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도 트랜드(Trend)가 있어
“사람도 트랜드가 있어. 요즘 얘들은 생각 많고, 말 않 하고, 얌전한 얘들은 싫어해. 박
경림처럼 밝고, 사교적이고, 말 잘하는 얘를 좋아하지.” 중학교 미술선생인 우리 동생의 말이다. “나? 색조 화장 않한 지 오래되었어. 왜 화장도 트랜드가 있쟎아? 잘못 발랐다가는 유행에 뒤쳐진 한물간 아줌마로 오인 받을 수가 있거든. 어줍쟎게 따라 하느니, 아예 않 하는게 나아.” 결혼해서 얘가 둘인 내 친구의 말이다. 긴 치마 말고, 짧은 미니스커트를 입어야 하고, 부츠컷 진보다는 스키니 진을 입어야 하며, 뽀송뽀송한 화장 보다는 물광 화장을 해야 그래도 요즘 트랜드를 아는 젊은 감각의 사람이다. 레깅스나 황금 벨트도 몇해 전 유행한 떡볶이 코트나 버버리 체크 머플러, 젤리 슈즈처럼 조금만 있으면 트랜드에 맞지 않는 퇴물로 취급 받을 텐데, 왜 여전히 사람들은 유행에 민감하지 못한 사람들을 부지런하지 못한 사람, 시대에 뒤쳐져 중앙 무대에 있지 않은 사람으로 낙인찍는 것일까? 트랜드 따라가다가는 가랑이가 찢어진다는 항변에도, 트랜드를 너무 쫒는 것은 ‘몰개성화’를 초래한다는 우려에도, 어느새 인가 그 시대 젊은이가 열광하는 유행을 전부, 혹은 부분이라도 반영하지 않으면 중앙 무대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무언의 압력이 팽배해 있는 듯하다.
음악도 트랜드의 압박에서 예외일 수 없다. 단지 적극적으로 수용하느냐, 소극적으로 수용하느냐, 수용하더라도 선두에 서느냐, 무리에 같이 끼어 어울리느냐, 한참 늦지만 뒷따라 가느냐의 문제이며, 역으로 트랜드를 부정하거나 무시하고 ‘내 길을 가련다’ 내지는 ‘과거가 좋았다’,‘전통이 최고여!’식의 선택의 문제일 뿐이다. 트랜드의 세계에는 그 시대 젊은이를 대상으로 유행의 최전방 선상에 서서 피 흘리는 사람과 그 무리들이 있고, 이전 것에 트랜드를 부분 수용하는 사람들이 있으며, 아예 트랜드와 담쌓고 오히려 지나간 과거와 전통을 끝까지 고수하며 새로운 것들을 거부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우선, 그 시대 트랜드의 선봉에 있는 사람의 경우, 그의 인생에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화려한 전성기가 있다. 적어도 그 사람은 한 시대를 대표하는 역사속의 인물로 기억될 수 있다. 물론 그 사람 주위의 인물들도 같이 있었다는 이유로, 같이 활동했다는 이유로, 같은 트랜드를 지향했었다는 이유로, 호황을 타고, 입에 오르내린다. 하지만, 자기가 몸담고 누렸던 유행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는 공허하다. 그가 아무리 ‘지금’의 사람이라도 대중에게 그는 ‘한때’의 사람일 뿐이다. 그는 단명할 운명이 되든가, ‘퇴물’이라는 주홍글씨를 안고 잊혀 져야 한다. 반면에 그렇게 내세울 것도 주장할 것도 없는 자기 나름대로의 고만고만한 전성기에 그때그때마다의 트랜드를 접목시켜 ‘항상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하면 딱히 OO시대를 대표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때도 얼굴을 달리 하고 그 자리에 있었고, 지금도 유행에 적당히 타협하며 그 자리에 있으며, 미래에도 특별히 사회적 무리를 일으키지 않는 한 그 자리에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주는 사람 말이다. 나쁘게 말하면 박쥐형이고 좋게 말하면 생명력이 강한 똑똑한 사람들이다. 마지막으로, 우리 주위에는 과거지향, 전통 고수형이 있다. 그는 자고 일어나면 세상이 바뀌는 정보화 시대, 트랜드와 직간접적으로 만나지 않으면 이지매당하는 시대에 별종 같은 존재, 이해할 수 없는 존재, 고루하고 답답한 존재다. 평생을 전성기 없이 아웃사이더로 살 수 있다. 하지만 그도 운만 잘 만나면 대박 터지거나 새롭게 조명 받을 수 있는 존재, 경쟁하지 않고도 블루오션으로 추대 받을 수 있는 존재가 될 수있다.
트랜드에 민감한가, 민감하지 않은가는 이미 ‘진보와 실험’을 좋아하는 성향 혹은 ‘전통과 과거’의 연속성을 중시하는 성향으로 개개인이 가지고 태어난 선천적 유전의 문제일 수도 있고,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그 시대 청년의 감성으로 매인 무대에서 주목받으려는 끊임없는 후천적 노력의 산물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한 번 트랜드의 앞머리에 있었던 사람이 여러번 트랜드 선봉 자리에 있기는 힘들며, 반대로 트랜드를 부분 수용하며 여러 세대를 거쳐 생명력을 연명해 온 사람이 정상의 자리에서 한 트랜드를 선도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전까지 유행하고 열렬히 소비했던 한 세계를 부정해야, 다음 유행의 선두자리에 오를 수 있는 트랜드 생리를 감안해 볼때, 트랜드 개혁의 선봉자에게 ‘전통마져 계승한 인물’이라는 왕관자리를 내주는 것은 더 드문일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마일즈 데이비스(Miles Davis)는 분명 별종임에 틀림없다. 그는 앞서 말한 트랜드의 전형을 보기 좋게 거부하였다. 유행을 빨리 읽는 눈과 귀가 있었고, 유행을 선두했지만 하나로 만족하지 않았으며, 비밥(bebop)의 끝에서 쿨(cool)로, 락(Rock)과 일렉트릭 (Electric)으로 끊임없이 모습을 달리하며 재즈의 변방이 아닌 정 중앙에서 재즈역사를 갈아 치우면서도 흑인 전통성을 계승했다는 훈장역시 동시에 포기하지 않고 거머쥐었던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슬픔이 많은 가난한 남부의 흑인 노예들이 목화를 따며 흥얼거리던 것이 블루스의 기원이다’라고 말할 때, “나는 남부 흑인가정에서 자랐지만, 우리부모는 한번도 목화를 딴적이 없고, 우리 아버지는 부자이자, 치과의사였으며, 우리농장에는 내 소유의 말이 있었다”고 반박하던 마일즈 데이비스(Miles Davis). 코카인 중독으로 권투 배웠던 손에 칼을 쥐고 아내에게 폭력을 행사했던 마일즈 데이비스(Miles Davis). 30년의 세월동안, 힘든 시기 그의 돈줄이 되었고, 버팀목이 되어 주었으며 그의 명성을 키워주었던 레코드 회사도 효용가치가 떨어지자, 과감하게 자르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떠났던 마일즈 데이비스(Miles Davis) ...
인간적으로 끌리진 않는다.
/mmjazz 8월호 2007<재즈피아니스트 이노경 nokyunglee@hanmail.net>
첫댓글 마일즈가 그런 사람이었군요. 흑인중에도 엘리트 출신이었구나. 역시 결국은 음악에서 시작해서 그 사람의 됨됨이를 보게 되는 것이 사람인 거 같습니다. 존경이라는 말은 단지 훌륭한 음악에서만이 아니라 그 사람이 풍기는 향기에서 비롯되는 거 같아요. 좋은 글 정말 감사드려요 노경씨.
읽어 주시니 제가 더 감사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