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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킹의 천국, 요세미티 클라우드 레스트 트레일 1
그 얼마나 보고팠던 그리움의 대상이던가?
요세미티. 그 얼마나 보고팠던 그리움의 대상이던가? 그 얼마나 학수고대하며 그 품에 안기어 그 산의 일부가 되고 싶었던가? 그 기나긴 기다림 끝에 드디어 그리도 꿈에 그리던 요세미티 원시의 땅에 우리는 부푼 마음으로 첫발을 디뎠습니다. 이 여름이 다가기전 늘상 그리움으로 남아있던 요세미티 산행을 드디어 실행에 옮기니 그 얼마나 행복한 삶의 희열을 느끼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하이커들에겐 동경의 대상이며 끝없이 인구에 회자되는 절경을 품은 요세미티. 바위 덩어리 하나 그 자체가 산으로 만들어진 요세미티 산군. 그중에도 태초의 모습과 아득한 전설을 품은 요세미티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해프 돔을 오르기 위해 우리는 부지런히 발품을 팔며 달려갑니다. 하루 300명만 출입을 허용하는 해프돔 등정. 그해 신청자를 2월에 온라인으로 접수하는데 두시간만에 일 년분이 동이 난다는 그 선택의 땅. 당연히 우리도 허가증이 없어 중도 포기하는 빈자리를 얻는 행운을 기대하며 허가증 검열을 하지 않는 뒤에서 치고 올라가는 코스로 오르기로 정했습니다. 풍광이 너무도 아름다워 그 리고 우뚝 솟은 봉우리가 지극히 험난해 바람도 구름도 쉬어간다는 CLOUD REST TRAIL. 우리는 감히 그 길을 택하여 크라우드 레스트의 정상을 밟고 이어 해프 돔을 등정하고 네바다 폭포며 버날 폭포의 절경을 볼 수 있고 이 세상 어느 석양이 비끼는 풍경보다 더 슬프도록 아름답다는 낙조의 압권이 있는 그래서 행복한 웃음과 기쁨이 가득하다는 HAPPY ISLES 구간을 타고 하산하는 22마일 여정을 2박 3일 백칸트리(야영산행)로 하기로 일정을 잡았습니다.
미국을 대표하는 3대 국립공원 가운데 하나
요세미티 국립공원은 1890년 미국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1984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될 정도로 수려한 풍광을 자랑하며 전체 면적이 3,081km²이며, 연간 4백만 명의 방문자들이 발길을 이으며 1400여 종의 식물, 포유류 74종, 조류 230여 종 등 다양한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다합니다. 그랜드 캐년, 옐로우스톤과 함께 미국을 대표하는 3대 국립공원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는데 캘리포니아 주 중부 시에라네바다 산맥 서쪽 사면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요세미티란 명칭은 요세미티 밸리 지역에 살던 인디언 부족 명으로, 요세미티란 "죽이는 자들 (Those Who Kill)"이라는 뜻인데 그 주변 지역 타 부족들에게 킬러들로서 두려움의 대상이었고 여기서 유래되었다 합니다. 해발고도 4000m 정도의 산들이 늘어서 있고, 빙하작용에 의해 만들어진 깊은 계곡과 가파른 절벽, 거대한 바위들, 호수, 폭포, 맑은 시내, 세쿼이아의 숲 등 아름다운 대자연으로 유명한 요세미티 국립공원은 깎아지른 듯 솟아 있는 암벽이 많아 세계 각국에서 암벽 등반가들이 즐겨 찾는 곳이기도 합니다.
잠시 세속과의 인연을 뒤로 하고
이 클라우드 레스트 트레일의 시작은 티아가 패스를 품은 요세미티의 절경중 하나인 타나야 호수입니다. 거울처럼 맑디맑은 수면에 눈에 덮힌 듯 착시현장을 주는 흰 화강암 산들이 투영되는 미려한 타나야 호수에서 발을 적시며 고난의 행군을 앞두고 최후의 만찬처럼 비장한 심정으로 속세의 마지막 정찬을 점심으로 즐깁니다. 형장의 이슬이 될 사형수가 집행 전날 모든 세속의 원함을 충족시켜 주듯 호수에 뛰어들어 멱을 감기도 하고 무겁게 지고 가느니 마시고 간다며 뱃속에 맥주를 가득 저장시키기도 합니다. 우리 일행은 다가올 험난한 여정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영양을 보충하고 잠시 세속과의 인연을 뒤로 하려합니다. 3일 동안 먹고 잘 모든 물품들을 나누어지고 트레킹 폴을 하늘에 올려 부닥치며 홧팅을 외치고 장도의 고행의 여정을 시작합니다. 어떤 감흥으로 우리 가슴을 적실지 모를 그 미지의 크라우드 레스트와 해프돔의 비경을 그리면서 말입니다. 인도 고승들은 득도를 위한 오랜 동안의 수행을 하며 기나긴 여행을 한다 합니다. 혹자는 삶을 고행으로 여기고 혹자는 삶을 또한 여행으로 여기며 그 수도에 정진한다 합니다만 우리는 고행을 극복하고 넘을 때 만 여행으로 변할 수 있다는 나름의 해석으로 오늘의 이 힘든 고행의 산행을 오로지 여행으로 즐기며 가자고 다짐합니다.
아름다운 들꽃들에게 길을 물어
요세미티의 여름답게 푸른 산과 더 넓고 깊은 수림이 짙은 초록빛을 품고 있습니다. 호수에서 건듯 불어오는 바람은 청량하기 이를 데 없고 날마다 시시각각으로 시각적 즐거움을 주는 구름의 변신은 또 하나의 볼거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꼬불꼬불 이어진 산길은 서두르는 기색이 없습니다. 초반 길은 발길 난무한 잡다한 길이 혼란스레 흐드러져 갈피를 잡지 못하게 하는데 잠시 발길 멈추고 늦게 핀 아름다운 들꽃들에게 길을 물어 방향을 잡습니다. 울창한 숲과 하늘 그리고 어디론가 향방 모르고 흘러가는 구름들. 그 사이로 걸어가는 산객, 우리들. 산에서는 우리도 자연의 일부가 되어버립니다. 한 이마일 정도는 거의 평지라 몸을 풀듯 가볍게 이어지더니 이제 길은 바윗길로 변하며 서서히 경사가 높아지면서 본격적인 등산이 시작됩니다. 모두가 보통 4,50 파운드씩의 배낭을 메고 오르니 어께선이 벌써 묵직해지고 고통이 수반됩니다만 점차 하나둘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요세미티 산군의 비경에 매료되어 시선을 뺏기니 잠시 몰핀을 복용한 것처럼 통증도 잊게 만들어 버립니다. 삶이든 산행이든 고비가 있습니다. 인생도 살아가며 힘든 고비가 있고 그 고비를 슬기롭게 이겨낸다면 아름다운 결실이 있듯이 산행도 가장 힘이 드는 고비가 있는데 이 고비 또한 의지로 이겨내면 그 뒤가 수월합니다. 초반 산행이 특히 이렇게 경사가 큰 고개 길을 오를 때는 이내 숨이 차고 힘들어 집니다만 가슴이 터져버릴 듯한 순간까지 참고 견디며 오른다면 그다음 행보는 체력적 적응이 되어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극복도 단지 체력으로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 정신력도 요구되는 사항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산에서 불굴의 의지와 삶에 대한 외경과 또한 정신적 극복을 함께 배우게 됩니다.
영롱하게 반짝이는 요세미티의 별빛에 녹아내리고
얼마나 걸었을까? 해는 어느새 서산마루로 다가가고 한 걸음 한 걸음 오름이 한없이 버거운데 물이 귀하다는 이 트레일에서 적어도 수원지가 있는 가까운 곳에서 야영을 해야 하므로 서로 독려하고 무거운 하중에 힘들어 하는 여성 동무들의 배낭을 대신 메주며 함께 사랑으로 정으로 오릅니다. 눈앞에 있는 산에 가려졌던 많은 산봉들이 서서히 하나둘 나타나며 장관을 이룰 때 수량 인색한 작은 도랑 같은 수원지를 만나게 됩니다. 그나마 반가운 마음에 인근에 서둘러 야영장소를 정하고 팀을 나누어 텐트치고 물 길러 나르고 취사하며 분주히 밤을 맞을 채비를 서두릅니다. 산의 밤은 일찌감치 찾아드는 법. 저녁식사가 다 준비되었을 즈음엔 어느새 어둠이 내립니다. 해드 램프며 랜턴이며 모든 조명기구를 동원해 비추면서 요세미티 깊은 산중에 꽃등심구이의 향기를 뿌리고 된장찌개 냄새 가득풍기며 누구 하나 거스를 것 없는 우리들만의 정찬에 별들만을 초대하여 즐기며 파안대소 웃고 떠들며 깊은 계곡 낮은 하늘에 공명으로 그 기쁨의 여운을 남깁니다. 한국서 손수 공수해온 소주에 콜로라도 로키의 만년설 녹은 물로 만든 맥주를 섞어 합환주로 한 순배 돌리니 어느새 조용히 치솟는 모닥불의 불길처럼 노래소리도 점점 커져갑니다. 비록 기타 하나 없어도 하모니카 하나 없어도 잔잔히 이어지는 추억의 노래들은 머언 먼 기억과 아스라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며 애잔한 요세미티의 밤은 그렇게 익어갑니다. 얼마나 알차게 건조되었는지 유난히도 큰 소리를 내며 타는 요세미티의 장작은 함께 입을 모아 부르는 노래 사이에서 간주가 되고 반주가 되어 인간과 자연이 하나되는 순간을 만들어줍니다. 하루의 고단한 일정은 유난히 크고도 영롱하게 반짝이는 요세미티의 별빛에 녹아내리고 조용히 사위어가는 모닥불엔 노곤한 안식의 자족이 깃들면서 그렇게 그립고 그리웠던 깊디깊은 요세미티 산중 풍경화가 파스텔 톤으로 아련하게 그려지고 있었습니다.
미서부 원정산행 후기 2
하이킹의 천국, 요세미티 클라우드 레스트 트레일 2
미지의 세계에 대한 막연한 동경은 때로는 일상을 박차고 나와 길을 떠나게 합니다. 그것이 여행입니다. 그리도 마음속에 그려왔던 요세미티. 그 산봉, 그 산길. 숨 가쁘게 살아가는 세속을 탈출하여 분주했던 시간을 멈추고 가장 느리게 흐르는 시간과 만나기 위해 우리는 이곳에 와있습니다. 심산의 새벽시간. 태고적부터 한 번도 깨어진 적이 없을 듯한 정적만이 이 산 계곡에 고요히 흐르는데 그 균형을 깨트리는 소리. 어디선가 인기척이 들려오기에 화들짝 놀라서 새우잠을 자던 비박용 침낭에서 용수철처럼 튀어나왔습니다. 맹수일수도 있는 일. 경계를 아니 할 수 없습니다. 별빛이 아롱대는 산등성을 바라보니 멀지않은 곳에 일단의 무리들이 손전등을 비추며 산을 오르는 모습들이 땅과 하늘의 경계선에 또렷이 비춰집니다. 이 클라우드 레스트의 정상을 밟고 당일로 돌아오자면 이처럼 꼭두새벽부터 출발을 해야만 가능한 기나긴 코스입니다. 잠을 떨치고 큰 기지개를 켜면서 산중의 아침을 맞습니다. 이윽고 아침 햇살이 어두운 구석구석을 밝히며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는 시간. 뽀얀 안개가 자욱하게 깔려 신비함을 더합니다. 식사준비에 여념이 없는데 어느새 산등성을 차고 오르는 아침 햇살을 받아 머리에 이고 있는 바위 정상이 더욱 빛나고 인적 드문 산의 품에서 태고적 아름다움을 간직한 생명들이 하나둘 깊은 잠에서 깨어나고 있었습니다. 하늘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시작하는 하루. 오늘은 얼마나 걸어야 하는가? 16마일 정도라는 이동거리는 알아도 걸리는 시간은 예측할 수 없는 지난한 산길. 채비하는 손길이 분주합니다. 해 뜨면 걷고 해지면 잠을 자는 그래서 자연의 일부가 되는 트레킹. 붙잡고 있던 시간을 놓아버리고 그저 바람과 함께 흘러가는 산행. 하루만큼의 행복이 잔잔하게 고스란히 추억으로 아로새겨질 것입니다.
다 같이 순례자의 걸음으로
아침 정찬을 맛있게 듭니다. 밥심이 뒷받침이 되어줘야 장도의 고행을 견딜 수 있으니까요. 피로한 빛이 역력해도 미지의 세계와의 신선한 조우를 기대하는 얼굴들에는 가벼운 흥분 같은 들뜸으로 수다스럽기만 합니다. 주변 정리를 마치고 다시 길을 나섭니다. 구름도 그 비경에 넋을 잃고 바라보며 쉬었다 간다는 오늘 오를 이 클라우드 레스트 산의 정상을 밟고 시간이 허락하면 해프돔 까지 오르기로 작정을 합니다. 한 끼 식량을 줄였다 해도 이슬에 젖은 취침장비들이 무거워져 어제보다 더 무거운 하중을 느끼게 합니다. 묵직한 어께선의 통증은 배낭끈을 이리 저리 움직여 조금씩 완화시키며 모두들 원을 그려 뭉쳐서 파이팅을 외치고 가벼운 첫 걸음을 내디딥니다. 설레는 마음에 초반 발걸음은 한층 가볍기만 합니다. 우리는 다 같이 순례자의 걸음으로 요세미티 정상의 산군 깊은 숨결 속으로 한발 더 들어갑니다. 본격적으로 산행이 시작되자 일행의 걸음에도 무게가 실립니다. 서서히 일어서는 언덕길이 더욱 가파르게 변합니다. 어느새 부턴가 일행은 말수가 적어지고 거친 숨소리만 곁을 따라옵니다. 오르면 오를수록 무엇인가가 위에서 눌러 내리는 듯 더욱 무거워지는 발걸음. 산행 경험이 적고 여행 목적으로 따라 붙은 두 명의 여성대원들이 보기에도 안스러울 정도로 뒤에 처져서 늦어집니다. 어차피 버릴 수 없어 함께 가야할 동행. 배낭속의 무거운 것들을 나누어지고 다시 길을 재촉합니다. 어깨를 누르는 통증은 한발 한발 힘겹게 오를 때마다 새롭게 나타나는 암봉과 더욱 광활하게 펼쳐내 보이는 요세미티의 절경을 보는 즐거움을 보속으로 여기며 견뎌냅니다. 우리는 정상과의 거리를 한발자국 씩 더 좁혀가며 함께 한 동행들과의 마음의 거리도 한 뼘 더 가까워집니다. 같은 곳을 향해 바라보며 같은 꿈을 꾸었던 이 장도의 여정. 아직도 갈 길이 먼 인생의 정상을 향해 오늘처럼 정으로 사랑으로 걸어가고 살아가리라 다짐합니다. 마주치는 시선에 부드러운 격려의 미소가 얼굴 전체로 번져갑니다.
하늘과 눈 맞춤 하는 땅
얼마나 걷고 멈추어 쉬기를 반복하였던가? 하염없이 걷고 걷다보니 어느새 일행들의 거친 숨소리를 비집고 웃음이 새어나옵니다. 드디어 저만치 머리위에서 정상이 빙긋이 웃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마지막 피치를 올립니다. 산에서의 거리는 정확하게 가늠할 수가 없습니다. 바로 눈앞에 있었는데 막상 다가서니 저만치 한 발치 물러서서 우리 인내심의 한계를 가늠해보는 듯합니다. 한결 가깝게 다가왔습니다. 비스듬히 길게 이어지는 클라우드 레스트의 정상. 어차피 정상을 보고 내려와야 하는 길이기에 배낭들을 벗어 갓길 바위에 가지런히 쌓아놓고 암반 능선을 따라 마지막 까지 진군을 합니다. 하늘과 맞닿은 땅. 하늘과 눈 맞춤 하는 땅. 흘러가던 구름도 바람도 잠시 쉬어 넘고 시간도 오래도록 속도감을 줄이고 기막힌 풍경 속으로 평화롭게 스며듭니다. 문명이 빗겨간 원시의 땅. 인간의 발길을 거부한 순수한 대자연의 속살을 마주합니다. 억겁의 세월도, 광폭한 천재지변도 함부로 헝클어 놓지 못해 아직까지도 단정하게 서있는 산. 맹렬한 지각변동과 냉혹한 빙하가 빚은 거대 바위들이 어우러진 태고의 자연. 그 아름다운 품속으로 빨려들듯 다가섭니다. 눈앞을 가로막는 장엄한 암산. 거대한 바위를 서너개 올려놓으면 이천 삼천 높이의 산이 되어버린 곳. 그 존재만으로도 우리를 압도해버리는 요세미티의 산군들. 산정마다 웅장한 조각품을 전시해놓았습니다. 자연의 경이, 해프돔도 발아래 지척에 보이는 360도 조망이 가능한 이 정상에서 우리는 한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었습니다. 세상의 언어로는 묘사할 수 없는 그 무엇에 눌려서..
꿈결처럼 달콤한 오수를 즐기고
천이백 미터를 내려가야 하는 하산이 시작됩니다. 이어지는 바위길 돌밭 길은 속도를 낼 수도 없지만 꼬불꼬불 이어진 길을 걷는 일행의 모습은 진중하다 못해 경건하기까지 합니다. 흰색의 사암덩이에 꽂히는 햇살은 눈부시게 빛나고 매섭게 따가운 햇볕을 벗어나 어서 저 숲길로 들어서기를 바라는 간절한 소망으로 발길을 재촉합니다. 물이 귀하기로 악평이 나있는 이 코스에서 이쯤에서 우리들의 물병이 모두 비어져 버렸습니다. 한도 끝도 없던 돌밭 길을 지나 숲길로 들어서니 실낱같은 물줄기가 길을 가로질러 흐르는 것을 발견하고 우리는 그 물을 따라 올라가니 거기엔 오아시스 같은 작은 수원지가 있어 한방울 한방울 소중하게 빈 물병마다 채워 갈증을 해소합니다. 우리만큼 갈증에 시달린 미국 친구들도 달려들어 약수를 마시고 채웁니다. 내친 김에 그 자리에서 점심도 해결하니 밀려드는 피로에 명령도 내리지 않았는데 모두 자리 깔고 한숨씩 잠을 청합니다. 삼십분 정도였지만 꿈결처럼 너무도 달콤한 오수를 즐기고 다시 하산을 하는데 한걸음 더할 때 마다 오른 편에 단아하게 서있던 해프돔이 점점 더 선명하게 가까이 다가옵니다. 이정표에 “해프돔 가는 길”이라고 씌어져 있는 갈림길에서 우리는 갈등을 합니다. 해프돔을 보기위해서는 캠핑장에서 하루를 더 야영해야 하고 포기한다면 바로 하산하여 비단금침에 쌓여 잘 수 있는 기로에서.. 대다수의 의견이 해프돔은 더 높은 곳에서 충분히 보며 감상했으니 그대로 하산하여 산행을 마감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이 찰나에 충실하며 사는 삶
어느덧 해는 서산으로 기울고 땅거미가 하나둘 짙게 기어드는 시각, 네바다 폭포를 가로질러 행복한 웃음 머금고 걷게 되는 이 세상 가장 아름다운 길 중의 하나인 HAPPY ISLES 협곡이 옅은 저녁안개 속에서 신기루처럼 흔들리고 있습니다. 이제는 오늘의 여정을 갈무리 할 시간. 폭포의 상류에 걸쳐 놓은 다리를 건널 때 황혼아래 붙박아둔 마지막 태양도 신과 자연이 함께 빚어놓은 지극히 수려한 풍광을 두고 쉬이 지지 못하고 긴 그림자만 드리웁니다. 난간에 서서 낙조에 물들어가는 골짜기를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하릴없이 내려다봅니다. 여행이란 이렇게 낯선 곳, 낯선 시간 속에서 그동안 잊고 살았던 내 소중한 것들과 만나는 작업입니다. 이렇게 산에 올라보면 세상사 모두 잊어버리고 그저 자연의 시간에 맞추어 호흡하는 순간이라 더없이 행복한데 더욱이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좋은 사람과 함께 하고 있으니 얼마나 기쁜 삶의 축복이겠습니까? 잡힐 듯 잡히지 않는 행복을 �아 살기보다는 주어진 작은 행복이라도 누리며 살줄 아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 아닐까? 차라리 흐르는 시간에 메일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찰나에 충실하며 사는 삶. 그런 의미있는 것들이 모여 미래라는 것을 쌓아가는 건지도 모릅니다. 모든 것을 일시에 불태워 버리려는 강렬한 황혼을 바라보는 지금 이 순간. 세파에 생채기 난 너덜거리는 내 가슴 한껏 품어주며 나지막이 들려주는 요세미티 거대 바위산의 위안이며 가르침입니다.
미서부 원정산행 후기 3
에메랄드빛의 산정 호수, 레이크 타호
매혹의 풍광들만 가슴에 담고
거대 괴암과 천년 고목의 나라, 시간도 머물고 가는 요세미티에서 꿈같은 일주일간의 밀회를 즐기고 아쉬운 작별을 고합니다. 산에서는 아무것도 남기지 말고 오직 발자국만 남기고 아무것도 가져가지 말고 오직 추억만을 가져가야 하는 법. 챙길 것 아무것도 없이 잊지 못할 매혹의 풍광들만 가슴에 담고 떠납니다. 미국 내 자동차 전용도로로는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요세미티의 심장부를 가로지르는 티오가 패스를 지나며 아쉬운 별리에 마음은 자꾸만 되돌아가고 시선도 힐껏힐껏 뒤를 돌아보게 합니다. 꿈처럼 아련하게 떠오르는 요세미티의 명소들. 수령을 도저히 가늠할 수 없는 거대 세코이아 나무들이 온산을 가득 채운 기묘한 명소 마리포사. 암벽등반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고 있는 엘케피탄과 Upper falls, Middle Cascade, Lower falls의 3단계로 구성되어 있는 740미터 높이의 세계에서 5번째로 높은 요세미티 폭포. 여성적 아름다운 신비를 보여주는 Bridalveil 폭포. 이 들을 품고서 야릇한 조화를 이루는 요세미티 벨리. 이 모두를 감상하며 걷던 Four Miles 트레일이 그립고 그립습니다. 이들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Glacier Point에서 눈맞춤 하던 해프돔. 인디언 원주민 탄생신화에 나오는 어머니 이름인 티사악(Tis-Sa-ack)으로 불렀다고 하는데 그 모습이 스카프를 두른 여인을 닮았답니다. 빙하기 이후 거대 빙하가 떨어지며 산정이 쪼개져 떨어져 나가면서 지금의 모습이 만들어 졌다는 1500미터의 화강암 덩어리 해프돔은 가히 인류사의 불가사의가 아닐 수 없습니다. 아주 조금의 시작점이지만 358km의 산악 트레일로 연결된 세계 3대 트레일 중 하나인 존 뮤어 트레일(John Muir Trail)의 한 구간을 걸었다는 자부심도 차마 요세미티를 두고 올 수 있는 위로가 되었고 그 기쁨으로 또 다른 비경을 찾아 달려갑니다.
북미 최대 산상호수인 ‘레이크 타호’(Lake Tahoe)
오늘 우리는 천하의 절경으로 인구에 회자되는 레이크 타호를 걷기 위해 고속도로와 국도를 번갈아 갈아타며 에어콘도 꺼버리고 차창을 활짝 열어젖힌 채 청정 바람을 한껏 마시면서 Lake Tahoe National Scenic Byway로 유명한 50번 도로의 끝없는 산길을 굽이굽이 달려갑니다. 캘리포니아와 네바다 접경인 해발 이천미터에 이르는 높이에 위치해 있는 북미 최대 산상호수인 ‘레이크 타호’(Lake Tahoe)는 인디언말로 ‘큰물’을 의미하는데 넓이가 남북으로 22마일, 동서로 12마일, 호수 둘레가 무려 72마일에 달하는 광활한 크기로 호수 한가운데 ‘팬네트 섬’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한여름을 제외하고는 항시 미려한 설봉을 품고 있는 시에라 네바다 산맥이 병풍처럼 둘러진 타호의 이 섬에서 360도 휘돌아보면 시선이 닿는 곳마다 수작의 풍경화를 그려주는데 청정 바람, 쾌적한 기후, 탁 트인 호수 경관이 여름을 아름답게 수놓습니다. 이처럼 천혜의 자연 경관과 산뜻한 기후에 더해 스키와 더불어 각종 겨울 스포츠 등 다양한 즐길 거리들이 있는 레이크 타호는 여름보다 겨울이 더 유명한 휴양지기도 합니다. 타호의 최고 비경인 ‘에메랄드 베이’의 아름다운 풍광은 노르웨이의 피오르드를 연상케 하는데 물이 하도 맑아서 바닥까지 훤히 들여다보일 정도로 투명하며 유난히 푸른 에메랄드 색으로 물들어 이내 빨려들 것 같은 호수 물과 그 호수를 둘러싼 하얀 백사장이 압권을 이룹니다. 사바세계가 다 이천 높이의 호수 발아래 있어 더러운 세상 씻긴 탁한 강물이 유입될 까닭이 없기에 타호는 수만 수억의 성상을 원시 그대로의 모습으로 오늘까지 보존되어 왔습니다.
천상의 정원사가 가꾸어 놓은 길
마침내 우리는 호수에 이르러 에메랄드 베이의 인스프레이션 포인트에서 아름다운 풍광을 조망합니다. 푸른 물감을 풀어놓은 듯한 물빛과 주변에 거한 울창한 상록수의 녹색이 묘한 조화를 이루며 비경을 보이는데 빽빽한 나무들 때문에 제대로 볼 수 없어 매우 짜증스럽습니다. 산정에 가까우면 그 절경을 쉬이 볼 수 있으리라는 희망으로 Viking sholm 트레일을 오르기로 했는데 에메랄드 베이 주립공원 캠핑장에서 출발하는 왕복 코스입니다. 오래된 향나무들이 그 세월만큼이나 힘겨워 등이 휘어진 채 산을 채우고 있어 자연의 나이를 감히 짐작도 할 수 없었습니다. 짙은 안개에 쌓인 준봉들 위에는 잔설이 광채를 발해 그 수려함을 더하는데 도무지 계절의 분간이 되질 않습니다. 한바탕 소나기가 적셔놓고 지나간 숲길은 풀내음 흙내음이 한층 더 짙어졌습니다. 그 신선한 기운 마음껏 마시며 걷는 길은 참으로 즐겁기만 합니다. 푸른 얼굴을 들고 쳐다보는 맑은 숲과 나무들과 시선을 나누는 동안 산행의 피로도 세상사 소소한 근심거리도 바람에 실려가 흩어져버립니다. 천상의 정원사가 가꾸어 놓은 길. 경치에 취한 시선 안에 흰 구름이 가득 다가와 머물다 갑니다. 그동안 비가 내리지 않아 오늘의 눈요기 감인 Eagle Falls도 수량이 적어 볼품이 없겠지만 오늘의 단비가 그 기우를 해소시켜줄 것이라는 기대도 버리지 않습니다. 한 구비 돌아가고 한 걸음 쳐올릴 때 마다 산은 오랜 세월 비밀스레 감추어 두었던 비경을 기다렸다는 듯이 풀어놓습니다. 이어지는 돌밭 길. 한 고개를 즐거이 넘었더니 또 하나의 추억과 행복함이 가슴에 담겼습니다. 이제서야 아득한 산 아래 에메랄드 베이가 그림처럼 누워 있음이 시야에 가득 차고 그 안에 점처럼 찍어놓은 작은 섬 하나가 천상의 낙원처럼 돋보이게 만들어 줍니다.
버려야 가벼워지는 마음의 짐들
다시 하늘이 낮게 드리우고 겨울 날씨처럼 을씨년스런 기후입니다. 나쁜 예감은 꼭 현실이 되는 법. 찬비가 거침없이 뿌려댑니다. 피할 곳도 멈출 곳도 없는 길. 산행을 하다보면 이처럼 불시에 예견치 못했던 악천후를 만나듯 이 같은 일들이 우리 인생에서도 얼마나 다반사 허다하던가? 자연 앞에서 인간이 피할 수 있는 길은 없는 것. 때로는 자연에 순응하듯 숙명에 따라야 하듯이 아쉬움은 산마루 너른 품에 남겨두고 내리는 비에 젖고 부는 바람에 몸을 맡겨 걷는 길. 그저 힘겨움을 즐거움으로 받아들이는 체념의 미학만이 걸음의 무게를 줄이는 혜안입니다. 마침내 정상에 섰습니다. 자욱한 안개는 산객들에게는 매우 야속한 존재입니다. 비록 그 자체만의 풍경으로도 충분히 미려하긴 하여도 산 아래 멀리 펼쳐지는 명경이 보이지 않기 때문인데 특히 오늘처럼 정상에 올라 농무에 시야가 가려진다면 누구는 슬프다고도 표현합니다. 오늘 만큼은 자연은 자신의 나신을 보여주고 싶지 않은 듯합니다. 신이 허락하지 않은 경치에 연연하는 것도 산에서는 버려야할 욕심. 이룰 수 없는 사랑에 연연하는 것은 삶에서는 버려야할 집착. 아쉽지만 버려야 가벼워지는 마음의 짐들입니다. 산행에서도 인생에서도...
다시 그리워질 풍경 한 조각을 가슴에 담고
레이크 타호의 정점에 서서 조용히 내려다보는 세상. 뒤를 따라오던 안개가 우리가 지나온 길과 그 길 위에서 겪었던 힘든 시간들조차도 차분히 덮어줍니다. 안개 속에 펼쳐진 광대한 호수 타호의 전경이 가득 시야를 메웁니다. 햇빛 하나 받지 않고도 보여주는 신비감 가득한 산정호수의 아련토록 수려함은 내가 가진 어휘력으로는 더 이상 설득력 있게 표현할 수 없는 압권이었습니다. 거저 대단하다라며 탄식만을 할뿐 한동안 말을 잃어버립니다. 정신을 가다듬고 주위를 돌아보니 메마른 폭포위에는 저마다의 작은 소원들을 담은 돌탑들이 여기저기 보입니다. 우리들도 힘을 합해 커다란 바위위에 그럴듯한 돌탑 하나를 쌓아 올리며 마음속엔 저마다의 간절한 소망을 새겨둡니다. 잿빛 하늘이 더욱 낮아진 산정에는 어둠이 일찍 내리고 갈 길이 먼 산객들은 하산을 서두릅니다. 돌아서면 다시 그리워질 풍경 한 조각을 가슴에 담고 우리는 그렇게 안개가 발길에 차이는 고갯마루를 넘습니다.
미서부 원정산행 후기 4
꿈의 길, 그랜드 티톤 캐스캐이드 캐년 트레일.
두발로만 채워가는 지난한 여정
바쁜 일상, 번다한 마음속에 불현듯 돋아나는 그리움 하나. 그 마음 끝에는 언제나 산이 있습니다. 벼르고 벼른 세월만큼 그리운 마음으로 레이크 타호에서 14시간을 달려서 마침내 다다른 곳. 개발과 성장을 멀리하고 자연을 따라 느린 길을 택한 땅, 그랜드 티톤 국립공원. 그 명산의 품에 안겨 연모했던 마음 터트리고 하나가 되기 위해 정성스레 배낭을 꾸립니다. 해발 2천미터 기점에서 시작하여 별안간 우뚝 솟아 암벽으로 둘러싸여 있는 4200미터의 최고봉 그랜드 티톤으로 오르는 루트는 20여개가 개척되어 있습니다, 패러마운트 픽처스라는 영화사의 로고로도 유명한 스위스의 마터호른과 견주어지는 만년설을 머리에 쓴 암봉으로 그 엄청난 위용에 등반가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곳인데 설봉마다 이어진 산마루는 아름다운 스카이 라인을 보여주며 깎아지른 바위 벼랑이 가득하고 빙하가 이동한 흔적을 더듬으며 오르는 천상의 길입니다. 오늘 그 산정을 넘는 Cascade Canyon 트레일로 올라가 들꽃들의 환대를 받으며 내려올 Paint Brush 트레일. 아득히 이어지는 길을 두발로만 채워가는 지난한 여정. 어쩌면 산사람은 느림을 숙명처럼 받아들여야 하는지도 모릅니다. 경쟁적으로 급변하는 세상 속에서 자신만의 속도를 지키며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그래도 그 느림을 어렵더라도 지켜간다면 내 자신의 내면에 충실하게 되는 일이며 바쁘게 앞만 보며 달려가다 자칫 놓치기 쉬운 소중한 가치들을 되돌아볼 수 있는 건지도 모릅니다. 또한 산다는 것은 이 황량한 산길을 걷는 것처럼 고독함과 싸우며 가야만하는 인생길인지도 모릅니다. 문명화되고 상업화된 여행지가 아니라 이렇게 꾸밈없이 과거와 현재가 별반 다르지 않는 풍경을 찾아 나서서 그 자연을 닮아 느리게 걷고 걸으면서 잃어버렸던 나 자신의 모습을 보기 시작한다면 나만의 속도, 나만의 가치 등 진정한 나의 본 모습을 찾게 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가장 오염되지 않은 땅. 그랜드 티톤
그랜드 티톤 국립공원은 와이오밍주의 고산 마을 잭슨 홀 계곡에 세 개의 젖무덤 같은 암봉을 중심으로 남북으로 늘어서 있는 고봉들의 장관이 인상적인데 산으로 따지자면 어쩌면 겨우 한 시간 이동거리에서 세계적 유명세를 타고 있는 이웃 옐로스톤을 훨씬 능가합니다. 날카롭게 서 있는 그랜드 티톤의 고봉들은 멀리서 보면 더욱더 아름다운데 너르게 산군으로 펼쳐져 있습니다. 옐로스톤의 육분의 일 정도의 면적에 불과하지만 그 독특한 매력과 아름다움으로 전혀 뒤지지 않는다고 평가받는 티톤은 지질사적으로 최근인 7,8백만년 전에 엄청난 지진을 동반한 지각의 융기작용에 의해 형성되었다 합니다. 미국에서 가장 오염되지 않은 국립공원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는데 고산마을에 들어서면 늦은 여름까지 설봉이 녹아 만들어낸 티 없는 호수위로 날아오는 그 청명한 바람이 영혼마저 맑게 해줍니다. 환경보존가며 사진작가로 역사에 큰 획을 그은 Ansel Adams(앤젤 아담스)는 그 존재 자체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자연에 군더더기나 때를 입히지 않도록 흑백 사진만을 고집하기로 유명한데 그와 그의 추종자들이 즐겨 출사지로 선택한 매혹의 땅이기도 합니다.
이 세상 가장 아름다운 풍경화 속으로
보트는 제니호의 유리 수면을 가르며 우리들을 트레일 출발점 까지 데려다 줍니다. 호수 면에는 우리가 오늘 올라야 할 티톤의 산세가 웅장하게 비치며 예고편을 상영하는데 또 다른 선경과의 만남에 대한 기대로 우리는 사뭇 흥분된 상태입니다. 물을 건너는 동안 나그네의 마음을 쓸어주고 잔잔한 생각의 산행을 먼저 하게 해주는 고마운 코스. 쾌적한 날씨아래 산과 호수가 빚어내는 비경을 보기위해 각지에서 몰려든 관광객들을 헤치면서 산행을 시작합니다. 어찌나 인파들이 많은지 시원한 물줄기가 뿌려지는 Hidden Falls를 지나고 발아래 호수의 아름다움이 고스란히 펼쳐진 풍광을 볼 수 있는 Inspiration Point 까지는 속도를 거의 낼 수가 없어 차라리 함께 군상들과 휩쓸려 풍광을 감상하며 느린 보행으로 몸을 풉니다. 포인트를 지나서 부터는 인적도 적어지고 등산 마니아들만 남아 본격 산행을 시작합니다. 계곡을 흐르는 맑은 물과 수인사를 나누며 흰색 머리를 한 설봉을 곁에 두고 오르는 길. 울창한 숲길을 열두명의 긴 행렬이 같은 거리를 유지하며 아름다운 풍경 속으로 들어가니 그 또한 장관을 이루는 한 폭의 그림이 됩니다. 혼자 걷는 길 외롭고 힘들지라도 같은 마음을 품은 이들과 여럿 함께 걸으면 그 존재만으로도 힘이 생기고 든든합니다. 산모퉁이를 돌때마다 뒤돌아보면 그때마다 제니호의 크기는 점점 더 작아지고 단아한 하늘은 더욱 더 가까워집니다. 시내와 수목이 조화롭게 펼쳐 보이는 이 세상 가장 아름다운 풍경화 속에 산 들소의 하나인 무스의 무리가 슬며시 끼어드니 그 그림을 완벽한 구도로 만들어 줍니다. 얼마나 하염없이 걸었을까? 몸이 흥건히 땀에 젖을 즈음에 후드득 빗방울이 듭니다. 쉬어가라는 배려겠죠. 시장기도 느껴지고.. 큰 바위틈에 만들어진 자연 동굴 속에 들어가 오찬과 휴식을 취하며 비가 잦아지길 기다립니다.
고립의 세월이 남긴 소중한 유산
지나가는 비였습니다. 더욱 산뜻해진 기류. 풋풋하고 싱그러운 자연의 향기가 후각을 자극하고 촉각까지도 건드리고 지나갑니다. 어느새 부쩍 가까워진 정상 가까이에 넓은 너덜지대가 나타납니다. 나무들의 높이도 낮아지며 물도 귀한 척박한 땅에 그래도 들꽃들은 함초롬히 피어 있어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우리들처럼 여행이라고 찾아와 잠시 머무는 일조차 쉽지 않은데 태고 때부터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며 가볍게 도리질하며 웃고 있는 산꽃들이 결코 허투로 보이지 않는 인고의 땅입니다, 내딛는 걸음걸음, 세상 아름다운 풍경이 마치 이어달리기라도 하듯이 가는 길마다 거침없이 내솟으니 꿈속이라 해도 전혀 이상할 것 같지 않습니다. 이토록 수려한 풍경 속을 걷는 족함이 숫제 긍지로 다가옵니다. 인간의 역사를 초월한 자연. 헤아릴 수 없는 고립의 세월이 남긴 소중한 유산. 명산이라고 찾아가서는 그저 산 아래 잠시 머물다 풍경 한번 올려다보고 돌아가는 관광으로는 얻을 수 없는 행복이며 즐거움입니다. 자연의 속살을 눈앞 까지 끌어다 그 신비함을 느끼고 맛보는 이 작업. 튼튼한 두 다리가 있음을 무한한 감사와 축복으로 여기며 다시 정상을 향합니다.
얼마나 사무치는 행복인지
산은 신이 사는 곳. 그의 허락이 있어야만 정상을 밟을 수 있습니다. 최고봉 티톤을 비호하듯 주위를 감싸고 있는 암봉, 암릉들. 그 정상에서 내려다보면 아득한 길이 꿈길처럼 이어져있고 산자락의 발목 결에 묶여 석회질 빙하가 녹아 고인 옥색의 호수 물이 조용하게 찰랑대고 있습니다. 그래서 티톤은 산이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지녔다고들 하였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이런 한 순간의 진통 같은 절경을 보기위해 숱한 고난을 인내하며 올라왔는지도 모릅니다. 저마다 인생의 목표가 있듯이 그래서 그 목표를 위해 온갖 난관을 헤쳐 나가듯 우리도 정해놓은 마지막 정상을 향해 후회 없이 오르는 것. 산에서 인생을 배웁니다. 계곡 가득히 채운 자연의 산물들. 아름다운 산하와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는 들소가 있는 티톤의 평화로운 목가적 풍경. 아련하게 목동의 피리소리가 들리는 듯한 이 가슴저려오는 풍광을 어떻게 렌즈에 다 담아 낼 수 있을까? 두고 간들 또 잊을 수 있을까? 차라리 그냥 그대로 멍하니 서서 가슴에 담습니다. 모아둔 바람 모두 풀어 불어오는 정상에 서서 말없이 명상에 젖어 삶이라는 것을 생각해봅니다. 산을 그리며 기다리며 열심히 살아온 날들. 그 날들을 차분히 되돌아보면 저마다의 생을 하루하루 살아가는 그 당연한 일이 얼마나 사무치는 행복인지 새삼 느껴지는 산정에서 얻는 소중한 깨우침입니다.
미서부 원정산행 후기 5
하늘 길. 옐로스톤 에발렌치 트레일
대자연의 경이가 모두 존재하는 옐로스톤
옐로스톤은 미 서부 와이오밍 주 북서부, 몬태나 주 남부와 아이다호 주 동부 이렇게 세 개 주에 걸쳐 있는 1872년에 미국 최초이자 세계 최초로 지정된 국립공원으로 90만 핵타르 면적의 최대 공원으로 연간 수백만의 관광객들이 찾아드는 미 국민들이 가장 한번은 가고 싶은 첫 번째 인 곳입니다. 살아 숨 쉬는 화산, 다양한 야생동물들의 젖줄 역을 하는 북미에서는 가장 표고가 높은 곳에 위치한 최대 산정호수인 옐로스톤호, 45개나 산재해 있는 일만 피트 이상의 고봉들 등 대자연의 경이가 모두 존재하는 이곳은 유황이 솟아 흐르면서 지역의 돌들을 누런색으로 물들였다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올드페이스풀 처럼 뜨거운 지하수를 하늘 높이 내뿜는 많은 수의 간헐천을 비롯하여 형형색색의 온천들이 다양한 형태로 일만 여개나 흩어져 거친 숨을 쉬고 있습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 보호되고 있는 이곳은 철마다 야생화로 덮이는 대초원 곳곳에는 버펄로, 황색 곰, 고라니, 사슴, 늑대 등 많은 야생동물과 독수리며 매 등 야생 조류들도 서식하면서 관광객들의 시선을 끌고 있습니다. 겨울이면 순백으로 펼쳐진 대자연의 풍광은 압도적이며 봄이며 여름이면 빛나는 색채를 발하는 야생화들이 천국을 연상케 하는 아름다운 곳입니다. 이러한 길을 걸을 수 있는 하이킹 코스가 무려 천여마일이나 공원 내 펴져 있는데 습지나 오래되어 무너지는 바위 등이 있어 위험하니 검증된 길만을 걷는 것이 좋다 합니다.
그리도 그려왔던 꿈의 여행길
아쉬운 이주간의 서부 원정산행이 막바지로 들어서고 오늘이 마지막 산행입니다. 이리도 아름다운 줄 몰랐습니다. 옐로스톤의 산길이. 그저 관광으로만 지나치던 이 옐로스톤 안에 그리도 미려한 길이 많은 줄을. 그 중 마지막을 기념하여 가장 힘들면서도 가장 수려한 길 4.5마일 왕복에 700미터 고도를 올려야 하는 Avalanche Peak 트레일을 걷기로 했습니다. Avalanche란 눈이나 산의 사태를 의미하는 만큼 얼마나 비탈지고 얼마나 험난한 길일까 가늠하면서 산행을 시작합니다. 방문자 센터의 레인저가 가장 우선으로 추천했던 길이었지만 여느 산길과 다름없는 초반 길에 실망을 감춘 채 전나무 숲과 뒤엉킨 고사목을 비키며 길을 틉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내 마주하는 가파른 경사가 무척 힘들게 하면서 오늘의 고된 여정을 예견한 듯 모두들 한마디씩 내뱉으며 비장한 각오를 다집니다. 하늘 한 점 보기 힘든 빽빽이 가려진 울창한 숲길, 끝이 없을 것 같은 고난의 길을 가픈 숨을 몰아쉬며 그저 묵묵히 느닷없이 펼쳐질 정상의 비경을 마음에 그리며 올라갑니다. 들풀들의 향기를 맡으며 한참을 오르니 수목의 키들이 서서히 낮아지면서 하나둘 드러나는 옐로스톤의 감춰둔 아름다움에 역시 제일경이라 인정하며 초반의 기우를 떨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쉽니다. 길은 험해도 간헐적으로 보여주는 명경을 즐기며 서로들 나누는 격려와 덕담으로 그리고 소담스런 들꽃들의 환대를 받으며 오르고 또 오릅니다. 어느새 산이 되어 버린 우리는 모두 나무 빛 풀빛에 물들어 갑니다. 숲길을 지나니 환희 트인 전망이 시야에 가득 찹니다. 왼쪽으로는 광대한 호수가 바다처럼 펼쳐져 있고 오른쪽으로는 Arbraska Range가 위용을 자랑하며 줄기차게 뻗어있는 멋진 풍광이 드리운 갈림길에 이르렀습니다. 여러 갈래로 이어진 이 길들이 원주민들에겐 오래된 삶의 길이지만 우리 같은 이방인들에게는 그리도 그려왔던 꿈의 여행길입니다. 오늘 그 길 위에 서있는 우리는 다시 한 번 아련한 꿈을 꿉니다.
산은 제 몸을 깎아서 벼랑과 비탈을 만들고
해발 3천을 넘어서니 고산지대의 특징이 나타납니다. 키 작은 관목이 듬성듬성 보일뿐 푸른 생명체들은 모두 사라지고 그저 모진 세월을 견디지 못하고 죽어간 마른 고사목들이 황량함을 더해주며 산을 메우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따금 깔딱 고개라 부르는 제법 길고도 매우 경사진 산길을 오르게 됩니다. 숨이 깔딱 넘어갈 것 같다는 표현에서 산사람들이 즐겨 쓰는 표현인데 우리 몸의 무거움을 깨우치게 하는 길이기도 하지만 어차피 서두르지 말고 한숨 쉬고 뒤돌아보며 천천히 가라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고달팠던 나날들이 오랜 세월 지나고 나면 모두 아름다워 그리움으로 간절하듯이 그때마다 나무 등걸 부여안고 쉬게 했던 힘들게 지나온 길이 어느덧 자긍심으로 다시 떠오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고통의 무게는 받아들이는 마음에 따라 그것이 또 다른 즐거움을 가져올 수도 있으며 아니면 나쁜 일은 어깨동무 하고 오듯이 연이은 고통으로 절망의 삶을 살아가야 할 수도 있습니다. 그 무한한 것들을 극복하기 위한 지혜를 배우는 것이 인생이라는 시간이고 그런 도전적인 삶의 용기를 조금이나마 몸에 베이게 하는 것이 등산이 아닌가 합니다. 산은 제 몸을 깎아서 벼랑을 만들고 비탈을 만들었습니다. 그리도 오랜 세월을 보내며 만들어 놓은 벼랑과 골. 마침내 그 구비를 오르내리며 고통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감사함으로 받아들이는 지혜와 겸양의 마음으로 다시 산을 오릅니다.
순례자의 가장 정직한 욕심
수목 한계선에서 얼굴을 바꾼 경치는 너덜지대로 이어집니다. 뒤돌아보니 두어 시간 전에 지나온 풍경이 저만치 멀어져 우리를 보고 손짓하는 듯. 돌밭 길에 단단히 누워있던 풀들도 자취를 감추고 돌사태(Rock Slide)를 당한 산에 산산이 부서져 너부러진 바위들만이 가득한 너덜 길. 아무리 휘어지게 길을 만들었어도 이처럼 높은 산을 오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그래도 포기하고자 하는 마음은 결코 들지 않습니다. 이 지난한 여정의 끝에 있을 미지의 절경을 내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것은 순례자의 가장 정직한 욕심. 무거운 발걸음을 다시 옮깁니다. 미국 최초 최고 최대의 국립공원이라고 그리도 거창한 칭송을 얻고 있는 옐로스톤의 자연이지만 그저 고요하고 그리고 소박하게 오래 묵은 빛깔과 향기로 언제부터 항시 제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입니다. 황량한듯하지만 하나도 뺄 것도 더할 것도 없이 꽉 찬 풍경. 숨죽이고 정지한 것 같아 보여도 오랜 세월 한순간도 호흡을 멈춘 적이 없었던 치열한 자연의 생명력. 그 옐로스톤의 품안에 안겨서 정상을 오르며 함께 숨 쉬는 그 진한 감동은 그 어떤 세상의 언어로도 표현할 길이 없을 것 같습니다.
세월의 향기를 머금은 부드러운 바람이
오늘도 어김없이 목표한 정상에 섰습니다. 물론 몇몇 낙오자도 생겼지만요. 척박한 땅에서도 그 여린 생명을 이어온 산 다람쥐들이 먼저 마중을 나와 아는 척을 합니다. 물론 던져줄 먹거리를 기다리는 것이겠지만. 바다처럼 펼쳐져 있는 호수 위엔 평화롭게 물안개가 피어나고 저 멀리 굽이친 능선 넘어 흰 눈 입은 그랜드 티톤의 산군이 또렷하게 보이면서 이 곳 만이 간직한 독특한 모습의 산들이 구름위에 뜬 채 주변을 채우고 있습니다. 손잡고 서있는 오늘의 정상엔 오랜 세월의 향기를 머금은 부드러운 바람이 한결 흘러갑니다. 과연 오늘까지 이 에발란치 산 정상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발자취를 남기고 갔던가? 오십억 인구 중 몇 퍼센트의 산객이 다녀갔을까 생각해보니 어쩌면 우리는 선택받은 존재가 아닌가 여겨지며 까닭 없이 어께가 으슥해지는 자부심으로 마음마저도 풍요로워집니다. 가난한 사람이란 적게 가진 것이 아니라 더 가지려는 물욕에 채워지지 않아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의 소유자인지도 모릅니다. 자연 속에서 자연이 주는 혜택을 감사히 여기며 욕심 없이 누리는 삶. 그가 바로 진정 부유한 사람이 아닐까? 우리는 오늘 이 광대한 미 서부 대자연의 품속에서 함께 호흡하며 그 어느 누구보다도 더 많이 누리는 참 부자가 되어 하염없이 행복을 가득 가슴에 채웁니다. 그 넘치는 기쁨과 충만한 자족으로 발길도 가볍게 하산을 합니다. 이 순간만큼은 이 세상 모두를 품을 것 같은 한없이 넓어진 마음으로 지금껏 살아왔고 지금도 살고 있어 앞으로도 더불어 살아갈 사람 사는 세상으로 우리는 다시 들어갑니다.
박춘기(들뫼바다 산행대장 410-302-60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