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생각을 정리하여 말이나 글로 정확하게 표현하는 것은 그다지 쉬운 일은 아니다. 우리는 그런 사실들을 여러 가지 상황을 통해 경험해 왔고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느끼고 있을 지도 모른다. 물론 사람에 따라 많은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말로는 자신의 생각을 아주 그럴듯하게 펼치면서도 막상 그것을 글로 써 달라고 하면 벌레 씹은 표정을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글로는 자신의 생각을 간단 명료하게 잘 표현해 놓고서도 말로 설명해 달라고 하면 연방 좌우로 고갯질을 하는 사람도 있다.
이러한 현상을 통해 우리는 말과 글의 차이점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서 표현한다는 점에 있어서는 말과 글이 공통점을 가지고 있으나, 말은 음성 언어를 매개체로 삼고 있는데 반하여 글은 문자 언어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크게 다르다. 다시 말해서 말은 모국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는 힘들여 배우지 않아도 성인이 되면 유창하게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글은 말과는 달리 문자 체계, 맞춤법, 문장 구조 등을 배워야 하기 때문에 개인의 능력에 따라 많은 차이가 나타나게 된다.
예를 들면, 늦은 가을날 창가에 앉아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문득 소식이 끊긴 옛 친구에게 편지라도 한 장 쓰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책상에 앉아 펜을 들고 쓰기 시작한다.
“보고싶은 친구에게!
아침 저녁으로 제법 쌀쌀한 바람이 불고 있다.
벌써 가을인가 보다.”
그런데 이렇게 인사말을 쓰고 나면, 그 다음 할 말이 쉽게 생각나지 않는다. “다음엔 무슨 말을 쓸지, 어디부터 시작해서 어떻게 끝내야 할까?” 그렇게 많았던 하고 싶은 말들이 갑자기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마침내 머릿속이 텅 비어 버린 것 같은 느낌을 갖게 된다. “왜 이럴까?”, “아까는 쓰고 싶은 말이 많았는데……”하고 중얼거리면서 몇 번인가 뒤적이다가 결국에는 편지 쓰는 것 자체를 포기해버렸던 경험을 누구나 한 번쯤은 경험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예를 통해서 우리는 말과 글의 차이점을 확연히 느낄 수 있다. 글을 쓴다는 것, 더욱이 좋은 글을 쓴다는 것은 말과 글의 차이점을 확연히 느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글을 써야 할 기회가 올 때마다 자기 자신에게 묻는다. “나는 왜 이렇게 글쓰는 재주가 없을까?” 그리고는 “글쓰는 재주는 천부적인 것이라고 하는데, 우리 집안에는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 당연한 일이지.”라고 곧바로 조상 탓으로 돌리곤 한다.
그러나 글쓰는 작업이 아무리 어렵다고 해도 교양인임을 자처하는 우리가 어떤 노력도 기울이지 않고 그냥 포기해 버릴 수만은 없다. 왜냐하면 마술사가 끊임 없이 연구하고 노력하여 새로운 마술을 개발하듯이 글을 쓰는 작업도 훈련에 의해서 얼마든지 향상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나는 왜 글을 쓰지 못하는가?’에 대한 답을 꼼꼼히 찾아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면 글쓰는 것을 어렵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체로 느끼고 있는 두 가지 이유에 대하여 살펴보자.
첫째, 막연히 “잘 써야지”라고 하는 강박 관념 때문일 것이다. 글을 잘 쓰려면 먼저 주제는 무엇으로 정할 것인가. 어떤 제재를 수집해야 할 것인가. 어떻게 구성을 할 것인가 등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야 한다. 그런데 그와 같은 과정이 생략된 채 그냥 막연히 잘 써야겠다는 의욕만 앞서 있기 때문에 글을 잘 쓸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잘 써야지”라고 하는 강박 관념에서 야기되는 불안감과 중압감에서 벗어나야만 한다. 그래야만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것이다.
둘째, 글이란 천부적인 재주를 지닌 사람이나 학식과 덕망이 높은 사람들만이 잘 쓸 수 있다는 잘못된 통념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바로 이러한 통념이 우리의 글쓰기를 방해하고 있는 것이다. 신분의 차별이 뚜렷했던 중세 시대에는 글을 쓸 수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특권 의식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문맹에서 벗어났을 뿐만 아니라 고등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다양한 직업에 종사하는 각계 각층의 사람들이 남녀 노소를 불문하고 글을 쓰고 있다. 따라서 글 쓰는 작업이 어떤 특권 계층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는 전근대적인 사고에서 빨리 벗어나야만 한다. 그래야만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것이다.
요즈음 우리는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시간을 매스-미디어의 홍수 속에 묻혀 살고 있다. 기업 경영자의 자서전이 베스트 셀러가 되고, 전업 주부들이 시인과 소설가로 등단하는 이 시점에서 이제 글쓰는 작업은 어느 특정인의 전유물이 될 수 없다. 그것은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주어진 일상 생활의 한 부분인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글을 함부로 아무렇게나 써도 괜찮다는 것은 아니다. 프랑스의 철학자 뷔풍(G. Boffon. 1707~1788)이 말한 “문체는 곧 사람이다”에서 알 수 있듯이, 글 속에는 그 사람의 사상과 인격이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아무리 하찮은 글을 쓸 경우일지라도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안된다.
따라서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먼저 “글을 잘 써야지”라고 하는 강박 관념에서 오는 불안감·중압감 그리고 특권 계층만이 글을 잘 쓸 수 있을 것이라는 잘못된 통념에서 벗어나야만 한다. 그런 다음에 글을 쓰는 절차를 익혀야 한다.
그러면 지금부터 좋은 글을 쓰기 위한 자세와 절차에 대해서 살펴보기로 하자.
1. 좋은 글을 쓰기 위한 자세
2. 좋은 글을 쉽게 쓰는 절차
1) 주제 정하기
2) 주제문 작성하기
3) 제재를 수집하고 정리하기
4) 구상과 구성 및 개요 작성하기
5) 집필하기
6) 퇴고하기
이처럼 글을 쓰기 위한 기본 자세를 갖추고 올바른 절차에 따라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여 기술하는 방법을 익힌다면, 지금보다 훨씬 구체적이고 체계적이며 완성도가 높은 글을 쓸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한 자세
우리는 흔히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남의 글을 많이 읽고(多讀), 많이 생각하고(多商量), 많이 써보아야(多作)한다고 이야기 한다. 물론 다독·다상량·다작 등이 좋은 글을 쓰기 위한 기본 자세라는 점에는 반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이러한 조건들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요구된다. 현실적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글쓰는 작업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는 것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각자의 소양에 따라 좀더 나은 글을 쓸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지 않고도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방법으로는 근면성, 진실성, 사명감, 관찰력, 상상력, 독창성…등과 같은 정신적 자세를 들 수 있다. 이러한 정신적 자세를 갖추는 데에는 어떤 전문적 자식이 필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누구나 쉽게 습득할 수 있다. 그러면 좋은 글을 쓰기 위한 정신적 자세 중에서 근면성, 진실성과 사명감, 관찰력과 상상력 등에 대하여 살펴 보고자 한다.
1. 근면성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다양하고 풍부한 자료가 필요하다. 이러한 풍부한 자료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부지런해야 한다. 자료 수집의 한 방편으로는 메모하는 습관을 꼽을 수 있다. 왜냐하면 사람의 기억력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가 생각났다고 하더라도 즉시 메모해 놓지 않으면 얼마 가지않아 그 아이디어는 기억 속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리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평소에 언뜻언뜻 떠오르는 생각이나 주위에서 일어나는 에피소드 같은 것들을 잊어버리기 전에 즉시 메모해 두었다가 시간이 있을 때마다 주제별로 정리해 놓는 습관을 기르는 것이 좋다. 그렇게 하면 지금 당장은 아닐지라도 언젠가는 좋은 자료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메모하는 습관을 가질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이미 글을 쓸 수 있는 다양하고 풍부한 자료를 갖고 있는 것과 같다. 그리고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정신적 자세 중 근명성을 이미 충족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이하윤(1906~1974)의 「메모장」을 읽으면서 메모 습관의 필요성과 중요성에 대하여 살펴보자.
나는 수첩도, 일정한 메모 용지도 잘 사용하지 않는다. 아무 종이거나-원고지도 좋고, 공책의 여백도 가릴 바 아니다.-닥치는 대로 메모가 되어, 안팎으로 상하 종횡으로 쓰고 지워서, 일변 닳고 헤지는 동안에 정리를 당하고 마는지라, 만일 수첩을 메모지와 겸용한다면, 한 달이 못 가서 잉크 투성이로 변할 것이다.
불을 끄고 자리에 누웠을 때, 흔히 내 머리에 떠오르는 즉흥적인 시문詩文, 밝은 날에 실천하고 싶은 이상안理想案의 가지가지, 나는 이런 것들을 망각의 세계로 놓치고 싶지않다. 그러므로 내 머리맡에는 원고지와 연필이 상비常備되어 있어, 간단한 것이면 어둠 속에서도 능히 적어 둘 수가 있다.
가령, 수건과 비누를 들고 목욕탕을 나서다가 무슨 생각이 머릿속에 떠오르면, 나는 이것을 잊을까 두려워, 오직 그 생각 하나에 마음이 사로잡히게 되나, 거기서 연상聯想의 가지가 돋치는 다른 생각 때문에, 기록할 때까지 기억해 두지 않으면 안 될 수효가 늘어, 점점 복잡하게 된다든지, 또는 큰 길을 건널 때 자동차를 피하다가, 혹은 친구를 만나 인사와 이야기하는 얼마 동안, 깨끗이 그 생각을 잊어버리는 일이 있다. 생각났던 것을 생각하나,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아내지 못할 때의 괴로움과 안타까움은 거의 나를 미치기 직진까지 몰아가곤 한다.
그러므로 목욕이나 이발 시간같이, 명상의 시간이 주어지면서도 연필과 종이가 허락되지 않는 때처럼, 나 같은 메모광에게 있어서 부자유한 시간은 없는 것이다.
- 중략 -
요컨대, 내 메모는 내 물심양면物心兩面의 전진하는 발자취며, 소멸해 가는 전 생애의 설계도設計圖이다. 여기엔 기록되지 않는 어구語句의 종류가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광범위한 것이니, 말하자면 내 메모는 나를 위주로 한 보잘 것 없는 인생 생활의 축도縮圖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쇠퇴해 가는 기억력을 보좌하기 위하여, 나는 뇌수의 분실分室을 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하윤, 「메모광」)
2.진실성과 사명감
쓰기 싫은 글을 억지로 쓴다거나 원고 마감 시간에 쫓겨 마지못해 글을 쓴다고 생각해 보자. 그런 자세로 글을 쓴다면 어떻게 좋은 글이 나올 수 있겠는가? 글은 억지로 마지못해 써서는 안된다. 안쓰고는 견딜 수 없을 만큼의 강렬한 내적 충동이 있을 때 써야만 좋은 글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진실된 마음으로 사명감을 가지고 써야 할 것이다.
앞으로 젊은이들은 취직하기 위하여 ‘자기소개서’를 작성해야만 할 경우가 때때로 생길 것이다. 이때 미사여구만 잔뜩 늘어놓거나 진실성이 결여된 허황된 글을 쓴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부득이지문不得已之文”에서 알 수 있듯이 진실성과 사명감을 가지고 글을 쓴다면, 심사위원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포화가 빗발치는 전장의 모습을 생생하게 전달해야 하는 종군 기자의 경우를 살펴보자. 만약 그에게 전쟁의 비참한 현장을 취재해서 고발해야 한다는 진실된 마음과 투철한 사명감이 없다면, 종군 기자로서의 임무 수행이 전혀 불가능할 것이다.
동서 고금을 통해 가장 사명감이 투철한 글을 뽑으라고 한다면, 주저 없이 제갈공명諸葛孔明 (181~234)의 “출사표出師表”를 드는 사람들이 많다. 아마도 출사표에는 늙은 신하의 우국충정이 뚜렷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읽으면서 울지 않는 사람은 충신이 아니라는 말까지 낳고 있다. 이처럼 이 글이 만고의 명문으로 후세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그 글 속에 녹아 있는 제갈공명의 투철한 사명감 때문일 것이다.
이와 같은 진실성과 사명감이 담겨 있는 글은 종류와 형식에 관계 없이 읽는 이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비록 편지 한 장일지라도 우리는 진실된 마음으로 사명감을 가지고 써야만 한다. 그러면 편지를 받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좋은 글이 될 것이다.
3. 관찰력과 상상력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사물을 주의 깊게 살펴보는 관찰력과 풍부한 상상력이 필요하다.
상상력이 결여된 관찰이란 단순히 사실의 재현에 지나지 않으며, 관찰력이 결여된 상상이란 허황된 공상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면 염상섭(1897~1963)의 「표본실의 청개구리」를 읽으면서 관찰이 결여된 상상력에 대하여 살펴보자.
내가 중학교 이년 시대에 박물 실험실에서 수염 텁석부리 선생이 청개구리를 해부하여 가지고 더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오장을 차례차례로 끌어내서 자는 아기 누이듯이 주정酒精에 채운 후에 옹위하고 서 있는 생도들을 돌아다보며 대발견이나 한 듯이.
“자 여러분, 이래도 아직 살아 있는 것을 보시오.”
하고 뾰족한 바늘 끝으로 여기저기를 콕콕 찌르는 대로 오장을 빼앗긴 개구리는 진저리를 치며 사지에 못박힌 채 벌떡벌떡 고민하는 모양이었다.
<염상섭, 「표본실의 청개구리」>
이 소설은 우리 나라 최초의 자연주의 소설로 뛰어난 묘사의 사실성이 문장의 특징이라고 극찬을 받아 왔다. 그러나 실험 장면의 묘사 부분을 자세히 살펴보면 관찰이 결여된 채 단순히 상상력에 의존하여 쓰여졌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즉 개구리는 찬피 동물이므로 배를 절개해도 뜨거운 김이 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오장을 차례차례 끌어내어’라고 묘사한 것은 자연주의 기법의 생명인 관찰력을 배제한 채 작가의 의도적인 상상력에 의해 기술된 것임을 방증하고 있다.
그러므로 관찰력이 결여된 단순한 상상력만으로는 좋은 글을 쓸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러시아의 대문호인 도스토예프스키(F. M. Dostoevski, 1821~1881)의 「백치」에는 독충인 전갈을 묘사한 부분이 나오는데, 독충의 묘사 부분을 따라 그대로 모형을 만든 결과 실물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전갈의 모형을 만들 수 있었다고 한다. 이것은 글을 쓰는데 있어서 관찰력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뒷받침해 주고 있다.
그러면 플로베르(G.Flaubert. 1821~1880)와 모파상(G. de Maupassant. 1850~1893)의 다음과 같은 일화를 통해서 관찰력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다시 좀더 알아보자.
프랑스의 자연주의 작가 플로베르는 ‘일물일어설一物一語說’을 강력히 주장했다. ‘일물일어설’이란 어떤 사물이나 사건을 표현할 때, 거기에 가장 적합한 단어는 오직 하나 뿐이니 그 단어를 찾을 때까지 붓을 들지 말라는 것이다. 이 말은 어떤 사물을 표현할 때 누구나 다 똑같은 표현을 찾으라는 뜻이 아니고 표현할 대상을 면밀히 관찰하여 자신의 능력 한계 내에서 가장 적합한 표현을 찾았을 때까지 쓰지 말라는 것이다.
플로베르에게 제자인 모파상이 몇 년이 지나도록 등단시켜 주지 않는 이유를 묻자, “자네가 우리 집을 그렇게 오랫동안 드나들었단 말인가. 그렇다면 우리집에 오르기까지 계단이 모두 몇 개인 줄 아는가? 라는 플로베르의 물음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 일화는 관찰력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우리에게 일깨워 주고 있다. 그 후 모파상은 리얼리즘 수법을 체득하여 세계적인 소설가가 되었음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처럼 사물에 대한 세밀한 관찰은 상상력을 동반하게 된다. 상상력이란 정밀한 관찰의 마지막 단계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일어나는 정신적 결정체이다. 즉 관찰과 상상은 서로 밀접한 관계에 있다.
그러면 고려 선왕宣王 때 김황원(1045~1117)의 일화를 통해 관찰의 극점에서 일어나는 상상력에 대하여 살펴보자.
김황원은 평양의 부벽루에 올랐다가 그 곳의 풍광을 노래한 시구들이 한결같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자. 모두 태워버리고 자작시를 지어 걸어 놓으려고 작정했다. 그러나 막상 시를 지으려고 하니 도도하게 펼쳐 있는 풍광에 압도되어 한 줄도 짓지 못했으며, 해질 무렵이 되어서야 겨우 칠언 대구 하나만을 지었다고 한다.
長城一面溶溶水(긴 성 한쪽으로 도도히 흐르는 물줄기.)
大野東頭點點山(넓은 들 동쪽머리엔 아득하게 펼쳐진 산과 산.)
김황원은 끝내 다음 대구를 얻지 못한 채 통곡하며 내려왔다고 한다. 이것은 부벽루에서 바라본 풍광에 지나치게 압도되어 미쳐 상상의 날개를 펴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후 며칠이 지난 다음에야 각인되어 있던 풍광이 상상으로 승화되었고, 비로소 다음 대구를 지어 완성할 수 있었다고 한다.
昔聞宋玉悲秋氣(옛날 송옥은 가을 바람에 슬퍼했다고 하는데,)
今見黃元 哭夕陽(오늘 황원은 저녁 노을에 감동하여 오는구나,)
이같이 글의 정확성과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관찰력과 상상력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좋은 글을 쉽게 쓰는 절차
1.주제 정하기
아무런 생각 없이 끄적거린 낙서에도 어떤 감정이나 생각이 담겨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남에게 읽히기를 바라고 의식적으로 쓴 글 속에는 당연히 어떤 주장이나 생각이 들어 있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모든 글을 대상으로 “무엇에 대하여 쓴 글인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이때 그 ‘무엇’에 해당하는 것이 바로 주제(theme) 이다.
우리는 흔히 한 편의 글 속에 담겨 있는 글쓴 이의 주장이나 사상을 주제라고 한다. 그러면 주제에 대한 사전적 정의 를 살펴보자.
□담화·문장·연구 등의 중심이 되는 문제(국어사전 금성출판사, 1991)
□양화, 문예 작품 등에서 작가가 표현하려는 근본적인 의도나 중심적인 사상(국어사전 동아출판사, 1983)
이처럼 주제란 글쓴 이가 나타내고자 하는 중심 내용이나 사상을 말하며, 그 속에는 글쓴 이의 철학과 인생관이 담겨 있다. 즉 글을 쓴다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사상이나 감정을 글로 형상화시켜 가시화(可視化)하는 작업이다. 그러므로 주제를 설정한다는 것은 어떤 특정한 소재에 대하여 갖고 있던 자신의 사상과 주장을 한 두 단어로 명확하게 형상화하는 작업이다.
주제는 가주제와 참주제로 나눌 수 있다. 가주제란 글의 중심 내용이기는 하지만 그 범위가 넓어서 막연한 주제라 부르고, 참주제란 그 글의 중심 사상으로 한정된 주제라고 부른다.
그렇기 때문에 주제를 정할 때에는 먼저 가주제假主題를 설정한 다음 가주제의 범위를 좁혀 구체화시킨 참주제를 설정하는 것이 좋다. 즉 먼저 막연한 주제인 가주제를 설정한 다음 이것을 구체화하여 한정된 주제인 참주제를 정하면 된다. 예를 들어 “사랑”이란 주제로 글을 쓴다고 하자. 이때 “사랑”은 막연한 주제인 가주제가 된다. 그리고 “사랑”중에서 나의 관심이 집중되고, 내 능력으로 자신 있게 쓸 수 있으며, 독자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것, 즉 “잊혀진 사랑”, “어머니의 숭고한 사랑”, “동성애”, “짝사랑”등으로 문제의 범위를 한정하여 구체화시킨 것이 참주제가 된다.
그러나 우리가 일반적으로 주제라고 할 때에는 참주제 즉 한정된 주제를 말한다. 이때 한정된 주제인 참주제는 재미있는 것, 자기가 잘 알고 있는 것 그리고 전달할 가치가 있는 것으로 정해야 한다.
글의 종류와 형식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겠으나, 글이란 남이 읽어 줄 것을 전제로 쓰여진 것이다. 우리는 흔히 일기란 자기와의 독백이므로 혼자만의 비밀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러한 일기조차도 내면의 깊숙한 곳에는 언젠가, 누구에겐가 읽혀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깔려 있는 것이다. 만약 그런 마음이 전혀 없다면 굳이 글로 남길 필요조차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안네 프랑크의 일기」는 단순히 한 소녀의 일기가 아니다. 이 일기는 당시 유태인들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조명할 수 있는 어떤 문학 작품보다도 더 훌륭한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통해서 비록 일기일지라도 미지의 대상을 전제로 쓰여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처럼 글이란 독자를 전제로 쓰는 것이므로, 글의 주제를 정할 때에는 독자에게 흥미를 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이 잘 알고 있는 것을 정해야만 한다. 만약 자신의 능력은 생각하지도 않고 무턱대고 멋있는 주제만을 정하려 한다면, 주제만 정해 놓고 한 줄도 쓸 수 없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고 자신의 능력으로 충분히 완성시켜 나갈 수 있으며 독자의 관심을 끌 수 있는 것으로 주제를 정해야 한다.
그 다음, 이 주제는 전달할 가치가 있는 것인가를 반문해 보아야 한다. 이미 다 알려진 사실이나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을 주제로 삼는다면 독자들에게 외면당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독창적이고 신기성이 있는 것을 주제로 삼아야 한다. 그리고 이 단계에서 주제의 범위를 구체화하여 한 두 단어로 요약하면 된다.
■ 주제의 설정
① 흥미 있는 것
② 자신이 잘 알고 있는 것
③ 전달할 가치가 있는 것
④ 독창적이고 신기성이 있는 것
2. 주제문 작성하기
주제를 설정한 다음에는 이 주제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할 주제문을 작성해야 한다. 주제문은 주제에 대한 나의 견해가 명확하게 드러날 수 있도록 하나의 완성된 문장으로 작성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주제문이 완성되어야 비로소 완전한 주제가 설정되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동성간의 사랑’이란 주제를 정했다고 하자. 이 주제만 가지고서는 이 글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전혀 알 수 없다. 그러나 ‘동성간의 사랑은 고귀하다’라든지, ‘동선간의 사랑은 불륜이다’라고 주제문이 제시된다면, 이 글은 전체를 다 읽지 않고도 글쓴 이의 견해나 관점에 대하여 명확히 알 수 있다.
따라서 주제문의 작성은 글의 성패를 가름할 만큼 중요하므로 다음과 같은 원칙에 따라 매우 신중하게 작성해야 한다.
□글쓴이의 견해나 관점이 명확하게 드러나도록 구체적으로 표현해야 한다.
□하나의 완전한 문장으로 표현해야 한다.
□단문으로 하되, 의문문이나 부정문은 피하고 평서문으로 작성해야 한다.
3. 제재를 수집하고 정리하기
주제와 주제문의 작성이 끝난 다음에는 이러한 주제를 뒷받침할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 이것을 제재 또는 화제라 하는데, 논문이나 기사문에서는 자료라고 부른다. 제재는 주제를 정확하고 재미있게 독자에게 전달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주제를 뒷받침할 수 있는 것, 근거가 확실한 것, 독자의 관심을 유도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하며 풍부하고 다양하게 수집하여 정리해야 한다. 평소에 메모하는 습관을 가진 사람은 제재의 수집에 있어서 시간을 절약할 수 있겠으나, 그렇지 않은 사람이라면 우리 주변에 있는 모든 언어 매체들을 대상으로 조사하여 수집정리하면 된다.
이와 같이 풍부하고 다양한 제재를 수집하기 위해서는 평소에 메모하는 습관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여행을 통한 다양한 경험과 독서를 통한 간접 경험의 축적을 바탕으로 사물에 대한 관찰·조사·청취 등을 통한 깊은 사색에 의해 이루어진다. 즉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신문·잡지는 물론이요 관련 서적을 통해 충실한 자료를 얻어야 하고, 필요하다면 직접 현장 조사를 함으로써 제재를 수집·정리할 수 있다.
제재의 수집 방법은 글의 종류에 따라 달라진다. 기행문이나 회의록에서는 그때 그때의 상황을 주의 깊게 관찰하고 시간과 공간의 배열 순서에 따라 정리하여 기술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논설문이나 논문에서는 주제의 선정에서 제재의 수집에 이르기까지 치말한 계획과 철저한 준비가 뒤따라야 한다. 만약 선행 연구에 대한 조사도 없이 주제가 좋다고 무작정 글을 썼을 때, 이미 똑같은 주제나 구성으로 발표된 다른 사람의 글이 있다면, 표절 시비에 말려들어 곤경에 빠지게 될 것이다.
표절(한글학회, 「우리말 큰사전」. 1991)이란, “시나 글 따위를 지을 때, 남의 것을 따다 자기것인 양 씀.”을 말하며 글쓰는 이에게는 가장 불명예스러운 일이다. 예술분야 특히 음악의 경우에는 요즈음도 표절 시비가 심심찮게 메스컴에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 문단에서도 간혹 표절 시비가 일어나고 있는데, 결국 당사자들은 글쓰는 작업을 영영 포기해야 하는 치명타를 맞게 된다.
따라서 그을 쓸 때에는 내가 쓰고자 하는 글과 유사한 글이 있는가를 먼저 조사해 보아야 한다. 그 다음에 남의 글이라도 자신의 주장과 유사하거나 같은 경우에는 인용부호(“ ”) 를 사용하여 인용하고 주註를 달아 남의 글임을 밝혀두면 된다. 이때에도 13줄 이상 인용할 경우에는 표절 시비가 일어날 수 있으므로 필요한 부분만 인용하고 적절하게 “ -중략-”을 사용하면 된다.
또 하나 주의해야 할 점은 풍부하고 다양한 제재를 자칫 주제의 초점을 흐리게 할 수도 있으므로 제재의 선택은 신중하게 해야 한다. 아무리 재미있는 제재라 하더라도 주제와 별로 관련이 없다면 과감하게 버려야 한다. 마치 정원사가 조경에 필요 없는 부분을 미련 없이 잘라버리듯이 주제를 뒷받침할 수 있는 제재와 그렇지 못한 제재를 가려내야 한다. 아깝더라도 꼭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되면 미련 없이 버려야 한다. 제재는 어디까지나 제재이기 때문에 아무리 많이 모았다고 하더라도 그것 자체가 글이 될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주제가 불분명하고 산만한 글이 되지 않도록 제재의 나열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4. 구상과 구성 및 개요 작성하기
주제와 주제문 그리고 주제를 뒷받침할 수 있는 제재의 수집이 끝났다면, 그 제재들을 어떻게 배치할 것인가를 구상한 다음 개요를 작성해야 한다. 구상이란 머릿속에 어렴풋이 정리되어 있는 글의 윤곽을 좀더 구체적으로 형상화하는 작업을 말한다. 마치 건축사가 건축물의 설계도를 그리기 전에 조감도를 그려보듯이 글의 윤곽을 그리는 작업이다.
구상에 대해서 「국어대사전」(이응백, p.239)에는 “예술작품을 창작하는데 있어 그 주제, 내용, 표현 형식 등 골자로 될 모든 요소의 구성에 관하여 계획함. 또는 극 계획 얼거리”라고 설명하고 있다. 즉 구상이란 글의 윤곽을 그려보는 계획안이다.
그러나 글이란 미리 구상한 계획안에 따라 그대로 써지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글을 쓰는 과정에서 생각이 바뀌는 경우도 있고, 외부의 압력에 의해 변경될 수도 있다. 논설문이나 논문은 비교적 계획안에 따라 충실히 쓰여지지만, 문예문은 구상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많이 있다. 특히 일간지의 연재 소설이나 라디오·텔리비전 연속극의 대본일 경우에는 애독자나 시청자의 요구에 따라 줄거리가 변경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와 같이 구상한 것을 구체화·체계화하여 글의 설계도를 그리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러한 과정을 구성 또는 개요 작성이라고 한다. 구성할 때에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점에 주의해야 한다.
첫째, 중심이 없는 산만한 글이 되지 않도록 주의할 것.
둘째, 요점이 분명하게 드러날 수 있도록 할 것.
셋째, 주제가 도중에 변경되지 않도록 초지 일관할 것.
구성의 방법에는 크게 전개적 구성과 종합적 구성으로 나눌 수 있다. 전자는 시간의 흐름과 공간의 배열 순서에 따라 구성하는 방법이므로 자연적 구성이라고 한다. 후자는 자신의 주장을 명확하고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배열하여 구성하는 방법이므로 논리적 구성이라고 한다.
전개적 구성에는 사건이 발생한 시간적 순서에 따라 제재를 배열하는 시간적 순서에 따른 구성 방법과 공간의 배열 순서에따라 제재를 배열하는 공간적 질서에 따른 구성 방법이 있다. 전자는 역사서, 회의록, 체험기 등의 기술에 적합하고, 후자는 기계의 구조, 생물의 형태, 기구표 등을 기술할 때 적합한 구성 방법이다. 그러나 기행문, 여행 안내서 등을 작성할 때는 이러한 두 가지 구성 방법을 적당하게 보완하여 작성하는 것이 좀더 효과적이다.
종합적 구성에는 단계식 구성, 표괄식 구성, 열거식 구성, 점층식 구성 등이 있다.
단계식 구성은 논리적 쳬계성이 강조되는 글을 작성할 때 효과적인 구성 방법인데, 삼단·사단·오단 구성 등으로 나누어진다.
삼단 구성은 서론·본론·결론 등으로 나누어 주제를 간결하고 명확하게 기술하는 구성 방법으로 논문이나 논설문 등의 기술에 적합하다. 서론은 글의 도입부로 문제의 제기, 문제의 의의, 선행 문제에 대한 검토, 문제의 해결 방안 등을 기술한다. 본론은 글의 핵심 부분으로 글쓴 이의 논지와 논증 과정의 타당성·객관성이 드러날 수 있도록 풍부하고 다양한 논거를 기술한다. 결론은 글의 마무리 부분으로 논증의 결과를 구체적으로 정리하고 아직 해결하지 못한 문제점과 그에 대한 전망을 제시한다.
■삼단 구성
① 서론(도입) : 발단
② 본론(전개) : 전개
③ 결론(마무리) : 결말
사단 구성은 한시漢詩의 절구絶句·율시律詩의 작법에서 유래된 것으로 기·승·전·결 등으로 나누어 기술하는 방법이다. 즉 삼단 구성의 본론 부분을 전개와 발전으로 나눈 방법이다.
■사단 구성
① 기起 : 문제의 도입(발단)
② 승承 : 문제의 전개(전개)
③ 전轉 : 문제의 발전(절정)
④ 결結 : 문제의 마무리(결말)
雨歇長堤草色多(비 그친 긴 둑에는 풀빛이 더욱 짙은데)
送君南浦動悲歌(그대를 남포로 떠나 보내니 슬픈 노래가 절로 나는구나)
大洞江水何時盡(대동강물이야 어느 시절에 마르랴)
別淚年年添綠波(해마다 이별의 눈물이 푸른 강물에 보태지는구나)
<정지상, 「送君」>
오단 구성은 삼단 구성의 서론과 본론 부분을 각각 두 단계로 나누거나, 사단 구성의 기부분을 두 단계로 나누어 기술하는 방법이다. 이 구성 방법은 독자로 하여금 글쓴 이의 주장을 따르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는 글에 주로 사용된다. 즉 설명문이나 광고 문안의 작성에 매우 효과적이다.
그러면 오단 구성에 속하는 글의 일반적 구조와 소설이나 희곡의 구성 단계를 비교해 보고자 한다.
■글의 일반적 구조·1
① 서론(prologue)
② 전개(development)
③ 절정(climax)
④ 하강(descending)
⑤ 결론(conclusing)
■글의 일반적 구조·2
① 화제의 도입
② 문제의 제기
③ 전개
④ 발전
⑤ 결론
■소설의 구성 단계
① 발단發端 : 사건이나 문제의 시작 단계
② 전개展開 : 사건이나 문제가 발전되는 단계
③ 위기危機 : 절정에 이르는 계기를 제시하는 단계
④ 절정絶頂 : 최고조의 긴장 상태에 이르는 단계
⑤ 결말結末 : 사건이나 문제가 해결되는 단계
■희곡의 구성 단계
① 발단發端 : 사건이 시작되면서 갈등이 야기됨
② 전개展開 : 사건이 복잡하게 얽히면서 긴장과 흥미를 고조시킴
③ 절정絶頂 : 대립과 갈등이 최고조의 긴장 상태를 이룸
④ 하강下降 : 사건이 반전하여 갈등이 풀려나감
⑤ 대단원大團圓 : 갈등과 대립이 해소되고 사건이 마무리 됨
그밖에도 신문이나 잡지의 기사문은 어떤 사실이나 사건의 전말을 객관적인 입장에서 간결하고 명확하게 전달하고 있다. 즉 글쓴 이가 자신의 생각을 배제한 채 독자들이 그 사건을 현장에서 직접 목격하고 있는 것처럼 쓰는 것이다. 이러한 기사문에서는 5W와 1H로 사건을 기술하는 육하원칙六何原則이 사용된다.
■육하원칙
① 언제(When) : 시간
② 어디서(Where): 장소
③ 누가(Who) : 인물과 대상
④ 무엇을(What) : 작용과 행위
⑤ 왜(Why) : 이유와 목적
⑥ 어떻게(How) : 수단과 방법
포괄식 구성에는 주제를 서두에 두는 두괄식과 주제를 말미에 두는 미괄식, 그리고 주제를 서두와 말미 양쪽에 두는 양괄식이 있다. 그리고 단락과 단락 사이의 긴밀성이나 논리적 연관성이 필요치 않은 경우에 효과적인 열거식 구성(카달로그식 구성)과 작은 사건에서 큰 사건으로 점차 증폭시킬 필요가 있는 경우에 효과적인 점층식 구성이 있다.
이상에서 설명한 구성 방법들을 도식화하면 다음과 같다.
개요는 얼개 또는 아우트라인(outline)이라고 하는데, 글의 전체적인 구상을 건축물의 설계도처럼 글로 작성한 것이다. 개요를 작성하는 이유는 어떻게 하면 주제를 좀더 효과적인 방법으로 정확하게 전달하느냐 하는 점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개요의 치밀성은 글의 성패를 좌우할 수 있으므로 정성을 다 해야 한다.개요는 항목 표현상의 분류에 따라 항목 개요와 문장 개요로 나누어진다. 항목 개요는 각 항목을 간결한 어구로써 층위적으로 표현한 것이고, 문장 개요는 각 항목을 간결한 문장으로 만들어 층위적으로 표현한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항목 개요와 문장 개요는 별개의 것이 아니다. 항목 개요의 각 항목들을 문장으로 작성한 것이 바로 문장 개요가 되는 것이다.
그러면 “술의 단점”이라는 주제로 글을 쓸 경우, 항목 개요와 문장 개요의 작성에 관한 실례를 살펴보자.
제목 : 술의 단점
주제문 : 술은 인간에게 정신적·육체적 해악을 끼친다.
<항목 개요>
1. (서론) 술과 인간의 관계
2. (본론) 술의 단점
1) 정신적인 면
2) 육체적인 면
3) 생활적인 면
3. (결론) 술문화의 개설 방안
<문장 개요>
1. (서론) 술과 인간의 관계는 이로움보다 해악이 크다.
2. (본론) 술은 정신·육체·생활면에서 인간에게 이로움보다 해로움이 더 크다.
1) 술은 기억력을 감퇴시킬 뿐만 아니라 의지 박약자의 도구가 된다.
2) 술은 중독뿐만 아니라 다른 질병과의 합병증을 유발할 수 있다.
3) 술은 시간과 금전의 낭비를 가져온다.
3. (결론) 술의 해로움을 홍보하여 우리의 술문화를 개선하자.
이러한 구성 방법의 선택과 개요 작성은 글쓴이의 주장을 구체적이고 체계적으로 기술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효과적으로 명확하게 전달 할 수 있다.
그러나 구성 방법의 선택과 개요 작성은 글의 종류나 글쓰는 이의 능력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시선詩仙으로 불리는 이태백(李太白, 701~762)은 ‘술 한말에 시 백 편’에서 알 수 있듯이 즉흥적인 시를 쓰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시성詩聖으로 불리는 두보(杜甫, 712~770)는 이태백과는 달리 엄격한 규칙을 지키면서 치밀하게 구성하고 여러 번의 퇴고를 거쳐 한 편의 시를 지었다. 이것은 시인의 시풍에 따라 시 작법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칠보시七步時”는 조식(曹植, 192~232)이 일곱 걸음만에 한 편의 시를 지어야 하는 절대 절명의 순간에 지은 시인데, 바로 구상과 구성 및 개요 작성이 동시에 이루어진 한 예이다.
건안建安문학의 융성을 가져온 위왕魏王 조조曹操는 무장이었지만 시문을 애호하였고, 작품도 많이 남겼다. 그의 영향을 받은 맏아들 조비(曹丕, 186~226)와 셋째 아들 조식曹植도 글재주가 뛰어났다. 당대의 대가들도 조식의 시재詩才를 칭송했다. 그래서 조식을 더욱 총애하게 된 조조는 한때 조비를 제쳐놓고 조식으로 하여금 후사後嗣를 잇게 할 생각까지 했었다. 조비는 어릴 때부터 조식의 글재주를 시기했고, 후사 문제까지 불리하게 되자 더욱 증오했다고 한다.
조조가 죽은 뒤 위왕을 세습한 조비는 후한後漢의 헌제(獻帝, 189~226)를 폐하고 스스로 제위帝位에 올라 문제(文帝, 220~226)라 일컫고 국호를 위魏라고 했다. 어느날 문제는 동아왕東阿王으로 책봉된 조식을 불러, “일곱 걸음을 옮기는 사이에 시를 짓도록 하라. 만약 짓지 못할 때에는 중벌을 면치 못할 것이니라.”라고 하명했다.
조식은 걸음을 옮기며 이렇게 읊었다.
煮豆燃豆朞(자두연두기) 콩대를 태워서 콩을 삶으니,
豆在釜中泣(두재부중읍) 가마솥 속에 있는 콩이 우는구나!
本是同根生(본시동근생) 본디 같은 뿌리에서 태어났거만,
相煎何太急(상전하태급) 어찌하여 이다지도 급히 서로 볶아대는가!
조식이 ‘같은 부모 밑에서 자란 친형제 사이인데 어찌하여 이다지도 심하게 핍박逼迫하는가’라는 원망의 뜻이 담긴 시를 일곱 걸음만에 읊자, 문제文帝는 얼굴을 붉히며 부끄러워했다고 한다.
이러한 일화는 글쓰는 이의 능력과 취향, 글의 종류에 따라 구성의 과정이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시時 작법의 경우에는 구상만 필요하지 구성 방법이나 개요 작성이 필요없는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시는 전체 분량이 짧기 때문에 작법에 있어서 소설이나 논문과는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조지훈(1920~1968)의 「시의 비밀」을 보면, 시 작법에 있어서 구성과 개요 작성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 수 있다.
내가 ‘참 승무’를 보기는 열아홉 살 적 가을이다. 그 가을 어느 날 수원 용주사에는 큰 재齎가 들어 승무 외에 몇 가지 불교 전래의 고전 음악이 베풀어지리라는 소식을 거리에서 듣고 난 나는 그 자리에서 곧 수원으로 내려가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밤 나의 정신은 온전한 예술정서에 싸여 승무 속에 용입되고 말았다.
재가 파한 다음에도 밤 늦게까지 절 뒷마당 감나무 아래서 넋 없이 서 있는 나를 깨닫지 못하였던 것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나는 시정을 느낄 때 뜻 모를 선율이 먼저 심금에 부딪침을 깨닫는다. 이리하여 그 밤의 승무가 준 불가사의한 선율을 안고 서울에 돌아온 나는 이듬해 늦은 봄까지 붓을 들지 못하고 지내왔었다. 춤을 묘사한 우리 시가로 본보기가 될만한 것이 아직 없을 때이라 나에게는 오직 우울밖에 가중되는 것이 없었다.
이와 같이 한 마디의 언어, 한 줄의 구상도 찾지 못한 채 막연한 괴롬에 싸여 있던 내가 승무를 비로소 종이 위에 올리게 된 것은 스무 살 되던 해의 첫 여름의 일이다. 미술 전람회에 갔다가 김은호의 ‘승무도’ 앞에 두 시간을 서 있은 보람으로 나는 비로소 7, 8매의 스케치를 가질 수 있었다. 움직임을 미묘히 정지태로 포착한 이 한 폭의 동양화에서 리듬을 찾을 수 있는 것은 당연한 발견이었으나, 이 그림은 아마 기녀의 승무를 모델로 한 성싶어 내가 찾는 인간의 애욕 갈등 또는 생활고의 종교적 승화 내지 신앙적 표현이 결여되어 그 때의 초고는 겨우 춤의 외면적 양자를 형상하는 정도의 산만한 언어의 나열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 그림을 통해서 내가 잡지 못해 애쓰던 어떤 윤곽을 잡을 수 있었던 것만은 사실이다.
나는 이 초고를 몇 날 만지다 그대로 책상 위에 버려둔 채 환상이 가져오는 소위 시수詩瘦에 빠지게 되었으니 이 승무로 인하여 떠오르는 몇 개는 아낌없이 희생하기 까지 하였으나 종시 뜻을 이루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러면 나는 용주사의 춤과 김은호의 그림을 연결시키고도 왜 시를 형성하지 못했던가? 이는 오직 춤을 세밀하게 묘사하면 혼의 흐름표현이 부족하고 혼의 흐름에 치중하면 춤의 묘사가 죽는, 말하자면 내용과 형식, 정신과 육체 무용과 회화의 양면성을 초극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내가 이것을 초극하고 한 편 시를 만들기는 또 다시 몇 달이 지난 그 해 10월이다. 구왕궁 아아굽에서 ‘영산회상靈山會相’의 한 가락을 듣고 난 다음날이었다. 아악부를 나서면서 나는 몇 개의 플랜을 세우게 되었으니 이것이 곧 시를 이루는 골자가 되는 것이다.
먼저 초고에 있는 서두의 무대 묘사를 뒤로 미루고 직접적으로 춤추려는 찰나의 모습을 그릴 것.
그 다음 무대를 약간 보이고 다시 이어서 휘도는 춤의 곡절로 들어갈 것.
그 다음 움직이는 듯 정지하는 찰나의 명상의 정서를 그릴 것.
관능의 샘솟는 노출을 정화시킬 것.
그 다음 유장한 취타에 따르는 의상의 선을 그리고 마지막 춤과 음악이 그친 뒤 교교한 달빛과 동 터오는 빛으로써 끝막을 것.
이것이 그때의 플랜이었으니 이 플랜으로 나는 사흘 동안 퇴고를 거듭하여 스무 줄로 된 한 편의 시를 겨우 만들게 되었다. 퇴고하는 데에도 가장 괴로웠던 것은 장삼의 미묘한 움직임이었다. 나는 마침내 여덞 줄이나 되는 묘사를 지워버리고 나서 단 두 줄로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이 접어 올린 외씨보선이여
라하고 말았다. 이리하여 나는 전편 십오 행의 다음과 같은 시 하나를 이루었던 것이다.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네라.
파르라니 깍은 머리 박사薄紗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빈 대臺에 황촉黃燭불이 말없이 녹는 밤에
오동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이 접어 올린 외씨보선이여
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
먼 하늘 한 개 별빛에 모두오고
복사꽃 고운 빰에 아롱질 듯 두 방울이야
세사에 시달려도 번뇌煩惱는 별빛이라
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
깊은 마음 속 거룩한 합장合掌인 양 하고
이밤사 귀또리도 지새우는 삼경三更인데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오래 앓던 작품을 완성하였을 때의 즐거움은 컸다 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처음 의도에 비해서 너무나 모자라는 자신의 기법에 서글픈 생각이 그에 못지 않게 컸던 것도 사실이다. 어떻든 구상한 지 열한 달, 집필한 지 일곱 달 만에 겨우 이루어졌다는 이야기로써 나의 승무의 비밀은 끝난다. 써 놓고 보니 이름 모를 승려의 춤과, 김은호의 그림과 같으면서 다른 또 하나의 승무를 만들게 되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이 춤은 내가 춘 승무에 지나지 않는다. 춤추는 승려는 남성이었는데 나는 니승尼僧으로, 그림의 여성은 장삼 입은 속녀였으나 나는 생활과 예술이 둘 아닌 상징으로써의 어떤 탈속한 여인을 꿈꾸었던 것이다.
<조지훈, 「시의 비밀」>
5.집필하기
글을 쓰는 도구는 종이와 연필, 붓, 펜, 타자기, 컴퓨터 등으로 세월의 흐름에 따라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개인 컴퓨터의 보급이 수백만 대를 넘긴 요즈음 컴퓨터에 익숙하지 못한 원로 작가들의 가장 커다란 고민은 도구의 선택 문제라고 한다. 겨우 익혀 놓은 타자기가 어느새 무용지물이 되어 버렸고, 또 다시 새로운 기계 앞에 앉아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야 하는 원로 작가들의 모습을 상상해 보면, 그것이 얼마나 커다란 공포이겠는가 하는 점을 쉽게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요즈음 청탁서를 받아 보면, 반드시 디스켓에 담아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을 통해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자신에게 가장 익숙한 도구를 선택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즉 컴퓨터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몰라도 그렇지 않은 사람이라면 굳이 거부감을 느끼는 컴퓨터 앞에 앉아서 생각을 정리하느라 진땀을 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매우 비효율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육체 노동과는 달리 매우 예민한 정식적 작업이므로 아무리 작은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글을 쓸 수 없게 하는 방해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아주 사소한 것처럼 보이는 필기 도구의 선택조차도 좋은 글을 쓰는 한 방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분위기의 조성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백일장이나 회의록처럼 글을 쓰는 시간과 장소가 이미 정해져 있는 경우에는 주어진 상황에 따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대부분의 경우에는 시간과 장소를 자기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기 때문에 될 수 있으면 조용하고 안정된 분위기를 만드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자기에게 익숙한 필기 도구를 선택하여 외적·내적 분위기를 만들어 쓴다면 좀더 나은 글을 쓸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일제 시대를 배경으로 기울어 가는 종가宗家를 지키려고 몸부림친 여인, 삼대三代의 삶을 추적한 「혼불」한 작품을 완성시키기 위해 17년 동안 병마에도 굴하지 않았던 최명희(1947~1998)는 매일 밤 12시가 되면 굵은 만년필을 잡아 새벽이 되어서야 놓았다고 한다.
6. 퇴고하기
아무리 글을 잘 쓰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집필이 끝난 다음에는 반드시 퇴고를 해야 한다.
퇴고堆敲는 당나라 때 시인인 가도(賈島, 777~841)와 한유(韓愈, 768~824)의 고사에서 비롯된 성어이다.
가도가 노새를 타고 가다 “이응의 유거에 제함”이라는 시상이 떠올랐다.
閒居隣竝少(한거인병소) 한가하게 사노라니 사귄 이웃 드물고,
草徑入荒園(초경입황원) 풀밭 사이 오솔길은 거친 정원으로 뻗었네,
鳥宿池邊樹(조숙지변수) 저녁 새는 연못가 보금자리를 찾는데,
僧推<敲>月下門(승추<고>월하문) 스님이 달빛 아래 문을 밀고(두드리고)있다.
<「湘素雜記」>
그런데 마지막 구절인 “승추(고)월하문<僧推<敲>月下門>”에서 추(推:밀다)’라고 해야 할지, ‘고(敲:두드리다)’라고 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한유의 권고로 ‘추(推)’를 ‘고(敲)’로 바꾸었다고 한다.
이와 같은 일화에서 비롯되어 시문을 지을 때 자구字句를 고치는 것을 추고推敲라 하게 되었고 한자의 원음에 따라 퇴고堆敲라고도 부른다. 그 이후 글의 종류에 관계 없이 집필이 끝난 다음에는 반드시 처음부터 다시 읽으면서 마무리를 짓는 퇴고가 글쓰기의 한 부분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그러나 글의 분량이 많은 경우에는 퇴고를 어디부터 시작해서 어떻게 고쳐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이 때에는 다음과 같은 퇴고의 세 가지 원칙을 따르는 것이 좋다.
① 부가의 원칙 : 부족한 부분을 덧붙이기
② 삭제의 원칙 : 불필요한 부분을 빼기
③ 일치의 원칙 : 구성을 전체적으로 살피며 재구성하여 일치시키기
이러한 원칙에 따라 다음과 같은 순서에 따라 차례로 퇴고를 진행하는 것이 좋다.
① 전체의 검토
② 문단의 검토
③ 문장의 검토
④ 용어의 검토
⑤ 표기법의 검토
⑥ 문장부호의 검토
⑦ 정서
⑧ 낭독
로버트 무어(R. Moore. 1956)는 퇴고를 거친 글이 도달해야 할 목표를 열 가지로 열거하고 있는데,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① 알기 쉬워야 한다.
② 주제는 가치가 있어야 한다.
③ 주제가 일관되게 나타나야 한다.
④ 자료는 구체적이며 실증적인 것이어야 한다.
⑤ 구성은 논리적이고 효과적이어야 한다.
⑥ 단락과 단락의 상호 관계가 긴밀해야 한다.
⑦ 내용이 정확하고 표현이 풍부해야 한다.
⑧ 용어는 보편 타당성이 있어야 한다.
⑨ 문법, 표기, 구두점, 서식 등이 맞아야 한다.
⑩ 독창성이 있어야 한다.
결국 퇴고란 자기가 쓴 글에 대한 자기 자신의 평가이다. 그러므로 퇴고하는 동안 끊임없이 위의 사항들을 자신있게 물어 마지막까지 글의 완성도를 높이려는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첫댓글시마을에서 가져왔습니다. 여기에 올려도 되는지... 뭐 모자 쓴 분들이 어떻게 하시리라 생각합니다. 머릿속이 비어 늘 글만 읽고 꼬리말 하나 남기지 못해도 늘 응원하고 있습니다. 세... 돈... 새... 실... 편... 칙... 심... 재...아... ... .... 식구들 모두 좋은 날 되십시오.
좋은 글이네요.. 저는 문장강화를 하기위한 하나의 방법으로서 예전에 주력하던 것이 하나 있는데요. 사물 하나를 갖고 30-40개씩 단문묘사를 해 보는 것이었답니다. A4용지 1/3 정도의 분량으로.. 30개정도.. 커피..볼펜...주전자..화분..개구리..바퀴..그날 눈에 띄는 것 닥치는대로.. 막상 작품에 들어가서 문장이 좀
축축 늘어지는 단점이 생기기는 하지만 사물을 문학적으로 보는 눈을 많이 키워준다고나 할까요... 저는 이 늘어짐을 경계하기 위해 "시"에 많이 매달렸고..지금도 그런 이유로 "시"에 매달리고 있답니다... 포괄적인 이론...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장단점을 빨리 깨우치는 것이 참 중요한것 같습니다. 저도 아직 노력중..
아..참 여기에 <문장연습>이라는 게시판이 있는데...그것이랑 비슷하답니다. 글심을 길러주는 것에는 아주 좋은 메뉴라고 생각해요.. 문장연습 게시판의 글들을 보면...누가 글심이 좋은지 쉽게 변별이 가능하답니다... 은행이파리님 같은 분들에서 글심이 좋다는 느낌..이 들더군요....단편소설 하나 덜렁 내 놓는
이론이란 기본기를 갖추기 위한 용도로 받아들인 다음에 창의력을 키워내세요.기본뼈대 없이는 어떤 창의력도 자기욕구분출이기 쉬우니까요. 그래서 자신을 먼저 버린 이후에 뼈대를 잡아 다시 자기를 채워야 한다는 말이 있는 것이지요. 본 게시물은 기초작문 전반에 걸친 내용이니, '독서작문' 게시판으로 이동시킬게요.
첫댓글 시마을에서 가져왔습니다. 여기에 올려도 되는지... 뭐 모자 쓴 분들이 어떻게 하시리라 생각합니다. 머릿속이 비어 늘 글만 읽고 꼬리말 하나 남기지 못해도 늘 응원하고 있습니다. 세... 돈... 새... 실... 편... 칙... 심... 재...아... ... .... 식구들 모두 좋은 날 되십시오.
매우 유용한 정보였습니다.
규격화 된 이론에만 지우치면 개성 있는 글을 쓰는데 걸리는 게 많아요.이론을 알고나서 버리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거 다들 아시죠? 좋은 자료 잘 보았습니다.
좋은 글이네요.. 저는 문장강화를 하기위한 하나의 방법으로서 예전에 주력하던 것이 하나 있는데요. 사물 하나를 갖고 30-40개씩 단문묘사를 해 보는 것이었답니다. A4용지 1/3 정도의 분량으로.. 30개정도.. 커피..볼펜...주전자..화분..개구리..바퀴..그날 눈에 띄는 것 닥치는대로.. 막상 작품에 들어가서 문장이 좀
축축 늘어지는 단점이 생기기는 하지만 사물을 문학적으로 보는 눈을 많이 키워준다고나 할까요... 저는 이 늘어짐을 경계하기 위해 "시"에 많이 매달렸고..지금도 그런 이유로 "시"에 매달리고 있답니다... 포괄적인 이론...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장단점을 빨리 깨우치는 것이 참 중요한것 같습니다. 저도 아직 노력중..
아..참 여기에 <문장연습>이라는 게시판이 있는데...그것이랑 비슷하답니다. 글심을 길러주는 것에는 아주 좋은 메뉴라고 생각해요.. 문장연습 게시판의 글들을 보면...누가 글심이 좋은지 쉽게 변별이 가능하답니다... 은행이파리님 같은 분들에서 글심이 좋다는 느낌..이 들더군요....단편소설 하나 덜렁 내 놓는
것보다 <문장연습>같은 것에 자주 참여하는 것이 기초를 튼튼하게 해주는 것이고 순발력도 높여준다고 생각해요...많이들 이용하시길...
고마워요! 프린트해야겠다~
나두..
이론이란 기본기를 갖추기 위한 용도로 받아들인 다음에 창의력을 키워내세요.기본뼈대 없이는 어떤 창의력도 자기욕구분출이기 쉬우니까요. 그래서 자신을 먼저 버린 이후에 뼈대를 잡아 다시 자기를 채워야 한다는 말이 있는 것이지요. 본 게시물은 기초작문 전반에 걸친 내용이니, '독서작문' 게시판으로 이동시킬게요.
글을 잘써야 겠다는 강박관념때문에 더 잘 안써지는 것 같아요. 흘러내려 가듯이 쓰면 될 꺼라 생각도 들고.. 노력을 많이 해야 겠어요 ....ㅜㅜ
아.. 나두 잘쓰고 싶다.
좋은 글 고맙습니다.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쌩감자님, 질문이 있어요. '글심이 좋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쉬운 글로, 짧게 대답해 주셨으면 해요. '시'에 쓰신 겹따옴표의 의미도 같이..
글쓰기의 어려움에 대한 견해는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좋은글 입니다. 가져갈께요.
좋은글 감사드립니다 훌륭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