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송 작
천개의 태양이 떠오르면
서른 두번째 행성에 살리라
당신의 어둠은 편안하고 안녕하신가?
묻나니, 꽃피고 지고 비 내리는 날
불타는 눈빛으로 서른 두번째 행성에 오시라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빛의 몸
깃발 처럼 흔들며 오는
너를 마주보며 묵연히 미소지으리
천개의 태양이 떠오르면
가장 먼저 너를 기억하리라
비오는 강변 찻집에서
무심히 흘러가는 강물 처럼
이별이 없는 날들을 꿈꾸던 때
아침마다 영혼의 이슬로 반짝이는
서른 두번째 행성에서
뿌리깊은 어둠을 털어내며
빛의 새 옷을 입고 노래하는
너는 찬란하여라
천개의 태양이 떠오르면
모든 시간의 수레바퀴들이 멈추고
두레박 처럼 오르내리던 불멸의 삶도
주목나무 아래 잠들어
마법의 시간이 끝나리라
은백의 광휘로움 속
푸른 연꽃이 피어나
한량없는 꽃비에 물든
저 영혼들은 빛의 기둥을 타고
성자의 별로 총총히 돌아가리라
모든 세기가 시작되고 끝나는 동안
내가 떠나온 곳은 너였으니
돌아갈 곳 또한 너였구나!
시간은 운명을 거스르지 못하고
운명 또한 시간의 그림자에 갇혀 춤준다
태어나고, 늙고, 병들어 죽는 것은
오직 태양의 유희에 불과 할 뿐인것을
천개의 태양이 떠오른다
천개의 태양이
먼 우주의 빛과 흑암의 세력들
전쟁과 평화, 혼돈과 질서
시간의 주재자들과 싸우는 자들
진리를 수호하는 신들과
아수라의 세계에서 온
온 갖 종류의 나찰, 아귀들
이름없는 신들
광명의 세계에서 온 무리들
모두 삼키고 또 뱉어낸다
천개의 태양이 떠오르면
수십억개의 숲
수십억개의 호수에 뛰노는 어린아이들
자작나무 숲들과 솔 숲
메타새콰이어 나무가 자라는
숲들의 정원
진주, 호박, 마노, 비취 빛깔로 단장된
수십억개의 길들
몇 아름드리 바오밥나무가
우두커니 저녁 노을 편에 서서
휘파람 부는 풍경 하나가 걸어나와
소리친다
' 태양은 위대하다
진리의 태양은 영원하다'
그 커다란 범음의 소리는
온 우주의 대지, 심장에 울려퍼진다
수 천, 수 만길 땅 밑으로
청명한 종소리 흐른다
그리고 또 수십억개의 강들과
수십억개의 폭포수들
향기롭게 단풍든 숲들
푸른 대숲에 이는 부드러운 바람
네 고귀한 잠들과 꿈들이 열리는이 아름다운 행성으로 너를 초대하노니
뼈저림들, 굶주림 뒤에 찾아오는 공허들
텅빈 우주의 심장들, 자궁들
가장 먼저 너를 생각했던 밤들은
이제 별이 되거나 이름없는 어둠의 궁창이 되었다
가장 먼저 생각나는 얼굴들, 이름들, 추억들
서른 두번째 태양
서른 두번째 행성
성스러운 운율로 꽃을 가꾸어
꽃비를 내리는 자들
그 꽃 향기는 오악의 습기를 제거하고
허공계 가로지으며 해와 달의 노래를 새긴다
그 노래는 바람과 별과 바다의 은빛 적막을 뚫고 솟아올라
운무로 감싸인 수십억개의 숲을 이룬다
천개의 태양이 떠오르면
거대한 금빛 날개를 펼치며
한 무리 가루라들
신령한 노래를 읊조리며
태양 속으로 날아 들어간다
모든 행성의 지하에서 숨죽여 기도하는 이무기들
성자들의 눈빛에 아로새겨진 성스러운 만트라
그 만트라 속에 숨겨진 우주 창조의 기록들
곧 적멸의 밤이 찾아오고
용암이 터져 흐른다
하늘 용, 야차들은 아득한 정신을 추스리며
조심스레 용의 언어로 이야기하며
신들의 이목을 피하고 있다
'오! 황금빛 가루라여!
네 깃털 하나 하나에
미진수의 생명이 깃들어
매일 매일 두 태양을 마주하며
경배하고 있구나!
우리는 오직 유일한 존재에게 귀의할 뿐!'
모든 진리는 하나로 돌아가고
하나 또한 만물로 돌아가나니
뭇 생명이 그림자 없는
빛의 몸을 얻어 불가사의한 마음으로
천개의 태양과 함께 빛나고 있다
이제 자세히 밝혀두리라
모든 날들의 낮과 밤은
결국 모든 날들의 낮과 밤이다
천개의 태양이 떠오르면
한 뼘의 땅에 수수만년 뿌리내리며
꽃 피우던 하얀 민들레
솜털 보다 가벼운 영혼의 꽃씨를 타고
시간의 베틀 위에서
온 우주의 행복이 짜여진다
그 순간 싸움을 멈준 아수라들
방황하는 긴나라들, 마후라가들
건달바와 사천왕
광대한 모든 행성의 오색구름을 모아 춤추는 하늘 사람들
신성한 아침 안개를 뚫고
밥짓는 굴뚝 연기 속에서
태양의 시간이 쏟아진다
쏟아진다
빛이 밥이 된다
전율하는 숲들
잎 잎 마다 감로의 숨결을 토하는
나무, 나무, 나무들의 강산
깨끗하고 깨끗하여라 이 세계여
빛나라 태양이여
온 존재가 천백억 화신이 되도록
천개의 태양 뒤편에서
시간의 수레바퀴를 굴리는
그 누군가를 이제 우리는
위대한 빛이라 불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