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5회 산행일지 : 경남 하동군 금오산 (평생 맞을 비와 참게탕)
일시 : 2005년 6월 28(화)
날씨 : 장마비
5월 정기산행이 빠진 핑계를 대고 이달에는 한 번 더 정기산행을 가기로 약속을 미리 해두었다. 내연산에서 별다른 추억을 건져 올리지 못한 나로서도 아뭏튼 다시 한 번 시도해보고 싶었다. 때마침 학교도 종강을 하고 성적처리도 끝이 났고 대학 통합논의로 숨가쁘던 시기도 일단락 된 듯하여 평일 하루를 과감히 산에다, 건강에다 투자하기로 마음먹고 장마기간이어서 많은 비가 예보되었지만 28일을 D-day로 하여 게시판을 통해 글을 올렸더니 다들 찬성 이랜다. 최소한 등고선 회원들에겐 삶의 우선순위에서 정기산행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만은 틀림없어 보인다.
장소 문제로 생각던 중 하동에 있는 대학 후배 정박사가 언제 자기 고향 동네를 방문하여 산행을 하지 않겠냐는 얘기를 여러 번 한 적 있어 학교에서 만나 금오산으로 28일 등고선의 일정을 알려주었더니 환영을 표시하길래 하동의 금오산으로 정하고 게시판에 올리니 발 빠른 총무 김생곤이 금오산에 대한 국제신문 근교산팀이 올린 산행기를 퍼다 올려놓고선 비가와도 간다며 35회 정기산행을 공지하였다.
장마가 26일경에 시작되었다는데 중부지방에서는 27일 비교적 큰 비가 내렸으나 남쪽으로는 비다운 비가 내리지 않았고 산행당일 아침에도 한차례 비가 있었지만 많은 량은 아니었다. 또다시 김이돌 회원이 우리 집으로 와서 함께 화원 톨게이트에 도착하니 경주에서도 방금 도착하고 있었다. 금도현은 먼저 와 차 뒷좌석에서 누워 있었다. 얼굴과 눈빛에 피곤한 기색이 묻어난다.
김생곤 총무가 운전대를 잡고 8시 10분경 출발하여 김이돌 회원이 준비한 김밥을 먹으며 쉬지 않고 하동 IC를 나와 남해 방향으로 좌회전 하여 5km 정도를 가니 정박사가 알려준 대송리 버스정류장이 있고 그 앞에 정박사가 마중을 나와 기다리고 있다.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비옷으로 갈아입고는 출발.
이곳 금오산은 이 지역 인근에서 가장 높은 산이고 그동안 군부대가 있어 일반인들에게 그리 많이 알려지지 않은 산이랜다. 비록 100대 명산은 아니지만 높이가 자그만치 849m에 이르고 남해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등의 장점이 있는 오를만한 가치를 지닌 산이다. 총무가 뽑아온 산행안내는 반대편 금남면 중평리 상촌마을 청소년 수련원에서부터 시작하여 봉수대-금오산-마애불-대치마을에 이르는 5시간의 코스였으나 오늘 우리는 그 반대편으로 산행하는 셈이다.
산입구에는 금오산 산행안내도가 초라하게 있는데 정상까지 3.5km 시간은 3시간으로 적고 있었다. 나는 그 소요시간을 왕복시간으로 생각하고는 오늘 산행이 생각보다 빨리 마쳐지리라고 미리 짐작하고 있었다.
10시 10분에 출발하여 시멘트 길을 따라 조금 올라가니 저수지가 나오고 여기서 점심용 식수를 담았다. 식수를 못물로 담기는 처음 있는 일이다. 서서이 비가 내린다. 물론 출발부터 시작된 빗방울 이지만 점점 굵어지는 듯 하다. 길가에 지천인 산딸기는 시기도 늦은 감이 있고 비 탓에 그 맛이 싱거웠다. 김생곤 말대로 마치 고향 성묘 가는 듯한 느낌의 편안한 경사 오름이 초입엔 계속 되었다.
삼거리에서 우측 길로 접어들어 다시 20여분을 가다가 11시경 소나무 재선충 탓인지 벌목된 소나무와 참나무가 누워있는 곳에서 오이를 먹으며 휴식을 취한다. 다시 일어서자마자 이제부터는 경사가 심하다. 2,3분 이내 다시 땀이 쏟아진다. 결국엔 15분 정도 후 다시 휴식. 정박사는 오랜만에 오르는지 다소 힘들어한다. 비는 이제 소낙비처럼 쏟아진다. 등산로를 타고 흙탕물이 쏟아져 내리고 모자위에서도 빗물이 쏟아진다. 10여분 쉬었다가 다시 일어났지만 급경사는 계속되었다. 지척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의 구름과 비 사이를 20여분 지난 후 다시 길가에 앉아 토마토를 먹으며 휴식을 취한다. 등고선 멤버 모두 쏟아지는 빗줄기가 좋은가 보다.
어느 듯 시간은 11시 45분여를 지난다. 곧 능선에 올라서자 이제부터는 비교적 길이 편안하다. 주변 나무들의 키가 낮아지면서 좌우에는 드문드문 바위들과 진한 주황색의 나리를 비롯한 여러 들꽃들이 예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무덤을 지나고 정상부근에 이르니 바다가 열리는 등 주변 경관이 매우 좋을 것으로 여겨지지만 오늘은 구름바다에 종일토록 갇혀 있어야 하나 보다. 12시 20분경에 이르자 앞에 포장된 도로가 나타나며 철책을 두른 군사시설이 눈에 들어온다. 정상부근인 셈이다.
비를 피하여 점심을 먹고자 경고판을 지나 군부대안으로 들어서 보았지만 초병도 없고 안쪽 철문은 굳게 잠겨져 있다. 퍼붓는 소낙비를 그대로 맞으며 뒤돌아 나와 반대편으로 향하니 헬기장이 나오고 다시 닫겨진 철문이 있다. 그 밑에는 금오산 표지석과 고려 헌종 때 1149년에 축성되었다는 봉수대를 안내표지가 있다. 배낭에 꼭꼭 넣어두었던 카메라를 빗속에서 꺼내들고 기념촬영을 했다.
이제 뒤돌아서야 한다. 정상이지만 구름에 갇혀 더 이상 볼 것도, 갈 곳도 없으며 비를 조금이라도 덜 수 있는 적당한 곳에서 식사도 해야 한다. 왔던 길을 앞장서 내려가던 김도현 회원이 우연히 내려선 곳은 바로 금오산 마애불이 새겨져있는 바위굴 앞이었다. 마애불은 작은 규모로 바윗 굴 좌편 벽면에 선으로 새겨져 있었으나 세월의 흔적 탓으로 그 선들이 많이 무디어져 있었다. 굴은 깊지는 않았으나 샘도 있고 우리 일행 5명이 비를 피하여 점심식사를 하기에는 알맞은 크기였다.
앞쪽으로는 대숲이 우거져 있고 남매탑같은 두개의 돌탑이 놓여져 있다. 김이돌은 지난번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는 듯 일찌감치 파를 내어 놓았고 안성탕면 4개만 준비해온 김생곤 총무는 식사가 모자라지 않을까 염려하는 눈치였다. 사실 어제 밤에 5명이 식사한다고 전화로 일러주었는데 아침에 라면하나를 더 사려다 잊어버렸던 모양이다. 그러나 김이돌 회원과 정헌식 박사가 내놓은 감자로 인해 오늘 식사는 모자람이 조금도 없었다.
정박사는 낫을 들고 대숲으로 들어가더니 기념이라며 대막대기를 하나씩 다듬어 가져온다. 오늘 이 대막대기는 하산하는 내내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가늘어졌지만 빗는 계속 이어졌다. 등산길에 지나쳤던 무덤에서 삼거리를 만나 이번에는 우측의 시그널이 있는 곳으로 하산 길을 잡았다. 곧 급경사를 미끄러지듯 정신없이 15분여 내려서자 무덤과 너른 고사리 밭을 만난다. 김이돌, 김생곤 회원이 정신없이 고사리를 뜯고 나니 이제껏 멀쩡하던 등산로가 사라지고 보이질 않는다. 길인 듯 아닌 듯한 길을 따라 좀더 내려오니 이제는 거대한 암석지대를 만난다. 돌들 아래로는 방금 내린 물이 흘러내리는 소리가 요란하다. 돌이 미끄럽다. 아찔한 순간들이 몇 번이나 있었다. 뒤로 돌아가기에는 너무나 많이 내려와 버렸다. 정박사는 안내를 잘못하였다는 생각에 걱정이 큰가보다. 시간도 많고 장정 다섯이나 되어 염려는 없었지만 바위가 미끄럽고 사방을 분간할 수 없는 날씨 탓에 회장인 나로서도 솔직히 약간은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돌 위의 담배꽁초와 바위 사이의 물병 등 사람 흔적은 우리에게 적지 않은 위안이 되었다. 암석지대를 앞서 내려가던 금도현 회원이 길이 맞다며 소리친다. 아닌 게 아니라 달빛고을로 시작되는 붉은 색의 시그널이 하나 달랑 붙어 있었다. 그래도 그게 얼마나 반가운 것인데...잠시 숨을 돌려 바위사이로 흐르던 물이 지표로 나온 곳에서 세수하고 그물을 한잔 들이켰다. 길은 길이었으되 사람이 거의 다니지 않아 길 같지 않은 길을 다시 10여분 내려오자 우리가 올랐던 길을 만난다. 다들 얼굴이 편안해진다. 그곳은 맨 처음 우리가 쉬었던 곳의 바로 위쪽이었다. 내려오느라 고생했던 탓에 한동안 잊었던 고사리가 다시 눈에 들어오게 된 것도 여기부터였다.
다시 포장된 길로 내려서 저수지 아래에서 신발과 옷가지를 대충 정리하고는 우리의 차로 돌아왔다. 시간은 3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대충 옷들을 정리하고 하동읍으로 갔다. 목욕탕에 들러 샤워하고 속옷은 사우나에 걸어 말리고 커피까지 여유있게 한 잔 하고 나와 정박사가 참게탕 잘 하는 곳으로 물어놓았다는 흥룡횟집을 찾아갔다. 좀 이른 저녁이었으나 참게탕을 맛있게 먹고는 정박사와 헤어졌다.
오늘 안내에서부터 저녁식사까지 감당한 정박사에게 다들 고맙고 미안해하자 정박사는 다음 산행 시 낮은 산을 오를 계획이 있으면 한 번 끼워달라는 말로 대신 인사를 전한다. 오는 길은 김이돌 회원이 운전하고 금도현과 나는 뒷좌석에서 편안히 잠에 들었다. 현풍휴게소에서 기름을 더 넣자 말자로 옥신각신하다가 만원어치을 더 넣어 화원에 도착하니 8시 20분이었다. 오늘 우리는 평생에 맞을 비를 한꺼번에 맞은 듯 싶다. 비록 금오산을 자세히 보지는 못했지만 빗속에서 경험했던 오늘의 산행은 또 다른 우리의 소중한 추억이 될 것 같다.
登 苦 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