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임식은 8월30일이라지만 여름방학을 하는 오늘이 마지막 출근날이었습니다. 터둔벌에 첫발을 디딘 것이 50여년, 육민관은 나의 인생의 동반자요 반려자임에 틀림이 없었습니다. 떠나야 할 때를 알고 떠나는 것은 아름답지만 잊어야 하는 것은 더욱 슬픈 일입니다. 이태백, 삼팔선, 사오정, 오륙도라는 신종어가 태어나기 까지는 교사가 희망직업 1순위, 사법고시 합격률 5%인데 교사 임용률 4.6% 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쓸어도 쓸어도 쓸리지 않는 젖은 낙엽처럼 붙어 있지 왜 명퇴를 하느냐고 반문을 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누구나 자신의 선택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하겠지만 아무런 대책도 없이 과감하게 던질 수 있었던 것은 늦기 전에 새로운 길을 개척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갈데가 없어 찾은 학교가 아니라 합격증을 찢어버리고 찾은 모교이기에 열정을 다하여 뼈를 묻겠다는 각오로 찾은 학교였습니다.
내가 진정으로 만족하는 유일한 길은 내가 하는 일이 위대한 일이라고 믿는 것이며, 행복은 먼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어느 시인은 네가 앉은 자리가 꽃자리인 줄 알라고 했지만 떠나보아야 꽃자리인지 알 것 같습니다.
퇴직이란 나에게 안개 속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찾듯이 내가 사랑하는 일을 찾아 떠나는 것뿐입니다. 우선 조선일보 집필위원으로 글 쓰는 일에 충실할 것 같습니다. 나이 한두 살 더 먹으면 나의 마음과 나의 직관을 믿고 따르는 용기가 나지 않을 것이고, 인생은 연습이 없기에 남의 삶을 살기보다는 나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으며, 애써 취득한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걸고 그동안 하지 못한 봉사도 하고 싶었습니다. 꿀벌이 존경받는 이유는 부지런해서가 아니라 꽃들에게 꽃가루를 옮겨주는 봉사를 하기 때문이랍니다.
사람은 누구나 영원히 살 것이라고 믿기에 나의 삶의 설계를 하기보다 피동적인 삶을 산다고 합니다. 그러나 언젠가 나도 죽는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잃을 것이 없는 것이며 실패의 위험을 감수하는 사람만이 진짜 예술가인 것처럼 새로운 도전은 늘 아름다운 것이라고 믿고 싶고,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고 싶을 뿐입니다.
사람은 환경에 쉽게 적응하는 매력을 믿기에 나의 선택을 후회하지 는 않을 것입니다. 다만 터둔벌에 정성이 깃든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그리고 학생들의 맑은 눈망울과 평생을 함께했던 동료 선후배들을 남겨둔 채, 혼자 떠나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발길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강원 진로교사회장으로서 굳건한 교육을 뿌리내리도록 헌신하려 했던 계획이 어그러지면서 퇴임식이나 송별식이라는 거창한 형식보다 “명퇴자의 기도”라는 시 한 편으로 대신하고 싶습니다.
몸은 떠나도 터둔벌 여기저기에 걸려 있는 시화들이 굳건히 자리를 지킬 것이라 믿기에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떼어볼 생각입니다. 복받히는 감정을 억누르고, 명예로운 퇴직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선후배 동료 선생님 너무너무 고맙습니다. 후배선생님들에게는 선배로서 롤모델이 되지 못하고 중도하차하게 되어 대단히 송구스럽습니다. 제가 못 다한 열정을 제 대신 풀어헤쳐 인재양성에 힘써 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 몸 건강하세요. 그리고 부자되세요.
첫댓글 박성균 선생님. 들리는 소문이 진정이였군요. 박성균 선생님은 좋은 달랜트가 있으셔서 학교를 떠나오셔도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소주 한잔 하시지요. 바라지 않으면 서운 한 것도 없답니다.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