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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을 통해본 진도의 특성
“「볼매수」를 아십니까?”
진도학회 2007년 하계절례회를 마치고
지역을 바탕으로 학회를 구성 운영하는 것은 사실 무리가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진도라는 지역에서 ‘진도’를 학문적 탐구대상으로 또는 미래발전의 동력으로 삼고자 했다. 그리고 이제 5년이 지났다. 성과를 이야기하기에 조금은 부끄럽다. 그러나 진도학회는 건재하다. 아직도 진화가 진행중이다.
이번에는 조도면을 선택했다. 조도는 35개의 유인도와 121개의 무인도로 이루어진 다도해해상국립공원에 위치하고 있다. 인구수는 해마다 줄어 이제 3천 8백여명이 새섬무리에서 살아가고 있다. 신비한 전설이 푸른 송림처럼 뒤덮인 관매도와 낚시꾼들의 이상향으로 여겨지는 병풍도, 진도곽(미역)의 본산인 독거도와 혈도를 비롯해 빼어난 풍광을 자랑한다.
진도라는 땅은 역설적이다. 가장 변두리에 자리하면서도 가장 한국적인 특성들을 간직한 섬이다. 그래서 작가 김훈은 “원형의 섬”이라고 규정했다.
인류 역사상 가장 광대한 땅을 차지했던 몽골제국에 끝까지 저항했던 삼별초가 왕국을 건설한 곳도 진도였다. 단군왕검의 제정일치에서 하늘에 대한 제의만을 세습해온 당골들이 아직도 남아 “씻김굿(국가 중요무형문화재 72호)”이 이어져오는 곳 또한 진도다.
그 뿐이랴. 한국 토종견의 대표 브랜드인 ‘진돗개’가 천연기념물 53호로 지정 보존되고 있는 곳도 바로 진도다. 진도군 진도개보육관리소의 이계웅(45) 전문수의사는 “어느 개 보다도 귀소성이 뛰어나고 인지능력이 탁월하다”며 주인에 대한 절대적 충성은 감탄스러울 정도라고 단언했다.
고향자랑이 넘치면 이 또한 팔불출타령이 되는지 모르겠다. 진도로 귀향해 산지 벌써 10년을 훌쩍 넘었다. 그 사이에 인구는 절반으로 줄어들었고 그 보상이라도 되듯 울돌목에 진도대교가 쌍교로 걸렸다. 그래서 목포와는 이제 차량으로 채 한 시간도 걸리지 않게 되었다. 진도는 더 이상 후미진 소외지역만은 아니다. 주말이면 관광객들이 북적거리고 국립남도국악원과 향토문화회관에선 신명과 해원이 담긴 전통민속공연이 펼쳐진다.
역설적인 땅 진도
외래문화의 오염이 없어 문화인류학을 연구하는 이들에게 진도가 가장 매력적인 지역으로 알려진지도 반세기가 넘었다. 그 동안 진도를 연구하고 논문을 발표한 이들은 100여명이 넘는다고 한다. 그 중 우선 연락이 되는 분들끼리 모임을 갖고 “진도에서 진도를 연구해 학위를 받았으니 이제 진도발전을 위해 보은하자”는 취지로 ‘진도학회’가 발족한지 벌써 5년이 지났다. 30년 전 임회 상만마을에서 연구조사를 했던 이토아비토씨는 지난해 동경대에서 석좌교수로 정년을 했지만 매년 진도를 두세 차례 방문해 연구논문을 발표해주고 있다. 특히 상만마을에 옹기박물관을 세우겠다는 염원을 굽히지 않고 노력중이다.
진도를 보배섬이라고 흔히 부르지만 ‘인류학의 보고’로 학자들은 규정한다. 진도아리랑을 연구하고 진도다시래기 진도강강술래 닻배노래 소포걸군농악 남도들노래 진도만가 아이구 머리가 헷갈린다.
진도에서도 조도는 특히 “우리나라 서남해안의 접경지역으로서의 특성을 가장 잘 나타내는 곳(나경수교수. 전남대)”으로 알려져 있다.
15일 오전 10시 20분에 팽목항에서 조도페리호를 탔다. 3천원의 배삯을 내고 해무가 피어오르는 조도바다를 건넜다. 각흘도와 장죽도(진대섬)가 아름답게 흘러간다. 오전에 먼저 가 학회 세미나준비를 해 놓아야 한다. 학회 간사인 김만용(진도고교사)씨가 이번에도 준비물을 다 챙겨 동행했다.
30분만에 어류포에 닿았다. 고기어(魚) 놀유(游)자를 쓰는 곳이면 당연히 물고기 많을 법하다. 목포해양수산청에서는 이곳 하조도등대 부근에 새로 정자를 짓는데 현재 정자 이름을 공모하고 있다. 나는 당연히 ‘어류정’이라고 부르고 싶다. 보슬비가 촉촉하니 내리는 길을 그냥 걸었다. 면소재지인 창리까지는 불과 십분 조금 넘으면 갈 수 있다. 등대로 가는 길 옆엔 비석군이 서 있다. 일제시대 ‘조도환’ 개통 취항을 기념하는 비가 이채를 띤다. 그 옆에는 행군수남공정학기념비(行郡守南公廷學記念碑)가 버젓하니 서 있고 조도면민들에게 자랑스런 일화를 남긴 도감 임씨를 기리는 비가 당당히 자리해 대조를 이룬다. 군수직급도 못되는 이들이 가는 곳마다 무슨 기념비를 세웠는지 속내 원성이 획마다 새겨진 듯하기만 하다.
마침 이날 창리에서는 출상행렬을 만났다. 진도의 만가행렬은 독특하다. 전 군의원을 역임한 강정문씨의 어머니 상여라고 한다. 구순의 노모가 돌아가셔 구경인파가 처마 밑마다 가득하다. 진도사람들은 상여 나가는 것을 구경하기 좋아한다. 구성진 매김소리, 지화로 장식한 꽃상여 앞엔 북과 장구가 꾕가리에 어울려 행렬을 이끈다. 상두꾼들은 ‘에헤 에헤헤이야’ 등으로 후렴구를 단다. 저승길 노자돈으로 만워짜리 지폐가 새끼끈에 줄줄이 끼여진다.
삼거리 앞에서 간단한 노제가 열렸다. 그런데 깜짝 놀랄 일이 벌어졌다. 상여 앞에 상 대신 북이 눕혀져 그 위에 술잔이 올랐다. 처음 보는 풍경이었다. 서울대 전경수교수와 그 일행(모두 외국인학자)들이 셔터누르기에 분분하다.
점심을 먹고 나서 조도면사무소 복지회관 2층으로 향했다. 현수막을 걸고 세미나 자료책자를 배포하고 나니 1시 30분이 다 되어간다. 이번 학회 발표회에는 연세대학교 ‘풀뿌리 문화학교’를 추진하는 학생들도 함께 참여했다. 조도면과 서진도농협, 한원그래픽스가 후원을 한 이 세미나에 조도면민들의 관심이 높다. 다도해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될 정도로 빼어난 풍광과 청정성을 자랑하지만 바로 그 국립공원이 발전의 발목을 잡아당기기 때문이다. 현지 주민들은 건축 하나 지으려 해도 여러 제약을 받아 불만이 많다. 그래서 외지 연구자나 교수들이 방문하며 항상 주문을 한다. 도서개발촉진법으로 매년 사업비가 투입되지만 대부분 선착장 등이나 해안도로개설로 쓰이지만 태풍 한번 지나가면 부실공사가 드러나 재공사만 얹히는 격이다.
볼매수를 아십니까?
나경수교수의 사회로 시작된 학회세미나는 오후 5시가 넘어서야 마무리가 되었다. 전교수의 간단한 인사말과 김송오면장, 장만윤조합장의 축사에 이어 곧바로 전남대 지리교육과 박철웅교수가 “조도면 관매도의 지형 경관의 이해”라는 제목으로 발표했다. 관매도는 앞서도 잠시 얘기했지만 뛰어난 절경과 많은 전설, 해수욕장으로 이름이 나 있다. 위치로는 하조도 남단 약 2.25km에 있으며 기묘한 해식애가 발달되어 볼거리가 많다. 지질대가 해남 우항리와 같아 퇴적층리에 공룡발자국이 찍혀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박교수는 주장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관매도의 지명에 대한 논란이 주목되었다. 현재 지명은 볼관(觀)자에 매화매(梅)자를 쓰고 있는데 이는 관매도 주민과 조도사람들이 흔히 부르는 ‘볼매’를 일제
때 면직원이 제멋대로 직의역을 했기 때문이다. 박교수는 매는 뫼로 봐야 하고 그렇다면 ‘관산도’가 되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조선대 최재희(조도면출신. 조선대)교수의 “현지 주민들은 모두 ‘매’로 발음했지 뫼로 소리내지는 않았다”고 주장했다. 모든 섬들의 가장 높은 봉우리를 섬사람들은 ‘돈대봉’으로 부른다. 바닷가에 사는 집들엔 마당에 밖을 내다보는 망대가 설치되어 있다. 돌담으로 바람을 막지만 바깥 사정을 바로 한눈에 볼 수 있는 시설이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배가 드나들고 외부인들이 나타났을 때 미리 알아야 하는 것이다. 고기잡이 나간 서방님의 배가 어디쯤 오는지 가끔 목을 빼 바라보다 마중을 나갈 채비를 하는 기능을 발휘한다.
또 다른 의견으로는 해당화를 고어에서 ‘볼매’라 불렀다는 주장도 나왔다. 관매도는 예전에 해당화가 많았다고 한다. 이 부분은 좀더 연구 조사가 필요하다는데 공감했다.
작년 전경수교수가 발표한 “‘바’와 ‘다니’에 대한 고찰”을 인용해 진도의 ‘모향명제(母鄕名制) 풍습을 예로 들어 볼매(관매도)에서 시집온 여자가 첫아들을 낳으면 볼매수라 하고 딸을 낳으면 ’볼매단‘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흔히 진도 체도에서는 남자아이에게 ’○○바‘로 이름을 붙이지만 관매도는 ’수‘자를 넣는 게 특이한 사례로 볼 수 있다.
두 번째 발표자는 이원복 국립전주박물관장이 했다. 의신면 사천리, 한국화의 산실이란 제목은 곧바로 허소치 운림산방을 떠올리게 한다. 이제 내년이면 소치 허련의 탄생 200주년이 된다. 허소치는 전업화가로 한국 남종문인화의 종가를 이루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시와 서를 겸했으며 꿈같은 인연을 담은 자서전 ‘몽연록’을 쓴 최초의 화가이다.
소치 나이 28세에 다성으로 추앙받는 초의를 만났고 해남 연동에 있는 윤두서의 옛 집에서 수많은 고서화를 접해 안목을 높이는 행운을 안았다. 32세엔 추사의 문하에 들어가 서화연마에 몰두했다. 소치는 추사의 복고성에 가장 충실한 제자였다. 새벽 산방에 내린 안개가 미가의 점묘법처럼 수목에 스며드는 길을 천천히 걸으면서 신선의 풍모를 내비치던 소치는 역동하는 자기 시대를 벗어나려 하지 않았다.
통금이 풀리지 않은 새벽처럼 초조하고 어둡기만 했던 스무살 무렵 동네 양천허씨네 집에서 빌려보았던 소치실록은 안타까움을 한겹 더 두르게 할 뿐이었다. 86세에 이르도록 평생 붓을 놓지 않았으면서도 “고비나물에 보리밥으로 포식”하는데 자족했던 그는 그를 시발로 하는 남종화의 화맥만이 굵고 풍성하니 이어져가고 있다.
지난해에 열린 ‘마을을 통해본 진도의 특성(1)’은 지산면 소포리(발표자 김병철)와 의신 사상마을 접도 수품리 임회 상만리 등이 소개되기도 했다. 정부에서 추진하는 정보화마을과 테마마을로 지정된 곳이다.
잠시 휴식을 취한 뒤 2부에서는 ‘임회면 십일시, 장시를 위해 조성된 마을’을 전남대 전경숙씨가 발표하고 연세대 박효정학생이 ‘지역의 주인은 누구인가’를 설명하는 자리를 가졌다.
물을 따라 움직인 장터
하천을 바라보면 언제나 늘 그대로의 흐름과 방향을 갖고 있어 보인다. 그러나 하류쪽으로 갈수록 물길이 자주 바뀌어 왔음을 알게 된다. 상류에서 밀려온 토사가 물돌이를 이루게 하는 섬 역할을 해주기 때문이다. 나일의 삼각주는 수십번의 강물 이동이 있었다고 한다.
십일시 장터가 현재 위치로 오기 전에는 목장장이라 하여 현 임회면사무소 앞 부근이라고 한다. 우시장이 서던 자리엔 올 초까지만 해도 임회민속전수관이 상가 건물에 가려 있었으나 고인이 된 장성천씨의 기적비와 함께 십일시장 동편에 번듯하니 들어서 있다.
50년 전만해도 초등학교 앞까지 배가 들어와 물건을 싣고 내렸지만 차량들이 달리는 포장도로에 그 기능으로 모두 넘겨주었다.
면소재지 장은 오전이면 이미 파장이 된다. 진도문화원이 장터굿을 개발해 장꾼들의 발걸음을 한 두 시간 머물게 했으나 외지인들을 끌어들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지리적 접근성이 떨어지는데다 홍보도 미흡했다. 무엇보다도 관과 문화예술단체들이 강건너 구경하듯하는 자세가 안타까움을 더했다. 일각에서는 정기장을 옮겨 주말장으로 전환해 외지 관광객을 끌어들여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극심한 인구감소와 노령화로 장시가 활기를 잃은 지는 오래다. 전남 장흥에서는 매주 소고기를 전문 판매하는 주말자을 개설해 쏠솔한 재미를 본다고 한다. 진도는 천하가 알아주는 진도개 강아지, 진도홍주, 검정쌀과 진도곽 등을 이번에 새로 개발한 홍우 홍돈과 함께 특산품 판매장을 따로 개설 전시판매하면 어떨까?
장터에는 굿이 벌어져야 한다. 사고팔고 놀고 먹어야 장이 된다. 진도사람들은 장사수완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있다. 살림은 잘 하는데 뭘 파는데는 적극성이 부족하고 친절함도 비교가 안된다. 아는 사람끼리 어울려 살다보는 그런 풍습이 생겨났는지도 모른다.
지역경제살리기는 진도의 의식있는 인사들의 현실적 과제로 대두된지가 오래다. 다양한 해법과 연구가 뒷받침되고 있지만 아랫목에도 온기가 미미할 정도로 경기가 침체되고 있다. 매기가 없는 상가들은 낮에도 셔터를 내린 곳이 늘어나고 있다.
전경숙씨는 “문화를 지키고, 지역성을 유지하기 위한 정책과 의지가 없으면 진도 전체가 한낱 역사나 이야기 속에서만 남아 있는 종이민속과 문화가 될지 모른다”는 우려를 숨기지 않았다. 풀뿌리문화학교를 여는 과제를 안고 온 연세대 학생들은 ‘경제적으로 더불어 바르게 산다는 것’이 민회의 바탕이며 그 주인은 지역민임을 강조했다. 이들은 아직 진도의 지역특성과 문화를 이해하기엔 몇차례 더 방문과 답사가 필요할 것 같다. 그 열정과 순수성을 의심받지 않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진도학회는 회원자격이 크게 제한적이지 않다. 진도사람이 아녀도 진도를 이해하고 알고자하는 이들은 누구나 진도학회에 들어올 수 있다. 배움의 끈이 긴 교수나 학자들만의 전유단체도 아니다. 내 마을에 대한 역사와 문화, 발전동력을 찾아나서는 이들은 충분한 자격을 갖춘 것이다. 더디지만 진도학회는 아직도 진화가 이뤄지는 단체임엔 틀림없다.
앞으로도 더 많은 다양한 분야로 접근하고 여기서 나온 제안들을 자치단체는 적극적인 검토와 수용자세를 가져야 한다. 학회도 움직이는 생물처럼 제대로 수분공급이 되어야 한다. 중국의 부춘산과 진도의 산야 풍광이 어떻게 닮았는지를 상상하면서 막배를 타고 돌아왔다. 세방낙조보다 먼저 내 볼에 단청빛 노을이 번져난다. 바닷바람속에서는 누구나 주량이 곱절도 늘어난다는 말을 되새기면서 가슴속 격랑으로 또 한모금을 넘긴다.(박남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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