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한, 너무 솔직한, 그래서 탈도 많고 말도 많았던 마광수 교수.
연세대(국문과)에 재직 중이던 지난 89년 그는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란 산문집을 내면서, 그가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상당히 '특별한 삶' 속으로 진입하게 된다. 그가 우리나라 최초의 성 담론서라 할 수 있는 이 책을 냈을 때의 나이는 아직 '불혹'에도 이르지 못한 서른 여덟 살. 그는 시집 '가자, 장미여관으로'를 펴낸데 이어 장편소설 '권태'를 '문학사상'지에 연재하기 시작했다. 그가 몸담고 있던 대학에서는 그의 89년 2학기 전공강의를 '정지'시킨다. 그러나 그는 '반성' 할 줄도, '근신'할 줄도 모르는 이 시대의 '자유인'를 자임한다.
그의 글은 정말이지, 솔직하다. 지나칠 정도다. 어떤 때는 지독하다 싶다. 솔직함도 넘치면 불편하다. 부담스럽다. 어디 100% 산소만 마시고 사는 사람이 있던가. 거짓과 위선에 길들여진 사회에서 그의 솔직함은 튄다. 거슬린다. 하지만 그의 '고질병은 쉬 치유될 것 같지 않다. 그는 천성이 자유주의자다. 속박과 굴레를 못 견뎌 한다. 돼먹지 않은 도덕을 빙자하여 자유를 억압하는 현실에 분노한다. 그에게 '자유에의 용기'는 솔직함이다. 그것은 우리 시대의 거짓과 위선에 맞서는 강렬한 저항의 수단이기도 하다.
92년에 나온 그의 소설 '즐거운 사라'는 이른바 외설을 이유로 작가를 구속시킨, 우리나라 최초의 문학작품으로 기록된다. 음란문서 제조 및 반포 혐의로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그는 다음 해 신학기를 앞두고 대학을 떠나야만 했다. 5년 뒤인 98년 부교수로 복직했으나 성에 대한 판타지를 담은 소설 '알라딘의 신기한 램프' 등으로 그의 '저항'은 계속된다. 2000년 교수 재임용 심사에서 '논문 실적이 부실하고 학문적 능력에 심각한 결함이 있다'는 이유로 부적격 대상 판정을 받자 휴직계를 냈던 그는 최근 끝내 사표를 던지고 만다. 서울의 자택에서 팔순 노모와 단 둘이 살고 있는 그는 현재 심각한 울화병에다 우울증과 간질환을 앓고 있다고 한다. 작품활동은 물론, 외부와의 교류도 거의 끊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참으로 안타깝고 슬픈 현실이 아닐 수 없다. 과연, 누가 마광수 교수를 이렇게 만들었나?
예술이란 무엇이고, 문학이란 무엇인가? 그 본질이 '정신적 자유를 바탕으로 한 창조행위'란 상투적인 표현을 빌리지 않더라도, 이 나라 헌법에 분명히 명시된 우리나라는 민주공화국이고, 그래서 표현의 자유는 엄정히 보장되어 있질 않던가? 어찌 법의 잣대로 예술가의 창조행위에 쇠고랑을 채울 수 있단 말인가? 예술가의 창조행위에 대한 판관은 당연히 독자의 몫이지, 법의 몫이 아니지 않는가?
'학문적 능력에 심각한 결함이 있다' 니, 참으로 가증스러운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여기서 마광수 옹호론의 논거를 살펴보자. 먼저“그는 이데올로기 구조를 해체시켜 진정 자유로운 인간을 꿈꾸는 휴머니스트다. 그럼에도 매스미디어는 마교수가 성 전문가인 양 선전하고 있고, 그의 책 한 권 읽어보지 않은 사람이 그를 변태라고 말하고 있다”며 발상의 전환을 해 그를 보라는 주문이다. 이어 마교수가 여느 교수의 수준을 초월했다는 투의 주장도 있다. “그가 학문적인 능력이 없어 글을 쉽게 쓰는지에 대해서는 그가 20대에 쓴 ‘마광수 문학론집’을 읽어보라. 그 때 이미 경지에 올랐던 현학적 글쓰기를 이제 와 포기한 이유에 관해 숙고하라”는 설득이다.
나는 마교수 작품의 추종자도 아니고 옹호론자도 아니다. 그를 다만 우리시대에 함께 더불어 가야할 한 예술인으로 보고 싶을 뿐이다. 나와 '다름'은 '틀림'을 뜻하는 건 아니지 않는가? 하지만 우리 사회는 아직도 다양성을 인정하는데 인색하다. 다르다는 건 생소함일 뿐이지만 우리는 그 다름을 손가락질하고 매몰차게 외면하기도 한다. 우리는 다름으로 인해 손가락질 당하는 자의 아픔과 고독에 대해 진정 역지사지(易地思之)할 아량이 없는 건가? 포용과 인정이 안 된다면 차라리 묵묵히 서 바라만 보는 방관자의 자리만이라도 지켜 줄 수 없는가?
어찌됐던, 우리사회의 지향점은 이러해야 할 것이다. 개인의 다양성과 독특성이 인정되고, 그러한 다양성과 독특성의 조화로운 결합이 억압(정신분석학자들에 의하면, 모든 정신병의 근본은 '억압'이라 한다. 그리고, 지금 마교수는 우울증과 울화병에 시달리고 있다한다)을 풀고 이러한 억압의 풀림은 어우러짐과 더불어 사는 삶을 낳아 제2, 제3의 마광수 교수 같은 피해자를 양산하지 않고, 참으로 인간내음 물씬 풍기는 사회로 거듭나지 않을까?
누구 그랬던가, '새는 한 쪽 날개로 날 수 없고, 양쪽 날개로 드높은 창공으로 비상한다' 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