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렬아. 내 곁에, 아니 우리의 곁에 지금 네가 없다. 광주에 가면 그래도 혈육처럼 따르고 다정다감했던, 그러나 불의와 불명예 앞에서는 단호했던
네가 있어 행복했었는데. *잊혀지겠지요/잊혀짐은 필히 슬픔을 넘어선 희망이어야지요*(「들꽃」)라고 했니? 아니다. 결코 잊을 수 없는 사람.
너는 티베트 3천고지 초원에서 *눈꽃 맑은 영혼*(「야생화」)을 보았듯 여행을 즐겼던 시인, 날마다 무등산을 오르며 *시 한 편 썼어요!*
사진과 함께 카톡을 보내오던 시인, *카탈루나어로 노래하는/호세 카레라스의 오래된 사랑을/다시 들으며/목젖 뜨겁도록/간곡한
새벽을*(「재회」)맞이할 만큼 음악을 사랑했던 시인. 항암주사와의 사투 속에서도 *많이 좋아진 것 같아요* 하며 환한 웃음을 보여주던 네가
*나는 이제 나를 떠난다*(「해돋이」) 하더니 결국 그리도 빨리 떠날 줄 누가 알았겠니. 그래, *그냥 딛고 다닌 길이/빛이고 꽃*(「빛과
꽃」)이었음을 네가 곁에 없고 보니 참으로 절실하기 그지없느니. *실은 내가 진짜 외돌개*(「서귀포 외돌개에게」)라고 했니? 아니다. 너는 결코
외돌개가 아니다. 왜냐고? 오늘도 남광주시장 새벽바다와 영남집에, 산수동 영암식당에, 동명동 추어탕집에, 두암동 고흥바다장어집에 나랑 네가
그리도 좋아하던 길섭 형이랑 함께 있잖니? 상렬아. *보이는 것보다, 그 뒤에/숨겨져 보이지 않는*(「깨달음」), *다시 피어날 그리움의 꽃으로
창 너머 눈부실*(「마음의 창」) 너를 우리 모두 기억하며 그리워할 것이다.
-허형만(시인, 목포대 명예교수)
그가 나를
바라볼지도 모른다. 돌부리에 채인 곳에 못 보던 꽃이 피어 있는 것처럼, 그가 세상을 뜬 이후에 못 보던 것들이 눈에 띈다. 망각 속에 묻혀
있던 것들이 기억나고, 먼 과거가 오히려 가깝게 느껴지고, 어제는 아득하게 멀게 느껴지기도 한다. 삶이 죽음이기도 하고, 죽음이 곧 삶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지는 꽃이 오히려 처연히 아름답고, 막 피어나는 봉오리는 애처롭기만 하다. 죽음 저편에 있는 친구가 오히려 나에게 삶을
가르친다. 그의 시는 *씨앗*이 되어 오늘도 발아를 꿈꾼다. 그를 사랑했던 많은 도반들이 오늘 그 씨앗을 나누어 갖는다.
-
정승윤(시인, 수필가)
죽음을 눈앞에 둔 시인의 내밀한 고백
*나는 이제 나를 떠난다*
여기, 한 권의 시집이 있다. 그리고 시인은
이제 이 세상에 없다. 중학교 2학년 때 김동리의 단편소설 「황토기」를 대하면서 끓어오른 문학적 갈망은 *참고서 밑에 숨겨 놓고 늦은 밤 몰래
읽다 어머님께 혼이 났던* 시절로 이어졌지만, *고등학교 2학년 교지에 그 제목도 거창한 「별에 부치는 서시」가 활자화된 것이 처음이며 마지막이
되어 버렸다.*
그럼에도 *이십 대를 지나 사십 대를 넘도록 서점에 들러 시집을 사는 날은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마냥 기뻤다*고 시인은
「자전적 초상」에서 고백한다. 마치 죽음을 예감한 듯, *긴 여정을 보내다 이제 집으로 가는 길일까?* *나를 싣고 그곳에 갈 새벽 첫 배를
기다린다*고.
『보이지 않아도 아름다운』(문학들 刊)은 전남 완도에서 태어나 광주고등학교와 한국외국어대학교 아랍어과를 졸업했고,
2007년 『문학예술』에 문병란 시인 추천으로 등단한 이상렬 시인(1953∼2014)의 유고 시집이다.
*어지럽구나//북 치는 아이들의
손 떨림이 파르스름하다/작고 큰 북들이 연이어 몰려든다/그리고 드문드문 징을 치며 가까이 펼쳐 온다//꽃이 피기 시작하구나//(중략)//나는
이제 나를 떠난다*(「해돋이」)
*민물과 바닷물이 차별을 버리고/하나 되어/생이 다시 시작되는 곳//그 위에 기대어/생전의
그대들과/사진을 나눈다//구분 없이 하나 되는 인연도/자연의 품으로/함께 없어지는 곳//그래서/뒤돌아보고 마는 곳*(쇠소깍에서)
만남과
헤어짐, 기억과 망각, 채움과 비움 등 죽음을 눈앞에 둔 자만이 지닐 수 있는 삶의 자세와 예지가 빛나는 시집이다. *잊혀짐은 필히 슬픔을
넘어선 희망이여야지요/잊혀지겠지요*(「들꽃」)라는 슬픔과 희망은 *아프지 않은 아름다운 이별의 준비도/가을 햇살 빛나는 손짓에/투명한 나의
영혼은/목이 타며 두렵지 않은 게다*(「단풍소묘」)라는 의지가 되기도 하고, *예쁘게 웃고 있는 꽃보다/소담히 지고 있는 꽃이/아름답다는
것을*(「깨달음」)이라는 깨달음이 되기도 한다.
*상렬아, 내 곁에, 아니 우리의 곁에 지금 네가 없다. 광주에 가면 그래도 혈육처럼
따르고 다정다감했던, 그러나 불의와 불명예 앞에서는 단호했던 네가 있어 행복했었는데.*라는 허형만 시인의 만가는 구슬프고, *그가 세상을 뜬
이후에 못 보던 것들이 눈에 띈다.* *삶이 죽음이기도 하고, 죽음이 곧 삶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죽음 저편에 있는 친구가 오히려 나에게
삶을 가르친다.*고 한 정승윤 시인의 발문도 가슴 아프다.
누구라서 인생이라는 여정 끝의 본향을 거부할 수 있으랴. 하지만 그 끝에서
*나를 싣고 그곳에 갈 새벽 첫 배를 기다린다*고 담담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이상렬(1953~2014)
1953년 6월 12일 전남 완도에서 태어나 광주고등학교와 한국외국어대학교 아랍어과를 졸업했다.
2007년 『문학예술』에 문병란 시인 추천으로 등단했으며, 공저 시집 『서석대의 빛과 그늘』, 『추억이 꽃무늬를 그릴 때』,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 등을 펴냈다. 바이엘 코리아에서 오랫동안 일했으며 2011년 *이순남, 이상렬 詩의 房* 전시회(5월 27일~6월 2일)를 열기도
했다. 2014년 11월 23일 향년 62세로 타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