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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唐) 손과정(孫過庭, 7세기 후반에 활동) 서보(書譜)1
두루마리(卷), 종이에 먹, 26.5 x 900.8 c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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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과정은 일설에 의하면 이름은 건례(虔禮)이며 자는 과정(過庭), 하남성 진류(陳留) 사람이라고 하는데, 또 다른 설에 의하면 이름이 과정이고, 자가 건례로 절강성 부양(富陽) 사람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본서의 제발 내용에 따르면, 오군(吳郡) 사람으로 이름을 과정이라 한다고 되어있다. 손과정은 출신이 미천했지만 불혹의 나이에 벼슬이 솔부록사참군(率府錄事參軍)에 이르렀고 고고한 성품 때문에 중상모략을 당하자 관직을 그만두고 서법 연구에 몰두하였다. 이 두루마리의 시작 부분에는 “서보 상권. 오군(吳郡) 손과정이 편찬함(書譜卷上. 吳郡孫過庭撰)”이라고 되어있고, 말미에는 “수공 삼 년에 씀 (垂拱三年寫記)” 이라고 되어있다. 내용은 주로 작가의 서예에 관함 경험담과 서보를 편찬한 요지, 서예를 배우는 방법의 기본 원칙을 적고 있다. 일반적으로 이 상권을 서론에 해당한다고 보고 있으며, 송(宋)에서 원대(元代), 명대(明代) 사이에 두 권으로 나뉘었다가, 명대 엄숭(嚴嵩, 1480-1565)손에 들어가 한 권으로 다시 만들어졌다. 하권인 “보(譜)”는 작자의 생전에는 완성을 하지 못하였다. 손과정은 왕희지(王羲之)의 초서를 배워 그 필법에 매우 능하였는데 당(唐)대에 그와 비교할만한 사람이 없었다. 이 작품은 종이와 먹의 보존 상태가 아주 양호하며, 한편의 우아하고 아름다운 서예 이론일 뿐만 아니라 초서(草書) 예술의 이상적인 본보기라 할 수 있다. 질박함과 우아함이 융합되어있는 서풍으로 운필에 있어 중봉(中鋒)과 측봉(側鋒)을 함께 사용되고 있고, 필봉을 감추기도 하고 드러내기도 하면서 때론 일어나고 때론 돌아가기도 하는 등 수시로 일어나는 변화가 보는 이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필세(筆勢)는 매우 세련되면서 또 자유롭고 거침이 없어 심수상응(心手相應)하는 입신의 경지에 도달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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