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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주기-3
300~400km
이제 충남 대전을 지나가야 하기에 충남에 사시는
충남지맹의 박도훈님을 철석같이 붙어서 따라가야 한다.
경북지맹의 이희우선배님과 박도훈님도 피곤한 모습이 역력하고
자는 둥 마는 둥 대전의 유등천을 끼고
대전을 지난다.
가족들과 저녁 산책 나오신 분들과 함께 간다.
야간 깜빡이등을 장착하고 가는 모습이 의아했던지
만나는 분들마다 지금 무엇 하느냐며 물어 온다.
해남 땅 끝 마을에서 달려 왔다고 하니까 고개를 갸우뚱하며
어디까지 가느냐고 하시 길래 강원도 고성까지 간다고 하니까 입을 꾹 다문다.
아마, 정신 나간 사람으로 생각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정신 나간 사람이 한 두 사람이 아니고 뒤에서도
또 따라 오니까 다소나마 위안이 되었다.
유등 천을 다 벗어나기도 전에
잠에 취해서 비틀비틀 거린다.
신탄진을 거쳐서 청주를 향해서 가는 중이다.
유천냇가 주위라 습도가 높아서인지 아무 곳이나 누우면 잠잘 것 같다.
천막속에서 좀 자고나올 걸 후회를 하지만 이미 늦었다.
어제와 오늘 내린 많은 비 때문에 수량도 많고 유속도 빠르다.
후덥지근한 강바람을 몰고
흘러가는 물길이
춤을 추듯 출렁인다.
유등천은 거대한 수변공원으로 개발되어
시민의 휴식처로 탈바꿈 해가고 있었다.
여름엔 어린아이들이 멱도 감고 다이빙도 하며
종일토록 물장구치다 입술이
시퍼래져서야 개울물에서 나왔을 테다.
그리곤 너나 할 것 없이 얼굴은
새까맣게 그을려 다녔을 거고
겨울엔 얼음이 꽁꽁 얼어붙은 냇가에
강 끝까지 건널 수 있다는 안도감에
쾌재를 외치며
스릴을 맘껏 즐겼을 거다.
또한, 썰매도 타며 방학의 전부를
여기서 보내었을 거라 생각되었다.
다슬기와 버들치, 피라미,
미꾸라지도 많았을 것이다.
문득,
어렸을 때 불렀었던 '시냇물'이라는 동요가 생각났다.
시냇물은 졸졸 졸~졸~♬♬
고기들은 왔다갔다~
버들가지 한들한들~ ♬
꾀꼬리는 꾀꼴 꾀꼴~~♬♬
금빛옷을 차려입~고~ ~~♬♬
여름아씨 찾아왔다~♬
곱게곱게 차려입고~~~♬♬
시냇가에 빨래왔다~~♬
몇 번이나 반복해서 불렀는지 모른다.
비틀거리는 걸음걸이로
부르면 부를수록 어린 시절이 생각났다.
현재의 어두운 여름밤에 개구장이 고추친구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내가 어릴적 뛰어 놀던 뒤동산
담쟁이 덩쿨 타고 넘던 골목길
비스듬히 서 있던 돌담들이 즐비한 고향산천...
지금은 후들거리는 다리를 이끌고
천근만근인 눈꺼풀을 치켜 올리며
잠을 쫓으려 안간 힘을 쏟고 있다.
발악을 하고 있다.
혼미한 생각속에
흘러가는 대전의 유등천은 말이 없다.
가자! 어서가자!
쓰러질 때까지 한번 가 보자…….
충남의 박도훈님과 함께 잠이 와서 비틀거리며 가는데
도무지 길이 줄어 들지를 않는다.
길바닥엔 질퍽거리는 흙길이다.
젖은 곳이라도 벌러덩 눕고 싶다.
누우면 세상모르고 깊은 잠을 자 버릴까 염려되어
마음 데로 잘 수도 없다.
적당한 장소를 물색하다가
겨우 비를 피할 수 있는 다리 밑에 벌러덩 누웠다.
온 몸에 모기가 물어뜯었지만
아량 곳 없이 잘 수밖에 없다.
엄청난 잠이 쏟아 질 때는 모기도 잠을 쫓을 수는 없다.
1시간이 어느새 지나간다.
잠을 자 버린 시간만큼
또 관문제한 시간에 쫓겨야만 한다.
결코, 벌러덩 누워 잠을 자는 순간도
편안하지는 않다.
이제는 17번국도 신탄진 방면으로 가는데
537종단 때의 코스와 중복되는 길이라 익숙하다.
충북 청원군 현도면사무소(324k)에서 신탄진방향으로 청주를 향해서 가는 길은
두 번 모두 어둠속에 지나간다.
충남의 박도훈님과 울산의 이만식님을 놓쳐버리고 혼자서 지나갔다.
대략 혼자서 몇 시간을 가는데도
선수 한명 만날 수 없었는데 불현듯이 겁이 덜컹 난다.
내 앞에 몇 분이 지나갔는지 모르지만
내 뒤로 오는 분들은 모두 포기를 하신 모양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오랜 시간동안 앞서가는 사람도
뒤에 오는 사람도 만날 수 없었다.
식은땀을 흘리며 얼마나 달렸는지 모른다.
간신히 청주를 얼마 안 남겨 놓고
이만식님을 만나 얼마나 반가운지 하소연을 하였다.
어찌되었는지 모르지만 밤새 사람 한사람 만날 수 없었다고.
입에 거미줄 치겠다고 하였다.
어느새 날이 희미하게 밝아왔고 청주시청(344k)을 지나
350k지점 cp는 까마득히 멀기만 하다.
생각보다 cp가 멀리 있다고 느껴지는 건 알겠는데
찻길과 인도길이 많은 시내 길은 훨씬 시간도 많이 걸리지만 힘도 많이 든다.
청주 어떤 재래시장 앞을 지날 때에 신발밑창 바닥이 뜨거워 견딜 수가 없었다.
차라리 맨발로 가는 게 좋겠다는 생각도 간절히 들었다.
발바닥에 불이 난 모양이다.
안그래도 뜨거워 연신 물을 뿌리며 가고 있는데
도저히 안 되어 슬리퍼라도 바꾸어 신어야 되겠다고 여겨졌다.
지나가는 남자 행인에게 다짜고짜 내가 신은 신발과 슬리퍼를 바꾸어 신자고 하였다.
나의 행색을 보더니 어이가 없는 듯이 헛웃음을 짓는다.
느닷없이 아닌 밤중에 홍두깨 맞은 격으로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얼떨결에 가쁜 숨을 몰아쉬며 전남 해남 땅끝 마을에서 강원도 고성까지
국토종단을 하고 있는 중인데…….
자동 세팅된 것처럼 말이 줄줄 나온다.
아주 난감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우뚱 하더니 바꾸어 신는 건 괜찮은데
슬리퍼를 신고 거기까지 어떻게 가겠느냐는 안쓰러운 표정이다.
하도 다급하게 간청을 해서 인지 대뜸 슬리퍼를 벗어 주며 그냥 신고 가라고 한다.
그리고 내가 신었던 신발도 손에 들고 가란다.
시장바닥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이 희한한 거래를 지켜보게 되었다.
부끄러워 고개를 바로 들 수가 없었는데 그 사람은 얼른 가라며 손사래를 휘 휘 젓는다.
그 남자는 맨발로 그냥 바닥에 서 있다.
몇 번이나 뒤로 돌아보며 도저히 그냥 갈 수가 없었다.
다시 돌아가 전화번호라도 알려 주시면
새 신발을 택배로 붙여 드리겠다고 하니까 무슨 소리 하느냐며
마음 변하기 전에 빨리 달려가라고 한다.
혹시, 마음이 변해 버릴까봐 모여든 인파속을 도망치듯 빠져 나왔다.
허, 참 이거 괜히 아침 잘 먹고 시장에 나왔다가 신발 빼앗기고
또 맨발로 집에는 어떻게 들어가실 건지?
오늘 재수 엄청 없는 남자라고 생각되었다.
그래, 저 남자 분을 위해서도 꼭 강원도 고성까지 올라가야한다.
드디어 청주 신흥고를 거쳐 350k지점 cp에 도착을 하였다.
안면이 익으신 울산의 김광복님이 계셨다.
알고 보니 kumf울산지맹 김광복님이 아니고 서울강남지맹 조인석님이셨다.
몇 번을 만나 안면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아무리 보아도 두 분이 닮으신 것 같으며 지금도 분간할 수 없을 것 같다.
이제 겨우 반 정도를 달려왔는데 데자뷰의 초기정상이 시작되는 모양이다.
아직도 초반인데 대퇴부 근육이 뻐근하게 마비증상이 왔다.
관문에 도착하자마자 길바닥에 쫙 드러누웠다.
옆에서 지켜보던 kumf인천지맹회장이자 주로 총감독이신 박준형님은 어이가 없었는지
“나이 드신 분들도 다 해내시는데 나이도 젊은 사람이 왜 엄살을 피우느냐?”고 하신다.
밤새 졸리는 몸으로 여기까지 왔는데 잠이 확 달아나 버린다고 해야 할 것 같다.
내가 못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강원도 고성까지는 굴러가도 간다고 마음먹지 않았던가.
엄살을 피우지 말라는 다그침에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안쓰러워하시며 매몰차게 다그치는 마음은
모든 자원 봉사자님들의 한결같은 심정이었으리라.
청주의 350k지점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데 선수 응원 차에 오신 이영부님을 만났다.
반가웠다. 2008년도 종단 537k를 함께 했었다.
바짝 말라서 잘 달릴 수 있을까 염려되는 분이셨는데
내친김에 1500k도 무사히 완주하신 강철 같은 분이시다.
식당에서 커다란 수박을 쪼개어놓고 참가선수들의 애로사항과 뒷바라지를 아끼지 않으셨다.
만나자 마자 얼마나 반가운지 신발부터 먼저 바꾸어 신자고 하였다.
전자에 바꾸어 신었던 슬리퍼는 얼마 못 신고 벗어야만 했다.
어떤 신발일지라도 지금 내가신고 있는 신발보다는 편할 것이고
간절히 바꾸어 신고 싶었기 때문이다.
단번에 벗어 주시며 꼭 완주해야 한다며 용기를 주신다.
춘포 박복진 선배님이 만드는 Faab신발도 큐션과 기능성이
가격대비면에서 매우 우수한 신발이라 후반부에 신을 요량으로
아껴놓았기에 어쨌든 관문의 바꿈터까지는 버텨내어야 한다.
평소에 신발투정은 안하고 운동을 하는 편인데
지금은 신발 때문에 불평불만을 하고 있다.
충북 증평을 거처 화성을 지나가는데 날씨가 후덥지근하고
이제는 더위가 장난이 아니다.
그러더니 비가 쏟아졌다가 햇볕이 났다가를 수십 번 반복을 한다.
햇볕이 나는데도 한쪽 하늘가에서는 비가 오고 있다.
이런 날씨를 사람들은 호랑이 장가가는 날이라고 했다.
이러한 말의 어원을 단정내리기엔 부적절하지만 우리 민족은 우월한 남성상을
호랑이에 비유했으며 여자를 간교하고 꾀 많은 여우에 비유 하곤 했었다.
꾀가 많은 여우는 어느 날 호랑이와 마주치자 살기 위해서 묘책을 부렸다.
여우 왈,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세고 강하다는 것 보여줄게. 나를 따라와 보면 안다.”
호랑이 왈,
“쪼그만 게 한 입도 안 되면서 그럴 리가 있나? 한번 증명해 보라”
여우가 앞서 가고 호랑이가 그 뒤를 따라 가는데
정말로 모든 짐승들이 겁을 먹고 도망치는 게 아닌가?
여지껏 내가 동물의 왕국에서 최고라고 알고 있는데
앞서 가던 여우를 보고도 혼비백산 달아 날 줄이야?
호랑이는 여우 뒤을 따르는 자기를 보고 그러는 줄은 모르고
호랑이가 헷갈리며 아무 말도 못하고 그저 여우얼굴만 바라보고 있었다.
이참에 여우가 또 꾀를 부려 호랑이에게
“나랑 결혼해서 살면 이 세상 무서울 게 아무것도 없으니 나랑 결혼하자?”
온갖 여우 짓으로 호랑이를 꾀어 드디어 결혼을 하게 되었는데
그만 둘 사이에 질투를 한 이가 있었다.
사실은 그동안 여우를 짝사랑했던 구름이었다.
이 구름은 바보같이 먼발치서 결혼식을 올리던 호랑이와 여우의 모습을 바라보며
눈물만 흘렸다는 여우비에 얽힌 얘기이다.
볕이 나 있는 날 잠깐 오다 그치는 비에 달리는 주자들은
그때마다 우의를 수도 없이 벗었다가 입었다 반복 해야만 했었다.
먼발치에서 애써 미소를 지으며 질투심에 눈물 흘렸을 구름을 생각하니
그래도 견딜 만하고 코웃음까지 나왔다.
충북 음성군 백마령 터널(375k)을 향해서 가는데 양동이로 쏟아 붓듯이 비가 온다.
강한 정신력으로 무장하지 않으면 낙오되기 십상이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포기하거나 기권자는 이미
출발선수 79명 중에 34명이나 되었다.
400cp까지 43%가 포기하거나 기권을 하였다.
백마령터널을 향해서 가며 kumf강원지맹 부회장이신 한부석님을 만났다.
어둠이 내려앉는데 비틀비틀 거리는 모습이 예사로운 상황이 아님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고여 있는 빗물에 앞으로 내 디뎌야할 발걸음이 제자리걸음을 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옆 찻길엔 물위를 수상스키를 타듯 흙탕물을 튀기며 차량은 날아 다녔다.
이런 길에 중심을 잃고 찻길로 자꾸 들어간다.
눈앞에서 아찔한 광경을 보며 달리는 내내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발걸음은 무의식적으로 앞으로 내디뎌야 한다는 생각에 힘은 넘쳐 보이나
균형감각을 억지로 유지하려고 정신력으로 버티고 있었다.
살며시 뒤에 가서 팔을 잡고 말을 붙여보았다.
“한부석님 힘드시죠?”
뭐라고 중얼거리시는데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지금 옆에서 차가 날아다니는데 차량조심 하셔야합니다?”
큰소리로 외쳤는데 그래도 막무가내로 들려오는 대답소리는 활력이 넘쳐 우렁차게 들렸다.
물론 무슨 말인지는 모르지만 괜찮으며 염려 마라는 뜻인 것 같았다.
그래도 얼마 지나지 않아 또 그런 증상이 나타나
이번엔 직접 팔을 걸고 함께 가기로 하고 접근을 했다.
옆에 가서 보니까 손에는 과자 봉지(맛동산)를 쥐고선 입에 연신 넣고 계셨다.
쏟아지는 잠을 쫓기 위해서 발버둥치고 있는 모습에 마음이 아려왔다.
나를 보더니 과자봉지 째로 떠안긴다.
사양을 해도 막무가내로 손에 쥐어준다.
이 것 먹고 간섭하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는 듯일까?
아마 내 걱정은 손톱만큼도 하지 말고
오히려 내 보고 힘을 내라고 하시는 의사표시 같았다.
심한 데자뷰현상으로 오직 발목에 탄력스프링을 장착한 것같이
발걸음만 규칙적으로 움직인다.
잠을 쫓으려고 사투를 벌이는 분에게
내가 받아서는 안 되는 물건을 받은 것 같은 묘한 기분이었다.
빗물에 젖어 엉켜있는 튀김과자를 얼떨결에 받아 들고서 내 입에도 쑤셔 넣어보았다.
혀끝으로 느껴지는 그 달콤해야할 과자가 도무지 아무 단맛도 느낄 수 없었다.
아니! 달디 달게, 달콤해야 할 과자 맛을
나도 입안이 헐어서 못 느끼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되었다.
뿌연 시야 속에 발버둥 쳐 대는 부실한 몸뚱이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실낱같은 희망과 열정에 의지한 체 가고 있는 듯하다.
백마령(白馬嶺,해발204m)고개를 넘으며 400k 관문까지 남은 거리가 15k가 남았다.
현재의 속도로 간다면 분명 cutoff시간에 걸리고 만다는 계산이 나온다.
빗속에 속도를 내어야한다.
처절히 쏟아지는 빗속에 눈물고개란 말이 떠올랐다.
빗방울이 워낙 거세어 우의를 있었는데도 그 위에
머리와 어깨를 덮는 다른 비닐을 하나 더 걸쳐야 했었다.
차가운 빗줄기에 더 이상 체온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였다.
어느 누구도 checkout 당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는 시간이 경과하고 있다.
힘겹게 자신과 사투를 벌이는 동지를 뒤로하고 갈 수 밖에 없다.
한부석님을 추월해 가는 심정은 형언할 수 없이 서글프고 참담하며
비겁하게 느껴지기까지 하다.
충주시 이류면 대소원의 대소교근처 400k지점 cp(중화요리집의 국빈원)는 마치,
숨바꼭질하듯이 가장 깊은 곳에 숨겨놓은 듯이 위치해 있었다.
유독 나만 그렇게 느꼈었는지 모르겠다.
시간은 한 시간 남짓 여유가 있지만 내내 쫓기고 있다.
자칫 다른 길로 접어들면 종치는 것이다.
어디 길을 물어 볼 사람도 없거니와
빗속을 내닫는 차량을 세워 물어 볼 수밖에 없다.
세우려고 손을 들면 흙탕물만 튀기고 달려가기 일쑤이다.
초조하여 아무리 크게 고함을 질러도 들은 체 만 체이다.
억수같이 비가 내리는 낯선 거리에서
그렇게 초조하게 달리는 기분은 엉엉 소리 내어 울고 싶을 뿐이다.
큰소리로 운다고 내 심정을 누가 알지도 못할뿐더러
울어도 나의 길을 가르쳐 주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마음 놓고 울 시간도 없다.
이마를 타고 흘러내리는 게 땀인지 빗물인지 눈물인지 범벅이다.
뒤엉켜 입가에 느껴지는 맛은 짭짤할 뿐이다.
전봇대에 머리를 쳐 박혀 주저앉아도 좋으니
오직 내가 가고자 하는
그 길을 향해서 달려가야 한다.
저 멀리 불빛이 환하게 밝혀져 있고 환호하는 소리가 들리어
고개를 들어보니 400k통과를 알리는 환한 얼굴들이다.
한숨을 돌린다.
이제부터는 종반부이기에 자기관리를 얼마나 잘하고 왔는지 이제부터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