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씩은 컴퓨터 앞에 앉아 컴퓨터 속에 모아놓은 과거에 쓴 글들을 읽어 본다.
깊은 늪속에 빠진 흘러간 시간의 편린들이 기억의 신경세포를 따라
스멀스멀 꿈틀거리며 다시 진주가 되어 눈 앞에 펼쳐진다.
2003년에 여행을 다녀와서 바로 쓴 글이고 비록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우리 예전 아트홀 회원들과 함께 가슴 속에 공유해보고자 홈피에 올린다.
한국을 출발해서 돌아오기까지 8박 9일간의 여행을 하루씩으로 단락을 나누어 글로 엮었다.
솜씨 있는 글이 아니라 그냥 시간의 흐름을 따라 상세하게 나열한 글일 뿐이다.
혹시 읽는데 고통을 주지나 않을까 염려를 하면서 하루치씩 올린다.
호주, 뉴질랜드 연극공연과 배낭여행
(6월30일∼7월8일 : 8박9일)
참가자 : 김종석, 김태석, 서영태, 정철규, 김태정, 이진현,
이미정, 서현성, 윤은정, 최현선, 총 10명
첫날
1일차(6월 30일)
11:30 대구 예전에서 출발(예전 이스타나 15인승)
13:30 안성휴게소에서 점심식사
17:30 인천공항 도착
20:00 출국(콴타스 항공 : 실제 아시아나 항공으로 출국)
21:00 저녁식사(스테이크, 기내식사)
드디어 오늘 호주와 뉴질랜드로 출발하게 된다.
이를 위해 40일 정도 [풍동전] 연극연습을 하고,
불광사에서 시연을 겸한 [풍동전] 공연도 했다.
불광사 공연에서 관객들 반응이 좋아 어느 정도 안심은 된다.
이 [풍동전] 은 2년 전 우리극단에서 만든 창작극으로 마당극이다.
2년 전에 대구 지역에 순회공연도 했고,
실제 풍동전 설화가 전해 내려오는 고령군 축제 때 초청을 받아 공연을 한 작품이다.
그때는 20여명이 출연하였고 역시 반응도 좋았다.
하지만 여행의 여건상 출연진을 10명으로 한정하여 극을 만들었기 때문에
1인 다역이 필요하고 장비를 많이 가지고 갈 수 없어 최대한 줄여야 함으로
연극적인 부분은 무리가 따를 수밖에 없다.
극에 대한 부분을 조금 언급하면, [풍동전]은 고령지방에서 전해 내려오는 설화로
“전라도에 사는 풍동이라는 머슴이 주인집 딸 갑분이를 사랑하여 주인집 딸과 결혼하고자
품삯도 받지 않고 김부자 집에서 10년 넘게 일만하다가
결혼도 못하고 쫒겨 나게 되어 그 길로 보부상이 된다.
보부상이 된 풍동은 고령지방으로 장사를 나왔다가
어느 비 오는 날, 비를 피하여 있다가 주위에 있는 장승이 추워하는 것 같아
장승에게 자기 웃옷을 걸쳐주게 되고
이로 인해 인간의 옷을 얻어 입은 300년 넘은 장승은 장승신령이 된다.
그리고 장승신령은 그 은혜를 갚기 위해 풍동이를 갑분이와 결혼시켜 주게 된다”는
그렇고 그런 해피엔딩의 이야기이며,
실제 고령군 개진면에 가면 국도 변에 장승이 있고
동네 사람들은 해마다 그 장승에게 제사를 올린다.
우린 이 설화에다 다양한 볼거리를 접목시켜 마당극 풍동전을 만들었다.
극을 시작하기 전에 사물놀이를 통한 길놀이와 지신 밟는 장면을 만들어 넣고,
극 도입부분에 양반과 몸종을 등장시켜 극의 암시와 해학을 만들었다.
또한 도리깨를 이용한 보리타작마당과 노동가락,
보부상의 장타령과 기생들의 민요 한마당,
장승장면에서 탈춤의 춤사위 도입, 풍동이의 각설이 타령,
전통결혼식 장면과 굿 장면 등 다양한 우리 것들을 극 사이사이에 만들어 넣었다.
욕심은 많고 이것을 제대로 다하려면 엄청난 장비와 연습이 필요하다.
하지만 해외공연이라 어쩔 수 없이 짐을 최대한 줄여야만 했고
나머지는 배우의 연기로 커버하는 수밖에 없다.
출발하는 날이 말일이라 아침에 회사에 출근해서 은행관련 일들을 처리해 놓고
11시에 예전 아트홀에 도착하니 전부 모여 있다.
우리 없는 동안 극장을 관리할 한진이도 배웅을 나와 있고,
극단 고도 김종성 대표도 200ml소주 50병과 고추장 등 포장된 음식을 가득 가지고
우리의 첫 해외 공연의 성공을 기원하면서 배웅을 나와 있었다.
11시30분 우리는 우리의 노란 차인 애마를 타고
김태석 감독이 운전대를 잡고 인천공항을 향해 출발했다.
차 한 대에 사람 10명과 짐을 실으니 딱 맞다.
차를 가지고 가는 것이 인천공항까지 가는데 경비가 가장 적게 든다.
비행기가 1인당 왕복 13만원정도이니 총 130만원으로 가장 많이 들고,
공항버스를 이용 대구에서 인천공항까지 가는대 1인당 편도 2만원이니 총 40만원이 든다.
차량을 가지고 가면 기름값 6만원, 통행료 4만원, 인천공항 주차비(8일×7천원) 5만원 등 15만원이 든다.
오후 5시30분에 인천공항에 도착을 했다. 차를 맡기고 짐을 챙겨 출국수속을 마쳤다.
악기는 파손의 위험이 있기 때문에 다른 쪽 컨베어를 이용하여 보냈다.
공항에서 짐을 보낼 경우 컨베어를 타고 가다가
마지막에 슬로프를 따라 떨어지는데 이때 파손이 가장 많이 되며,
하드케이스의 경우 이 과정에서 파손이 잘 되기 때문에
가능하면 소프트케이스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서울에 사는 박경수(극단예전단원, 서현성의 남편)가 공항에 배웅을 나오고,
메이컵 담당인 이명자씨가 7시10분이 되어서야 수염을 들고 헐레벌떡 나타났다.
우린 수염을 받자말자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검색대로 바로 들어갔다.
7시45분 기내에 탑승을 했다. 우린 콴타스로 표를 끊었는데 비행기는 아시아나다.
콴타스와 아시아나가 서로 제휴를 해서 함께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티켓팅 할 때도 아시아나 직원들이 콴타스 업무를 대행해 주고 있었다.
97년 호주에 갈 때는 호주의 안셋항공을 이용했는데
이제 인천공항에 더 이상 안셋항공은 보이질 않는다.
안셋항공은 우리나라 IMF 때 수익성 때문에 운항을 중단했다.
대학교 여름방학이라 비행기가 만석이다.
8시10분 비행기는 굉음을 울리면서 땅을 차고 도약했다.
어둠 속에 영종도와 서울 경인지방의 불빛들이 자꾸자꾸 작아지면서 점점이 멀어져 간다.
9시가 되자 기내에서 식사가 제공되고 그냥 맥주나 한잔하고 잠을 청하려고 맥주를 주문했다.
한잔을 시원하게 마시고 또 한잔을 부었다.
그런데 문득 맥주잔에 어리는 얼굴이 있다.
1997년 9월 함께 호주로 자전거 여행 답사 및 자전거 도로 조사를 떠났던 박정희 사무총장.
1999년 11월6일에 고인이 되었으니 벌써 3년이 다 되어간다.
가족들과 속초에 볼 일 겸 휴가 차 갖다가
11월 1일 상주에 제1회 자전거축제 마무리 평가회 관계로
부인이 운전을 하고 오는 도중 함창과 상주사이 국도에서
빗길에 운전부주의로 인한 교통사고를 당해 결국 5일 후에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본인은 운전을 할 줄 모르는데 4사람이 탄 차에서 다른 사람들은 다 무사하고
운전수 옆자리에 탄 사람만 도로 옆에 설치해 놓은 가드레일이
자동차 본넷을 가르며 치고 들어와서 얼굴을 때린 것이다.
당시 사고 현장과 정비공장에 견인해 놓은 사고 차량을 봤는데
사고 차량 뒷좌석에 아무렇게나 널려 있는 흉물스런 시커먼 연어들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당시 양양에서 연어잡이를 해서 스티로폴 박스에 포장, 드렁크에 싣고 오다가 사고가 났는데
속도로 인해 연어들이 뒷좌석 쪽으로 치고 들어와서 아무렇게나 덩그러이 놓인 것이다.
당시 다시는 연어훈제를 먹지 않겠다고 했는데,
이번 여행에서도 연어훈제를 맛있게 먹었으니 이 또한 무슨 아이러니인가.
96년도에 자전거 단체를 만들어 초창기라 다들 힘든 줄도 모르고 열심히 했다.
강원도 영월 출신으로 미군부대에 있는 메릴랜드 대학을 나와 영어도 잘하고
설득력도 있어 우리끼리는 황금이빨이라고 불렀다.
박정희 사무총장은 주로 일을 벌리고 난 주로 마무리를 하고,
우린 그렇게 시민단체 일을 하나하나 만들어 갔다.
그때가 내가 처음으로 해외를 나가는 날이었고
일주일동안 시드니의 스트라스필드에 있는 지인의 아파트에 머물면서
차량을 랜트하여 함께 시드니 시내와 본다이비치. 맨리, 불루마운틴,
Myall Lake국립공원에서 하루 밤을 지내면서
차를 운전하여 브리스번을 다녀 온 일 등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그 후로 함께 자전거투어로 일본 오사카 지역을 다녀오고,
또한 자전거 투어 답사 차 함께 중국 북경과 진황도를 다녀왔다.
그러나 이제 그는 이 세상에 없고,
나만 다시 연극이란 주제를 가지고 호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으니 기분이 참 묘하다.
그 이후 일본에 다시 자전거투어를 다녀오고 이번이 5번째 나가는 해외여행이다.
이런 저런 상념에 젖으면서 맥주 한 캔을 마시고 나니 더 마시고 싶은 생각이 없다.
헤드폰을 끼고 비디오 체널을 돌려 영화 [선생 김봉두]를 봤다.
그리고 조용한 클래식 음악을 듣다가 나도 모르게 깜박 잠이 들었다.
첫댓글 아이고 이걸 언제 다 읽노. 올린다고 욕 봤데이
이야~~~~~~~~~~~~~~~~ 대단하세요~ ^^
나중에 쉬는 날 꼬옥 읽어볼께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