 내달라고 아주
위압적으로 요구했다.
김신이 조용히 타이르듯 말했다.
"아직 육군도 지지성명을 내지 않지
않았소? 육군이 지지하면 우리들도
지지하기로 했으니 그리 아시오."
"안 됩니다. 지금 당장 지지성명을
내주십시오."
마이크를 들이댄 자는 지지성명을 내지
않으면 결코 이 자리에서 살아 돌아가지
못할 것이라는 몸가짐을 했다.
세 사람은 너무나 기가 막히다 못해
어이가 없는 모양이었다.
(원 이런 무례한 놈들을 봤나? 아무리
쿠데타를 일으켰다고 해서 이다지도 무례할
세 사람은 치미는 울화를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지만 무례한 놈들이라는
표정으로 둘러싼 무리들을 노려보았다.
하긴, 쿠데타를 일으키는 그 순간에 이미
위계질서는 무너져 버리고 말았었다. 그
따위 위계질서에 매여 있어 가지고는
쿠데타는 엄두도 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목숨을 내건 쿠데타 주체자들로서는
위계질서를 무시해 버릴 수밖에 없는
노릇이렀을지 모르지만 당하는
사람으로서는 적잖이 가슴이 아플 수밖에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자, 어서 혁명을 지지한다고 한 말씀만
해주십시오."
마이크를 들이댄 자의 눈에는 핏발이 서
있었다. 핏발만 서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세 사람 중 해병대 사령관 김성은은 정
참기가 어려웠던 모양이었다.
"야아 이놈들아, 나도 불알을 달고 있는
사내자식이야! 육군이 지지한다면 우리도
지지한다는데 무슨 잔말이 그리도 많아?"
복도 유리창이 쩌렁 울릴 정도의 큰
목소리로 호통을 쳤다.
별을 세 개나 단 장성의 호통이었다. 그
호통에 마이크를 들이댄 자는 조금
찔끔해지는 눈치 같았다. 그러나 그것도
한순간만의 얘기고 그 자는 계속했다.
"안 됩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말씀해
주고 나가십시오."
더욱 집요하게 달라붙는 것이었다.
정훈감실 차감인 육군 대령
원충연(元忠淵)이 놀란 표정을 하고
호통치는 소리를 들은 모양이었다.
"왜들 이러십니까? 자, 어서 가시지요."
원충연은 세 사람을 감싸듯이 하고
둘러서 있는 무리들을 헤치며 나가려 했다.
그대였다. 어느 한 장교가 달려나와
원충연의 귀에 대고 속삭이는 것이었다.
"대령님은 계단까지 가시지 마십시오."
"왜?"
"계단 아래에는 기관총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저 세 사람이 계단을 내려갈 때
양쪽에서 집중사격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뭐야?"
그 말을 들은 원충연은 하마터면 기절을
해버릴 뻔했다.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좀더 말씀을 나누다 가십시오!"
있다는 말을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좀더
말씀이나 나누다 가라고 했다. 그러한
원충연의 행동이 도리어 세 사람의 의심을
품게 해준 모양이었다.
"아니 지금 당장 돌아가야 한다."
그러면서 그들은 한사코 계단 쪽으로
걸어가는 것이었다.
원충연은 도무지 제정신이 아니었다.
"누구 좀 나와서 도와줘!"
그가 소리쳤다.
이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듣고 뛰쳐나온
사람이 바로 원충연의 동생인 육군 대령
원갑연(元甲淵)이었다.
"이 세 분을 어서 총장실로 모셔."
원충연은 동생을 보자 다시 한번
소리쳤다.
가로막아 섰다. 그리고는 몰이를 하듯이 세
사람을 총장실 쪽으로 몰고 갔다.
세 사람은 점잖은 체면에 항거도 못하고
끝내는 밀려서 다시 총장실로 들어갔다.
다시 총장실로 밀려 들어선 세 사람은 마치
연금을 당한 상태가 되어 한동안이나
시간을 까먹고 있어야만 했다.
그들 세 사람이 연금상태와 같은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장도영과
박정희 등이 청와대를 방문하기 위해
총장실을 나설 때 동행하면서였다.
그들 세 사람은 원충연 덕분에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나 있는지?
그러면 계단 밑에 기관총을 설치해 놓고,
<세 사람이 계단을 내려올 때 갈겨
버려라!> 하고 명령을 내렸던 자는 과연
아침 9시.
KBS의 라디오에서는 9시를 알리는 시보가
울리더니 곧 행진곡이 잠시 흘렀다.
그러다가 행진곡이 뚝 멎으며 귀에 익은
아나운서 강찬선(康贊宣)의 목소리가
전파를 타고 흘렀다.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군사혁명위원회는 오늘 오전 9시를
기하여 전국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했습니다.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군사혁명위원회령 제1호 비상계엄령
선포.
안녕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단기 4294년
5월 16일 9시 현재로 대한민국 전역에
긍하여 비상계엄을 선포한다.
4294년 5월 16일 군사혁명위원회 의장
육군 중장 장도영, 부의장 육군 소장
박정열
아마도 박정희의 한자 이름을 김종필이
흘려썼던 모양이었다. 강찬선은 박정희라로
읽어야 할 것을 박정열이라고 오독을 했다.
스튜디오 안에 들어간 강찬선이 주어진
원고를 정확하게 읽는지 감시하고 있던
최영택이 황급히 강찬선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박정희, 희, 희."
강찬선은 원고를 다시 한번 살펴보았다.
정정했다.
"실례했습니다. 부의장 육군 소장
박정희였습니다."
계엄령 선포를 알리고 난 강찬선은
이어서 <군사혁명위원회 포고 제1호>에
대한 원고를 읽어 내려갔다.
군사혁명위원회 포고 제1호.
군사혁명위원회는 위원회령 제1호로서
대한민국 전역에 긍하여 단기 4294년 5월
16일 오전 9시를 기하여 비상계엄을 선포
실시하였음.
본관은 계엄법에 정하는 바에 따라
국내질서의 유지와 치안확보상 필요한 한도
내에서 엄정하게 이를 운영할 것임. 국민
제위는 군을 신뢰하고 국가재건을 위한
다음 사항을 포고함.
1. 일체의 옥내.옥외 집회를 금한다(단,
종교단체는 제외한다)
2. 수하를 막론하고 국외 여행을 금한다.
3. 언론, 출판, 보도 등은 사전검열을
받는다. 이에 대해서는 치안확보상
유해로운 시사해설, 만화, 사설, 논설,
사진 등으로 본 혁명에 관련하여 선동,
왜곡, 과장 비판하는 내용을 공개하여서는
안 된다. 본 혁명에 관련된 일체 기사를
사전에 검열을 받아야 하며 외국통신의
전재도 이에 준한다.
4. 일체의 보복행위를 불허한다.
5. 수하를 막론하고 직장을 무단히
포기하거나 파괴, 태업을 금한다.
6. 유언비어의 날조 유포를 금한다.
다음날 아침 5시까지.
이상의 위반자 및 위법행위자는 법원의
영장 없이 체포, 구금하고 극형에 처한다.
참으로 무시무시한 제1호 포고령이었다.
이 포고령을 낭독하는 강찬선도 소름이
끼치는 모양이었다. 읽고 난 그의 안색이
마냥 창백하기만 했다.
그럴 것이었다. 위의 사항을 위반했을
때에는 극형에 처한단다. 뉘라서 제1호
포고령 방송을 듣고 소름이 끼치지
않았겠는가.
서울의 경우, 아마도 라디오를 갖고 있던
가정치고 이 방송을 듣지 않은 가정은 단
하나도 없었을 것이라고 믿어진다. 이미
서울 장안은 이때쯤에는 이원엽이
등 말할 수 없이 어수선해져 있었고
방송에서는 새벽 5시 혁명공약을 방송한
뒤로 그것을 되풀이해서 방송을 해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제1군 사령관 육군 중장 이한림은 휘하에
5개 군단을 거느리고 있었다. 제1군단장
육군 중장 임부택, 제2군단장 육군 중장
민기식, 제3군단장 육군 중장 최석,
제5군단장 육군 중장 박임항, 제6군단장
육군 소장 김응수.
사나이 마흔 살에 장군으로서 호령할 수
있는 군단을 5개 군단씩이나 거느리고
있다는 것은 대단한 긍지요, 자랑이라 할
수 있었다. 하기야 정일권(丁一權) 같은
사람은 나이 서른세 살에 육.해.공군
있었지만 그것은 건국이 일천한 데다가
김일성 괴뢰도당의 불법남침으로 말미암은
과도기 때의 얘기니까 비교할 것도 못
되겠지만.
아침 9시.
제1군 사령관 이한림은 휘하의 군단에
대해서 총점검을 해보았다. 어느 부대고
모두 완벽하게 출동태세를 갖추고 있는 것
같았다. 적어도 그는 그렇게 판단했다.
이때까지도 그는 아직 제5군단장 박임항이
쿠데타에 가담해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어쨌거나 출동태세를 총점검해 본
이상에는 그는 출동명령을 내리면
그뿐이었다. 야전군이란 물론 북괴의
도발에 대응하는 것이 주어진 임무요
이상에는 북괴군과 꼭같이 간주해서 대처할
의무가 있었다.
그런데 그는 흔들리고 있었던 것이다.
박정희의 전화를 받았다고 해서 흔들리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출동명령을 내릴 경우, 적지 않게 피를
흘리게 될 텐데 그렇게 동족간에 피를
흘리게 해도 되는 건가?)
그래서 흔들리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장면이나 윤보선이, <즉시 출동해서
반란군을 진압하라!> 하는 명령이 있었다면
싫든 좋든 그 명령에 따랐을 것이다.
그런데 아침 9시. 이 시간에 이르기가지
장면이나 윤보선한테서 출동하라는 명령이
없는 것이다.
이 명령이 없는 것이 그에게 출동명령을
<통수권자의 명령 없이 어떻게 출동을
명령할 수 있단 말인가?> 속된 말로 충분히
말이 되는 구실이었다.
만일 제1군 휘하의 어느 군단에서
출동명령을 내렸다가 그 군단의 작전지역에
구멍이 뚫렸다고 판단한 북한 괴뢰군이
6.25 때처럼 불시에 또 공격해 오지
않는다고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동족간에 피 흘릴 수 있는가?> 흔들리고
있던 이한림으로서는 통수권자의
출동명령이 없는 것이 천만다행이었는지도
모른다.
이미 앞에서 언급한 바 있지만 제2공화국
때에는 <통수권>이 대통령과 국무총리 어느
쪽에 귀속돼 있는지 명확하지가 않았다. 그
자기에게 있다고 해서 입씨름을 벌이기조차
했었지만, 이한림으로서는 대통령이든
국무총리든 어느 한쪽에서라도 출동명령을
내렸다면 그는 서슴지 않고 그 명령에
따랐을 것이다.
거듭 강조하거니와 동족간에 피를 흘릴
수는 없지 않느냐 해서 망설이고 있었던
이한림은, 대통령이나 국무총리의
출동명령이 없는 것을 기화로 해서
휘하부대에게 진압출동을 명령할 것을
보류해 놓고 있었던 것이다.
아침 9시 10분.
청와대 비서실장 이재항이 2층에 있는
이때의 시간이 9시 40분이었던 것으로
기록돼 있기도 하다.
"각하, 현석호 국방장관하고 삼군
참모총장, 해병대 사령관 그 밖에 쿠데타에
관련돼 있는 듯한 사람들이 각하를
뵙겠다고 찾아왔습니다."
이재항의 전갈에 윤보선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지금 뭐라고 했나? 현석호 국방장관이
삼군 참모총장들하고 같이 들어왔다구?"
"네, 각하."
"현석호 장관이 삼군 참모총장들하고
같이 들어왔다?"
윤보선은 이 사실을 어떻게 해석해야
좋을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어째서 감을 잡기가 어려웠느냐 하면
청와대에 전화를 걸었을 때 장도영이
뭐라고 했던가? <지금 반란이 일어나
진압작전을 펴고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랬던 그가 불과 한 시간 뒤에는 그
자신의 이름으로 <혁명공약>인가 하는 것을
방송하고 있었다.
그런 장도영의 둔갑을 보고 윤보선은
현석호 역시 쿠데타군 쪽으로 둔갑을 한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일었기 때문이었다.
사실은 이때 현석호가 삼군 참모총장들과
같이 청와대에 들어오게 됐던 것은,
장도영이 육군본부에서 청와대로 들어오는
도중에 서울 시청에 들러 현석호와 같이
들어왔던 것이다.
반도호텔에서 506방첩대로 향하다
무장군인들한테 체포당했던 현석호는 시청
시장실로 연행되어 연금당해 있었던
것이다.
윤보선은 이재항을 앞세우고 접견실로
내려왔다. 그는 접견실로 들어서면서
부지불식간에 중얼거렸다.
"올 것이 왔구먼."
올 것이 왔다니 뭐가 왔단 말인가?
그가 이때 부지불식간에 중얼거렸던 이
한마디는 뒷날 두고두고 말썽을
불러일으키게 되는 불씨가 된다.
접견실로 들어온 그는 의자에 앉으며 빙
둘러서 있는 면면들을 한 사람씩 유심히
살펴보았다. 장도영 옆에는 작달막한 키의
박정희가 서 있었으나 윤보선은 그가
누군지 처음에는 알아보지를 못했다. 처음
대하는 얼굴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누가 주모자요?"
그랬더니 키가 작달막한 인물이 거침없이
대꾸했다.
"접니다."
"그대도 장군이요?"
"그렇습니다. 육군 소장입니다."
"희생자는 없었소?"
"없었습니다."
"어째서 쿠데타를 일으켰소?"
"대통령 각하, 심려를 끼쳐드려 대단히
죄송합니다. 저희도 처자가 있는 몸으로
오직 국가와 민족을 위하는 애국일념에서
목숨을 걸고 이 혁명을 일으켰습니다.
서울은 혁명군 수중에 들어와 있고 계엄이
선포되었습니다."
박정희의 다음 말을 유원식이 냉큼
"각하, 계엄령을 승인해 주십시오."
"계엄령을 승인해 달라고?"
"네, 각하!"
윤보선은 한동안이나 우람한 체구의
유원식을 쏘아보았다.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대통령의 승인은 계엄을 선포하기 전에
있어야 하는 것이지 이미 선포한 계엄을
승인하라니 순서가 뒤바뀌지 않았소?"
"그야 물론 각하, 정상적일 때는
대통령의 승인을 얻은 다음에 계엄령을
선포하는 것이 순서인 것만은 틀림이
없습니다. 하지만 저희들은 혁명을 했단
말씀입니다. 혁명을 하는 마당에 순서 같은
것이 문제가 되겠습니까?"
"그렇다면 굳이 내 승인을 받으려 할
"따지고 보면 그렇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희들의 혁명 대상은 장면 정권이지
대통령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각하께서는
주어진 권한만 행사해 주시면 됩니다."
"이왕 계엄이 선포되었다 하니 그대들의
말이 법이요? 생사가 그대들 말 한마디로
결정될 것 아니오? 굳이 승인이니 뭐니 할
게 뭐가 있겠소?"
이치로 따지면 윤보선의 말이 옳았다.
쿠데타란 어김없는 폭력이었다. 폭력으로
정권을 뒤집어 엎으려는 마당에 굳이
선포해 놓은 계엄령의 추인을 받으려 할
필요는 없었다.
윤보선이 계엄령 추인을 해주지
못하겠다는 태도를 보이자 접견실 내에
갑자기 냉기가 감돌았다. 윤보선도 그
그는 늘어서 있는 면면들을 다시 한번
훑어보고는 말문을 열었다.
"그대들이 만일 애국하기 위해서 혁명을
했다면 애국하는 방향으로 일해야 하지
않겠소? 오늘의 사태에 대한 책임은 물론
우리 정치하는 사람들에게 있다고 나는
보고 있소.
민주당 정권이 무능했던 것도 사실이오.
사회가 하도 혼란스러우니까 결국은
그대들이 목숨을 걸고 거사하기까지
이르렀을 것이오. 필경 이런 일이
일어나고야 말리라고 나도 보고 있었소."
윤보선이 여기까지 말했을 때 현석호가
그의 말을 가로막았다. 그는 민주당 정권을
무능한 정권으로 매도하고 쿠데타를
찬양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는 말을 듣자
"군의 책임자로서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하지만 대통령께서 헌정을 문란케 한
행위를 찬양하는 듯한 말씀을 하셔서야
되겠습니까? 대통령께서는 헌정질서를
유지하는 각도에서 지금의 비상사태를 잘
수습해야 옳다고 봅니다."
그는, 더 이상 쿠데타를 지지하는 듯한
발언을 하지 못하도록 쐐기를 박아 놓고
이렇게 덧붙였다.
"그러나 합법적 절차에 의하지 않고는
정권 인수란 있을 수 없다고 봅니다."
현석호는 결코 쿠데타를 인정할 수
없다는 태도를 분명히 했다.
한 목숨 버릴 각오가 돼 있지 않고는
감히 쿠데타를 주도한 사람 앞에서는
도저히 뱉아낼 수 없는 말이었다.
험악해지는 것이었다.
(장도영이 이놈의 새끼, 현석호란 놈을
어째서 이 자리에 데려온 거야? 다된 밥에
재를 뿌리자는 수작이야 뭐야?)
험악해진 표정으로 옆에 서 있는
장도영을 매섭게 노려보는 폼으로 보아
박정희는 현석호보다는 장도영을 더
나무라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한데, 윤보선도 현석호의 말이 귀에
거슬린 모양이었다.
"나라를 구하는 길이 이 길밖에 더
있겠소?"
거칠게 대꾸했다.
"이 길밖에 없다니요?"
현석호도 지지 않고 되물었다. 그러면
쿠데타를 지지하겠다는 그 소리냐고 물었던
뜻밖이었다.
"그럼 군사혁명이 일어난 이 마당에 뭘
어떻게 하자는 말이오?"
윤보선은 쿠데타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 않느냐 하는 태도였다.
현석호는 더욱 울화가 치미는
모양이었다. 대들듯이 억양을 높였다.
"물론 우리가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정권을 유지하겠다는 것은 아닙니다. 허나,
민주당 정권은 합헌정부인 만큼 합법적
절차가 아니고는 정권을 넘길 수 없다는
기본 입장을 밝힌 것뿐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대통령께서도 우리가 군부에
의해 타도되어야 할 근원적 과오가 뭐란
말씀입니까?"
윤보선도 억양을 높였다.
그대들의 처사가 옳다고 보오? 거국내각을
제대로 한 것도 없고, 국민의 여망에 따라
정치를 해온 것도 없으니 일이 이렇게
벌어지게 된 게 아니오? 이번에는 단념하는
것이 좋을 것이외다."
윤보선은 끝내 참지 못하고 장면에 대한
묵은 감정을 이 자리에서 털어 놓고야 말
속셈인 것 같았다. 뒤에 구체적으로
소개하게 되겠지만 윤보선은 장면에게 수차
<거국내각을 조각하라> 권고했던 것이다.
그것을 장면이 거부하자 윤보선은
이때부터 장면 정권 타도를 구상하기까지
하고 있었던 것이다.
현석호는 윤보선의 지탄을 되받았다.
"대통령은 우리가 국민의 여망에 따라
정치를 하지 못했다고 하지만 우리가 무슨
있었습니까? 있었으면 있었다고 말씀해
보십시오!"
"내가 뭐라고 했어? 그렇게 싸우지
말라고 했는데도 내 말을 안 듣더니."
"그걸 말씀이라고 하십니까?
정쟁(政爭)이란 어느 나라에나 있는 것
아닙니까? 그 정쟁이 쿠데타의 이유가 될
수 있단 말씀입니까?"
윤보선은 그만 입을 다물고 말았다. 이
마당에 너희들이 잘했다 못했다 논쟁을
해봐야 속된 말로 스타일만 구길 뿐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그러자 현석호가 따지듯이 다시 이었다.
"이제 계엄령이 선포된 비상사태의
수습을 대통령께서 잘 처리하셔야 할
차례라고 생각합니다. 어디까지나
현석호가 <합헌적> 운운한 것은 물론
<네가 헌법을 지켜야 할 대통령으로서
탈권을 하려 드는 쿠데타를 지지해서야
되겠느냐?> 하는 간접적인 경고였음은 다시
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윤보선과 현석호의 논쟁을 듣고 있던
박정희는 윤보선의 속마음을 헤아렸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이제 저희들은 그만 물러가겠습니다,
각하."
거수경례를 붙이고는 앞장서 나가자
여타의 인물들은 윤보선과 더 나눌 얘기가
없었다. 장도영을 위시한 해.공군
참모총장들도 일제히 거수경례를 붙이더니
박정희의 뒤를 따르는 것이었다.
군사 쿠데타가 일어난 지 28년 만인 1989년
5월 16일자부터 [동아일보]에 <외로운
선택의 나날>이라는 제목으로 회고록을
집필한 바 있다. 이때 현석호와의 논쟁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기술해 놓고 있다.
......여기에서 짚고 넘어갈 대목이
있다. 현석호 국방장관이 삼군 재휘관들과
함께 들어왔을 때다. 내가 계엄령의 추인을
거부하고 난 직후, 현 장관은 그
경황중에서도 혁명이 벌어진 책임문제를
들고 나왔다.
사실 당시 현 장관에게 격한 어조로 말을
했던 것 같다. 당시 현 장관이 혁명군에게
체포된 상태에서 끌려왔다는 것을 알았다면
그렇게 격한 어조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감정이 격해진 데에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다.
5.16 군사 혁명이 일어나기 두 달 전의
어느 날 밤, 나는 장면 총리와 자정이
넘도록 시국문제를 논의했다. 당시
학생들의 데모가 연일 벌어졌다. 그로 인해
정치적, 사회적 불안심리는 고조되고
있었다.
나는 장 총리에게 어떤 비상대책이라도
세워 시국을 수습할 것을 권유했다. 장
총리는 눈을 감은 채 내 얘기를 듣기만
했다. 잠시 후 장 총리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표정이 창백했다. 불쾌하다는
표정이었다. 그리고는 한마디를 던지고
방을 나섰다.
"이승만 씨도 10년 집권을 했는데 어디
지금 생각해도 몹시 언짢은 밤이었다.
그로부터 얼마 후 현석호 국방장관을
청와대로 불렀다.
"데모가 아침 저녁으로 끊일 줄 모르고
일부 과격학생들은 남북회담을 하겠다고
하고 있소. 또 일부에서는 장 정권 파괴를
목표로 해서 음모를 꾸미는 모양이오. 무슨
비상대책을 세워야 하지 않겠소?"
그러나 현 장관은 여유만만했다.
"비유를 하겠습니다. 자동차가 언덕
위에서 고장이 나서 굴러 내려간다고
합시다. 굴러 내리는 중간에서는 어떻게
손을 쓸 수가 없습니다. 밑으로 완전히
내려가 요행히 서든지, 전복이 되든지 해야
그때 가서 대책을 세울 수 있지 않습니까?
도중에는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하던 현 장관을 5월 16일 아침 청와대에서
군인들과 함께 만났던 것이다.......
장도영도 84년 9월호 [신동아]에 기고한
<나는 역사의 죄인이다>라는 글에서 당시
상황을 이렇게 기술했다.
현 장관은 윤 대통령의 말이 불법행동에
대한 단호한 반대 표시로서는 불충분한
것으로 생각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이어
윤 대통령과 현 장관은 사태가 벌어지게 된
데 대한 민주당과 정부의 책임에 관해 서로
엇갈린 말을 주고받았다.
박정희 등이 접견실을 물러날 때 맨
마지막에 나간 사람은 유원식이었다.
때 의자에서 일어나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유 대령, 박 소장하고 단 둘이 좀 만날
수 없겠소?"
박정희와의 단독회담을 요구했다.
"알겠습니다. 박 장군을 곧 모시고
오겠습니다."
유원식은 일단 물러났다가 잠시 후
박정희와 함께 다시 들어왔다. 유원식은
윤보선 앞에 서자 거수경례를 붙이고 나서
이렇게 주워 섬기는 것이었다.
"각하, 우리들은 대통령 각하께 과거에도
충성을 다했고 지금도 그러합니다.
앞으로도 그 충성에는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이 말을 듣자 윤보선은 알아들었다는
듯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었다.
유원식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저희는 이 혁명을 인조반정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인조반정(仁祖反正)이라......? 그럴싸한
비유였다.
유원식이 말을 끝내자 박정희가 그 뒤를
이었다.
"각하, 각하께서 이 혁명을 지지하는
성명을 내주십시오."
윤보선은 혁명을 지지해 달라는 박정희의
요구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계엄령 선포는 잘한 것으로 알고
있소이다."
그 말을 듣자 박정희는 보일 듯 말 듯
빙긋 회심의 비소를 짓는 것이었다.
그러면 윤보선은 어째서 박정희와 단
둘이 만나기를 바랐던가? 그것은 말할 것도
때문이었다.
(쿠데타를 한 자들이 나를 어찌
처리하려고 하고 있는 것일까?)
그는 대통령직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박정희와 단
둘이 만나기를 요청했던 것인데, 다시
만나자 유원식이 박정희가 입을 열기도
전에 <각하, 우리들은 대통령 각하께
과거에도 충성을 다했고 지금도
그러합니다.> 어쩌고 하며 대통령 자리에
변동이 없을 것이라는 것을 분명히
해주지를 않았는가.
윤보선이 입이 헤에 하고 벌어졌을 것은
보나마나한 일이었다.
윤보선은 대통령 자리에 변동이 없다면
쿠데타 쪽에 협력을 하는 것이 현명한
그래서 조금 전에 계엄령 추인을
거부했던 처지라 당장에 뒤집어 엎기는
체통도 서지 않을 것 같고 해서, <계엄령
선포는 잘한 것으로 알고 있소이다> 했던
것이다.
이것을 뒤집으면 쿠데타를 지지하고
협력하겠다는 그 뜻이었던 것이다.
내각책임제하의 대통령직이란 상징적인
국가원수에 지나지 않는다. 대통령으로서의
예우는 받을 수 있어도 행사할 수 있는
권력은 주어져 있지 않다.
대통령이기 이전에 정치인은 윤보선이
대통령직에 미련을 갖고 박정희를 불러들여
흥정하는 듯한 언행을 한 것은 아무리 좋게
해석하려 해도 좋게 해석되어지지가
않는다.
청와대에서 윤보선이 박정희를 불러들여
밀담을 나누고 있는 그 시각.
서울시 경찰국장에는 출동부대의
지휘관들이 모였다. 해병여단장 해병 준장
김윤근을 위시해서 제6군단 포병단당 육군
대령 문재준, 그리고 공수단 단장 육군
대령 박치옥 등과 그들이 거느리고 있는
대대장급 지휘관들이었다.
"제관들을 이 자리에 소집한 이유는
다름이 아닙니다. 일단 정부 각 기관을
장악함으로써 혁명의 제1단계는 성공했다고
할 수 있으나 그러나 제1군이라든지 또 미
8군의 동태가 애매한 이상에는 수도
방위문제를 심각하게 검토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김윤근으로부터 회의 소집의 목적을 듣자
끄덕였다.
회의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수도방위사령부를 설치해야 한다는
김윤근의 주장에 이의를 제기하는 지휘관은
아무도 없었다. 수도방위사령부 설치문제가
이의 없이 통과되자 각급 지휘관들은
출동부대 중 제일 계급이 높은 김윤근을
사령관으로 추대했다.
이에 김윤근은 사령관 취임을 흔쾌히
승락하고 제6군단 포병단의 대대장인 육군
중령 신윤창을 수도방위사령부 참모장으로
임명했다. 수도방위사령부는 반혁명군의
출동에 대비해서 방어의 목적에서
임시적으로 설치됐던 것이나 쿠데타가
성공하자 그것이 기정사실화되어 뒤에
수도경비사령부로 개칭되었다.
9. 윤보선, 쿠데타를 지지하다
오전 10시.
제1군 사령관 육군 중장 이한림은
휘하부대의 출동태세를 점검한 뒤, 근
1시간 동안이나 번민에 거듭했다.
(출동명령을 내려서 쿠데타를 진압해야
하나? 아니다. 북한 괴뢰군의 재침입에
대비하고 있는 제1군이 통수권자의 명령
없이 진지를 이탈할 수야 없지 않느냐?)
그는 이 두 가지 문제를 놓고 어느 쪽을
택해야 좋을지 몰라 번민에 번민을
거듭하고 있었던 것이다.
새벽 5시 2분에 쿠데타가 방송됐으니만큼
있다고 봐야 했다. 그런 만큼 만일
휴전선에서 북한 괴뢰군하고 대치하고 있는
부대를 빼돌렸다가 북한 괴뢰군이 구멍
뚫린 곳이 어디라는 것을 알고 또다시
기습남침을 감행하는 날에는 쿠데타 진압이
문제가 아니었다.
그러고 보면 이한림이 고민하는 것도
당연하다 할 수 있었다.
1시간 동안이나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이한림은 한 통의 편지를 쓰고 난 다음
부관을 불렀다.
"귀관, 귀관은 즉시 사복으로 갈아입고
서울로 가서 이 편지를 장면 총리에게
전하라. 만일 장면 총리의 거처를 알 수
없거든 명동 성당으로 가서 노기남(盧基南)
주교를 찾거나 경향신문사로 가서
지금 막 쓴 편지를 건네주었다.
그는 장면에게 보내는 밀서에서, <제1군
사령부의 임무가 무엇인가?> 하는 것을
설명했다. 그러나 군의 지휘관은
통수권자의 명령에 절대 복종할 의무가
있으니만큼 국무총리 각하의 명령이 있기를
고대하고 있다고 했던 것이다.
당시의 이한림의 처지로 보아서는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나
말이다. 이한림이 처했던 처지를 이해는
하면서도 자꾸만 아쉬운 마음이 이는 것을
금할 길이 없다. 이 무렵 그에 대한 세평이
군인다운 군인이라는 칭송의 소리가 높아져
있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청와대를 물러나오자 장도영은 현석호를
주고 육군본부로 향하다가 도중에 생각을
고쳐먹고 미8군 사령부로 향했다.
매그루더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장도영이 사령관실로 들어서자
매그루더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제너럴 장, 나는 지금 합법적으로
수립된 장면 정권을 지지한다는 성명을
발표했소. 그와 함께 쿠데타군은 지체없이
원대복귀하라는 명령도 말했소. 내가
성명을 발표하자 마샬 그린 대리대사도
장면 정권을 지지한다는 성명을 발표했소.
아시겠소?"
유엔군 총사령관 겸 미8군 사령관인
매그루더의 성명이 발표된 것은 오전 10시
18분이었다. 한국방송인 KBS, MBC, TBC 3개
방송은 이미 쿠데타군에 의해 접수되었기
8군 소속의 방송과 일본 오끼나와에서
방송을 하고 있던 VUNC, 곧 유엔군
총사령부의 방송을 통해 방송되었다.
매그루더의 성명내용은 이러했다.
본관은 유엔군 총사령관의 자격으로
휘하의 모든 장병에게 장면 총리가 수반인
정당하게 인정된 한국 정부를 지지할 것을
요구한다. 본관은 한국군 삼군 총장들이
그들의 권위와 영향력을 행사해서 통치권이
즉각 정부당국에 이얗하고 군의 질서가
회복되도록 해줄 것을 기대한다.
또한 미국 대리대사 마샬 그린의
성명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한국 정부를 지지함에 있어 유엔군
총사령관이 취한 입장에 나는 전적으로
동조한다. 나는 지난 7월 한국 국민이
선출했으며, 지난 8월 총리 선출에 의해
구성된 한국의 합헌정부를 미국이 지지하고
있음을 강조하며 명백히 하고 싶다.
두 사람이 미 8군 방송과 유엔군
총사령부의 방송을 통해 이 성명을
발표하기에 앞서 의논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제너럴 장, 우리 두 사람의 성명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겠소? 그것은 곧 미국
정부는 장면 정권을 지지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거요."
매그루더는 덧붙이며 눈을 부라렸다.
단정했다.
(미국이 장면 정권을 지지하고 나선
이상에는 박정희의 쿠데타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미국 정부의 뜻이 어디 있는가를 확인한
장도영은 다시 육군본부로 돌아왔다.
참모총장실에 들어서니 박정희와 유원식
등이 이미 와서 그가 돌아오기만을
고대하고 있었다.
"각하, 속히 계엄사령관 취임을
승락하시고 계엄업무를 지휘감독해 주시기
바랍니다."
박정희의 요청이었다.
장도영은 지금 막 매그루더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이었으나 그렇다고 매그루더가
하던 말을 정직하게 전해 줄 수는 없었다.
<너희들의 쿠데타는 실패했어. 미국 정부는
장면 정권을 지지하고 나섰어> 했다가는
어디에서 총알이 날아와 배때기에
바람구멍을 낼는지 모르는 일이었다.
그래서 지연작전을 쓰기로 했다.
"계엄은 국무회의의 의결을 거쳐야
유효한데 지금의 실정으로서는 국무회의
의결을 거칠 방법이 없지 않소?"
그러자 유원식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고함을 질렀다.
"대통령이 이미 계엄령을 추인했거늘
국무회의는 뭐 말라 비틀어진 국무회의란
말이오?"
그와 함께 사방에서 장도영을 매도하는
욕설이 한꺼번에 날아들었다.
"또 지연작전이야, 또?"
"해치워 버려!"
욕설을 퍼붓는 자들은 물론
중령급들이었다.
길길이 날뛰는 그들을 이번에는 박정희가
제지했다.
"그럼, 어떻게 하시겠다는 겁니까?"
따지듯이 물었다.
"나도 모르겠소, 어떻게 해야 할지."
장도영은 이런 경우 어떻게 행동하고
처신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여기는 쿠데타 주체자들의
소굴이었으니까.
장면의 입인 공보비서관 송원영이 미8군
사령부에 전화를 건 것은 바로 이
무렵이었다.
새벽에 용산에 있는 친구로부터 쿠데타가
그는 단숨에 차를 몰아 반도호텔로
달려왔으나 그때는 이미 쿠데타군에 의해서
반도호텔이 장악된 뒤였다.
그는 그 시간 이후 인사동에 있는
삼양사의 김영태(金永泰)라는 자의 집에
은신해 있으면서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오전 10시가 조금 지나
매그루더와 그린의 성명방송을 듣자
소리쳤다.
"이젠 됐다."
한국군의 작전지휘권을 쥐고 있는
매그루더와 미 행정부를 대표한 주한 미국
대리대사 그린이 장면 정권을 지지하고
있는 이상에는 쿠데타는 실패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일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그는
이모저모로 생각을 더듬은 끝에 미국
대사관에 전화를 걸었다.
"나는 장면 총리의 공보비서요. 혹시 장
총리와 연락할 방법은 없겠습니까?"
그는 이 상황에서는 장면과 연락할 수
있는 길은 미대사관밖에 없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그러나 대사관의 대답은 신통치가
않았다. 자기들도 장면과 연락을 취하고
싶으나 도무지 어디로 은신했는지 소재를
파악하기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송원영은 이번에는 미8군 사령부에
전화를 걸었다. 그의 전화를 받은 사람은
매그루더의 부관이었다. 그 부관은
송원영의 전화를 꽤나 반겼다.
"당신이 장 총리 공보비서관이라면
대면하기를 요구하는 것이었다.
아마도 그쪽에서도 장면과 연결을 갖고
싶으나 소재를 몰라 애를 태우고 있는
모양이었다. 송원영은 다시 연락하겠다고
하고는 일단 전화를 끊었다.
오전 10시 30분경.
장도영과 박정희 등이 청와대를 다녀간
뒤, 윤보선은 마냥 거실을 서성대기만
했다. 산란해진 마음이 도무지 가라앉지를
않았기 때문이었다. (뭔가를 해야지,
이러고만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쿠데타 측에서는 쿠데타 대상은 장면
정권이라고 했지 대통령은 아니라고 했다.
또 대통령직에는 변동이 없을 것이라는
암시도 받았다. 그렇다며 이제 자신이
손을 대야 할지 도무지 엄두가 나지를
않았다.
매그루더와 마샬 그린의 성명이 윤보선의
머리를 혼란케 하는 원인이 되어준 것도
사실이었다. 쿠데타의 주동자인
박정희에게는 이미 쿠데타를 지지하는 듯한
암시를 해주었는데 매그루더와 마샬 그린이
장면 정권을 지지하고 나선 것이다.
특히 매그루더의 경우에는 한국군의
작전지휘권을 쥐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쿠데타 행동군이 아닌 여타의 한국군에게
<출동해서 쿠데타군을 분쇄하라> 하고
명령을 내릴 경우 한국군은 그의 명령에
따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렇게 되면
내전으로 확대될 것은 너무나 자명한
일이었다.
그는 비서에게 명했다. 이어서 그는
덧붙였다.
"그린 대리대사도 부르게."
그린을 부르라고 한 것은 한국의
쿠데타에 대해서 미 행정부에서 어떤
조치를 취하고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윤보선이 이렇게 두 사람을 부르라고
명한 것이 오전 10시 30분경이었다.
윤보선의 부름을 받은 매그루더와 그린이
접견실로 들어왔다.
두 사람은 윤보선과 대좌하자 매그루더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정부를 전복시키려는 쿠데타는 도저히
용납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반란행위는 당연히 진압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매그루더의 태도는 사뭇 결연했다.
"진압한다면 어떻게 진압한다는 거요?"
(이거 큰일났구나. 이러다간 동족간에
피를 흘리게 되는 게 아냐?)
윤보선은 속으로 반문했다.
"지금 서울 시내에 들어온 혁명군의
병력은 대략 3,600명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제1군 휘하 병력은 요지부동이구요. 대구
지방에서도 약간의 병력이 쿠데타에
참가했으나 현재 속속 원대로
복귀중입니다."
대구 지방에서 쿠데타에 참가한 병력이
매그루더의 착각이 아니었는지 모르겠다.
대구하고 하면 제2군 사령부가 있는
곳이다. 제2군에서 쿠데타에 가담해 있던
사람은 제2군 공병참모인 육군 대령
박기석(朴基錫)과 공병대 대장 육군 중령
장동운(張東雲)이었다.
5월 16일, 이날 KBS의 혁명공약 방송과
함께 행동을 개시한 장동운은 대구 시내에
있는 주요 관공서를 점령했으며 원대로
복귀하지는 않았었다.
하여간에 그건 어떻든, 매그루더의
얘기를 계속 들어보기로 하자.
"제1군 휘하의 병력 중에서 3,600명의
쿠데타군 병력의 10배인 36,000명만
동원하면 됩니다. 이 병력으로 서울을
포위하면 쿠데타군은 곧 항복할 것이고 이
매그루더의 얘기를 듣고 나자 윤보선은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장군, 일선 병력을 빼돌리잔
말씀인가요?"
"그렇습니다. 만약 항복하지 않을
경우에는 공격을 하면 사태진압은 빠른
시간 안에 이루어질 수가 있습니다."
윤보선은 이번에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가 어떤 반응을 나타내든
매그루더는 하고자 하는 얘기를 주저치
않고 다했다.
"대통령 각하, 그러나 지금 장면 총리의
행방이 묘연합니다. 행정부가 없는
셈입니다. 다른 국무위원들의 소재도 알
수가 없습니다. 국가 원수인 대통령 각하가
유일한 헌법기관입니다. 그러니 대통령
바랍니다."
결국 매그루더의 목적이 병력을
동원해서라도 쿠데타를 진압하려는 데
있다는 것이 분명해진 셈이다.
지금까지 매그루더의 말을 경청하고 있던
그린이 끼어들었다.
"대통령 각하, 각하는 국가원수로서
헌법을 지킬 의무와 책임이 있습니다.
헌법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쿠데타를
분쇄해야만 합니다."
윤보선의 가슴이 갑자기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두 사람의 말이 모두 옳다고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선뜻
<좋소, 그렇게 합시다> 할 수도 없었다.
그렇게 할 경우 휴전선이 걱정되었고
동족간에 유혈사태를 초래하게 될 결과가
"워싱턴의 동정은 어떻습니까?"
윤보선으로서는 무엇보다도 궁금한 것이
미국 행정부의 동정이었다. 그것을 확실히
알아야만 두 사람의 건의에 가타부타
결정을 내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워싱턴의 동정을 물었던 것인데 그린이
조금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대통령 각하, 지금 매그루더 장군이나
저는 미국 행정부의 의사를 대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옳은 말이었다. 미국 행정부를 대표해서
현지에 나와 있는 외교관이 본국 정부의
의사에 반한 행동을 할 리는 없는
일이었다. 윤보선은 더욱더 자신의 입장이
궁지에 빠지게 되었다는 것을 의식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괴뢰군이 휴전선 일대에 집결중이라는
보고를 받았는데 장군은 그 사실을 알고
있소?"
"예, 각하. 우리도 그 정보를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일선에서 병력을 빼돌렸다가
북괴군이 물밀듯 쳐들어오면 그땐 어떻게
하겠소? 그럴 경우 막을 준비는 다 돼
있소?"
"휴전선을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매그루더는 윤보선의 우려를 단 한마디로
부정했다.
사실, 휴전선에서 1,2개 사단을
빼돌렸다고 해서 우려할 필요는 없었다.
군사력에 있어 한국군보다 월등하게 우세한
북괴군이 쳐내려 올 생각이 있었다면 벌써
그들 북괴군은 미군이 두려웠던 것이다.
잠시도 쉴틈없이 적화통일의 야욕에 불타고
있는 북괴군은 쳐내려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으나 미군의 존재가 두려워 감히
모험을 저지르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윤보선은 이번에는 다른 구실을 또
내세웠다.
"장군, 우리 국군끼리의 유혈사태는
휴전선에 집결해 있는 공산군한테 이로운
일이 아닙니까? 그것은 곧 이적행위란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국군을 일선에서
빼돌린다는 것에 찬성할 수가 없습니다."
윤보선의 이 말에 매그루더와 그린은
어이가 없는 모양이었다. 헌법을 지켜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는 국가원수가 동족간의
유혈을 염려해서 책임을 회피하려 하다니?
반문을 하고 있었다.
윤보선이 다시 말을 이으며 매그루더의
의향을 타진했다.
"장군 생각대로 해야 한다면 차라리
미군을 동원해서 진압하는 것이 어떻겠소?"
그 말을 들은 매그루더는 더욱더
어이없어 하는 표정이 되었다.
"대통령 각하, 유엔군의 군사행동은
외적과의 대결이라면 몰라도 내전에는
원칙적으로 개입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나서 매그루더는 윤보선의
표정을 살피고 있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각하께서 한국군의 병력동원에
동의하시면 내 명령 없이 지역을 이탈한
부대의 복귀를 가능하게 해서 사태를
수습토록 하겠습니다. 각하께서는 시가전
걱정하시는 모양입니다만 3,4만 명의
병력이 서울 일원을 포위하고 공군을
동원해서 삐라를 뿌리며 원대복귀의 통로만
열어놓으면 3일에서 1주일 사이에 이렇다할
유혈사태 없이 진압할 수 있습니다."
매그루더가 이렇게까지 적극적으로
나오고 있는 이상에는 가부간 어떤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윤보선은
생각했다. 잠시 생각을 정리한 끝에
윤보선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 나라의 원수인 만큼 그
입장에서 국가의 중대사를 처리하지 않을
수 없소. 휴전선을 지척에 두고 적과
대치하고 있는 현실에서 불행한 사태가
벌어진다면 누가 책임지고 막아낼 수
있겠소?"
반응을 번갈아 살펴보았다.
그린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으나
매그루더의 표정에는 노여움이 부글부글
일고 있었다.
윤보선이 다시 말을 이었다.
"내가 무엇보다 이 국가의 안전과 국민의
안전을 고려해야 하는 지금 호헌만을
생각할 수는 없소. 호헌은 국토와 국가가
있는 다음에 생각할 문제라고 보는 것이오.
정부가 국민의 신망을 잃고 무질서와
혼란이 극도에 달한 이때에 유혈비극과
적의 남침을 방지할 확고한 대책이 없는 한
장군의 진압군 동원 승인 요청에 동의할
수는 없소."
이 말을 듣자 매그루더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는 짧게 한마디 던지고는 접견실
밖으로 나갔다.
이때가 정오 12시였다.
매그루더가 나가고 나자 그린은 자리에서
일어나 윤보선의 곁으로 다가갔다.
"대통령 각하, 오찬을 주신다면 좀더
남아서 말씀을 드릴까 합니다."
"그러시오. 식당으로 가십시다."
윤보선은 그린을 식당으로 안내했다.
점심식사가 준비되는 동안 마샬 그린은
어떻게 해서든 윤보선을 설득하려 들었다.
"각하, 이 쿠데타가 성공하게 되면
한국은 아마도 장기간 군사통치를 겪게 될
것입니다."
그는 미래에 대한 예언부터 했다. 실로
간담이 서늘해지지 않을 수 없는
승인을 거부한 윤보선은 장기간의 군사통치
운운하는 말에 그리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 같았다.
마샬 그린은 그러한 윤보선의 태도에
안타까운 듯이 한마디 더 덧붙였다.
"각하, 헌법 61조 1항에 뭐라고
했습니까? <대통령은 헌법과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군을 통수한다>라고 규정해
놓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각하께서는
이 헌법에 따라 통수권을 발동해서 헌법을
수호하도록 해야만 합니다. 각하께서
그렇게 하시는 것이 미국 정부의
의사하고도 합치된단 말씀입니다. 쿠데타는
절대 지지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마샬 그린이 아무리 <쿠데타
진압>을 역설해도 윤보선의 귀에는
"가앗댐!"
청와대를 물러나와 용산 미8군 사령부로
돌아온 매그루더는 연방 <가앗댐>을
연발하고 있었다. 윤보선에 대한 노여움이
도무지 풀리지 않아서였다.
자존심도 상했다. 그 자존심을 살리는
길은 한시바삐 장면을 찾아 통수권을
발동해서 쿠데타군을 진압하는 길뿐이라고
생각했다.
(도대체 장면 총리는 어디로 행방을 감춘
거야?)
혜화동 칼멜 수녀원에 숨어버린 장면이
매그루더가 그의 행방을 몰라 애를 태우고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매그루더에게 연락을 취했을 것이다.
수녀한테 부탁해서 라디오 한 대를 그의
방에 갖다 놓았다. 그랬기 때문에 그는
매그루더나 그린의 성명을 방송을 들어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미8군 사령부나
또는 미 대사관에 즉시 연락을 취할 법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는 연락을 취하지
않았다. 어째서였을까?
한동안 생각을 가다듬고 있던 매그루더는
인쇄돼 있는 <명령서> 용지를 꺼내
분주하게 만년필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정오 12시 20분.
<유엔군 사령부 예하 장병은 장면 총리가
지휘관들은 그들의 권한과 영향력을
구사하여 통치권이 즉각적으로 정부 당국에
돌아가도록 할 것을 기대한다.>
제1군 사령관 이한림이 이러한 내용의
매그루더 메시지를 받은 것이 정오 12시
20분이었다. 이 메시지는 미 고문단을 통해
전달받았다. 매그루더의 메시지와 함께
이한림은 또 한 통의 메시지를 전달받았다.
미국 대리대사 마샬 그린의 메시지였다.
<자유롭게 선출되고 합헌적으로 수립된
대한민국 정부를 지지하는 유엔군 사령관의
입장은 나의 입장과 전적으로 일치된다.
미국은 작년 7월 선거에서 한국 국민이
대통령을 선출하고 8월에는 국무총리를
지지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바이다.>
정오 12시 20분이라고 하면 마샬 그린은
청와대 식당에서 윤보선을 설득하느라 열을
올리고 있는 그 시간이다. 그렇다면
이한림에게 전달된 이 메시지는 누구에
의해서 미 고문단에 타전됐느냐 하는
의문이 생긴다. 추측컨대 아마도
매그루더가 오전 10시 18분에 방송으로
발표된 성명서를 조금 손질해서 타전한
것은 아닐는지? 지금으로서는 이것을
가려낼 방법이 없다.
이 두 개의 메시지를 전달받은 이한림은
지극히 만족스러웠다. 미국 정부가
합헌적으로 수립된 장면 정권을 지지하고
나섰다는 것이 기뻤고 평소 같은 천주교
않던 장면이 계속해서 정권을 담당할 수
있게 돼서 기뻤다.
그는 즉시 이 두 개의 메시지를 예하
전부대에 고지하도록 참모에게 명했다.
그런 다음 그는 생각을 모았다.
(매그루더의 메시지는 내가 작전명령을
하달할 수 있는 근거가 되는 것이 아닐까?)
원리원칙대로 따진다면 <출동해서
쿠데타군을 진압하라>는 명령이 아니기
때문에 작전명령을 내릴 수 있는 근거가 될
수는 없었다. 그러나 모든 통신수단이
단절돼 있는 지금의 상황을 감안할 때는
작전명령을 내릴 수 있는 근거가 될 수도
있었다.
(어떻게 한다?)
이한림은 또 한번 번민을 했다.
보냈으니 그 어떤 소식이 있을 때까지
기다려야 하나?)
번민에 번민을 거듭하던 이한림은 후자를
택하기로 했다. 밀사가 어떤 소식을 가져온
다음에 행동을 해도 늦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정오 12시 30분 같은 시각.
제1군 사령관 이한림이 밀파한 밀사가
소공동에 있는 경향신문사 사장실로 들어선
것이 바로 이 시간이었다. 이때,
경향신문사 사장실에는 사장 한창우를
위시해서 선우종원(鮮于宗源), 민의원
조연하(趙淵夏), 치안국 인사계장 총경
노영균(盧永均) 등 장면의 측근자들이 모여
백방으로 수소문하며 장면을 찾고 있던
한창우에게 밀서를 전해 주었던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장면의 행방을 몰라 애를
태우고 있던 한창우는 이한림의 밀서를
읽고 나자 더욱 애가 탔다.
(이 장군이 작전명령에 대한 총리의
서명만 해서 보내오면 즉시 출동을 하겠다
했는데 총리가 있어야 서명을 해서
보내든가 말든가 할 게 아니야?)
좀 저속한 표현이지만 조급증이 일
경우를 똥줄이 탄다고 할 때가 있다.
정말이지 한창우는 똥줄이 탔다.
"숨기는 왜 숨어? 뭐가 무서워서 숨는
거야? 숨더라도 우리한테는 연락이라도
해줘야 할 게 아닌가?"
한창우는 이젠 장면을 호되게 비평까지
했다.
동석했던 누군가가 소리쳤다.
"운전수는 알 게 아닙니까? 운전수를
잡아다가 족칩시다."
"그래, 이제는 도리 없어. 그놈의 자식을
잡아다가 족치기라도 해서 입을 열게
해야겠어."
한창우도 마침내 장면의 전속 운전사를
잡아다 족치는 데에 동의했다.
치안국 인사계장 노영균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가 가서 데려오겠습니다."
그는 이 한마디를 남겨 놓고 밖으로
나갔다.
노영균이 스스로 자청해서 나선 것은
그가 전속 운전사의 집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노영균이란 인물에
대해서는 미처 소개할 겨를이 없었지만
동시에 총리 경호대장으로 임명됐던
인물이었다. 그랬다가 그는 1961년 3월
치안국 인사계장으로 자리를 바꿔
앉았었다. 노영균은 이날 오전에도 장면의
전속 운전사의 집을 찾아간 일이 있었다.
"총리께서 어디에 은신하셨는가?"
노영균이 끈질기게 물었으나 전속
운전사는 그저 <모른다, 모른다>로만
일관했던 것이다.
오후 1시.
주한 미국 대리대사 마샬 그린은 그의
생애에 있어 가장 맛없는 점심을 먹었다.
청와대의 전속 요리사가 아무리 수준급
이상의 요리를 정성들여 내놓았다 하더라도
그의 입에는 쓴 약이나 마찬가지였을
어떻게 해서든 윤보선을 설득해서
호헌하도옥 하려 했던 그의 노력도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기 때문이었다.
점심식사가 끝나자 그린은 물러가고자
식탁에서 일어섰다. 윤보선은 그의 곁으로
다가가서 악수를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대통령으로서 호헌이 얼마나
중요하냐 하는 것을 잘 알고 있소. 그러나
국가가 있고서야 호헌도 할 수 있는 게
아니겠소?"
윤보선은 끝까지 자기의 견해가
정당하다는 것을 재인식시키려 들었던
것이다.
"각하, 각하의 오늘 이 결정에 따라
대한민국엔 군정이 수년간 계속될
것입니다."
네 배 꼴리는 대로 하라는 모멸적인
말이었다.
오후 1시 15분.
장도영이 이번에는 혼자서 청와대를
방문했다.
"어찌 또 들어왔소?"
윤보선이 물었다.
"각하, 군사혁명위원회에서 참모총장인
제가 계엄사령관직을 맡아야 한다고
야단입니다. 생각다 못해서 각하께 의논을
드리려고 찾아뵈었습니다."
생각 탓인지 장도영의 표정은 꽤나
번민스러운 것 같았다. 사실 그는 여태껏
쿠데타 주체자들인 <중령>들한테 시달릴
대로 시달리다가 청와대를 찾아왔던
"총장은 왜 아직도 태도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는가? 총장이 마냥 애매모호한
태도만 취하려 한다면 차라리 육군본부를
포격해 버리고 말겠소!"
되풀이 언급하게 되지만 군대에서 중령과
중장의 계급 차이는 하늘과 땅 만큼이나
까마득하다. 그런데도 쿠데타를 일으킨
중령들한테는 중장 따위의 계급은 안중에도
없었다.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육군
참모총장>으로서의 직책이었지 장도영이나
그의 계급은 아니었다.
장도영이 이렇게 시간을 끌며 계엄사령관
취임을 승락하지 않고 있었던 것은
매그루더와 그린이 장면 정부를 지지하는
성명을 냈기 때문이었다. 장면 정부
지지성명을 낸 이상에는 후속 조치가 있을
기미가 눈꼽만큼도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우유부단한 태도만을
취하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대통령 각하를 뵙고 나서 태도를 분명히
하겠다 하고는 청와대로 달려왔던 것이다.
"각하,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장도영이 재차 물었다.
윤보선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 사태를 수습하는 데 있어서는 그래도
장 총장이 적격이라고 생각하오. 일단
계엄사령관 직책을 수락하고 봅시다.
군사혁명을 일으킨 장본인들이
게엄사령관을 맡게 되면 사후 수습에
원활치 못한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일이니 말이오. 이런 점을 배려해서 우선
다급한 불길부터 잡도록 하시오. 장 총장이
윤보선의 말을 듣고 나자 장도영의
얼굴에서 금세 근심이 날아가고 환하게
화색이 감도는 것이었다. 쿠테타가 실패로
돌아가더라도 대통령 윤보선과 상의해서
계엄사령관직을 맡았던 것인 만큼 문제될
것은 없게 된다고 그는 속으로 셈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오후 1시 40분.
참의원 의장 백낙준(白樂濬)을 위시해서
[동아일보] 사장 최두선(崔斗善),
[조선일보] 회장 홍종인, [한국일보] 사장
장기영(張基榮) 등이 속속 청와대로 달려
들어왔다.
매그루더가 청와대를 물러나가자
윤보선은 비서실에 앞의 사람들을 불러오라
명해 놓았었다. 윤보선은 그들과 마주앉자
소개했다. 그런 다음 그는 네 사람의
의견을 물었다.
"내가 내린 결단에 대해서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백낙준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현 상황에서 대통령께서 취하신 조처는
잘하신 것 같습니다."
백낙준이 이렇게 말하자, 세 사람도
동감이라는 듯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동족끼리 피 흘리는 사태가 일어나선 안
될 것입니다."
이것은 홍종인의 의견이었다.
"문제는 야전군에서 어떻게 나올 것인지
그것이 걱정입니다."
야전군의 동정에 대해서 걱정을 하고
"대통령께서 서울의 군부 봉기상태는
대통령이 수습할 테니까 일선 장병들은
동요하지 말고 주어진 임무에 충실하라는
친서를 전달하면 어떠할는지요?"
이런 건의를 한 것은 최두선이었다.
윤보선은 초청 인사들이 모두 한결같이
그가 취한 조치를 잘했다고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자 지극히 만족했다.
오후 2시.
제1군 사령부 사령관실. 이한림이
참모회의를 소집한 것이 이 시간이었다.
서울로 보낸 밀사한테서 아무런 소식이
없자 그는 참모회의를 소집해서 참모들의
의견을 물었다.
"제관들, 군사 쿠데타에 우리
것인지 기탄없이 의견을 개진해 주기를
바라겠소. 우리 제1군은 여기에 어떻게
대처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오?"
"야전군의 동의 없는 군사혁명은 절대로
성공할 수 없습니다. 군사혁명위원회를
야전군 사령부로 옮겨 오지 않는 한 혁명을
지지해서는 안 됩니다."
"유혈사태만은 절대로 막아야 합니다.
유혈사태를 일으키게 되면 내란으로
확대되지 않는다고 장담하기도
어렵습니다."
"유혈방지에는 동의하지만 쿠데타는
지지할 수 없습니다."
참모회의의 대체적인 흐름은 쿠데타를
지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유혈을 방지해야 한다면서 쿠데타는
써야 한단 말인가? 바로 이것이 문제였다.
쿠데타를 분쇄하자면 어쩔 수 없이
진압군을 동원할 수밖에 없는데 유혈사태를
빚지 않고 과연 쿠데타군을 진압시킬 수가
있을까? 참모들의 의견을 듣고 나자
이한림이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일단 야전군의 태도 결정을 보류해
두겠소."
서울의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또 서울로 밀파한 밀사가 어떤 회신을
가지고 오는지 그 결과를 봐 가지고
이한림은 그 자신의 결단을 내릴 결심을
했다.
청와대를 물러나온 장도영은 다시 미8군
사령부로 매그루더를 찾아갔다.
"아무래도 쿠데타측의 요구대로 내가
계엄사령관직 취임을 승락해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 나는 쿠데타를 진압할 계획을 세워
놓고 있는데 제너럴 장이 계엄사령관직
취임을 승락해 가지고 뭘 어쩌겠다는
거요?"
매그루더는 다분히 힐난하는 말투였다.
"장군, 내가 끝까지 버티고 있다가는
육군본부 안에서 유혈사태가 벌어질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전제하고 그는 육군본부 안의
공기가 얼마나 험악한가를 대충 설명했다.
그런 다음 그의 이해를 촉구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이미 윤
대통령하고도 상의를 해서 그분의 동의를
얻었으니 장군께서도 양해해 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
매그루더는 한동안이나 말이 없다가
간신히 입을 열었다.
"쿠데타를 진압해야겠다는 내 결심은
확고하오. 그러니 그리 알고 장군 문제는
장군이 알아서 처신하시오."
오후 3시 30분.
경향신문사 사장실에서는 장면의
운전수에 대한 고문(?)이 벌써 1시간 30분
이상이나 계속되고 있었다.
"이놈아, 지금이 중대한 고비란 말이다.
우리가 장 총리의 은신처를 알아야
쿠데타를 진압할 수 있단 말이다. 그러니
노영균이 장면의 전속 운전수를이리
데려온 뒤부터 이 한 가지 사실을 알아내기
위해서 닥달을 했으나 장면의 충직스러운
이 운전수는 그저 <모릅니다> 이 한마디
대답뿐이었다.
참다 못한 한창우, 선우종원, 조연하는
체면불구하고 주먹을 날렸으나 전속
운전수는 코피가 터지고 눈두덩이에
주먹만한 혹을 달면서도 여전히 그저
<모릅니다>만 되풀이하고 있을 뿐이었다.
한창우는 닥달을 하다 그만 제풀에
지치고 말았다. 선우종원도 지쳤고
조연하도 지쳤다.
같은 시각.
을지로 입구에 있는 장면의 공보비서관인
박춘거(朴春拒)의 집. 인사동 김영태의
송원영이 박춘거의 집으로 찾아온 것이
조금 전이었다.
영어가 능통한 박춘거는 장면의 외국인
담당 공보비서였다. 그는 키가 훤칠하게 큰
데다가 눈이 움푹 들어가고 눈썹이 굵어
한국인이면서 꼭 서구인 인상을 풍기는
미남형이었다. 송원영이 박춘거를 찾아온
것은 그가 영어에 능통하기 때문에
매그루더와 연락을 취하기 위해서였다.
송원영은 박춘거를 대하자, 오전에 미8군
사령관과 통화를 했던 내용을 설명하고
그에게 다시 미8군 사령부에 전화를 걸도록
일렀다.
박춘거는 전화를 걸었다.
"지금 우리가 그곳으로 가겠는데
쿠데타군의 검문을 뚫고 용산의 사령부까지
갈 방법이 없다."
그랬더니 전화를 받은 부관이 묻는
것이었다.
"지금 당신들 위치가 어딥니까?"
"을지로 입구에 있습니다."
"그럼 이쪽에서 차를 보내겠습니다. 어떤
모습으로 어디서 대기하겠습니까?"
"곤색 싱글을 입고 흰 모자를 쓴
차림입니다. 저는 키가 6척입니다.
그만하면 알아보시겠습니까?"
"예, 좋습니다. 지금이 3시 30분이니까
4시 정각에 을지로 입구 남쪽가도에서
기다리십시오."
이렇게 해서 송원영과 박춘거는 미8군
사령부로 갈 수가 있었다. 한국인이
운전하는 덮개로 씌운 지프가 그들을
태우러 왔던 것이다.
매그루더의 옆에는 건장한 인상의 50대
대령이 배석하고 있었다.
두 사람을 대하자 매그루더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귀하가 대동한 통역을 쓰기를 원하면
그렇게 하시오. 나에게도 통역 장교가
있기는 하지만."
매그루더는 먼저 통역문제를 제기했다.
그때 마침 육군 중령 계급장을 단 해맑은
한국군 중령이 들어왔다. 뒤에 안 일이지만
이 한국군 육군 중령의 이름은
한상국(韓相國)이었다. 그가 바로
매그루더의 통역담당이었던 것이다.
한상국이 사령관실로 들어온 것을 보자
순간 송원영의 마음이 꺼림칙해졌다.
우리들이 찾아온 목적을 그가 알게 되면
때문이었다. 그래서 송원영은 이 자의
감정을 건드려 놓는 일을 삼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닙니다. 장군의 통역에게 수고를
부탁하겠습니다."
매그루더는 한시바삐 장면 총리를 만나야
한다고 누누이 강조했다. 그는 지금 서울에
진주한 반란군은 3,600명밖에 안 되며
우리는 실력으로 그들을 격퇴할 수 있다고
자신감을 피력했다.
"오늘 오전 윤 대통령을 만났더니 그는
유혈참극을 원치 않는다고 하는 게
아니겠소. 그리고 지금 장도영 장군이
쿠데타군 총사령관으로 되어 있지만 실은
그것도 사실이 아니오. 조금 전에도 나한테
다녀갔는데 그는 아직도 쿠데타를 인정치
있다면 이 사태는 쉽게 수습될 수가 있는
거요."
한시바삐 장면과 연락이 닿을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하는 것이었다.
매그루더의 말을 듣자 송원영의 가슴은
고동치기 시작했다. 매그루더가 쿠데타를
진압할 결심을 굳히고 있는 이상 쿠데타는
수포로 돌아가고 만다는 확신이 섰기
때문이었다.
"장 총리를 속히 찾아서 장군께 연락을
취하겠습니다."
송원영과 박춘거는 사령관실을 물러
나왔다.
오후 4시 30분.
청와대와 미8군 사령부를 방문하고
참모회의를 소집했다. 그는 윤보선과
주고받은 대화내용을 소개하고 쿠데타측에
가담할 것을 선언했다.
"지금의 위기상황을 슬기롭게 극복하는
길은 내가 계엄사령관직을 맡는 것만이
최선의 길이라 믿어져 계엄사령관직을
맡기로 했소."
그는 윤보선을 만나서 주고받은
대화내용에 대해서는 소개했으나
매그루더를 만난 사실에 대해서는
덮어버리고 말았다. 매그루더를 만나서
주고받은 대화내용을 소개했다가는
참모들이 동요하게 되리라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참모회의에서 자기의 태도를 밝히고 난
장도영은 박정희와 단 둘이 만나 역시
주고 말했다.
"혁명과업 수행을 위해서 계엄사령관직을
맡겠소."
"잘 생각하셨습니다."
박정희는 입으로 잘 생각했다고 반가운
듯이 말을 했으나 그의 표정은 <네가 이
직책을 맡지 않으면 어떻게 하겠단
말이냐?> 하고 조소하는 듯한 감정이 어려
있었다.
"그런데 말이오, 박 장군. 혁명을 한
이상에는 정권을 인수해야만 혁명정부를
출범시킬 수가 있을 텐데 박 장군한테 무슨
좋은 구상이라도 있소?"
장도영이 물었다.
"총장 각하께서도 익히 아시다시피 지금
장면 총리가 도피중에 있지 않소? 장면
인수할 수가 있겠소? 그러니 정권
인수문제는 총장 각하가 윤 대통령하고
상의해서 해결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러면 그 문제에 한해서 나한테 전권을
위임해 주겠소?"
"물론입니다."
"알겠소. 그러면 다시 청와대를 방문해서
대통령하고 상의하도록 하겠소."
장도영이 다시 청와대를 방문할 뜻을
비추자 박정희는 갑자기 생각이 났다는
듯이 말했다.
"총장 각하, 기왕에 청와대를
방문하시려거든 대통령께서 사태수습을
위해서 대 국민방송을 해달라고 요청해
주십시오."
"대 국민방송?"
하셨으니 그건 뭐 어려운 부탁도 아니지
않겠습니까?"
"알겠어요. 부탁해 보겠소."
장도영은 다시 또 청와대로 달려갔다.
이때가 오후 5시 반에서 6시 사이였다.
"어찌 또 들어왔소?"
장도영을 대하는 윤보선의 태도는 어딘가
좀 냉랭했다. 4시간 전쯤에 만났을
때하고는 그의 태도가 사뭇 달랐다.
"대통령 각하, 지금의 사태를 한시바삐
수습하자면 장명 총리를 위시한 전
각료들이 속히 나와주어야만 하겠습니다.
어떻게 그 사람들을 불러내 올 방법이
없겠습니까?"
"그건 옳은 말이오만, 겁을 먹고
숨어버린 사람들이 신변에 대한 보장도
"대통령 각하, 장면 박사나 내각의
각료들 신변안전에 대해서는 제가 책임을
지겠습니다. 절대 책임을 질 테니 안심하고
나오라 해주십시오."
장도영은 아주 자신만만하게 신변보장을
책임질 것을 강조했다.
"알겠소이다. 장 총장이 그들의
신변보장을 책임을 지겠다면 내 그들더러
속히 나와서 사태수습에 전력하라 권해
보겠소이다."
윤보선이 수락을 했다. 그러나 그 말투가
그리 자신이 있는 것 같지는 않은 느낌을
주었다.
같은 무렵.
장면 수색작전에 나서 있던 노영균이
조인호와 우연히 딱 마주쳤다.
"아니 조 경감 아니오?"
노영균이 조인호의 어깨를 툭 치자
뒤돌아본 조인호는 무척 당황하는
것이었다. 노영균은 그러한 조인호를 끌고
골목으로 들어갔다. 무척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노영균은 물었다.
"그렇지 않아도 지금 장 박사의 측근들이
장 박사를 찾느라 총동원이 돼 있소. 장
박사께서는 지금 어디에 은신해 계시오?"
"노 계장님, 저는 모릅니다."
조인호는 시침을 뚝 뗐다.
"몰라?"
"예, 모릅니다."
"아니 여보, 조 경감, 오늘 새벽에 조
경감이 모시고 반도호텔을 떠났다던데
노영균은 따지듯이 되물었다.
"장 박사님을 모시고 반도호텔을 떠난
것은 사실입니다만, 저는 도중에서 내렸기
때문에 어디로 가셔서 은신했는지
모릅니다."
"그게 사실이오?"
"예, 사실입니다. 제가 왜 노 계장님께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노영균이 다시 한번 따졌다.
"분명 모른단 말이지?"
"예, 모릅니다."
이런 경우를 두고 <운명>이라고 하는
것일까?
노영균이 조인호를 만난 5월 16일 오후
6시. 이 시간까지는 아직도 희망은 있었다.
그러므로 조인호가 장면의 은신처를
제자리로 수정해 놓을 충분한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그것을 조인호는 모른다고 딱 잡아뗐던
것이다. 곤두박질하려는 역사를 바로잡을
절호의 기회가 조인호의 고지식함으로 해서
또다시 그 기회가 잃어지고 말았던 것이다.
이날, 장면과 함께 칼멜수녀원에 은신해
있던 조인호는 혼자서 집을 지키고 있을
딸아이를 걱정했다. 조인호 자신이
고아로서 자랐기 때문에 그는 혈육에 대한
정이 남달랐다.
조인호가 하도 딸아이 때문에 근심에
싸여 있자 보다 못한 장면은 외출을
허락했다.
"그럼 잠시 집에 다녀오게. 집에
다녀오는 길에 정세도 좀 살펴보고
것일세."
그래서 혜화동에서 전차를 타고 을지로
4가에 와서 내렸던 참이었다. 그러면
조인호는 장면의 전임 경호대장인
노영균에게 어째서 장면의 은신처를 가르쳐
주지를 않았던가?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그것은 그의 고지식한 성품 때문이었다.
천주교 주교인 노기남의 보살핌으로
잔뼈가 굵은 조인호는 장면이 거두어
경호원으로 측근에 둠으로써 경감에까지
승진할 수가 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장면의
지시 없이 그 자신의 의사로 문제를 처리한
일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노영균을 만났을
때에도 장면에게 물어볼 수도 없는 일이고
해서 일단 <모른다>로 일관했을 것이다.
이것이 이미 정해진 <국가적 운명>이
슭틈構藉?어찌 이다지도 자꾸 일이 꼬일
수만 있었겠는가! 인간에게 운명이 있듯이
나라에도 운명이라는 게 있는 것이 아니냐
하는 생각이 자꾸 안개 퍼지듯 일기만
한다.
10. 곡! 제2공화국
밤 10시.
KBS에서는 대통령 윤보선의 특별담화가
방송되고 있었다.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우리나라는 지금 중대한 시국에 놓여
있습니다. 오늘의 사태를 우리가 어떻게
수습하느냐 하는 것에 우리나라의 운명이
달려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이 사태를
무사히 수습해야 하고 공산주의를 막는
힘에 약화를 초래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지금 전세계는 우리를 주시하고
냉정하게 이 나라의 일을 판단해야 하며
희생 없이 최선의 방법으로서 이 사태를
수습하는 데 우리의 성의와 노력을
다해야겠습니다.
나는 지금 이 중대한 사태에 처해서
혼란방지와 질서유지에 국민 여러분들이
특별히 노력해 주시기를 간절히 호소하는
바입니다. 더욱이 장 총리 이하 전
국무위원은 한시바삐 나와서 이 중대한
사태를 성의있게 합법적으로 처리하여
주기를 바랍니다. 군사혁명위원회의 말에
의하면 국무회의에 출석하는 모든
국무위원들의 신변은 보장된다고 합니다.
쿠데타가 일어났는데 일을 합법적으로
처리하라는 것이 무슨 소리였을까?
사령관한테 명령해서 쿠데타를 진압하는 일
외에는 달리 길이 없다. 정권이 호헌을
위해서 쿠데타 진압을 명령하는 것만이
합법적인 행위였기 때문이다.
윤보선의 특별담화 방송을 듣고 있던
장면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감정을
억제하기가 어려웠다.
(내가 뭘 잘못했어? 내가 뭘 잘못했기에
쿠데타를 당해야 한다는 거야?)
종일 이 한 가지 생각에 얽매여 번민을
해오고 있던 참이었다.
그런데 윤보선이 한시바삐 나와서
합법적으로 일을 처리하라는 것이다.
두말할 것도 없이 윤보선의 이 말은 <어서
나와서 쿠데타 쪽에 정권을 넘겨 주라>는
간접적인 권고 이외에 달리 해석할 수가
(내가 민주주의에 입각해서 정치를
해왔다는 것은 누구보다도 <해위>가 더 잘
알고 있을 터인데 쿠데타를 지지하는
방송을 해?)
장면의 속이 부글부글 끓을 만도 한
일이었다.
윤보선의 특별담화가 방송된 지 5분도 안
되어 청와대의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부흥부장관 주요한(朱耀翰)으로부터 걸려온
전화였다.
"사태수습을 위해서 청와대로 오라면
가겠으나 신변을 어떻게 보장한다는
것입니까?"
"계엄사령관 장도영 총장한테 직접
확약을 받았으니 안심하고 협력해 주시오."
윤보선은 대꾸했다.
없습니다. 장도영의 말을 누가 믿는단
말씀입니까?"
주요한은 비꼬듯이 반문했다.
이 말에 윤보선은 짜증을 부렸다.
"그럼, 이 판국에 뭘 어쩌겠다는 거요?
달리 수습할 방법이 없지 않소?"
"신변보장을 장도영한테 미루지 말고
각하께서 책임을 져 주십시오. 그러면
우리는 나가서 사태수습에
노력하겠습니다."
"내가?"
"그렇습니다. 대통령 각하!"
그리고는 전화가 뚝 끊겼다.
(목숨은 두려워할 줄 알면서 책임을 질
줄은 모르니 쿠데타를 당할 밖에.)
윤보선은 송수화기를 내려놓으면서 마치
냈다.
"김준하 비서를 들라고 해!"
윤보선은 주요한의 통화를 끝내자 비서관
김준하를 들라고 했다.
김준하가 들어오자 윤보선은 지시했다.
"야전군의 이한림 장군하고 각
군단장한테 보낼 친서를 준비하게."
제1군 사령관 이한림을 위시해서 각
군단장에게 보낼 친서를 마련하라는
윤보선의 지시를 받은 비서관
김준하(金準河)는 몇 사람의 동료들과 함께
끙끙거리며 밤을 새다시피 해서 친서
원고를 마련했다.
김준하는 윤보선이 침실에서 나오기를
기다렸다가 원고를 보여 주었다.
"잘됐군먼, 속히 서둘러 정서하도록
하게."
김준하는 원고가 잘됐다는 칭찬을 듣자
그것을 서둘러 정서했다.
그때, 미8군 사령관이 진압작전을 펼
모양 같다는 정보가 입수되었다. 진상은
어떠했던가?
5월 17일 오전 8시.
매그루더는 미8군 사령부 회의실에서
<야전군을 주측으로 한
서울진압작전회의>를 위한 참모회의를 연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매그루더는
<진압작전>을 위한 참모회의를 연 것은
제1군에 출동명령을 내린 것은 아니었다.
아마도 유일한 헌법기관으로 남아 있는
대통렬 윤보선이 진압작전을 반대하고 있는
데다가 장면의 요청이 없기 때문에
출동명령을 내리는 것만은 보류해 놓고
있었던 것 같다.
그 대신 이날 아침 미8군 사령부를
방문한 계엄사령관 장도영에게 매그루더는
명령했다.
"제너럴 장, 본관은 귀관에게 본관의
작전지휘권을 침해한 한국군의 처사에
대해서 강경하게 항의하는 동시에 유엔군
총사령관으로서 6군단 포병단과 해병여단의
원대복귀를 강력하게 명령하오."
어제까지만 해도 매그루더와 장도영의
우정은 남이 부러워할 정도로 짙었다.
갔다. 장도영에 대한 매그루더의 차거운
<명령>이 그것을 웅변으로 입증해 주고
있었다.
매그루더로부터 6군단 포병단과
해병여단의 원대복귀 명령을 수령한
장도영은 여간 입장이 난처하지가 않았다.
만일 이 명령에 복종치 않을 경우 분노한
매그루더는 군법회의에 회부할 것이라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육군본부로 돌아온 장도영은 이 문제를
박정희와 의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쩌면 좋겠소, 박 장군? 매그루더의
태도가 저토록 강경하니 만일 저 사람의
명령을 거부했다간 한.미군의 충돌로
발전할지도 모르겠으니 말이오?"
얘기를 듣고 난 박정희도 난처하기만
"혁명 거사군에게 원대복귀를 명령한다는
것은 우리더러 손을 들라는 얘기가
아닙니까? 상황은 아직도 유동적인데
거사군은 모조리 원대복귀시키게 되면
우리는 팔 다리를 잘리는 것과 무엇이
다릅니까?"
박정희는 매그루더의 명령에 따를 수
없다는 태도를 분명히 밝혔다.
"박 장군, 지금 이때에 매그루더와
감정적인 대립을 보이는 것은 우리한테
불리하면 불리하지 결코 이로운 것이 못 될
것 같소."
장도영은 어떻게 해서든 박정희를
설득하려 들었으나 그는 좀처럼 고개를
끄덕이려 하지 않았다.
청와대에는 참의원 의장 백낙준을
위시해서 윤보선의 초청을 받은 사람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민의원 부의장
이영준(李榮俊), 신민당 당수
김도연(金度演), 서울대학교 법과 대학생
신태환(申泰煥), 고려대학교 교수
남흥우(南興祐) 등이었다.
윤보선이 이들 몇 사람을 초지한 것은
야전군에 친서를 보내는 데 대한 의견을
묻기 위해서였다. 윤보선은 야전군에
친서를 보내는 문제에 대해서 그만큼
신중에 신중을 기했던 것이다.
왜냐하면 만일 매그루더가 어떤 방법을
쓰든 쿠데타를 진압해서 장면 정권을
그대로 유지시켜 놓을 경우, 야전군에
친서를 보내 진압부대의 출동을 저지하려
것은 너무나 뻔한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상황에 따라서는 윤보선의
행위에 법적인 제재가 가해지지 않는다고는
누구도 단언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동족간에 피를 흘리지 않기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야전군 사령관한테
<자제를 요청하는 친서>를 보내는 문제에
대해서 다른 의견을 내놓거나 잘못된
처사라고 비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모두가 한결같이 이 시점에서 대통령이
취하려는 조처는 가장 적절하고 옳은
처사올시다 하면서, 이구동성으로 찬성해
주는 것이었다. 윤보선은 거듭
만족스럽기만 했다. 만약에 있을지도 모를
대한민국의 불행을 혼자의 힘으로 막아내고
있다는 긍지도 있었다.
인사들이 돌아간 직후였다.
"장 장군, 지금 곧 야전군에 밀사를
보내려고 하니 장 장군이 그들이 무사히
사명을 완수할 수 있도록 편의를 제공해
주시오."
이 전화를 받은 장도영은 무척이나
기뻤다. 그는 박정희에게 그 말을 전했다.
"여보 박 장군, 대통령이 야전군에
밀사를 보내겠다고 알려왔소. 밀사의
삼여이 출동만류에 있는 것인즉, 매그루더
장군의 명령을 이행해도 되지 않겠소?"
박정희는 한동안이나 생각하는 눈치였다.
"그럼, 6군단 포병단만 원대복귀시키도록
합시다."
한참만에 그는 일부 병력의 철수에만
동의를 했다.
사령관들도 대통령의 지시에 따르지 않을
수 없을 게 아니오? 그러니 매그루더
장군의 명령대로 해병여단도
원대복귀시키도록 합시다."
"해병여단만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박정희는 해병여단의 원대복귀만은
동의하려 들지 않았다.
"하여간에 대통령께서 일선에 보낼
밀사가 무사히 사명을 완수할 수 있도록
편의제공을 요청하고 있으니, 이 문제를 박
장군이 알아서 조치해 주시오."
그리고 장도영은 밖으로 나갔다.
오후 2시.
두 대의 지프가 청와대 본관 앞으로
올라왔다. 야전군으로 떠날 밀사들을
군사혁명위원회에서 보낸 차량이었다.
밀사의 임무를 띠고 야전군으로 떠나도록
되어 있는 청와대 비서관은 김준하를
위시해서 김남(金楠), 윤성구(尹聖求),
홍금선(洪金善) 등 네 명이었다.
김준하와 김남을 1개조로 한 비서관들은
제1군 사령관 이한림과 그의 휘하의 군단장
민기식, 최석을 만나는 것이 주어진
사명이었고 윤성구, 홍금선 1개조로 한
비서관들을 박임항, 김응수, 임부택을
만나는 것이 주어진 사명이었다.
그들이 여의도에 도착해 보니 이미
그들을 태우고 야전군으로 날아갈 L-19기가
준비되어 있었다. 이 비행기에 오를 때 네
명의 비서관은 그들이 수행해야 할 사명이
얼마나 중대한가를 새삼스럽게 느끼는 것
오후 2시 같은 시각.
해병대 사령관 해병 중장 김성은이 미8군
사령부로 매그루더를 방문했다. 이미
쿠데타 지지로 돌아서 있던 김성은이
매그루더를 방문한 것은 미8군의 동태를
살피기 위해서였다.
김성은을 맞은 매그루더는 노여움부터
터뜨렸다.
"제너럴 김, 내 명령은 해병여단이
김포에 있도록 되어 있는데 서울 진입은
누구 명령이오? 귀관은 한국 해병대가
본관의 작전지휘권을 무시하고 독단적인
행동을 해도 좋다고 생각하시오?
해병여단을 즉시 원대복귀시키시오."
이 명령에 김성은은 매그루더의 감정을
목소리로 응대했다.
"장군, 쿠데타를 하는 사람들이 상관의
의향을 물어가면서 쿠데타를 하겠습니까?
그들은 이미 목숨을 걸고 쿠데타를 한
장병들입니다. 내가 명령한다고 따를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러면 해병사단을 동원하면 될 게
아니오? 해병사단을 동원해서 야전군과
함께 쿠데타군을 서울 외곽으로 내몰도록
하시오. 병력 수송은 우리가 책임지겠소."
그 말을 듣자 김성은은 그만 풀썩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장군, 해병사단을 끌어들여
쿠데타군으로 둔갑시키란 말씀입니까.
해병사단을 동원할 경우 쿠데타군에
합류하려 들지언정 동료 해병대를 문책하는
아십니까? 해병대는 단결을 가장 소중히
하고 있는 군대니 말씀입니다."
한데, 박정희가 해병대의 원대복귀엔
한사코 반대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장도영은 창경원에 주둔해 있는
해병여단 사령부로 찾아와 직접 윈대복귀할
것을 명령했다.
평상시라면 해병대가 육군 참모총장의
명령에 따를 필요는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장도영은 군사혁명위원회 의장에
계엄사령관이었다. 그의 명령에 따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또 순진하게
명령에 따를 수만도 없었다. 그래서 해병대
지휘관들은 숙의 끝에 명령에 따르는 체
흉내만 내기로 했다.
어떻게 했던가? 태반의 해병대 병사들은
동원한 해병대 수송차량 30대에 대당
6명씩의 병사를 태운 다음 포장을 늘리고
철수하는 척만 했던 것이다. 30대의 트럭에
대당 6명씩의 병사를 태워봐야 모두
180명이면 족했던 것이다.
5월 17일 저녁, 창경원 정문 앞에서
30대의 트럭이 열을 지어 김포로 향했다.
누가 봐도 어김없는 해병대의
철수작전이었다.
이렇게 일단 김포로 철수하는 척
장도영의 눈을 속여 180명만 철수시켰던
것이나, 이들은 5월 18일 새벽까지 각개
약진으로 180명 전원이 다시 창경원으로
돌아왔던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아직도
상황이 유동적이었던 5월 17일 오후
6시경의 일이고.
희극적인 쇼도 벌여야 했던 것이다.
5월 17일 오후 2시 40분경.
김준하, 김남 두 비서관이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은 제1군 사령부였다.
원주 비행장에 도착하자마자 두 사람은
제1군 사령부 안에 있는 미 고문단실로
안내되었다.
거기에는 이한림이 헌병참모를 거느리고
대기하고 있었다.
이한림은 두 사람이 자리를 잡고 앉자
거친 목소리로 물었다.
"쿠데타 지휘관들의 정체를 당신들은
알고 있소?"
알고 있느냐 하는 질문 같았다. 두 사람은
얼른 뭐라 대꾸할 말을 찾지 못했다. 이 두
사람은 우선 이한림의 위엄에 주눅이
들었던 것이다.
군복이란 어지간한 사람은 압도해 버리는
마력을 지니고 있다. 거기다 어깨에
번쩍거리는 별이라도 달고 있고 보면, 괜히
외경심이 일게 마련이다.
이한림은 우락부락하게 생긴 모습이
아니라 영화배우를 연상케 할 정도의
미남이었다. 그런데도 오랜 세월
지휘관으로서 갈고 닦은 위엄이 몸에 배어
있었던 탓인지 초대면의 보통사람들은 그의
몸에서 풍기는 위엄에 압도당하기가
일쑤였다.
이한림이 말을 이었다.
쿠데타는 당연히 진압돼야 하오. 그렇기는
하되 우리는 진압군을 출동시킨다 해도
유혈사태 없이 상황을 수습할 생각이오."
김준하는 간신이 입을 열었다.
"장군님, 여기 윤 대통령 각하의 친서를
휴대해 왔습니다. 각하께 전해드리라고
해서 가져왔습니다."
그러면서 김준하의 안주머니에서 친서를
꺼내 이한림 앞에 놓았다. 이한림은 그러한
김준하를 한번 날카롭게 쏘아보더니 편지를
집어 들어 알맹이를 꺼내 읽기 시작했다.
한동안 정적이 흘렀다. 이한림은 친서를
읽고 나서도 한동안 골똘히 생각에 잠기는
것이었다. 그렇게 정적이 흐르는 동안 두
사람의 가슴속은 조마조마하게 타들어
갔다. 이한림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를
이윽고 이한림이 입을 열었다.
"잘 알았소. 대통령 각하의 지시에
따르겠다 전해 주시오."
순간, 두 사람은 알게 모르게 휴우 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오후 3시.
한편 제1군 사령부를 방문한 윤보선의
밀사가 미 고문단실에서 이한림과 마주앉고
있는 그 시각.
군사혁명위원회는 삼군 참모총장 회의를
소집했다. 이것이 아마도 세번째의 삼군
참모총장 회의였을 것이다.
군사혁명위원회가 삼군 참모총장 회의를
소집한 것이 <군사혁명을 지지한다>는
그들의 공식적인 지지성명을 얻어내고자
해군 중장 이성호, 공군 중장 김신은
육군에서 쿠데타를 일으켜 놓고 오라가라
하는 데에 적잖이 자존심이 상했으나
그렇다고 <군사혁명위원회의 지시>를
무시할 수도 없었다.
더구나 육군측에서 해.공군 참모총장과
해병대 사령관을 살해해 버릴 계획까지
세워 놓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난
뒤로는, (이놈의 쿠데타 분쇄해 버려?)
하는 마음도 들었다.
그들이 쿠데타를 분쇄하자면 못할 것도
없었다. 해군은 그만두고라도 공군에서
전투기 몇 대만 띄워도 고작해야 제6군단
포병단과 해병여단의 탱크 몇 대를
거느리고 있는 쿠데타군쯤 눈 한번
깜짝하는 사이에 분쇄해 버릴 수가 있었다.
참혹할 것이냐 하는 것을 생각하면
감정대로 행동하기도 어려웠다.
김신이나 이성호는 군사혁명위원회에서
하라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삼군
참모총장과 해병대 사령관이 자리를 잡고
앉자 박정희가 그들의 앞에 나섰다.
"삼군 참모총장의 공개적인 지지성명이
늦어져 심각한 부작용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특히 지지성명을 직접 녹음
방송하는 일이 시급합니다. 이 자리에서
태도를 결정해 성명을 발표해 주십시오."
그는 요청했다.
그들 삼군 참모총장과 해병대 사령관이
회의장에 들어섰을 때. 쿠데타 주체자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그중 누군가가 소리쳤다.
"출동부대의 한 사람으로서 묻겠습니다.
우리의 혁명을 지지하는 겁니까, 아니면
반대하는 겁니까?"
이성호와 김신은 대꾸를 하지 않았다.
침묵을 지켰다. 그러자 장도영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여기 모인 삼군 총장은 모두가 혁명을
지지한다고 했잖았소. 그러니 지지냐
반대냐 하고 묻는 것은 의미가 없어요."
젊은 중령들을 달래듯이 말했다.
"그렇다면 녹음을 해주시오!"
누군가가 소리쳤다.
한데, 이런 친구들을 뫘나. 그들은
녹음기를 준비해 놓고 있지도 않았던
것이다.
"어서 빨리 가서 녹음기를 가져와!"
누군가가 또 소리쳤다.
황급히 밖으로 뛰어나갔다.
(망할 놈의 자식들, 너희놈들이 강제로
우리한테 지지성명을 얻어내려 해?
그런다고 우리가 너희놈들 강요에 못 이겨
움직일 것 같냐?)
이성호의 얼굴에는 어느 사이엔가 분노가
역력히 어려 있었다. 그는 젊은 중령들의
말투, 행동에 적잖이 분개했던 것이다.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는
아무 말없이 조용히 걸어나갔다. 누구도
그의 앞을 가로막지 못했다.
이성호가 일어나 나가자, 잠시 뒤 김신도
조용히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그가 돌아갈
때에도 누구도 <안 된다>고 그의 앞을
가로막지는 못했다.
이성호와 김신, 이 두 사람은 5월 17일
전혀 없었던 것이다.
<쿠데타는 민주주의의 적이다>라는 데
대해서 두 사람의 신념은 일치돼 있었던
것이다.
육군본부 쿠데타 지휘본부에서 앞서와
같은 해프닝이 벌어지고 있을 때, 제1군
사령부 미 고문단실에서 이한림을 만나고
난 대통령 밀사 김준하과 김남은, 헬리콥터
편을 이용 제1군단으로 군단장 민기식을
찾아갔다. 군단장실로 안내된 두 사람이
민기식과 수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자
민기식이 먼저 입을 열었다.
"장면 정권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오.
그렇다고 쿠데타를 일으키는 것이 과연
옳은 처사라 할 수 있을는지......."
것을 듣자 속으로 (이거 야단났구나) 하고
걱정을 했다. 군단장인 민기식이
쿠데타에는 반대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김준하는 민기식이 어떤 행동을 취할
것인가를 점쳐 보았다. 이한림의
출동명령이 있으면 지체없이 출동할
것이라는 판단이 섰다. 그래서 얼른 친서를
꺼내 건네 주려는데 야전복 차림의 철모에
별을 하나 단 장군이 노크도 없이
들어왔다. 그는 민기식 휘하의 사단장인
박춘식(朴春植)이었다.
그는 마치 상급자인 민기식에게 대들듯이
단호하게 말하는 것이었다.
"저는 누가 뭐라고 해도 장면 박사
군단장께서는 군의 거사를 지지해야 할
줄로 압니다."
박춘식의 이 한마디로 방안 공기가
갑자기 싸늘하게 식어졌다.
김준하는 친서를 내놓는 것뿐이라는
생각이 들자 얼른 안주머니에서 친서를
꺼내 민기식의 앞에 놓았다.
"장군께 드리라고 대통령 각하께서 보낸
친섭니다."
민기식은 친서를 찬찬이 읽고 나자,
"잘 알겠소. 대통령 각하께 각하의 뜻에
따르겠다 하더라고 전해 주시오."
아주 조용히 의사표시를 하는 것이었다.
김준하는 속으로 (아주 조용한 분이군)
하고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민기식에 이어 두 사람이 찾아간
두 사람을 맞은 최석은 대통령 친서를
읽고 나자, 그 부리부리한 두 눈을 굴리며
호통치듯이 말했다.
"반란은 진압돼야 하오."
"하지만 장군, 대통령 각하께서는
동족간에 피흘리는 것을 염려하신 나머지
저희들을 장군께......."
"아니 잠깐!"
최석은 김준하의 말을 끝까지 들으려
하지 않았다. <아니 잠깐> 하고 말을
가로막고 도도히 자기 주장을 폈다.
"우리 대한민국 육군사에 쿠데타라는
나쁜 선례를 남기는 것은 용서할 수가
없어요. 그러므로 쿠데타는 당연히
진압돼야 하오."
다시 또 그 부리부리한 눈알을 굴려 두
"대통령 각하께서는 동족간에 피를
흘리게 되는 것을 염려하고 계시지만, 그런
염려를 하실 필요는 조금도 없어요."
단숨에 엮고난 다음, 한번 숨을 몰아쉬고
나서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피를 흘리지 않고
쿠데타를 분쇄하느냐? 의정부, 불광동,
한강 등에 야전군 부대를 출동시켜 서울
일원을 봉쇄한단 말이오. 일주일 또는
열흘만 봉쇄해 놓고 있어 보시오. 서울
시내의 반란군은 자연 궤멸되고 만단
말이오. 아시겠소? 그런데 유혈은 무슨
놈의 유혈?"
최석은 아주 자신만만했다.
그는 여기까지 말하고 두 사람의 반응을
살폈다. 그렇다고 밀서를 전달하는
뭐라 반응을 보이겠는가. 어쩔 수 없이
침묵만 지키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두 사람이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자
최석이 다시 말을 이었다.
"육군의 명예를 더럽힌 쿠데타는 일단
제압하고 나서 그 뒤에 쿠데타군들이
뜻했던 바를 논해야 하는 거요. 대통령
각하께 우리의 입장을 그대로 보고해
주시오."
한편 박임항과 임부택을 찾아가 전달한
윤보선의 밀서에 대한 두 군단장의 반응은
어떠했던가?
"우리는 설혹 누가 쿠데타를 진압하러
서둘러 출동하라고 명령을 해도 그 명령에
따르지 않을 것이오."
오후 4시라는 이 시간은 확실치가 않다.
다만 관계자들의 기억을 근거로 해서
얘기를 진행시켜 나가기로 한다.
장면의 전속 운전수가 비로소 입을
열었다.
"총리 각하께서는 칼멜수녀원에 은신해
있습니다."
장면의 은신처를 실토했던 것이다.
한창우는 그 즉시로 칼멜수녀원으로
달려가 장면을 만났다. 반가움보다도
울분이 앞섰다.
"이게 무슨 꼴입니까? 숨어 계실 데가
여기밖에 없더란 말씀입니까?"
한창우는 소리를 질렀다.
장면은 대꾸가 없었다. 그저 침통한
표정만 짓고 있을 뿐이었다.
저희들한테 연락이라도 취해 주셨으면
정권이 무너지는 비극은 막을 수 있었을 게
아닙니까?"
한창우는 장면을 계속 질책했다.
그는 생각하면 할수록 통분했던 것이다.
어제는 그만두고라도 오늘 오전중에만
은신처를 알려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있었다. 그러기만 했어도 정권유지는
무난했을 것 같았다. 그런 아쉬움이 짙었기
때문에 한창우는 체면불구하고 장면을
몰아세웠던 것이다.
장면은 한창우의 아우성을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 그러다가 한창우가 분한 나머지
울음을 터뜨리자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게 천주님의 뜻인지도 모르지. 이게
맹세하거니와 나는 쿠데타를 당해야 할
만큼 잘못을 저지른 일이 없네. 내가 뭘
잘못했다는 말인가? 내게 잘못이 있었다면
민주주의대로 할려고 한 잘못밖에 더
있겠나?"
오후 7시.
이 시간에 이르기까지 김종필과 줄곧
행동을 같이하고 있던 최영택은 문득
쿠데타 출동병사들의 사기를 북돋워 주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쿠데타가 벌어진 지 40시간이 넘도록
아직도 쿠데타가 확고하게 굳혀지지를
못하고 있자 출동부대의 사병들 사이에서
은연중 동요가 일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상황실 한켠 구석에서 생각에 잠겨
것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김종필에게 다가가
그의 귀에 대고 나직이 속삭였다.
"김 형, 출동부대 병사들의 사기를 좀
북돋워 줘야 할 것 같소."
김종필이 번쩍 눈을 떴다.
"최 형, 지금 뭐라고 했소?"
최영택이 경어를 쓴 탓이었을까?
김종필도 경어로 반문했다.
최영택이 김종필에게 경어를 쓰기 시작한
것이 바로 이 순간부터였다. 김종필이
쿠데타의 실질적인 제2인자인 이상에는
가장 가까운 사이인 자신부터 깍듯한
예우를 해야만 여타 동료들도 그 예우에
따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최영택은 되풀이했다.
"내가 보기엔 출동부대 병사들의 사기가
같습니다. 그러니 병사들의 사기를 북돋워
줄 필요가 있을 것 같단 말씀입니다."
"어떻게 해야 병사들의 사기를 진작시킬
수가 있겠소?"
"혁명군 완장을 만들어서 차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혁명군 완장?"
"혁명군 완장을 만들어서 차게 해주면
나는 다른 병사들하고는 다르다는 긍지가
일게 될 것이 아니겠습니까? 긍지가 일게
되면 사기가 충천해질 것은 말할 것도 없을
것이고......."
김종필은 무릎을 탁 쳤다.
"갑시다, 최 형!"
김종필은 옳다는 판단이 서면 말보다는
행동이 앞섰다. 그는 벌떡 일어나기가
있었다.
두 사람이 지프를 세운 곳은 을지로
2가에 있는 조그마한 깃발 제조업체였다.
"이 밤 안으로 완장 7천 장만 만들어
주시오."
최영택의 주문에 주인은 눈이
휘둥그래졌다.
"7천 장은 고사하고 7백 장 만들기도
어렵습니다."
주인의 대꾸였다.
깃발 제조업체라는 것이 거의가 재봉틀
한두 대 놓고 영업을 하는
영세업체들이었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통행금지시간이 저녁 7시라 어느 업체를
막론하고 재봉공을 일찍 시간을 당겨
귀가시키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을 다시
일이었기 때문에 주인이 난색을 표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이에 최영택은 손수 지프의 핸들을 잡고
여공을 데려온다, 시장에 가서 닫힌 문을
두드려 광목을 끊어 온다 하면서
한동안이나 법석을 떨어야만 했다.
여공들이 광목을 잘라 완장을 만들고
있는 사이에 최영택은 또 도장공집을
수소문해서 도장공을 데려다가
<군사혁명위원회>라는 도장을 새기도록
했다. 그것을 완장에 찍기 위해서였다.
이런 법석을 떨면서 18일 새벽 5시가지
겨우 4천 장의 완장을 만들어 그것을
가져다 출동부대 병사들에게 하나씩 나누어
주어 차게 했다.
하얀 바탕에 하늘색으로 <혁명군>이라
시뻘건 도장이 찍혀진 완장을 찬 출동부대
병사들의 사기가 금방 치솟아 오른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윤보선의 밀서에 대한 이한림과 그의
휘하 군단장들의 반응은 지체없이
군사혁명위원회의 박정희에게 전달되었다.
최석 이외에는 모두 대통령의 지시에
따르겠다고 했다는 정보를 입수한 박정희는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휴우 하고 길게
내뿜었다.
(이제 이한림이 그 새끼만 체포해 버리면
쿠데타는 성공했다고 장담해도 되겠군.)
이렇게 생각한 박정희는 쿠데타 동지인
"오 동지, 이한림이만 체포하면 이제
혁명은 성공이오. 그러니 오 동지가 1군에
있는 동지들한테 비밀리 연락을 취해서
이한림 체포작전을 개시하라 하시오."
"알겠습니다. 곧 지체없이 체포작전을
개시하라고 지령하겠습니다."
오치성은 호기있게 명령을 수령했다.
사실은 이한림 체포문제도 5월 16일
서울에서 쿠데타가 일어난 그날부터
구상되어 왔다. 이 구상은 제1군에서
쿠데타에 가담해 있던 조창대(曺昌大),
이종근(李鐘根), 심이섭(沈怡燮),
엄병길(嚴秉吉) 등에 의해서 논의되었다.
그들 모두는 계급이 육군 중령으로서 육사
8기 출신자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아무리 쿠데타
체포한다는 것이 그리 용이한 일은
아니었다. 여건상의 문제도 있었지만
여기에는 다분히 정리론(情理論)도
작용되었다.
육사 8기 출신자들만 하더라도 유교적인
가정 분위기와 유교적인 교육을 철저히
받은 세대들이다. 그랬기 때문에 이한림
체포문제에 있어 정리론이 작용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오치성으로부터 조창대에게 <이한림을
체포하라!>고 지령이 떨어진 것은 5월 17일
한밤중이었다.
이날 밤 10시.
제1군 내의 쿠데타 가담자 전원이
포병참모실에 모였다. 오치성의 지령에
따라 조창대가 전체회의를 소집했던
출신 중령들 외에 헌병참모 육군 대령
박태원(朴泰元), 포병참모 정봉욱(鄭鳳旭),
심리전참모 육군 대령 허순오(許順五) 등도
참석을 했다.
"군사혁명위원회에서는 왜 여지껏
사령관을 체포하지 않았느냐고 하면서 어서
체포하라고 독촉이 성화 같습니다. 어차피
해결해야 할 사안이고 보면 오늘 밤 안으로
단행했으면 합니다."
조창대가 <이한림 체포>를
서둘러야겠다고 강조했다. 그러자 헌병참모
박태원이 브레이크를 걸고 나섰다.
"오늘밤 하루만 더 참고 기다려 봅시다."
"기다려야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들이 모시고 있던 상관이 아니오?
사령관이 체포할 수밖에 없는 행위를 하고
체포하지 않아서는 안 되겠다는 상황에
이를 때까지 좀 기다려 보잔 말입니다."
또다시 정리론이 작용했던 것이다.
8기 출신 중령들도 솔직하게 속마음을
털어 놓으라고 한다면 <모시고 있는 상관을
차마 어떻게 체포한단 말이냐> 하는 것이
그들의 숨김없는 참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들 8기 출신 중령들은
오치성의 지령을 충실히 이행하지 않으면
안 될 절박한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쿠데타 공로> 문제였다. 어느 시대 어느
역사를 보더라도 혁명 후에는 반드시
<논공행상(論功行賞)>을 베풀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제1군 쿠데타 주체자들은
서울에서 쿠데타가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못하고 있었다.
(이러다간 이거 우리는 혁명 후의
논공행상에서 탈락되는 게 아냐?) 하는
초조감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 이유에서 이한림 체포를 서둘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는데, 대령급들이
반대를 하고 나서니 계급이 하나 아래인
중령들로서는 그들의 주장을 고집하기가
어려웠다. 때문에 이한림 체포를 위한
회의는 또다시 흐지부지되고 말았는데
오치성의 독촉은 빗발치듯 했다.
"뭘 하고 있어, 아직도 사령관을 체포치
않고? 이것은 박 소장의 강력한 지시야!
혁명의 주체자로서 혁명 영도자의 지령을
거역하겠다 그건가?"
날이 새면 5월 18일이다.
이겨 새벽 4시에 다시 모였다.
<어서 이한림을 체포하도록 하라>는 것이
혁명 최고 영도자의 지령이라고 하자,
그때는 대령급들의 정리론도 쑥 들어가고
말았다.
5월 18일 새벽 6시.
새벽 4시에 다시 모여 <이한림
체포작전>을 숙의한 끝에 이들이 행동을
개시한 것은 새벽 6시였다.
먼저 헌병참모 박태원으로 하여금 사령관
숙소에 배치해 놓은 100명의 경비헌병을
철수시키는 일에서부터 <이한림
체포작전>은 개시되었다.
헌병참모 박태원은 5월 16일 서울에서
쿠데타가 발생했다는 정보를 입수하자,
그는 사령관 관사의 경비헌병을 100명으로
그룹에 가담해 있었으면서도 말이다. 이 한
가지 사실만으로 보더라도 한국군의 상관과
부하 사이가 얼마나 끈끈한 <정리>로
맺어져 있었느냐 하는 것을 가히 짐작할 수
있을 줄로 안다.
그런 다음 허순오가 지휘하는 80여 명의
심리전 선전중대를 완전무장시켜 사령관
관사를 포위케 했다. 그러는 한편, 야전군
연병장에는 12문의 고사포를 배치, 만일의
사태에 대비케 했다. 이제는 사령관 관사로
뛰어들어가 이한림을 체포하기만 하면 될
상황이었다.
그런데 <사령관 체포>를 누가 담당하는가
하는 것이 문제였다. 모시고 있는 상관을
체포하기란 아무리 얼굴에 철판을 깔았다
해도 어려운 일이기만 했다. 더구나
별명이 무엇을 의미하느냐 하는 것은 굳이
설명이 필요치 않을 줄로 안다. 그러므로
평소 사령관에게 외경심을 품고 있던
부하들로서는 주저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한데, 이때 지원자가 나섰다. 엄병길,
박용기(朴容琪), 그리고 육군 대위 안찬희
등 세 사람이었다. 그들이 지원을 하고
나서자 박태원은 그들에게 헌병 완장을
차게 하고 헌병 헬멧을 씌워 헌병으로
위장을 시켰다. 그런 다음 그들이 사령관
숙소로 향하려고 할 때 박태원은 이렇게
말했다.
"만일 사령관의 호송 도중에 사령관에게
손가락 하나라도 까딱하는 날엔 호송장교를
모조리 사살해 버리고 말겠어. 알겠나? 그
박태원으로서는 <사령관 체포작전>에
꽤나 가슴을 앓았던 모양이었다. 쿠데타
그룹에 가담해 있는 이상 최고 영도자의
지령에 따르지는 않을 수 없고, 그래서
<사령관 체포작전>을 수행하기는 하나
사령관의 신변안전만은 완전무결하게
유지해 주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어쩌면
그는 사령관 체포작전을 펴면서 속으로는
통곡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침 6시 40분.
헌병으로 위장한 세 장교가 사령관
관사에 도착한 것이 이 시간이었다. 이때
제1군 사령관 이한림은 참모장 육군 소장
황헌친(黃憲親)과 군수참모 육군 준장
박원근(朴元根) 셋이서 아침상을 받아 놓고
식사중이었다.
사령관을 박임항 장군으로 교체한다고
날아든 전통(電通)에 모아져 있었다.
이날 아침 이한림은 식사를 하면서
황헌친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인수인계할 준비를 하도록 하시오."
독자 제씨는 파면당했던 박정희가 현역에
복귀할 때 애를 써준 한 사람이
이한림이라는 것을 기억해 주기 바란다.
헌병장교로 위장한 세 사람이 식사중인
자리로 뛰어든 것이 이때였다. 이한림이
그들을 보자,
"박정희가 날 잡아오라고 시키드냐?"
하고 호령을 했다. 그렇지 않고야 사령관이
식사중인 자리에 무례하게 뛰어들 놈들은
없었을 테니 말이다.
엄병길이 말했다.
포위되었습니다. 순순히
가주셔야겠습니다."
"가자니 어디로 가잔 말이냐?"
"서울 혁명위원회로 가셔야겠습니다."
"그래? 알았다. 비행기로 가도록 하자."
"안 됩니다. 차로 가셔야 합니다."
"알았다."
이한림은 그러면서 천천히 일어나 풀어
놓았던 권총혁대를 맸다. 그러한 이한림의
거동을 지켜보고 있던 박용기가 앞으로
다가섰다.
"사령관님, 무기는 안 됩니다. 그 권총을
이리 주십시오."
박용기가 손을 내밀자, 이한림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놈들아, 적장의 투항을 받을 때도
너희놈들이 감히 그럴 수가 있어? 야전군
사령부 마크를 단 장교는 나를 체포할 수
없어! 군인이 무장을 해제당하면 생명을
빼앗긴 것과 마찬가지야. 나는 그렇게 할
수 없어!"
과연 이한림은 진시황이었다.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었다. 마냥 당당하기만 했다.
보다 못해 군수참모 박원근이 나섰다.
"사령관님, 그럼 제가 탄창만 빼고
권총은 그대로 드리겠습니다."
그는 이한림의 권총을 뽑아 탄창을 빼고
도로 권총집에 넣어 주었다.
이한림을 호송하는 지프의 핸들은
엄병길이 잡았다. 옆에 대위 안찬희가
타고, 이한림과 그의 부관 한 사람은
뒷좌석에 태워졌다. 그들의 차를 헌병 1개
에스코트했다.
이한림이 서울로 압송되어 오는
하늘에서는 줄곧 헬리콥터가 압송차량을
감시하며 따라붙었다. 미 고문단장
재브로스키가 이한림의 신상을 염려한
나머지 감시역으로 띄운 헬리콥터였다.
오전 10시. 이한림의 압송차는 덕수궁
앞에서 세워졌다. 이때 공수단은 덕수궁에
진을 치고 있었다. 쿠데타 그룹은 반쿠데타
장성을 체포해 올 때마다 덕수궁에
연금시켜 공수단으로 하여금 파수케 하고
있었던 것이다.
조금 떨어진 대한문 앞에서는 지프에서
내리는 이한림을 쏘는 듯한 눈매로
지켜보고 있는 두 사람이 있었다. 박정희와
김종필이었다. 그들은 이한림이 헌병들의
시작하자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는
것이었다.
이한림과는 만주군관학교 동기생인
박정희는, 체포당해 오는 이한림을
대하기가 좀 불편했던 모양이었다. 그는
이한림한테는 유독 묘하게 콤플렉스를
느끼고 있었으니까.
쿠데타 그룹이 이한림 체포에 성공했다는
것은 곧 쿠데타 그 자체를 성공의 궤도
위로 올려 놓았다는 것을 의미했다.
"가앗댐!"
이한림이 체포당했다는 보고를 받은
매그루더는 한마디 내뱉았을 뿐이었다.
이한림 체포 소식에 <쿠데타는 진압돼야
한다>고 전의을 다지던 최석도 맥이 탁
풀리는 모양이었다.
됐는가 보군."
힘없이 중얼거렸다.
맥이 빠지기는 김응수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이젠 도리 없이 패전지장의 신세가 되고
말았군. 허허......."
그는 어이없다는 듯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인간이란 너무나 어이없는 경우를 당하게
되면 비감보다는 너털웃음만이 터지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5월 18일 이날 아침, 유진산은 도쿄에
머물고 있던 이철승, 박준규, 모윤숙,
박병배, 이종린, 박권희(朴權熙), 김상흠
등을 뉴우쟈팬호텔로 불러 모았다.
"오늘이 쿠데타가 일어난 지 벌써
모양인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우리들의 거취를 정해야 할 것이
아니겠소?"
누구나 이 문제 때문에 고민을 하고
있으면서도 두려움에 눌려 말을
끄집어내지를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당분간 여기에 머물러 있으면서
앞으로의 사태를 지켜보고 있을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대부분의 의견을 이러했다.
"방송을 들으니 쿠데타는 반공혁명인 것
같은데, 그렇다면 과거에 정치인으로
활동했다고 해서 사람을 어떻게 하지는
못할 것 같소만?"
"아니, 그렇지 않아요!"
모윤숙이 반론을 폈다.
쿠데타를 일으킬 때 피를 얼마만큼
흘렸는지느 모르겠지만 목숨을 걸고
쿠데타를 일으킨 사람들인데 국회의원이고
정부 사람이고 간에 그냥 내버려둘 리가
없어요. 그런 만큼 사태가 진정되고 신분에
대한 보장을 받을 수 있는 어떤 조치가
취해질 때까지는 여기 그냥 눌러 있어야만
합니다."
쿠데타 소식을 들은 그 순간부터 그들은
모두 불안에 싸여 있었다. 그들의 운명이
어찌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런 불안에 싸일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가 쿠데타를 일으킨 자가 누군지
그자는 어떤 사상을 품고 있는지 전혀
정보를 입수해 놓고 있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쿠데타를
분명했다. 만일 쿠데타를 일으킨 자가
공산주의를 위해서였다면 반공사상이
투철한 60만 국군장병이 방관하고 있을
리가 없었다.
문제는 쿠데타를 주도한 자의
인품이었다. 사람됨이 제대로 돼 있다면
피를 보는 일이 없을 테지만 만일 성격이
괴팍하다든가 포악한 인물일 때는 쿠데타의
명분을 극명하게 부각시키기 위해서
집권자를 위시한 그 주변 인물들을
처형하지 않는다고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래서 그들은 불안했던 것이다.
이렇듯 가뜩이나 불안에 싸여 있는
그들이었는데 모윤숙이 국회의원이고 정부
사람이고 가만둘 리가 없다고 단언하듯이
말했으니 그들의 불안은 더욱 가중될
유진산은 한동안 깊은 생각에 잠겨
있다가 이렇게 말했다.
"쿠데타의 명분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모두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세우기
위해서 피땀 흘려온 사람들인데 저들이
우리를 함부로 다루려고 할 리야 있겠소?"
"아니, 반드시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쿠데타를 일으킨 사람들은 그들의 쿠데타를
정당화하기 위해선 없는 죄도 만들어
뒤집어 씌우려 할지도 모릅니다. 그런 만큼
모 선생 말씀과 같이 당분간 여기에 머물고
있으면서 추이를 지켜보구 나서 태도를
결정하는 것이 좋을 성싶습니다."
이렇게 말한 사람은 이종린이었다.
여기에 모윤숙이 덧붙였다.
"그렇게 하십시오, 진산 선생님. 공연히
말구요."
"아니, 나는 그들이 나를 어떻게
취급하든 빠른 시일 안에 돌아가도록
해야겠소!"
유진산의 의지는 단호했다.
그의 의지가 너무나 단호했던 탓인지 그
이상 그를 설득하려는 사람은 없었다.
5월 18일 오전 9시.
동대문에 집결한 육군사관학교 생도들이
쿠데타를 지지하는 시가행진을 벌이기
시작했다. 그들 생도대의 앞에는
쿠데타군으로 동원된 공수단 장병들이
사관생도들을 에스코트하듯이 선도행진을
이 사관생들의 쿠데타 지지행진을 보며
많은 식자들이 길게 탄식을 했다. 장차 이
나라 국군의 간성이 될 사관생도들을
쿠데타 지지 시가행진에 내게웠다는 것은,
그들에게 쿠데타를 교육시키는 행위나
다름이 없다고 보여졌기 때문이었다.
사관생도들을 내세워 쿠데타 지지시위를
벌이게 하는 발상을 한 것은 물론
박정희였다. 그는 육군사관학교 생도들을
쿠데타 지지시위를 위해 거리로
내세움으로써 정치에는 중립을 지켜온
자랑스러운 한국군의 전통을 무너뜨렸다.
앞으로 박정희에게 불만을 품은 장교들이
있어 쿠데타를 단행해도 그는 한마디
항변도 할 수 없도록 스스로를 결박짓는
우를 범했던 것이다.
潔駭?
서울 시청 앞 광장에 이르자 곧 <혁명
축하식>이 벌어졌다. 식이 벌어지자
장도영이 박정희, 오치성, 유원식 등
쿠데타 그룹들을 거느리고 사관생도대의
사열을 받았다.
어제 그러니까 5월 17일 오후 4시 30분
전까지만 해도 갈팡질팡 어찌할 바를
몰라하던 장도영은 사관생도대의 사열을
받으며 이렇게 지껄여댔다.
"남북한의 동포와 자유, 평화, 평등을
사랑하는 전인류가 우리를 지지할 것이다."
그의 목소리에는 힘이 있었고 자신감이
넘쳐 있었다. 과연 재빠른 변신이었다.
오전 10시 30분.
장면의 정치고문인 위태커가 육군본부로
장도영을 찾아왔다. 부관실로 들어선 그는
서로가 잘 알고 있는 사이에 새삼스럽게
명함을 내놓는 것을 의아하게 생각한
보좌관은 받아든 명함의 뒷면을
살펴보았다. 거기엔 영어로 이렇게 쓰여져
있었다.
보좌관은 지체 않고 위태커를
장도영한테로 안내했다.
"중요한 정보라는 게 뭣입니까?"
장도영이 물었다.
"장면 총리의 은신처를 알고 있소."
"그래요?"
장도영은 반가움에 눈이 휘둥그래졌다.
"미스터 위태커, 어서 같이 가십시다."
장도영은 무척이나 서둘고 있었다.
장도영은 벌써 방을 뛰쳐나가고 있었다.
오전 11시 10분.
장도영은 장면이 은신해 있는 방으로
들어오자 입부터 씰룩거렸다. 터지려는
울음을 참느라고 애쓰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각하,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장도영은 한마디 뇌까리고 기어이 울음을
터뜨리고야 말았다. 그는 입을
씰룩거리면서 다시 이었다.
"각하. 모든 것이 제 불찰로 이런 사태가
벌어지고야 말았습니다. 각하를 뵈올
면목이 없습니다."
장면은 말이 없었다. 그저 물끄러미
장도영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장도영은 좀 멋적어졌다. 스스로 생각해도
처음 위태커가 장면의 거처를 알려주었을
때는 너무 반가운 김에 앞뒤 재볼 겨를이
없이 달려왔던 것이나, 장면이 감정을 잃은
사람처럼 노여움도 또 그 어떤 반응도
보여주지 않자 머쓱해졌던 것이다.
이 경우를 제3자가 보았다 해도 장도영의
강심장에 놀라지 않을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쿠데타를 막는 체 흉내만 냈을 뿐
그 어떤 강력한 조치도 취하지 않아 정권이
넘어가게 된 마당에 상판대기에 철판을
깔지 않고야 어찌 장면 앞에 나설 수 있단
말인가.
장면이 그 어떤 반응도 보여주지 않자,
장도영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한동안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장도영으로서는 질식해 버릴 것만 같은
(어서 이 무거운 분위기에서
벗어나야지.)
그는 마음을 도사려 먹고 다시 입을
열었다.
"각하, 송구스럽습니다만 이제 쿠데타를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
어서 이 길로 나가셔서 수습을 해주셨으면
합니다."
그러나 장면은 여전히 대꾸가 없었다.
시선을 창 밖으로 던져놓은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장도영은 어색함을 털어내기 위해
계속해서 지껄여댔다.
"각하, 각하나 여타 각료들의 신변은
제가 책임을 지고 보호해 드리겠습니다.
그러니 안심하시고 이 길로 나가 주시면
그제야 장면이 밖으로 던져 놓고 있던
시선을 장도영 쪽으로 돌렸다.
그의 두 눈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야아, 이놈아. 내가 쿠데타 정보를
입수하고 너한테 박정희에 대해서
조사하라고 했더니, 그때 네놈이 뭐라고
했지? 박정희는 쿠데타 같은 것을 일으킬
만한 인물이 못 된다고? 그리고 이놈아,
16일 새벽에 네놈은 나한테 뭐라고 했지?
해병대가 술에 취해가지고 주정을 부리고
있다고? 이 개만도 못한 놈! 네놈이 나하구
쿠데타 그룹 양쪽에 각기 한다리씩 걸치지
않고 있었다면 그따위 식으로 쿠데타를
막으려고 했을 리가 있겠어? 이 개만도
못한 놈! 네놈을 같은 인동 장(仁同張)
씨라고 해서 참모총장에 기용을 했으니
던져버리고 싶은 심정이다. 이 고얀 놈!)
장면의 두 눈은 점차 증오에 이글거리며
타오르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결코
장도영에 대한 증오심을 밖으로 표출시비지
않았다.
"각하......."
장도영이 다시 재촉하려고 입을 열었다.
"알았네."
장면은 한마디로 가로막았다.
우리 현대사에서 가장 불행하고도
비극적인 날로서 기억되어져야 할 1961년
5월 18일 정오 12시 30분.
장면이 중앙청 국무회의실로 들어섰다.
그가 들어서자 미리 와서 자리를 잡고 앉아
있던 국무위원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서서 그를 맞았다. 외무부장관
국방부장관 현석호, 부흥부장관 주요한,
상공부장관 태완선(太完善), 체신부장관
한통숙, 무임소장관 오위영, 그리고
국무원사무처장 정헌주(鄭憲柱) 등
9명이었다.
장면은 정헌주에게 재무부장관
김영선(金永善)과 문교부장관
윤택중(尹宅重)은 어찌 됐느냐고 조용히
물었다.
"윤 장관은 병원에 입원중이라 위임장을
보내왔습니다. 김 장관은 아무래도 좀 늦는
모양입니다."
정헌주의 보고를 듣고 나자 장면은
의사봉을 세 번 두드렸다. 힘이 하나도
배어 있지가 않았다.
"그럼 지금부터 제69차 임시 국무회의를
"오늘의 안건은 계엄령 추인과 내각
총사퇴 문제요. 계엄령을 추인하는 데
이의가 없소?"
누구도 이의 있다고 대답하는 국무위원은
없었다. 모두가 침묵을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면 계엄령 추인은 만장일치로
통과되었소."
장면은 일방적으로 선언을 하고 의사봉을
두드렸다.
"다음은 내각 총사퇴에 대한 안건이오.
여기에 대해서도 누구도 이의 없으시죠?"
장면은 이렇게 묻고 또 일방적으로
의사봉을 세 번 두드렸다.
국무회의가 시작된 지 채 5분도 안
걸려서 끝마쳤다.
향했다. 국무위원 모두가 그의 뒤를
따랐다. 재무부장관 김영선이 모습을 보인
것은 이때였다. 기자실로 들어서자 장면은
안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메모지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성명서. 정치인 장면으로서는 어쩌면
마지막이 될는지도 모르는 성명서였다.
장면은 그저 아무 감정 없이 담담하게 읽어
내려갔다.
금번 군부 쿠데타 발생에 대하여 우리
일동은 정치적, 도의적 책임을 통감하고
총사퇴하는 바이니 국민 제위의 양해
있으시길 바라는 바이다. 그리고
사태수습에 있어서는 유혈을 방지하고
반공태세를 강화하여 국제적인 지위를
이것으로 민주당의 장면 정권, 곧
제2공화국은 막을 내리고 말았다. 아니
막을 내렸다는 표현은 너무나 미지근한지도
모르겠다. 총칼의 위력에 맥없이 쓰러지고
말았던 것이다. 9개월간의 짧은 생애였다.
현대사에 있어서 가장 민주주의가
화사하게 꽃피었던 제2공화국, 과연 장면
정권은 5.16 군사 쿠데타 그룹이
지탄했듯이 쿠데타의 대상이 되지 않으면
안 될 만큼 <부패하고 무능했던
정권>이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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