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서) 위키피디아 영문판 (번역) 크메르의 세계
역사인물 : 삼 사리
Sam Sary
삼 사리(Sam Sary)는 노로돔 시하누크(Norodom Sihanouk)에 반대하는 소위 "방콕 모의"(Bangkok Plot)라 불리는 사건에 가담했던 캄보디아 정치인이다.(주1) 그는 1940년대의 저명한 정치인 삼 느히언(Sam Nhean)의 아들이며, 현재 캄보디아의 대표적인 야당을 이끌고 있는 삼 랑시(Sam Rainsy) 의원의 부친이기도 하다.
그는 원래 노로돔 시하누크의 측근이었으나, 수입면허장 판매 부정이 드러난 후 좌천된다. 1958년 주 영국 대사 임기 중 아이를 임신한 동거녀를 폭행했는데, 동거녀가 런던 경찰로 피신해 보호를 청했고, 삼 사리도 이를 잘못된 일이라 시인했다. 이 스캔들은 런던의 타블로이드판 신문의 머릿기사를 장식했고, 이로 인해 그는 캄보디아로 호출된 뒤 모든 직위를 박탈당했다.(주2) 그는 1962년에 의문 속에 실종됐는데, 당시의 캄보디아 정부 혹은 그가 일을 했던 CIA 요원에 의해 살해됐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1. 정치활동
삼 사리(Sam Sary)는 1950년대 노로돔 시하누크 공 정부에서 부총리를 지냈다. 그는 제네바회의(1954년)에서 새롭게 독립되는 캄보디아의 영토분할을 막아 완전한 형식의 독립을 이루도록 하고, 시하누크의 "성꿈 리어스 니욤"(Sangkum Reastr Niyum: 대중사회주의공동체) 창당을 도움으로써(1955년부터), 중요한 정치적 역할들을 담당했다.
그는 한편으로 선거 관련 부정과 협박에도 연루되어 있었는데, 껭 완삭(Keng Vannsak)은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이러한 탄압의 배후엔 삼 사리라는 사악한 천재가 자리잡고 있었는데, 그는 흉포한 인물이었다. 1940년대 한 사법적 조사를 행하면서, 그는 자신의 손으로 용의자를 구타해 죽음에 이르게 만들기도 했다. 그는 공부를 하러 프랑스로 갔고...... 1955년 "성꿈"에 가입한 후 시하누크의 최측근이 됐는데........ 시하누크가 강경무장 정책을 결정하자, 삼 사리가 돈을 뿌려 불한당들을 고용한 후 우리 회의를 무산시키러 왔었다."
2. 삼 사리 사건
1958년 노로돔 시하누크는 삼 사리를 런던 주재 대사직에서 임명했는데, 이는 막대한 양의 캄보디아산 후추 밀수 스캔들에서 그를 격리시키기 위해서였다.(주2) <타임>(Time) 지에 따르면, 당시 그는 삼 랑시 의원을 포함한 5자녀와 부인, 그리고 3명의 첩들을 동반했다고 한다. 6개월 후 삼 사리는 또다른 스캔들에 연루된다. 하녀 중 한 사람인 이우 엥 셍(Iv Eng Seng)은 당시 그의 아이를 임신하고 있었는데, "사소한 잘못"에 사정없이 얻어 맞았다며 런던 경찰에 신고한 것이다.(주2) 또 다른 설명을 보면 이 여인의 이름은 소응 손 말리(Soeung Son Maly)로 원래 살롯 사(Saloth Sar: 훗날의 폴 포트[Pol Pot])와 데이트를 하곤 했는데, 더 부유한 삼 사리 때문에 그를 차버렸다고도 한다.(주3) 어찌되었든 삼 사리는 영국 언론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기 전에 프놈펜으로 호출됐다. 그는 자신의 하녀를 구타한 일을 인정했다.
"나는 캄보디아 말채찍으로 그녀를 때려 교정시키려 했다. 하지만 얼굴을 때리진 않았고 등과 넓적다리만 때렸고, 이는 캄보디아에서는 일상적인 벌주는 방식이다."
그는 또한 자신의 권리에 대해서도 항변했다.
"대사관은 런던 속의 캄보디아이다."
캄보디아로 돌아온 후 삼 사리는 점점 더 반 시하누크적으로 변해갔다. 시하누크의 심기를 건들 우려가 있었음에도 삼 사리는 새로운 신문을 창간했고, 공개적으로 왕자의 정책들을 비판했다. 그는 자신의 독자적인 정당도 창당했지만 결과는 성공하지 못했다. 아마도 이러한 반 시하누크 활동은 아마도 "삼 사리 사건"(Sam Sary Affairs)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일부에서는 삼 사리가 미국의 CIA와 함께 일했다는 데 동의한다. 아마도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는 1956년 그가 미국을 방문했을 때 접촉이 시작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1959년 1월 13일, 시하누크는 껌뽕 짜암(Kampong Cham)에서 연설하면서, 미국 정보당국이 자신의 정부를 전복시키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청중들에게 말했다. 당시 그의 연설은 삼 사리를 명확히 지목하지는 않았지만, 이 연설이 있고 일주일 뒤 삼 사리는 태국으로 망명을 떠났다. 망명 기간 중 베일에 싸인 생활을 하던 그는 1962년에 실종된다. 아마도 그의 외국인 고용주(CIA)가 살해한 것으로 보인다.(주1)
(주3) Philip Short, Anatomy of Nightmare 2006 p.82. |
참고문헌
1 A History of Cambodia By David P. Chandler
2 Sihanouk: Prince of Light, Prince of Darkness By Milton E. Osborne
3 Pol Pot: Anatomy of Nightmare By Short Phil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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