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통역사가 되겠노라고 마음을 먹은 것은 고등학교 다닐 때, 우연히 신문의 한 부분에 난 “통역사의 이모저모”에 관한 기사를 읽은 후였습니다. 그 기사는 아직도 제 책상 유리 아래에 누렇게 끼워져 있죠. 제일 먼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통역대학원에 진학하겠다고 마음먹은 귀하는 마라톤을 준비하셔야 한다는 겁니다. 역주 중에 자신의 목표나 신념을 잃게 되면 결코 성공할 수 없는 과업이기 때문에 항상 스스로를 상기시키는 것이 중요하죠. 그래서 지금 이 글을 읽고 게시는 분도 공부에 들어가기 전 단단한 각오를 하셔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수업자료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1. PBS NewsHour :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나와서 토론을 하기 때문에 내용이 종종 난해하기도 하지만 조금만 파고 들어가면 모두 재미있는 주제들입니다. 김수연 선생님께서는 여기에 나오는 문장들을 모두 암기해 오라고 하십니다. 처음엔 저도 다른 사람들처럼 무작정 테이프 들어가면서 앵무새처럼 달달 외웠는데, 도저히 능률이 오르는 것 같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시작한 방법이 주어진 스크립트를 먼저 한글로 옮겨 놓은 다음 그것을 가지고 원문 스크립트를 최대한 보지 않으면서 영작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한 것을 집에서 다시 PC로 정리해 출력했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제가 하는 작문이 20% 정도에 지나지 않았고 시간도 무척 많이 걸렸습니다. 가끔은 이렇게 두 번 세 번 작업하는 것이 바보같이 느껴지기도 했지만 “나 같이 머리 나쁜 사람은 그저 무식이 제일”이라는 생각으로 1년이 넘은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제가 얻은 것이 몇 가지 있습니다. 패널이 하는 논리의 전개방식에 대한 전반적인 감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또, 한글을 영어로 옮기는 과정에서 패널이 한 말을 과감히 제가 가지고 있는 표현으로 사사삭(!) 바꿔치기 하는 즐거움을 느낄 수도 있었죠. 이런 과정을 거친 다음 암기를 하면 머리에 들어오는 속도가 훨씬 빠를 뿐만 아니라 수업시간에 발표를 할 때도 마치 제 생각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참으로 행복한 일이 아닐 수 없죠.
2. CNN HeadLine : 선생님께서 “떠 먹여주시듯” 밑줄이 그어져 있는 표현은 무조건 다 외워야합니다. 그리고 영어만 쳐다보고 따라하는 것이 아니라, 속으로 마치 뉴스 아나운서라도 된 듯이 한국어로 읊조렸습니다. 가끔 심심하면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 CNN 아나운서의 성대모사를 하기도 했죠. 공부도 재미가 있어야 오래 할 수 있기 때문에 자기 나름대로의 오락거리를 찾아내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CNN은 PBS와 달리 사실 위주의 나열이기 때문에 완전히 다 외우는 것은 재미없고 표현이나, 전문용어 위주로 학습했습니다.
3. Reading : 이것도 역시 선생님이 발췌해서 주시는 자료는 참으로 꼼꼼히 읽어야 하고, 눈에 보이는 영어뿐만 아니라 스크립트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에 대해서 나름대로 배경조사를 해가면서 진행해야 지루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서, 수업시간에 핵발전소 문제에 관한 읽기를 한다고 생각해봅시다. 그러면 그 전에 집에서 핵발전소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각종 전문용어나 여러 가지 기술적인 절차들을 학습합니다. 그리고 다음날 수업에 들어가면 남들이 모르는 전문 지식으로 무장하고 있다는 사실에 어깨는 펴지고 목소리에는 힘이 실릴 것입니다.
떠 먹여 주는 것만으로는 약하다
처음에는 숙제만 제대로 하기에도 시간이 정말 모자랍니다. 심지어는 저 자신을 둘로 쪼개어 공부를 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망상을 하기도 했죠.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이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될 것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선생님의 제자라 하더라도 스스로 알아서 해야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래서 옆 사람은 어떤 교재로 공부하나 물어보기도 하고 서점에도 가봅니다. Economist, Times, Newsweek, 거로 시리즈, Graduate English 등등, 족히 수 십 가지의 교재가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했습니다. 일단 영어 주간지 하나(Economist), 독해(거로리딩), 단어(거로보케), 심심풀이(영문 National Geography)용 교재를 골랐습니다. Economist는 능력이 부족한 관계로 2주일에 한 권씩 광고까지 완전히 읽었습니다. 전부 열심히 보려고 노력했지만 이 중에서 가장 기억이 남는 것은 “거로 리딩”입니다. 처음은 완전히 책을 다 본 다음, 해석으로 나온 부분을 다시 영어로 옮기는 작업도 한 번 해보고 마지막으로 쓸만한 표현 찾기도 해봤습니다. 모두 합해서 한 4번은 본 것 같군요. 책을 여러 권 섭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처럼 한 권을 완전히 마스터하는 방법 역시 참 쓸만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가끔,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커버 스토리로 다루는 내용을 자세히 봐 둔 것도 배경지식을 늘려 가는데 큰 힘이 되었습니다.
기민하고 유연한 스터디 그룹을 구성하자
스터디 파트너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자신이 모르고 있는 단점을 지적해주는 참모임과 동시에 나보다 나은 점은 배워야 할 경쟁자이며, 도저히 못 견딜 때 같이 영화를 보러 갈 수 있는 구슬림의 대상이기도 합니다. 때로는 스터디 파트너가 아닌 그룹을 결성하게 되는 경우를 보게되는데, 팀원이 일정 수를 넘어가면 조직이 너무 비대해져서 자신의 의견을 원활히 피력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필요할 경우 취해야 할 스터디 방향 전환도 자유롭게 하지 못하게됩니다. 제가 무한한 관심으로 지켜본 결과 비대한 그룹은 오래가지 못하더군요.
저는 주로 1:1 방식을 선호했습니다. 스터디에서 했던 부분은 초기에 한-한, 서로가 공부한 표현 점검해주기였습니다. 시간은 일정하게 정해놓고 그 시간을 넘기려 하지 않았습니다. 스터디라는 것이 한 번 길어지기 시작하면 정말 끝도 없게 되어서 자신이 해야하는 공부를 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또 한가지 중요한 것은, 파트너가 발표를 할 때 보이는 나쁜 습성은 반드시 상대 파트너가 고쳐 주어야합니다. 특히 약한 부분도 가능하면 일부러 시간을 내어서라도 교정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하죠. 이렇게 서로의 단점을 차례차례 보완해 나가다가 시험이 몇 달 앞으로 다가오면 강도를 올립니다. 그야말로 실전에 대비하는 겁니다.
그 방법으로 제가 오래 전부터 구상해 오다가 요즘 시행하고 있는 것인데, 하루씩 번갈아 가면서 한영, 영한 순차통역 연습을 합니다. 한영의 예를 들어보면 2,3 페이지 정도의 연설문이나 사설을 읽어주고 파트너가 통역하는 내용을 고스란히 녹음합니다. 녹음 한 내용을 완전히 딕테이션 해서 다음날 그 내용을 보면서 상대방의 문제점에 대해서 서로 논의하고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거죠. 녹음할 때 주의 사항은, 실전을 대비하는 것인 만큼 '통과'라든가 '한번 더'의 그야말로 수업적인 요소는 완전히 배제하는 것입니다. 시간은 많이 걸리지만 분명 얻는 것이 있습니다.
지겨운 당신, 떠나라.......... 공부할 수 있는 곳으로
서두에서도 말씀드린 바 있듯이 통역대학원 공부는 마라톤입니다. 힘들고, 다들 나보다 잘 하는 것 같고, 저 친구는 경제전공이라서 경제는 다 알고, 저 친구는 해외파라서 영어가 얄밉게 유창하고.. 나를 힘들게 하는 요소는 곳곳에 도사리고 있습니다. 스트레스가 적당히 쌓였다 생각이 들 때면 과감히 놀았습니다. 제가 주로 간 곳은 영화관입니다. 그러나 역시 '해먹던 도둑질'이라고, 주로 영어권 영화를 봤습니다. 영화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배울 것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 『블랙 호크 다운』에서는 시가전(Urban warfare)에 대해서 잘 알 수 있죠.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전을 시작하면 주로 시가전이 될 양상이라니까 이 영화를 잘 살펴보면 큰 도움이 될 겁니다. 또, 최근에 개봉한 『K-19 the Widow Maker』를 보면 핵 잠수함의 구조라든가, 위험성, 연료봉은 도대체 어떻게 생긴 물건인지 알 수 있게 되죠. 한 때는 도무지 미국 식민지 정착시절 역사를 알 길이 없어서 (책은 보기 싫고) 관련 영화를 두루 섭렵한 뒤, 그 당시 주제가 나오면 정말 안 들어도 다 들리는 기적까지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결론은 이렇다: 내가 했다면 당신도 할 수 있다
지금까지 위의 글을 읽어보신 분들은 아마 이렇게 생각 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얘는 놀면서 공부했네?” 사실, 이 글을 쓰면서 생각해 보니 그런 면이 좀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김수연 선생님 어록” 중에는 《즐기는 사람에게는 못 당해》라는 명언이 있습니다. 저도 영어를 즐기려고 나름대로 노력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공고, 전문대, 공대 출신의 제가 다른 사람들을 따라가는 방법은 재미있게 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부족한 저를 끝까지 믿어주시고 등을 다독여주신 김수연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월(月)요일부터 월(月)요일까지 출근하시는 선생님의 모습은 뒤를 쫓아가는 학생들에게 커다란 등대와 같았습니다. 꼭 선생님보다 더 훌륭한 사람이 되어 보답하겠습니다.
함께 했던 스터니 파트너들 이름 멋지게 호명하면서 마치겠습니다. 유영누나, 재범형, 기욱형, 신일씨, 은진양, 모두 고맙습니다.
첫댓글 혁이형..멋져요.... 지금도 인연이 되어 만나고 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