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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바쿠 바이크 원문보기 글쓴이: Peter Kim
이륜문화 개선 및 발전을 위하여! |
Peter Kim |
● 우리가 이 사회에 바라는 게 있듯, 이 사회도 우리에게 바라는 게 있다.
즉, 그들도 우리의 말을 들어야 할 귀(의무)가 있어야 하겠지만, 우리도 그들의 말을 들어야 할 “귀(의무)”가 있어야 한다.
■ 지금 우리가 이 사회에 바라는 것은:
● 각종 규제완화와 편견 해소
▶일정배기량 이상은 현 신고 제도를 등록제도로 개선
▶재산가치 인정으로 신차 구입 시, 할부제도 및 종합보험 (자차/무보험 담보)시행
▶일반 생명보험에서의 편견 해소
▶택배와 음식배달 이륜차는 사업용 제도시행으로 일반사용자와 구분
▶일반 사용자 이륜차는 관공서와 대기업 사옥 및 주차장 통행허용
▶각종 통행규제 특히, 도로교통법 제58조의 고속도로등 규제 완화
▶이륜차 운전자를 위한 사회교육 시행 등..
■ 반면에 이 사회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대략 다음과 같다.
● 교통법규 준수
▶지그재그 운전 하지 말 것.
▶차량 사이로 다니지 말 것.
▶인도로 다니지 말 것.
▶폭주하지 말 것.
▶헬멧 꼭 쓰고, 스리퍼, 반바지는 입지 말 것.
▶머플러 개조하지 말 것.
▶최소한의 법상 보험과 사용신고는 할 것.
사실 우리가 원하는 것이 그들이 말하는 데로 정말 “교통사고가 많아서”였다면 정말 더이상 말 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어느 시대에, 어느 사건을 통해, 정치적 상황에 따라 어떤 정책의 강도와 명분을 높이기 위해 심지어 여론 무마용으로도 엉뚱하게 이륜차를 희생양으로 사용하였고, 이를 위해 없는 무슨 정확한 (근거)통계자료에 의한 것처럼 국민을 기만(Show)한 것인데, 지금도 이 제도는 살아 있고, ‘툭’하면 별로 가치도 없거나 일시적/부분적 통계수치를 가지고 “이륜차 교통사고 급증”이라면서 그간 “이륜차에 대해 시행해 온 자신들의 주장과 정책이 옳았다.”는 것을 이 사회로부터 인정받기 위한, 결과적으로 또 다른 Show를 하는 일부 *찰 고위층들과 이를 보고도 말없는 우리의 비굴한 모습, 특히, 우리는 직접적인 피해 당사자들로서 부끄러운 생각과 나아가 후배나 후세 Rider에게도 미안한 생각이 든다.
(상대성)"Give and take"
지금 우리는 이 사회에 살고 있으며, 이 세상 모든 사회는 “상대성”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이 사회가 우리를 무시하면 안 되듯, 우리 역시 이 사회를 무시하면 안 된다.
지금 우리(Rider)가 원하는바, 이 사회에 주장하고, 외치는 소리는 그동안 R.G(Reference Group)활동을 하면서 정확한 통계나 과학적 근거자료는 잘 준비되어 있지만, 정부(경찰청)측의 객관적/과학적 변명은 더 이상 들은 적이 없다.
그냥 막연히 “안 된다.”는 설득력이 없는 궁색한 말뿐이다.
문제는 “우리”인데, 이 사회의 소리를 들을 준비가 부족한데다가, “듣고 나서는 소화 시킬 수 있는가?”이다.
원래 거의 대부분의 자연이 그렇듯이 인간도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
쓰다고 해서 무조건 다 나쁜 것은 분명 아니고, 약이 된다면 당연히 먹어야 한다.
우리가 우리의 소리만 외치고, 상대의 소리를 듣지 않으려 한다면, 그들은 우리를 미련한 자로 취급하고, 외면해 버릴 것이다.
일부에서는 어찻피 지키기 어려운데, “현재 누리는 자유도 좋으니 지금 이 상태로 가자!”라고 말하는 Rider들도 있다. “분명히 말하지만, 그건 방종이지 자유가 아니다.”
그 수가 일부이든, 소수이든, 다수이든, 어떤 특정이든 방종을 누리기 위해 다수 혹은 소수의 권리(진정한 자유)에 손상이 오거나 “양보/보류/박탈”을 당하게 해서는 안 된다.
더 중요하고도 분명한 것은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안 튼, 현재의 방종은 이 사회에서 점차 사라질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결국 우리는 잃는 것 외에는 얻는 게 없다.
나 역시 택배는 대개 음식배달 이륜과는 달리, 혼자 영업을 하는 생계형으로 분류하고, 어려운 그들의 처지를 가급적 이해하려고 한다.
하지만, 이해만 했지 근본적 사회보장 및 영업형태를 개선해 주고자 하는 실질적 노력이 없다면, 그저 “말”뿐인 것으로 그들에게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나의 경우, 공치사 같아 할 말은 아니지만, 1995년도부터 행정규제위원회와 건교부에 여러 차례 택배관련 제도를 만들어 줄 것을 건의했지만, 김영삼 정부 때는 규제완화 정책에 상반된 내용(?)이라며, 거절당했고, 이후에는 무(無)답이다.
오늘은 성경귀절을 많이 인용하게 되는데, “어려움에 힘겨워 찾아온 이웃에게 말로만 위로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했다.
예로, 굶는 자가 찾아와 호소할 때, 말로 “돌아가 밥해 먹어.”라고 하는 것도 좋지만 해먹을 양식을 함께 주라는 것이다.
지금 그들(택배)을 사소한 정으로 판단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말"로만 한마디 거두는 것, 우리 정서상 모양은 좋지만, 어려운 당사자들에게 ”공수표“와 같다.
이제 그들(택배)도 위기는 감수해야 한다. 위기는 변화이며, 극복의 마지막 선택의 길이다.
왜냐 하면, 변화 없이는 1-20년 후에도 그 모습 그대로 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노점상 단속현장에서 “먹고 살려고 하는 사람들 너무 심하게 하는 것 아닌가?”비판하던 자들도 실제 자신 상점 앞에 노점상이 자리 잡는 것은 “절대 불허”하는 인간의 나약한 이중구조를 보며 “나 역시 어떨까?” 스스로 자문자답(自問自答)해 본다.
지금 우리 이륜문화 개선에 최대의 걸림돌 중, 하나가 바로 택배의 무질서이다.
정부도 구조적 모순으로 인해 해결의 자신이 없을 뿐만 아니라 “이륜차 관련 정책의 수십년간의 실책의 원인과 책임을 그 누구도 어쩔 수 없었다는 사회적 공감대 형성을 위해 이륜 사용자의 책임”으로 활용하고 있음은 이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 되었다.
즉, 한마디로 줄여 말하자면, 스스로 “면죄부를 얻기 위함”이라 할까!
그러므로 정말 이륜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택배종사자를 가엽게 여기는 것도 좋지만 실질적으로 그들의 권익이 이 사회에서 보장 될 수 있도록 객관적/가시적인 노력에 작든 크든 나서야 하며,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가 바로 “대 정부 탄원 및 진정, 건의, 제안”인데, 이는 시간과 돈이 들지 않아 부담도 없다!
결론적으로 평소 “대형이륜차의 차별화”를 주장하는 것은 지금 우리 한국사회의 이륜차 기준이 “택배/폭주족/음식배달이륜차로 인식”되어 있는데다가 지나친 편견과 부정적 고정관념 및 부정적 인식을 정부(경*)가 “직무유기”에 악용하고 있기 때문인데, 이를 인정으로 쉽게 간과해 버리면, 어느 문화이든 그 문화의 기준이 되며, 발전의 견인차가 되는 고급(高級/메니아: Mania)의 존재는 뿌리 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성경 가르침에서도 말하기를 “부모가 아이에게 매(징계)를 들지 않는다면 그 아이는 사생아와 같다.”라고 했음을 한번 되새겨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4륜의 경우는 사업용과 비사업용이 철저히 구분되어 각자 자신들의 유익을 위해 노력하여 오늘날의 질서와 발전을 이루었다.
심지어 최근에는 “대리운전자”를 위한 제도까지 마련되어 시행중에 있다.
물론 “대리운전자는 음주운전 방지와 사고예방에 공헌이 된다.”라고들 하지만, 매일 매일 적어도 어림잡아 천만명이상의 먹걸이가 이륜차의 덕으로 해결되며, 손에 쥐어 지는 수백만 건 이상의 소화물이 이륜차를 통해 가능한 것은 이 사회에 마지막 동맥과 같은 존재로 “택배와 음식배달이륜차의 사회적 공헌도가 어찌 대리운전자 정도에 비교 되겠는가?”
이륜차의 경우는 사업용과 비사업용이 완전히 뒤섞여 있다.
장담하건데 사업용과 비사업용이 분류가 되지 않고서는 결코 생계형 종사자에게도 유익함은 없을 것이며, 비사업용 역시 발전은 불가능할 것이다.
다시 말해, “이륜문화개선 및 발전은 물 건너 간 것”으로 봐야 한다.
가까운 예로, 근래에 들어와 이륜차 보험 안내/광고에 배달, 출퇴근, 대형 등으로 보험료를 달리 하는 것을 볼 수 있으나 그 내부를 들여다보면, 보험료를 더 받기 위한 “작전”에 불과했지 실제, 달라진 게 없다.
왜냐 하면, 이륜차 보험은 구분이 없는 “특별관리대상”이며, 그 보험제원이 용도별로 구분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 시기적으로 늦었지만, 이미 오래전에 택배와 음식배달도 지역으로 묶어 자생력이 있는 귀한 산업으로 육성시켜 나왔더라면, 그리고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추진한다면, 분명 이 사회에 귀한 요소가 될 것인데, 이 사회의 어두운 문화로 묶어서 무관심으로 방치 되는 게 정말 너무 아쉽다.
폭주족은 대부분 10대 혹은 20대 초반의 청년들이다.
대부분의 이륜차사고 사망자가 여기서 나온다 해도 틀린 말이 아닐 듯싶다.
평소 내가 폭주족을 “강하게 비판하는 것은 제발 그들이 듣고 깨달아 주기를 바라는 교육적 가치관에서 나오는 것”이고, 그렇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 앞에서까지 폭주족을 비판하지는 않았다.
어찌 되었든 이들은 우리가 늙어 더 이상 일을 못할 때, 또 우리가 죽어 사라진 후에 이 사회를 이끌어 갈 주역들이 아닌가!
폭주족문제에 대해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교육계와 건교부 및 경찰청에 무수히 건의 하고 건의했으나 답은 오리무중이다.
즉, 폭주족문제는 이륜차 문제로 해결하려는 생각을 버리고, 교육적 차원에서 청소년문제로 좀 더 많은 이해와 사랑을 가지고 접근해야 하는 것인데, 언제 정부는 이들에 대한 선도, 계도, 교육관련 예산을 세웠다든가, 아니면 담당 전문가를 세워 본적이 있던가?
사실 이 또한 이륜차를 악평으로 몰아넣기 위한 “직무유기”의 좋은 도구였을 뿐이고 우리(Riders)들까지 아무 대안 없이 조용히 입 다물고 있을 때, 우리 이륜 사용자 모두가 그들과 함께 동급 취급화(化) 되어 간다는 사실을 깨달아 주셨으면 한다.
특히, 이륜을 통한 이 사회를 진정 사랑한다면, 자신이 메니아(Mania)라고 생각한다면, 철없거나 혹은 이륜을 함부로 잡아 이륜 전체에 모욕을 남기는 부류의 접근에 유의하고, 사회에 환기 시킬 필요가 있다고 본다.
예를 들어,
① 1990년대 초, 택시 운전기사가 여자 승객을 강간하고 돈을 뺏고, 살인 후, 시신을 유기까지 한 사건이 연달아 발생했다.
이때, 언론은 택시운전기사가 살인강도짓을 한다고 했고, 모든 택시운전기사들은 고개를 숙여야 했다.
이유는 택시 전체의 참회보다는 사회의 부정적 시선이 택시 운전기사들을 향해 있다는 큰 부담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즉, 출소 후, 일하기 쉽고, 접하기 쉬웠던 택시 운전기사로 취업한 그 개인의 잘못과 사회 구조나 제도의 모순보다는 종사하는 사람 전체가 매도당한 것이다.
② 2004년 초, 서울 서부경찰서 형사 2명이 현행범 검거 도중에 칼에 찔려 순직했다.
이때, 언론을 통해 젊은 형사 2명을 살해한 자가 택시 운전기사로 밝혀졌지만, 과거와 달리 택시 운전기사들이 고개 숙이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돌연변이”는 어디나 있기 마련이며, 직업은 누구나 택할 수 있는 것이고, 대한민국 주소지라면 어디든 갈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다들 알고 있기 때문 이였다.
③ 1980년대 초, 서울. 마포경찰서 관내에서 초등학교 선생이 학부형과 놀아나고, 제자를 유괴 살해 한 사건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선생님들을 학부형들과 놀아나고 유괴나 하는 사람으로 결코 판단하지도 받지도 않는다. 그건 어디나 있을 수 있는 “돌연변이”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④ 1980년 초, 5공 출범 직후, 경상도 지방에서 경찰이 총기를 가지고 100여명이 넘는 양민을 그냥 이유 없이 살해 하는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으로 내무부장관이 물러나고 “노 태우”가 내무장관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이 사회가 경찰을 대량학살을 하는 살인마 집단으로 판단하지 않는다.
그건 어디나 있을 수 있는 “돌연변이”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⑤ 인천신공항이 완공되고, 인천공항 ->서울 간 고속도로에서 술에 취해 역주행 교통사고가 2건이 있었다. 그런데 관련 운전기사 모두가 경찰 이였다. 하지만, 지금 이사회가 경찰은 모두 술이나 먹고, 취해서 고속도로 역주행이나 하는 그런 사람들로 보질 않는다.
왜냐 하면, 그건 어디나 있을 수 있는 “돌연변이”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⑥ 1980년대 후반부터 구청세수관련 공무?i들의 “세도”사건이 많이 터졌다.
하지만 이 사회가 공무원들이 죄다 세금을 도둑질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 하면, 그건 어디나 있을 수 있는 “돌연변이”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⑦ 전직 대통령들이 형무소에 갔다고 해서 우리 국민들의 생각에 대통령들을 모두 나쁘게 보지는 않는다. 왜냐 하면, 그건 어디나 있을 수 있는 “돌연변이”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슬프지만, 우리 한국은 하부구조로 내려 갈수록 어느 특정 사건 하나를 가지고 전체를 매도(악용)하는 사례가 심한 사회 이였음은 분명하다.
이는 개인이던, 다수이던, 규모가 작던 크던, 부당한 다스림, 투명성이 없는 정치/행정/경제와 관련이 깊다고 본다.
“이륜차 문제 역시 이러한 사회(의식)구조가 낳은 피해를 보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나는 만 13세 때부터 35년이 지난 지금도 이륜차를 좋아하는 마음은 변함이 없으며, 지금도 사용하고 있다. 한 때, 나와 함께 이륜을 사용했던 많은 사람들 중, 방종으로 양심의 거리낌 없이 무질서를 즐긴 사람들은 대부분 이륜을 짧게, 쉬 접었는데, 이후, 그들은 한결같이 누구에게든 위험하니 “이륜은 사용하지 말라.”고 한다.
우리는 거대한 이 사회를 무조건 욕만 할 수도 없다.
이 사회가 아무리 부패하고, 썩었다 해도 결국 진리를 향해 간다는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거듭 말하지만, 우리가 우리 스스로 상대의 말이 쓰다고 해서 듣지 않으면 이 사회는 우리를 미련한 자로 취급하고 멀리 할 것이다.
성경에 “진주를 개, 돼지에게 주지 말라, 그가 오히려 너를 상하게 할까 염려 된다.”라는 말씀이 있다. 또한 “지혜로운 자는 아비의 훈계를 즐겨하나, 미련한 자는 아비의 훈계를 싫어한다.”하였다.
나 역시 “우리가 원하는 바”를 말 할 때는 기분이 좋지만, 반대로 상대의 “원하는 바”를 들을 때는 너무 답답하고 괴로운데, 그 원인은 아직은 우리가 그들이 “원하는 바”에 대하여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부족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진정, 우리의 잘못된 부분을 우리 스스로가 보고, 고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이 얼마나 귀(貴)한 존재일까!
이 사회가 우리의 잘못된 부분을 지적 할 때, “겸허히 받아들이는 자세” 또한 중요한 것이 아니겠나! 흔히 사람들은 이를 “성숙”이라고 한다.
현재 우리는 "성숙한 Rider"로 한 단계 올라서야 할 때에 와 있다. 이러한 마음은 현재의 잘못된 이륜문화가 다음 세대에 유전되는 것을 방지할 “위대한 첫걸음”이 될 것이라고 나는(Peter Kim)확신한다.
이를 위해서는 나이 든 Rider들이 먼저 성숙해져야 한다.
그리고 젊은 Rider들에게 “권면”해야 하며, 젊은 Rider들은 어린 Rider들의 “본”이 되어야 한다.
나이 먹은 Rider들은 세월 따라 가지고 있는 쓴맛은 분명 젊은 Rider들에게 권면할 가치가 있다.
물론 백발이 되어도 정신 못 차리는 건달들도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역시 선택은 그들의 몫이 아닌가 싶다.
어린 Rider들은 백지장에 쓰는 데로 가기 때문에 젊은 Rider가 교습하는 데는 큰 문제가 없다.
문제는 젊은 Rider다.
이미 쓰여진 책을 지우고 다시 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다시 성경을 인용해서 안됐지만, 구약의 출애굽기(Exodus)의 뜻을 우리가 깨달았으면 한다.
이집트에서 노예생활 하다가 탈출한 수백만 명의 히브리 인들이 1주일이면 통과 할 수 있는 지금의 시나이 반도에서 자신들의 잘못된 고집만 고수하다가 결국 40년간 시나이 반도를 빠져 나가지 못하고 20세 이상은 모두 늙어 죽은 다음, 신세대(新世代)만이 살기 좋은 가나안으로 넘어 간다는 내용인데, 수천 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에게 좋은 교훈이 아닌가 싶다.
여기서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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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을 끝으로 그동안 제가 하고 싶은 말은 다 한 것 같습니다.
이 사회가 이륜차에 대한 잘못된 제도와 관행, 편견과 부정적 고정관념, 이 모든 원인과 출발이 이제 다 명백히 밝혀졌습니다.
그러나 이제 마지막 산이자 꼭 넘어야 할, 그간 우리 스스로 감당하기 어려워, 고의적으로도 간과하여 왔던 우리 스스로의 “자위(自爲)”가 남아 있습니다.
그동안 이해를 돕고자 강한 표현을 많이 사용한 것, 인정하며, 사과드립니다.
그저 바라옵기는 강한 것을 깨뜨리기 위해 더 강한 것을 사용하기도 하는 인간사로 널리 이해 해 주셨으면 합니다.
사실, ▶“개/미친놈/철부지/폭주족/혐오감/추잡하게”등의 표현◀은 10년 가까이 사용하기는 했으나, 평소 이 사회가 저희 이륜에게 향한 “소리”였으며, 정말 저를 더 힘들게 하는 것은 그 소리의 “주인”이자 이 사회의 다수인 그들이 이륜문화 개선의 실질적 권한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내년에 50의 나이와 그간 26년을 교통사고 연구에만 매 달려 온 사람으로, 제가 주변의 다른 연구원들이나 프리렌서(freelancer)와 다른 점이 있다면 이륜차를 무척 즐기며, 좋아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다른 교통전문가들은 제가 알고 있는 사람 중, 이륜차 사용경험이 있는 분은 아무도 없습니다.
물론 아는 것이라고는 “악평(惡評)과 편견”뿐이랍니다.
저는 자주 그들과 이륜차관련 논쟁을 벌이는데, 정말 어떤 때는 다수에 밀려 자존심까지 상할 경우도 많았습니다.
사실 위 “▶---◀”도 그들의 입에서는 지금도 거침없이 나옵니다.
이디 그들 뿐 이겠습니까?
차라리 우리(all riders)스스로 말하며, 듣고 끝내는 게 낫지, 왜 그들에게 수십 년간을 들었어야 하며, 앞으로도 들어야 합니까?
앞으로는 그간의 글을 모아 책으로 엮을 계획이지만 이 또한 엄청난 예산과 시간이 만만치가 않아 고민 중입니다.
끝으로 우리 Rider분들에게 원하는 것이 있는데, 현재 우리 이륜차의 유통과 A/S는 사회적으로 볼 때, 취약함을 부인할 수 없으므로 이러한 실태를 사실 그대로 정리한 논문이나 글(정론)이 우리 내부에서 하루 속히 나왔으면 합니다.
이러한 정론은 문제해결 및 이륜차 시장 활성화에 푸른 신호등이 될 것이며, 자동차 사용에 있어 없어서는 절대 안 될 종합보험의 완벽한 선택의 자유도 가능 할 것이라 확신합니다.
개인의 욕심보다는 우리 사회 전체의 유익을 구해야 할 것이며, 이는 개인의 욕심은 유한하지만, 사회의 유익은 “무궁무진”이라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감사합니다.
이글을 읽으시는 모든 분께 건강과 하시는 사업위에 건승하심이 넘치시기를 기원합니다. - 끝 -
■ Union is strength. 단결은 힘이다.■
Peter Kim
고속도로 통행을 위한 모임 R.G
http://www.code58.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