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리 길지는 않은 시간이지만 영국에 살면서 보고 느낀
이 사회와 우리의 차이를 꼽으라면, 저는 무엇보다도
"개인주의" 와 "관계의 평등"을 얘기하고 싶습니다
여기선 개인의 자유, 그러니까 사적인 영역을 지극히 중요시 여깁니다.
아무리 가까워도 남의 집에 불쑥 찾아가는 일도 없고
그런 점에서는 아주 소심할 정도로 예의를 따집니다.
처음에 저는 우리집에 온 손님이 아주 조심스럽게
화장실을 써도 되냐고 묻는 것이 낯설었어요.
우리는 "화장실이 어디예요?"하지 "써도 되냐"고 묻지는 않잖아요.
뭘 굳이 그런 걸 물어보나... 싶더군요.
'마려우면 그냥 들어가면 되지, 안된다고 하면 참겠다는 건가?ㅎㅎ '
남의 사적인 영역을 조심스러워 하는 거겠지요.
그것은 또 그만큼 자신의 사적인 공간도 존중받고 싶다는 뜻입니다.
어쩌다 몸이 부딪치면 양쪽 다 호들갑스러우리만큼 "Sorry"를 연발합니다.
그럴 수도 있으려니... 하고 암말 없이 지나갔다가는 무례한 사람 취급을 당하기 쉽상이지요.
공간 뿐만이 아니라 감정의 영역도 침범하거나 드러내기를 꺼려하지요.
그래서 상대편이 사생활을 말하지 않으면 굳이 더 묻지 않습니다.
또 밝은 모습으로 "I'm fine." "That's all right" 이라고 하거나
안된 표정으로 "I'm sorry"라고 해도 그 속은 모를 일입니다.^^
이렇게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영국인들의 특성을 "Reticent"라는 형용사로 표현하는데
딱히 우리말로 뭐라고 해야 할지요.. 조심스럽다고 해야 할지.., 내성적이라고 해야할지.
암튼 그렇습니다. 이웃끼리도 대체로 친절한데, 그런 친절에도 불구하고 서로간에
더 이상 열지 않는 영역이 분명히 존재합니다.
이런 철통같은 개인주의의 이면에는 분명 처절한 외로움도 도사리고 있겠지요.
개인주의를 얘기하다보니 갑자기 재미있는 예가 떠오릅니다.
바로 옆집에 사시던 할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셨단 기별을 받고
문상을 가야 하나, 가까운 이웃사람에게 물어봤지요.
그랬더니 여기선 상을 당한 이웃을 찾아가지 않고 혼자있게 한답니다.
혼자서, 또는 가족끼리 충분히 애도할 수 있도록 방해 하지 않는 것이
상을 당한 이에 대한 예의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이웃들이 하듯이 저도 카드 한장 달랑 써서 문틈으로 밀어넣고 말았어요.
그 후 장례식에서 만난 할아버지께 짧은 영어로 적절한 조의의 말을 찾아내려고
머리를 굴리는데 할아버지께서 다가오시더니 하시는 말,
" 야, 어제 너네 한국 축구팀 정말 끝내주더라..."
그때가 월드컵 경기가 이루어지던 때였거든요.
저는 그 말 듣고 뒤로 넘어갈 뻔 했어요.
아무리 축구광이고, 감정을 드러내질 않는다해도
마누라 장례식장에서 그게 할 소리입니까? ㅎㅎㅎ
그리고 또 하나, 시어머니와 며느리 관계에서 느낀 신선함인데요,
우리는 아무리 시어머니가 며느리와 좋은 관계를 유지했더라도
아들이 그 며느리와 이혼을 하면 자연 시어머니와의 관계도 끝이 나잖아요.
그런데 이곳에선 아들이 며느리와 이혼한 후에도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계속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비록 아들을 매개로 이루어졌지만 친해진 이상
자신들의 관계는 아들과 별개라는 것이지요.
이런 현상도 우리처럼 가족이란 끈끈한 혈연, 집단주의가
우선이 아닌 개인주의에서 기인할 거예요.
다음으로는 관계가 우리에 비해 수평적이라는 겁니다.
여기선 개인으로 만나든, 집단에서든
성별이나 나이를 크게 의식하지 않게 됩니다.
영국가정에 가면 부인은 가만 앉아 있고 남편되는 사람이
차를 내오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구요
교회모임에서도 어머니 벌 되는 노부인들이 젊은 여인들에게 차를 서빙하고
뒷설겆이도 도맡아 합니다. 자원봉사로 일하는 곳에서도
나이드신 분들께서 타 주시는 차를 마실 때가 많습니다.
나이를 떠나 먼저 마시고 싶은 사람이 준비하는게 자연스러운 분위기지요.
그리고 아이라도 어른 앞에서 전혀 꺼리김 없이 당당히 자기 의사를 내세웁니다.
때론 당돌하게 보일 정도로 말이죠.
이렇게 개인이나, 집단에서 역할의 분담은 있지만.
윗사람과 아랫사람의 관계가 우리보다 수평적임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저는 그 연유가 말에 있지 않나...하는 생각을 해 봤어요.
아시다시피, 물론 이들도 Please, Could you..등 예를 갖추어 말하는 어법과
Sir, Mr, Mrs등의 호칭도 있지만 공식적이 아닌
일반적으로 가까운 사이에서는 우리처럼 그렇게 따로 존칭,존대를 쓰지 않으니까요.
어른이라도 가까우면 이름을 부르고, You 라고 상대방을 지칭 하잖아요.
실제로 지내보면 그런 말에서 오는 편안함, 대등함을 무시하지 못합니다.
참 이상하게도 우리나라로 치면 한참 어른으로 대해야 할 연배의 분들도
이름으로, You로 대하면 친구같이 평등하게 느껴지거든요.
이 사회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이런 주제를 꺼내봤습니다.
물론 단편적인 사실 몇가지로 이들 문화를 전부 얘기할 순 없고
좀더 다양한 각도에서 사회를 보는 깊이 있는 접근이 필요할 것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어디까지나 순전히 제 주관적 경험과 느낌이 그랬다는 거죠.
어찌 됬든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렇듯 다른 문화가 숨통을 트이게도 하고
단절감이나 외로움을 더하기도 하는 걸 보면서
동서문화의 장점들만 골라서 절충된 사회는 없을까..하는 바램입니다.
종종 꿈꾸어 봅니다.
지나친 개인주의에서 오는 건조함을 피하면서도
지나친 집단주의로 개인이 매몰되지 않는 그런 사회.
개인의 자유와 독창성을 존중해주면서 동시에
집단이 지니는 가치들을 이어나가는 그런 사회.
요원한 꿈일까요...?
첫댓글 서양사람들의 합리주의와 동양사람들의 어우러짐이 합쳐지면 참 이상적이겠다. 무엇에나 장점과 단점은 있기마련.
서양사람의 쿨함과 동양사람의 따듯함이 머리와 가슴으로 비유가 되네.
머리와 가슴...비유가 재밌어. 사람은 머리로도 살고 가슴으로도 사는데
이 둘의 적절한 조화가 참 어렵지...
조은 꿈이예요!!!. 난 몸은 한국에 있는디 본 태생은 영국사람같어여~~~살짝 닮은구석 있는 것 같구 ㅎㅎ 암튼 짬뽕이여 ㅋㅋ
ㅎㅎㅎ 그러게.. 피가 의심스럽군. 여긴 싱글에 대한 편견이 덜하니까 좋을껴~~
와우 좋은 글이에요. 너무 좋은 내용을 너무 한번에 써내려가셔서 다 못읽을 사람이 많을것 같아서 안타까워요^^
글이 너무 길었나요? 짤라서 서너편으로 올릴 것을 그랬나봐요.
삔 발목은 다 나으셨어요?
좋은 주제를 한번에 늘어놓으셔서 그냥 건너뛰게 될까봐요^^ 다리는 거의 나았습니다. 오늘은 3킬로 달리기도 했는걸요