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대찌개 사장
학교 근처에 로얄식당이 있다. 평범한 음식점인데 영훈고 선생님들 사이에서는 부대찌개가 가장 맛있는 음식으로 소문이 나 있다. 아버지학교를 먼저 수료한 제과점 사장님의 사모님께서 로얄식당 사장님 내외에 대해 말씀하신 적이 있다.
로얄식당의 아내는 집사님으로 교회에 열심히 나가시며 남편도 교회에 나간 지 얼마 안 된다고 했다. 제과점 집사님의 말씀으로는 식당의 사장님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후 교인들이 와서 도와주신 것에 감동을 받아 교회에 출석하게 되었다고 했다. 이번 기회에 아버지학교를 소개하면 더 좋을 것 같다는 말씀으로 권면을 부탁한다고 했다.
선한 모습으로
점심시간을 이용했다. 식사도 할겸 로얄식당을 찾아갔다. 허름한 내부, 그러나 끈끈한 정이 묻어나는 정겨움이 있었다. 남편과 아내 두 분이 함께 있었다.
"안녕하셔요. 저는 영훈고 최관하 선생이라고 합니다."
아내 집사님께서 먼저 말을 받으며 인사했다.
"네, 안녕하세요. 선생님. 저희는 선생님 잘 알아요."
"네, 그러시군요. 식사 좀 할까 해서 왔습니다."
남편이 반색을 하며 의자를 내주었다. 나는 자리에 앉았다. 음식을 주문하고 나는 남편께 말을 건넸다.
"이 곳에서 오래하셨지요?"
남편은 선한 얼굴을 더 환하게 하며 말했다.
"네, 여기에서 한 15년 했지요. 그전에는 양복을 했구요. 바로 이 자리에서요."
"아. 그러셨군요. 양복을요?."
"네, 그러다가 양복점이 다 사라지게 되었잖아요. 영세업이니까, 메이커 있는 대형매장들이 들어서면서요. 그래서 음식점을 하게 되었습니다."
부족한 사람입니다
나는 선선히 말씀하시는 그분의 모습에서 가난하지만 선하게 살아오심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아내의 기도에 힘입어 이제 교회로 인도함 받는 상황에서, 현재의 만남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장님은 참 옳게 살아오신 분 같네요. 얼굴에 그렇게 나타나요."
"아유, 무슨 말씀을요. 그냥 아무 것도 모릅니다. 교회에 나가긴 해도 믿음이 무엇인지 기도를 어떻게 하는 지도 잘 몰라요."
"천천히 하셔요. 하지만 결국 말씀을 잘 알아야 신앙 생활을 잘 할 수 있게 되거든요. 나중에 기회가 주어진다면 예배 참석하는 것과 별도로 성경공부같은 프로그램을 접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여러 이야기가 오갔다. 두 아들과 딸을 자녀로 두고 있고, 큰아들은 현재 복무중이며 두 달 남짓 후에 제대를 한다고 했다.
"열심히 해준다고 했는데 아이들 앞에서는 참 부끄러운 아버지입니다. 부족한 점이 많아서요."
옆에 있던 아내가 말을 이었다.
"선생님. 하지만 저희 남편은 참 착하게 살아왔어요. 가진 것은 없지만요. 이제 저희들 소원은 열심히 신앙 생활하고 하나님 인도로 살아가는 겁니다."
북부아버지학교에
"사장님. 마침 잘 됐습니다. 곧 북부아버지학교가 시작되는데 그곳에 참여하시면 어떨까요? 사장님 스스로도 자신을 돌이켜보는 시간이 될 것이고, 아내와 자녀들을 위해서도 매우 좋은 시간이 될 것입니다."
갑자기 그 사장님의 얼굴이 더 환하게 밝아졌다. 아내 집사님도 그랬다.
"아, 저도 아버지학교에 대해서는 좀 들었습니다. 제과점 집사님께서도 말씀하시더군요. 선생님. 어떻게 하면 될까요?"
"연락처만 알려주세요. 그러면 제가 접수해 놓겠습니다."
나는 아버지학교에 대해서 여러 가지를 말씀드렸다. 그리고 성경 말씀을 펼쳤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립보서4:6-7)
이 말씀을 함께 나누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며 기도했다. 현재의 상황을 걱정하지 말고 오직 기도로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그 앞길을 인도하실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나아가기를 소망하는 기도를 드렸다.
학교에 돌아와 그 가정을 놓고 다시 한 번 기도했다. 그리고 곧 아버지학교에 접수를 하였다.
학교 주변의 주민들까지 섬세히 관찰케 하시고, 필요한대로 공급하여 주시려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감사드리며, 또 한 가정이 아름답게 일어서리라는 기쁨이 넘쳐났다.
북부아버지학교에 참석한 사장님은 5주 동안 넘쳐나는 은혜로 생활이 활기에 넘쳐났다. 특히 마지막 주 사흘 전에 큰아들이 제대를 하여 수료식에 온 가족이 참석하여 풍성한 즐거움을 누렸다.
이버지학교 수료 후 식당에서 영업을 할 때에도 아버지학교 티를 입고 장사를 하고 있었다. 더욱이 오시는 손님들에게도 아버지학교를 열심히 소개하는 모습으로 변화되고 있었다.
실업자가 됐어요
여름에 미국에 다녀왔다. 2주 가량을 그 형제, 자매의 소식을 접하지 못해 궁금해 있던 차에 아내 집사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선생님, 잘 다녀오셨어요? 오랜만입니다."
"네, 자매님. 평안하셨어요?"
"선생님. 우리 가게 다 정리했어요."
"네에? 아니 왜 갑자기 그렇게 하셨어요?"
나는 예상치 못한 사실에 놀라며 물었다.
"사실은 한참 전부터 생각해 왔던 거예요. 집안에 빚도 좀 있고 해서, 갚고 새롭게 시작하려구요."
"그랬군요. 형제님은 잘 지내시구요?
"네, 선생님. 우리 그이 실업자 된거죠, 뭐. 그런데 마음은 이렇게 편안할 수가 없어요. 교회도 더 열심히 나가고요. 담배도 끊었구요. 술도 거의 안 마시게 되었어요."
"아, 네. 감사한 일입니다. 좀 휴식을 위하면서 이제 하나님의 인도를 구하면 되겠네요. 분명히 섭리하시는 것이 있을 겁니다."
"네, 선생님. 그래서 말인데요. 남편이 어제 선생님 꿈을 꾸었다네요. 꼭 좀 뵙고 싶어해요. 그래서 생각인데 저희 집에 오셔서 예배 한 번 드리면 어떨까 싶어서요."
나도 그 형제의 모습이 궁금했다. 수십 년간을 양복일로 식당일로 살아오신 형제. 그리고 아버지학교를 통해 새로운 힘을 불어넣어주시고, 또 기도하게 하시는 하나님. 그 은혜를 가슴에 담고 있을 형제의 모습이 궁금했다.
"네, 자매님. 그렇게 할게요. 적당한 시간을 살펴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 저도 어서 뵙고 싶네요."
예배를 드리고
사흘 후 나는 그 형제의 가정을 찾았다. 장위동 산동네에 있는 자그마한 집이었다. 그러나 안으로 들어가니 작은 집이 아니었다. 방이 네 개. 가족들 모두 방 한 개씩이 있었다. 그것은 아버지 입장에서 자녀들을 위한 배려였다.
형제의 얼굴은 생각보다 더 평화로웠다. 우리는 만나자마자 아버지학교 인사법인 허깅으로 인사했다.
"형제님. 오랜만입니다. 잘 지내셨죠?"
"네, 선생님. 바쁘시죠?"
"이렇게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가게도 정리하시고 이제 휴식도 좀 취하시며 새로운 길을 찾아보시면 되겠네요."
"네, 안 그래도 기도하면서 성경도 읽고 그렇게 지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말씀을 읽어도 무슨 뜻인지 잘 알 수가 없어서 답답해요."
"하하, 그러시군요. 그래도 하루에 한 절씩이라도 읽으시고 또 기도하시고 그러세요. 그러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음성이 분명히 있을 겁니다."
떡과 과일을 먹으며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야기 가운데 나는 이 형제님이 얼마나 아름답게 하나님 안에서 성장할 것인지 기대가 되었다. 계속 말씀에 부족하다는 말을 들으며 나는 가슴에 담고 있던 한 가지 제안을 했다.
"형제님. 사실은 아버지학교를 통해서 우리가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고 깨닫게 되는 것이 있어요. 하지만 그 이후가 더 중요하답니다. 바로 지금 형제님 같은 상황이지요. 무엇보다 말씀에 눈을 떠야 돼요. 그래야 어떤 상황이 온다할지라도 하나님을 신뢰하며 나아갈 수가 있는 거지요."
나는 또렷이 나를 주시하고 있는 부부를 앞에 두고 말을 계속했다.
"그래서 말인데요, 아버지학교를 수료하신 형제님 중에 저희 학교 교사나 지역 주민들 몇이 성경공부를 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저도 많이 부족하지만 아버지학교 형태의 나눔을 중심으로 말씀을 가지고 우리들의 삶을 나누고 말씀으로 정리하는 삶, 그것이 사실 필요한 거랍니다. 그래서 지금 계획중이었는데 형제님, 어떠세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두 시간 남짓 괜찮으실까요?"
"선생님, 그것 참 반가운 말씀이네요. 저에게 꼭 필요한 것이 지금 그러한 것 같습니다. 선생님이 힘드시겠지만 꼭 하면 좋겠습니다."
아내 집사님은 무엇인지 모를 눈물이 눈에 가득했다. 그리고 감격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 이이가 이렇게까지 급속도로 변할 줄은 정말 몰랐어요. 너무 감사합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태복음 6:33)
우리는 말씀을 읽고 예배를 드렸다. 하나님께서 이 가정을 축복하시고 또한 아름답게 사용해달라고 힘써 기도했다. 이제 생업을 결정하고 또 모든 일을 진행할 때도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먼저 구하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기를 소망하며 기도했다.
값진 헌금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무척 감사했다. 추석이 지난 후부터 성경공부 모임을 시작하기로 했다. 예배를 마친 후 자리에서 일어서려는 순간, 부부가 내 앞에서 어색한 듯이 쳐다보더니 흰 봉투를 한 개 내밀었다.
"형제님. 이것이 뭐지요?"
"선생님. 정말 죄송합니다. 저희 집이 너무 가난해서 이것밖에 준비할 수가 없었어요. 이것 아이들을 위해서 사용해주세요. 정말 얼마 안됩니다."
"아닙니다. 형제님, 자매님. 그저 기도만 해주시면 되요."
"선생님. 정말 얼마 안 됩니다. 나중에 저희들도 꼭 어려운 학생들을 돕겠습니다. 이것은 그 시작이라고 보시면 되요. 받아주십시오."
계속해서 사양할 상황이 아니었다.
"네, 감사합니다. 그러면 제가 기도하고 받을게요."
우리 셋은 다시 자리에 앉았고 나는 기도하기 시작했다.
"하나님, 어려운 가정 형편이지만 이렇게 물질을 내 놓는 이 가정 축복하시길 원합니다. 칠 배의 축복으로 더하여주시옵소서. 앞으로의 삶을 주님께서 온전히 주장하여 주시옵소서…."
감사감사 또 감사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나는 그 가정을 놓고 다시 한 번 기도했다.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다가 이제 새로운 삶의 길로 들어선 가정. 아버님의 죽음으로 교회로 인도하시고, 이어 아버지학교로, 그리고 생업을 위해 하나님의 방법으로 간구토록 하며 이제 말씀훈련까지 이어주시는 하나님. 참으로 복이 예비되어 있는 가정이라는 마음이 들었다.
헌금으로 주신 것이 생각나 봉투를 열어 보았다. 그 안에는 만원 지폐 한 장이 들어 있었다. 때가 묻은 지폐 한 장. 여러 헌금을 받아보았지만 이러한 감동은 처음이었다. 그 가정에서 만원은 어지간한 사람의 백만원 천만원 이상의 가치가 있는 돈임을 나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눈에 눈물이 핑 돌기 시작했다. 액수가 아니라 그 물질을 허락토록 마음을 열어주신 하나님의 마음이 감사하고 또 감사했기 때문이었다.
이제는 학생이나 동료교사, 학부모뿐만이 아니라 지역주민까지 변화시켜주시는 하나님의 섭리하심에 감사기도를 드렸다. 부족하지만 부족한 그대로 나를 사용해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
김영선 형제와 그 가정을 놓고 기도 부탁드립니다.
말씀에 더욱 가까이 갈 수 있도록 그 형제를 위해 기도해주시고,
함께하는 저에게도 항시 성령 충만할 수 있도록 기도로 도와주십시오.
애들이 왜 그 모양이야?
무섭기로 소문 난 한문 과목의 양 선생님께서 나에게 다가오셨다. 교무실에 있던 나는 무슨 일이 있나 하는 마음으로 그 선생님을 주시했다.
양선생님은 불같이 화끈한 성격으로 매도 많이 들고 또 야단도 많이 치는 분이다. 그러나 실력이 뛰어나고 의리에 있어서는 성격처럼 또 뜨거운 분이어서, 아이들은 졸업 후에 이 선생님을 많이 찾아온다.
"아니, 최선생. 애들이 왜 그 모양이야?
나는 한참 연배가 높은 양 선생님의 큰 소리에 자리에서 일어나며 되물었다.
"왜요? 양선생님. 무슨 일이 있으셨어요?
사심없이 대화를 잘 나누었던 사이인지라 화가 난 듯한 그분을 대함에도 불편하거나 어색함은 없었다. 아이들이 무슨 잘못을 저질렀나 하는 생각을 잠시 한 것 뿐.
"최선생 반 애들이 한문 숙제를 거의 안 해왔다구. 게다가 해 온 놈들은 남의 공책에다가 이름을 바꿔 놓고 말야. 이거 이래서야 되겠어?"
선생님을 속이려하다니
현재의 영훈고에 와서 처음으로 나는 1학년 여학생 학급을 담임했었다.
그때 나는 그동안 생각해왔던 열려 있는 수업을 지향했고, 학급운영도 유익하면서도 재미있게 하고자 했다. 모둠일기를 쓰고 생일축하를 하고 서로 긴밀한 관계 속에서 즐겁고 활기찬 학교 생활을 하는 것을 가장 큰 중심으로 삼았다. 아이들은 잘 따라주었으며 매일매일 기쁜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공부도 열심히 잘하고 있었다. 나름대로의 개성을 살리며 그 개성으로 조화롭게 이루어지는 아름다운 학급을 지향했었다. 그런데 숙제를 안 해 오다니. 게다가 남의 공책에다가 이름만 바꾸다니. 그것이 사실이라면 진실과 정의를 내세웠던 담임인 나의 생각에도 당연히 위배되는 것이었다.
"양 선생님.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아이들하고 한 번 이야기 나누어보죠. 정말 선생님 말씀대로 아이들이 그렇게 했다면 당연히 야단 맞아야죠. 아이들하고 이야기 나눈 후 다시 선생님께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말을 듣고도 양 선생님은 화가 풀리지 않았다. 아이들이 선생님을 속이려 했던 그 사실을 선생님이 알았을 때의 그 배신감. 아마도 양 선생님은 그러한 불쾌감과 허탈감을 맛보고 있는 듯했다.
할 수 있는 숙제가 아니에요
나는 교실로 갔다. 그리고 7교시 자율학습 시간을 통해 모두들 바른 자세로 앉도록 했다. 다소 경직된 나의 모습에 아이들은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있었다.
'한문 선생님이 가셔서 뭐라고 했구만….' 하고 술렁이는 아이들. 눈치 빠른 우리 아이들이었다. 나는 마음이 좋지 않았다. 숙제를 해오지 않았다면 떳떳하게 야단을 맞고 벌을 받으면 되는 것인데, 우리 아이들은 그 순간을 모면하고자 한다. 그것이 안타까웠다.
"얘들아, 오늘 선생님하고 이야기 좀 하자."
아이들은 나를 주시했다.
"짐작은 했겠지만 한문 선생님께서 단단히 화가 나셔서 나에게 말씀하시더구나. 너희들 나쁜 놈들이라구 말야. 선생님을 속이려 했다면서? 내 생각에도 너희들이 잘못한 것 같은데 너희들 어떻게 생각하니?"
그 때 비판성이 강한 상희가 외치다시피 말했다.
"선생님. 한문 숙제가 할 수 있는 숙제가 아니에요. 얼마나 많은지 아세요? 그 숙제를 다 하려다가는 다른 공부나 숙제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단 말예요."
다른 아이들도 동의한다는 눈빛을 나에게 보내고 있었다. 아이들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아예 한문 숙제 한 과목을 포기하고 다른 공부를 하든지, 아니면 야단 맞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하여튼 아이들이 취한 그것은 내가 아이들을 어느 정도 이해한다 하더라도 바른 방법은 아니었다.
운동장에 모두 모여
나는 마음을 정리했다.
물론 한문 선생님께서 과다한 숙제를 내주신 것이 아이들의 현상황을 잘 파악하지 못하고 너무 많게 내신 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아이들 앞에서 선생님을 욕할 수는 없는 일이다. 또한 그것은 교사들끼리의 이야기여야만 했다.
나는 이 아이들을 야단치기로 결심했다. 특히 진실을 주장하고 그렇게 살아가야할 아이들이 숙제를 통해서 선생님을 속이려 했다는 것은, 어떤 식으로든지 설명될 수 없는 옳지 않은 것임을 깨우치고자 하였다.
"너희들 아무래도 안되겠다. 반성을 하지 않는구나. 오늘 선생님에게 특별히 혼나야겠어. 모두들 운동장에 집합 해."
아이들은 무척 당황하고 있었다. 이러한 일은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면서도 아이들은 내 말을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아이들은 이내 운동장 한 켠에 4열 횡대로 서 있었다.
1학년 여학생들이 운동장에 벌을 서려고 모여드는 것을 바라보는 타 학생들은 재미있다는 듯이 놀리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매우 진지했다. 모두 운동장에 집합이 끝난 상태에 나는 잠시 계단 위에서 아이들이 눈치 채지 않도록 하며 기도했다.
'하나님. 이 아이들에게 새로운 힘을 주시옵소서….'
이 나쁜 녀석들아
나는 큰 목소리로 말했다.
"이 녀석들. 정말 너희들이 잘못한 게 없단 말이니? 응? 선생님을 속이려고 한 것이 말야. 오늘은 선생님 입장에서 나도 여러분들에게 실망할 것 같아. 어때? 앞으로 다시는 거짓말과 거짓행동을 하지 않겠다는 사람은 오늘 선생님이 때리는 매를 맞도록 해. 그렇지 않고 억울하다든가 매를 맞지 못하겠다고 하는 사람은 옆으로 나와라. 그런 사람은 안 맞아도 좋으니까."
아이들은 내가 매를 든다는 사실에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면서도 꼼짝하지 않고 제 자리에 서서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우리 담임이 저럴 수가' 하는 의아함과 묘한 감정이었지 않았을까 싶다.
나는 매를 들고 앞의 여학생부터 손바닥을 한 대씩 힘껏 내리치기 시작했다.
"퍽, 퍽……."
매가 계속 될수록 아이들은 손을 비비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아픔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 녀석들아, 아프니? 선생님 마음은 더 아파, 이 나쁜 녀석들아!"
불쌍한 아이들
나는 울고 있었다. 아이들의 아픔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입시 지옥이 있는 나라에 태어나 자기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지 못하고 그저 대학만 바라보며 나아가는 우리 아이들. 그리고 억지로 베껴 검사 받아야 하는 과다한 숙제, 성적, 친구와의 고민, 미래의 불투명으로 오는 불안감 등등.
아이들의 아픔이 가슴속에서 일어나며 아이들이 마구 불쌍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흐르는 눈물을 애써 감추고 있었다. 아이들에게 들켜서는 안 될 것 같았다.
"모두들 눈 감고 똑바로 서 있어. 그렇지 않으면 한 대씩 더 때릴지도 몰라….
그러나 아이들 가운데 몇은 이미 흐느끼고 있었고, 매를 멈추었을 때 아이들은 눈을 감은채 거의 모두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서너 계단 위로 올라 선 나는 아이들을 향해 말했다.
"얘들아, 나는 너희들을 누구보다 사랑한다. 오늘은 이런 하고 싶지 않은 방법을 사용했는데…. 많이 아프지? 너희들이 앞으로 살아가면서 오늘의 순간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 진실과 정의를 지키는 것 말야. 작은 것 하나부터 우리 그러한 것들을 실천해야 하지 않겠니?"
아이들은 조용히 내 말을 듣고 있었다. 그 때 아이들 뒤편으로 펼쳐진 10월의 가을 하늘이 매우 푸르게 펼쳐져 있음이 내 눈에 들어왔다. 내 가슴이 새로운 희망과 기대로 한껏 부풀어올랐다.
가을 하늘을 쳐다보렴
"얘들아, 눈 감은 상태로 모두 뒤로 돌아 보겠니?"
아이들은 그 자리에서 뒤로 돌았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더 높이. 그래, 자, 이제 눈을 떠 봐. 어서."
아이들은 영문을 모르면서 시키는 대로 했다. 아이들의 눈동자는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
"얘들아, 어떠니? 앞에 무엇이 보이니? 저 넓고 푸른 가을 하늘 보이니? 그래, 선생님은 너희들이 저 푸른 하늘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앞에 놓여 있는 여러 문제들과 힘든 상황을 보지 말고 너희들 앞에 푸르게 놓여 있는 저 가을하늘같은 넓은 미래를 향해 노력했으면 좋겠어. 얘들아, 알았지? 힘내라, 응?"
힘주어 이 말을 하는 내 목소리는 이미 간헐적인 울음소리로 바뀌어 있었다. 가을 하늘을 쳐다보는 아이들도 모두 울고 있었다. 말못할 설움들, 힘겨움들, 공부에 대해, 성적에 대한 중압감들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주저앉으며 우는 영미와 혜진이. 엉엉 소리내며 우는 보라, 그리고 훌쩍이는 아이들. 그 아이들을 지켜보는 나의 눈에는 가을하늘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회복의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요리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대입 원서를 접수하는 때다. 해마다 이맘 때면 졸업생 아이들의 얼굴을 보게 된다. 다시 대학에 지망하는 아이들은 모교에 와서 원서를 쓰고 접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생각지도 않던 영희가 갑자기 나타났다. 영희는 올 초에 전주대학교 경배와 찬양과에 합격하고도 등록금이 없어서 진학을 못했던, 고등학교 재학 시절 함께 성경공부 하던 기독학생이다. 졸업 후 요리전문학원에 다니며 요리 자격증을 취득했다는 소식은 전해듣고 있었다. 완전한 숙녀티가 나는 영희를 만나는 순간 고교 시절 이 아이의 가정이 생각 나 눈물부터 핑 돌았다.
"영희야, 정말 오랜만이로구나. 오늘 원서 쓰러 온거니? 잘 지냈고?"
"네, 선생님. 안녕하세요. 원서 쓰러 온게 아니고 그냥 선생님 뵙고 싶어서 온거예요."
밝고 환한 웃음으로 영희는 말했다. 나는 영희를 기록보존실로 데리고 가, 자리를 잡은 후 오랜만에 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결국 이혼했어요
"영희야, 요리 자격증 땄다면서?"
"네, 선생님. 한식이구요. 며칠 후에 일식 시험이 있어요. 기도해 주세요."
"그럼, 당연하지. 참, 집안은 좀 어떠니? 아빠하고 엄마는…."
영희의 얼굴이 약간 어두워지는 듯 싶더니 다시 명랑한 소리로 대답했다.
"결국 이혼하셨어요. 아빠가 나가셨구요. 저는 엄마하고 살아요."
"그렇구나. 그럼 아빠는 그 때 만났던 분하고…."
"네, 선생님."
영희가 고3을 올라올 무렵부터 가정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신실한 믿음을 가지고 계시던 영희 아빠는 다단계업을 하시던 한 아주머니를 만나면서 집에 들어오지 않으셨고, 가정도 책임지지 않으셨다. 영희의 어머니께서 한 중학교 급식실에서 일을 해주시고, 그곳에서 남은 음식을 가져다 영희와 그 오빠를 먹도록 하며 어렵게 생활해 온다던 이야기를 들었었다. 영희는 고3을 마칠 무렵까지 아빠에 대한 배신감 때문에 무척 힘겹게 생활하고 기도도 많이 했었다.
"그랬구나. 엄마가 많이 힘드시겠다."
"그래서 제가 얼른 자격증 따서 엄마 도와드리려구요."
"그래, 영희야. 선생님이 한 가지 말하겠는데, 네 아빠가 그렇게 하셨어도 네 마음 가운데 아빠를 미워하는 마음이 없었으면 좋겠다. 영희는 기도하는 사람이니까 잘 생각해보면 알거야. 사실 아빠가 얼마나 불쌍한 분이니? 믿음생활 잘 하시다가 아내와 자녀를 버린 그 죄를 나중에 어떻게 씻김을 받으실지 말야. 영희야, 그러니까 더 기도하렴. 엄마도 힘드시겠지만 그 긍휼한 마음을 품고 기도하시면 좋을 것 같아."
"선생님. 저 알고 있어요. 힘들긴 하지만, 그렇게 노력하고 있어요."
생각보다 많이 성숙한 영희의 모습에서 나는 평안함을 맛보고 있었다.
헌금이예요
영희는 지갑에서 하얀 봉투를 꺼내어 내 앞에 내놓았다.
"영희야, 이게 뭐니?"
"선생님. 낮에는 학원 다니구요, 밤에는 아르바이트를 했거든요. 제가 알기로는 기독교반 후배들 축제 공연이 며칠 안 남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아이들 위해서 써주세요. 제가 번 돈의 십일조 정도예요."
이렇게 귀한 돈을….
마음속에 진한 감동이 물결처럼 일렁였다. 어렵고 힘들게 사는 아이인데 이렇게까지 소중한 마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했다.
"아니, 영희야. 십일조면 하나님께 드려야지, 이렇게 해도 괜찮겠니?"
"그럼요, 선생님. 기독교반 후배들이 하나님 높이기 위해서 축제 때 참여하는 것이잖아요. 그러니까 하나님도 이해하실 거예요. 그리고 저도 학생 때 도움 많이 받았잖아요. 사실 얼마 안 되요."
"그래, 영희야. 네 마음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거야. 선생님이 참 기쁘고 고맙구나. 네가 아주 잘 크고 있으니 말야. 선생님이 기도 한 번 할게."
마음을 받으소서
영희와 나는 손을 맞잡았다. 마음속에 형언할 수 없는 깊은 감동이 일었다. 힘겹고 어려운 때일수록 이렇게 하나님을 붙잡고 기도하며 살아나가는 사람들을 만날 때면 그저 감사할 뿐이다. 특히 그 주인공이 내 제자일 때에는 감동이 더하다. 영희의 얼굴도, 말하는 것도, 생각도 모두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어 더욱 기뻤다.
나는 기도하기 시작했다.
"하나님, 참으로 감사합니다. 영희를 잘 지켜주셔서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 믿음으로 세상의 모든 것을 이기며 살 수 있도록 은혜주시니 감사합니다. 이렇게 귀한 물질을 하나님을 위해, 후배들을 위해 내놓습니다. 주님께서 칠 배로 갚아주실 줄 믿습니다. 또 자격증 시험도 있사오니 주님, 인도하소서. 축복하소서. 헤어져 있는 아빠와 엄마도 회복이 되게 하실 줄 믿습니다. 더욱 아빠, 엄마를 위해 기도하는 영희로 축복하시길 원합니다.……"
기도는 꽤 오랫동안 계속되었다. 기도하는 나도 영희도 이미 울고 있었다. 여러 가지 힘들었던 영희의 순간들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위로와 평강으로 녹아내리고 있었다.
며칠 후, 아침 이른 시간 영희에게서 전화가 왔다.
"선생님, 저 지금 시험 보러 가요. 기도 해주세요."
이럴 때는 즉각적인 기도가 필요하다. 기도를 미루면 나중에 하기가 더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그래, 영희야. 전화기 귀에 가까이 대렴. 지금 기도할게."
"네, 선생님. 시작해도 좋아요."
나는 전화기를 통해 영희의 앞길을 인도해 달라는 기도를 하였다. 영희는 가던 길을 멈추고 길거리 적당한 곳에서 함께 기도하고.
"선생님.고맙습니다. 시험 잘 볼 수 있을 거예요. 연락드릴게요."
영희의 생글생글한 얼굴과 함께 밝은 목소리가 내 귓가에 계속 남아 오늘 하루를 아름답게 지배하고 있었다.
수업 중 무단 침입자
3학년 여학생 수업시간.
조용한 분위기에서 수업이 진행되고 있는데 갑자기 뒷문이 벌컥 열리더니 교장선생님께서 들어오셨다. 그러더니 맨 뒤의 여학생 머리를 툭 치며,
"아니, 머리가 이게 뭐야. 왜 이렇게 길어. 묶으라고 했잖아."
하셨다.
순간적으로 벌어진 일이라 수업을 진행하고 있던 나나 아이들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그저 지켜만 보고 있었다.
교장선생님께서는 교실을 한 번 휘 둘러보시더니 뒷문으로 다시 나가려고 하셨다. 교실 뒷문 쪽 가장 뒷자리에는 정임이가 책상에 엎드려 있었다. 수업 시작 전 자신의 몸이 불편하다고 좀 엎드려 있게 해달라고 나에게 허락을 구했던 정임이였다. 교장선생님은 나가려다 말고 갑자기 정임이의 등판을 팍 때렸다.
"이거 공부는 안하고 아침부터 잠만 자면 어떻게 해? 응?"
아이들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교장선생님의 움직임을 계속 지켜보던 나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교장선생님. 그 학생은 몸이 아파 제가 엎드려 있으라고 허락을 한 학생입니다."
나는 분명하고 확실하게 말씀을 드렸다. 교장선생님의 얼굴이 잠시 붉어지는 듯 싶더니 황급히 교실을 빠져나갔다.
수업 중에 왜 들어오시는 거예요?
아이들과 나는 한동안 수업을 계속하지 못하고 멍하니 있었다.
교사에게 있어 수업시간을 침해받을 경우가 가장 마음이 손상되고 또 난감하다. 아이들 앞인지라 함부로 교장선생님께 험한 말로 대응하기가 어렵고, 또 그냥 있으려니 교육적으로도 옳지 않기 때문이다. 그때 미영이가 질문을 했다.
"선생님. 교장선생님은 수업 중에 왜 들어오시는 거예요? 한두 번이 아니예요. 선생님들이 기분 나빠 하시는 것도 모르시나봐요."
"미영아. 다른 시간에도 오늘처럼 들어오시고 그랬니? 그동안 선생님 시간에는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거든."
아이들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럼요. 선생님. 교장선생님 뿐만이 아니고요. 교감선생님도 들어오시고요, 정말 짜증나요. 별 일도 아니면서 말예요."
영훈고에 만연된 잘못된 풍조는 비단 영훈고만의 일은 아닌 듯 싶다. 많은 학교의 교사들이 이와같은 일을 당하는 것은 아닐까? 그래도 우리 학교는 사립학교여서 서로 오랫동안 보아왔기 때문에, 수업중에 특별한 볼 일이 있다면 양해를 구하고 정식으로 들어오신다면 아이들도 이러한 반응은 보이지 않을 듯 싶었다.
다른 선생님들로부터 이러한 식으로 수업중에 마구 들어오는 관리자의 횡포에 대하여 이야기를 들어왔는데 그러한 동일한 일이 나에게도 생긴 것이다. 나는 잠시 고민했다. 이미 수업의 맥은 끊어졌다. 그리고 이 아이들 사이에는 나중에 교사가 될 아이도 있을 것이다. 어떠한 식으로든 이 일에 대한 정리가 필요하다는 판단이 섰다.
교사를 희망하는 사람
나는 마음을 가다듬고 생각을 정리했다. 그리고 아이들을 주시하며 말을 꺼냈다.
"여러분, 잠시 선생님을 좀 보아주세요. 이 시간에 수업의 내용보다 더 중요할 수도 있는 이야기를 잠시 나누었으면 좋겠습니다."
아이들은 진지한 표정으로 시선을 나에게 고정시켰다. 등짝을 맞았던 정임이도 고개를 들고 나를 보고 있었다.
"여러분 중에 교사를 희망하는 사람들이 있을텐데 손 한 번 들어보시겠어요?"
아이들 십여 명이 손을 들었다.
"그래요. 오늘 교장선생님께서 갑자기 수업 중에 들어오셨는데 선생님도 사실 의아한 일이었어요. 그만큼 급한 일이었나 하는 생각도 들고요. 그런데 이 일은 비단 오늘 일만은 아니고 여러 선생님들이 자주 겪었던 일인 것 같아요. 특히 여러분들 가운데 교사가 되기를 희망하는 사람들이 잘못된 인식을 가지고 있어서는 안될 것 같아서, 어떤 식으로든지 이 일에 대한 정리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아이들의 눈이 반짝했다. 수업보다 더 중요한 것. 사실 우리 아이들에게 삶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은 올바른 사고방식의 정립이며 가치관이었다. 나는 이러한 것을 바르게 주지시킬 필요가 있었다.
함부로 따질 수는 없잖아요?
"교육의 삼주체를 말할 때 우리는 교사, 학생, 학부모라고 합니다. 교장, 교감 선생님들은 교육의 삼주체가 교육을 잘 이루어 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관리자의 역할을 하셔야 되죠. 그런데 관리자의 역할을 감시자나 간섭자로만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기에 학교 현장에서 어려움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우리 영훈고도 오랫동안 좋지않은 풍조가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오늘도 그러한 일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지요."
"선생님, 그러면 어떻게 해요? 그래도 교장선생님이신데 함부로 가서 따질 수는 없잖아요?"
학급회장인 혜선이가 물었다.
"그럼요, 혜선이 말이 맞아요. 그러니까 여러 선생님들이 그러한 일을 경험하시고도 계속 속앓이를 하신 것 같아요. 하지만 우리가 입을 다물고 또 그냥 있으면 그분은 계속 그렇게 하시겠지요? 그래서 누군가가 잘 말씀드리는 것은 꼭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래서 여러븐들과 이 시간이 끝나면 선생님이 교장선생님께 가려고 합니다. 수업중에 함부로 들어오시면 수업의 맥이 끊어지고 교사와 학생들에게 불편함을 주신다는 것, 그 정도만 말씀드려도 우리 교장선생님 다 알아들으실 것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다만 그분께서 기분 나쁘지 않으시도록 지혜가 필요하겠는데 여러분들도 기도해주세요."
나는 교권에 대하여 좀더 아이들에게 설명을 했다. 이 아이들 가운데 진정 이 나라를 이끌어갈 후세들을 교육하는 교육자들이 나온다면, 바른 가치관과 행동을 가지고 생활하는 본이 되어야 하는 교사로서 살아가야 하는 것은 이 시대 교사들의 당연한 사명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교장실에 가서
나는 수업을 마치고 교무실로 향했다. 그리고 잠시 내 자리에 앉아 기도했다.
"하나님, 교장선생님을 만납니다. 제 입술을 주장하여 주시옵소서. 제가 드리는 말씀이 교장선생님 개인을 욕하는 것이 되지 않도록 해주시고, 그분 마음 가운데 감동을 주셔서 본질적인 저의 마음이 잘 전달될 수 있도록 하나님 인도해주시옵소서. 서로 불편한 관계가 형성되지 않도록 제 마음도 성령께서 꽉 붙잡아 주실 줄 믿습니다."
기도를 마친 후 교장실로 들어갔다. 마침 교장선생님께서는 혼자 신문을 보고 계셨다.
"교장선생님, 드릴 말씀이 있어서 왔습니다."
"그래요, 들어오세요."
자리를 잡고 앉은 나는 바로 입을 열었다.
"교장선생님, 간단히 말씀드리겠습니다. 다음 시간 수업이 있어서요."
교장선생님은 신문을 접으며 나를 주시했다.
"아까 제 수업 시간에 교장선생님께서 말없이 들어오셨었죠?"
"아…. 예. 그랬었죠."
"그것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 때 매우 진지하게 수업이 진행되고 있었는데 교장선생님께서 갑자기 들어오시는 바람에 수업의 맥이 끊어졌습니다. 그리고 그 수업 분위기를 회복하기도 힘겨움이 있었습니다. 물론 학생들 복장 단정 강조기간이라 교실에 들어오시는 것은 저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꼭 수업 시간에 그렇게 불시에 들어오셔야 하는 지는 생각해봐야 한다는 판단이 들어서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엎드려 있던 학생은 몸이 아픈 아이였구요."
교장선생님은 거침없이 말하는 나를 계속 주시하다가 좀 큰 소리로 말씀하셨다.
"최선생. 내가 왜 그렇게 불시에 교실에 들어가는지 알아? 애들 다 재우고 수업도 제대로 하지 않는 선생님들이 있어서 그래. 내가 들어가서 애들 깨우는 건 바로 그 선생님들 들으라고 하는 거라구."
"교장선생님, 그런 것이라면 수업이 끝난 다음에 부르셔서 말씀하시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아이들은 그러한 식으로 들어오셔서 말씀하시는 교장선생님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제 시간은 수업이 잘 진행되고 있었구요."
잘 알았어요
이야기는 한동안 계속되었다.
"교장선생님, 배려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래도 많은 선생님들은 열심히 하시지 않습니까? 특별히 들어오시는 날이 있으시면 방송으로 알려주셔도 좋구요. 그렇다면 오늘처럼 이렇게 말씀드리는 일도 없지 않겠습니까? 깊은 배려 부탁드립니다."
교장선생님의 얼굴이 환하게 펴졌다.
"알았어요, 최선생. 최선생의 뜻이 무엇인지 알았다구요."
"감사합니다, 교장선생님. 그러면 제 생각이 잘 전달된 줄 알고 그만 나가보겠습니다."
교장실을 나오며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렸다. 생각보다 더 편하게 모든 이야기들을 잘 정리해서 말씀드릴 수가 있었다. 마음이 개운했다.
세밀한 부문까지 기도하게 하시고 또 하나님의 방법으로 해결하여 주심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