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러영화로 유명한 일본은 오랜 호러만화 강국이기도 하다. 일본 호러영화와 호러만화는 각기 다른 매력이 있다. <링> <주온> <착신아리> 등의 인기 높았던 일본 호러영화는 귀신의 존재를 현실화시켜 공포를 유발한다. 카메라 안에 잡힌 진짜 사람 옆에서 스멀스멀 다가오는 원령의 영상은 마치 실제인 듯 뇌리에 남는다. 각인된 영상은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순간만이 아니라, 집에 가서 누웠을 때도 떠오르게 되어 있다. 영화 속 귀신이 남긴 공포는 시간이 지나도 서서히 되살아난다. 반면 <소용돌이> <드래곤 헤드> <학교 괴담> 등의 일본 호러만화에서 중요한 것은 귀신 자체가 아니다. 만화는 영화보다 모든 것이 빠르다. 스토리 전개도 그러하고, 읽는 이가 그림과 내용을 머리에 남기는 속도로 영화보다 빠르다. 속도가 빠르면 새겨지는 깊이도 얕고 잊혀지는 속도도 빠르다. 그리고 그림은 아무래도 영상만큼 현실감을 주지 못한다. 그래서 호러만화는 극단적인 캐릭터와 비현실적인 상황이 만들이 빚어내는 충격적인 이야기에 치중한다. 두려운 것은 귀신이 아니라 인간의 광기다. 물론 만화는 이렇고 영화는 이렇다고 딱 잘라 말할 수는 없다. 이토 준지의 만화는 특유의 기괴한 그림으로 영화만큼이나 강렬한 영상을 기억에 남긴다. 구로사와 기요시의 영화는 귀신을 팽개치고 인간의 본질을 파고든다. 각기 색깔이 다른 8명의 일본 감독·만화가를 모아보았다. |
<링>의 나카다 히데오
상상 속에서 서서히 팽창하는 부정형의 공포
일본영화가 한국에 개방되기 전, “<링>이라는 일본영화가 있는데 엄청 무섭다”는 소문을 들은 한 무리의 대학생들이 호프집을 빌려 상영회를 열었다. 금지된 것을 어렵사리 보게 된 흥분과 영화에 대한 기대로 잔뜩 긴장한 그들. 하지만 영화가 시작된 지 1시간이 다 되도록 귀신은 코빼기도 안 보이고 지직거리는 비디오 화면만 계속 등장하자 도처에서 잡담이 새어나온다. “이게 뭐가 무섭다는 거야. 에이, 술이나 먹자.” 그러나 잠시 뒤. “흐…헉!!” “헉!” “으와앗!!” 남자들은 놀라 팔을 휘젓고 뒤로 나앉다가 간장 종지를 엎고 의자에서 굴러떨어진다. 희멀건 스크린 위로 축축하게 부풀어 오른 머리카락이 서서히 기어나오고 있었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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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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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령> | |
나카다 히데오의 영화들은 느리고 조용하다. <여우령> <링> 같은 초창기 영화들은 특히 그렇다. 그의 영화들에 공포는 좀체로 온전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장식도 없는 건조한 화면이 계속되고, 뭔지 몰라도 존재하는 것만은 분명한 ‘어떤 것’은 퍼즐 조각처럼 조금씩 모습을 보여준다. 실체를 알 수 없는 공포는 보는 이의 상상 속에서 부정형으로 팽창하고 확장한다. 점점 조각이 맞춰져 형체가 드러날 무렵, 나카다 히데오는 갑자기 강렬한 조각을 채워넣는다. <여우령>에서 여자의 미친 듯한 웃음과 함께 초반에 등장했던 옛 필름과 똑같은 상황이 반복될 때, 감독의 머리맡에 나타난 여귀가 갑자기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웃을 때, ‘쏴아아악’ 소름 끼치는 바람이 온몸을 훑는다. 다 맞춰진 그림은 눈을 부릅뜨고 피를 흘리는 귀신 따위가 아니다. 폭포 그림인 줄 알았는데, 문득 그것이 머리를 앞으로 드리운 여자의 모습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의 기분 같은 것. 그것이 나카다 히데오의 공포다.
<주온>의 시미즈 다카시
집요하게 극대화되고 반복되는 적나라한 공포
“웨에에에엥!” 새카만 고양이가 지옥의 것인 듯한 교성을 내지른다. 새파란 얼굴에 다크서클이 선명한 아이가 웅크린 채 무릎을 만진다. 아이가 천천히 입을 벌린다. 기분 나쁘게 빨간 입 안이 점점 들여다보이는가 싶더니 아이의 입 속에서 고양이 울음이 터져나온다. 전화에서 “끄아아아아” 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화장실에서 시커먼 혼령이 솨아아 밀려나온다. 검은 흐름이 경비원을 집어삼킨다. CCTV 화면을 채운다. 두개의 붉은 눈이 번쩍 빛난다. 오빠가 전화를 걸어온다. 다시 “끄아아아아” 하는 소리가 들린다. 전화를 집어던지니 TV가 “끄아아아아” 한다. 이불을 뒤집어쓴다. 이불이 부풀어 오른다. 이불 속에서 시퍼런 여자가 올라온다. 입을 벌리기 시작한다. 뭔가가 계단을 내려온다. 기어 내려온다. 경직된 관절이 끼릭 끼릭 소리를 낸다. 머리가. 끼릭. 끼릭. 천천히 돌아가 이쪽으로 얼굴을 돌린다. 퉁퉁 부은 얼굴이 괴로운 듯 입을 벌리고 끼릭. 끼릭. 끄아아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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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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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온2> | |
시미즈 다카시는 좀 더 적나라하고 자극적인 공포를 선사한다. 그는 처음부터 “이것이 귀신이다”라며 단도직입적으로 답을 내놓는다. 아내에게 다른 남자가 있다고 생각한 남자는 망상으로 점점 미쳐간다. 아이도 내 아이가 아니다. 남자는 아내와 아들, 키우던 고양이 모두를 난자하여 집 다락에 유기하고 자살한다. 참혹하게 살해된 원령은 집을 맴돌며 집을 찾은 이들에게 저주를 뿜어낸다. 예외는 있을 수 없다. 고양이, 아이, 그림자, 여자, 기어 내려오는 여자…. 여러 인물에게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동안, 원령은 모습과 버전을 달리하며 공포를 심화시킨다. 원령은 관객으로 하여금 자기와 눈을 마주친 채 오랫동안 자신의 끔찍한 꼴을 보고 있게 만든다. 집요하다. 극장판, TV판, 비디오판… <주온> 시리즈만도 벌써 몇개나 만든 시미즈 다카시 자신도 똑같이 집요하다.
<착신아리>의 미이케 다카시
예측을 불허하는 엽기적 피칠갑의 공포
‘어? 이게 뭐야? 공포영화라더니 가족영화잖아. 아니 멜로물인가?’ 미이케 다카시의 <오디션>에는 영화의 반이 다 지나도록 공포의 ‘ㄱ’자도 나오지 않는다. 아내를 여읜 중년의 아오야마는 아들과 단란하게 살아간다. 쿨한 아들은 밥을 먹다 말고 “아버지 재혼하세요” 한다. 아오야마의 영화사 동료는 캐스팅 오디션을 핑계삼아 결혼하기에 알맞은 여성을 골라보라고 권한다. 오디션장에서 아오야마는 순수하고 신비로운, 야마사키라는 여자에게 반해 연애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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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신아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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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션> | |
미이케 다카시는 다작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마무라 쇼헤이와 오누치 히데오 감독 밑에서 조감독으로 일할 때부터, TV와 V시네마를 오가며 닥치는 대로 작업했다. 1년에 서너편의 영화를 찍어대며 틈틈이 V시네마도 만든다. 찍는 영화의 수가 많을 뿐 아니라 장르도 예측불허다. 혀를 자르고 동물과 섹스하고 신체를 기름에 튀기는 등 폭력과 광기가 넘치던 <이치 더 킬러> <데드 오어 얼라이브> 같은 하드 코어영화를 만들다가 문득 <요괴대전쟁> 같은 어린이용 판타지영화를 내놓는 것이 미이케 다카시라는 사람이다. 그는 전복의 천재고 <오디션> 역시 전복의 영화다. 조용한 멜로처럼 전개되던 영화는 후반부에 접어들면서 사지절단 호러무비로 변한다. 청초하고 순수하게 보였던 야마사키는 엽기적인 자신의 정체를 드러낸다. 어린 시절 학대당한 트라우마를 가진 야마사키는 SM용 코스튬 의상 같은 검은 가죽 장갑과 앞치마로 무장하고, 남자의 혀에 주사를 놓고 배에 침을 찌르고 돼지고기 자르는 줄로 발목을 절단한다. 미이케 다카시는 히죽히죽 웃으며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볼래? 나는 무슨 장르든 다 만들 수 있어.” <착신아리>도 예외는 아니다. ‘당신이 어쩌다 영화에 귀신을 등장시켰냐?’는 내용의 물음에 그는 “제작사에서 해보라기에 대중적으로 한번 가봤다”는 요지의 답변을 내놓았다. <착신아리>는 물론 훌륭한 귀신영화였다.
<도플갱어>의 구로사와 기요시
인간의 죄의식, 그것이 진정한 공포
구로사와 기요시의 영화는 인기가 없다. 비디오 대여점에 가면 <링> <주온> <착신아리>는 앞머리에 딱 꽂혀 있지만, 그의 영화는 잘 찾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다. 겹친 비디오장을 밀고 밀어 꼼꼼히 살피면 뒤편 어느 구석쯤에 <도플갱어>가 꽂혀 있다. 큰 대여점이라도 <강령>이나 <큐어>는 없다고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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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령>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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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플갱어> | |
그의 영화는 혼령의 등장으로 공포를 주는 전형적 호러는 아니다. <강령>은 사이좋은 어느 부부의 이야기를 그린다. 아내는 영매다. 물건에 깃든 기운을 감지하고 귀신을 느끼며 때로 귀신을 보거나 불러내기도 한다. 섬뜩한 재능이라고는 하나, 그때까지 무서운 것은 없다. 그러나 사건이 일어난다. 유괴되어 후지산에 납치되어 있던 여자아이 하나가, 효과음을 녹음하러 간 남편의 장비 박스에 숨는다. 그는 그 사실을 모르고 박스를 잠근 채 며칠 동안 차고에 방치한다. 역시 이를 모르는 아내는 경찰한테 사건 해결을 도와달라는 요청을 받고 아이의 손수건을 받아온다. 집에 돌아온 아내는 아이가 자신의 집에 있음을 느끼고 박스 안에서 아이를 찾아낸다. 아이는 살아 있다. 늘 그렇듯 그때 신고했으면 좋았을 것을. 아내의 마음속에는 유명해지고 싶은 욕심이 솟아난다. 아이를 좀 더 데리고 있다가 경찰을 상대로 연극을 하려던 그녀의 계획은 아이를 죽음으로 내몬다. 그때부터 진짜 공포가 시작된다. 원래 귀신이 보이는 그녀는 집 안을 떠도는 아이의 혼령을 피할 길이 없다. 아이의 혼령은 아무 해코지도 하지 않지만,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한 부부는 매일 아이의 혼령을 보며 죄의식에 말라 들어간다. <도플갱어>도 마찬가지다. 주인공을 괴롭히는 것은 인간인지 혼령인지 모를 도플갱어의 존재가 아니라 온갖 나쁜 일을 대신 저질러주는 도플갱어를 인간이 스스로 닮아간다는 것이다. 죄를 짓지 않으면 두려울 것이 없다. 그러나 죄를 짓고 나면 온 세상이 귀신 천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