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서사 "영산작법"
무형문화재로 확정
문화저널
불교의 범패중 가장 규모가 크고 장업하면서 불교의식의 전통을 간직하고 범패(불교음악)의 가락이 독특하고 작법(불교무용)의 장엄. 화려함으로 민속예술이 경지를 이룬것으로 주목받아온 완주 봉서사의 영산작법이 무형문화재로 지정됐다.
봉서사 영산작법은 지난 88년 제 29회 전국민속예술 경연대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 에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무형문화재 지정이 요구되어 왔다. 그동안 관계기관의 무관심으로 문화재 지정이 미루어졌으나 영산작법보존회의 노력으로 2월 20일 봉서사에서 시연회를 가진뒤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천인들이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는 천무와 천음악을 재현하는 영산작법은 중생의 마음을 정화시켜 보살계로 끌어올리는 묘력을 지녔고 부처가 인도의 영취산에서 화엄경을 설파할 때 범천(梵天)에 있는 천인들이 음악과 함께 춤을 추며 꽃을 뿌렸다는 데서 유래되어 이 정경을 극적구성으로 묘사하고 있다. 또한 영산작법은 부처님과 보살들을 꽃가마를 이용해 영산제가 베풀어지는 장소로 인도하는 시련, 사물반주에 맞추어 추는 바라춤이 주가되는 천수바라, 범고춤, 다게작법, 운심게작법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영산작법은 기원은 1천 2백여년전인 통일신라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범패의 시조인 진감국사는 전북 익산군 금마출신으로 당나라에서 수학하면서 영산작법을 익히고 옥천사(지금의 쌍계사)를 창건하고 수많은 제자들에게 범패를 가르쳐 호남지방에 매우 번성했으며 이중 완주 봉서사를 중심으로 그 맥을 이어 왔다. 6.25로 인해 봉서사가 불에 타 의식도구가 사라지고 기능보유자마저 흩어져 한동안 그 맥이 끊어졌으나 범패와 작법의 기능보유자인 장상철, 이강선스님등이 85년에 뜻을 합쳐 영산작법을 재현하고 이듬해에 본서사에 영산작법보존회를 결성해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봉사서의 영산작법은 바라춤이나 운심게(나비춤)등이 매우 장중하면서도 화려해 불교예술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우리민족의 예술로 승화됐다는 평을 받아왔다. 특히 이 지역의 예술적 풍요로움이 녹아들어 곡조구성이나 벌성 춤사위뜽이 독특하게 발전해 서울 봉원사를 중심으로 한 이른바 '서울범패'와는 차이가 난다는 평가를 받았다.
20일 봉서사에서 가진 시연회에는 영산작법을 전수한스님 30여명등 총 70여명이 출연, 육자배기의 향토적 맛이 스민 범패와 우아하고 장중한 바라춤, 화려하면서도 탈속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나비춤 등을 원형 그대로 재현 4시간 이상 진행됐다.
민속예술 복원 40년
박순호 교수
원광대 국어교육과
완주 봉서사 영산작법 대통령상
“여 여혀~여허루 상사뒤~여 모손을 갈라 쥐고 거듬거듬 심어보세.”
구성진 육자배기(판소리 계면조) 장단이 울려 퍼지면 어깨춤이 절로 난다. 힘든 모내기 일도 술술 넘어간다.
지난 10월 충주에서 열린 제43회 한국민속예술축제에서 순창 ‘금과 들소리’를 재현한 김영조(80) 씨를 비롯한 80여명의 전북 대표들은, ‘대통령상’이 확정되자 참가자 모두 지도교수인 박순호 교수(60, 민속학자, 원광대 국어교육)를 얼싸안았다.
“아이구, 저번에 내가 싫은 소리하고 연습 빠진 거 미안해. 그 동안 정말 고생했어.”
107세 할머니의 노래 한 자락을 듣기 위해 며칠씩 집에 머물며 궂을 일을 했던 기억, 왼손 올리라고 하면 오른손 들던, 평균연령 70세의 ‘학생’들 때문에 속상했던 기억이 떠올라 박 교수의 코끝도 찡해진다.
1978년 위도 띠뱃놀이, 82년 남원 삼동굿놀이, 85년 익산 우도농악, 88년 완주 봉서사 영산작법을 한국민속예술축제 대통령상 수상작으로 일궈낸 박순호 교수. 박교수가 우리 민속예술 찾기에 나선지 40년이 흘렀다. 그는 휴일이나 방학 때면 카메라에 녹음기, 캠코더까지 짊어지고 산골 마을로 답사를 떠난다. 나이 지긋한 분들의 소리 한 자락, 이야기 한 마디라도 더 듣고 채록해 두기 위해서다.
이 마을 저 마을로 기약 없이 떠돌다 보면 ‘바로 이것’이다 싶은 농악이나 민요, 민속놀이를 발견하게 된다. 입에서 입으로 전하는 과정에서 노랫말이 뒤바뀌거나 중간 구절이 빠져 있는 경우 온 동네 주민들을 불러 모아 노래를 다시 부르고 수십 수백 차례의 회의를 통해 노랫말을 되살려내 공연 성격에 맞게 구성한다. 40분 정도로 구성된 공연물로 1주일에 2~3회씩 연습을 하고 대회가 가까워 오면 ‘합숙훈련’도 마다하지 않는다. 외부와의 연락마저 모두 끊고 연습에 매진하는 박 교수 팀이 역대 최다 수상을 일구어낸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가 말하는 ‘우승 노하우’ 세 가지.
“농악이든 민속놀이든 우선 원형이 70% 이상 보존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허구’로 재구성하게 되는 것이니까요. 두번째는 단일부락만으로 출연진을 구성하는 것입니다. 어차피 그 지역주민들 사이에서 전해오고, 또 그들이 보존해 나가야 하는 문화 아닙니까. 쉽게 ‘공연’을 하려고 다른 지방 사람이나 학생들을 동원한다면 의의가 반감되겠지요. 세번째로는 공연을 보는 사람들이 함께 신명나게 어울릴 수 있도록 하는 연출력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일상에서 민속예술 되살려야
하지만 수상보다 더 큰 문제는 발굴된 문화의 보존. 대통령상을 받고도 전수자가 죽고 나면 명맥이 끊겨버리는 경우도 있다.
때문에 박 교수는 지역의 도움을 받아 보존회를 결성해 전수회관을 건립하고 후계자 양성에 힘쓰도록 한다. 그가 발굴한 위도 띠뱃놀이와 익산 우도농악은 지방문화재로 지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민속예술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자꾸 줄어드는 것이 안타깝다. 농요보다 가요가, 민속놀이보다 컴퓨터 게임에 더 익숙해진 오늘날의 우리들에게 민속예술은 어떤 의미일까?
“실제 다녀보면 ‘손으로 모심고 호미로 논매본 게 언제인지 모르는데 농요는 무슨…’이라고 말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농요의 기능 자체가 상실된 것이죠. 하지만 몇 백 년을 이어져 내려온 민속놀이나 농요 속에는 우리네 역사가, 우리 선조들의 삶과 애환이 묻어있지 않습니까. 이것을 되살려 전승시켜보자는 것이죠.”
불교대 설립, 7년간 학장
어쩌면 소박해 보이고 한편으론 개인이 감당하기 벅차 보이는 소망을 이루기 위해 박 교수는 40여 년간 한뎃잠을 자고 마을의 궂은 일도 자청해 가며 우리 노래와 이야기를 모아왔다. “힘들 때면 의지가 되고 화가 날 때면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고 자만심이 들면 고개 숙일 수 있게 해 준 것이 부처님 가르침”이라는 박 교수의 불교사랑 또한 남다르다.
군산불교신도연합회 회장이었던 박 교수는 지난 1997년 불교대학 설립에 앞장섰고, 창립 때부터 지금까지 7년간 학장으로서 불자 교육을 담당하고 있다. 특히 봉서사 스님과 신도들이 한마음으로 재현해 낸 ‘완주 봉서사 영산작법(1988)’은 그가 가장 애착을 갖는 ‘작품’이다.
경연대회 참가 준비를 하는 틈틈이 자신이 모은 자료를 책으로 펴내는 작업도 잊지 않았다. <전국구비문학대계>, <전북예술축제>를 낸 것을 비롯해 2000여 권의 자료 중 102권을 영인본으로 펴냈다. 이 과정에서 판소리 열두마당 중 구전이 끊겼던 ‘무숙이 타령’ 사설을 발견해 주목 받기도 했다.
“남들이 알아주기를 바랬다면 중간에 몇 번이고 그만뒀을 겁니다. 생명이 붙어 있는 순간까지 민속예술을 발굴하고 지켜나가는데 힘이 되고 싶습니다.”
글= 여수령 기자 snoopy@buddhapia.com
사진= 임민수 기자
당찬 신세대…단편영화 ‘별주부전’
‘방생’ 소재 인간욕망 그려
내년 부산국제영화제에 출품 계획
비구니 스님이 장터에 간다면?
동국대 영상정보통신대학원 영화영상제작학과 학생들이 만드는 25분 짜리 단편 영화 ‘별주부전’은 ‘방생’이라는 소재적 특성 말고도 ‘특별한’ 것이 있다고 시나리오와 공동 연출을 맡은 오지혜(26)씨는 강조했다.
“기존 단편 영화들은 종교를 다룰 때 너무 무겁고 엄숙하게만 접근한 것 같아요. 젊은 비구니 스님의 좌충우돌 에피소드를 통해 유쾌하면서도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하려 해요.”
줄거리는 대강 이렇다. 연화라는 젊은 비구니 스님은 방생 법회에 쓸 자라를 사서 장터를 빠져나오다가 꼬마의 황금잉어사탕을 부수게 된다. 돈이 없는 스님은 야바위판에 끼어들게 되고, 그 와중에 허리가 좋지 않은 장돌뱅이 김씨가 자라가 든 함지박을 안고 가 버린다. 자라가 꼭 필요한 스님과 김씨는 자라 경주를 벌여 주인을 가리게 되고….
장터라는 소재와 빠른 전개 탓에 “코믹 액션 느낌이 나는 드라마”다. 여기에는 23살 또래와 다를 게 없어 보이는 젊은 비구니 스님 연화의 모습도 한 몫 거든다. 스님은 장터에서 머리핀 가게를 기웃거리다 스스로 멋쩍어 하기도 하고, 꼬마의 황금잉어사탕을 박살내 당황해 어쩔 줄 몰라 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오씨는 “불교적 소재만을 차용한 가벼운 영화가 절대 아님”을 강조한다.
“‘자라’는 방생 법회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기도 하지만 남자들 보신을 위해서도 많이 찾잖아요. 인간의 ‘욕망’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죠. 욕망이라고 하면 추하고 더러운 것으로만 생각하지만 정직하게 욕망을 쫓는 모습 자체가 우리가 평범하고 평등한 인간 중 하나라는 것을 깨닫게 하는 것 아닐까요. 인간의 본성을 인정해 주면서도 본연의 모습을 잃지 않는 종교, 그런 것을 담고 싶어요.” 영화는 모두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고 행복해 하는 장면으로 끝난다.
영화진흥위원회의 독립 영화 사전 제작 지원을 받아 이뤄지는 영화가 완성되면 내년 제8회 부산국제영화제 등에 출품할 계획이다. 외국의 국제영화제에도 도전해 볼 생각이다.
“외국에서 경쟁력 있는 소재로서 불교가 갖는 가능성이 큰데도 아직 제대로 개발이 안 되어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는 오씨는 “설득이나 감동을 준다는 생각보다는 보고 나서 마음이 편해지고 즐거움도 얻을 수 있는 그런 영화로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권형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