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그렇지만……
저의 살아온 날들 동안 축구는 저의 종교였습니다.
축구를 모르는 분들은 뭐 저런 미친 놈이 있나 하실지 모르지만……
제가 어린 시절을 보낸 청파동 숙명여대 뒷골목을 거슬러 올라가면 효창운동장이 있었습니다.
그 시절에는 흙먼지 풀풀 날리는 그 곳이 바로 한국 축구의 메카였습니다.
어린 시절 저는 돼지 저금통에 돈을 모았습니다.
그저 축구를 보고 싶어서……
담치기 하지 않고 매표소 통해서 당당히 들어가 효창운동장에서 축구를 보고 싶어서……
거기에서 어린 시절 나의 영웅 이회택선생, 김재한 아저씨, 차범근형 등등을 만났습니다.
TV에서나 보고 신문에서나 만나던 그 분들을,
비록 잔디 없는 맨 흙 바닥의 효창운동장에서나마 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이었는지……
축구를 정말로 사랑하시는 분들이라면 그 기쁨을 이해하시리라 믿습니다.
그런데……
오늘 참혹하게 이탈리아에 지는 모습을 보니……
“이건 아닌데……”
그런 생각이 듭니다.
승부 근성도 없고, 전략도 없고,
상대의 뒤통수를 때리는 CREATIVE도 없고……
그러고도 승리를 원하는 것은 천하의 “멍청한 놈”이겠지요
최선을 다하고도 지는 경기에는 모두 박수를 보냅니다.
그러나 미적미적 바보 같은 짓을 하다 제풀에 쓰러지는 짓에는 당연히 경멸을 보냅니다.
오늘 한국 축구는 후자입니다.
여기에 제가 약 3년 전에 쓴 한국과 호주의 축구에 관한 저의 추억의 글을 소개 드립니다.
호주의 2006 독일 월드컵 진출과 관련된 글입니다.
한국 축구를 힐난했다고 욕하지 마십시오.
저는 한국 축구를 누구보다 사랑하고, 조국을 누구보다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호주의 2006 독일 월드컵 진출과 관련된 글
이제는 남의 나라만은 아니기에,
한때는 한국축구의 앙숙이었던 호주를 오늘 저녁 응원하였습니다.
그리고 승부차기 끝에 본선진출을 확정지은 호주 축구를 보며...
한국과 호주 축구에 얽힌 추억을 떠올려봅니다.
우리 한국축구의 은인 희동구형님이 벤치에 앉아 있기까지하니...
이제 어찌 호주축구가 저에게 남의 일일수만 있겠습니까?
사실 어떤 분들은 비웃을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호주로 떠날 일을 생각하면서...
한국에서 제일 염려했던 일은,
이제 한국축구를 실시간으로 보는 일이 힘들겠구나 하는 점이었습니다.
물론 인터넷이 발달되어...
즉각적으로 그 대략의 느낌은 전달을 받겠지만...
그느낌이 어디 소주 한병에 오징어 한마리 옆에 차고,
아들놈과 우리팀 상대팀 전력평가에 열올리며,
고래고래 소리지르며 관전하는 재미에야 비하겠습니까?
또 회사후배들에게 주인장이 찾으면 대충 둘러대라고 미안한 구실대며,
수원구장으로 상암구장으로...
땡땡이 응원에 광분하고 다니던 그 재미에는 또 어디 비하겠습니까?
실로 이러한 저의 축구사랑의 시발점에는 濠洲가 자리 잡고 있답니다.
1969년 10월 어느날...
지금은 추억의 場으로 사라져버린 성동원두 동대문운동장.
1970년 월드컵본선을 위한 15-A조예선전...
한국과 호주의 최종전 대결.
한국은 1승1무1패를 기록 중이었고,
호주는 2승1무를 기록 중이었습니다.
그리고 최종전인 이경기에서 한국이 이긴다면,
동률로 대회 규정에 따라,
재경기가 열리게 되어 있었습니다.
전반 기세 좋게 몰아치던 한국이 김기복의 슛으로 한골을 먼저 넣어...
월드컵 본선에의 희망이 소생하던 순간...
호주가 기어이 한골을 만회...
1대1의 순간이 이어지고...
후반도 종반으로 접어드는 순간,
한국이 페널티킥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허망하게도 임국찬이라는 한국선수가 실축을하고...
경기는 1대1로 끝나...
월드컵 본선의 꿈은 허공으로 날아가고 말았답니다.
제가 초등학교 3학년시절의 일입니다.
그당시 페날티킥을 실축한 임국찬이라는 선수는,
그 정신적 중압감을 이기지 못해 몇년후...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고 말았고...
이때 주로 활약한 선수들은,
이제는 한국축구의 원로가 된 이회택 김호 김정남 이세연 정병탁 김기복 등등입니다.
한국과 호주 그리고 월드컵에 얽힌 두번째 惡然은...
1973년11월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당시 한국은 숙적 이스라엘과 일본을 1차예선에서 물리치고 최종예선에 진출했고...
호주와 맡붙게 되었습니다.
호주에서 맞붙은 1차전...
한국은 수비를 공고히 하면서도,
차범근 김재한을 활용한 역습으로 선전을 펼쳐 0대0 무승부를 이끌었습니다.
그리고...
2차전은 서울의 추억서린 그 서울운동장이었습니다.
초겨울 칼바람이 불어대던 추운 날씨였던 것이 기억에 생생합니다.
초반부터 세차게 몰아붙인 한국...
한국의 총공세와 추위에 얼어붙은 호주...
당황한 호주의 수비진 백패스를 골키퍼가 놓치고...
문전앞에 기다리던 김재한이 밀어 넣어 1대0...
곧이어 고재욱의 중거리포로 2대0...
감격한 중계캐스터는 월드컵본선 진출은 결정적임을 외쳤습니다.
그러나...
곧바로 역습으로 한골을 잃고...
후반 한국은 현저하게 체력이 떨어져...
2대2 무승부.
승부는 제3국 홍콩에서의 최종전으로 넘어가고...
사흘후 벌어진 경기에서...
한국은 고갈된 체력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해 통한의 눈물을 흘리며...
1대0패배.
월드컵 본선 진출의 숙원을 또 이루지 못하고 맙니다.
이어서...
1977년 월드컵예선...
이때는 홈앤드 어웨이 방식으로,
한국 이란 호주 쿠웨이트 홍콩이 한장의 아르헨티나본선행 티켓을 놓고 승부를 겨루었으나...
한국은 종합2위로 단한번의 호주전 패배를 포함 3승4무1패를 기록했으나...
호주와의 어웨이 경기 패배가 결정적인 부담으로 작용,
6승2무의 이란에게 또 월드컵본선티켓을 넘겨주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호주는 1970/1974/1978 3회에 걸쳐 한국의 월드컵 진출을 가로 막은,
한국축구의 저승사자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월드컵 단골손님이 된 한국과는 처지가 바뀌어,
오늘 32년 만에 월드컵 재도전의 꿈을 이룬 호주축구를 호주땅에서 응원하게 되니,
역시 인생은 새옹지마라는 감회에 젖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소회인 것도 같습니다.
아무쪼록 이제 호주축구도 한국못지 않게 발전되고,
대중적인 스포츠로 사랑 받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이상 멜버른에서...
킬리만자로였습니다.
첫댓글 홍콩에서 호주에게 1:0으로 질때 호주의 중거리슛에 골을 먹었던 것으로 기억이 납니다. 그 장면이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그 장면을 기억하시는군요. 아마도 후반전의 후반 무렵이었지요. 이세연 골키퍼가 날랐는데..... 한 뼘이 모자랐던 기억이...... 그 때 전 국민이 울었습니다.
전 세계에 축구에 열광하는 나라가 많지만 특히 한국 남자분들의 축구 사랑은 남다른 것 같아요. 2:0으로 지는 것까지 보다가 채널을 돌려 여자들의 영원한 로망, 사랑과 결혼에 관한 영화를 봤습니다.
저기요 남편군, 축구 땜시 어제 남은 술 다 드셨소
축구 매니야셨군요... 움... 이거 멜번에 조기 축구회 하나 만들어야 하는거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저는 효창운동장 앞길을 수년간 이곳오기 한전까지 퇴근길 코스였어요 집이 일산이라 강변북로를 거쳐 자유로를 진입하려면 만리동길이 너무 막히는 관계로 효창운동장쪽을 택하곤 했었답니다 . 축구얘기 한창이신데 웬 천포... 용서하세요>
와! 굉장한. 억수로 대단한, 참말로 대단한, 축구 매니아시네요. 수십년전 일을 생새하게 기억하시고... 생전 들어보지 못한 호주와 우리나라의 축구에 얽힌 이야기 덕분에 잘 알게 되었네요.
막내가 태어난지 3개월정도 되었을때, 잠깐 애를 맞기고 외출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분유를 먹었던 막내에게 시간에 맞춰서 우유를 타서 먹이라고 했던 적이 있는데, 아마도 그때, 월드컵 예선전 인가 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우유 탈 물을 보온병에 넣었었는데, 그 보온병 물을 안 식히고 그대로 분유를 타서, 아기에게 먹여서 입안이 온통생각하시는대로...그 정도로 축구를 좋아하는게 아니라, 사랑한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