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디즘, 마조히즘
사디즘은 가학증 또는 학대음란증이라고 한다. 프랑스의 문학가 M.de 사드에서 유래된 명칭이며 ‘양성의 앨골래그니어(algolagnia)’라고 부를 때도 있다. 고통을 받음으로써 성적 쾌감을 얻게 되는 마조히즘과 대응된다. 심층심리학의 시조인 S.프로이트는 모든 생리적 기능에는 사디즘이 숨어 있으며 마조히즘은 자기자신에게 향하는 사디즘이라고 말했다. 때로는 성목표에만 한정시키지 않고, 공격적이며 고통을 주는 것에 쾌감을 느끼는 경향을 가리킬 때도 있다. 사디즘이라고 최초로 명명한 사람은 R.von 크라프트에빙인데, 사드 이전에도 문학이나 미술 속에서 사디즘의 표현을 볼 수 있다. 플라톤의 《공화국》에 <사형당한 사람의 시체를 보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혀 참을 수 없었던 사나이>의 에피소드가 있고, 루크레티우스가 저술한 《만상론(萬象論)》에는 “죽음과 싸우고 있는 불행한 뱃사람의 조난을 언덕 위에서 구경하는 것은 유쾌한 일이다”라는 글이 있다. 그리스도의 수난이라든지 성자의 순교나 지옥의 형벌을 그림으로 나타낸 중세의 회화에도 화가의 무의식적인 사디즘이 역력히 나타나 있다.
마조히즘은 주체가 자기 자신에게 가해지는 고통이나 굴욕에서 만족은 느끼는 성도착증의 한 형태이다. 사디즘에 대응하는 뜻을 지닌다. 오스트리아의 작가 자허마조흐가 이와 같은 변태적 성격의 소유자로서 이런 경향의 테마로 작품을 쓴 데서 유래한다.
프로이트는 사디즘에서 마찬가지로 마조히즘을 단순한 병리적 성도착으로 간주하는 전통적인 성학자들의 견해를 넘어서며, 마조히즘을 유아기 성의 본질적 특징 혹은 무의식적 처벌 욕망, 더 나아가 죽음의 충동의 표현으로 간주한다.
프로이트는 후기 메타심리학 연구를 통해 일차적, 성애적 마조히즘 개념에 도달했으며 이와 더불어 다양한 형태의 일차적 마조히즘에 대해 언급한다. 여성적 마조히즘은 어떤 사람이 예를 들면 거세, 성교를 수동적으로 당함, 혹은 분만과 같은 여성적 특징을 지닌 사람으로, 그리고 무력하고 나쁜 유아로서 취급당하기를 원하는 경우를 지칭한다. 어떤 사람이 무의식적 죄의식에 의해 지배되는 상황을 프로이트는 도덕적 마조히즘이라고 부른다. 도덕적 마조히즘은 성적 만족과 가장 거리가 있는 마조히즘의 형태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것이 성애적 마조히즘 혹은 여성적 마조히즘과 결합되면 다시 성적 만족과 결합된다. 이를 통해 "도덕이 다시 성화되고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다시 활성화된다."(SE19, 169) 이차적 마조히즘은 원래 사디즘적으로 사용되었어야 했을 충동이 사디즘적으로 발현되지 않고 자신으로 향하는 경우를 의미한다. 이차적 마조히즘은 한편으로는 일차적 마조히즘에 덧붙여 되며, 다른 한편으로는 초자아에 의해 받아들여짐으로써 초자아의 사디즘을 강화시킨다. 임상적 관점에서 본다면 프로이트의 마조히즘 이론은 강박증, 치료에 대한 부정적 반응, 외상 신경증의 해명을 위해 도입되었다.
주자학과 양명학
주자학과 양명학은 성리학의 한 뿌리이지만 추구하는 것이 조금 다르다. 주자학은 성리학을 달리 이르는 말로 주자가 집대성한 바 있다. 주자학은 성즉리(性卽理), 즉 성리학이 이치라 하고, 양명학은 심즉리(心卽理)로 마음이 곧 이치라고 하여 마음을 더 중시하였다.
주자학은 격물치지(格物致知), 양명학은 치양지(致良知)를 주장한다. 격물치지(格物致知)란, ‘물을 탐구하여 지에 이른다’는 뜻이고 ‘치양지(致良知)’는 양지에 이른다는 뜻인데 여기서 ‘양지’는 양명학에서 주장하는 참된지식 이라고 할 수 있다. 양명학은 마음을 중시하는 학문이기 때문에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참된 지식, 그것이 양지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원리를 바탕으로 양명학은 지행합일(知行合一), 즉 행동과 앎을 일치하는 것을 주장하는데 주자학은 선지후행(先知後行)이라고 하여 먼저 알고 그 이후에 행동하는 것을 주장한다.
김기진
1903년 6월 29일 출생, 1985년 5월 8일 사망한다. 주요 저서로는 <붉은 쥐>, <군웅>, <청년 김옥균>, <해조음>등이 있다. 김기진은 한국의 소설가, 평론가이다. 카프(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를 만들었으며 친일 문예조직의 중추적 인사가 되기도 한다. 6·25전쟁 때 공산치하에서 인민재판에 회부되었다가 기적적으로 회생하여 육군종군작가단 부단장으로 활약하면서 금성화랑무공훈장을 수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