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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적 갈등을 재현하는 예술가 영화
정혜경 / 영화 평론가
예술은 종교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정신적 만족을 목표로 한다. 인간의 내부에는 아름다움을 향한 욕구와 그것을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가 내재되어 있다. 생존을 위한 기본적인 욕구, 그 이상의 무언가를 채워 주는 예술 활동은 부유한 자의 사치나 일부 지식인들의 지적 허영심을 채우는 도구가 아니라, 모든 인간의 삶에서 필수 불가결한 하나의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
예술과 종교의 구분이 모호했던 고대 사회에서는 제사장이 예술의 영역까지 독점했었는데, 이 때의 예술은 신의 섭리를 더 잘 나타내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예술의 생산자와 소비자를 구분하는 사고방식은 이때부터 시작되어 현재까지도 일반 대중의 표현 욕구를 제한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억압은 역설적으로 더 자유로운 형식과 주제를 고민하도록 하여 예술을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되었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 이는 인간이 예술 활동을 하지 않고서는 살 수 없다는 사실의 증거이자, 현실보다 더 나은 세상을 향한 동경이 예술 활동의 근간임을 말해준다.
미(美)를 추구하는 것이 예술가의 사명이라면, 사회 속에서 존재하는 예술가는 미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갈등 상황을 이겨내야만 한다. 자본주의가 정착되면서 예술을 상품화시키고 예술가를 자본가의 심부름꾼으로 만드는 등 예술의 고유한 특성을 짓밟으려는 보이지 않는 힘이 예술을 억압해 왔던 것이다. 이러한 위험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이 ‘순수 예술’ 운동의 동기가 되었다. 술가가 개인적인 측면으로 보았을 때, ‘무’에서 ‘유’를 창조해야 하는 과정에서 겪는 정신적 고통은 그것의 달콤한 열매만을 맛보는 향유자에게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것이다. 예술가는 그러한 창작의 고통 외에도 개인적인 생활고 혹은 주위 사람들의 냉대까지도 감내해야만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위대한 예술가 중에서 이러한 통과제의를 거치지 않고 위대한 작품을 만들어 낸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것이다.
특히 영화는 인간의 긴 역사 속에서 최근에 등장하기 시작한 예술의 한 형식으로서, 문학과 미술, 음악 그리고 공연을 아우르는 종합 예술이라 불린다. 게다가 영화라는 매체는 과학의 발전이 없었다면 탄생하지 못했을 정도로 고도의 기술적 지원을 담보로 하고 있다. 이러한 예술과 과학의 이종(異種)교합으로 태어난 영화는 생산에서 소비까지 매우 복잡하고 전문적인 과정을 필요로 한다.
예술이 다른 말로 ‘인간 내적 욕구의 다양한 표현’이라면 영화만큼 인간의 오감을 다양하게 동시다발적으로 표현해 내는 매체는 없을 것이다. 즉, 영화는 한 예술가가 겪는 다양한 갈등을 서사로 엮어 낼 수 있으며, 동시에 예술 작품을 시각적, 혹은 청각적으로 표현해 낼 수 있다는 점에서 ‘예술을 종합 예술적으로 표현해 낼 수 있는’ 유일한 매체이다.
1. 숙성의 과정이 필요한 예술
시간이 지날수록 생각나는 사람이 있듯이, 위대한 예술은 흐를수록 더욱 빛을 발한다. 예술이란 기존의 낡은 틀을 과감하게 벗어나 새로움을 추구하는 ‘낯설게 하기’ 이며, 이 낯섦 때문에 진정한 예술은 당대의 많은 사람들에게 외면당하기 십상이다. 즉, 예술가의 소명은 기존의 관습적이며 익숙한 고정된 틀에서 벗어나 새로움을 추구하는 것인데, 그것은 기존의 것에 대한 완벽한 이해를 바탕으로 그것을 벗어날 수 있는 용기와 참신한 아이디어가 필요하기 때문에 예술가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예술가들도 당대에는 인정받지 못해 궁핍하게 살았던 예가 수없이 많다.
『에쿠스』로 유명한 극작가 피터 쉐퍼의 동명 연극을 영화화한 『아마데우스』(밀로스 포먼 감독, 1984년)는 당대에 가장 인정받았던 부유한 궁중 음악가인 살리에르가,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인정받지 못했던 천재 음악가 모차르트를 만나면서 느끼는 절망과 질투를 격정적으로 묘사한 걸작이다. 또한 이 영화는 천재 음악가 모차르트가 당대에 겪어야 했던 갈등과 그러한 갈등 속에서 더욱 빛을 발했던 음악들을 매혹적인 스토리와 함께 감상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영화의 위력을 새삼스레 느끼게 해주는 작품이다.
이 시점에서 잠시 필자가 전제하고 싶은 것은, 이 작품이 모차르트와 살리에르의 갈등을 다루고 있기는 하지만, 이는 모차르트의 요절을 둘러싸고 추측되는 여러 가설 중 하나를 기반으로 재창조된 ‘이야기’라는 사실이다. 모차르트를 보는 다른 시각에서는 그가 영화에서 묘사된 것처럼 재능만으로 걸작을 쏟아 낸 작곡가는 아니었으며, 오히려 철저한 고전의 연구와 부단한 노력으로 작품을 만들어 낸 장이라고 말한다. 중요한 것은 실존했던 인물을 다루면서 진실과 고증에 충실하는 것만큼이나, 인간의 감성을 해석하고 이야기를 창조하는 작가의 고민 또한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살리에르는 중세 독일의 궁중 작곡가이다. 그의 음악을 향한 열정은 누구보다 뜨겁지만, 자신의 재능은 그 열정에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 또한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성실한 노력으로 음악가로서는 최고의 위치에 오른 살리에르는 재기 발랄한 젊은 작곡가 모차르트를 만나면서 신에게 부여받은 그의 재능에 감복함과 동시에 자신이 가진 능력의 한계를 절감한다. 모차르트처럼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고 싶었지만, 신은 살리에르에게 천재의 재능을 알아볼 수 있는 탁월한 안목 이상의 재능은 주지 부여하지 않았던 것이다. 모차르트를 향한 살리에르의 탄복은 불평등하게 재능을 안배한 신에 대한 원망으로 이어지고, 급기야는 ‘신의 악기’로 태어난 모차르트를 파멸시킴으로써 신에게 복수를 하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그래서 살리에르는 궁중 작곡가라는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서 은근히 모차르트를 압박하기 시작한다.
시대를 앞선 모차르트의 음악은 보수적인 당시 독일의 왕과 음악계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것이기도 했다. 살리에르의 음모와 음악계로의 반발로 점차 입지가 좁아지는 모차르트는 어렵게 창작 활동을 이어간다. 계속해서 모차르트를 음해하면서도 몰래 찾아가 숨어서 그의 공연을 빠짐없이 보는 살리에르는 진정한 예술을 향한 감탄을 금할 수 없다. 나날이 궁핍해가는 생활에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죽음으로 피폐해진 모차르트에게 살리에르는 마지막 결정타를 날린다. 과거 가면무도회에서 아버지가 썼던 가발을 쓰고 모차르트의 집을 찾아간 살리에르는 그에게 거액을 제시하면서 진혼곡(죽은 이의 넋을 달래기 위한 음악)을 의뢰한다. 죽음에 쫓기는 공포 속에서 곡을 쓰면서 더욱 건강이 악화된 모차르트는 결국 살리에르의 바램대로 숨을 거두고 만다. 하지만 요절한 모차르트가 남긴 음악은 시대를 꿰뚫는 교감으로 영원히 살아남고, 자신의 음악은 사람들에게서 잊혀지는 것을 살아서 목격해야만 했던 살리에르는, 자신은 세상의 평범한 사람을 대표하는 수호성인임을 자처하며 쓸쓸히 웃는다.
이 영화에서 인상 깊은 장면은, 늙은 살리에르가 자신을 교화시키러 온 신부에게 시험 삼아 자신이 가장 유명했던 시기에 작곡했던 작품과 모차르트의 작품을 각각 피아노로 연주하며 들어 본 적이 있느냐고 질문하는 장면이다. 신부는 어리둥절한 채 살리에르의 곡을 듣다가, 모차르트의 연주곡을 듣자 반가워하며 경쾌하게 따라 부른다. 그러자 살리에르는 자신이 이 시대의 가장 유명했던 궁중 음악가였는데, 지금은 아무도 자신이 작곡한 음악의 한 도막조차 알지 못한다며 절망한다. 자신이 모차르트의 재능을 시기해 그의 죽음을 교묘히 몰아갔지만, 모차르트가 죽은 후에도 그의 음악이 많은 사람들에게 향유되는 모습을 지켜보아야만 했던 살리에르의 고통은, 어쩌면 재능을 부여받지 못한 모든 범인(凡人)들의 마음속에도 내재되어 있을지 모른다. 예술은 분명 인간의 노력 이상의 ‘재능(gift)'이 필요한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이 부여한 그 ‘재능’으로 인해 예술가는 현실의 삶을 고통스럽게 살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은 아이러니컬하다.
당대에 인정받지 못했던 모차르트의 삶과 예술을 살리에르의 관점에서 그려 낸 아마데우스는 도달할 수 없는 예술적 경지에 대한 살리에르의 동경과 고통, 예술로 인해 파멸해 가는 모차르트의 모습을 극명하게 대비해서 보여줌으로써 예술과 삶의 의미를 깊이 있게 천착하는 데 성공했다. 아울러 이 작품은 진정한 예술은 시대를 꿰뚫고 살아남는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다시 한 번 상기시킨다.
2. 『고통』과 『한』의 열매.
예술을 창작하는 행위는 영혼을 잠식한다. 예술가는 자신이 추구하는 아름다움을 얻기 위하여 종종 너무나 큰 희생을 감내해야만 한다. 항시 안주하지 않고 삶의 벼랑 끝에서 일상에 길들여지지 않는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해야 하고, 어떠한 타협도 용납되지 않는 예술가의 삶이 고통스러운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개봉 당시, 한국 영화 최초로 백만 관객이란 흥행 기록을 세우며 한국 영화 중흥의 신호탄이 되었던 영화 『서편제』(임권택 감독, 1993년)에서는 미의 완성을 위하여 삶을 파괴하는 절박한 예술가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전라도 보성, 소릿재 주막에서 하룻밤을 묵게 된 동호는 주막 여주인의 판소리 한 자락에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게 된다. 대갓집에서 소리 품을 팔기 위해 마을에 들어온 유봉은 동호의 어머니인 과부 금산댁과 사랑에 빠지고, 금산댁과 동호는 떠돌이 소리꾼 유봉을 따라 마을을 떠난다. 유봉에게는 양딸 송화가 있었는데 동호와 송화는 친 오누이처럼 가깝게 지내게 된다. 하지만 금산댁은 유봉의 아이를 낳다가 죽게 되고, 졸지에 어머니를 잃은 동호는 송화와 함께 유봉의 유랑 생활에 동참하게 된다. 동호에게는 북을, 송화에게는 판소리를 가르치는 유봉.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오누이는 한 쌍의 고수와 소리꾼으로 자라난다. 그렇게 소리 품을 팔며 살아가던 유봉의 가족은 전쟁을 겪으면서 점차 생활이 어려워진다. 게다가 동호는 더 이상 소리를 찾지 않는 사람들의 냉대와 지독한 생활고를 참다못해 유봉과 한 차례 큰 다툼 끝에 떠나 버린다. 유봉은 동호가 떠난 후 자신의 곁에 유일하게 남은 송화마저 자신을 떠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한을 품어야만 진정한 소리를 깨우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에 송화에게 몰래 약을 먹여 그녀의 눈을 멀게 한다. 서서히 시력을 잃어가는 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 유봉은 송화를 돌보며 그녀를 진정한 득음의 경지로 이끈다. 세월이 흘러 기력이 다한 유봉은 송화에게 자신의 과오를 고백하며 용서를 구하고, 아버지까지 잃고 혼자가 된 송화는 외로운 삶을 소리로 승화시킨다.
어느 이름 없는 주막에서 재회한 동호와 송화는 하룻밤 동안 소리와 북 장단을 주고받으며 지난 세월의 한과 그리움을 털어 낸다. 영화는 하룻밤의 댓거리를 마친 후 아무 말 없이 다시 자신의 길을 가는 의붓 오누이를 담담하게 그리고 잇는데, 오랜 세월을 그리워하며 살았던 안타까움을 판소리로 풀어 낸 그들에게 한은 곧 소리요, 소리는 곧 그들이 한이 된 예술과 삶이 일체화된 경지를 보여 준다.
예술의 높은 경지에 오르기 위해서는 일체의 타협이 용납되지 않는다. 예술을 위해 기꺼이 삶을 희생할 때 비로소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경지에 이를 수 있음을 서편제만큼 절박하게 말하고 있는 작품은 없을 것이다. 인간의 한이 예술로 승화되고 수용되는 과정에서 소리가 자연과 어우러지는 장면들은 소설에서도 아름다운 장면으로 묘사되고 있지만, 영화에서 끝없이 이어지는 남도의 길을 소리와 함께 걸어가는 송화와 동호, 유봉의 모습은 많은 사람들에게 명장면으로 기억된다.
예술 작품 중에는 순수하게 아름다움을 추구하려는 목적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있는 반면에, 예술 작품이 고통스러운 삶의 분출구로서의 역할을 맡는 경우도 있다. 역설적으로 보자면 삶이 항상 아름답고 행복하기만 한다면, 예술의 필요성을 덜 느낄지도 모를 일이다.
새로운 세상을 꿈꾸던 혁명가였으며, 평생 병마와 싸우며 고통스러운 삶을 살다 간 멕시코의 초현실주의 여류 화가 프리다 칼로에게 예술이란 선택이 아니라 유일한 탈출구로서 그녀의 삶을 지탱해 주는 원동력이었다. 그러한 그녀의 삶을 영화로 만든 『프리다』(줄리 테이머 감독, 2002년)는 지나친 일대기적 구성으로 격정적이었던 프리다 칼로의 생애를 오히려 단조롭게 묘사한 면이 있지만, 화려한 색채로 현실과 작품을 넘나드는 구성을 통해 고통을 예술로 승화시켰던 당찬 여류 화과의 열정과 삶을 담고 있다.
1925년 맥시코시티, 자유분방한 소녀 프리다 칼로는 그녀가 타고 있던 버스가 건널목에서 열차와 충동하는 큰 사고를 당한다. 그 사고로 입은 끔찍한 상처로 인해 그녀는 한 달이 넘도록 석고 틀 속에서 갇혀 살아야 했고, 사랑하는 남자친구 알레한드로가 외국으로 떠나는 것을 그냥 볼 수 밖에 없었다. 침대해서 무료한 시간을 달래기 위해 프리다는 붓을 들었고, 그러한 그녀를 위해 가족들은 특수 이젤과 거울을 침대에 설치해 주었다. 그렇게 자신의 자화상을 그리면서 미술에 빠져들게 된 프리다는 어느 정도 걸을 수 있게 되자, 당대 최고의 화가인 디에고 리베라를 찾아가 자신의 그림에 대하여 평가해 줄 것을 요구한다. 작업 중이던 자신을 불러 낼 정도로 당돌한 그녀의 모습에 흥미를 느낀 디에고는 그녀가 그린 작품을 보고는 그 재능에 탄복하게 되다. 프리다와 디에고는 많은 시간을 함께 하며 서로에게 강한 끌림을 느끼고 결국 많은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결심한다. 하지만 디에고는 스스로 “병적”이라고 인정할 정도로 여성을 탐닉하는 호색한이었다. 디에고는 비록 육체적으로는 한 사람으로 만족할 수 없을지라도 마음만큼은 프리다에게 충실하겠다는 약속을 한다. 그러나 디에고와의 결혼은 십대에 당한 교통사고만큼이나 프리다의 삶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또 다른 사고의 시작이었다.
미국의 대(大)부호 록펠러의 벽화 의뢰를 받아들여 미국으로 건너간 두 사람. 그 곳에서 디에고는 자신의 예술가적 신념에 반하는 요구를 거부하다 작업 중이던 작품이 취소되는 불운을 겪는다. 그리고 프리다는 디에고의 여성 편력에 지쳐간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프리다는 오랫동안 고향을 떠나 있는 동안 어머니가 폐병으로 쓰러졌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다. 그녀의 고통이 깊어질수록 그녀가 그리는 자화상은 더욱 더 강렬한 색채를 띠게 된다. 프리다는 디에고와 십 년 만에 이혼을 하지만, 그 후 일 년 만의 재결합으로 제자리를 찾는다. 두 사람의 애정과 증오는 서로를 데어 놓을 수 없을 많큼 깊었던 것이다.
어린 시절에 당한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일생에 걸쳐 서른 번이 넘는 수술을 해야 했으며, 척추가 부서진 몸을 지탱하기 위해 강철 코르셋을 입어야 할 정도로 힘든 삶을 살았던 프리다에게 그림은 도피처가 아닌 고통과 맞서고 그것을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키는 처절한 싸움터였다. 평생을 괴롭혀 온 사고 후유증 때문에 자신의 전시회도 침대에 실린 채 참석해야만 했던 프리다 칼로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기면서 짧고 고통스러운 사십칠 년의 생을 마감한다. “내 삶의 마지막 순간은 즐거웠으면 한다.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고 싶지 않다.”
비틀어지고 꼬인 팔의 모습이라도, 오물의 범벅 덩어리라도, 흉측한 괴물의 모습이라도, 그것이 종교적, 도덕적 가치를 벗어나 인간 본성에 대한 동인을 불러일으킨다면 예술로서의 가치를 지닌다. 평생을 육체적 고통, 인간의 추잡한 본성과 싸워야 했던 프리다의 작품 속에서 보여지는 일그러진 형상들은, 고통을 내면화해서 얻어진 삶에 대한 진정성을 보여 준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에서 보여 주는 프리다의 작품들은 서사로 말해지는 프리다의 일생보다도 더 많은 이야기를 관객들에게 전달해 준다.
3. 예술과 자본의 필연적인 악연
순수한 목적을 가지고 예술을 하려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현실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결국, 작가의 손을 떠난 예술 작품은 그 문화를 향유하려는 소비자들 앞에서는 하나의 상품에 지나지 않으며, 대중의 기호와 작가의 신념 사이의 딜레마는 현대를 살아가는 예술가라면 누구나 겪어야만 하는 고통이다. 물론 지나치게 관념적이거나 개인적인 예술 작품들이 일반 대중에게 모두 수용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예술이 세상을 새로운 차원으로 이끄는 견인차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순수 예술의 당위성이 시장 논리만으로 공격받아서는 안 된다.
다소 복잡한 이야기와 분위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오지 못한 영화 『바톤 핑크』(조엘 코엔 감독, 1991년)는 그러한 난해성 때문에 더욱 더 예술이 대중과 자본에게 어떻게 굴복할 수밖에 없는가를 극명하게 보여 준다.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작품성과 흥행성 모두 호평을 받은 연극 작가 바톤 핑크는 매니저의 권유로 영화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 할리우드에 입성한다. 하지만 그를 고용할 캐피탈 영화사의 사장은 기대와는 달리 예술과 거리가 먼, 오직 돈만 밝히는 수다쟁이다. 졸지에 싸구려 레슬링 영화 시나리오를 의뢰받은 바톤 핑크는 장기 투숙자들이 머무는 호텔방에서 집필을 시작한다. 상업 영화라는 장르와 할리우드라는 공간까지 모든 것이 낯설기만 한 바톤 핑크는 마치 글 쓰는 방법을 잊어버린 사람처럼 시나리오를 진척시키지 못한다.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던 어느 날 밤. 바톤 핑크는 옆방 남자의 울음소리가 시끄럽다고 불평을 하다가 봉변을 당할 뻔한다. 하지만 바톤 핑크는 그것이 계기가 되어 옆방 남자인 찰리와 친분을 쌓게 된다.
시나리오가 계속 정체되자, 불안감에 빠진 바톤 핑크는 조언을 구하려고 기성 시나리오작가 메이휴를 찾아간다. 하지만 모든 창작의 의욕을 상실한 메이휴는 여비서에게 대필을 맡기고 술에 빠져 사는 실정이었다. 메이휴는 마감 시간이 다가오자 중압감을 이기지 못하고 여비서 오드리에게 도움을 부탁한다. 그리고 호텔방으로 찾아온 오드리는 바톤 핑크와 하룻밤의 사랑에 빠진다. 다음날 아침, 자리에서 일어난 바톤 핑크는 자신의 옆에 누워 있는 오드리가 피투성이가 되어 죽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혼비백산한다. 너무나도 엄청난 상황에 기겁한 바톤 핑크는 옆방 찰리에게 도움을 청한다. 찰리는 경찰에게 신고하면 꼼짝없이 바톤 핑크가 그 죄를 뒤집어쓸 거라며 시체를 대신 처리해 주고 침묵을 약속한다.
기댈 사람이 찰리밖에 없는 바톤 핑크는 찰리가 뉴욕으로 출장을 떠나자 어린애처럼 울며 겁을 먹지만, 찰리는 그런 바톤 핑크를 달래며 작은 부탁을 하나 한다. 자신이 뉴욕에 출장을 다녀오는 동안 상자 하나를 맡아 달라는 것이다. 바톤 핑크는 흔쾌히 상자를 맡아서 방에 둔다. 그런데 찰리가 출장을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두 명의 형사가 바톤 핑크를 찾아온다. 바톤 핑크는 그들을 통해서 찰리가 사실은 사람을 죽여서 목을 잘라 내는 엽기적인 연쇄 살인마라는 엄청난 사실을 전해 듣는다. 촉박한 시나리오 마감 시간에 하룻밤을 보낸 여자는 자신의 침대 위에서 죽었고, 낯선 공간에서 유일하게 의지했던 단 한 사람마저 살인마라는 사실, 게다가 그 살인마가 맡긴 오드리의 머리가 들어 있을 것으로 의심되는 상자가 방 안이 있는 그러한 절망적인 현실 속에서 바톤 핑크는 비로소 글이 풀리기 시작한다. 단 며칠 만에 시나리오를 완성한 바톤 핑크는 이 작품이 자신의 최고작이 될 것임을 직감한다. 하지만 되돌아 온 형사들은 오드리의 죽음에 관해 바톤 핑크를 추궁한다. 이 때 출장에서 돌아온 찰리는 기다리고 있던 형사들을 단숨에 처치하고 호텔에 불을 질러 버린다. 찰리는 고통을 받으면서도 살아갈 수 밖에 없는 불쌍한 사람들에게서 삶이라는 짐을 치워줬을 뿐이라는 알 듯 말 듯 한 얘기를 남기고 불타는 호텔에서 생을 마감한다.
간신히 자신의 역작과 함께 화재 현장을 빠져나온 바톤 핑크, 하지만 영화사 사장은 바톤 핑크가 자신 있게 내놓는 작품을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쓰레기라며 내친다. 모든 것을 잃어버린 바톤 핑크는 찰리가 남겨준 정체불명의 상자와 함께 해변을 찾는다.
이 영화에서 창작이란 영혼이 지쳐 버린 절망의 순간에서 비로소 터져 버리는 고통스러운 작업임을 매우 풍자적으로 보여 준다. 그리고 이와 동시에 대중에게 소비되어야 하는 상품으로서의 가치가 결정되는 예술 작품의 서글픈 현실이 묘사된다. 영화는 바톤 핑크의 작품을 외면하는 주체는 대중들 스스로가 아닌, 대중이 원하는 것을 공급해서 이윤을 챙기는 영화 제작자, 그리고 예술가와 예술 소비자들을 이어 주는 중계자임을 주목한다. 그들 중계자가 주목하는 것은 더 많은 이윤을 남길 수 있는 다수의 취향일 뿐이다. 상대적으로 적을 수밖에 없는 다양한 취향들은 수지가 맞지 않다는 이유로 무시되어 버린다. 이처럼 시장 논리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문화 다양성을 지키기 위한 주장과 우려는 최근 벌어진 우리나라의 스크린쿼터 축소 논란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앞에서 예술가 영화들을 통해 창작의 고통과 현실 속의 갈등 속에서도 끊임없이 갈등하며 예술을 창조해 나가는 예술인들의 모습을 살펴보았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스크린 쿼터 축소 논란’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예술인이 겪는 위협이 현실화된 예라고 할 수 있다.
정부가 스크린쿼터 축소 방침을 발표하자 영화계와 여론이 찬반양론으로 들끓고 있다. 문화와 예술은 한 나라의 정신이며 가치관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이러한 정신적, 문화적 가치가 자본주의의 경제적 논리 앞에서 상대적으로 과소평가되고 뒤로 밀려나곤 했다. 예술과 문화가 자본의 논리에 의해 장악된다면 우리의 행동 양식, 구매 방식까지도 쉽게 장악될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영화는 이제 삷의 스타일을 만들어 내는 중요한 장치로서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한류 드라마 열풍이 불면서 동남아에서 한국에 대한 관심과 소비가 증가하는 현상만 보아도 이러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스크린쿼터제는 한국 영화가 극장에서 상영될 수 있다는 가능성 속에서 영화를 제작할 수 있게 해 주었던 스크린쿼터제가 버팀목 역할로서 존재했기 때문이다.
한국 영화가 천만 관객 시대를 맞게 되었다고는 하나, 소위 그렇게 ‘대박’ 터진 영화는 1년에 한국에서 제작되고 있는 영화의 총 편 수 중에서도 극소수이다. 그러한 한 두 편의 영화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한국 영화 극장 점유율을 바탕으로 이제는 한국 영화 전체가 안정기에 접어들었으니 막대한 자금력과 고도의 시스템을 갖춘 할리우드 영화와 맞서도 괜찮다는 논리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지금 한국에서는 흥행에 성공하는 상업 영화 외에도 실험 정신을 가진 실험 영화, 독립 영화, 예술 영화 등이 끊임없이 시도, 제작되고 있다. 상대적으로 외면 받는 영화들의 실험 정신과 시행착오는 한국 영화 발전의 밑거름이 된다. 그런데 스크린쿼터가 축소된다면 비상업적인 저예산 예술 영화들이 극장에서 관객들과 만날 기회를 전혀 갖지 못하고, 다양한 취향을 반영하는 영화들을 극장에서 찾기가 점점 어려워질 것이다. 결국에는 할리우드로 대표되는 미국 영화에 대항하기 위하여 흥행에 민감한 영화, 즉 다수의 관객을 확보할 수 있는 자극적이고도 감정이 단순, 획일화된 영화만이 살아남는 상황이 도래할지도 모른다.
예술과 문화가 상품으로 변질되는 것을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유지하는 것은 예술이 그 근원적 목표인 미(美)의 추구의 길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한 방안이다. 인간 본성에 내재되어 있는 예술을 향한 동경과 갈증은 결코 자본으로 얻어질 수 없는 이상향에 대한 그리움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