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소득 국제학술대회 이틀째 서강대서 열려
김미영 기자
공기는 지구상 모든 인간에게 허용된 천연자원이다. 마치 공기처럼 기본소득보장권을 모든 지구인이 누리게 된다면 세계는 어떻게 달라질까. ‘어떠한 심사나 노동 요구 없이 모든 사회 구성원에게 개별적으로 지급하는 조건 없는 소득’인 기본소득을 전 인류에게 보편적으로 지급하는 게 실현가능할까.
28일 이틀째를 맞은 ‘기본소득 국제학술대회’에서 판 빠레이스 기본소득 지구네트워크 국제위원회 의장(벨기에 루뱅대 교수)은 “세계적 차원의 기본소득제도 도입이 가까운 시일 내 실현되기는 어렵지만, 더 이상 몽상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탄소배출세로 65세 이상 노인에게 기본소득을”
판 빠레이스 교수가 국가나 지역이 아닌 세계적 차원의 기본소득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기본소득이 이주의 문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기본소득제도는 어떤 형태이든 과세를 통해 재원을 마련한다. 특히 부자나 고숙련 노동자로부터 걷어진 세금을 기반으로 한다. 때문에 기본소득제도가 국가 차원에서 도입될 경우 해당 국가에서 부자는 과세를 피해 다른 국가로 유출되고, 빈곤계층은 유입돼 기본소득의 수준이 점점 줄어드는 결과가 초래된다. 빤 빠레이스 교수는 이를 ‘아래로의 경주’라고 표현했다.
그는 “세계적 차원의 기본소득 실현은 꿈이 아니라”며 “기후변화에 대처하기 위해 각국이 모여 탄소배출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모든 인간은 탄소를 흡수하는 대기의 능력을 동등하게 누릴 권리가 있다. 그렇다면 탄소배출권 거래에서 얻어지는 수입 역시 평등하게 분배돼야 한다. 빤 빠레이스 교수는 “세계적 차원의 기본소득이 실현되려면 재원조달의 방법이 단순해야 하고, 수당지급의 방식도 단순해야 한다”며 “탄소배출세를 재원으로 전 세계 모든 65세 이상 노인에게 기본소득을 주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고 말했다. 노령연금제도는 이미 상당수 국가들이 도입하고 있는 보편적 복지제도이기 때문에 세계적 기본소득제 도입 초기의 저항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기본소득의 경제적 효과는?
이번 국제학술대회는 지난 27일 시작돼 29일까지 진행된다. 첫날에 사회단체를 중심으로 기본소득의 철학적·정치적 개념과 논쟁에 대한 토론을 벌였다면, 둘째 날에는 학계와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경제적 효과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어졌다.
아무 조건 없이 누구나 소득을 얻는다면 노동시장 유인효과가 사라져 효율성을 해치고 나아가 경제성장을 저해한다는 비판이 높다. 이에 대해 강남훈 한신대 교수(경제학과)는 외국사례를 통해 기본소득이 소득재분배뿐만 아니라 경제 성장에도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미국의 경우 뉴저지(1천357가구 대상)·시애틀-덴버(809가구) 등에서 3~20년간 보장소득제도에 대한 실험을 진행했다. 그 결과 뉴저지의 경우 노동시간이 13% 감소하고 시애틀-덴버는 12% 감소하는 효과가 발생했다. 평균적으로 남성은 6~7%, 여성은 17~30% 줄었지만 기본소득 보장에도 불구하고 노동시장 유인의 감소가 그리 크지 않다는 것이 연구자들의 결론이었다.
알래스카의 경우 석유 등 천연자원 채취로부터 발생하는 수입을 기금으로 조성해 모든 주민들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하고 있다. 76년 관련 법령이 재정됐으며, 2006년 350억달러의 기금을 형성해 70만명에게 1천107달러씩 지급했다. 알래스카는 현재 미국에서 가장 평등한 지역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89년에서 99년 사이 미국 전 지역에서 고소득자의 수입은 26% 증가하고 빈곤층의 수입은 12% 증가했지만 같은 기간 알래스카에서는 고소득자의 수입은 7% 증가한 반면 빈곤층의 수입은 28% 증가했다. 알래스카의 지니계수는 미국 50개 주 가운데 가장 낮다.
또 기본소득은 경제적 확대재생산구조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안현효 대구대 교수(일반사회교육과)는 “기본소득은 우리나라 전체 노동인구의 사실상 3분의 2를 차지하는 실업자 및 반실업자를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며 “생계유지형 일자리에서 이들을 쫓아내지 않고 재교육과 숙련훈련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산업 전체의 생산성을 향상시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숙련노동의 증대는 고생산성 노동의 확산으로 이어지고 결과적으로 국민총생산을 향상시킨다. 뿐만 아니라 기업도 이득이다. 안 교수는 “기본소득이 지급되면 종업원 지주회사와 같은 노동-자본의 협력기업이나 수익 중심의 생산모델을 가진 혁신기업이 자본의 유입을 증가시킬 것”이라고 주장했다.
빈곤감소효과, 사회보장제도보다 3배 높아
백승호 가톨릭대 교수(사회복지학부)는 2007년 복지패널 자료를 활용해 분석한 결과 기본소득이 실시될 경우 빈곤감소효과가 우리나라의 현행 사회보장제도보다 3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한국 정부는 2009년 기준으로 기초생활보장제도에서 제외되는 빈곤계층 규모를 총 200만 가구(410만명)로 보고 있다. 때문에 소득의 재분배 문제는 양극화가 점점 심화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매우 중요한 화두다. 백 교수는 “기본소득을 도입할 경우 소득불평등 수준이 현행 사회보장제도보다 50%가량 감소한다”며 “빈곤층을 줄이고 소득재분배를 이끄는 데 기본소득 보장제도가 매우 유효한 것으로 분석됐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