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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기의 나의 성장발달에 있어 어머니와의 애정관계는 특별하고 돈독했다. 맏이로서 태어나 연년생의 여동생을 두기 전까지로 부모의 사랑을 듬뿍받으며 어머니와 긍정적인 랏뽀르를 형성했다. 항상 보살핌을 받는 상황하에서 성장발달은 신뢰에 기초하여 성장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
2. 초기아동기 : 자율성 대 수치심과 회의(의지력)
이 단계는 프로이드의 항문기에 해당되며 2세에서 3세까지이다. 에릭슨에 의하면 이 기간동안에 아동은 기본신뢰감이 획득되어 자율성과 자기조절획득이 가능해지며 사회생활양식을 익혀간다고 했다. 아동은 이 시기에 근육이 발달하고 걸음마도 익히게 되며 자신의 근육을 사용하여 스스로 행동하기 시작하면서 신체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자율성이 발달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아동의 행동에는 이중적인 요구가 따르기 마련인데 자기 통제를 위한 요구와 주위에 있는 다른 사람으로부터 통제를 받아들여야 하는 요구이다. 자신이 소유해야 할 것과 양보해야 할 것을 배우게 되는데 이러한 자율성은 내부에서 생겨난다. 또한 이러한 자율성을 익힘과 동시에 배변훈련이나 여러 가지 습관을 가르치려는 부모와 욕구갈등을 느낀다.
반면에 수치와 회의는 사회의 기대와 압력을 의식함으로서 생긴다. 수치란 다른 사람의 눈에 자신의 모습이 좋지 않게 보이지 않을까하는 두려움이다. 회의는 자신이 결국은 그렇게 강력하지 못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통제할 수 있고 자기보다 더 나은 행동을 수행할 수 있다고 깨닫는데서 나타난다. 에릭슨은 이 단계의 위기를 만족스럽게 넘기느냐의 여부는 아동의 이 같은 활동들을 자유롭게 조절하도록 점차적으로 허용하는 부모의 의지에 근본적으로 달려 있다고 본다.
수치심이 발달된 아동은 자신의 환경에 효과적으로 대처하는 능력에 대해 자신감을 갖지 못하고 오히려 무능한 평가를 받는 무기력한 존재로 느낀다. 에릭슨은 이러한 사람이 어른이 되면 강박적 행동을 나타내거나 피해망상에 사로잡힌 편집증을 나타낸다고 말했다.
초기 아동기의 성장에 있어 앞서 서술한 과정을 밟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본다. 부모의 가르칠려는 욕구에 맞추어 성장하고 때론 반항도 했으리라본다. 더구나 동생의 출현으로 인한 사랑을 빼앗기게 될까봐 동생을 미워하고 질투하며 많이 두들겨 팻다고한다. 이런 감정은 성인기까지 이어진다고 보여진다. 여동생이 좋으면서도 말이라도 툭툭 아무렇게나 내던지고 밉살스럽게 한 게 후회되고 미안하지만 그 당시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어느정도 알 것 같다. |
3. 유희기 : 주도성 대 죄의식(목적)
학령 전 아동이 마지막으로 경험하는 심리사회 갈등으로 프로이드가 남근기라고 말한 발달단계에 상응하는 4세부터 학령전까지를 일컫는다. 이 연령에서 아동의 주된 활동은 놀이이다. 육체적인 놀이와 함께 가상의 세계에서 부모나 다른 성인들의 역할을 가정한 정신적인 놀이도 하는데 이러한 성인상을 모방함으로써 아동은 성인처럼 되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어느 정도 알게 된다. 주도성의 발달은 부모가 자녀의 호기심을 인식하고 탐구하고 실험할 수 있는 자유를 부여해주고 아동의 질문에 성실히 대답해주며, 자녀의 환상적 행동을 우스꽝스럽게 여기거나 금지하지 않을 때 보다 더 격려된다.
죄의식은 부모가 아동 스스로 그 일을 완수하도록 기회를 주지 못하고 아동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 일관성이 없고 귀찮아하는데서 기인한다고 본다. 또한 죄의식은 이성의 부모로부터 사랑을 받거나 사랑하려는 자녀의 욕구에 대해서 부모가 너무 심한 꾸지람이나 체벌을 주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보는 프로이드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이론을 인정하고 있다. 죄의식에 의하여 몸이 굳어진 아동은 무슨 일에나 잘 체념하고 자신에 대해서 무가치함을 갖는다. 이런 아동은 내세우기를 두려워하고 동료집단의 주변에만 맴돌며 어른에게 의존적이다. 이들은 가능한 목표를 세워 그것을 달성하려는 목적의식이나 용기가 부족하다. 에릭슨은 죄의식은 일반화된 소극성, 성적무기력, 불감증, 정신병리적 행동 등 여러 가지 성인성 유형의 정신병리로 발전된다고 보았다.
이 시기에 있어 나는 동네의 내 또래의 아이들과 어울려 놀기 시작했고, 동생들과 잦은 마찰로 부모님께 자주 혼나곤했다. 더구나 잘못된 행동을 했을 때 받는 꾸지람은 엄청 무섭고 싫었었기에 될 수 있는 한 내가 한 행위에 대해 말을 하기를 꺼려하곤 했는 것 같다. 한번은 동생과 같이 연탄창고에 갖혀 동생이 무섭다고 울길래 구해준다고 하면서 창고의 유리창을 맨주먹으로 깨트리다가 손목을 베여서 병원으로 실려간 적이 있었다. 그 당시 아프고 무섭기보다 동생을 내가 구해주었다는 생각에 흐뭇해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TV를 보고 난 후 만화 주인공처럼 하고선 온 동네를 뛰어 놀았던 시기였다. 현 상황에서 나를 둘러보면 될 수 있는 한 말을 잘 안 할려는 성격이 이 시기에 형성되어지지 않았을까한다. |
4. 학령기 : 근면성 대 열등감(능력)
6세부터 12세에 일어나는 프로이드 이론의 잠재기에 해당된다. 에릭슨은 이 시기를 자아성장이 가장 확실히 발달하는 단계라고 보았다. 가정에서 벗어나 학교생활을 통해 새로운 생활을 하게 된다. 교사․친구와의 관계, 학업수행, 운동, 오락 등을 통해 그들 문화에 대한 기술을 이해하기 시작할 때 근면성이 발달한다고 본다. 아동이 이 시기에 갖게 되는 흥미와 능력은 가정이나 학교의 주변 사람들이 가르치고 함께 일함으로 강화되고 촉진된다. 또한 지속적인 근면을 유지하는 자아능력을 발달시킨다.
이 시기의 위험은 열등감이나 무능력감이 발달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 단계에서 지나치게 열등감을 느끼는 것은 위험하며 이러한 열등감은 학교나 사회가 아동에 대한 편견적 태도를 보일때 발달되기 쉽다. 때로 아동들은 전 단계에서 갈등을 원만하게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 단계에서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두 번째 단계에서 자율성보다는 회의가 더 발달될 수밖에 없었던 아동은 새로운 과제를 수행하려고 할 때 자신감이 없다. 때로는 사회의 문화나 가치관이 근면성 발달을 저해하기도 한다.
이 시기는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했고 약 2년을 부모님의 열정에 의해 유치원뿐만 아니라 피아노를 비롯한 실질적인 학습이 이루지는 시기였다. 더구나 학업수행과 학교 생활을 통해 근면성을 익히고 실천했고 학교에 조금이나마 늦게 가고 결석하는 것을 무척 부끄럽게 여겼다. 이런 와중에 근면한 성격을 아직까지 지니게 되지 않았을까한다. 학교 생활도 무난했으며 앞서서 나가 놀기 좋아했고 학업 성적도 우수한 편이였다. 또한 교우들과의 관계도 좋았으며 다 성장한 후에도 지속적인 만남에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
5. 청소년기 : 자아정체감 대 자아정체감 혼란(성실성)
이 단계는 개인의 심리사회적 발달상 가장 중요하게 간주된다. 어린이도 어른도 아닌 주변인으로서의 청소년은 성인기에 요구되는 여러 가지 사회의 요구와 역할변화를 거치게 된다. 이 시기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자아정체감 형성이다. 자아의식이 수립되면서 자기와 타인의 구별이 이루어지고 자기가 갖고 있는 여러 가지 역할을 하나로 통합하면서 자기의 정체에 대한 자각이 생겨난다. 또한 가족, 학교, 교우집단 및 사회생활에서의 자기의 역할과 지위에 대한 인식이 발달한다.
이 시기에는 이성에 대한 매력이 고조되어 이성과 동일시를 지향하는데 그러한 현상은 일시적으로 나타날 뿐 결국 남성은 남성다움으로 여성은 여성다움으로 돌아간다. 이 시기에는 여성과 남성에 대한 적절한 동일시가 필요하고 또 이러한 동일시가 생기면 알맞는 성적 특질을 갖춘 건강하고 조화된 성격이 발달한다고 에릭슨은 보았다. 만약 적절한 성적 정체감이 발달하지 못하면 양성혼란을 초래하여 자아정체구조를 약화시킨다.
이 시기의 청년은 부모로부터 정서적으로 독립하게 되고 신체적으로 성숙하면서 자신의 장래를 결정하게 되는데 자신이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렇게 할 수 없기 때문에 역할의 혼란 또는 정체감혼란으로 고통을 받는다. 적절한 안정감을 찾지 못하고 고립에 빠지기 쉬우며 대인관계에 어려움이 따른다. 자신들과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냉혹하고 배타적이 된다. 에릭슨은 이 시기를 정체성 위기의 기간이라고 보았다.
이 시기에는 동성간에 친밀감을 아주 진하게 느꼈던 시기이다. 특이한 것은 이성의 어떤 매력보다 동성간에 의리와 우정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대인관계의 경우 동성간 선후배관계가 돈독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성관계에 있어서는 보다 원활한 인간관계를 형성하는데 어려움이 따른다는 것을 부인하지 못한다. 하여튼 이 시기를 돌이켜보면 짜여진 일상생활 속에 다람쥐 챗바퀴 돌 듯 학교로 오고 갔던 기억 밖에 없다. |
6. 성인초기 : 친밀 대 고립(사랑)
성인생활이 시작되는 시기로 대인관계, 집단이나 직업에서의 역할, 이성교재, 부부관계 등을 통해 사회생활에 적응해 간다. 그들은 이성과의 교제를 통해 자신이 누구인지를 끊임없이 찾게 되는데 이러한 자아탐색에 너무 열중한 나머지 친밀감을 획득하지 못한다고 에릭슨은 보았다. 에릭슨이 말하는 친밀감이란 그 의미와 범위가 다양한데 친구, 배우자, 형제자매, 부모 또는 다른 친척과 관계를 나누어 갖는 것으로 보았다. 진정한 친밀감은 전 단계를 순조로이 거쳐 합리적인 자아정체감이 형성되었을 때만 가능하다. 확고한 자아정체감을 확립한 사람만이 다른 사람과의 상호관계에 몰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프로이드와 마찬가지로 에릭슨은 인간이 정말로 다른 사람과 더불어 성적 친밀감은 물론 사회적 친밀감을 갖게 되는 것은 바로 이 시기라고 말한다.
반면에 친밀감이 제대로 발달하지 못한 경우 고립에 빠지게 되는데 고립은 친밀감이나 사회적 관계를 맺게 해주는 관계를 회피하는 것이다. 단순히 공식적이고 피상적인 인간관계를 추구하며 친밀감의 요구를 위협으로 느끼기 때문에 진정한 참여로부터 자신을 소외시킨다. 또한 직업을 쓸모없는 것으로 여기게 되고 따라서 직업에서 소외감을 갖기 쉽다.
친밀감 대 고립위기를 건전하게 해결할 경우 사회심리적 능력인 사랑이 발생된다. 사랑에 대한 낭만적․애정적 특징에 부가하여 에릭슨은 사랑이란 자신을 타인에게 관여시키고 이 관여를 지키려는 능력으로 간주했다.
이 시기는 대학에 들어가면서 공부보다는 친구들과 우정을 쌓으며 자기개발을 꾸준히 하던 시기였다. 그러면서 사회생활에 경험도 해 보고 성인으로써 책임감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그리고 군대에 입대 하게 되었고, 군대에서 성인초기를 보내게 되었다. 이 시기의 툭징을 말하자면 친밀감은 발달하였지만 군대에서의 외로움과 자아정체성으로 인해 고립에 빠진 적이 있었다. |
7. 성인기 : 생산성 대 침체(배려)
두 사람이 결혼하여 어느 정도의 친밀감이 형성되어 다음 세대의 양육에 관심을 갖게 되는 시기이다. 생산성이란 넓은 의미로서 자녀를 낳고 기르는 것뿐만 아니라 작업을 통하여 물건을 만들고 사상을 전수하는 것 등을 포함한다. 그러나 에릭슨은 자녀를 돌보는 것에 더 중점을 두었다.
생산성은 다음 세대가 일하며 살아갈 사회지침을 확립하는데 관심을 나타냄으로서 생긴다. 이 단계에서 보호의 미덕이 나타난다. 보호는 타인에 대한 관심이라 할 수 있는데 필요한 사람들을 돌봐주고 그들에게 지식과 경험을 나누어 주기를 원하는 것이다. 이것은 아동의 양육과 가르침, 시범활동, 지도감독 등을 통해서 성취된다. 가르친다는 것은 인간에게 성취감을 줄뿐만 아니라 타인들이 자기를 필요로 하고 있다는 안정감을 줌으로서 자신의 존재가치를 확인하게 하고 이웃을 위해 일하게 한다.
생산성의 왜곡된 형태는 권위주의이다. 이러한 사람은 개인적 요구나 안위가 주 관심이 되는 자기도취의 상태에 빠진다. 자기 탐익을 위한 것을 제외하고는 누구에게도 무엇에 대해서도 관여하지 않는다. 여기에서 침체성이 나타난다. 생산성이 결여된 사람들은 사회의 일원으로서 생산적으로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자신의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하여 사는 것이 되며 인간관계는 황폐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잘 아는 중년의 위기, 즉 절망과 인생이 무의미하다는 느낌이다.
8. 노년기 : 통합 대 절망(지혜)
자신의 완성적 노력과 성취에 대해서 반성, 정리하는 시기이다. 에릭슨에 의하면 성인의 마지막 단계의 특징은 새로운 심리사회적 위기의 출현보다는 오히려 자아발달의 전 7단계의 종합, 통합 그리고 평가로 나타난다. 따라서 자아통합은 결혼, 자녀, 직업, 취미 등을 위시하여 모든 관점에서 자신의 인생을 돌이켜보고 겸허하게 그러나 확고하게 나는 만족스럽다라고 확신하는데서 생긴다. 자아통합감을 갖는 노인은 지나온 세월에 대해 별다른 불만이나 회한을 갖지 않고 감사하며 받아들인다. 에릭슨은 만일 개인이 천부적인 지혜를 타고났다면 오직 노년기에 와서 비로소 진정한 성숙과 실질적인 의미의 노인의 지혜가 실현되리라고 믿고 있다.
이와는 반대로 자신의 인생을 실패의 연속이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체력과 건강의 악화, 경제적 어려움, 직업 등에서의 역할상실 등에 대해 불만을 갖는다. 이들은 황혼기에서 이제 다시 시작하기에는 너무 늦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자아통합의 결여나 상실은 죽음에 대한 감추어진 두려움, 되돌릴 수 없는 실패, 희망했던 것에 대한 끊임없는 미련으로 나타난다. 이것이 절망감이다. 에릭슨은 인생의 쓴맛과 혐오를 느끼는 노인은 일반적으로 두 가지 뚜렷한 기분을 갖게 된다고 하는데 인생이란 다시 살 수 없다는 후회와 자신의 부족함과 결함을 외부세계로 투사함으로써 그것을 부인하는 것이다.
노년기의 심한 절망감과 후회는 노인성 정신병, 우울증 등을 앓기 쉬우며 매우 심술궂고 과대망상의 증상을 초래한다고 한다. 이러한 사람은 노인 수용시설에 가는 것을 죽음을 기다리는 장소로 생각한다.
Ⅳ. 프로이드와 에릭슨 이론의 차이점
"프로이드의 이론을 살펴보지 않고 현대 성격이론을 적절히 이해하기란 불가능하다." 란 말에 대해 아무도 부정하지 않는다. 그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는 성격이론에 대한 하나의 틀을 제시했기 때문일 것이다. 프로이드 이후 많은 성격이론가들이 연구한 성격이론들은 성격이론이라고 부르는 소위 내적으로 일관된 개념의 집합체 속에서 자기 나름대로의 각기 다른 체계를 개발한 것이었으나 그것들은 모두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프로이드의 성격이론의 틀을 의식했거나 전제한 것들이다. 이러한 이론들은 현대 성격이론의 중추들이 되었다.
고전적 정신분석이론의 대표자인 프로이드의 주요 이론을 심리성욕발달이론이라고 한다면, 현대 정신분석학의 중추적인 입장에 있는 에릭슨의 주요 이론은 자아의 성장에 관한 것이다. 프로이드와 에릭슨 이론의 차이점에 대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프로이드가 인간행동의 동기를 이드에 둔데 반해 에릭슨은 자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생물학적 힘보다는 인간관계에서의 경험이 중요하며 자아는 사회화 과정과 사회와의 관련성을 전제로 하고 있다. 따라서 인간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개인과 사회의 관계를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프로이드 이론에서 사회와 개인은 서로 부담스런 관계로 사회가 개인에게 요구하는 것의 결과로 개인은 뒤로 물러나게 되고 방어자세를 취하다가 초자아를 이루게 된다. 그러나 에릭슨은 사회의 보다 지지적이고 종합적인 측면에 주목하여 개인과 사회의 심리사회적 참모습으로서의 자아를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에릭슨의 자아개념은 인간을 의사결정과 문제해결과정에서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존재로 묘사함으로서 인간은 본질적으로 충동적이라고 묘사한 종래의 정신분석학적 사고로부터 급선회했다.
둘째, 에릭슨은 한 개인이 성격형성에 있어서 그의 부모와의 관계 그리고 그의 가족이 위치한 역사적 상황에 관한 해석을 새롭게 했다. 즉 프로이드는 아동의 성격발달에 부모가 지대한 영향을 준다고 주장한 반면 에릭슨은 아동의 자아가 형성되는 심리역사적 환경을 강조했다.
세째, 인간의 성격형성이론에서 프로이드는 초기아동의 경험의 중요성을 강조한데 반해 에릭슨은 인간의 전 생애를 총망라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청년기의 자아정체감 형성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네째, 프로이드와 에릭슨은 심리성욕갈등의 양상과 그 해결방법이 서로 다르다. 프로이드의 이에 대한 야망은 인간의 정신생활의 무의식적 작용과 존재를 해명하고 초기 성장과정에서 경험한 외상이 성인기에 어떻게 병리를 일으키는가를 설명하려고 했다. 이에 반해 에릭슨은 인간생활에서 오는 정신사회적 위험을 이겨낼 수 있는 인간의 능력, 즉 인간발달단계에서 나타나는 자아자질에 관심을 가졌다.
다섯째, 만약 인간을 그의 본능적인 추구를 하도록 내버려둔다면 인류는 멸망으로 운명지워질 것이라는 프로이드의 인간에 대한 비관론에 반해 에릭슨은 인간의 모든 개인적․사회적 위기는 오히려 어려움을 극복하고 성장으로 유도하는 도전감을 갖게 한다는 낙관적인 견해를 이야기했다. 즉 에릭슨은 프로이드와는 달리 인간을 어려운 사회환경에 잘 적응하고 오히려 그 환경 때문에 창조성을 발휘하여 생의 의미를 창조하며 주관적 자유를 실천하는 존재로 묘사함으로서 인간은 근본적으로 선하다는 인본주의 이념에 동조한다.
Ⅴ. 에릭슨 이론에 대한 평가 및 비판
에릭슨의 심리사회학적 성격이론에 대하여 제기되고 있는 학자들의 평가와 본인의 생각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정신분석학적 틀에서 발전된 에릭슨의 심리사회적 성격이론은 자아심리학, 생애주기를 통한 발달적 변화, 사회적․역사적 요인을 배경으로 인간성격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에릭슨은 자아를 자율적인 성격의 조정자로 보았으며 발달단계에 인간의 전 생애가 포함되도록 하였다. 또한 문화가 성격발달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가를 설명하였는데 이는 인간행동발달을 연구하는 학도에게 오늘날 인류가 직면한 중요한 심리학적 문제를 침신하게 그리고 진일보하여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에릭슨은 발달단계이론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정확한 관찰력과 현명한 해석, 아름답고 유려한 문장, 인간적인 모든 것에 대 한 깊은 애정을 가지고 노력한 흔적에 대해 존경을 받는다.
그러나 인간에 대한 과도한 낙관적 견해때문에 많은 비평을 받았다. 프로이드의 이드․무의식적․비합리적인 것 대신에 자아․의식적․합리적인 것을 강화함으로서 프로이드 이론을 완화시킨 것이라는 비난을 받아왔다. 성장발달의 여러 측면들을 프로이드의 성욕발달단계에 무리하게 연결시키려고 했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비판은 에릭슨이 이론적인 문제점들에 관해서는 모호했다는 점이다. 아름답고 유려한 문장으로 그의 이론을 전개하고 있지만 많은 개념적인 문제를 불명확한 상태로 남겨두었다는 것이다. 또한 엄밀한 과학적 연구라기 보다는 다분히 사변적이라는 점에서 비판을 받고 있다.
Ⅵ. 나의 견해
에릭슨의 이론에서 인간은 환경속에서 발달하기 때문에 환경을 배제하고는 참다운 인간의 성격발달을 설명할 수 없다는 지적은 상당히 설득력있는 것으로 느껴졌다. 그러나 에릭슨의 견해들 중에서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은 다음과 같고 에릭슨에 대한 비판은 학자들의 견해가 더 타당할지 모르나 본인은 순수한 경험에 의하여 평가하고자 한다.
첫째, 에릭슨은 ego가 인간의 중심에너지라고 설명하고 있다. 따라서 에릭슨의 견해에 의하면 ego는 이성적․현실적 판단을 함으로 인간의 대부분은 이성을 지니고 있으며 따라서 좋은 성격의 소유자로 발달되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본인이 경험한 바에 의하면 일정한 수준의 교육을 받은 자는 이성적 판단능력이 향상될 것이고 따라서 이런한 부류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좋은 성격을 보유해야 할 것이다. 현실을 돌이켜 보건데 고등교육을 받고 상당한 지위에 있는 자들은 거만한 성격의 소유자들이 많으며 부정부패를 일삼고 권위주의 의식에 사로잡혀 국민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합리적 이성을 지닌 인간으로 보기 어려울 지경이다. 현재의 정치상황을 살펴보면 야당과 여당은 항상 적대관게이며 서로에게 한치의 양보도 하지 않으려 한다. 그들의 머리속에는 국민이 주인이라는 생각은 전혀 없는 것이다. 태초이래로 인간은 항상 선을 추구하려고 노력해왔다. 그러한 상황은 지금도 전혀 차이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본인은 인간의 성격발달에 ego가 중심이 아니라 중요 부분은 선천적인 요인에 의해서 결정되고 나머지 부분은 ego가 담당하는 소극적 요소로 보는 것이 더욱 설득력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둘째, 에릭슨은 위기의 해결이 인생의 성공을 좌우한다고 설명하고 있는데 이것이 항상 옳은지 의문이 든다. 예를 들면 입시시험에 여러 번 실패하고도 용기를 잃지 않고 칠전팔기의 정신으로 정상에 우뚝선 사람들을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또한 사업에 실패한 사람들, 교통사고를 당한 사람들, 또는 다른 위기에 처한 사람들 모두가 인생에 있어서 낙오자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본인은 인생결정론자는 아니지만 위기를 해결하지 못했다고 해서 다음단계에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전환점과 같은 것으로 달리 생각하는 것이 현실에 더욱 부합되는 것으로 보고싶다. 또한 위기가 없다고 해서 항상 성장이 없는 것은 아니다.
셋째, 에릭슨의 성격발달 이론은 개인과 사회의 역할을 동등하게 중요시했다. 그러나 에릭슨이 처했던 시대적 상황에서는 그의 주장이 설득력을 발휘했을지는 모르지만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고 있는 현재의 상황에서 본다면 과연 개인과 사회의 역할이 동등하다고 볼 수 있는가? 개인의 능력은 한계가 있으므로 급변하는 상황에 적절히 대응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개인이 다변적인 상황에 적절히 적응하여 좋은 성격을 형성해 나가는 것은 사회의 역할이 더욱 절실히 요청된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넷째, 에릭슨은 자아발달의 여덟 단계를 제시하여 유아기부터 노년기까지 점진적인 자아발달이 있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어느 정도의 발달단계까지는 일면 타당성이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인간의 성격발달이 위기를 극복한다고 해서 정해진 단계로 이동하는 것은 아니며 때로는 각각의 단계가 중첩적으로 발생할 수도 있으며 다음 단계의 과정으로 넘어갔지만 전 단계의 과정이 소멸할 수도 있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개인의 능력에 따라서는 자아발달의 여덟단계를 순서적으로 밟지 않을 수 있으며 특수한 상황에서는 정상적인 사람에 비하여 그 시기를 앞당길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