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제작극장을 표방하는 공공극장의 거대 기획 구조 속에 기대했던 개성과 재능은 동질화 혹은 하향 평준화를 거듭했으며, 연극은 제자리걸음일때가 많았습니다. 지원보다는 자생력이라는 공허한 키워드가 현장을 위협하는 상황에서 연극은 힘겹게 홀로서기의 걸음마를 해야 했지만, 생래의 기능을 포기하지는 않았습니다. 연극인들의 의지는 많은 공연들로 증명되었습니다.
지난 한 해 (2012년 12월 1일-2013년 11월 30일) 서울 과 전국의 주요 지역연극제 무대에 오른 재공연 24편을 포함한 총 298편이라는 예외적인 작품 숫자가 대변해주고 있습니다.
2013년 "베스트 3"선정은 공연예술로서의 미학적 성과가 뚜렷한 작품, 그리고 한국연극계에 의미있는 방향성을 제고한 우수 작품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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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극단 드림플레이 & (재)국립극단 <알리바이 연대기>(김재엽 작/연출) =공동제작
작가 자신의 과거를 한국 근현대사의 변곡점들과 조화롭게 맞물린 서사의 완결성은 창작극에 대한 오랜 기다림에 대한 응답이었습니다. 긴 시간을 관통해 모아진 작가의 자기응시적 시선과 역사에 대한 성찰적 관점이 교차 혹은 평행으로 이뤄낸 극서정은 치우침 없는 관조요, 아름다운 성숙으로 다가왔습니다. '어릿광대의 정치학 개론'이라는 부제를 단 작품은 정치극에 대한 다양한 관심과 모색이 유난했던 금년 우리연극에 새로운 글쓰기의 가능성을 제시해주었습니다. 점묘법으로 그려낸 사적 기억이 서사의 틈새를 채우는 동안 완곡한 공연의 리듬은 시적 여백을 남기며 사유의 공간을 제공하기도 했습니다. 소극장 판의 거친 물리적 공간을 유연한 감성으로 보듬는 자전거 주행과 '삶의 내력'을 추적하는 정재호의 그림과 영상으로 물들이며 연극적 사색을 확장한 공연에선 배우들의 유머와 앙상블이 또한 이 특별한 성취에 일조했습니다. 하지만 2막에 투입한 감상성은 견고해야 할 균형을 위협했으며 공연은 경제성의 묘약을 필요로 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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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공연제작센터 <황금용>(롤란트 시멜페니히 작/윤광진연출)
공연제작센터의 <황금용>은 베를린에 소재한 '타이-차이나-베트남'간이식당을 배경으로 이주노동과 불법체류라는 세계화 시대의 유감스러운 현실을 다룬 작품입니다. '개미와 베짱이' 우화를 삽입해 주제를 확장시킨 희곡은 도시의 소시민 또한 예외가 없는 자본주의 사회의 근본적인 문제들을 노정함으로써 평론가 찰스 이셔우드가 이른 "소극으로 쓰여진 비극"을 고합니다. 드라마투르그, 연출배경을 지닌 작가의 영리한 무대글쓰기는 다양한 상황들의 병렬, 다역, 성별교차, 지문서술-대사-시연이라는 '3종 세트 장면연기법' 등 연극적 장치들을 무더기로 소개한 새로운 작품이기도 합니다.
5명의 배우들이 17개 배역을 오가며, 무려 48개 장면들로 질주하는 공연의 속도감은 공간을 다소 제한적으로 사용하게 한 불리한 점도 보인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무대 위의 시각적 비밀을 고스란히 노출시킴으로써 브레히트의 유산을 연극적 재미와 함께 선사한 공연은 동시대의 모순을 겨냥한 신랄하고도 멋진 풍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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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두산아트센터 <나는 나의 아내다> (더그 라이트 작, 강량원연출)
두산아트센터<나는 나의 아내다>는 서구 현대사의 굴곡 속에 함몰도니 개인의 기억을 작가의 인터뷰로 구출해낸 아카이빙 형 다큐멘터리극입니다. 나치즘과 사회주의 체제를 힘겹게 견뎌낸 트랜스베스타이트 골동품수집가 샤로테가 통독이후 직면하게 된 사회적 상승과 추락의 가파른 여정을 탐사한 작품은 퓰리쳐상 최초의 일인극 수상작이기도 합니다.
역사와 개인의 삶을 대비시키는 가운데 극은 망각 혹은 왜곡된 기억들을 새롭게 환기시키는 작가의 문제의식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무려 35개 배역이라는 난제를 앞에 두고 놀라운 변신연기술 보다는 서사의 날줄과 씨줄을 헤아리고, 받쳐줌으로써 무대적 가치를 안내한 연출,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것을 정확하게 수행해낸 배우에게 신회를 가질 수 있게 한 공연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명한 질감의 차이를 드러낸 더블캐스팅의 간극은 이 작품에 대한 반응을 분열시키는 데 일조한 것이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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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그 외 거론된 우수작품들
극단 그린피그의 <빨갱이, 갱생에 관한 연구>(공동창작, 윤한솔 연출)
두산아트센터의 <가모메>(성기웅 각색, 타다 준노스케 연출)
공연창작집단 뛰다의 <고통에 대한 명상>(공동창작)
극단 백수광부의 <죽음의 집2>(윤영선 원작, 최치언 재창작, 이성열 연출)
2013년 12월 16일
연극평론가협회 회장 허순자
출처 : <한국연극>2014.01호 P76-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