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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과거 박정희 유신독재 시절에 이른바 '긴급조치 위반사건’으로 심각하게 인권침해를 당한 사람들의 재판기록을 모은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에는 각 사건별로 판결을 내린 판사의 이름이 실명으로 공개되어 있어 여론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특히, 실명공개와 발표시기 등을 둘러싸고 사법부 등 법조계와 언론 그리고 여야 대선후보자들 사이에 정치적 의도 여부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는 것 같다.
이 논란에 대해, 과거사위원회는 이번 보고서 발표가 유신독재의 억압 속에서 어떤 판사가 독재정권에 순종하여 부당한 판결을 하였는지를 알리려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보다는 ‘긴급조치’라는 황당한, 법 아닌 법의 폭력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어떤 죄목으로 어떻게 목숨까지 위협 받는 심각한 인권침해를 당했는지 그리고 그로 인해 그 가족들이 연좌제로 얼마나 많은 고통을 당했는지 그 구체적 사실들을 알리는 것이 목적이라고 했다. 따라서 각 사건별로 사건의 구체적 내용이 담긴 재판기록을 첨삭 없이 있는 그대로 공개하는 것뿐이라고 했다. 각 사건을 담당한 판사들의 실명이 공개되는 것은 각 사건의 피해자 실명이 공개된 것과 마찬가지로 어디까지나 각 사건별 재판기록의 공개에 따른 부수적인 것에 불과할 뿐으로, 무슨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니며 그것만을 특별히 삭제할 이유도 없다는 것이다.
먼저 이번 논란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긴급조치가 무엇이었는지를 간단하게 설명할 필요가 있다. 40대 중반 이후 세대는 ‘긴급조치’를 경험한 세대로서 그것이 얼마나 반인권적이며 숨막히는 폭압적 조치였는지를 잘 알 수 있다. 그렇지만 1970년 이후 태어난 세대인 20대나 30대는 긴급조치가 무엇인지 쉽사리 감을 잡기 힘들 것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61년 5.16쿠데타로 당시 민주당의 장면 정권을 전복시켜 정권을 잡은 후 2차례에 걸쳐 대통령을 연임하였다. 그러나 장기집권을 위해 1968년 3선 개헌을 한 후, 1972년에는 다시 영구집권을 위해 이른바 ‘10월 유신’을 단행하여 유신헌법을 만들게 된다. 이때 만들어진 유신헌법은 한마디로 입법, 행정, 사법의 3권을 대통령 1인에게 집중시킨 ‘제왕적 대통령제’였다고 할 수 있다.
이 유신헌법에 의하면, 대통령은 국회의원의 1/3을 추천하고, 대통령 마음대로 국회해산권과 긴급조치권 등을 가지며, 임기 6년에 중임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 때가지 해오던 대통령 직선제를 폐지하고, 이른바 통일주체국민회의라는 거수기 집단을 만들어 간선제로 대통령을 선출하도록 함으로써 사실상 박정희의 종신집권이 가능해졌다. 통일주체국민회의의 의장은 대통령이었고 실제로 입후보자는 박정희 전 대통령 1인이었으며 거의 만장일치로 당선되었다. 뿐만 아니라 국회는 국정감사권이 폐지되었고 연간 개회일수도 150일 이내로 제한되었으며 주요 권한이 통일주체국민회의로 이양되는 등 그 권한과 기능이 크게 축소되었던 것이다.
이제 이번 실명공개 논란의 발단이 된 유신헌법의 긴급조치 조항(제53조)를 간단히 살펴보기로 하자. 이 긴급조치 조항을 보면 박정희 전 대통령의 생각이 곧 바로 법이며 박정희 전 대통령의 말이 곧 법이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게 된다. 즉 이 조항은 박정희 전 대통령을 헌법조차도 초월하는 전제적 군주화 내지는 신격화한 것임과 동시에, 전 국민을 검열과 감시의 올가미로 꽁꽁 옭아매는 폭압의 도구였던 것이다.
① 대통령은 천재·지변 또는 중대한 재정·경제상의 위기에 처하거나 국가의 안전보장 또는 공공의 안녕질서가 중대한 위협을 받거나 받을 우려가 있어 신속한 조치를 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할 때에는 내정·외교·국방·경제·재정·사법(司法) 등 국정 전반에 걸쳐 필요한 긴급조치를 할 수 있다.
② 대통령은 제1항의 경우에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헌법에 규정되어 있는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잠정적으로 정지하는 긴급조치를 할 수 있고, 정부나 법원의 권한에 관하여 긴급조치를 할 수 있다.
④ 제1항과 제2항의 긴급조치는 사법적(司法的) 심사의 대상이 되지 아니한다.
긴급조치는 1974년 1호 발동부터 시작하여 9호까지 발동되었는데, 이번 과거사위원회가 발표한 판결사례 보고서를 보면 이 긴급조치가 얼마나 황당하고 폭압적이었는지를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긴급조치로 모든 언론과 국민들의 일거수 일투족이 감시 당하고 검열 받았으며, 많은 국민들이 일제시대를 능가하는 국가폭력과 압제에 희생되었고, 독재정권을 정당화하는 세뇌교육도 일상화되다시피 했다. 심지어는 고등학교까지도 군사훈련인 교련수업을 실시하기도 하였다.
흔히들 역사는 반복된다고 말한다. 역사는 왜 반복되는가? 그것은 역사로부터 제대로 교훈을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 역사로부터 올바른 교훈을 얻지 못하는 이유는 객관적 사실에 입각한 역사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후대에게 올바른 역사교육이 이루어지지 않는 나라일수록 잘못되고 왜곡된 역사가 반복되기 쉬운 것이다. 후대에게 올바른 역사교육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객관적인 사실에 입각한 역사의 규명과 정리가 필요한 것이다. 이런 객관적 사실의 규명과 교육이 제대로 안 되다 보니 유신독재 정권을 미화하는 이데올로기 세력들이 각고 끝에 이룩한 자유민주주의에 다시 도전하기 시작하고 있으며, 심지어는 수백 명씩이나 되는 무고한 국민의 목숨을 희생시켜가면서까지 정권을 탈취한 전두환 군사정권을 미화하는 ‘일해공원’을 주장하는 황당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최근 역사문제가 부쩍 국민적 관심사가 되고 있다. 일본 정치인들의 일제 식민지배를 미화하는 야스쿠니 신사참배 및 독도 주권침해 문제와 중국의 동북공정을 통한 고구려사 및 발해사 왜곡 문제 등이 그것이다. 일본과 중국의 역사왜곡 행위에 대해서는 언론이나 여야 정치권이나 국민 모두가 예외 없이 민족적 정체성을 내세워 발끈하고 나선다. 그런데 이처럼 일본이나 중국과 역사왜곡 문제가 발생하는 가장 큰 이유는 뭐니뭐니해도 고구려사 등 한국 고대사에 대한 객관적 사실 기록이 빈약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문제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일본이나 중국이나 비슷하다고 할 수 있으며, 한국의 경우는 특히 더 심하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일제 식민지배나 고구려사만이 역사이고 한국 내부의 역사는 역사가 아닌가 하는 것이다. 나아가 고대사만이 역사이고 박정희 유신독재와 같은 근현대사는 역사가 아닌가 하는 것이다. 그래서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그리고 언론 등에서 2,30대 세대에게 근현대사는 교육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인가 하는 것이다. 역사교육 문제와 관련하여 일본에 대해서는 현대사의 올바른 기록을, 중국에 대해서는 고대사의 올바른 기록을 주장하고 있는 마당에 우리는 올바른 현대사 역사교육을 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은 한마디로 어불성설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이나 중국에 대해서는 올바른 역사교육을 주장하면서 우리 내부의 치부에 대해서는 덮어두어야 한다는 주장은 그야말로 이중적이고 자기기만적인 위선행위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 우리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향유하고 있다. 동시에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개혁을 해가야 하는 전환기적 시점에 놓여 있다. 일제 식민지배 이후 이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어떻게 형성되고 발전해 왔는지에 대한 객관적이고 올바른 현대사 정리가 필요하다. 그래야만 어떤 식으로 어떤 방향으로 새로운 패러다임을 형성해 갈 것인가에 대한 올바른 방향정립이 가능해진다. 박정희 유신체제 하에서 자행된 국가폭력 과정에서 동참한 가해자들이 전혀 반성 없이 기득권 세력을 형성하고 있는 반면, 그로 인한 엄청난 피해자들은 2,30년 이상 명예회복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채 현존해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과거를 묻어두자고 주장하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가해자와 그에 동참한 사람들을 벌하여 피해자를 위로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올바른 역사기록을 객관적인 역사기록을 남겨 가해자와 그 동참자들에게는 자성의 기회를, 그리고 피해자에게는 마음으로부터의 위로를, 그리고 후대에게는 역사교육을 통하여 또 다시 잘못된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교훈으로 삼자는 것이다. 그러한 교훈을 바탕으로 새로운 패러다임의 방향을 올바로 정립하자는 것이다. 그저 과거에 매달려 이전투구하자는 저차원적인 이야기가 아닌 것이다.
일부에서는 하필이면 왜 지금이냐고 주장한다. 대선 직전인데 말이다. 그래서 정치적 의도나 음모가 있는 것이 아니냐고 주장한다. 그렇게 오해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주장한다면 도대체 언제 해야 되느냐고 되묻고 싶다. 민주화가 된 지 벌써 10년이 훨씬 넘었다. 대선 음모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 동안 이 문제에 관해 무엇을 해왔는가라고 반문하고 싶다. 사법부를 비롯한 법조계 역시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과거사 문제를 정리해야 한다고 말만 하면서 지금까지 무엇을 해왔는지 언제 어떻게 하겠다는 계획을 구체적으로 그리고 스스로 밝힌 적이 있는지 묻고 싶다. 그저 자신에게 불리한 현대사의 진실이 시간과 망각 속에 묻혀지기를 기다려왔다고 비난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대선이야말로 국민들 입장에서는 중대한 역사적 선택 시점이다. 대통령을 결정하는 중대한 선택을 해야 하는 국민들에게 한국 현대사의 어두운 역사를 사실 그대로 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며 결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선택의 판단자료라고 할 수 있다. 국민들에게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는 객관적 사실에 입각한 판단자료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 유신독재의 긴급조치를 경험하지 못하여, 그래서 대선 투표에서 올바른 판단을 하기가 어려운 지금의 2,30대 젊은 세대들에게 객관적인 사실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이번 여야 대선후보들 가운데 과거 박정희 유신독재의 연장선상에서 그 후광과 독재적 효율성 이데올로기로 선거를 치르려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어두운 현대사를 모르는 2,30대 젊은 세대들에게 객관적 사실을 감춤으로써 왜곡된 역사가 반복되도록 하는 우를 범하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제 마무리를 해보자.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국가와 권력의 최대 사명은 국민의 행복과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다. 국민의 행복과 자유를 지키지 못하는 그 어떤 국가나 권력도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국민의 행복과 자유를 국가나 권력이 지켜주는 것이 결코 아니다. 국민의 행복과 자유는 역사에 대한 올바른 교육을 통하여 국민 스스로가 지키는 것이다. 나아가 끊임없이 증진시켜 후대에게 더 많은 행복과 자유를 만들어 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렇게 할 때 비로소 자유민주주의 역사가 건전하게 발전할 수 있는 것이다. 국민 스스로가 객관적 사실에 입각하여 역사에 대한 올바른 평가를 게을리하면 할수록 왜곡된 역사는 언제든지 반복될 수 있으며 국민의 행복과 자유 그리고 심지어는 민족적 자긍심까지도 억압당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그것이 외세침략이든 내부 독재이든 말이다.
2,30대 젊은 세대들에게 진심으로 권한다. 꼭 한번 인터넷 등에서 박정희 정권 시절의 유신헌법과 긴급조치가 과연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그로 인해 얼마나 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당했는지를 검색해보기 바란다. 그들의 희생으로 오늘날 우리가 민주주의의 자유로운 공기를 만끽하고 있다는 것을 냉철한 두뇌와 뜨거운 가슴으로 다시 한번 느껴보기 바란다. 그러한 느낌을 바탕으로 자신들의 미래와 그리고 자식들의 장래 행복과 자유를 위해서 사법개혁이 왜 필요하며 정치개혁이 왜 필요한지 진지하게 생각해볼 것을 권하는 바이다.
첫댓글 얼마전에 두 사람이 말다툼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내용인 즉, 한사람이 박정희 대통령 집권시절이 살기에 훨씬 좋았다고 이야기하니까, 듣고 있던 사람이 그때 쌀밥은 먹고 살았는지, 지금처럼 차를 타고 다녔는지, Gas 보일러는 사용했는지, 전화기나 핸드폰은 사용했는지 다이어트 때문에 소식하면서 건강을 생각했었는지, 정부나 대통령에 대해서 하고푼 비판이나 막말을 마음대로 할 수 있었는지, 마음대로 TV나 양담배를 피울 수 있었느냐고 말하더군요. 그 시절이 좋았다고 말하던 사람이 할말을 잃고 있다가 다시금 정신을 차리고 반격을 하더군요. 그때는 일하고 싶으면 얼마든지 일을 할 수 있었는데 지금을 일하고 싶어도 일자리를
구할수 없다고 말하니, 다른 사람이 말하기는 그것은 댁의 직업 때문와 양극화의 문제이지 나라의 대통령 때문에 일자리가 없거나 양극화된 것이 아니다고 말하더군요. 가만히 옆에서 그 소리를 들으며 우리나라의 경제구조가 바뀌었음을 다시금 실감했습니다. 경제의 60∼70%를 차지하던 중후장대의 산업이 이제는 그 명맥만 유지하는 수준의 경제구조로 바뀌고 그 빈자리에 각종 서비스업과 IT 관련업이 포진함으로써 전문 기술과 능력이 없는 일반 근로자들의 잠재적 실업이 굉장히 심각하다고 느껴지네요. 집에 가서 책이나 봐야 할 듯 합니다. 짤리면 안되니까요 !!!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언제나 느끼는 바지만 소장님은 필력이 참 대단하십니다. 흠잡을 데 없는 치밀한 논리에, 문법적으로 올바른 문장에, 단락 간의 균형에, 참으로 단단한 글입니다. 모든 글은 그릇의 반영이듯 소장님의 사람됨도 확연히 느껴지고요. 앞으로도 몸 건강히 좋은 일을 많이 해주십시오.
지나친 과찬입니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많은 분들이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문제는 조.중.동입니다. 진실은 조그만 사실같이..조그만 사실은 침소봉대 하여 교묘한 논조로 국민을 우롱하고 있습니다. 더욱 큰문제는 이러한것을 직시하는 국민의식이 아직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