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화 !
면화. 베넷저고리.순면내의.솜바지저고리.혼수이불
영어로 코튼(cotten)
하얀 눈송이. 겨울. 포근함 ~
여러분은 무엇이 연상되나요?
목화가 동양이나 서양이나 많이 재배되었던 건
우리 의류문화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는 증거이고,
미국의 면화재배는 16세기 부터
흑인 노예들의 고된 노동의 상징으로 표현되고있고요.
목화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시기는
고려시대 말쯤에서 문익점이란 선비가 중국을
여행하다가 우리나라 사람들의 겨울옷으로 좋겠다는 생각에
붓뚜껑속에 목화씨 세알을 감추어 가지고 들어와서
장인인 정천익씨에게 배배케하고 또 씨앗을 빼는 기계를 개발하고
물래등을 만들어 보급함으로써 삼베옷에 겨울을 나던
민초들의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보내게 했다는 것이
교과서에 나온 말이고,
내 어릴적, 우리 고명하신 아버님께서 하신말씀은
지금도 웃음이나오는 말
야 이녀석아 !
그 때는 중국에서 목화씨 반출에대한 단속이 하도 심하여
문익점 선생이 항문(우리아버지는 똥구멍이라고)에
넣어가지고 온것이여 ~ ㅎ 하셨다.
지금도 가끔 마약이나 귀중한 약품을 밀수하는
밀수업자들이 항문에 들여오고
여성들은 또 어디 이상한곳에 들여오다 걸리는 것을 볼때면
우리는 문익점선생의
위대한 후손이 맞는 가 보다 생각이 든다.

(목화밭)
어쨌거나 목화는 우리 인류의 의복에 혁신을 가져온 식물중에
하나임에는 틀림이 없다.
난 어려서 목화를 우리집에서 재배하던 것을 보아서 인지
지금도 재배하는 기술을 알고 있다.
이른 봄에 목화씨를 소변에 담갔다가 꺼내서 재를 묻힌다음
햇볕에 말려서 밭에 이랑을 만들고
씨를 뿌린다음 싹이나오고 어느 정도 줄기가 커지면
바람에 쓰러지지 않게 흙을 북돋아 주곤했다.
그 당시엔 병충해가 없어서 농약을 주거나
그러지 않고 잡초만 뽑아주고 비료만 약간주면
잘자랐다.

(목화한그루)
목화가 자라서 꽃이 피려면 꽃보우리를 맺는다.
나비처럼 꽃을 싸고있는 꽃받침이 먼저 자라고 나중에
꽃봉우리가 터지면서 흰꽃.분홍꽃.노란꽃이 핀다.
목화꽃은 가냘프면서 한지처럼 부드러워
청순한 여인네들의 하얀 세모시 옷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하얀색 목화꽃
아주 깨끗하여 청초하기까지하다.

노란목화꽃

분홍목화꽃

목화다래
꽃이피고 수정을 거쳐서 열매를 맺는 데.
그 열매가 다래만하다가 나중에 커지면 큰 밤톨만하게 열린다.
열매속은 대개게 4쪽으로 갈라져 있어
그안에 씨가 자라고 씨주변을 싸고 있던 섬유질이 하얀색으로
부드럽다. 다 크기전에 중간쯤에서 따서 까먹으면
안에 있는 속살이 달콤하고 맛이있다.
그리하여 시골아이들이 많이 따먹어서 목화농사 망쳤다고
어른들이 야단을 치던 생각이 난다.
새파란 열매가 까면 속에서 하얀 속이 예쁘고 맛이 있었다.
나도 많이 따먹어서 혼난 적이있다.

다큰 목화열매
9월쯤 되면 목화열매가 다 커서 이때는 껍질도 단단하고
열매속도 여물어서 맛이 없고 섬유질이 딱딱하다.
이 때가 되면 따먹고 싶어도 먹지를 못한다.

속이 터져나오기 시작한열매
이제 단단하던 열매가 가을 맑은 바람과 햇살을 받아
겉 껍질이 마르기 시작하면 껍질이 갈라지면서 속에서
하얀 목화솜이 나온다.비가오면 움츠러들지만 맑은 날이면
환하게 또 한번의 꽃이 피기 시작한다.

목화솜
가을 햇살에 여물고 서리가 내려 찬서리를 맞으면
잎은 말라죽고 목화열매만이 갈라지면서 속살을 밖으로 드러내다.
이처럼 하얗게 피여나야 완전한 목화솜이 된 것이다.
이제 목화솜을 따야 한다. 목화껍질은 단단하고
뾰족한 끝이 내 어리고 약한 손가락을 자주 찌르곤해서
목화는 이쁘지만 따기가 쉽지가 않았다.
목화솜은 잘 말려서 겨우네 씨아와(씨를 빼내는 틀)를
돌려가며 씨았을 빼낸다.
옛선인들의 기술이 대단하였다.
홍두깨같은 작은 나무 두개가 물려서 돌아가는 구조인데.
돌리면서 목화솜을 물리면 씨앗은 앞쪽에 떨어지고
솜만이 뒤쪽으로 빠지는 것이
신기하여 난 열심히 씨앗을 빼내곤 했었다.
이렇게 씨았을 뺀 솜은 깨끗이 잡티를 제거하여
손질을 하여 고르게 펴서 어른들 바지저고리속에
넣어서 누비면 따뜻하고 가벼운 겨울옷이 되었고,
이불을 만들면 따뜻한 겨울을 포근하게 보낼수가 있었다.
문제는 솜이 젖으면 마르지를 않아서 다시 틋어서
솜을 꺼내고 홋이불만 빨아서 다시
솜을 틀고 하여 이불을 꿰메는 번거로움이 있다.
지금이야 기술이 좋아서 솜에서 가는 실로 뽑아 내의도
실크처럼 만들고 있지만 그 시대야 가늘게 뽑는
기술이 발달이 안되어서 굵직한 실로 바지저고리를 짜고 했었다.
화학섬유의 발달로 이제는 양잠산업처럼 사양산업이 되어버리고
어디를 가도 목화밭 구경하기가 힘들어 졌다.
한때는 우리나라 농가의 수입원으로 좋았던 시절이 있었는 데,
사실 우리 인체에 목화솜처럼 좋은 것이 어디 있겠는 가,
완전 식물자연의류가 아닌가.
지금도 순면의류가 아니면 입지를 않는 사람도 있고
또 속옷은 꼭 순면을 입어야 질병을 예방할 수가 있는 데,
좀 비싸고 관리가 힘들어서 입지를 못하고 있다.
지금은 소중한 속옷마져도 화학섬유로 대체되고 있어
많은 질병을 키워가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그 왜 목화에 대한 노래도 많았었지 않은가.
남진의 " 목화아가씨".
하사와 병장의 " 목화밭"(이것은 번안가요)
외국 노래에도 목화밭의 추억을 노래한 가수들이 많다.
이처럼 우리 문화와 같이한 목화
어디를 가야 흐드러지게 핀 목화꽃을 볼 수 있을 까요 ?
아시는 분은 좀 알려주세요. 목화다래 따 줄께요.
들키면 주인한테 목화농사 다 물어주어야 겠지요. ㅋㅋ
추억속의 목화 ~ 그리운 목화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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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화꽃 피는 7월에 - 시인과 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