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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의 법 - 사랑의 법
♣ 결혼 관계에 있어서 신성한 사랑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고린도전서를 써서 보냈다. 그는 그들에게 사랑의 법을 기억하라고 일러주었다. 남편과 아내 둘 다 그리스도인인 상황에서는 아내가 남편을 떠나선 안 된다. 또한 남편이 아내를 버려서도 안 된다.
고린도전서 7:10-11 "10 결혼한 자들에게 내가 명하노니 (명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주시라) 여자는 남편에게서 갈라서지 말고 11 (만일 갈라섰으면 그대로 지내든지 다시 그 남편과 화합하든지 하라) 남편도 아내를 버리지 말라."
바울이 말한 것처럼, 이를 사랑의 법에 비추어 해석해보자. 결혼한 두 그리스도인은 사랑의 법을 따라야 한다. 사랑이 할 일이 무엇인가? 사랑이 자기 아내를 버릴 수 있는가? 아니다. 사랑이 남편을 떠날 수 있는가? 아니다. 사랑은 그렇게 하려고 해도 안 될 것이다. 내가 말하는 것은 자연적인, 인간적 사랑이 아니다. 나는 신성한 사랑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13장은 사랑이 오래 참고 온유하다고 말한다. 그것은 이기적이 아니다. 4절부터 8절까지를 확대번역 성경으로 읽어보자. 그러면 사랑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게 될 것이다.
고린도전서 13:4-8(확대역) "4 사랑은 오래 참고 인내하며 친절하다. 사랑은 결코 시기하거나 질투심으로 부글거리지 않으며, 자랑하거나 허영심을 보이지 않으며, 건방지게 과시하지 않는다. 5 사랑은 우쭐대지(무례하고 교만으로 우쭐해지지) 않으며, 사랑은 무뚝뚝하지(예의 없지) 않으며, 상스럽게 행동하지 않는다. 사랑(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은 자신의 권리나 자신의 길을 고집하지 않는다. 사랑은 자기 본위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랑은 까다롭거나 성질내지 않는다. 사랑은 악행 입은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사랑은 학대 받은 것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6 사랑은 불공평과 부당함을 기뻐하지 아니하나, 정의와 진리가 이길 때는 기뻐한다. 7 사랑은 어떤 일이 닥쳐도 모슨 일을 만나도 다 참아내며, 모든 사람의 가장 좋은 면을 기꺼이 믿으며, 사랑이 바라는 것은 어떤 환경에서도 시들지 않으며, 사랑은 모든 것을 견딘다(약해지지 않고). 8 사랑은 결코 실패하지 않는다(결코 사라지거나 쇠퇴하거나 끝나지 않는다)."
사랑은 자기 남편을 떠나지 않는다. 그게 사랑이 하는 일이다. 신성한 사랑은 자기 아내를 버리지 않는다.
사랑은 오래 참고 친절하다. 사람들은 수도 없이 오래 참지만, 그들이 참고 있는 동안 친절하지가 않다. 그들이 그렇게 하는 것은 그들이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사랑은 또한 자신의 것을 구하지 않는다. 사랑이 가정 안에서 악이나 불행을 어떻게 고치는지 아는가?
만일 남편과 아내 두 사람이 다 신성한 사랑의 새 계명으로 행한다면, 그들의 결혼생활은 실패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잔소리와 말다툼은 결혼생활를 실패케 하는 원인이다. 하지만 예수님의 사랑과 같은 종류의 이 사랑은 실패하는 법이 없다!
한결같은 사랑으로 행한 그리스도인 두 사람이 이혼 법정으로 가는 진짜 사례는 한 번도 없었다. 내 말은 그리스도인 두 사람이 이혼한 경우가 한 번도 없었다는 게 아니다. 내가 말한 것은 "한결같은 사랑으로 행한 그리스도인 두 사람"을 말한 것이다.
고린도전서 13:8에 의하면, 사랑은 결코 실패하지 않는다. 만일 그리스도인 두 사람이 사랑으로 행한다면, 그들의 결혼생활은 실패하지 않을 것이다. 만일 남편과 아대 두 사람이 신성한 사랑으로 행한다면, 어느 쪽도 이혼을 원치 않을 것이다. 그들 가정의 분위기는 매우 긍정적일 것이다. 그들은 그런 결혼생활에서 벗어나기를 원치 않을 것이다.
만일 당신의 결혼생활에 문제가 있는데 둘 다 그리스도인이라면, 고린도전서 13:4-8 말씀을 확대 번역본으로 종이에 적어 보라. 그 다음, 두 사람이 매일 아침 일어나기 전에 또 매일 저녁 잠자기 전에 그것을 읽으라. 만일 이 말씀들을 함께 읽고 그 말씀대로 행한다면, 오래지 않아 당신의 가정은 지상 천국이 될 것이다. 당신이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당신의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과 같은 종류의 사랑이 부어졌기 때문이다(롬5:5).
내가 아주 잘 아는 훌륭한 그리스도인 한 분이 기억난다. 그의 아내는 구원 받았지만, 성령 충만을 받은 적은 없었다. 그녀는 구원 받았음에도, 하나님과 친밀하게 동행하지 못했다. 그녀는 헌신과 거리가 멀었다. 그건 위험한 신앙이다.
만일 당신이 하나님께 헌신되지 않고 세상과 구별되지 않으면, 당신은 침대에서 떨어진 어떤 어린 소년 같이 된다.
아이가 바닥에 떨어졌을 때 쿵 소리를 엄마가 듣고 아이 방으로 달려가서 물었다.
"무슨 일이야?"
어린 아들이 말했다. "응, 침대에서 떨어졌어."
엄마가 말했다. "어떻게 침대에서 떨어지니?"
아들이 말했다. "내가 침대 바깥 쪽에 너무 가까이 있었어."
그는 침대 모서리에 너무 가까이 있었던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구원 받고 난 다음, 그들이 전에 놀았던 곳과 너무 가까이 지낸다. 그들은 결국 하나님께 속한 것들에서 떨어져나간다.
내가 아는 그 그리스도인 남자의 아내가 바로 그랬다. 그는 하나님께 속한 것들에서 떨어져나가서 그녀가 여러 해 동안 함께 살았던 다른 남자와 친하게 지냈다. 지금 그녀는 남편과 이혼은 하지 않았다. 그들은 아직 이혼이 허락된 상태는 아니었다. 그녀는 약 7년간 이외간 남자와 동거를 하고 있었다.
분명히, 그녀는 남편과 어떤 관계를 갖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리고 남편은 자기가 원하면, 그녀와 이혼하고 재혼할 모든 권리가 있었다. 그는 그 문제도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때 그녀가 남편에게 연락해서 하나님께 돌아오고 싶다고 했다. 그녀는 자기가 연약한 사람이고, 그래서 남편이 없으면 자기는 죽어 지옥에 갈 것으로 깨달았다. 그녀는 자기에게 남편이 필요하다는 걸 자각했던 것이다.
자연적인, 인간적 사랑으로 보면, 그는 그녀에 대해 전혀 사랑이 없었다. 그녀는 남편이 자기에게 보여주었던 모든 사랑을 거의 짓밟아버렸다. 자연적 사랑은 그런 것이다. 하지만 신성한 사랑은 결코 실패하지 않는다. 그것은 영원히 간다.
그래서 남편이 그녀에게 말했다.
"하나님의 사랑의 관점에서, 그리고 당신의 영혼을 구원하는 관점과 당신을 지옥가지 못하게 막는 관점에서, 나는 당신을 받아주겠소."
그리하여 그는 그녀에 대한 애정이 전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받아들였다.
그는 자기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 따라 행동했다. 그것은 무척이나 하기 힘든 일이다. 당신을 이 모양 저 모양으로 부당하게 대우했는데, 그 후에 그 사람을 다시 받아준다는 것은 정말로 어려운 일이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와 같이 신성한 사랑으로 반응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세월이 흘러서, 내가 그들의 집에 초대를 받아 갔더니, 어떤 특별한 날이어서 그들이 식사 준비를 했다. 내가 보니 그들은 서로 손을 꼬옥 잡고 있었다. 그들은 나이가 든 분들이었는데, 이따금씩 슬쩍 빠져나가 뒤에서 가볍게 안아주고 키스를 하곤 했다. 아내가 남편을 바라볼 때, 그녀는 정말로 남편을 받들어 모시는 것으로 보였다. 그녀의 두 눈에서 그러한 사랑의 표현을 읽을 수 있었다. 그녀는 남편을 너무 너무 존경했다. 나는 그들 사이에 친밀감을 보았다. 자연적인 사랑까지도 회복이 되었다. 그리하여 그녀는 구원을 받았고, 지옥에 가지 않게 되었으며, 그 외에 그들의 결혼생활이 완전히 회복되었던 것이다.
우리는 자신에게 이 질문을 던져야 한다.
"신성한 사랑이 할 일이 무엇인가?"
♣ 구원 받지 못한 배우자
이제 바울은 한쪽은 그리스도인이고, 한쪽은 불신자인 결혼 관계의 경우를 들어 말한다.
고린도전서 7:12-13 "12 그 나머지 사람들에게 내가 말하노니 (이는 주의 명령이 아니라) 만일 어떤 형제에게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있어 남편과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그를 버리지 말며 13 어떤 여자에게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있어 아내와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그 남편을 버리지 말라."
만일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다른 남자들과 어울려 돌아다니면, 그녀는 믿는 남편과 함께 살기를 좋아하지 않는 것이다. 또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다른 여자들과 어울려 돌아다닌다면, 그는 그의 믿는 아내와 살기를 좋아하지 않는 것이다.
만일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믿는 아내를 구타하고 학대한다면, 그는 그녀와 함께 살기를 좋아하지 않는 것이다.
다음 구절을 주목하라.
고린도전서 7:15 "혹 믿지 아니하는 자가 갈리거든 (그가 아내든 남편이든) 갈리게 하라 형제나 자매나 이런 일에 구애될 것이 없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은 화평 중에서 너희를 부르셨느니라."
만일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믿는 아내와 함께 살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그 믿는 아내는 결혼 서약에 구애받을 필요가 없다. 그녀는 재혼할 수 있다. 물론 주 안에서다. 그녀는 다른 신자와 결혼할 수 있다. 또 만일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믿는 남편과 함께 살기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그 믿는 남편은 결혼 서약에 구애받을 필요가 없다. 그는 재혼할 수 있다.
우리 교회에 한 여성이 있었는데 남편은 구원 받지 못했고, 정신 문제가 있었다. 그녀가 한 번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어느 날 밤 내가 잠을 깨보니, 남편이 부엌칼을 들고 나를 겨누고 있었어요. 나는 질겁했어요. 해긴 목사님, 어떡하면 좋지요?"
나는 그 남편의 정신이 온전할 때, 그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하나님이나 그리스도나 교회를 반대하지 않았다. 그는 성경이 사실이라 믿었고,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을 머리로는 믿었다. 그러나 헌신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그는 나에게 그를 위해 기도해달라면서 그를 포기하지 말아달라고 까지 했다.
그러나 내가 그와 더 이야기하려고 하자, 그는 진정한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그의 구주로 영접하길 원치 않았다.
그러던 중 일이 벌어져, 그의 정신은 더욱 악화가 되었다. 그는 상당한 기간 동안 그의 마음을 하나님께 드릴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그는 "노"(No) 하면서 거부했다. 너무도 많은 책임이 그의 불쌍한 아내에게 지워졌다. 그는 일을 할 수 없었고, 그녀는 아이들을 돌보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수입이 되는대로, 또 교회에서 지원할 수 있는 것으로 연명을 해나
갔다. 그녀는 거의 정신이 돌 지경이었다. 그녀는 짐이 너무도 무겁고 걱정거리가 하도 많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우리가 그녀를 도와주어야 했다. 그녀의 남편은 1차 세계대전 중 군복무를 했었다. 그래서 우리가 그를 원호병원에 입원을 시켰다. 그는 점점 더 악화되었다. 마침내 그는 거기서 죽었다. 우리는 헌금을 모아서 그녀를 도왔으며, 사람들이 먹을거리를 갖다 주고 그녀를 축복했다.
나는 그와 상황에 그대로 있기로 선택하는 이런 여성들에 대해 안타까움을 느낀다. 그들은 어떤 일이 있어도 남편을 구원 받게 하겠다고 결심을 한다. 그러나 보다시피 그는 구원 받지 못했다.
만일 당신이 어느 경우나 배우자를 구원 받게 해줄 수 있다면, 바울이 고린도전서에서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바울은 하나님의 성령의 영감을 받아 편지를 썼다.
고린도전서 7:16 "아내 된 자여 네가 남편을 구원할는지 어찌 알 수 있으며 남편 된 자여 네가 네 아내를 구원할는지 어찌 알 수 있으리요."
바꾸어 말하면, 당신은 당신의 남편을 구원 받게 할지도 모른다. 만일 남편이 당신과 함께 살면서 그의 책임과 위치를 감당하기를 좋아한다면, 그와 함께 살면 된다. 당신이 그를 구원 받게 할지도 모르니까. 또 당신의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당신과 함께 살기를 좋아한다면, 당신은 그녀를 구원받게 할지도 모른다.
만일 당신이 정말로 하나님을 믿는다면, 당신은 항상 그들을 구원 받게 할 것이라고 바울은 말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원하든 원치 않든 간에 사람의 의지를 무시하고 그들을 구원 받게 하지 않으신다. 그분은 그렇게 하지 않으실 것이다!
수많은 사랑스러운 여성들이 남편과 함께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고통을 겪는다. 그들은 자기가 남편을 구원 받게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 믿는 배우자가 떠나다
내가 크게 존경했던 복음의 사자 목사님이 또 한 분 기억난다. 그는 순복음 교단의 지도자로, 공직 경험이 있는 분이었다.
내가 그의 교회에서 집회를 하고 있었다.
그가 내게 물었다. "해긴 목사님, '믿는 자가 이런 일에 구애될 것이 없다'고 말한 성경 말씀이 무슨 뜻인가요?"
내가 말했다.
"글쎄요. 내가 이해하기로는, 그러한 상황에 있는 사람이 결혼 서약에 구애될 필요가 없다는 뜻 같은데요."
그가 말했다. "나 또한 바로 그런 뜻이라고 이해합니다. 이 세상천지에 결혼에 관해서 나보다 더 힘들게 살아온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아시겠지만, 나는 옛날의 성결 계통의 오순절파 출신입니다. 나는 거기서 말한 그대로를 받아들였지요. 나는 그 주제에 관하여 아주 냉혹했습니다."
이 목사님은 꽤 넓은 목사관에서 살았다. 그의 사별한 아내의 어머니와 이혼해서 어린 아들을 키우는 그의 딸이 목사관에서 그와 함께 살았다.
그가 말했다. "내 딸은 수물여덟인데, 아주 미인이죠. 그애 엄마가 보통 미인이었습니까! 내 말은 그냥 예쁘다는 정도가 아니에요. 정말 아름다웠죠. 그런데 딸이 똑같아요. 보통 아름다운 미인이 아니라니까요."
"물론, 딸은 우리 교회에서 자랐죠. 구원 받고 성령 충만도 받았어요. 얼마 안 있어 딸이 역시 우리 교회에서 자란 젊은이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훌륭한 가정 배경을 가졌지요. 그 젊은이 역시 구원을 받고, 성령 충만도 받았고, 내내 교회 생활을 해 왔어요. 그들은 사랑에 빠졌지요. 그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 우리 딸은 비즈니스 교육을 받고 일을 시작했어요. 그 역시도 일을 시작했고요. 사실, 그의 가족은 사업체를 몇 개 갖고 있어서 그 중 하나를 그가 경영하기 시작했지요. 그리하여 그들은 결혼을 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딱 맞는 짝이라고 말했지요. 딸이 임신을 했어요. 그런데 남자는 자녀를 갖고 싶어 하지 않았어요. 그들은 오늘날 우리처럼 산아제한에 대한 이해가 없었어요. 그리하여 딸은 사내아이를 낳았지요. 그런데 그 후 남편이 그 사내아이를 보러 들렀다가 아내와 입맞춤을 하고는 작별하고 가버렸어요. 다시는 그를 보지 못했지요. 그는 정말로 떠난 겁니다. 사라져버렸어요."
"2~3년 후에 우리가 안 사실은 그가 동성애를 시작해서 그런 스타일로 살고 있었어요. 자, 지금 내가 여기서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이혼과 재혼을 하지 말라는 설교를 평생 해왔어요."
"내 딸은 일을 합니다. 제법 돈을 벌어요. 딸은 아주 똑똑한 여자거든요. 나는 그 애 아들에게 아빠노릇을 하려고 애를 쓰지만, 나도 나이가 들었어요. 그 아이를 데려가 낚시도 하고 이러 저런 일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해요. 교회를 맡아 목회하려면 내 모든 시간을 드려야 합니다. 손주는 장난치며 함게 놀아줄 사람이 필요해요."
"내 딸이 방안에 앉아 밤마다 우는 걸 보다가 마침내 내가 폭발을 해버렸어요. 어느 날 밤, 내가 딸의 방문을 활짝 열고서 소리쳤지요. '여기서 나가 남자 친구를 찾아봐!"
"아니, 아빠, 이혼과 재혼은 안 된다고 설교하셨잖아요!"
"나는 내가 설교한 것에 개의치 않아! 네가 여기 앉아서 천진난만한 희생물처럼 시들어가는 게 하나님의 뜻이 아냐! 가서 사람 좀 만나라! 가서 젊은 애들과 어울려봐."
그는 그렇게 응답을 했다.
"좋아요. 만일 내가 남자를 만나 데이트를 시작하면, 난 사랑에 빠지고 결국엔 결혼할지도 몰라요" 딸이 말했다.
"그거야 뻔하지." 그가 말했다. "어서 가서 그대로 해."
"딸은 내가 제안한 그대로 해서 지금 한 멋진 남자와 데이트를 하고 있지요. 손자 역시도그를 좋아해요. 이 남자도 우리 딸과 똑같은 경험을 했더라고요. 그가 군 복무 중에, 그의 아내가 다른 남자와 바람이 나서 떠났어요. 그 뒤로 다시는 소식을 듣지 못했답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 딸과 이 남자가 결혼하고 싶어하지요."
이 목사님은 그들의 결혼에 대해 내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내가 대답했다.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말했다. "나 역시도 그래요. 나는 그 주제를 연구해 왔어요. 그런데 내가 이해 못하는 게 있어요. 고린도전서 7:15입니다. '혹 믿지 아니하는 자가 갈리거든 갈리게 하라 형제나 자매나 이런 일에 구애될 것이 없느니라 ...... ' 바울의 말은 만일 믿지 아니하는 배우자가 떠난다면, 믿는 자는 결혼 서약에 구애될 것이 없다는 거지요. 그런데 우리 딸의 경우엔, 그 애 남편이 믿는 자였단 말입니다."
그래서 나는 디모데전서 5:8을 그에게 말했다. 거기에 보면, 바울이 디모데에게 이렇게 쓰고 있다.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
바울이 말하는 바는, 자기 가족을 떠나서 돌보지 않는 신자들은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라는 것이다. 그들이 불신자보다 더 악한 것은 그들은 분별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말씀으로 깨우침을 받았던 자들이다. 그들은 불신자들처럼 쉽게 빠져나갈 수 없다. 불신자는 분별력이 더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처신하는 것은 구원 받지 못한 자의 본성인 것이다.
이와 비슷하게, 예수님이 마태복음 18장에서 하신 말씀을 생각해보라.
마태복음 18:15-17 "15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16 만일 듣지 않거든 한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증하게 하라 17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
그리스도인이라 주장하지만 자기 아내를 구박하고, 심하게 학대까지 하는 남자가 있을지 모른다. 아내는 자기를 그렇게 구박하지 말라고 남편에게 호소를 했을지 모른다. 목사님(교회를 대표하는)을 포함하여 다른 그리스도인들 역시 그 남편과 이야기를 했을지 모른다.
아내는 소위 "믿는 남편"이라는 자가 자기를 정서적으로, 신체적으로 학대하고 있는 결혼 상태를 그대로 유지해야 하는가?
만일 그 죄를 저지르는 자가 계속 조언을 무시한다면, 그는 이방인이나 다름없다고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18:17에서 말씀하셨다. 바꾸어 말하면, 그의 행위는 불신자의 그것과 같은 것이다. 그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