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도가니는 무진의 한 청각 장애인학교에 부임받은 교사가
교장과 교사들에게 학대당하는 아이들을 위해서 진실을 밝히는 과정을 그린 영화로
2005년 실제로 한 청각장애인 학교에서 발생했던 사건을 다룬 공지영 작가의 책 '도가니를 토대로
만든 영화이다
“집행유예로 석방되는 그들의 가벼운 형량이 수화로 통역되는 순간 법정은 청각장애인들이 내는
알 수 없는 울부짖음으로 가득 찼다”는
한 줄의 신문기사가 그녀의 마음을 움직이고 펜을 움직이게 만들었다고 한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이 이야기는 진실입니다
이제 이 끔찍한 진실을 마주해야 할 시간입니다'
나는 이 끔찍한 진실을 마주할 준비가 덜 되었었나 보다
원작을 읽지 않은 탓도 있지만 신문이나 대중매체가 전해주는 몇가지 이야기들로
나름의 피상적인 그림을 대충 그려넣은 탓도 있었다
한 장애시설의 성폭행에 대한 사건으로 단순화시켰던 나의 그림은
영화가 진행될수록 사학재단의 비리, 권력자의 횡포, 학연 지연으로 얽매인 사회, 전관예우,비뚤어진 종교인 등 이 사회의
총체적 문제점이 차례로 덧칠해지면서 더없이 어둡고 복잡한 그림이 되고 말았다

강인호(공유)는 대학교수님의 주선으로 남쪽 도시인 무진시에 있는 한 청각장애인학교인 자애학교에 기간제 교사로 발령을 받아 가게 된다. 강인호는 출근한 첫날부터 이상한 기운을 감지하게 되고 부임한 날 여자화장실에서 들려오는 이상한 소리를 듣게 된다
여기저기 상처가 있는 아이들 연두, 민수, 유리를 통해 자애학교에 실체를 알게 되면서 그들의 악행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노력하게 되는데..

(강인호 역의 공유)

(서유진 역의 정유미)
무진인권센터의 직원으로 나오는 유진과 인호는 아이들에게서 놀라운 이야기를 듣게 되고
수화통역사를 불러 아이들의 증언을 녹화하기 시작한다


(이 천진한 아이들을..ㅠ.ㅠ)
(교장과 쌍둥이동생 행정실장 2인 역할을 한 장광)
재단의 교장과 행정실장, 교사들이 수시로 장애아동들을 학대하고,
여자아이들을 비롯한 남자아이들에게까지 성적인 학대를 일삼는 장면을
그저 영화라고 무심하게 바라볼 관객은 없을 것이다
내 아이가 그런 일을 당하는 것 같은 속상함과 마치 내가 저 힘없는 아이들에게 몹쓸 짓을 한 것 같은
죄책감이 감정이입된 관객들은 깊은 한숨으로, 조용한 눈물로 우리 사회의 정의가 어떻게 파괴되는지
답답하게 지켜보아야 했다

어른이 - 아직 2차 성징도 나타나지 않은 미성숙한 여자아이를 왜 성폭행 하는가..
힘이 약해 반항을 잘 못하니 그냥 손쉬워서..라는 단순한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단순히 호기심어린 동물적 성적 충동이라면 이해할 수도 있겠다(이 경우도 용서 못할 범죄지만)
그러나 영화에서처럼 부인, 애인이 있고 돈, 권력도 있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마음에 드는 여자를
살 수도 있는 남자가 어리고 힘이 없는 여자애들을 괴롭히는 행위는 성적충동과는 거리가 멀다
그것은 남들이 가지지 못하는 살아 있는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행위. 즉 힘과 권력의 횡포다
장난감이니까 함부로 다뤄도 되고 아무런 죄의식도 없이
가지고 놀다가 부숴도 돈으로 보상해주면 다 해결된다는 비뚤어진 가치관.
그 행위가 드러났을 때 누구도 함부로 자신을 건드릴 수 없다는 믿음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런 믿음 뒤에는 부패한 경찰, 자신을 안전하게 지켜줄 교회, 사회적 약자에 대한 무관심이 있었다
영화에서 가해자들도 미웠지만 자기의 담당이 아니라고 발뺌하기 바쁜 교육청관계자나 시청사회복지사 등이 더 미웠다.
이들이 좀 더 면밀하게 관심을 가지고 지켜봤다면 피해자는 더 늘지 않았을 것이고 재단측의
횡포도 덜하지 않았을까 싶다

도가니 - 흥분이나 감격따위로 들끓는 상태
우리는 흔히 '열광의 도가니'처럼 긍정적인 의미의 표현을 자주 쓰는데
이 영화에선 아픔, 슬픔, 답답함, 한숨, 안타까움의 도가니이다
화산처럼 폭발하는 분노가 아닌 안으로 안으로 침잠하는 분노의 도.가.니.
영화가 시작되면서 몸과 마음이 돌처럼 굳어지다가 몇겁의 화석으로 억눌려
마침내 꼼짝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을 때 영화는 끝이 난다
그래서 영화가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와서도 용암으로 터져나오지 못한 분노의 마그마는 수시로 안에서 끓어
우리를 불편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무진시의 안개는 - 부정부패 만연한 사회가 다수의 무관심으로 흐릿해진다는 의미가 아닐까
우리가 흐릿하게 세상을 바라보는 한 제2, 제3의 도가니는 언제 또 다시 우리를 비웃을지 모른다
이 영화는 사회의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는 우리들의 태도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끄는데 성공했다
영화의 흥행여부는 차치하더라도 사회적으로 큰 이슈를 만들어내는데 일조했으며
장애어린이들에 대한 관심폭증, 도가니법 제정, 재단인허가취소, 재조사등
관심끌기에 성공한 영화의 힘이 어디까지인가 라는 것을 잘 보여주었다
결국 그것은 작가와 감독의 의도를 착실하게 읽어낸 관객들의 힘이고 19금 영화를 찍느라 고생한
우리 귀여운 아역배우들의 힘이다
마지막 장면에 등장한 안개에 덮힌 '무진시' 전체 정경은 내가 사는 '여수시'이다
(긴가민가해서 인터넷 검색을 해 보았다)
영화가 개봉한 지 한달이 다 된 지금도 '도가니'사태는 현재 진행형이다
실제로는 가해자도 피해자도 훨씬 더 많았다 하고 더 심한 일도 있었노라고 증언이 계속 나오고 있는 모양이다
이래저래 한동안은 불편한 마음으로 이 사건을 더 지켜봐야겠다.
“세상 같은 거 바꾸고 싶은 마음, 아버지 돌아가시면서 다 접었어요.
난 그들이 나를 바꾸지 못하게 하려고 싸우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