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악 지형이 많은 우리 땅에서 지평선을 볼 수 있는 유일한 곳이 바로전라북도 김제와 만경 들판이다. 풍요로운 지평선과 시원한 수평선, 그리고 썰물 때면 드러나는 (갯)벌평선 등 3평선이 어울린 곳. 늦겨울 풍경이 정겹기만 하다. 서해안고속도로 서김제나들목을 빠져 나가 만경읍소재지에 이른 다음 서쪽으로 달리면 진봉반도가 시작된다. 북쪽의 만경강과 남쪽의 동진강 사이에 위치하면서 서해로 삐쭉 뻗어나간 땅이 바로진봉반도로 위쪽에는 진봉면이, 아래쪽에는 광활면이 자리잡고 있다.
■심포-별미집 즐비한 일몰 감상 명소진봉반도 서쪽 끝머리 부분에 심포라는 작은 포구가 숨어 있다. 백합조개 집산지로 유명한 심포에는 선착장이 두 곳. 주차장 쪽 선착장 부근에는 실뱀장어 잡이배를 비롯한 어선과 해태 채취선인 넙외기, 그리고 선외기들이 기항하며 또 다른 선착장에는 백합을 비롯해 죽합 바지락 피조개 등 각종 조개를 잡으러 나갔던 사람들을 실어 나르는 배들이 찾아든다.
본디 심포는 백합조개의 주산지였으나 주변의 드넓은 뻘이 새만금 보상이후 주인 없는 무주공산이 돼버려 남획되고 말았다. 하지만 백합 종패는 자리를 옮겨다니며 제 몸의 크기를 키우고 있어 멸종 단계를 논하기는 아직 이르다. 어쨌거나 개체 수가 현저하게 줄어든 것만은 사실이다. 그래서 심포어민들이 백합을 잡으려면 먼 바다까지 나가야만 한다. 요즘은 멀리 선유도, 장자도, 신시도가 있는 고군산열도까지 나간다.
잡아 온 백합은 선착장에 내려지자마자 흥정이 붙는다. 북한산 백합이수입돼 유통될 정도로 귀해져서 심포 포구 앞바다의 뻘에서 잡아오는 백합은 그야말로 금값이다. 가령 선착장 현장에서 1kg에 1만원하던 백합조개가 부근 횟집으로 옮겨져 여행객들에게 팔릴 때는 2만원으로 변한다.
그렇지만 이것도 싼 편이다. 심포를 떠난 백합의 값은 더욱 껑충 뛰기 때문이다. 심포는 일몰을 감상하기에도 좋다. 해는 새만금 간척지 공사로 육지와 연결될 운명의 고군산열도 뒤로 넘어간다.
심포 옆 바닷가에는 망해사가 자리한다. 절 마당 아래가 바로 바다이기때문에 절 이름도 ‘바다를 바라볼 수 있는 절’이다. 만경에서 심포로이어지는 702번 지방도를 달리다 잠시 오른쪽으로 빠지는 길이 나온다.
망해사로 들어가는 길이다. 망해사 입구의 작은 주차장. 곧장 휴게소 옆으로 난 숲길을 따라 올라가면 전망대가 나오고 주차장 아래로 내려가면망해사다. 우선 진봉산(72.2m) 낙조대라는 전망대에 오르면 아스라히 고군산열도가 눈에 들어온다. 전망대를 뒤로 하고 휴게소 아래의 내리막길로 들어서서 4기의 부도를 지나면 망해사다. 망해사는 본디 백제 의자왕2년(642)에 부설거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경내의 여러 건물 가운데낙서전은 조선 인조 때 진묵대사가 지었다고 하며 바다 쪽으로 한쪽이 튀어나온 ㄱ자형 건물이다.
■거전마을-너무 쓸쓸해서 시적인 바닷가진봉반도의 가장 서쪽 끄트머리에 자리한 거전마을은 그 흔한 횟집도 하나 없지만 차분한 분위기가 매력적인 바닷가 마을. 진입로가 다소 좁은 것이 흠이나 진봉면과 광활면을 잇는 지방도에서 1km만 마을 안으로들어가면 갑자기 가슴을 후련하게 만드는 바다와 개펄이 전개된다. 길은바다로 내려가는 초소 입구에서 끝난다.
거전마을 사람들은 심포와 이웃한 이 바다의 개펄에서 백합조개나 죽합조개 등을 채취하고 낚싯배를 운영하면서 생활한다. 자연산 백합은 바다에서 나는 최고의 고단백질 식품으로 강과 바다가 만나며 개펄이 발달한곳에 주로 산다. 백합은 뻘이 좋지 않으면 다른 곳으로 이사가버리고 한번 점프를 하면 자기 몸의 수십 배 높이까지 뛴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힘이 좋은 조개라고 알려져 있다.
백합은 겨울이면 개펄 속 60~70cm까지 깊숙이 박혀 있다가 봄에는 20~∼30㎝ 정도로 올라 온다. 크기에 따라 대·중·소·종표 네 가지로 나뉘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큰 것을 좋아하고 일본인 여행자들은 중간 크기의 백합을 선호한다. 해질녘이면 인근 횟집의 차량들이 거전마을로 한대, 두 대 모여든다. 거전마을 사람들이 채취한 조개를 사가기 위해서다.
거전마을과 작별하고 죽산면 방면으로 되돌아 나오자면 광활면 땅을 관통하게 된다. 진봉반도 위쪽의 진봉면에는 가끔씩 솔숲 우거진 동산이라도 솟아 있지만 아래쪽의 광활면에는 야산은 커녕 동산도 없다. 막힘 없는 지평선뿐이다. 한국 최대의 곡창지대라는 수식어가 정말 잘 어울리는땅이다. 이곳 사람들은 이들을 ‘징게 맹개 외얏밋 들’이라고 부른다.
‘김제 만경 너른 들’이라는 뜻의 사투리다. 전국에서 자생 소나무가 한 그루도 없는 땅, 광활면. 이 같은 들판은 일제 강점기 때 간척지 공사가 이뤄지면서 생겨 났다. 장장 10㎞를 넘는 일직선 도로. 그곳에서 여행자들은 지평선이 안겨다 주는 감흥에 젖어 가던 길 멈추고 사방으로시선을 던진다.
■그 밖의 명소들김제시 부량면 신용리에 가면 선조들의 농경생활을 엿볼 수 있는 벽골제가 있다. 벽골제는 제천의 의림지, 밀양의 수산제와 함께 삼한 시대의저수지로 알려져 있으며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저수지다. 조성시기는 백제 11대 비류왕이 재위하고 있던 330년쯤으로 추정된다. 벽골이란 김제의 백제 때 지명인 볏골을 한자로 옮겨 적은 것이다. 지금은 남쪽과 북쪽, 그리고 중앙 수문 자리에 거대한 돌기둥들이 남아 있고 수문 등도 복원됐다. 1998년 벽골제 앞에는 수리민속유물전시관(063-540-3225)이 문을 열었다. 이 전시관에는 4개의 전시실이 들어서 농업관련 유물 90종232점을 전시하고 있다. 연못, 정자 등을 갖춘 정원은 여행자들의 훌륭한 쉼터이다.
이 밖에 김제 나들이 코스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모악산 도립공원 내의 금산사와 귀신사 답사다. 금산사는 주말이나 휴일이면 인파가 붐비는것이 흠이긴 하지만 볼거리가 풍성하다. 국보 제62호인 미륵전을 비롯해서 건물이 많이 들어선 금산사는 백제 법왕 1년(599)에 창건됐다고 하며금산사 말사인 귀신사는 676년 의상이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귀신사 대적광전은 보물 제826호로 지정돼 있다.
또 김제역과 익산역 중간의 부용역이나 와룡역에 들러 호남선 열차가 지나가는 풍경을 감상하는 것도 유쾌한 일이다. 부용역은 역무원이라도근무하지만 와룡역은 근무자도 없는 정거장. 텅 빈 플랫폼은 여행자들의추억만들기 놀이터로 제격이다.
◆여행메모(지역번호 063): 김제시청 문화관광 담당 540-3224.망해사종무소 545-4356.김제에서 18, 19번 버스가 심포를 거쳐 하루 15회 정도 거전마을까지 들어간다. 숙박시설은 심포횟집단지 내에 심포장모텔(545-1662) 사보이장(544-6790) 등이, 금산사상가단지에 모악산장(548-4411) 동원장(548-4300) 등이, 김제시내에 귀빈장(544-2234) 동아파크장(545-2288) 등이 있다. 맛집으로는 심포에 김제횟집(543-6535) 바다횟집(543-6529) 심포횟집(543-3800) 등이 있다. 백합탕, 생합회, 죽합탕 등과 각종 회를 취급한다. 금산사 입구에는 산채백반을 내는 전주식당(548-4031) 김제식당(548-4097) 등이, 김제시내에는 매일회관(한정식·547-3345) 반야돌솥밥(돌솥밥·544-8220)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